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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2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6) - 개항이후

<한일병합된 1910년 마산 모습>

도시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도시내부의 변화도 많았지만 도시외부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당시 마산에서 외부와 연결되는 길은 크게 세 갈래였습니다.
그 중 하나는 동쪽으로 창원․덕산․김해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약 120리 길이 있었는데 바로 지금 진영을 거쳐 부산으로 연결되는 국도입니다. 이 길이 1909년 우마차가 쉽게 통행할 수 있는 신작로로 개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넓은 길은 없었습니다. 많은 물량을 실어 나를 수레도 없었고,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넓은 도로를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청일과 러일 양 전쟁이 벌어지면서 일본군이 개통시킨 군사도로 경의․경인․경원선이 최초였으며 전국적으로 일반도로가 개설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였습니다.
그렇게 볼 때, 이 도로의 확장공사는 매우 이른 편이었습니다.

또 다른 길은 서쪽으로 진동을 지나 진주로 가는 140리 길이었습니다.
좁은 오솔길로 여러 개의 험준한 산마루를 넘어야 했던 길이었습니다만 1908년 6월 폭 5m로 확장공사가 시행되어 1911년 3월 완성되었습니다(
朝鮮總督府 官報 第211號, 1911. 5. 16)

세 번째는 북쪽으로 칠원․창녕․현풍․성주를 지나 서울로 연결되는 길이었는데 확장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음 그림은 병합 당시(1910년) 마산일대 도시상황을 나타낸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1899년 직전의 마산일대 지도(2010/08/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 - 개항기)를 기초로, 개항기 동안 간행된 각종 문헌을 자료로 활용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지도의 아래 쪽 노란 색 칠한 부분이 신마산인데 노란색 중간 쯤 보이는 신월천(현 깡통거리)까지가 조계지였습니다.
하지만 개항 10년 후인 1910년 경, 이미 일본인들은 북쪽 원마산 방향으로 많이 뻗어나왔습니다. 근대식 도로도 현재의 장군천까지 건설되었습니다.

도시 중심에 길게 나있는 검은 선이 1905년에 개통한 철도 마산선입니다.
신마산 쪽에 마산역이, 원마산 인근(현 육호광장)에 구마산역이 있었으며, 이때 난 철로가 현 경남은행 본점 앞 중앙간선도로입니다.

지도처럼 마산포(원마산)와 신마산에만 도시가 형성되었을 뿐, 완월, 자산, 회원, 양덕, 석전, 합성지역 등은 그때까지 자그마한 자연취락이었습니다.

1910년 8월 22일 일제는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같은 달 29일 이 사실을 정식으로 공포함으로써 한반도가 자신들의 땅임을 공식화하였습니다.

이후 일본은 한국사회를 식민지 구조로 재편하였고, 그 과정에서 1911년 1월 1일 진해군항보호를 구실로 마산의 개항장을 폐쇄했습니다.

그러나 개항 당시에도 일본과의 교역 외에 타 국가와의 교역이 미미했던 마산항은 폐항이 된 이후에도 한국산 쌀의 대일 수출과 일제 소비성 물자 및 군수품 수입항으로 계속 활용됨으로써 크게 위축되지는 않았습니다.

개항과 함께 찾아온 인구의 증가와 근대적 도시시설 출현, 일제에 의한 정명변경(町名變更) 등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으면서 마산포의 도시구조는 급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듯이 성장 일변도의 길을 걸어온 마산도 1911년 진해에 군항이 설치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진해>

당시 진해 사정과 관련지어 마산도시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자료를 소개합니다.

먼저 평정빈부(平井斌夫)가 쓴『마산과 진해만』의 기록입니다.

‘1911년 1월 마산의 개항이 폐쇄되면서 산업이 위축될 것 같았지만 원마산의 왕성한 교역과 상거래, 진해만 군사시설의 건축, 진해 신시가지의 건설 등에 의해 오히려 폐쇄 전보다 시장이 활발해졌다’ 고 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최근 친일 문제로 시끄러운 장지연의 『마산기행』기록입니다.

‘한 때 번성의 극치를 이룬 마산은 진해에 군항을 설치한 이래 마산의 상인들이 진해 쪽으로 넘어가는 이가 많아 요사이는 오히려 1911년 이후 인구가 줄어들고 점포들도 활기를 과거에 비해 잃었다’
고 한 것입니다.

두 주장은 각각 나름의 근거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개항기 이후 발간된 자료들과 1911년에 시작되는 남성동 해안 매립공사 등을 보면 장지연의 글처럼 마산이 비록 ‘과거에 비해 활기를 잃었다’ 하더라도 마산도시 전체가 크게 위축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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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2010/1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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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2) - 개항이후
2011/01/3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3) - 개항이후
2011/02/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4) - 개항이후
2011/02/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5) - 개항이후
2011/02/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6) - 개항이후
2011/02/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7) - 개항이후
2011/03/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8) - 개항이후
2011/03/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9) - 개항이후
2011/03/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0) - 개항이후
2011/03/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1) - 개항이후
2011/04/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2) - 개항이후
2011/04/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3) - 개항이후
2011/04/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4) - 개항이후
2011/04/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5)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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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비 2011.05.02 10:30 address edit & del reply

    옛날 진해의 모습이 훨씬 정도되고 좋은 것 같네요.

    • 허정도 2011.05.02 20:57 address edit & del

      일제의 진해 건설 초기사진입니다.
      잘 계시죠?

    • blokken 2011.05.13 08:39 address edit & del

      잘 계시죠?

2011.03.09 00:00

만날고개의 옛길을 걷다


3월 5일, 오후 2시.

날씨는 봄기운이 완연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습니다. 
유장근 교수의 마산도시탐방대 열 다섯번째 길, 모두 스무사람 쯤 만났습니다.

오늘 탐방지는 만날고개.
만날재의 전설과 옛 주막, 아기무덤터와 계비, 일제기 군용지 표지석과 일본인 유지들의 사유지 경계석, 그리고 월영마을 옛 신당,,,,
무심코 지나쳤던 만날재에 끝도 없이 펼쳐진 역사의 향연에 일행은 몸을 맡겼습니다.

이 글은 그 중 옛날 월영리에서 만날재로 넘어갔던 오래된 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누구나 만날재공원을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 올라가지만, 이 길이 뚫리기 전까지 만날재로 가는 유일한 길은 당산마을 한복판의 좁은 길이었습니다.
당산마을은 산복도로 윗쪽 마을 이름인데 마을에 당산나무가 있어서 지으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당산마을은 옛날 월영리 제일 윗쪽 산 밑에 붙어있던 마을로 현재 경남대 뒤 산복도로 위쪽에 붙어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감천 넘어가는 사람들과 감천에서 마산포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목을 축였던 주막과 마을의 안녕을 빌었던 당산목인 수백년된 팽나무가 지난 세월을 말해주고 있는 오래된 마을입니다.

낡고 좁고 오래된 옛길이지만 창신대학 실용미술과에서 길벽화를 장식해 놓아 길이 훤했습니다.





이 길은 옛날 월영리 사람들이 만날재(무학산)를 넘어 감천거쳐 내서로, 그리고 함안으로 다녔던 길입니다.
길이야 함안 아니라 서울까지도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굳이 함안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월영리가 조계지였던 시절에 발행한 지도 때문입니다.

아래 그림이 지도의 일부입니다. 1907년 일본인이 제작한 지도인데 이 지도에 대해서는 지난 1월 3일 이미 포스팅한바 있습니다.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9) - 개항이후

지금의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옛 창원군청) 앞에서 만날고개로 올라오는 넓은 길이 이 좁은 골목과 연결되었는데 그 넓은 길에 함안신정(咸安新町)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길이 함안으로 이어진다는 뜻인지, 함안 쪽에서 볼 때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이곳이 함안과 관련있다는 의미아니겠습니까.



이 길이 만날고개를 넘어 감천과 내서거쳐 함안으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 몇 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 지도는 1916년 일본육지측량부가 제작한 1/ 5만 '마산(군사극비)' 지도입니다.



1919년 일본육지측량부가 제작한 1/ 1만 '마산' 지도입니다.



1926년 일본육지측량부가 제작한 1/5만 '마산(조선교통도)' 지도입니다.



1937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제작한 1/20만 '마산' 지도입니다.
함안까지 연결되는 길이 전부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림의 함안은 지금의 가야읍이 아니라 당시 읍소재지였던 함안읍입니다.




최근인 1990년대 지도도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지역의 위성사진을 통해 비교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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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종만 2011.03.09 08:51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네요.
    몰랐던 사료지도를 보니 이 길이 참 중요한 길이었음을 알것 같습니다.
    지금은 현대길에 밀려 명맥만 유지하지만요. ㅎㅎ

  2. 옥가실 2011.03.09 18:19 address edit & del reply

    글을 읽어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좋은 자료가 참으로 많아요.

    차암... 빨간펜 한곳,

    원문에 산당마을이라고 썼는데, 제가 잘못 알려준 불찰입니다.
    당산 마을입니다.
    산복도로 건너기 바로 직전에 당산 경로당도 있더군요^^

2010.09.1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3) - 개항기

흰 천 위에 그려진 세 개의 광산

<마산소재 광산경계도>
1900년 직후(규장각추정)/ 외국인(규장각추정)/ / / / 규장각


110년 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지도 한 장 소개합니다.
마산포 주변의 마산만 일대 지도인데, 흰 천 위에 그려져 있으며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규장각의 설명에 의하면,
제작자는 알 수 없지만 지도에 러시아 로마노프왕실의 문장이 새겨진 도장이 찍혀 있고 설명이 영어로 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영어권 국가에서 작성한 것 같으며, 제작시기는 마산포 사건과 마산개항시기 등으로 미루어볼 때 1900년 직후라고 했습니다.

로마노프왕실 문장 옆에 적힌 정대유(丁大有)는 이 지도가 제작될 당시에 활동했던 서화가(1852~1927)입니다. 매화를 많이 그렸고 예서(隸書)와 행서(行書)에 능했던 분입니다.
그가 왜 이 지도에 이름을 올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 그가 이 지도를 흰 천 위에 모사한 장본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광산을 표시하기 위한 지도라 그런지 내용이 너무 간략합니다. 하지만 해안선을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어서 매립하기 전의 자연상태 마산포 해안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도에 MASANPHO(마산포)라고 기재된 취락이 개항기에 형성되어 있던 지금의 남성동과 창동일대의 원마산입니다.
각국공동조계지(신마산)는 경계만 간략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왼쪽 무학산에서 마산만으로 흘러드는 세 개의 하천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제일 윗쪽이 회원천과 교방천이 합져져 오동교로 내려오는 하천이며, 중간 것이 마산시청 옆을 흐르는 장군천입니다.
제일 아래쪽 신마산 경계 복판을 지나는 하천은 옛 마산시장 관사 앞의 창원천(대곡천)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도에는 가포만을 둘러싸고 세 개의 광산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저 지역은 러일전쟁 직전에 러시아가 자국의 단독조계지를 시도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광산 소재의 사실 여부는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마산포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였던 당시 열강들의 아욕이 눈에 보이는듯 합니다.

광산이라고 표시해 놓은 저 세 곳을 파보면 지금도 땅 속에서 뭔가가 나올까요?

그래서,,,,
현재의 지도에 저 세 개 광산의 위치를 표시해 보았습니다.
혹시 압니까?
요즘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금덩어리가 저곳에 잠자고 있을지.....<<<







2010/04/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2010/07/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2010/07/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2010/08/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 - 개항기
2010/08/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 - 개항기
2010/08/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 - 개항기
2010/08/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 - 개항기
2010/08/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 - 개항기
2010/09/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2) - 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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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3 10: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 - 개항기


오늘부터 개항기 때 제작된 마산지도를 소개하겠습니다.
지도의 기본정보 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는 지도의 제목이며 제목 아래에 표기한 것이 지도의 기본 정보입니다. 표기 순서는「제작연도 / 제작자 / 발행처 / 축척 / 수록처 / 소장처」순입니다.
기록이 불가능한 부분은 해당 칸을 비워「/ /」로 표기하는데 지도제목이 동일한 경우에는 지도명칭 뒤에「*, **, ***」를 붙여 구분하겠습니다.


<馬山浦 及 附近, 마산포 및 부근>

1899년 / 上野亮 外 / 일본해군 / 1 : 49,054 / / 일본국회도서관


일제는 일찍부터 마산을 자신의 식민지 주요 거점으로 눈독 들여왔었습니다. 그러므로 원산․부산 등과 마찬가지로 마산지역의 측량과 지도제작도 진작 시작되었습니다.

이 지도는 일제가 침략을 목적으로 한반도를 측량하기 시작한 직후 제작된 것입니다. 근대적 측량법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마산관련지도로 추정됩니다.

표기내용과 축척, 제작시기 등을 미루어 지난 주 올린 글에서 소개한「군용비도(軍用秘圖)」의 초기도면으로 보입니다.

지도의 왼쪽 상부가 마산포인데 도면의 명칭처럼 진해, 웅천까지 마산포 근방 해안을 상세히 표기한 지도입니다.
오른쪽 상부에 별도로 그려놓은 것은 거제도 지세포 항을 확대한 지도입니다.

마산포부분만 확대하여 옮겨보겠습니다.


지도 상부에 짙게 표시된 삼각형 지역이 마산포입니다.

이 지도에 의하면 1899년 마산의 도시상황은 마산포(원마산)의 영역인 남성동을 중심으로 성립한 일단의 자연발생 취락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산포(원마산) 남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소위 신마산에 일본인들이 새로운 도시, 즉 각국공동조계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위치는 지도의 좌측중앙부입니다. 가늘게 직선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두 곳 사이에 위치한 중앙부(마산포와
신마산의 중간 부분인 현 자산동․중앙동 그리고 장군동 일대)는 논밭으로 이어진 채 인가(人家)가 거의 없었습니다.

원마산 외에는 오산이라 불렀던 용마산 아래의 현 산호동에 마을이 있었으며 북쪽으로 교방동 및 회원동 그리고 현 봉암교 아래의 봉암동에도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양덕과 합성 쪽에도 이 당시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이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환주산 근처에 성호동과 자산동, 그 남쪽으로 완월동․신월동․월영동 쪽의 마을도 잘 그려놓고 있습니다.

무학산에서 마산만으로 흐르는 하천은 교방천과 회원천․척산천(尺山川)․장군천․창원천이 표기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장군천이 현재처럼 직선으로 마산만과 연결되지 않고 휘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지도상의 장군천 하구는 마산선 철로의 기점이었던 마산 역 자리입니다.
1905년 이후에 제작된 자료들과 관련해 볼 때
장군천은 1905년 일본군에 의해 마산철도와 마산 역이 건설될 때 지금처럼 직선화된 것 같습니다.

각국거류지라고 표기되어 있는 조계지 내의 세관․일본영사관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건물은 개항과 함께 개설된 우편국을 말하는 것으로서 1899년 당시에는 임대건물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봉암동 쪽입니다.
지금의 창원공업단지에 표현되어 있는 염전인데 구전으로 전해오던 봉암의 대규모 염전이 이 지도가 정확하게 그 실체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지도의 오른쪽 상부에 바둑판처럼 격자로 그어 놓은 것이 염전 표시인데 이 염전은 해방 이후까지 존속하여 1947년에 미군이 촬영한 항공사진에도 나타납니다.

보는 것처럼 이 지도에는 진해만을 중심으로 마산포 부근의 해안선․수심․지형 등이 비교적 정밀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특히 간석지의 경계까지 상세히 표기해 놓아서, 매립 등으로 사람의 손이 닿기 전에 존재했던 천연상태의 마산포 해안 원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보입니다.

이 지도는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찾았습니다.
지도를 보는 순간, 그리고 이 지도가 1899년 제작되었다는 기록을 보는 순간, 저는 전율했습니다.
너무나 상세하고 정확한 지도의 내용에 놀랐고, 다음은 1899년이라는 시기와 제작자가 일본해군이라는 점에 또 놀랐습니다.

1899년에 제작했다면 비밀리에 한반도 곳곳에 들어와 측량한 시기는 그 보다 몇 년 전일 겁니다.
1899년은 마산이 개항된 해이기도 하지만 을사조약 6년 전, 경술국치 11년 전인데 이미 그 때 한반도의 해안을 이렇게 샅샅이 조사해 놓았다는 사실에 놀랐던 겁니다.

조선을 식민지 삼겠다는 야욕이 한 눈에 확인되는 이 지도를 보면서 '이렇게 치밀하고도 은밀하게 준비한 일제의 야수를 벗어날 길이 없었겠구나'라는 자조감도 들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위 지도에 표기된 부분의 현재상황입니다.



끝으로 이 지도를 조금 더 확대해 현재 마산시내의 시설물들 위치와 비교해보겠습니다.
3.15의거 탑 바로 앞이 바닷가였고, 대우백화점은 바다 한 복판이었습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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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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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2010/07/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2010/07/2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2010/08/0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 - 개항기
2010/08/0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 - 개항기
2010/08/1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 - 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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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1 00:00

마산에 눈 내렸던 날 기억하십니까?

그제가 초복이었습니다.
많이 더우시죠?
추워 떤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여름 한복판입니다.

지난 겨울 마산에 눈 내렸던 날 기억하십니까?
눈 땜에 집에 갇혔다가 사진을 몇 장 찍어두었습니다.
더위 식히는데 도움될까 싶어 올려봅니다.


<옥상에서 본 정원입니다 / 가운데 가지 앙상한 나무는 매화나무입니다>

<마당 한 복판입니다 / 사각형으로 틔어 오른 부분은 고추와 상추를 심는 텃밭입니다>

<집 건너편 무학산 끝자락입니다 / 가운데가 벚나문데 꽃 피면 볼만합니다>

<앞의 낮은 게 주목, 그 위가 매화, 건너편이 영산홍, 자동차도 눈을 듬뿍 맞았습니다>

<눈 맞은 동백꽃이 처연합니다>

<눈 속에 핀 매화, 설중매입니다>
매화 꽃봉오리 맺혔던 자리에 굵은 매실이 달려 한 달 전에 따냈습니다.
그새 눈내린지 반 년이 지났습니다.
세월 참 빠르네요,,, 저만치 크리스마스가 또 다가옵니다.

어떻습니까, 더위가 조금 가셨습니까?
한 더위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유난히 덥고 비도 많을 거라는데 올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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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막달 2010.07.21 09:29 address edit & del reply

    마음까지 시원해 집니다.

  2. 이윤기 2010.07.21 10:08 address edit & del reply

    저런 겨울이 있었군요.
    너무 더워 깜박 잊고 지냈습니다. ^^*

2010.06.30 23:17

'내 고향 마산'이 없어집니다


'2010년 6월 30일 밤 11시 10분입니다'


내 고향 마산....

까마득한 시절에 내면화되어 떼놓을 수 없는 ‘내 고향 마산....’

인간의지로 불가능한 일이 ‘탄생’이라면 ‘내 고향 마산’ 역시 ‘탄생’처럼 숙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이 지나면 나의 숙명 ‘내 고향 마산’이 없어집니다.
내일부터 누가 날더러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고속도로 이정표에서도, 지도 속에서도, 주소를 적을 때도 내 고향 ‘마산시’는 내일부터 없어집니다.
수몰로 송두리째 고향을 잃은 사람들보다는 낫겠지만, 텅 빈 가을들녘처럼 가슴 깊은 곳이 허허롭습니다.

말로는 마산 마산하면서도 ‘내 고향 마산’이 갖는 의미와 ‘내 고향 마산’이 내게 주었던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지,
마산의 마지막 밤에 ‘마산’이 더욱 그립습니다.

“무학산 뻗어 내린.....”으로 시작해 “....살기 좋은 이 고장 마산이라네”로 끝나는 ‘마산의 노래’를 초등학교에서 배웠습니다.
“....보아라 십육만 단란한 가족....”이 가사였던 6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소풍갔던 서원곡,
헤엄쳤던 회원천,
연애했던 가포길,
취하고 떠들었던 어시장 홍콩바,
창동 네거리,
오동동 뒷골목,
신마산,
구마산,
북마산,
무학산과 봉화산....

내 몸과 영혼이 그 속에 녹아있었음을 오늘 다시 실감합니다.

철들고 어른되어 오늘까지 나는 ‘마산’을 몇 번이나 썼고 몇 번이나 말했을까?
그렇게도 통합을 원했던 사람들은 오늘 밤 기대감에 설레고 있을까?
생각 같잖은 생각들이 꼬리를 뭅니다.

이 밤 자고나면 마산은 창원이 되고, 새 출발을 축하하는 온갖 행사들이 열릴 겁니다.
축하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통합창원시의 출범이 곧 마산시의 사라짐이니 축하가 기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내일은 달라질지 모르지만 오늘 밤은 공허하고 서운합니다.
‘마산시’는 없어지지만 사람들과 산과 땅은 그대로인데, 그래도 오늘 밤은 서운합니다.
깊은 곳에서 배어나오는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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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식 2010.07.01 01:07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가 살았던 이 시기는 분명히 역사상 혼돈기를 살아간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잘 기억하고, 잘 마무리하는 것이 마지막 도리이겠지요---
    ㅅ-ㅅ

  2. urbandesign 2010.07.01 08:10 address edit & del reply

    문득 잠에서 깨어난 느낌입니다.

    "일생을 마친 다음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에게 준것이다(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중)"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제 도시의 이름 "마산"은 바뀌게 되었지만, 그 도시의 공간, 그곳에서 선생님과 뜻을 같이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

  3. 강창덕 2010.07.01 11:20 address edit & del reply

    통합으로 인해 형편이 조금 나아진들 내 영혼속에 고향이 사라지는 판국에 통합이 뭐 대수겠습니까? 통합만이 살길이라고 외친 정치인들과 관변단체 그리고 일부 공무원들은 지금은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수십년을 사용해 왔던 내 이름을 버리고 남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조금 적게 먹고 배가 고파도 가족끼리 살고 싶은 생각 입니다. 통합으로 인해 상실되는게 돈으로 환산이 되겠습니까?

    마산을 팔아먹은 자들은 다음 선거에 반드시 심판을 해야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도 많은 위증자들이 당을 엎고 당선이 되었습니다.
    4년동안 지내다 보면 잊혀질게 따로 있지 마산을 팔아먹은 자들을 어찌 잊겠습니까?

    • 허정도 2010.07.01 16:26 address edit & del

      막상 '마산시'라는 명칭이 없어지니까 서운한 마음이 들어 포스팅해보았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잘 계시죠?

  4. 강창덕 2010.07.01 11:20 address edit & del reply

    통합으로 인해 형편이 조금 나아진들 내 영혼속에 고향이 사라지는 판국에 통합이 뭐 대수겠습니까? 통합만이 살길이라고 외친 정치인들과 관변단체 그리고 일부 공무원들은 지금은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수십년을 사용해 왔던 내 이름을 버리고 남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조금 적게 먹고 배가 고파도 가족끼리 살고 싶은 생각 입니다. 통합으로 인해 상실되는게 돈으로 환산이 되겠습니까?

    마산을 팔아먹은 자들은 다음 선거에 반드시 심판을 해야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도 많은 위증자들이 당을 엎고 당선이 되었습니다.
    4년동안 지내다 보면 잊혀질게 따로 있지 마산을 팔아먹은 자들을 어찌 잊겠습니까?

  5. 나그네 2010.07.01 12:16 address edit & del reply

    이곳 저곳 연재하고 있는 글 잘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고 나니 세상이 바뀌었더라는 옛말이 실감나는 날입니다.
    마산 시민이 창원 시민으로 변해 있더라고요~!
    전 아직도 왜 통합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반 시민에게도 좋아지는 정량적인 무엇이 있는지 말입니다.
    아마도 마산이라는 단어가 쉽게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지만
    당장 주소를 적으라고 하면 정신이 많이 헷갈리겠지요!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지더라도 가슴 한 구석에는 남겠지요!

    • 허정도 2010.07.01 16:28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오늘 큰 길에서 이정표를 보았는데 '마산시청'이라고 쓰여있던 것이 '마산합포구청'이라고 바뀌었더군요.
      실감납디다.

  6. 최정건 2010.07.01 19:09 address edit & del reply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합포구, 회원구, 성산구, 의창군이라 하면 잘 익숙해지겠습니까.

    행정을 하다 보면 분당구, 일산구 처럼 구의 이름을 홍보할 경우가 있는데

    제 생각은

    마산구, 진해구, 창원진구 이렇게 해야 했습니다.

    • 허정도 2010.07.01 23:23 address edit & del

      글쎄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왕 결정된 일이니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겠죠.

  7. rose2919 2010.07.02 06:16 address edit & del reply

    선생님, 안녕하세요? 가끔 들려 좋은 글을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진주와 마산은 오랫동안 경남의 대표하는 도시였고 학창시절을 돌아봐도 그러했었는데
    창원시로 불릴 마산을 생각하니 한쪽날개를 잃은 느낌입니다.
    친구들도 생각나고 왠지 샘의 글이 공감되어 덧글을 남깁니다.

    • 허정도 2010.07.02 10:39 address edit & del

      방문감사합니다.
      그래요,,, 참 서운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시작해야죠.

  8. 이선규 2010.07.02 09:57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아쉽네요
    마산이란 명칭이 없어진다는게
    정말 선생님 글에 공감이 갑니다.

    • 허정도 2010.07.02 10:41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마산 분이신가요?
      마산 사람치고 서운하지 않은 사람있겠습니까?

  9. 지나가는 사람 2010.07.05 14:30 address edit & del reply

    창원이 싫습니다...마산....도청만 창원으로 이사 안갔더라도.... 아쉽네요..마산 영원할 것입니다.

    • 허정도 2010.07.05 15:53 address edit & del

      싫다고 받아드리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넋놓고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아죠,
      하지만 마산이 그 동안 만들었던 역사와 문화와 마산사람들 삶의 발자취는 살려 이어가야되겠죠.
      '시'로서의 이름은 없어졌지만 '마산'은 영원하지 않겠습니까?

  10. 2010.07.11 16:02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이라는 이름 사라지는 상황, 저도 상실감이 엄청 큽니다. 내 고향 남쪽바다의 마산, 멀리서 항상 생각하는 고향입니다. 제가 다닌 초,중,고 앞에 있던 마산이라는 이름이 없어집니까? 하지만 역사속의 마산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헌신한 '마산'이기 때문입니다.

    • 허정도 2010.07.11 23:12 address edit & del

      그러게 말입니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지만 돌이킬 수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마산의 역사, 마산의 문화, 마산사람들이야 영원하지 않겠습니까.

2010.05.26 00:00

어디, 이런 사람 한 번 찾아 봅시다

6.2 지방선거가 절정입니다.
통합 창원시의 미래는 이번 선거에서 선택받는 공직자들에 의해 크게 좌우됩니다.
그만큼 중요한 선거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아래 도시의 시민 소득이 위 도시민 소득의 1/3밖에 안된다면 믿겠습니까?>

60년대 이후 급격히 진행된 인구 도시집중현상은 도시의 양적 팽창이라는 물리적 변화와 함께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도시시설 사이에 해결하기 어려운 수많은 문제를 유발시켰습니다.
도시의 규모가 비대해진 대도시일수록 문제의 정도는 더 많고 더 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도시를 이끌어갈 공직자의 도시인식과 도시에 대한 철학은 다른 어떤 덕목보다 우선 검증되어야할 조건일 수 있습니다.
공직자의 도시철학은 그 도시의 경제 발전과 문화 품격을 상승시킬 뿐만 아니라 당장에 시민생활의 질과도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브라질 쿠리티바의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을 통해 세계적으로 검증된바 있습니다. 

도시문제 접근방법에는 두 가지의 큰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양적인 측면에서 공급 조절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의 구조적인 문제와 시민의 생활방식 등을 조정하여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믿는 문화주의입니다.

예를 들어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택할 때,
기술주의자는 도로를 넓히거나 지하터널을 뚫고, 문화주의자는 대중교통과 자전거도로의 질을 높이거나 출퇴근 방향을 분산시키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간단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대부분 도시정책이 기술주의적 방법에 치우쳐 있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기술주의자들이 말하는 개발과 성장이 문화주의자의 주장보다 위세 당당하고 발전적인 것 같지만 우리의 도시사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전국에 걸쳐 진행된 '개발을 통한 성장정책'에서 얻은 것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폐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개발이란 이름아래 뒤엉킨 도시는, 사람이 있어야 될 자리를 자동차가 차지했고 자동차가 있어야 될 자리는 건물이 서버렸습니다. 한가롭고 넉넉했던 농촌벌판 그 수평의 한 가운데마저 어느 날 괴기한 아파트가 우뚝 서고 말았습니다.
대다수의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역량과 특수성을 외면한 채 미래 발전계획 모델로서 '인구를 늘이고 공단을 조성하여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등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도 바로 이런 개발전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산의 경우,
무학산과 합포만이라는 천혜의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환경이 척박한 까닭도 기술주의만 신봉한 도시행정의 탓이 큽니다.

지금은 도시의 외형적 성장보다 생활의 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입니다. 배가 고팠던 시절에는 음식의 양을 중시했지만 지금은 양보다 맛과 영양을 찾는 현상과 같은 원리입니다.

주민을 위한다는 행정이 오히려 주민을 소외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시개발을 했지만 생활환경이 점점 척박해지는 지긋지긋한 도시정책들은 이제 정말 끝내야 합니다.
‘무엇이 공동체를 위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사람 중심의 도시는 이런 것이다’라고 답할 수 있는 지도력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현재의 도시수준에서 실현할 수 있고 변화할 미래의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단순하고 유연하면서 비용도 적게 드는 도시정책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통합시 출발과 함께하는 선거라 더욱 그렇습니다.

개발보다 생활의 질을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

도시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
차의 길보다 사람의 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어디, 이런 사람 한 번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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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윤기 2010.05.26 09: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사진을 보니...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과 소득은 상관이 없는 일이네요.

    늘, 좀 더 부자가 되면 좋은 도시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던데..

    거짓이었군요.

    유념해야겠습니다.

    • 허정도 2010.05.27 17:38 address edit & del

      경제수준이 도시수준과 전혀 관계 없지는 않겠죠.
      하지만 소득이 낮다고 해서 도시환경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단은 삼가야합니다.

  2. 푸른옷소매 2010.05.27 13:47 address edit & del reply

    강 옆의 잔디밭에서 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도시를 잠깐 그려 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도 가능할까요?

    • 허정도 2010.05.27 17:41 address edit & del

      마산이야 잔잔한 합포만이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닐까요?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봅니다.

2010.04.26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마산 앞바다에 비친 달그림자>


고운(孤雲) 최치원857년(헌안왕 1년) 6두품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2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고,
18살에 당나라 조정이 외국인을 등용하기 위해 설치한 빈공과에 급제하여 당나라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습니다.
「당서예문지(唐書藝文志)」에 이름과 저서가 실릴 만큼 학문이 출중했습니다.

28살에 신라로 돌아 온 고운은 한림학사에 임명되는 등 공직을 맡기도 했으나 국내 사정이 복잡해 자신의 경륜을 펼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부패한 진골귀족과 지방세력 간의 혼란에 나라의 근간이 심하게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벼슬을 내던진 고운은 은거를 결심합니다.
경주, 영주, 지리산 쌍계사, 부산 해운대, 울산 등 전국 곳곳을 주유하다가 경치 좋고 학문하기도 좋다싶어 이곳 합포(마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의 신마산 댓거리,
즉 해운동에 월영(月影, 달그림자)대를 세우고 후학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라의 종말과 고려 태조 왕건의 개국을 예견한 글 ‘계림황엽 곡령청송(鷄林黃葉 鵠嶺靑松)’으로 인해 이곳에 더 머물지 못하고 가솔들을 데리고 해인사로 가 은거했습니다.




월영대
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되어 현재 경남대학교 정문 옆 진동으로 넘어가는 도로변에 있습니다.
그 곳에는 높이 2.1미터, 폭 35센티미터의 ‘월영대(月影臺)’새긴 화강암 비석이 있습니다.
최치원이 직접 쓴 글입니다.

위의 그림 네개는 모두 '월영대'입니다.
네 그림 중 제일 위의 것은 일제기에 찍은 월영대 사진입니다. 일제 초기로 보입니다.
두 번째 것은 1933년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 일본인 교장 우에하라(上原 榮)가 펴낸 '鄕土の硏究(향토의 연구)'라는 책에 수록된 월영대의 그림입니다.
세번 째 그림은 1937년 마산부가 발간한 관광안내 리플렛에 실린 월영대입니다. 네번 째가 근래에 찍은 월영대 내부의 사진입니다.
시기가 다른 월영대의 모습,,,, 어떻습니까?

경남대 앞의 지명인 ‘댓거리’는 대(臺, 월영대)가 있는 길이라는 뜻이라고도 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무학산 꼭대기에도 고운대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천 년 전,
고운이 마산을 찾았을 때 지금 월영대가 있는 신마산 댓거리 일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뒤로는 우뚝 솟은 두척산(무학산),
앞으로는 호수처럼 잔잔한 합포만,
옆으로는 복개되어 사라진 월영천 맑은 물이 흘렀겠지요.
그리고 뒷날 월영리라 불린 초가 몇 채가 월영천 너머 자리 잡고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도시 한 복판이 되었지만 옛지도나 문헌을 살펴보면 월영대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찰랑거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을사늑약 전후하여 신마산 일대에서 시작된 각국공동조계지 건설과 월영동 아파트 단지(구 국군통합병원부지)에 들어선 일본군의 중포병대대를 건설하면서 월영대 앞 해안이 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월영대 주변경관이 달라지게 된 것이 대략 110년 전이라는 말입니다.

달그림자가 보이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긴 월영대(月影臺),,,,
이 아름다운 이름은 고운 최치원이 지었습니다.
고운이 떠나고 세월이 흐른 뒤,
수많은 유인과 학자들이 월영대를 순례하며 고운을 흠모하였고, 그 때 받은 감흥과 고운을 회억하는 심경을 시문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그 중 하나,
인조 19년(1641)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이 쓴 월영대기(月影臺記)의 일부입니다.
월영대의 옛 정황을 엿볼 수 있는 글입니다.

월영대는 창원도호부 관아의 서쪽 삼십 리 합포의 옛 진루 곁에 있는데, 넓은 바다를 마주하고 서쪽 두둑은 바다에서 떨어졌으며 동쪽으로 웅산(熊山)을 바라본다.
매월 열엿샛날 땅거미가 질 무렵 바닷물이 한창 찰 때에, 대(臺)에 올라 달그림자를 바라보면, 달이 바다에서 뜨는데 풀 덮인 산이 그림자를 이루며, 달그림자가 바다 가운데에 있어 넓이가 구십 칠억 삼만 팔천 척이나 되고 기묘하며 지극하다.
달이 산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림자는 사라진다

기묘하고 지극했던 달그림자를 다시 보고 싶지만, 아무리 까치발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도시의 소음에 귀를 막듯, 월영대는 높은 담벼락과 철망으로 외부와 단절된 채 말 없이 서있습니다.

고운에서 시작된 합포만의 달(月),
달 월(月)자와 마산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월영대를 시작으로,
조선시대의 월영리, 신월리, 완월리에 이어 지금의 월포동, 두월동, 반월동까지,,,
이렇듯 월(月)자는 이 도시 곳곳에 남았는데,
최치원이 보았던 ‘기묘하고 지극한 마산의 달 ’은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천재요, 기인이었던 그의 자는 고운(孤雲)과 해운(海雲)이었으며 고려 현종 때 문묘에 배향되어 문창후(文昌侯)에 추봉되었습니다.

마산여고와 제일여고 앞을 지나는 도로 '고운로(孤雲路)',
마산시 '해운동(海雲洞)',
부산 '해운대(海雲臺)',
마산 '문창(文昌)교회' 등이 그 분 때문에 남아있는 명칭들이니,,,,
지나고 보면 천년도 순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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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정건 2010.04.26 18:33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에는 月자와 관련이 매우 깊은 것 같습니다.

    신월, 월영, 월포, 월성 , 완월 신마산에 있는 초등학교들은

    대부분 月자가 들어갑니다.

    • 허정도 2010.04.26 22:00 address edit & del

      그러게 말입니다.
      마산 앞바다에 달그림자가 비치는 그런 날이 다시 돌아올까요?
      그런 날이 오도록 빌어야겠죠?

2009.11.30 01:00

마산시 회원동 500번지


11월 28일(토) 오후,「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네 번 째 길을 걸었다.
마산시립박물관 앞마당에서부터 길을 열었다.
벌써 네번째라 낯이 익었고, 처음보는 얼굴도 있었다.

성덕암→회원현성→환주산 정상망루→성문→일제기 화장장터를 거쳐 한강 정구를 기려 세운 관해정을 둘러본 뒤 산복도로를 길게 걸어 회원동으로 왔다.

회원동 코스는
화란주택→회원천→정자나무와 비석들→회원동 500번지 골목길→철도시장→구 창신학교 터까지 였고, 이어서 북마산역 터와 노비산을 끝으로 네 번째 일정을 마쳤다.



오후 1시 반에 시작된 도시탐방은 5시 15분, 모두 3시간 45분 걸려 끝났다.
걸은 길은 대략 5-6킬로미터 정도.
스스로 원해 걸은 탓인지, 어느 한 사람 다리 아프다 투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학생, 공무원, 주부, 사업가, 회사원, 각계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고 20대 초반에서 50대 후반까지 연령 폭도 넓었다.
지적 호기심이 많은 탓인지 모두들 관찰과 해석에 열중했다.
선선한 바람에 늦가을 하늘은 높았고, 웃음 섞인 말들이 훈훈하고 즐거웠다.

많은 것을 보았지만 두 가지만 쓴다.
먼저 회원천.

회원성당 앞 회원동 8거리 인근 하천.
허연 폐수가 찐득히 흐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역겹다고 했다.
차마 오래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이도 있었고 코를 막기도 했다.

마산시가 야심차게 생태하천을 계획하고 있는 상류다.
하천 전체를 치면 중상류 정도지만 도시지역만 보면 최상류나 마찬가지다.

며칠 전 마산21포럼이 주관한 토론회에서 마산시는 교방천 회원천 삼호천 산호천 광려천 등 마산의 주요 하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 방청객이 발언권을 얻어 ,
“생태하천이 완공되더라도 사실상 생물서식은 불가능하니 사업명칭을 하천정비사업 정도로 바꾸어야 되지 않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안일한 생각.
상류의 썩은 물이 내려갈 텐데 생태하천은커녕 하천정비사업이라도 제대로 될까?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너도 나도 한마디 씩 했다.
"이렇게 더러운 물이 내려가는데 생태하천이 될까??"
"이것부터 해결해놓고 다른 걸 계획해야지, 어휴~~"

원인은 간단하다. 우수와 오수 분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유이지만 도시의 지하관로가 워낙 복잡해 바로잡기가 어렵다.
몇년 전부터 마산시 전역에 우오수 분리공사를 한다고 했으나 회원천의 수질은 큰 변화가 없다.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썩은 하천 그대로 두고 생태하천 만든다며 하류에서 공사를 시작할 런지.
상식만으로 알 수 있을 터.
상류가 썩었는데 하류에 생태하천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오래 전, 마산 하천을 두고 쓴 글 한 조각을 소개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별 달라지지 않았다.

························
그것은 시궁창이었다.
10분 정도 걸으니 역한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
슬펐다.
썩은 하천냄새 때문에 구토가 나는 도시에 살고 있는 내가 슬펐다. ························
오늘도 마산시 청사 정면에는 이 도시를 ‘세계 일류’로 만들겠다는 구호가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을 터.
세계 일류, 그 환상의 야무진 꿈을 생각하니 더욱 슬펐다.
························
<경남도민일보 칼럼, '슬픈 도시' 중 / 2003년>

       <회원천 / 2009년 11월 28일 오후 4시반 촬영 / 회원성당 앞 8거리>


다음은 회원동 500번지
, 그 골목길.

폭 1-2미터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는 걷기 힘든 길.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집안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좁고 꾸불꾸불한 골목길이 신기해 입술을 뾰르퉁 모으기도 했지만 내게는 오래된 과거의 익숙했던 놀이터였다.

공동화장실을 지나 교회 담장을 돌고 공동우물터, 대장간, 두부공장, 이발관, 구멍가게를 지나 내가 살던 옛 집에도 가보았다.
일부러 간 건 아니고 탐방코스 중 자연스레 지나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직접 지은 집.
30년간 살았으니 내 마음의 뼈와 살이 묻어있어 결코 잊지 못할, 잊어서도, 잊을 수도 없는 좁은 골목과 낮은 집,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나서 자랐고, 결혼하여 신방을 꾸몄고, 지금은 서른하나 스무아홉이 된 두 아이를 낳고 길렀던 집이다.
이 집과 골목길, 그리고 어린 시절에 대해 쓴 글이 두어 편 있다.

경상남도 마산시 회원동 500번지.
내가 태어난 곳입니다.
빈민촌이었지만 부끄럽지 않은, 내 삶 전체에 축축이 젖어 있는 몸과 마음의 고향입니다.
························
회원동 500번지는 일본 군용창고와 마구간이 있던 곳인데, 해방 이후 마산항을 통해 일본에서 귀환자들이 떼로 몰려와 거주하면서부터 사람 사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
10대가 되도록 회원동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산자락 대밭의 후드득거리는 바람 소리를 헤치며 다녔고, 해가 떨어지고 나면 어둑어둑한 골목길에서 편을 갈라 연탄 부스러기를 던지며 싸움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
자장면을 처음 먹어본 게 고등학교에 가서였으니 중학교에 다니도록 나의 세계는 회원동 작은 공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편' 중 / 2009년>

어릴 때 살던 집을 떠난 지 30년이 되었다.
나는 좁은 골목길 끝의 낮은 양철지붕 조그만 집에서 30년 쯤 살았다.
흙 놀이에서 축구경기까지 가능했던 그 골목길은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할 회상 장치다.
전에는 컬러였는데 지금은 흑백으로 보인다.
나는 일 년에 두어 번 쯤 그곳을 간다.
혼자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내와 함께 가기도 하는데 그때는 아내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 토막 해준다.
내 어린 날의 흔적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그 작은 집과 좁은 골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다.
재개발로 내 추억의 장소가 사라질 것이라 걱정이다.

장소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오래 전의 추억을 만나게 되는 곳. 과거 속에서 지금의 나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
문신예술과 도시의 장소성' 중 / 2007년>


사용자 삽입 이미지
<회원동 500번지 골목길 / 세번째 네번째 사진이 내가 살던 집, 세번째 사진의오른쪽에 지붕 끝만 보이는 낮은 지붕이 30여년 전 정미라와 신방을 차렸던 방>


5시 15분.
탐방이 끝났다.
노비산 언덕에 올라 옛 시인의 노래를 불렀다.

          <옛 동산에 올라 >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구려

지팡이 도로 짚고 산기슭 돌아서니
어느 해 풍우엔지 사태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구려



지금은 주거지가 되어버린,
그래서 그 땅에 서린 역사도 문학도 추억도 모른 채 아스팔트 포장길을 무심코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곳.
옛 동산과 그 큰 소나무도 없어졌고 키를 재려는 새 솔도 남아 있지 않다.
스토리텔링이라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니 아쉽다.

사람 없는
노비산 언덕,
늦가을 저녁 바람이 스산했고 발 아래 도시는 회색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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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은진 2009.11.30 16:54 address edit & del reply

    잘 읽었습니다.

    발품을 들여야 생각이 여무는 것 같습니다.
    생각이 깊은 도시는 길어다니면, 여러가시 생각이 떠 오르는 도시인 것 같습니다.

    • 허정도 2009.11.30 17:10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시간되면 함께 걸어보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2. 이진규 2009.12.01 09:35 address edit & del reply

    회원천이 저토록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무심했던 마산시민이 도시탐방대의 걸음뒤에서 고개를 떨굽니다.
    역사와 문화와 환경을 아울러 관찰하고 고민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도시탐방대 화이팅!!!

    • 허정도 2009.12.01 10:38 address edit & del

      다음 탐방에는 같이 갑시다.
      고운 색시도 함께.

  3. 구선미 2010.04.13 17:45 address edit & del reply

    아! 내가 살던 회원동500번지. 초,중,고를 다니면서 친구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내 고향,

    내 집... 지금은 결혼한지 18년째,이제 내가 내아이를 위해 서울 강남에 살고 있네요.

    다시 한번 가보고싶은 회원초등학교길, 친정부모님이 살고 계셔도 마음놓고 가지를

    못하네요. 사진을보니 가슴한쪽이 아련합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 허정도 2010.04.13 18:12 address edit & del

      방문감사합니다.
      어디서 살더라도 회원동 500번지의 끈질긴 기질 잃지 마세요.

  4. 구선미 2010.04.13 18:21 address edit & del reply

    저기 보이는 목욕탕 굴뚝이 남일탕인가요?

    • 허정도 2010.04.14 10:42 address edit & del

      남일탕 아니고 정자나무 아래 쪽입니다.

  5. 구선미 2010.04.13 18:24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집은 공중화장실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친정아버지가 팔거리로 이사를 하셨어요

    • 허정도 2010.04.14 10:44 address edit & del

      나도 공중화장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습니다.
      지금도 팔거리 가까운 곳에 살고 있습니다.
      팔거리의 위치가 옛날에는 회원동 아주 윗쪽이었는데 지금은 동네 한 복판입니다.
      세월에 따라 사람도 바뀌고 도시도 많이 바뀌죠.

  6. 양동환 2010.07.04 10:40 address edit & del reply

    전 천지리치빌 삽니다
    마산동중학교 다닙니다

    • 허정도 2010.07.04 15:17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방문 감사드리고요.

2009.11.02 01:00

술과 꽃의 도시



《유장근교수의「도시탐방대」에 참여해, 한 때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마산의 술 공장과 벚꽃 휘날렸던 창원천을 둘러보니 일제기 ‘술과 꽃의 도시’로 명성이 높았던 ‘그 옛날 마산’이 생각나 이 글을 포스팅한다


특정한 도시를 한두 가지 단어로 정확히 규정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도시건 그 도시 특유의 자연조건과 문화조건을 이용해 한마디로 규정하기도 한다.
부산하면 항구, 진해하면 벚꽃, 춘천하면 호수 등과 같은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경의 마산은 ‘술과 꽃의 도시’였다.


- 술의 도시 마산 -

개항 직후인 1904년 최초로 아즈마(東)양조장이 설립된 이후 꾸준히 성장했던 마산의 양조산업은 1928년에 부산을 제치고 이윽고 국내 지역별 주조생산량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현 마산의 무학소주도 일제기였던 1929년 설립한 소화(昭和)주류주식회사에 그 뿌리가 닿아, 일전에 창립8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29년에 설립된 소화주류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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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마산의 일본인 양조장>

당시 주조방식을 생각해 보면, 술의 질은 물맛과 기후 그리고 양질의 쌀이라는 세 가지로 결정되었을 텐데 마산은 그 중 하나도 모자람이 없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일본에는 각 지역마다 유명한 전통주가 많았다.
그 중 일본 효고켄(兵庫縣)의 나다(灘)지방에는 14세기경에 시작된 최고급술 나다자케(灘酒)가 있었다.
명실 공히 당시 일본 최고(最高) 최고(最古)의 술이었다」


1931년,
우리로서는 기억도 하기 싫은 만주사변을 일제가 일으켰다.
전장에 나섰던 조선과 일본의 젊은이들을 위해 공급된 술은 주로 조선 땅에서 담당했고, 조선 각지에서 생산되던 모든 술들이 공급되었다.
그런데
그 많은 술들 중 마산 술의 향과 맛이 최고라면서 마산 술을 ‘조선의 나다자케’라고 부르면서 즐겨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마산 술이 만주에 까지 명성이 높았던 것이다.                  


‘술의 도시’라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말기 바란다.
그것은 곧 마산이 맑은 물의 도시요, 기후가 좋은 도시요, 좋은 쌀이 생산되는 비옥한 땅이라는 뜻이다.
한 때 마산이 그렇게도 살기 좋은 도시였다는 자랑스러운 말이다.


- 꽃의 도시 마산 -

‘꽃의 도시’는 무슨 말인가.

그 옛날,
마산의 봄은 지금의 문신미술관 부근 환주산 일대를 비롯해 시내 전역에 벚나무가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었다.
흔히 일본인을 통해 이 땅에 벚나무가 들어왔다는 속설이 있지만 그 이전부터 마산에는 벚나무가 많았다.

시내의 가로수는 경술국치 이전인 1908년에 마산이사청(현재 의미로는 시청)에서 심었는데 그 중 창원천변의 벚꽃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창원천은 대곡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으로 전 마산시장 관사 앞을 흐르는 하천이다.
현재 문화동인 이 일대의 지명을 사쿠라마찌(櫻町, 벚나무동네)라 불렀으니 벚나무의 위세를 알만하지 않은가.

‘술과 꽃의 도시’ 마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자료로 1937년 마산부가 만든 관광홍보용 리플렛 「관광 마산」의 표지가 있다.

거기에는 마산을 둘러싸고 있는 무학산과 마산앞바다, 그 가운데 두둥실 떠있는 돝섬, 그리고 마산만을 통해 일본을 오가던 큰 배들이 그려져 있다.
바로 그 옆에 명주(銘酒)라고 적힌 일본식 술통과 함께 흐드러지게 만개한 벚꽃을 묘사하여 마치 마산을 꿈의 이상향처럼 소개하고 있다.


                    <1937년 마산부가 제작한 리플렛 '관광의 마산'>


일제기 마산에서 활동을 많이 한 일본지식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 당시 마산의 술과 꽃을 찬양하며 노래하던 시구(詩句)를 기록으로 남겼다. 일본인들이 부른 노래라 달갑지는 않으나 당시 마산의 분위기를 알 수 있어 소개한다. 번역은 경남대 배대화교수가 하였다.

꽃의 마산이냐 마산의 꽃이냐            花の馬山か 馬山の花か
가을 깊어가는 달의 포구                  秋は冱えたる 月の浦

술의 마산이냐 마산의 술이냐            酒の馬山か 馬山の酒か

꽃도 술술 피어나고 물은 용솟음치네  花もさけさけ 水はこんこん


                            <1929년경 창원천가에 만개한 벚나무>

『마산현세록』이라고, 일본인이 쓴 책이 있다.
1929년에 간행되었는데 그 목차에「술의 마산」과 「꽃의 마산」이라는 항목이 들어있어 ‘마산의 술과 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당시 창원천 벚꽃은 4월 7일경부터 피기 시작하여 10일-11일에 70% 개화(開花)하고 13일-14일부터 만개하여 17일-18일경까지가 절정이었다.
특히 창원천의 맑은 물 위에 떨어져 흘러내려가는 낙화가 일품이었다고 적혀있다.

이 절경을 구경하기 위해 매년 4월 10일을 전후해 부산 대구 대전 서울 등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임시열차까지 운행되었다고 한다.
1930년대 마산의 봄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시내 전역이 붐볐다.
진해 벚꽃보다 수 십 년 전의 일이다.

맑은 물, 맑은 공기, 아름다운경치.
이 도시의 자랑은 영원히 지나가버린 한 순간의 우연이었을까?
다시 되돌릴 수는 없을까?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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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3 20:19 address edit & del reply

    잘 읽었습니다.

    • 허정도 2009.11.03 23:21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합니다

  2. 노상완 2010.03.22 20:56 address edit & del reply

    그곳이 창원천이라는 걸 오늘 알았습니다...하천 상류에 있는 다리가 月見교 경교 월남교
    마산교 순으로 되어 있던데...(중간에 다리가 하나 더 있나? )

    지금 하천 주변의 벚꽃은 너무 초라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심의 쌈지터를 많이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허정도 2010.03.23 08:31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창원천 외에 대곡천 등 명칭이 몇개 더 있었습니다.

  3. 우의영 2012.06.10 23:33 address edit & del reply

    간장도 유명하죠??

    • 허정도 2012.06.11 14:17 address edit & del

      그럼요, 간장도 유명했습니다. 지금의 몽고간장도 일본인이 경영하던 야마다장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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