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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동해 원산, 서해 강경, 남해 마산>

18세기 후반부터 조창과 더불어 발달하기 시작한 마산포는 중서부 경남의 곡물과 남해안 수산물의 대표적 집산지로서, 화폐경제와 함께 성장한 굴지의 시장이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마산포구에는 두 개의 굴강, 곧 조운선 전용 선착장인 서굴강과 민간전용인 동굴강이 있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오산선창(午山船艙)․어선창(漁船艙-東城漁船艙)․백일세선창(百一稅船艙)․서성선창(西城船艙) 등 4개의 선창이 펼쳐진 유수한 어항이었습니다.


당시 경상도의 중심포구는 왜관이 있었던 동래와 부산포, 창원의 마산포, 김해의 칠성포였습니다.
창원에는 마산포 뿐만 아니라 지이포(只耳浦, 창원시 상복동 지귀상가 부근), 사화포(沙火浦, 창원시 팔용동 홈플러스 부근), 합포(合浦), 여음포(餘音浦, 귀산부근)가 있었습니다만 이 중에서 중심포구는 마산포였습니다.

마산포 선창은 어선과 상인들로 항상 붐볐고 ‘일창원(一昌原) 이강경(二江景)’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했습니다.
'동해 원산, 서해 강경, 남해 마산'이라고 하여 전국 3대 수산물 집산지이기도 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19세기 이후에는 동북산 북어(北魚)가 원산포에 집하되었다가 마산포를 거쳐 은진(恩津)과 강경포(江景浦)까지 선운되기도 하는 등, 동해와 서해를 연결하는 원격지(遠隔地) 수산물 중개항구로 발전하여 경상도 시장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마산포 시장을 전국에서 손꼽힐만한 규모라는 주장과 달리 어류에 국한하여 시장의 규모를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마산포 시장의 규모가 대단했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19세기 후반에 이미 일본인 상인들도 진출해 있었습니다.

당시 마산포의 정황을 말해주는 문헌들을 소개합니다.

『일성록』순조 33년(1833년) 기록에 의하면 마산포 선창은 객주가 130여 호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다고 합니다.

고종 때 4년 간 함안군수로 재임한 오횡묵의 『경상도 함안군 총쇄록』에는 마산포에 어물과 곡물을 실은 수백 척의 상선이 출입하여 해안에 빈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상업이 발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순조 8년(1808년)에 편찬된『만기요람(萬機要覽)』의 재용편(財用編)에서는 전국 각 도 1,061개의 향시(鄕市) 중 국내 최대의 장시(場市) 15개를 소개하면서 경상도에 있는 276개 향시 중 최대 장시(場市)로 창원 마산포장(馬山浦場) 하나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1893년부터 세곡운송을 위해 마산만을 드나들던 기선 현익호입니다.
현익호는 444톤 2범(帆) 기선으로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배였습니다.



갑오경장에 의해 지세가 현물에서 금납으로 개정되어 마산창의 기능은 중지되었습니다. 1895년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경남의 중심상권으로 자리잡은 마산포 시장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전국에 위세를 떨쳤던 마산포 시장,,,,
19세기 이 도시 마산은 조선에서 이름 높았던 상업도시였습니다.
개항으로 도시가 커지고, 해방 후 귀한동포와 6.25전쟁 후 피난민으로 도시가 커졌습니다.
1960년대 후반 부터는 자유무역지역과 한일합섬으로 공업도시가 되어 '전국 7대 도시'라는 이름까지 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위상에서는 '20세기 마산'이 '19세기 마산포'보다 낮았던 것 같습니다. <<<



2010/04/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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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팬저 2010.07.05 07:45 address edit & del reply

    http://panzercho.egloos.com/2767221 마산시립박물관에 있는 마산포 전경 디오드라마의 모습입니다. 위에 있는 마산포구의 동굴강과 서굴강의 경우 예전 합포진성의 전선을 정박시키던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 허정도 2010.07.05 08:14 address edit & del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지난 토요일 팬저님 덕분에 공부 많이 했습니다.
      주워온 도편은 거실에 잘 모셔놓았습니다.
      저 도편을 구웠던 도공도 가족을 뒤로 하고 일본에 끌려갔을까요?

2010. 7. 2. 00:00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0) 시작하며

요즘 여러분야에서 '디자인(Design)'은 최근의 월드컵열기만큼이나 뜨겁고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도시의 공공공간에 대해 우리 사회의 기대수준이 높아지고, 또한 도시공간에 대한 올바른 표현이 무엇인지 그만큼 고민하게 되는 것으로 우리의 삶이 더욱 윤택해 질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기대에 비해 도시 공공성의 수준은 계획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만들어질 준비가 되어 있진 않은것 같습니다.
도시의 환경은 한번 조성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요구(Needs)에 따라 수정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복합적인 기능과 유연함을 갖춘 도시 환경. 모두가 원하는 것입니다만...
실제로 도시민들이 원하는 내용과 달리 일방적으로 시행되는 도시사업들은 여전히 발전되지 못하고, 낮은 디자인수준과 이질감으로 도시의 창조적 발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행정통합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가게 되는 통합창원시.
통합창원시가 제대로 된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지속적(Sustainable)이고도 창조적인(Creative)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의 외면당하는 도시계획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통합창원시의 훌륭한 정체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존 세개 도시가 가지고 있던 역사적 흔적과 문화적 컨텐츠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변화하고, 통합시의 도시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되는 계획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에 혁신적으로 짧은 기간에 변화에 성공한 도시도 있겠지만,
서서히, 그리고 시민들 자신이 변하면서 도시의 변화를 예감하고 변화를 통해 발전을 위한 계획의 명분을 찾게 되는 것. 오랜 고민으로 도시변화의 방향을 꾸준히 같이 노력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도시의 창조성은 극대화 될 것입니다. 그 것이 도시의 경쟁력이 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금번 연재에서는
통합창원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창조적 도시디자인방법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으로 구성하였으며, 통합창원시만의 방법을 찾는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료출처 :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디자인진흥원, 국회도서관, 각종 웹검색 등을 통해 각 도시의 자료와 사진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도쿄는 1456년 에도성을 시작으로,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막부설치로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30만여채의 가옥화재와 14만명이 사망하는 재난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도쿄로 몰려들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일본경제는 특수를 누렸고, 이로 인해 2차세계대전의 피해를 빨리 회복할수 있었습니다.

꾸준히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 핵도시의 육성에 따른 지속적인 대도시화.
지금의 서울도 똑같은 모습입니다.

도시통합에 따라 창원시(창원+마산+진해)도 인구가 108만이 되었습니다.
통합 창원시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세 도시의 균형발전일 것입니다.
도쿄 또한 같은 고민을 하였습니다.(물론 행정통합에 따른 도시의 기존 기반여건과 행정구역의 확대 측면에서 보면 전혀 다른 사례이긴 합니다만)


20세기 100년동안 일본의 인구는 약3배 증가했고, 그 과정에서 도쿄도의 인구는 약3,300만명이 되어 세계최대 도시권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출산률 저하로 인구가 점점 줄어들어 2050년에는 현재 인구의 20%가 감소할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산업구조도 급격히 바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쿄 뿐만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는 모든 도시들이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도시의 변혁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도시변혁의 필요성은 다음의 네가지 관점으로 정리할수 있습니다.

1. 국제적인 도시간의 경쟁 격화
2. 인구감소시대의 도래
3. 환경문제의 현실화
4. 정보화에 따른 신산업, 신 라이프스타일의 출현

새로운 도시만들기로 도시재생을 도모해야 할 때입니다.

도쿄의 도시재정비는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주목되고 있습니다.


도쿄의 도시계획은 1960년대부터 구체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그리고1982년에는 '도쿄 장기계획-My Town-21세기를 향하여' 라는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통해 도심의 과도한 집중을 해소하고자 다핵형 도시구조로의 전환을 꾀했습니다.
도시기능의 분산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우리로 말하면 행정중심복합도시 비슷한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으로는 인구, 기능, 경제, 문화... 등, 과도한 대도시권의 집중을 막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2000년부터 새로운 장기플랜으로 (8년후에 고시하게 되는) 도시계획을 시작하게 됩니다. 꽤 긴 시간을 갖고 시도되는 계획이었습니다.
목표는 '세계를 리드하는 매력있는 풍성한 국제도시 도쿄 창조' 였습니다.

도쿄 메가로폴리스(Megalopolis)는 구체적으로 5개 권역으로 구분됩니다.

1. 센터, 중심부 재생구역
2. 도쿄만 워터프론트 활성화구역
3. 도시환경재생구역
4. 핵도시 광역제휴 구역
5. 자연환경 보전, 활용구역

동시에 도시간의 연결을 중시하고, 교통망의 정비를 진행하여 전체적인 효율성과 효과적인 기능 제휴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도쿄의 새로운 도시만들기의 도전은 2000년 부터 시작하여 2008년에 도시계획을 고시하게 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현재 미드타운, 국립 신미술관 등 현재 진행형으로 도시재생을 꾀하고 있습니다.


** 도쿄 미드타운

- 위치 : 옛 방위청 철거지
- 시행 : (주)모리 컨소시엄
- 사업비 : 3700여억엔
- 부지면적 : 10만2천평방미터
- 영역구분 : 오피스영역 + 쇼핑영역 + 디자인아트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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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 신미술관
- 위치 : 미드타운 내 (롯봉기 개발사업의 일환)
- 규모 :  시행
- 사업비
- 부지면적 : 약3만평방미터
- 건축연면적 : 4만8천평방미터
- 특징 : 공모전과 기획전 주목적 (미술관 소장 예술품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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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는 정책유도형 도시만들기 방향을 도시계획의 근거가 되는 방침으로 삼고, 도시계획에 책정된 후에는 각종 제도('도시재생 특별조치법', '도쿄의 멋진경관만들기 추진조례' 등)로 받침하였습니다.

** 도쿄 도시계획 추진과정
 2000년   5  도시계획법 개정
            12월  도쿄구상 2000 책정
 2001년  10월  도쿄의 새로운 도시만들기 비전 책정
 2002년  12월  원안작성
 2003년   3월  원안구성 
> 시민들에게 온라인개요 공개 > 의견모집
             7월  소안(원안 이전단계) 작성 > 열람
             9월  공개청문회
            10월  도시계획안 작성
            11월  도시계획안을 23구,26시,5정,8촌에 의견조회
 2004년   1월  도시계획안 공고 및 열람
              3월  도쿄 도시계획심의회 상정
              4월  결정고시
 2007년 11월  마야케 도시계획구역 마스터플랜(안) 공고, 열람
 2008년   2월  도쿄 도시계획심의회 상정 > 3월 결정고시


우리가 바라는 도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할 통합도시의 미래를 위해서는 도시계획의 방침을 시민의 공감대 위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7월1, 통합창원의 출범으로, 곧 도시계획과 도시디자인(설계)이 화두가 될 것입니다.

기존 3개도시는 행정구역상 5개의 권역(구청)으로 나뉘어졌지만, 이는 행정구역상의 권역입니다.
도시계획상 권역의 설정. 이는 도시의 강점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재설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둘지 말고,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를 만들고,
권역을 구분하여 도시기능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도시계획을 위한 정책수립에 시민, 민간사업자, NPO, 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의 참여와 제휴가 있어야 할것입니다.
도쿄의 8년과 같이 말입니다.<<<



Trackback 1 Comment 5
  1. 2010.07.02 11:12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도시공학 2010.07.03 13:19 address edit & del reply

    이런 도시설계기법이나 도시계획을 인정해주는 사회풍토가 먼저 뒷받침되어야합니다..
    시청도시계획공무원을 보면 도시공학을 전공한사람은 거의 없고 토목,건축직들이 맡고있죠..
    이러니 전문성부족으로 도시계획,설계에 대한 이해가떨어져 자연스레 이런모습들이 보여지고 있는거죠..
    저도 도시공학을 전공하는자로서 사회진출에대한 벽이 느껴집니다..도시공학이라고 말하면 사람들 뭘하는곳인지도 모릅니다..

    • 허정도 2010.07.03 22:58 address edit & del

      예,,,,
      우리나라에서는 도시학이 전문분야로 인정받고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건축이나 토목보다 좀 늦어서 그런 것 같네요..ㅎㅎ

  3. 도시공학 2010.07.03 13:24 address edit & del reply

    그래도 허정도님께서 이런글들을 올려주시니 제 전공분야에도 도움이 될만한 자료네요..
    잘 보고가겠습니다..

  4. 상남동 2010.11.15 03:45 address edit & del reply

    무계획적으로 조성된 상남동 보면 참 답답 합니다. 구도심 상권 완전 망쳐 놓고... 무분별하게 들어선 술집들... 면적좀 줄이고 제대로 공원이나 잘 융합해서 만들수 있었을텐데...

2010. 6. 1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창원 탄생-합포성-임진왜란>

창원(昌原)이란 지명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조 3대 태종 8년(1408년)에 의창(義昌)현과 회원(會原)현을 합쳐 창원(昌原)부로 승격되면서 그 이름이 역사에 등장합니다. 2008년에 창원시가 펼친 ‘창원탄생 600년’ 기념행사는 바로 이 사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의창(義昌)의 ‘昌’자(字)와 회원(會原)의 ‘原’자(字)를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7년이 지난 1415년(태종15년)에는 부(府)였던 창원이 도호부(都護府)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성(府城)은 별도로 없었습니다. 현재 마산 합성동에 유적으로 남아있는 '합포성'의 병마도절제사가 창원도호부까지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합포성'은 고려 우왕 4년(1378년)에 부원수 배극렴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축성한 병영입니다.
올해 초 경남대학교박물관에서 『합포성지 정밀지표조사보고서』를 발간하여 당시 합포성을 도면으로나마 복원하였습니다.
연구책임을 맡았던 이상길 교수는 "역사적 가치로 보아 소중히 보존해야할 유적인데 시민들로 부터 외면 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소회를 밝히더군요.

아래 사진은 1930년대 일본인이 촬영한 당시의 합포성 사진이며 그 다음 것들은 각 시기별로 촬영된 합포성의 항공사진입니다.
1947년도 사진은 미군이 촬영한 것인데 흐릿하게 보이는 사각형 윤곽이 성지(城址)입니다. 1967년 이후의 사진은 국토지리정보원 보관자료이며 이상길 교수의 도움으로 올렸습니다.

                                       <1930년대 합포성 모습>

                                          <1947년 합포성 일대 항공사진>

                                       <1967년 합포성 일대 항공사진>

                                  <1975년 합포성 일대 항공사진>

                                         <1982년 합포성 일대 항공사진>


                                     <2008년 합포성 일대 항공사진>

합포성은 방어상 목적 때문에 해안에 바로 접하지 않고 내륙에 입지하였으며 내성과 외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지명인 '합성동'은 내성 외성을 합했다고 해서 '합성'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합포성'을 줄여 '합성'이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성의 구조에 대해서『동국여지승람』창원도호부 관방조에는
「右道兵馬節度使營 在古合浦縣距府十三里 石城周四千二百九十一尺 高十五尺 內有五井 裵克廉築」이라고 하여,
우도병마절도사영은 옛 합포현에 있으며 창원도호부에서 서쪽으로 13리 거리에 있고 석성(石城)인데 둘레가 4,291척이고 높이는 15척으로서 성안에는 우물이 5개소 있으며 배극렴이 쌓았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현재 합성동 어느 주택 담벼락에 남아있는 합포성벽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합성동 155-42번지입니다.
가벼운 현대식 블록 담장을 떠 받치고 있는 오래된 과거의 석축이 내 눈에는 마치 '시간의 낙관(落款)'처럼 보입니다.





합포성 성곽유적 일부가 유형문화재로 남아 이처럼 보존되고 있습니다.

                                             <합포성 성곽 유적>


다음 그림은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합포성입니다.

중앙 상부의 원형 표식 안에 '창원'이라 적은 것이 의창동에 있었던 창원읍성이고 그 좌하의 작은 원형 표식 위에 고병영(古兵營)이라고 적은 것이 합포성입니다.




다음 그림은 이상길 교수가 복원한 합포성의 위치를 현재의 지도 위에 표시한 것입니다.

                                     
                                                 <합포성 위치>

창원시 의창동 일대에 있었던 창원읍성은 성종 8년인 1477년 완공되었습니다. 완공은 되었지만 창원도호부가 언제 신축한 부성으로 이전했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아무튼 1408년 탄생한 창원부의 행정치소는 짧게보아 칠십년 이상 지난 뒤 마산에서 창원으로 옮겼습니다.

부성(府城)이동이라는 도시의 대변화는 마산지역(당시 합포)에 있었던 행정과 군사의 중심기능이 창원(의창동 일대)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성이 이전하자 합포성에는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慶尙右道兵馬節度使營)만 남았는데 이 영(營)은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6년(1603년) 진주로 옮겨갔습니다.

그 후부터 합포성은 역사적 소명을 상실하였고 4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방치되었습니다. 현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53호로 등록되어 명맥만 유지되고 있을 뿐, 위상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존 받아야할 이 오래된 성곽은 '도시화'의 이름 아래 무너져 내렸습니다.
철도 마산선(마산-삼랑진) 개설로 1904년-1905년 사이에 성곽이 관통되었고, 이어서 1909년에는 마산-창원-부산을 잇는 신작로가 성곽을 관통하였습니다.
1960년대 말에는 현 마산자유무역지역 조성과정에서 합포성의 성벽이 매립용 골재로 사용되면서 성의 형태가 대부분 망실되었습니다.
1970년대 말에는 마산시의 도시확장정책으로 동마산개발이 시작되면서 합포성은 형체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이 시기에 마산의 기차역(마산역, 구마산역, 북마산역)들이 현 마산역으로 통합되면서 기존의 철도는 광로(현 마산시외버스터미널 앞 대로)가 되고 그 옆으로 새로운 철로가 생겨 합포성은 또 한 번 관통당했습니다.

우리 지역도 임진왜란(1592년-1598년)의 피해가 많았습니다.
마산인근지역의 대표적인 전투는 현재의 창원시 동읍 신방리 서쪽 고지인 노현(露峴)일대 및 창원성 전투, 의병장 최강이 분전한 안민고개 전투,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수군 연합함대가 투입된 합포해전과 안골포 해전 등입니다.


전쟁기에 왜적은 장기전에 대비하여 남해안 여러 곳에 성(城)을 수축했는데 마산 산호동 용마산에는 그 때 축성한 왜성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오른쪽 사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임진왜란 중 우리 지역 주민들은 왜구의 침입에 불굴의 저항의식과 희생정신으로 민족 자존심과 자주의식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7년이라는 장기간의 전쟁와중에서 병사 겸 부사인 김응서와 그를 따르는 군관민이 한 사람도 일본에 항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34년(1601년)에 창원도호부는 행정과 군사상 요충지인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되었습니다. 이유는 임진왜란 때 보여준 창원지역민들의 높은 충절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합포성에 있던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慶尙右道兵馬節度使營)을 진주로 이전한 것이 대도호부 승격 2년 뒤인 것을 보면, 이 병영(兵營)이 떠나고난 뒤 약화될 창원지역의 행정과 군사적 비중을 강화시킬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무튼 1408년에 시작된 창원부는 도호부를 거쳐 200여년이 지난 1601년 드디어 대도호부가 되었습니다. 1661년(현종2년)에 잠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으나 1670년(현종11년) 다시 대도호부가 되어 1894년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임진왜란 때 단 한 사람도 왜군에 항복하지 않은 불굴의 저항정신이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으로 절대 권력을 두 번씩이나 쓰러뜨린 마산 사람들의 저항정신으로 이어진 것 아닐까요?<<<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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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따옥따옥 2010.06.14 09:36 address edit & del reply

    같은 장소를 시대 순 변천사 사진을 보니까 참 ...
    앞으로 2008년 뒤에 실릴 사진은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해 지네요 ^^

    • 허정도 2010.06.14 10:00 address edit & del

      글쎄 말입니다.
      저 유적지가 미래에는 또 어떻게 변할까요?

  2. 옥가실 2010.06.14 10:10 address edit & del reply

    이렇게 보니,
    합성동이 마산 창원의 중심이군요.
    잘 보았습니다.

2010. 5. 26. 00:00

어디, 이런 사람 한 번 찾아 봅시다

6.2 지방선거가 절정입니다.
통합 창원시의 미래는 이번 선거에서 선택받는 공직자들에 의해 크게 좌우됩니다.
그만큼 중요한 선거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아래 도시의 시민 소득이 위 도시민 소득의 1/3밖에 안된다면 믿겠습니까?>

60년대 이후 급격히 진행된 인구 도시집중현상은 도시의 양적 팽창이라는 물리적 변화와 함께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도시시설 사이에 해결하기 어려운 수많은 문제를 유발시켰습니다.
도시의 규모가 비대해진 대도시일수록 문제의 정도는 더 많고 더 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도시를 이끌어갈 공직자의 도시인식과 도시에 대한 철학은 다른 어떤 덕목보다 우선 검증되어야할 조건일 수 있습니다.
공직자의 도시철학은 그 도시의 경제 발전과 문화 품격을 상승시킬 뿐만 아니라 당장에 시민생활의 질과도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브라질 쿠리티바의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을 통해 세계적으로 검증된바 있습니다. 

도시문제 접근방법에는 두 가지의 큰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양적인 측면에서 공급 조절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의 구조적인 문제와 시민의 생활방식 등을 조정하여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믿는 문화주의입니다.

예를 들어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택할 때,
기술주의자는 도로를 넓히거나 지하터널을 뚫고, 문화주의자는 대중교통과 자전거도로의 질을 높이거나 출퇴근 방향을 분산시키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간단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대부분 도시정책이 기술주의적 방법에 치우쳐 있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기술주의자들이 말하는 개발과 성장이 문화주의자의 주장보다 위세 당당하고 발전적인 것 같지만 우리의 도시사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전국에 걸쳐 진행된 '개발을 통한 성장정책'에서 얻은 것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폐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개발이란 이름아래 뒤엉킨 도시는, 사람이 있어야 될 자리를 자동차가 차지했고 자동차가 있어야 될 자리는 건물이 서버렸습니다. 한가롭고 넉넉했던 농촌벌판 그 수평의 한 가운데마저 어느 날 괴기한 아파트가 우뚝 서고 말았습니다.
대다수의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역량과 특수성을 외면한 채 미래 발전계획 모델로서 '인구를 늘이고 공단을 조성하여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등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도 바로 이런 개발전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산의 경우,
무학산과 합포만이라는 천혜의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환경이 척박한 까닭도 기술주의만 신봉한 도시행정의 탓이 큽니다.

지금은 도시의 외형적 성장보다 생활의 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입니다. 배가 고팠던 시절에는 음식의 양을 중시했지만 지금은 양보다 맛과 영양을 찾는 현상과 같은 원리입니다.

주민을 위한다는 행정이 오히려 주민을 소외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시개발을 했지만 생활환경이 점점 척박해지는 지긋지긋한 도시정책들은 이제 정말 끝내야 합니다.
‘무엇이 공동체를 위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사람 중심의 도시는 이런 것이다’라고 답할 수 있는 지도력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현재의 도시수준에서 실현할 수 있고 변화할 미래의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단순하고 유연하면서 비용도 적게 드는 도시정책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통합시 출발과 함께하는 선거라 더욱 그렇습니다.

개발보다 생활의 질을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

도시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
차의 길보다 사람의 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어디, 이런 사람 한 번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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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윤기 2010.05.26 09: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사진을 보니...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과 소득은 상관이 없는 일이네요.

    늘, 좀 더 부자가 되면 좋은 도시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던데..

    거짓이었군요.

    유념해야겠습니다.

    • 허정도 2010.05.27 17:38 address edit & del

      경제수준이 도시수준과 전혀 관계 없지는 않겠죠.
      하지만 소득이 낮다고 해서 도시환경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단은 삼가야합니다.

  2. 푸른옷소매 2010.05.27 13:47 address edit & del reply

    강 옆의 잔디밭에서 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도시를 잠깐 그려 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도 가능할까요?

    • 허정도 2010.05.27 17:41 address edit & del

      마산이야 잔잔한 합포만이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닐까요?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봅니다.

2010. 4. 12. 07: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무학여고 뒷산에서 나온 붉은 항아리>


마산인근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까요?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은 그 동안의 다양한 연구와 유적 발굴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창원시 반계동 선사유적지 발굴현장에서 빙하기에 형성된 토층 발굴과 창원 동면 덕산의 합산패총,
그리고 진해 안골포 패총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토기(土器)를 들 수 있겠습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마산의 현동․구산면․진동․진북 등지에 분포된 고인돌과 고대취락지가 있습니다.




마산 도시 한복판
에서도
청동기시대유적
이 나왔습니다.
바로 위 사진입니다.
마산 회원동의 무학여고 뒤 이산미산에서 1972년 출토된 붉은 채색간토기(紅陶)입니다.

채색간토기는 고운 흙을 사용하여 형태를 만든 뒤 표면을 갈아 반들거리게 하고 그 위에 산화철을 바른 토기입니다.
회원동에서 멀지않은 자산동 환주산성에서도 이와 같은 토기가 출토된 적이 있습니다.

이 균형미 좋고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항아리는 마산무학여자고등학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청동기시대,,,,
3,000년이라는 그 아득한 과거의 시간에 누군가가 남긴 이 작은 항아리 한 개가 마산이라는 도시에 얼마나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찍이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였던 천관우 선생은 마산·창원·칠원지역을 일러 삼한시대의 변한 13부족 중 변진구야국(弁辰狗邪國, 김해)과 변진안야국(弁辰安邪國, 함안)의 사이에 있었던 변진주조마국(弁辰走漕馬國)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창원대 남재우 교수는 주조마국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면서,
창원 다호리와 덕천리에서 발견된 묘와 그 부장물로 보아 이 지역이 변한제국(弁韓諸國) 중 하나의 나라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학자들의 추정은 이러하지만,
기록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마산지역의 정치집단은『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는 '포상팔국(浦上八國)'이라는 원시적 부족국가 '골포국(骨浦國)'입니다.

포상팔국은 글의 뜻처럼 바닷가에 자리한 여덟 개 나라였습니다.
그 중 골포(骨浦)는 마산과 창원을 중심으로 한 국가였으며, 칠포(柒浦)는 진동만을 중심으로, 고사포(固史浦)는 현재의 고성지방을 중심으로 한 국가였습니다.
이 외에도 사천지방을 중심으로 한 사물국(泗勿國)과 위치를 알 수 없는 보라국(保羅國)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나머지 세 국가는 기록에 조차 나타나지 않습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포상팔국의 침입을 받은 가라(加羅=阿羅, 함안)가 신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는데 이에 응한 신라에 의해 포상팔국이 패퇴합니다.
3년 후,
절치부심(切齒腐心) 복수를 준비한 골포(骨浦)․칠포(柒浦)․고사포(固史浦) 세 나라가 다시 전쟁을 일으킵니다만 또 다시 신라에게 철저히 괴멸 당하고 맙니다.

이 처절한 전사(戰史)를 통해,
비록 패하긴 했으나 강대국 신라를 상대로 보복 전쟁까지 일으킬 수 있었던 골포, 칠포, 고사포 3국도 상당한 세력을 갖춘 나라였다는 추정은 가능한 것 같습니다.

3세기말에 발생한 이 '포상팔국 전쟁' 이후 마산지역에는 새로운 정치집단이 재편되었고,
4세기 이후에는 '탁순국(卓淳國)'이라는 정치집단이 마산 창원일대를 중심으로 세워집니다.

이 국가는 진해의 웅천지역과 칠원의 일부지역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당시 한반도 남부지역을 통하여 선진문물을 수입하고자 하였던 일본과의 관계도 활발했습니다.

탁순국은 신라와 백제의 가야지역 침략과정에서 정치적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끝임 없는 세력 확장정책에 밀려 금관국(金官國)이 신라에 멸망됨으로써 탁순국은 스스로 더 이상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신라에 자진투항하고 말았습니다.
시기는 신라가 김해의 금관국을 복속시킨 532년 이후에서 541년 이전이었습니다.

이 도시에 있었던 포상팔국의 '골포국'과 뒤를 이은 '탁순국',,,,
그 나라는 어떤 나라였으며,
우리보다 이곳에 먼저 살았던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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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 도시변천사 -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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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배유림 2010.04.13 12:07 address edit & del reply

    이제 시작이네요..
    흥미진진합니다.
    마산의 과거...다음편을 기다립니다

    • 허정도 2010.04.13 14:30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지겨운 글을 기꺼이 '흥미진진'이라는 용어로 포장해 주어 고맙습니다.
      가능하면 쉽고 재미있게 올려볼 생각입니다.
      후배님, 봄꽃맞이 안가세요?

  2. 이진규 2010.04.13 17:21 address edit & del reply

    한국의 고대사는 수많은 가능성의 시대이자 다양성의 시대로 재해석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가야를 비롯한 포상팔국은 그 건국과정에서부터 개방성과 포용성을 보이는듯 합니다. 위치적으로도 한반도 남단에서 바다와 접해 있었던 것을 보면 그러한 해석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지금 제가 컴터를 두들기고 있는 이곳 용마산 도서관 언덕은 저 아득한 선사시대를 거쳐 골포국의 누군가가 마산만을 바라보며 한세월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허정도 회장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충성!

    • 허정도 2010.04.13 18:10 address edit & del

      반가워.
      용마산 도서관에는 왠일로?

2010. 4. 8. 07: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연재를 시작하면서>

창원 진해와의 통합으로 마산은 곧 단독 시로서의 이름을 잃게됩니다.
아쉬움과 함께 이 도시의 변천과정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도시는 형성과 변환이라는 두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생성해온 유기적 생명체입니다.
도시에는 그 곳에 존재했던 인간의 모든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시의 변천과정은 곧 인류의 역사이자 기록이고, 도시의 형태는 인간의 구체적인 문화실체입니다.
도시(city)
문명(civilization
)이 동일한 어원에서 비롯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인간의 성격과 행동양식이 선․후천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듯이 도시도 선천적 요인으로서의 자연조건과 후천적 요인인 역사적 과정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상황과 문제를 이해하고 미래 도시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과거 우리 도시의 형성배경과 성장과정에 대한 통찰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림으로 보는 마산 도시변천사' 이런 목적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이 글을 시작으로,
오늘날 마산이라는 도시가 있기까지 과연 어떤 변화과정을 거쳐왔는지 살펴볼 계획입니다.
글의 양이 얼마나 될 것이며, 기간은 언제까지가 될지 글 준비를 하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또 이 작업이 마산도시의 과거를 얼마나 정리해낼 것이며, 설령 그 과정에서 어떤 성과가 있다해도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제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처럼 다른 글도 올리면서 연재가 이어질 것입니다만 대략 일주일에 한 편 정도 올려볼 작정입니다.
내서읍과 삼진, 구산면을 제외한 마산도시지역을 주 대상으로 삼겠습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다가 지겹지 않게 그림을 곁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림은 그 동안 수집한 '사진' '지도' '도면'과 제가 직접 작성한 '지형도' 등 네 종류입니다.

학술적인 접근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눈이 갈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다음처럼 3단계로 나누어 포스팅할 계획입니다.
1차는 고대로부터 개항(1899년)까지,
2차는 개항이후부터 해방(1945년)까지,
3차는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로 구분하겠습니다.

<1차 게재>
고려시대 이전
조선시대
개항(1899년)

<2차 게재>
개항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
일제강점 제1시기(1911년부터 1920년까지)
일제강점 제2시기(1921년부터 1930년까지)
일제강점 제3시기(1931년부터 1945년까지)

<3차 게재>
산업화 이전시기(1945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도약 및 전성기(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체 및 쇠락기(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 마산도시변천과정을 연구하면서 확보한
자료를 공유하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혹시 여기에 올리는 것 외에 좋은 자료가 있으면 소개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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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배유림 2010.04.09 09:06 address edit & del reply

    와~ 기대합니다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되겠네요

    기다립니다

    • 허정도 2010.04.09 09:44 address edit & del

      최선을 다해보겟습니다만 얼마나 설과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후배님...

  2. 늘축제였음 2010.05.20 01:14 address edit & del reply

    요즘 정말 게으린 탓인지 이제야 이 블로그 기획을 봤음다. 잘 봤음다. 언제가 제가 다시 일본 마치츠쿠리(마을만들기)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면 허 전 사장님께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기대됩니다. 예전처럼 교섭 자리에서만 보지 않고요. ^^ 아직 기존 공부하던 예술경영 석사 논문을 못 썼어요. 수료는 했는데, 변명이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요. ^^ 덕분에 제겐 정말로 매력적인 도시이야기, 특히 건축학이 녹아있는 글, 잘 보겠습니다.

    • 허정도 2010.05.20 09:12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이시우 기자님.
      이 기자님 미래계획, 참 좋은데요.
      어려운 직장에서 일하랴 공부하랴 고생이 많습니다.
      하지만 '젊은 날 고생은 돈주고 사기도 한다'니 좋게 생각합니다.
      힘내슈.

  3. 늘축제였음 2010.06.05 19:26 address edit & del reply

    좀 늦게 봤음다. 한 10일 블로그를 하지 않아서요. 짧고 굵게 '얍'

  4. 최익환 2010.06.10 15:42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요즈음도 많이 바쁘시겠죠. 그런데 이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구하시고 정리를 하셨는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창원이란 이름으로 통합되면서 감회가 새롭겠습니다. 역사에 남을 좋은 자료라 여겨집니다.

    • 허정도 2010.06.11 16:23 address edit & del

      관심가져주어 고맙습니다.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과제입니다.
      부족하겠지만 할수있는 만큼이라도 기록으로 남겨두는데 의미를 가지려합니다.

  5. 임재헌 2010.08.24 15:46 address edit & del reply

    형님..잘 지내시죠? 잠시 시간이 나길래 형님의 근황이 어떤지 검색하다가 들어왔습니다.
    우연히 본 글과 사진 그리고 부가자료들..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요..혹시 시간되시면 3004 들르시고요..연락 주시면 좋겠습니다..

    • 허정도 2010.08.24 19:22 address edit & del

      아, 동생 반가워.
      잘 지내지?
      제수씨와 아이들은???
      미안해 자주 연락 못해서.
      3004,,, 잠깐 생각했지, 무슨 뜻인가 싶어서.
      재미있는 표현이네,, 삼천포.
      건강하게 지내.

  6. 2011.05.28 23:07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허정도 2011.05.28 23:39 신고 address edit & del

      좋은 일인데 당연히 협조해야죠.
      그렇게 하세요

2010. 3. 22. 07:00

창원세계지식컨퍼런스에 참석했습니다


지난 금요일(3월 19일) CECO에서 열린 '창원세계지식컨퍼런스'에 토론자로 참석했습니다.
창원시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준비한 야심찬 기획으로 지역에서는 처음 시도된 행사였습니다.
대중교통, 디자인, 건강도시, 생태, 자전거정책 등 도시문제가 대종을 이루었고 교육과 복지전문가도 참여했습니다.
발표자들 모두 국제적인 활동가이거나 전문가여서 들어볼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도시와 지역사회를 설계 관리해 온 우리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들이었습니다.



나는 ‘건강도시’를 주제로 발표한 호주 그리피스대학 환경보건학장 ‘피터 데이비’ 교수와 ‘유니버설 디자인’을 주제로 발표한 일본 트라이포드 디자인주식회사 ‘나카가와 사토시’ 대표의 발표문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한정된 시간에 발표자 숫자가 많아 토론시간은 짧았습니다.

피터 데이비 교수는 국제기구와 호주의 몇 도시(퀸즈랜드, 브리즈번, 골드코스트 등)에서 시도하는 건강도시를 소개했습니다.
여러 도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를 열거하면서 창원시가 가야할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건강도시의 목적이 ‘도시구성원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라면서 협력과 참여, 형평성, 사회생태학적 건강, 생존능력, 공생, 적절한 번영, 지속가능성 등을 키워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 정부와 경제계 및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건강도시의 정책방향으로는 생태 지향적인 환경, 지속적으로 번영하는 경제, 미래 지향적이며 공공성을 강화하는 교육, 건강하고 안전한 주민생활, 형평성의 원칙 등을 제시했습니다.

피터 데이비 교수의 발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도시환경개선의 혜택이 특정 계층에게 돌아갈 수 있는 왜곡된 도시정책을 경고하면서 도시공간구조에 반영되어야 할 사회적 형평성을 강조한 점이었습니다.
자가용 중심의 교통정책과 도심대형아파트가 점차 많아지는 한국의 현실을 알고하는 말 같았습니다.

그리고,
도시를 이끌어가는 리더그룹의 도시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리더의 도시철학이 그 도시의 환경과 품격은 물론 경제발전과 문화수준까지 결정한다고도 했습니다.

창원의 도시정책에 대해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주문했습니다.

생태 건축 확산,

적절한 주택가격,
교통혁신,
녹색산업,
생태학적으로 책임 있는 도시생활양식(자원 절약)추구

매우 이상적인 도시발전방향 제시였습니다.
곧 시작될 통합창원시의 도시발전방향으로도 적절한 주장이었습니다.
이 컨퍼런스가 마창진 세 도시 통합논의 시작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습니다만 통합이 결정된 지금 시점에 딱 들어맞는 행사이기도 했습니다.

다섯 가지 주문 중 ‘적절한 주택가격’ 부분에서는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에 무게중심이 있는 한국의 주택현실에서는 보다 본질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시간이 없어서 토론을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나카가와 사토시 대표의 발표 요지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도시생활에서 습관화된 불편과 비합리적인 것들, 즉 생활 속에서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내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크게 보면 피터 데이비 교수의 건강도시 주장과 일맥상통했습니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흔히 시각적인 부분만 생각하는데 그는 기능이라는 측면의 디자인도 충족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별 생각 없이 디자인된 공공시설물 때문에 불편을 겪는 적지 않은 시민들이 있다면서, 모든 시민들의 나이와 취미 및 신체능력에 맞는 도시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참고로,
유니버설 디자인은 오른손잡이만 쓸 수 있도록 제작된 가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을 뜻합니다.

‘창원세계지식컨퍼런스’에 참석한 외국전문가들의 견해를 통해서 내가 얻은 답은 간단합니다.

도시문제는 물리적인 양의 조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겁니다.
도로가 막혔을 때 지하도를 뚫거나 차선으로 넓히는 기술주의적 방법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차원적인 방법만으로는 건강한 도시도 행복한 도시도 지속가능한 도시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대단한 행사는 아니었지만 미래에 이 도시가 가야할 길이 올바르게 제시된 자리였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본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의견'들이었습니다.

아쉬웠던 점도 한 가지 있었습니다.

행사를 준비한 분들의 의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발표자들에게 배당된 시간이 짧아 이야기를 깊이 들어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발표자 숫자가 좀 적더라도 그 분들의 지식과 경험을 보다 넓게 깊게 들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

------------------------------------------------------------------

<참고자료>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건강도시’의 정의-

「물리적, 사회적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창출하며, 지역사회의 자원을 증대시킴으로써 구성원들이 개개인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며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

-WHO가 제시한 ‘건강도시’의 특징-

○ 물리적인 환경이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
○ 안정적이며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보존하는 도시
○ 상호협력이 잘 이루어지며 자연자원을 절약하는 지역사회
○ 자신의 인생과 건강에 영향을 주는 정책에 대해 시민들의 참여와 통제가 원활한 사회
○ 음식, 물, 주거, 안전 등 기본적인 욕구가 모든 시민에게 충족되는 도시
○ 다양한 만남, 교류 및 커뮤니케이션의 기회가 보장되는 폭 넓은 경험과 자원이용이 가능한 도시
○ 다채롭고 활기가 넘치는 혁신적인 경제
○ 역사적, 문화적, 생물적 유산이 보존되며 다른 집단과 개인 간의 협력이 장려되는 사회
○ 건강도시의 제반조건이 충족할 수 있는 조직이 갖추어진 도시
○ 적절한 공중보건 및 치료서비스가 모든 시민에게 공평하게 보장되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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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인안 2010.03.24 14:05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도시를 만드는데는 시민이나 전문가들의 마인드도 중요하지만, 시정을 책임질 시장의 마인드가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시정을 책임지겠다는 분들의 면면을 보니, 참 걱정됩니다. 여전히 바쁘시군요. 건강 잘 챙기십시오.

    • 허정도 2010.03.24 17:37 address edit & del

      오랜만이네요.
      둘째 탈 없이 잘 자라죠?
      노총각 신세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솔 셋을 거느린 가장이 되다니,,,
      참 대견도 하여라.

2010. 3. 15. 04:00

3·15를 통합시 정신으로 하자는데


오늘, 3월 15일.
이승만 독재에 저항, 부패한 절대 권력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마산시민의 위대한 승리를 이루어낸 3·15의거 50주년 기념일이다.
이 나라 민주항쟁의 효시요, 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운 자랑스러운 날이다. 마침 정부에서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의미가 더 깊어졌다.

                                        <3·15의거 기념탑>

매년 기념일을 전후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있었지만 올 해의 행사는 더 풍성하다.
뮤지컬, 드라마, 열린 음악회에 메이저 언론의 집중조명도 받는다.
좋은 일이다. 마산시민들 모두 자랑스럽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여기서도 3·15, 저기서도 3·15를 말하니 3·15의거기념사업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필자도 내심 흐뭇하다.

이틀 전 3월 13일 토요일 오후에는 50년 전 시위를 재현하는 거리상황극까지 있었다.
마산의 고등학생 천여 명이 참여해 의거 당시의 상황을 재현, 선배들이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었고, 50년 전 선배들이 외쳤던 그 날의 함성을 다시 외쳤다.
백주대낮에 반정부시위를 극으로 재현하는 현장의 최종 집결지는 3·15기념탑 옆이었다.

화강석 탑신이 초봄 햇빛을 흠뻑 받아드리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말없이 서있는 하얀 탑을 보자 잊고 있었던 그 때 일이 떠올랐다.

80년 대였다.
5공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마산YMCA청년회원들은 3월15일이면 이 탑 앞에 모여 참배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참배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 때는 그랬다. 그런 시절이었다.
은밀히 계획하여 군사작전을 하듯 참배를 시도했지만 무사히 마친 적은 없었다.
그것은 반정부, 반국가적 행동이었다.

정치가를 소망하던 김호일 전 국회의원의 남루한 조화가 3·15를 조롱하듯 밤 낮 가리지 않고 한 달 이상씩 탑 앞에 서있던 때였다.

3·15기념탑 참배가 반국가 행위였던 시절,,,,, 오래된 일이 아니라 아직 기억이 생생하다. 그랬다. 그 때는 그랬다.

- 3·15를 통합시 정신으로 하자는데 -

의거의 도시 마산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그래서 3·15정신을 통합창원시의 정신으로 하자고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 도시 마산의 가까운 과거를 지울 수 없다.
부정과 부패가 넘실거렸던 마산의 아픈 추억들,,,,, 의거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었을 뿐이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정치지도자들의 불법과 파탄과 독선이 50년 전에 외쳤던 자유 민주 정의를 무참하게 뒤덮었던 기억들.

3·15정신을 통합시의 정신으로 하자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좋은 생각이다. 백번 찬성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주장이나 생각만으로 3·15 정신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과연 3·15 정신이 통합시의 정신이 될까? 정말 그렇게 될까?
진정 통합된 108만 도시의 정치지도자들과 그들을 뽑은 시민들이 자유와 민주와 정의의 가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일상에서 그 의미를 발현시킬까? 3·15는 너무 오래동안 잊고 있었던 먼 옛날의 일인데,,,,.
혹시 또 다시 부패한 지도자가 뱉어내는 화려한 언변의 노리개로 3·15가 전락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어렵더라도 시작해야할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3·15 정신이 다시 이 도시에 넘쳐흐르도록,,,, 말로만이 아니라 문화와 의식 그리고 선거에서 3·15의 의미가 통합시민들 가슴속에 되살아날 수 있도록.

통합의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다.
국가기념일이 된 3·15의 50주년이고 창원진해와 도시통합도 되었으니 3·15 정신을 세 도시 통합과정에 적용, 작은 실천이라도 하면 어떨까.

통합시청사도 좋고 인센티브도 좋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도시공동체 아닌가?
지역과 집단의 이기심이 준동되면 혼란 외에 아무 것도 없을 터.
모든 것 내어 놓고 독재에 저항했던 선배들의 대의를 생각하자.
부분에 앞서 전체를 생각한 것이 3·15정신 일 터.
진정 3·15가 통합시의 정신이 되기를 원한다면 모든 것 내어 놓고 전체를 바라보자.
전체가 살아야 부분도 산다.
통합시가 살아야 마산도 살고 창원도 살고 진해도 산다.<<<


                                     <3·15 당시 시위 상황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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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23. 08:00

바람재에서 만난 사이클리스트



'하늘에 안창남, 땅에는 엄복동'

암울했던 일제기에 자전거 한 대로 민족의 울분을 삭히고 자존심까지 살려주었던 전설적인 자전거 레이서 엄복동(1892∼1951).
1913년 3월, 한·일 선수들이 함께 참가한 ‘전 조선자전차경기대회’를 우승하면서 민족의 스타로 떠오른 엄복동은 그후 계속되었던 한·일 사이클대회에서 일본을 눌러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래주었다.
10년 후인 1923년에는 마산에서도 엄복동의 자전거가 달렸다.
4월 29일∼30일 이틀에 걸쳐 마산체육회가 주최한 '전 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였다.

그 때 엄복동이 달렸던 코스가 지금 마산의 어디였는지 알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87년 전 마산에서 전국규모의 사이클 대회가 열렸다는 사실이 주는 도시적 의미는 크다.

지난 일요일 오후,
만날재와
대산 사이의 ‘바람재’에서 열린 ‘마산프로사이클동호회’ 시산제에 참석하였다.
경남도민일보 사장으로 있을 때 ‘자전거대행진’ 행사를 하며 알게 된 클럽이다.
자전거 타는 분들이 웬 시산제냐 했더니, MTB(Mountain Terrain Bike, 산악자전거)를 이용해 산과 들을 누비기 때문에 음력 정월 좋은 날을 잡아 시산제를 지낸다고 했다.
절을 하고 제문을 읽고 잔을 올리는 등의 제사 행위는 일반 시산제와 다를 바 없었지만 제단에 내건 현수막 옆에 자전거를 세워 놓은 점이 달랐다.

                     <시산제를 지내고 있는 마산프로사이클 회원들>
                                    <마산프로사이클 회원들>
                   <자전거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태유 회장>

제를 지낸 뒤 음식 나눌 때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클럽의 이태유 회장은 자전거 때문에 얻는 즐거움과 건강을 자랑하면서 마산도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도시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MTB는 누구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생활자전거가 활성화되어야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생활자전거가 활성화되면 MTB동호인들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보였다.

여러 회원들이 입을 모아 주문한 말은 만날고개―밤밭고개―청량산으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였다.
“그렇게만 되면 산과 바다가 연결되는 환상적인 자전거도로가 될 텐데, 밤밭고개 도로 때문에 끊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면서 오버브리지(overbridge)로 청량산까지 자전거길이 연결되면 좋겠다고 했다.

- 도시를 살리는 자전거 -

교통수단을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보다
 개인승용차에 의존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있다. 도시정책이 이를 부추기기도 한다.
반시대적이고 반환경적이고 반공공적인 추세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폐기시킨 도시정책이다.
개인이 타는 승용차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은 한 사람이 사용하는 도로의 면적과 에너지를 비롯한 각종 자원의 사용량이 많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국민 일인당 도로연장은 2미터 조금 넘는다. 일본의 1/4, 미국의1/10 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연간 일인당 자동차 주행거리는 23,000킬로미터로 일본의 2배가 넘고 땅이 넓은 미국보다도 길다.
우리 국민들이 이동수단으로 자동차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통계다.
출퇴근은 물론 주말, 휴가철, 명절 귀성 때, 어디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우리는 자동차를 탄다. 도로정체로 한 두시간 길 위에서 보내는 것을 예사롭게 생각할 정도다.
가까운 거리라도 걷기를 싫어하는 'door to door' 현상은 도시의 교통과 주차문제를 악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 대안으로도 자전거가 유효하다.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는 도시 중 대표적인 곳이 네덜란드의 그로닝겐이다.
이 도시의 주민통행 분담률은 자전거가 53%이다. 그럼에도 그로닝겐에서는 자전거도로 지름길 건설과 기존 자전거 노선을 개선 등 완벽한 자전거도로망 구축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독일의 델프트(41%)와 뮌스터(41%), 코펜하겐(34%), 프라이부르그(27%)도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기로 유명한 도시다.
이 선진도시들은 지금도 자전거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코펜하겐에서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배타적 이용을 위해 자동차 차선과 가로변의 주차공간을 몰수하기도 했다.
'좋은 점만 있을 뿐, 나쁜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자전거에 대한 생각이다.


                     <그로닝겐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자전거를 끌수 있도록 배려한 그로닝겐>

자전거 타기에 마산의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고 불평하는 동호인들이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당한 어처구니 없는 경험들도 하나둘 내어 놓았다.
이미 자리잡아가고 있는 창원의 자전거정책을 축으로 마산과 진해에도 자전거 길을 연구 모색한다면 좋은 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나누었다.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회원들 모두 장딴지가 실했고 표정도 밝았다.
건강한 모습이 하도 좋아 '나도 곧 자전거를 타겠다'는,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약속까지 했다.

엄복동이 힘차게 페달을 밟았을 마산 이 도시에 다시 자전거 전통을 세울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마산만이 훤히 내다보이는 바람재에서 산과 바다를 아우르는 통합도시의 자전거 길을 상상했다.<<<

 <추가 ; 바람재 한 구석에 쓰레기가 널려있었다. 아직도 이런가? 싶었다>

                                   <바람재의 쓰레기 더미>
                           <아무렇게 던져 놓은 쓰레기들>

                             <등산객들이 식사하는 자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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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종만 2010.02.23 09:24 address edit & del reply

    의미있는 행사에 다녀왔군요.
    자전거는 타지않고 가셨네요.
    그냥 걸어서...
    걷는것도 참 좋습니다.
    자전거 타는 것보다 장단지는 굵어지지 않지만
    그날 저도 쌀재에 있었습니다.
    몇분이 행사마치고 저의 농장에서 차를 마시며
    쉬어갔습니다.
    그기 쓰레기 저도 보았는데 참, 부끄럽대요.
    산이 좋아가는데 그 좋은 산에다
    아직까지 이런 모습을 보다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바람재는 동호인들이 많이 왕래하고 또 행사끝물에
    음식물을 섭취하는 장소라 마음을 다잡아 먹지못하면
    쉽게 유혹에 빠집니다.
    주로 단체손님쓰레기거던요.
    무디기를 만들어 놓으면 그냥 개별산행인도
    그기다 버립니다.
    이 우째야겠습니까?

    • 허정도 2010.02.23 11:04 address edit & del

      그날 가까운 곳에 계셨군요.
      얼굴이라도 한번 볼걸 그랬습니다.
      예, 걸어서 갔습니다.
      만날재에서 바람재까지 45분 걸리더군요.
      참 좋았습니다.
      쓰레기 버리는 분들,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도대체 누굴보고 치워라는 건지,,,

  2. 최정건 2010.02.24 11:47 address edit & del reply

    서로에 대한 배려가 아쉽습니다, 저는 전에 대곡산에서 무학산 정상으로 가는

    갈에 크로스 컨트리 오토바이을 타고 올라 오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딴지를 걸는 것이 아니지만 제가 이 단체에 대하여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이 단체 회원중에 한 분이 청량산 임도 2층 정자에서 계단내려오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2층 정자의 목재계단이 다 까졌습니다.

  3. 최영준 2010.03.19 11:48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글 공감가는 내용들 즐감 했습니다.
    마산에 이런 좋은글을 블로그에 올리시는 분이 있는줄은 이제 서야 알았네요...^^
    프로사이클 동호회에서 저역시 좋은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뵐수도 있겠네요...^^

    앞으로 좋은 글 감상하며 공감하겠습니다.

  4. 노상완 2010.03.23 00:22 address edit & del reply

    일본에서 마운틴바이크(산악자전거)에 대한 뉴스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것 같아 옮겨 봅니다'

    < 최근 중장년층 사이에 500에서 1,000미터를 걷는 산행이 붐을 이루고 있는데, 산악 자전거에 따른 피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산은 루트가 많이 있기 때문에 산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산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지켜야만 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1. 하이킹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타지 않는다.

    2. 하이킹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전거에서 내린다.

    3.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달리는 것입니다. >

    • 허정도 2010.03.23 08:36 신고 address edit & del

      참 좋은 규칙이군요.
      그렇지 않아도,
      좁은 등산길에 자전거가 지나가면 등산객들은 어떻게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방문 감사합니다.

2009. 9. 25. 09:26

공공장소에 '공짜주차'를 허하라!

창원 성산아트홀 주차장은 휴식중.

5년전쯤 창원용호동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다름아닌 주차문제였다.
회사주차장에 주차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였고 인근 유료주차장을 이용하기에는 비용부담이 너무컸다. 
다행히 직장동료로 부터 창원시의 성산아트홀 주차장이 개방되어있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10분 정도는 운동 삼아 걸었다.

용호상업지역의 많은 직장인들과 용지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그곳의 주차장을 이용하였고 공공기관이 시민을 배려하는 모습이 참 바람직해 보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언제부턴가 성산아트홀 주차장은 유료로 전환되었고 그곳에 볼 일이 없는 한 주차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 평일 대낮 성산아트홀의 텅빈 지하2층 주차장 모습(좌)과 같은시각 용호상업지역
   골목길의 혼잡한 모습(우)

   이미 차량으로 포화상태인 상업지역에 불법주차 단속만 하지말고 텅텅 비어있는 주차장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

   

그 많던 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용호상업지역내 골목마다 빼곡히 주차되어 비좁은 길이 더욱 비좁게 되었고 인근 아파트 단지내에 주차하여 주민들과 계속 마찰을 빚고 있다.

물론 성산아트홀 측에서도 관리상의 여러문제가 있을수는 있겠지만, 시민의 세금으로 만들고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라면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좀 더 유연하게 생각 할수는 없을까?


 
공원은 멋있게 만들어 놓고 차타고는 오지마라

도심에 이렇게 멋진 공원을 가진 도시가 얼마나될까 싶을 정도로 용지공원은 창원의 보석과 같은 공간이다.  그런데 한번씩 공원을 거닐다 느끼는 점은 이용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 창원 용지공원

학생들의 소풍이나 유치원 행사철을 제외하면 주민들의 이용빈도가 극히 낮아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차를 가지고 갔을때의 접근성이 불편한것도 한몫하고 있다.

공원에 접한 4면의 도로 중 한면에만 노상주차장이 설치되어있고 그나마 유료로 운영하고있다.
인근의 주민들이야 걸어서 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차비를 걱정에 어디 편히 쉬겠는가?


▲ 창원 용지공원과 세무서 사이의 노상 유료주차장
늘 비어있던 주차장이 가득차 있는것이 의아해 관리하는 분께 물었더니 이 차들은 세무서 직원차량이며 2천원만 내면 하루종일 주차한단다. 일반시민은 두시간 주차비가 2천3백원이다. 
이전에는 무료였던 주차장을 시민들에게서 뺏어 세무서에 준 꼴이다
.




▲ 창원 용지호수와 용호상업지역 사이의 노상 유료주차장
상업지역과 가까운 곳은 그나마 식당가를 이용하는 차량들이 주차하지만, 조금만 벗어 나도 하루종일 텅텅 비어있다. 예전에는 무료로 이용하던 곳이다. 


'공공(
共)'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것'이다.
'공공의 관리'는 사회구성원이 세금을 내어 공직자에게 위탁 한것이다.
따라서 사회구성원의 이익에 반하는 '관리'는 직무태만이자 월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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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비단안개 2009.09.25 10:10 address edit & del reply

    지난해 늦가을 용지호수에서 이웃을 만나기로 했었답니다.
    그런데 다 왔다고 하면서 시간이 지체되더군요.

    이유인즉, 주차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예전엔 이곳(성산아트홀 옆의 도로)이 무료 주차였는데, 지금은 유료다 - 해서 무료주차공간을 찾다보니 시간이 걸렸다 -

    물론 너도 나도 차를 구입하니 한 이유가 되겠지만, 공공장소의 주차는 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해에 있는데, 여기 연세병원의 주차장이 예전에는 주차요금을 징수했는데, 요즘은 외래환자도 무료더군요.
    시민으로서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2. 클라리사 2009.09.30 02:12 address edit & del reply

    잘 쓰던 주차장이 갑자기 유료화되었을 때의 기분은 이해합니다만,
    '공공'이라는 개념과 '무료'라는 개념은 항상 같이 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도심주차를 유료화하고 제한하는 것은, 그로 인한 수입의 목적도 있지만,
    '공공(公共)'의 사전적 의미대로, 도로를 자동차 이용자만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도록 하는 일일 수도 있고요.
    도심에 나올 때 차를 덜 가지고 오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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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일러두기> 1) 주민 면담은 2015년 1월 중에 이뤄졌습니다. 2) 인터뷰이(interviewee)는 가급적 오래 거주하신 분들을 모시고자 하였습니다. 3) 게재 순서는 편의상 인터뷰가 이뤄진 시..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7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2 3) 봉화산봉수대(烽火山烽燧臺) 회원동 봉화산에 있는 고려 말~조선 시대의 봉수대(아래 사진)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6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1 1) 교방동 관해정(校坊洞觀海亭)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였던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년~1620년)가 그의 제자들과 함..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5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3 ● 협동정미소 터 상남동 회산다리 건너 회원천변에 붙은 회원동 429-1번지. 현재 환금프라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삼성그룹 창업자..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4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2 ● 교원동 일대의 공장들 건설목공소(가구 제조), 교원동 117번지, 대표 김협환 광전사(전기공사업), 교원동 54번지, 대표 한..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3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1 회원동과 교원동, 교방동 일대의 기업체와 공장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실제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되는 회사와 공장들을 살펴봄으로..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2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5 ● 북마산중앙시장, 북마산청과시장 북마산중앙시장이 현재의 자리에 들어선 것은 37년 전인 1976년 11월이다. 이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1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4 ● 비치거리 상남동에서 회산다리를 건넌 회원동 초입의 거리를 말한다. 옛날 이곳에는 비석이 있었기 때문에 비석거리로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0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3 ● 회원동 500번지 회원동 500번지 일대의 동네를 말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 일본군 기마병의 마굿간과 창고가..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9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2 ● 배넘이 고개 [배드나무 고개, 배드난 고개] 회원동 골짜기에서 마재고개로 넘어가는 산중허리를 세인들이 지금도 배넘..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8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1 ● 돌산 못산마을 위쪽 무학산 자락으로 돌과 바위가 많았다고 한다. 예전 주공아파트 위쪽 편으로 돌이 많아서 돌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