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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山繁昌記8

마산항지(1926년) - 40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17. 마산포의 대화재 광무 9년 즉 명치 38년(1905) 1월 5일 새벽, 마산포의 한 한인 집에서 불이나 때마침 차고 거센 바람이 불어와 부근 40채의 일, 청, 한인 집들이 연소되었다. 소방기계가 하나도 구비되지 않은데다가 동지(冬至) 후인지라 물조차 적을 때라 한인들은 아이고 비명을 지르며 바가지에 물을 길러 붓는 등 불길을 막으려 대혼잡이 벌어졌다. 이것이 마산포 최초의 대화재로 불리며 불 난 곳은 현재의 모토마치(元町)이며 구마산금융조합 서쪽 이웃으로 생각되나 소실 구역은 거기보다 동쪽 현재의 고토부키마치(壽町) 까지 퍼졌던 것이다. 필자가 대정 11년(1922) 6월 22일 오후 2시 반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조선인 신용균(申容均)의 집 온돌에서 불이 나 우리 집에도 불이.. 2023. 3. 13.
마산항지(1926년) - 6 - 건권(乾卷) / 제1장 마산항의 대관 제1장 마산항의 대관 3. 지질(地味)과 수질 마산 부근 일대의 땅은 대체로 제3기층에 속하며 산이나 계곡에는 화강암 혹은 그 결정편암이 노출되어 돋아난 데가 많다. 해변의 평야는 대개 충적층이므로 지질은 비옥하다. 그러기에 해변 제방 안의 소금기 많은 논밭 이외에는 쌀과 보리와의 이모작, 혹은 보리와 소채류 교대작의 수확이 있다. 산에는 큰 나무가 없어서 울창하지는 않지만 묘역이나 기타 특별히 보호의 손길이 미치는 데는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느슨한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관공사유지(官公私有地)로서 남벌금지구역 혹은 총독부 임정(林政) 방침을 따르는 조림지 등에는 나무가 울창하게 땅을 덮게 된 몇 년 후에는 마산 육군 군용림 등 일부에서는 송이버섯이 생육하기도 한다. 이십여 년 .. 2022. 7. 18.
마산번창기(1908년) - 23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2 (2) 마산경제협회(馬山經濟協會) 1907년(명치40년) 봄 즈음에 마산 유지자들이 구두 약속으로 성립된 조직이며 별도 규칙, 규약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일정한 회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마산포와 신시에서 격월로 모임을 가져왔으나 중도에 뜸해지다가 1908년 봄 다시 활발해지고 매월 한 번의 모임이 신시에서만 개최되고 있다. 매회 마다 전 간사는 당일 이후의 간사 2명을 지정하며 지정 받은 자는 어떠한 이유라도 이를 사퇴할 수가 없다. 이렇게 의리와 인정이 있는 모임이라 한 층 재미가 있어 보인다. 회원에는 관리, 신문기자, 은행가, 종교인, 야채 집 주인도, 의사도 있어 아주 다양한 모임이다. 그리고 마산의 이해에 관련되는 사안은 아무나 문제를 제출할 .. 2022. 2. 7.
마산번창기(1908) - 22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1 (1) 마산상업회의소 1908년 3월 30일, 다가까손(田中遜) 씨 외 29명이 발기 인가를 받고 5월 23일 설립 인가를 얻어 5월 30일 의원 선거에 의해 6월 1일 임원의 선출이 끝났으므로 비로소 그 성립을 고(告)하게 된 것이다. 이 설립에 관해서는 불필요론자도 시기상조론자도 있는데 그 주장하는 바는 마산 경제계가 부진한 데도 각자의 부담을 증대시키는 것은 마산 발전의 앞길을 어둡게 한다는 일치된 소신 때문이다. 그래도 니시카와 다로이치(西川太郞) 씨의 의지는 확고하여 이곳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으며 시기카와 씨의 주선으로 서기장(書記長)까지 마산에 들어와 있으니 반드시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의원이 되겠다는 인사들 중에는 열심히 한 운동으로 마.. 2022. 1. 31.
마산번창기(1908) - 21 - 제9장 경제사정 제9장 경제 사정 - 4 ■ 마산의 상황(商況) 한 측면은 대개 다음과 같다. □ 잠건(蚕巾, 실크) - 영국령 홍콩제로 수요기는 매년 8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의 8개월 동안이며 한 달 평균 25,000필의 거래가 있는 모양이다. 한 필(匹) 대금이 6원이라면 한 달 15만 원, 8개월이면 120만 원이 되며 이것이 수입품목의 으뜸가는 상품이다. 용도는 한인의 흰옷(白衣)에 조제(調製)된다고 한다. □ 방적사(紡績絲) - 한 가마 20 다발 150 근으로 매월 30가마 씩 팔리는데 일 년에 적산하면 3,600 가마에 달한다. □ 백목면(白木綿) - 이것도 한인의 흰옷에 쓰이며 일 년에 26,000 필의 판매량이 있다. 한 필당 1월 70전으로 평균으로 매상고는 44,200원으로 예상한다. □ 마포(麻布.. 2022. 1. 17.
마산번창기(1908) - 20 - 제9장 경제사정 제9장 경제 사정 - 3 ■ 토지매수상의 주의 토지매매에 있어서는 거류지에는 지계(地契)라는 것이 있어 일본과 같이 등기에 관한 법이 있는데 기타 지역에서는 한인에게서 토지를 사들일 때는 한 장의 문서만 그 증거가 된다. 이때 교활한 한인이 문서를 위조하고 장소를 거짓으로 하거나 판매 금액을 속이는 등 상식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이 들통 나서 힐책하게 되면 도망을 가기도 한다. 이를 한인과 직접 매매 계약을 하거나 한인의 주선으로 그 사기의 술책에 넘어가 적지 않은 손해를 입어 세상 사람들의 실소를 부른 이가 적지 않다. 얼마 되지 않는 수수료를 아낀다고 한인을 믿고 싸구려 땅을 비싸게 사느니보다 확실한 일인 주선인(周旋人)에 부탁하는 것이 득책(得策)일 것이다. 이런 믿.. 2022. 1. 10.
마산번창기(1908) - 17 - 제8장 호구(戶口) 제8장 호구(戶口) 본 항구의 일본인은 개항 당시 모두가 한국인 집을 빌려서 살기 시작했으며 신시(新市)에 열 몇 명의 러시아인과 한두 명의 영국, 프랑스인이 거류할 뿐이었다. 다음 해 신시에 일본인 가옥이 두세 채 나오게 되고 광무 7년 즉 1903년에 이르러 그 인구가 많이 늘었지만 신시는 여전히 러시아가 독점하다시피 하여 러시아 군함의 출입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기생이 러시아 수병에 의해 욕을 당한 사건도 터져 영사관의 유시(諭示)는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다 신시에 이사해 오는 것을 꺼리며 청국(淸國) 사람과 함께 마산포에서 같이 살며 서로 상업에서 경쟁하고 있었다. 그 당시 경찰관이란 오직 영사관을 지킨다는 직무를 수행할 뿐 일반인들에게 대해서는 아주 오만불손하며 뇌물이나 주지 않으면 그들.. 2021. 12. 13.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 / 1908년 발간 지난 3월 31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12년 전인 1908년에 발간된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라는 고서를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먼저 페이스북에 올린 박영주 선생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개항기 마산 문헌 하나 찾았다 오래 전부터 이름 정도만 알고 못 찾았던 자료인데 이번에 드디어 찾았다. 『慶南志稿第一編 馬山繁昌記』. 明治41年, 1908년 마산의 耕浦堂에서 발행한 책으로 저자는 諏方武骨. 일제강점기 마산에 대한 가장 유명한 문헌인 『馬山港誌』(1926)의 저자이기도 하다. 책은 광고면 등을 포함해 148면 분량으로 서언, 마산의 대관, 관공서, 지질및기후, 위생및의사, 교육기관, 신도및종교, 교.. 2020.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