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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경3

마산항지(1926년) - 13 - 건권(乾卷) / 제4장 중고사(中古史) 제4장 중고사(中古史) 2. 정동군(征東軍)의 출발지 이에 앞서 원의 세소제는 이미 남송(南宋)의 왕실을 움직여 무위(武威)는 사방으로 드날렸으나 오직 일본열도 제국만은 의연하게 동행 우뚝 서서 대치하는 모습은 마치 원나라가 일어난 것을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이에 따라 수차례 선유사(宣諭使)를 보내어 조공을 재촉했던 것이다. 당시의 가마쿠라바쿠후(鎌倉幕府)의 집정직에 있던 호조사가노미노카미 도키무네(北條相模守時宗)는 강인하고 과단력 있는 성격의 인물이라 원나라에서 사신이 올 때마다 그 서한의 존대 무례함을 힐책해서 그 사신을 방축 시키거나 참살까지 해서 답서를 주지 않았다. 쿠빌라이는 화를 내며 일본을 정복하기로 결정하여 새로이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을 세워 원나라의 종왕(宗王)을 그곳의 좌승상.. 2022. 9. 5.
마산·창원 역사 읽기(11) - 일본정벌의 전진기지, 합포 2. 청동기 시대에서 10·18까지 2-4 일본정벌의 전진기지, 합포 정동의 일이 시급한데 / 농삿일을 누가 생각하랴 / 사자는 끊임없이 이어져 / 동으로 서로 달리네 / 백성을 거두어가니 고을은 텅텅 비고 / 말들은 달려 강가로 향하고 있네 / 밤낮으로 나무베어 / 전함 만들다 힘은 다했고 / 한 자의 땅도 갈아놓지 않았으니 / 백성들은 무엇으로 목숨 이어가나 / 집집마다 묵은 양식 없고 / 태반은 벌써 굶주려 우는데 / 하물며 다시 농업마저 잃었으니/ 볼 것은 죽음뿐이로구나 위의 시는 원 간섭기를 살았던 수선사(修禪社 오늘의 송광사) 승려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가 당시 일본정벌로 말미암아 고통 받고 있던 민중의 처지를 동정하며 읊은 것이다. 몽고와의 처절한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의 살상과 토지.. 2014. 8. 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3) - 개항이후 마산포가 조선시대 번성했던 포구라고 알려져 있지만 옛 마산포의 해안선이 현재 도시 속 어디였는지 정확하게 밝힌 적은 없었습니다. 시사(市史)를 비롯한 몇몇 자료에서 대충 언급했지만 추측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 밝히는 마산포 해안선(海岸線)은 사정지적도(査正地籍圖)와 그 외의 여러 자료들을 통해 확인한 것입니다. 저는 정확(?)하다고 봅니다만 땅을 파보지 않아서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마산포에는 일찍이 두 개의 굴강과 네 개의 선창이 있었습니다. 동굴강과 서굴강으로 불렸던 두 굴강에 대해서는 1964년 『마산시사 사료집 제1집』의 「마산축항지」에서 김준이 그 용도를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습니다. 「서굴강(西掘江)은 인공(人工)으로 구축된 듯한 방축(防築)이며 여러 파도를 막고 범선(帆船)들이 정박하.. 2011.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