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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2

마산번창기(1908) - 17 - 제8장 호구(戶口) 제8장 호구(戶口) 본 항구의 일본인은 개항 당시 모두가 한국인 집을 빌려서 살기 시작했으며 신시(新市)에 열 몇 명의 러시아인과 한두 명의 영국, 프랑스인이 거류할 뿐이었다. 다음 해 신시에 일본인 가옥이 두세 채 나오게 되고 광무 7년 즉 1903년에 이르러 그 인구가 많이 늘었지만 신시는 여전히 러시아가 독점하다시피 하여 러시아 군함의 출입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기생이 러시아 수병에 의해 욕을 당한 사건도 터져 영사관의 유시(諭示)는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다 신시에 이사해 오는 것을 꺼리며 청국(淸國) 사람과 함께 마산포에서 같이 살며 서로 상업에서 경쟁하고 있었다. 그 당시 경찰관이란 오직 영사관을 지킨다는 직무를 수행할 뿐 일반인들에게 대해서는 아주 오만불손하며 뇌물이나 주지 않으면 그들.. 2021. 12. 13.
김형윤의 마산야화 - 139. 노일전쟁과 율구미 139. 노·일(露·日) 전쟁과 율구미(栗九味) 노국의 조계지인 율구미는 1903년 1월 5일을 마지막으로 노국 수변 8명이 철수한 후에는 공지화되었다. 이를 그냥 둘 수 없어 노국 영사 카자코브는 치지코브라는 자에게 그곳을 관리 시켰다. 관리 조건은 마산포에 입항하는 노국 군함에 공급할 용수정(用水井) 하나를 마련할 것과 산에 감시인을 두기로 하고 매월 10원씩 주던 것을 무급으로 하되 한국인에게 소작을 시켜 수확된 절반을 취득케 하였다. 노일 전쟁이 일어나 1월 8일 치지코프가 마산포를 철수할 때 그가 가졌던 상품을 일본인 강기(岡崎)라는 자에 매도한 것이 연고가 되어 율구미 조계지를 이 강기(岡崎)가 관리했다. 또 부산에 살던 일본이 강본(岡本)이라는 자가 로인(露人)과 친했기 때문에 치지코프로부터.. 2017.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