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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기5

김형윤의 <마산야화> - 마지막회, 저자를 회고하면서 2015년 3월 23일 시작해 이번 회까지 만 2년 동안 포스팅한 목발(目拔) 김형윤 선생의 「마산야화(馬山野話)」143꼭지가 이번 회로 끝납니다. 지나간 시절 마산사회와 마산 사람들을 추억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부터 연재될 포스팅은 신삼호 건축사가 준비합니다. (주)유에이건축사사무소 대표 신삼호 건축사는 건축작품활동도 활발하지만 도시와 건축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부산대 대학원 건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논문 준비 중입니다. 블로그에 포스팅하게 될 내용은 논문 준비과정에서 접하게된 여러가지 자료들을 소개하고 해석하는 형식이 될 것이며 분량은 약 20여 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 회, 저자를 회고하면서- 조병기(趙秉基) 김형윤 공은 1903년 마산시 서성동에서 김양수.. 2017. 3. 27.
김형윤의 <마산야화> - 112. 포시의 명 강연 112. ‘포시(布施)’의 명 강연 포시진치(布施辰治)라고 하면 50대 이상의 조신인 사회주의자나 민족운동가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수많은 자유주의자 혹은 좌경 변호사 중에도 상촌진(上村進), 산기금조미(山崎今朝彌) 포시(布施) 등은 학의 존재라고 할 수 있으며 하천풍언(賀川豊彦)을 종교가라기보다는 사상가로 보는 것처럼 포시(布施)도 급진 사상가로서 일반은 간주하였다. 사법성과 내무성에서는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인데, 일본 공산당 사건의 변론공판 변론 중 당국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 정부 당국의 비위를 거슬리게 되어 치안 유지법을 적용하여 4년 형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피고인 포시(布施)는 판에 박은 주소, 성명을 묻는 판사에게 무직이라고 하기는 싫었던지 ‘법률 기술자’라고 비꼬아 답변을 해.. 2016. 9. 12.
김형윤의 <마산야화> - 105. 국내 최초의 노동제 105. 국내 최초의 노동제 1923년 1월 당시 동경서 유학한 몇몇 청년 김형두(明大 법과 재학 중, 변호사 시험 합격)를 필두로 손문기, 이주만 등이 연휴(連携)하여 신인회(新人會)를 조직하였다. 이것이 모체가 되어 그 해 여름에는 ‘노농동우회(勞農同友會)’라는 것을 조직 발족하였다. 명칭은 ‘노농’으로 있으나 그 대상은 공장 노동자가 아니고 부두에서 일하는 하루살이 자유노동자들로서 그 숫자는 극히 적었다. 최초에는 오월절이란 이름 아래 프랑스를 위시하여 세계 남녀 노동자들은 하루의 행락을 마음껏 즐기는 극히 평화로운 날이었다. 호주 멜본 시에서는 시위 행렬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시장은 정중하게 경의를 표하였지마는 그 반대로 미주 시카고에서는 헤이 마켓에 이르는 평화시위 군중과 경찰이 충돌함으로써 발포.. 2016. 8. 8.
김형윤의 <마산야화> - 48, 일류 요정들 48. 일류 요정들 국치병합 전만해도 요정이란 이름은 없고 오직 점잖은 측에서 한담이다 혹은 밀담을 하려면 소위 들어앉은 집이란 곳을 찾는다. 그런 곳은 거의 은군자(隱君子)나 노기(老妓)라는 중년층 여자가 손님을 영접하고 손님의 청에 의해서 기녀를 불러 주효(酒肴)를 벌이며 여기에 북, 장고, 가야금, 거문고 등이 따른다. 말하자면 매우 우아한 현상이다. 차차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화류의 격조가 저질로 흐르기 시작했다. 인육을 현금과 직접 거래하는 청루(靑樓)가 생기고, 게다가 격을 조금 올린 니마이모찌(이중이란 말인데 연회장 작부도 되고 매춘도 할 수 있다는 의미) 감찰제도도 있었다. 이것은 기녀의 자유 여하로 행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권번이니 조합으로 일본 화류계 풍습이 반도 산하.. 2015. 9. 28.
마산·창원 역사 읽기 (15) - 해방에서 5·16까지 2. 청동기시대에서 10·18까지 2-8 해방에서 5·16까지 한 시대의 사회운동을 살피는 일은 현재 우리사회의 주류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반대 세력도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 궁극적으로 그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낡은 기득권 세력을 교체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때, 이에 맞서 사회운동을 방해하고 탄압함으로써 기득권을 확대 재생산해온 세력의 실체를 파악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1945년 해방 직후의 상황부터보자. 당시 마산 지역사회의 여론주도층 인사들은 대략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친일파 출신인사들이 그들이다.. 2014.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