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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규2

김형윤의 <마산야화> - 25. 기독교인과 마산신사, 26. 도리이를 닮은 문 25. 기독교인과 마산 신사(神社) 일본인 추방무골(諏訪武骨)옹의 마산항지(馬山港誌)에 의하면 현 문화동의 높은 자리에 위치하였던 마산 신사는 1909년(원문에는 1910년으로 되어 있음 / 옮긴 이), 즉 명치 42년에 창건된 것이다. 정전(正殿)에는 천조(天祖) 천조대신(天照大神)을 모신 곳이며 경내 우측에는 도하대명신(稻荷大明神)을, 그 곁에 사당은 주호신(酒護神)을 모신 송미신사(松尾神社)를 건조하여 경신(敬神)관념을 숭양(崇養)해 왔는데 신관(神官)으로서 발령된 사람은 고등관 3등의 수자춘충(須子春忠)이었다. 아침 미명 때를 기하여 일본인 노소남녀가 앞을 다투어 박장(拍掌) 참배하는 것은 그들의 경신(敬神)하는 정신적 관례이지만 일인 아닌 조선인의 별의별 각설이와 풍각쟁이 같은 아유배(阿諛輩) .. 2015. 6. 2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일제가 우리 민족을 무력으로 위협한 것이 군대와 경찰이었다면 정신적으로 위압한 것이 신사(神社)였습니다. 한반도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일본신사는 부산신사인데 이미 17세기에 일본인들이 부산에 상주하면서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 후 1876년 한일수호조약(강화도조약)이 체결된 후 개항된 도시에 각국공동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일본거류민들이 조계지에 신사를 세웠습니다. 마산의 일본 신사(神社)건립계획은 순종이 마산을 방문했을 때 쯤 (1909년 초) 홍청삼(弘淸三)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그 이전부터 마산경제회 등 일본인 유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러 차례 신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아무도 그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 날 홍씨가 마산의 일본인 유지 27명을 요정 ‘망월’에 초대하여 신사 창건을 호소하.. 2010.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