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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조선지지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당시 마산전경사진입니다. 현 대우백화점과 삼익아파트 일대에 매립을 하기 전이라 해안선이 환주산 밑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고, 신마산과 마산포 사이의 옛 마산시청부터 몽고정까지는 전부 논밭입니다. 왼쪽에 문신미술관이 있는 환주산을 시작으로 멀리 용마산과 팔용산 자락이 차례로 보입니다. 환주산과 용마산 사이에 있는 마을이 마산포이고, 산 능선 중 잘룩 들어간 곳이 현재 봉암다리가 있는 곳입니다. 매립 전이라 마산만이 꽤 넓습니다. 1911년 새해벽두부터 개항지였던 마산항이 폐쇄되긴 했지만, 식민지의 통치와 수탈에 필요한 선박에 대해서는 세관장의 특별허가라는 명목으로 선박의 출입항을 허용했습니다. 따라서 식민지 수탈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일본 선박은 개항기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통계상으로는 오히려 .. 2011. 6. 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0) - 강점 제1시기 일제강점기 마산의 인구 통계는 마산부가 자체적으로 간행한 몇몇 자료에 남아 있는 기록과 국세조사 등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정한 기간을 단위로 조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전반에 걸친 인구변화의 추이를 알아보기 위한 자료로서는 부적당합니다. 그러나 병합 이후에 매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해서 출판한『조선총독부 통계연보』는 조사방법이나 조사시기의 간격이 일정합니다. 여기서는 이 자료를 이용해 마산의 인구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1910년대 마산의 인구변화추이입니다. 연도 한국인 일본인 외국인 합계 일인 비율(%) 1910년 10,664 5,941 52 16,657 35.7 1911년 9,847 6,199 46 16,092 38.5 1912년 5,672 1913년 9,494 5,262 41 14,.. 2011. 5. 3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1910년대의 마산은 1911년 1월 1일을 기해 진해군항을 일제의 해군요새로 보호한다는 구실로 마산항을 폐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합방 일주일 후인 1910년 8월 29일 일제가 발표한「일한병합에 관한 선언」제4호에서 「종래의 개항장은 마산포를 제외하고는 종전대로 이를 개항으로 하며 다시 신의주도 개항에 추가하여 내외선박의 출입 및 이에 의한 화물의 수출입을 허한다」함으로써 마산의 개항은 종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마산개항의 역사는 11년 8개월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합방이후 사실상 형식적으로만 남아있던 각국공동조계지도 해제되고(1914. 3. 31) 마산부(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는 등 제도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개항이 종료되어 마산항이 대외적으로는 폐쇄되었으나 일제가 필요로 하는 외.. 2011.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