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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마을(千葉村)2

마산항지(1926년) - 54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27. 진해만요새포병 마산 이전 명치 41년(1908) 봄 즈음부터 공사가 시작된 유현산(杻峴山) 아래 일본전관거류지 내의 일부에는 각종의 건축물이 차례차례 준공되고 광대한 연병장과 사격장도 완성되어 진해만요새포병대대는 사령부와 함께 가덕도에서 이전해 왔으며 그 전영식(轉營式)이 거행된 것은 명치 42년(1909) 9월 9일이었다. 이날 마산의 관민은 하사관 이하 병사들을 공원 사쿠라오카(櫻岡)에 초대해 환영회를 개최하였고 다음 날 10일에는 대대에서 마산의 저명인사 60여 명과 진해방비대 미야오카(宮岡) 사령관 이하 장교를 영내로 초대해 엄죽한 전영식을 거행하고 각종의 여흥 등이 있어서 성황을 이루었다. 28. 치바마을 어업감독 피살되다 율구미에 있는 치바마을(千葉村) 어업감독이며 치바 현 수산기사인 .. 2023. 7. 3.
마산번창기(1908) - 17 - 제8장 호구(戶口) 제8장 호구(戶口) 본 항구의 일본인은 개항 당시 모두가 한국인 집을 빌려서 살기 시작했으며 신시(新市)에 열 몇 명의 러시아인과 한두 명의 영국, 프랑스인이 거류할 뿐이었다. 다음 해 신시에 일본인 가옥이 두세 채 나오게 되고 광무 7년 즉 1903년에 이르러 그 인구가 많이 늘었지만 신시는 여전히 러시아가 독점하다시피 하여 러시아 군함의 출입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기생이 러시아 수병에 의해 욕을 당한 사건도 터져 영사관의 유시(諭示)는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다 신시에 이사해 오는 것을 꺼리며 청국(淸國) 사람과 함께 마산포에서 같이 살며 서로 상업에서 경쟁하고 있었다. 그 당시 경찰관이란 오직 영사관을 지킨다는 직무를 수행할 뿐 일반인들에게 대해서는 아주 오만불손하며 뇌물이나 주지 않으면 그들.. 2021.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