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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5

김형윤의 <마산야화> - 14. B29의 맹위, 15. 학병의 출진 14. B29의 맹위 그라만 함재기가 수십편대로 동경 천지를 저공으로 전주 사이를 날아다니며 곡예식으로 맹습한 것은 일본이 진주만을 암타(暗打)한 131일만인 1942년 4월 18일인데, 그로부터 오랜 침묵을 지켜오던 연합군 측의 소위 대공의 요새라는 B29기가 행동을 개시한 것은 1940년으로서 중국 성도에서 이륙, 마산의 무학산정을 거쳐 천자봉을 경과, 일로(一路) 일본 본토를 진공하였는데 처음 마산 상공에 나타난 것은 한여름 오후 9시경. 어스름 달밤에 가는 비가 내렸다. 이로부터 한반도 상공으로 B29기가 통과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이것들이 통과하고 나면 일본 각 도시는 소이탄(燒夷彈)과 폭격으로 날로 초토와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국은 무사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 다소의 피해가 있었으니 마.. 2015. 5. 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4) - 강점제3시기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한반도에도 연합군의 공습이 있었습니다. 최초로 한반도 근해, 즉 부산과 제주도 남방에 미군비행기가 날아다닌 것은 1944년 7월 8일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심심찮게 내습하다가 1945년 들어서는 빈도가 잦아져 45년 5월 경 부터는 거의 매일 같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부터는 한반도 남부뿐만 아니라 인천 황해도 대전 광주 원산 청진 나남 나진 등에까지 내습하여 항해중인 선박과 운행 중인 열차 및 육상 해상 시설에 총격과 폭격을 가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태평양 전쟁에서 맹위를 떨쳤던 미군 B-25 경폭격기입니다. 미군의 공습에 당황한 조선총독부는 1945년 4월 4일자로 '소개(疏開)실시요강'을 공포하였고, 이어서 4월 7일 '소개공지대(疏開空地帶)'로 경성 5개, 부산1개,.. 2013. 6. 3.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 신문을 본다 “일본국민 대다수는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세 신문 중 하나를 본다. 그러나 오키나와 사람들은 다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 신문을 본다”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에서 만난 더글러스 러미스(C. Douglas Lummis) 교수의 말입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는 '오키나와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보고 그 시선을 통해 세계평화의 길을 찾는 미국인 정치사상학자이자 평화운동가'입니다. 오키나와-일본-미국, 다시 돌아와 한반도-중국-동아시아에 이르기 까지 그의 지식은 넓고 깊었으며 그의 자세는 진지했고 겸손했습니다. 두 시간의 강연과 뒤풀이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많았던 말 중, 내 귀를 가장.. 2011. 2. 9.
도시 한복판에 동굴이? 도시 한 복판에 동굴이 있다면 믿어집니까? 최근 마산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입니다. 마산 창포동이었습니다. 공사를 하던 중 땅바닥이 아래로 꺼지면서 발견되었습니다. 지하 1.5m 지점에 폭 3m, 높이 2m, 길이 20m 정도되는 반원형 동굴이었습니다. 벽이나 기둥, 지붕 등 동굴을 지탱하기 위한 구조물은 아무 것도 없었고 인력으로 흙만 파내 뚫은 것이었습니다. 마사토와 황토가 섞인 토질이었는데 매우 견고해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동굴의 위치는 1899년 개항 직후 일본인들이 들어와 신마산이라는 도시를 만들기 시작한 각국공동조계지의 해관(현, 세관)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조계지를 조성 때 최초로 개발되었던 지역으로 당시에는 바다와 인접한 부지였습니다. 사정(査定)토지대장의 기록에, 일.. 2010. 9. 29.
나도향, 김지하 그리고 '산장의 여인' '마산도시탐방대' 여덟 번째 길이다. 1월 30일 오후 1시 반, 걷기 좋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였다. 우리는 가포로 가기 위해 비움고개를 넘었다. 마산도시의 끝자락인 가포(자복포, 율구미 포함)는 한 많은 땅이다. 110년 전, 조선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을 때 일본과 러시아가 서로 먹겠다고 각축을 벌인 ‘마산포 사건’의 현장이다. 잊혀져가는 굴욕의 역사를 되새기면서 겨울 오후 바닷가를 4시간 쯤 걸었다. 나라 뺏긴 설움만 있는 곳이 아니다. 가포에는 마지막 꺼져가는 심지처럼 생명이 사그라진 가슴 아픈 현장도 있다. 바로 국립마산결핵병원이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에 상이군인요양소라는 이름으로 세운 결핵전문병원이었지만 지금은 한국 최대의 국립특수의료기관이다. 우리는 병원 건너편 .. 2010.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