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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강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6) - 개항이후 1909년 일본 육군중포병대대가 월영동(구 국군통합병원자리, 현 월영동 아파트 단지)으로 오면서 진입 도로 일부와 대대가 끼고 있던 자복포 일부를 매립하여 연병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창원으로 떠난 한국철강 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철강 터 중 안쪽(월영동 아파트 단지 쪽)입니다. 아래 그림은 1912-1914년 경에 제작된 지도입니다. 중앙하부에 직선으로 그려 놓은 기역자 형 토지 내 ‘연병장(練兵場, 둥근 점)’이라고 적혀 있는 곳이 매립지입니다. 이 자리에 부대가 들어선 것이 1909년이고, 주위에 연병장 둘만한 곳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부대 이전 직후 간석지를 매립해 연병장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진입도로 쪽 일부(사각 점)도 매립한 흔적을 알 수 있습니다. 1899년 제작된 매립 전 지도.. 2011. 2. 2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일본 신사(神社)가 우리 민족을 정신적으로 위압했다면, 물리력으로 우리를 억누른 것은 일본의 군대와 경찰이었습니다. 일본군대의 마산진출은 1905년 마산선 철도가 건설될 때 쯤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진출은 1909년 7월 일본육군의 중포병대대(重砲兵大隊)가 진해에서 마산 월영동(현 월영동아파트단지)로 이전한 것과 같은 해 12월 대구헌병분유소(大邱憲兵分遺所)을 신마산에 설립한 일입니다. 이 글은 월영동에 주둔했던 「육군중포병대대」에 대한 내용입니다. 러시아와의 각축기에 일제는 율구미와 자복포 일대(현, 월영동 아파트 단지 및 구 한국철강 부근 일대)를 그들의 전관거류지로 확정했다가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을사조약이 체결될 즈음 이 지역은 군용지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1908년부터 본격.. 2010. 12. 6.
도시를 살린 10가지 이야기 (0) 들어가며. 도시는 유기체입니다. 탄생하여 성장하고 발전하며 전성기를 누리다 쇠퇴하는 과정이 사람의 생애와 비슷합니다. 변화하는 도시환경에 잘 대처해 오래도록 전성기를 누리는 도시가 있는 반면,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일터가 사라지기도 하고, 신시가지위주의 도시 확장으로 구도심이 낙후되기도 합니다. 도시가 노후화되는것을 막기는 어렵지만, 낙후되는것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도시재생'을 통해 오래된 도시가 안고있는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중심의 살기좋은 도시로 거듭날수 있습니다. 이번 연재(총10회)는 도시재생의 다양한 분야와 방법 중 '지속가능한 친환경건축'이 도시를 어떻게 살리는지 세계 여러 도시의 선례를 통해 배워보려고 합니다. 영국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런던.. 2010. 9. 1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마산포는 러시아와 일본이 서로 식민야욕을 불태웠던 각축장이었습니다. 시기는 개항 전후였고 그 절정이 「마산포사건」입니다. 「마산포사건」은 러시아가 부동군항(不凍軍港)을 얻기 위해 마산포를 점령하려했던 사건입니다. 사건개요를 요약합니다 러시아는 군사적 목적의 부동항을 얻기 위해 우선 조선정부와 마산포 저탄소(貯炭所) 설치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간파한 일본이 러시아가 목적한 토지를 미리 매입해버림으로써 러시아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1900년 때 일입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단념하지 않고 마산포 남쪽의 율구미(현 마산시 가포동의 국립결핵병원에서 MBC 송신소에 이르는 바다 쪽으로 돌출한 지역)를 얻어 1900년 6월 4일 30여 만평의 러시아 단독조차지를 설치하였습니다. 이에 질세라.. 2010. 7. 26.
통합 앞서 마산시민이 해야 할 일 도시의 통합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우리들만의 일도 아니다. 유익하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합칠 수도 있고 나눌 수도 있는 것이 도시다. 마창진 통합은 당위성도 있다. 역사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 그리고 도시경쟁력의 측면에서 통합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통합을 통해 세 도시의 약점은 보완시키고 강점은 키울 것이다. 나아가 100만 도시의 위상에 맞는 새로운 발전 가능성도 제시될 것이다. 오래 기다려온 만큼 통합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비전이 크다. 하지만 창원 진해시민과 달리 마산시민들은 통합에 앞서 짚어 봐야할 것이 있다. 진해 창원과 달리 90%에 달했던 마산시민의 통합 찬성률에 대해서이다. 마산은 수백 년의 역사가 있는 도시다. 3·15의거, 부마항쟁 등 현대사의 격랑을 몸소 겪은 만큼 .. 2010. 2. 8.
제안, <신(新) 7대 도시 마산> 마산을 염려하는 분들이 늘 하시는 말입니다. ‘한 때 전국 7대 도시였던 우리 마산이 이제는 경남 7대 도시가 될 판이다’ ‘전국 7대 도시의 영광을 되찾자’ 가슴 아픈 호소입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산을 고향으로 둔 내 마음도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마산뿐 아닙니다. 한 때 잘나갔던 도시라면 어디 할 것 없이 이런 식의 한탄 한마디는 다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목포시의회 부의장에게 들은 말인데, 목포 사람들은 지금도 ‘전국 6대 도시의 영광을 되찾자’ 한답니다. 전국 7대 도시 마산········. 어릴 때부터 많이도 들었던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인구가 전국에서 일곱 번째였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이 도시에 어떤 조건과 결과를 주었는지 깊이.. 2009.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