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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동2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한평 없어 어차피 얻은 구장집 머슴자리 지켜 새경 모은 것으로 동네 가난한 처자와 눈맞추어 토백이처럼 산 김씨 같은 사람도 있었다. 또, 부두노동으로 돈 모아 논밭 사둔 것이 나중에 개발되어 알부자 소리를 들은 천씨 같은 사람도 있고, 개울가 움막 같은 초가에 살았던 박씨처럼 어설픈 재인 노릇하다 결국 좀도둑으로 전락하여 비참한 삶을 마감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고가며 난민생활을 하는 일은 196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기억.. 2018. 3. 2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4) - 강점제3시기 “나카무라 되었다?” 마산의 명승지 월포해수욕장이 매립된 이후 근위빈 해수욕장이란 이름으로 해운동 일대(전 마산화력발전소 자리) 해변이 해수욕장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해수욕장이 1944년 12월 3일자로 일본인 종촌번부(中村繁夫)에 의해 매립되었습니다. 지금의 마산시외버스터미널 남부주차장을 포함한 해운프라자, 뎃츠빌딩까지의 넓은 지역이며 시기적으로는 일제기 마산의 마지막 매립이었습니다. 면적은 12,254평이었으며 매립 후 해안은 석축으로 호안하였습니다. 시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매립지는 완공된 지 8개월 만에 일제가 패망했기 때문에 매립된 땅을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했고, 해방 당시에는 공터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매립공사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할 수가 없었고 매립을 한 나카무라(中村)는 졸지에.. 2013.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