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승만8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4 Ⅲ. 얼음장수의 미스터리 3․15의거 역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다른 대규모 시민항쟁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기존 분석은 대부분 거시 사회사 분석으로서 항쟁 참가자들의 정의감이나 불만이 저항적 행동으로 표출되도록 만든 사회적 요인이 무엇이었던가를 규명하는 데 치중해왔다. 따라서 3․15의거의 경우 “왜 하필 마산인가”라는 의문을 해명하는 데 집중되었다. 그런데 특정 개인의 항쟁 참가, 예컨대 “왜 하상칠인가”라는 의문에 답하려면 이러한 사회적 요인보다 개인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 사회적 요인이 모든 참가자에게 해당되는 공통 요인이라면, 개인적 요인은 특정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개별적인 특수 요인이다. 양자를 동시에 살펴보는 것은 3․15의거를 좀 더 복합적이고 심층적으.. 2018. 10. 22.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길었고, 나머지 대부분도 자유당 각료들과 국회의원들 이야기였으며, 조병옥, 장면 등 야당정치인 몇명의 이름도 본 것 같다. 거기에 이용범도 올라있는 걸 기억하는 건 당시 그의 이름이 마산 창원을 통털어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뭐,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많이 쓰는 신사정치인’ 정도 내용이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여당에 오히려 누가 될 ‘희작’이 되었겠지만, 그때 나의 머리엔 그런 인식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거기엔 여당성향의 우리집.. 2018. 4. 2.
기억을 찾아가다 - 13 13. 정전 후의 체험들 Ⅳ - ‘이용범 다리’ ‘용베미 다리’란 말을 언제 쯤 부터 들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용범(아래 사진 / 1905~1968)이란 인물의 이름이 널리 퍼진 계기로 미루어보면, 1954년 총선 이후였다고 생각된다. 참고 ; 자유당 전성기 건설업계는 이용범의 대동공업, 황의성의 조흥토건, 김용산의 극동건설, 이재준의 대림산업, 정주영의 현대건설, 조정구의 삼부토건 다섯 회사가 지배했다. 고장이 나면 불편이 컸던 양덕교(현 마산자유무역지역 정문 앞의 다리, 지금은 복개되어 다리로 인식되지 않는다)를 두고 불평과 비난의 말들을 많이 했었는데, 그때에도 공사자나 회사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을 보거나 들었던 기억은 없다. 지금처럼 시공사의 이름을 써놓은 입간판 같은 건 그땐 .. 2018. 1. 15.
기억을 찾아가다 - 12 12. 정전 후의 체험들 Ⅲ - 귀환, 상이군인들 정전 얼마 후에 전장에 갔던 아저씨들이 속속 돌아왔다. 함께 끌려가서(그땐 그렇게들 표현했다) 내내 한 부대에 있다가 함께 돌아온 우용 아저씨와 내 당숙은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왔고, 다른 두 분은 정전 한참 후 제대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우용 아저씨는 볼에 큰 흉터를 가지고 왔는데, 내 당숙은 손끝 하나 다친데 없었다. 부대가 후퇴할 때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다 열차탈선으로 부대원 전체가 부상 혹은 사망을 당하여 모두 상이용사로 제대되었는데, 집결지에 늦게 가 열차를 못 탄 당숙도 함께 상이제대 되었다는 이야기는 당시 동네사람들의 화제 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한참동안 소식이 없어 죽은 줄만 알았던 남규 아저씨의 귀환은 우리들에게 상당한 인.. 2018. 1. 8.
마산창원 역사 읽기 (25) - 문화권력, 이은상 3. 지역의 인물을 찾아서 3-8 문화권력, 이은상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기 /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 1923년) 봄처녀 오시누나 새 풀옷을 입으셨네 / 하얀구름 너울쓰고 구슬신을 신으셨네 / 꽃다발 가슴에 안고 누굴 찾아 오시는고. (, 1925년) 내 고향 남쪽바다 / 그 파란물 눈에 보이네 / 꿈엔들 잊으리요 / 그 잔잔한 고향바다 / 지금도 / 그 물새들 날으리 / 가고파라 가고파. (, 1932년) 앞의 두 노래는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려 우리에게 친숙한 곡이고, 마지막 노래는 우리 국민들 모두가 애창하는 노래다. 이 노래 가사를 지은 사람이 이은상이다. 가 국민들이 애창하고 또 마산을 상징하는 노래로 널리 불려지면서 이.. 2014. 11. 10.
마산·창원 역사 읽기 (16) - 3·15의거는 「민중」항쟁이었다 2. 청동기시대에서 10·18까지 2-9 3·15의거는 「민중」항쟁이었다 마산의 봄은 산등성이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진달래의 붉음 만큼이나, 부정과 불의에 저항했던 정열에 불탔던 계절이다.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의 과정에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자유와 민주를 쟁취했던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마산의 지역민들은 항상 그 앞에 서 있었다. 3·15는 분단된 남한, 그 민주화의시작이었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를 전후하여 마산에서는 적어도 4차례의 시위가 목격된다. 3월 14일 밤 민주당사 앞에서 일어난 시위, 3월 15일 선거 당일 오후부터 한밤중까지 마산시 전역에서 진행된 시위와 총격발포 사건, 3월 15일 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 군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2014. 9. 8.
마산·창원 역사 읽기 (15) - 해방에서 5·16까지 2. 청동기시대에서 10·18까지 2-8 해방에서 5·16까지 한 시대의 사회운동을 살피는 일은 현재 우리사회의 주류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반대 세력도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 궁극적으로 그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낡은 기득권 세력을 교체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때, 이에 맞서 사회운동을 방해하고 탄압함으로써 기득권을 확대 재생산해온 세력의 실체를 파악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1945년 해방 직후의 상황부터보자. 당시 마산 지역사회의 여론주도층 인사들은 대략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친일파 출신인사들이 그들이다.. 2014. 9. 1.
3·15를 통합시 정신으로 하자는데 오늘, 3월 15일. 이승만 독재에 저항, 부패한 절대 권력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마산시민의 위대한 승리를 이루어낸 3·15의거 50주년 기념일이다. 이 나라 민주항쟁의 효시요, 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운 자랑스러운 날이다. 마침 정부에서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의미가 더 깊어졌다. 매년 기념일을 전후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있었지만 올 해의 행사는 더 풍성하다. 뮤지컬, 드라마, 열린 음악회에 메이저 언론의 집중조명도 받는다. 좋은 일이다. 마산시민들 모두 자랑스럽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여기서도 3·15, 저기서도 3·15를 말하니 3·15의거기념사업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필자도 내심 흐뭇하다. 이틀 전 3월 13일 토요일 오후에는 50년 전 시위를 재현하는 거리상황극까지 있었다. 마산의 고등학생 천여 명이 참여.. 2010.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