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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4) - 강점제2시기

<1920년대 마산의 건축물과 각종공사>

마산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근대식 건축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한일병합 이전까지는 주로 목조로 지은 공공기관이 주류였습니다만 1910년경부터는 벽돌조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20년 후반 경에는 철근콘크리트조의 근대식 건물도 선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20년대 지은 건물들은 용도도 다양했습니다.
회사령 폐지와 3․1운동에 의한 문화정책 때문이겠지만 주조공장과 장유공장을 비롯한 산업시설은 물론,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교육시설도 이때 많이 지었습니다.

아래 그림의 원동무역주식회사는 1927년 8월에 철근콘크리트 2층 현대식 건물로 사옥을 착공하여 1928년 4월 준공식을 가진 한국인 최초의 오피스전용건물입니다.
세련된 근대미가 물씬 풍깁니다. 밑은 현재 모습입니다.

다음 표는 1920년대에 건축된 마산의 건물들인데 이 중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은 지금까지 원형이 보존되어있는 유일한 건물입니다. 몇년 전에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건물명  현위치  건축연대  유무  구조 및 양식  비고
 마산경찰서  중앙동2가  1921  무  목조1층 일식  조계지에서 이전
 마산상업학교  산호동432  1923  무  벽돌조2층 양식  마산상고
 호신학교  회원동  1924  무  벽돌조2층 양식  창신학교
 마산조면공장    1924  무    
 북마산역사  상남동  1924  무  목조1층 양식  1924년 철도개통
 마산헌병분견대  월남동4가  1926  유  벽돌조1층 양식  
 도립마산병원  중앙동  1927  무  벽돌조1층 양식  
 공립보통학교  성호동  1927  무  벽돌조2층 양식  한국인학교
 太田麻糸공장    1927  무    
 대자유치원  추산동65  1928  무  목조1층 일식  마산포교당
 원동무역(주)  남성동  1928  무  Conc2층모더니즘  
 마산우편국  중앙동  1930  무    


 

당시 원마산의 가옥은 좁은 골목 변에 지은 초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화재가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1910년대에 개설되었던 신설도로변에는 함석지붕(亞鉛葺) 또는 기와지붕(瓦葺)으로 초가(稿葺)를 금하는 건축 제한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원마산의 점포는 대부분 잡화점․양품모자재봉판매점․미술장신구점․귀금속안경점․재봉틀점․제화점․양말제조판매업․납품업․미곡점․운송점․여관․인쇄조각사․활판인쇄소․사진업․요리업․우육점․주막․전당포․공장 등이었습니다.


1920년대 마산지역에서 일어난 각종건설공사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소개합니다.
조선건축회
(朝鮮建築會)에서 간행한『朝鮮と建築(조선과건축)』에 게재된 1920년대 마산지역에서 시행되었던 각종공사를 종합 정리해보았습니다.
「조선건축회」는 현재의「대한건축학회」와 비슷한 성격의 단체입니다.
『朝鮮と建築(조선과건축)』은 조선건축회가 1922년부터 1942년까지 간행한 월간 학회지 성격의 간행물로, 당시 한국의 건축과 관련한 내용을 다양하게 싣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용하는 마산관련 기사는『朝鮮と建築』중 ‘최근조선건축계’ 혹은 ‘조선건축잡보’ 등 전국 각지에서 시행되고 있는 건축 관련 소식을 다루는 부분에 실려 있는 것으로서 일종의 기사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표에 게재된 내용들은 준공된 건물이거나 시설이 아니고 계획 중이거나 진행 중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를 통해서 1920년대 마산지역의 대표적인 건축공사들이 어떠했는가는 대략 가늠할 수 있습니다.

개항기 때 이미 건축해 놓은 각종 공공시설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발생한 사회적 수준의 상승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변화는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건축적 요구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에 따라 각 공공건물들은 시설확충과 건물수준 상승의 일환으로 증개축공사가 많이 전개되었는데 그 실상을 이 표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강점 제2시기 말에 추진된 마산부청과 마산우편국 이전 기사를 통해 과거 조계지에 지었던 관공서 건물의 위치적 편향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과 그에 대한 해소책으로서 중앙 마산으로 이전하게 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산상업학교와 경남선철도 및 북마산 역사(驛舍) 등의 공공시설과 원동무역과 같은 민간시설 등 이 시기에 축조된 많은 시설들이 게재되어 있지 않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마산고녀(高女)는 현 마산여고의 전신입니다.<<<

 연도 기사제목  발주처  비고 
1923  마산고녀(高女)공사계약  학교조합   橫山太十郞계약
 1923 마산고녀증축   학교조합 교정확장, 교사증축 
 1926 마산병원개축결정  경상남도   
 1926 마산고녀증축결정  학교조합  부윤이 경성가서 기채 
 1926 도립마산의원개축  경상남도  현 의료원위치로 이전계획 
 1926  마산만매립공사기공

目加田平三郞 

현 경은신마산지점앞 
 1926 마산도립의원개축  경상남도   
 1927 공립보통학교증축착수    취학아동증가 협소 
 1928 마산공회당 기념건축  상업회의소  모금 
1928  마산상수도공사 준성  마산부  연장1800m 
 1929 마산공회당, 기타 계획 마산부  공회당, 도서관, 청년회관 
 1929 마산부청 신축  마산부  주민들의 요구, 국고보조 
 1929 마산우편국개축 착수  체신국  주민불편해소, 철도용지 
 1930 마산우편국상량식  체신국  시공 ;  江波俎(강파조)
 1930 마산우편국신축공사  체신국  본관 마무리 
 1930 마산고녀기숙사신축  학교조합  러시아영사관사용
 1930 마산에 방직공장신축 

木浦南北綿業 

산호리 매축지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2011/12/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2011/12/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2011/12/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0) - 강점제2시기
2012/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1) - 강점제2시기
2012/01/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2012/01/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3)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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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류창현 2012/01/31 15:29 address edit & del reply

    헌병분견대 흑백사진이요. 에어컨실외기나 뒷쪽 아파트를 보아 채 20년이 안된 사진같은데요. 건립초기의 사진은 없을까요??

  2. 허정도 2012/02/01 11:58 address edit & del reply

    찾아보면 어디 있겠지,,,

2012/01/2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3) - 강점제2시기

<마산사람들의 배일감정>

일본인에 의해 사회 모든 분야가 달라지면서 한국인의 생활 방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1918년경만 하더라도 마산포 장날에 머리카락을 짧게 단발한 한국인이 보이면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1년이 지난 1919년경에는 단발에 양장(洋裝)차림을 한 사람들이 부쩍 많아져서 1920년대 중반에는 전체 한국인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상투머리를 한 사람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막일하는 사람과 농민이었으며 그 외는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짚신도 이 시기에는 많이 사라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무신을 신었는데 마산에는 주로 오사카와 고베의 고무신이 공급되었습니다. 개중에는 구두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무신 사용자가 많아지니 상대적으로 짚신은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고무신 대신 짚신신기 운동'까지 일어난 지역도 있었습니다.
짚신이 당시 농촌의 중요 수입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점기에 이용되던 고무신광고입니다.


이런 정황에서 알 수 있듯이 생활은 점점 근대화되어 갔습니다만, 마산사람들의 배일감정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일본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마산항지』에서

대정 8년(1919년) 중춘(仲春) 각지에 배일선전의 만세소요(3․1독립운동)가 일어나면서부터 배일사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좁은 길에서 일본인을 만나면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고, 심하게는 일본인 교사에 대하여 선생이라 부르던 것이 이때부터 모군(某君)이라고 고쳐 부를 정도로 악화되었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때 수많은 한국인이 무고하게 죽었다는 소문이 나자 일본인에 대한 적의는 더욱 커져 마산포에 살고 있는 일본인을 불태워 죽이지나 않을까, 혹은 지금 마시고 있는 샘물에 독약을 넣지 않을까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여 헌병․경찰․소방조까지 임시 야경을 실시하기도 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관동대지진 참상입니다.


교통사정도 약간 바뀌었습니다.
1910년대에 이미 시외버스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시내 전용의 자동차는 없었습니다.
마산에 시내용 자동차가 등장한 것은 1922년부터 시작된 원마산의 도로개설 및 확장공사가 시행된 이후부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에 비로소 모습을 나타낸 시내버스회사는 1928년까지 부림동에 있는 오오노(大野)자동차부와 중앙동2가에 있는 마산자동차조합 둘이었습니다.

버스의 운행은 마산 역(현 중부경찰서 앞)에서 구마산 역(현 육호광장)과 북마산 역(현 회산다리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부근)까지를 3개 구간으로 나누어 다녔습니다.

동아일보 1928년 8월 27일자 4면에 보면 마산부에서 이 시기에 부가 직영하는 부영(府營)버스를 운행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외로 연결되는 교통은 진주를 시작으로 통영․창녕․함안으로 가지 연결되고 있었으며 1928년에는 택시도 3-4대 출현했습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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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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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00:00

동영상 - 마산

지난 연말,
재경마산향우회 송년회용으로 마산도시사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서툰 작품이지만 나쁜 평은 하지 않아 공개합니다.


곧 설입니다.

마산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 마산에 얽힌 추억이라도 나누어보시죠.
분량은 13분 쯤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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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상완 2012/01/17 15:33 address edit & del reply

    동영상 파일을 메일로 받을수는 없을까요?
    저희 모임(한일 교류회)에서 이 영상을 같이 보았으면 합니다.

    가능하시다면 다음 주소로 부탁드립니다.
    odoko2@naver.com

    • 허정도 2012/01/17 16:59 address edit & del

      그렇게 하겠습니다.

  2. 노상완 2012/01/18 16:21 address edit & del reply

    파일 잘 받았읍니다. 다음달 모임에서 마산을 알리는 자료로 활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12/1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1920년대 마산의 산업>

1920년대 마산항의 물동량은 일본 국내의 불황과는 달리 오히려 더 늘어만 갔습니다. 주요 수출품은 여전히 미곡이었으며 전체 수․이출액의 80%를 차지했습니다.
1925년 마산항에서 일본으로 반출된 미곡은 약 15만석이었는데 1928년에는 65%가 증가한 25만석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미곡 수․이출의 증가는 수치상으로는 무역의 증대였지만 사실은 일제에 의한 미곡의 약탈적 반출이 점점 증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미업은 1911년 하목철삼(夏目哲三)에 의해 전기모터를 설치한 것이 기계화된 정미소의 시작인데 그 후 많이 늘어나 1924년 현재 25개소였습니다.
그 중 한국인의 것이 12개소, 일본인의 것은 13개소였습니다.

섬유공업은 회사령 폐지 이후부터 마산에 유치되기 시작한 업종입니다.
특히 1923년 6월 일본 오사카의 본전안오랑(本田安五郞)이 전 조선면화 마산공장을 매수하여 그 해 10월부터 작업을 시작한 주식회사 마산조면공장이 1924년 1,300평의 부지에 280평의 공장과 50평의 하치장을 신축하여 운영하였습니다.
그 후 1927년에는 태전성일(太田誠一)에 의해 창립된 태전마사(太田麻糸) 공장이 부지 5,000평에 건평 1,000평의 공장을 세우고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1920년대는 마산-진주 간 철도가 개설됨으로써 서부 경남과의 교역이 활발해지자 북마산 역 주변에 역세권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제법 규모 있는 점포들이 원마산에 들어서게 되면서 상가지역이 두드러지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마산은 창동․남성동․중성동․동성동 일부 지역에 걸쳐 상가가 조성되어 있었으며 부정공설시장(현 부림시장)부근과 남성동 해안 매축지에서 곡물상․해산물상․식료품상․포목상․잡화상들의 점포와 노점상이 즐비했습니다.
제조업 분야에 손을 뻗지 못한 한국 상인들은 주로 이 지역 상가에서 도․소매업을 경영했던 것입니다.

신마산의 상가는 京町(두월동) 거리의 양쪽에 형성되었지만 일본인조차도 값이 싼 원마산에서 구매를 하였으니 상거래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본 상인들은 판매업보다는 여관․요식업․대금업 등으로 업종을 바꾸거나 대상(大商) 중에는 원마산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도 있었습니다.

금융기관으로는 조선식산은행 마산지점(지방 농공은행이 통합하여 창설되어 전 경상농공은행이 있던 자리에 1918년 10월 개설되었다)이 현 제일은행 자리에 있었으며 이 외에 마산금융조합이 신마산에, 구마산 금융조합이 척산천 이동(以東)으로 구역을 분할하여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밖에 농민을 대상으로 한 내서금융조합과 사금융(私金融)인 마산금융회사 등도 있었다.

1910년 신설된 구마산 역은 도시 범역의 확산과 함께 이 지역의 교통 및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구마산 역 부근 시장통에는 상업조사자가 40%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승객의 숫자도 마산 역보다 많아 부산 대구에 이어 번성했던 역이었습니다.
화물은 경부선․호남선․경의선․진해선 등과 연결되었으며 1년간의 승차인원이 176,104명, 하차인원은 153,495명이었습니다.
부근에는 상업학교․형무소지소․보통학교․식은지점․내서와 구마산 양 금융조합․금융회사․기업전습소․조면공장․정미소 2개․양조장 4개 등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 구마산 역에는 신마산과 다니는 승합차가 27대 있었으며 부외(府外)와 연결되는 자동차가 준행되고 있었다.

마산의 대표산업이었던 양조산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산전 장유양조장 / 현 몽고간장 / 1950년대 촬영>

                                     <마산의 일본인 양조장 / 1920년대>

 

                                  <소화주류주식회사 / 무학주조 전신>

1926년에는 약 7,450석을 생산했으나 역시 부산의 생산량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28년에는 당시의 조합원 12개 공장에서 세운 계획량 9,853석 보다도 1,200석이 더 많은 11,000석을 생산하여 10,000여석을 생산한 부산업계를 제치고 한국의 지역별 주조생산량에서 제1위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마산의 청주업계는 호황을 지속했고 생산량은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산의 청주는 국내 시장에 이어 만주와 중국 대륙까지 팔려 나갔습니다.

1920년대에 설립된 마산의 양조회사는 합자회사淸水양조장(1921년), 濱田주조장(1923년), 村崎주조장(1923년), 千島園주조장(1925년), 山邑주조주식회사마산공장(1929년), 昭和주류주식회사(1929년, 현 무학주조) 등입니다.

이 중 천도원주조장이 최근 철거된 삼광청주의 전신입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일제는 1928년부터 개인의 자유 양조를 금지하고 양조를 허가제로 전환하면서 면허를 발급했습니다.
주로 한국인 업자들에 의해 경영되던 탁주와 약주 양조업은 일본인이 독점했던 청주업계에 비해서 규모는 영세했습니다.
한 예로 1928년 마산의 탁주 생산량은 불과 1,500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편, 마산에서 생산된 장유는 그 품질이 우수하여 경남 일원뿐만 아니라 멀리 원산과 청진에 까지 판매되었습니다.
장유업은 일본인들이 독점하고 있었는데 마산의 장유 생산량은 1928년 기준으로 평균 5,000석 정도였습니다.

일제시대 마산의 대표산업이었던 술과 간장 된장 제조업은 지금까지 무학주조와 몽고장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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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1920년대의 마산인구 변화>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한
1920년대 마산의 인구변화입니다.
1921년부터 1923년까지의 통계는 구하지 못했습니다.

 

연도 한국인  일본인  외국인  합계  일본인비율(%) 
 1920  11,923 4,172   70 16,165  25.8 
 1921          
 1922          
 1923          
 1924  13,616  5,168  98  18,882  27.4
 1925  17,148  4,824  109  22,081  21.8
 1926  17,802 4,975  124  22,901  21.7 
 1927  18,019  5,095  129  23,243  21.9
 1928  18,300  5,339  95  23,734  22.5
 1929  19,309  5,592  87  24,988  22.4
 1930  20,149  5,559  102  25,810  21.5
 1930/1920  169.0%  133.2%  145.7%  159.7ㅋ%  



이 표에 의하면 1924년의 마산인구는 전체 18,882명으로 1920년의 16,165명에 비해 4년 동안 2,717명(116.8%)이 늘어났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1910년대의 같은 기간에 비교하면 인구 성장의 폭이 늘어난 셈입니다.
그리고 1924년 18,882명이 1930년에는 25,810명이 되어 6년 동안에 136.7%로 변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성장의 폭이 조금씩 높아진 셈입니다.

일본인은 1920년 당시 4,172명이던 것이 1924년에는 5,168명으로서 약 천여 명 늘어나고 그 뒤에도 조금씩 늘어나 1930년에는 5,559명이 되었습니다.

1920년 대비 1930년 일본인 인구성장률은 133.2%였지만 한국인들은 1920년에 11,923명에서 1924년 13,616명, 1930년에 20,149명이 되어 1920년 대비 1930년의 인구 성장률이 169.0%였습니다. 같은 시기 일본인의 증가율에 비해 월등히 높았습니다.

1920년대 말 마산의 양조장에서 일하고 있는 일본인들 사진입니다.


전체 인구 중 일본인들이 차지한 비율은 1920년의 25.8%에서 1924년에는 27.4%로 약간 늘어났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하여 1930년에는 21.5%까지 떨어졌습니다.

일본인의 비율은 이 이후에도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는데 이는 일본인의 숫자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1914년에 실시한 지방제도 개혁에서 동시에 부가 된 12개 지역의 인구성장률을 비교한 자료입니다.

 증가
 율
 순 서
 1  2  3  4  5  6   7   8   9   10   11   12   전국
 평균 
 도시
 편균
 1920-
 1925
 청진
 94.9
 대구
 73.1
 신의주
 68.1
 목포
 62.7
군산
 57.7 
인천
 56.8 
평양
 52.5 
부산
 44.9 
마산
 42.6 
서울
 38.4 
원산
 33.6 
진남

 27.6 
13.1  47.1 
 1925-
 1930
 신의
 주
 107.3
 청진
 74.0 
 평양
 57.3 
 진남
 포
 40.6 
 부산
 37.0 
 목포
 29.8 
 군산
 22.1 
 대구
 21.9 
 마산 
  21.9 
 인천
 21.0 
 원산
 17.4
 서울
 15.1 
 7.8   39.9 


이 표를 보면 마산의 인구 증가율은 강점 제2시기 전후반기 모두 동일하게 12개 부 중 아홉 번째로서 동 시기의 다른 도시에 비해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

강점 제2시기인 1920년대는 회사령 폐지로 인한 농촌인구의 도시유입 영향으로 1910년대에 비해 도시인구가 많이 늘어났습니다만,
마산은 전국 도시평균 증가율에는 미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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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병욱 2011/12/07 15:43 address edit & del reply

    경남도민일보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입니다. 엊그제 새해가 시작된 것 같았는데, 벌써 '송년 시즌'이라뇨. '세월이 화살'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갱상도 블로거'들과 2011년을 함께 마무리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연대와 소통으로 결속을 다지는 것은 물론 올 한 해 되돌아볼 일은 없는지, 새해 준비는 어떻게 하면 좋을 지 같이 모여 수다 좀 떠들어 보자는 취지입니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무거운 이야기까지 온갖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재밌고, 유익한 자리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곁들여서 이날 2011년 '갱상도 블로그 공동체'의 변화 발전을 위해 애쓰신 분을 뽑아 격려하는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12월, 이런저런 약속 많으시겠지만, 부디 많은 블로거가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8일과 13일 또는 14일무렵 참석 확인전화 드리겠습니다.

    제목: '가는 해 안 잡는다, 오는 해도 막지 말자!'(가제)
    언제: 2011년 12월 15일 저녁 7시
    모이는 곳: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밥 먹으면서 술도 한 잔 할 수 있는 곳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댓글이나 문자 보내주시면 확정되는 대로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장소 예약 관계로 14일 저녁까지만 받겠습니다.
    참가비: 1만 원.
    문의: 민병욱 019-559-9102 블로그 http://min.idomin.com 이메일 min@idomin.com

    <진행순서>(초초안)
    -7시~7시 40분 즐겁게 밥 먹고, 마시기
    -7시 40분~8시 간단한 참가자 소개
    -8시~10시 자유로운 발표와 토론
    예) 올해 블로그 생태계에서는 어떤 일이…. 올 한해 갱블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 (기뻤던 일, 고쳤으면 하는 것들)…. 내년에 갱블 차원에서 해볼 만한 일은 어떤 게 있을까…. 올해 갱블에서는 누가 갱블 발전을 위해 애썼는지 뽑아 봅시다.
    **이야기 나눌만한 '거리' 있으시면 제안해 주십시오.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 허정도 2011/12/07 21:23 address edit & del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2011/12/10 17:5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011/11/2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마산을 바꾼 '시구개정사업'>

1920년대 마산의 도시 변화는 회사령 폐지로 시작된 산업 변화와 중앙마산의 형성 및 매립, 그리고 시구개정 사업으로 인한 원마산의 도로망 확산과 경남선 철도 개설 등이 큰 흐름입니다.

1923년 9월 1일 동경과 요코하마를 비롯한 관동지방에 대규모 지진, 즉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44초에 돌연히 동경과 요코하마 및 관동지방 일대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가옥을 비롯한 지상시설물을 도괴(倒壞)시켰을 뿐 아니라 해일(海溢)과 3일간 계속된 대 화재로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사망91,344명 행방불명13,275명 부상51,074명 가옥전소38,090채 가옥반소517채 전궤(全潰)83,819채 반궤(半潰)91,233채 유실1,390채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동경의 피해가 가장 커서 全시의 44%가 소실되고 249만의 인구 중 158만 이상이 재난을 당했습니다.
특히 이 소란 중에 한국인이 난동을 부린다는 낭설이 돌아 무차별로 학살되는 비극까지 겪었습니다.

하지만 관동대지진은 일본 전역에 도시연구의 관심을 고양시켰습니다. 도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것입니다.

예로써, 1924년 동경제국대학에 도시계획 강좌가 개설되고, 같은 해 일본정부 내 도시계획 실무자들로 구성된 도시연구회가 회지『도시공론(都市公論)』을 발간하였으며, 다음 해에는 동경시정조사회가 월간『도시문제』를, 대판시가『大대판』을 발행함으로써 도시계획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고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열기는 한반도로 이전되었습니다.

이미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시행되고 있었습니다만 전국 각 도시는 물론 지방도읍들까지 시구개정사업에 대한 열기가 높아졌던 것입니다.

당시의 이런 분위기를 전하는 신문기사 중 마산관련기사를 소개합니다. 모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馬山市區改正 着着進行中(1926년 1월 24일자 4면)
馬山府에서는 馬山府를 大都市로 建設할 計劃 下에 數年 前부터 市區改定에 着手하야 公設市場 及 道路擴張 等에 注力하야 오는바 대정15년도(1926년)예산으로는 2만3천6백원(6천원은 道補助金) 공사비로 萬町(동성동) 新築 警官派出所前부터 午東洞 明太庫間 前까지 230間 거리의 창원군 내서면 산호리를 직통하는 6間 1등 도로공사를 착수할 터인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야 工事完成期는 대정16-17년(1927-1928년)도까지 연장되리라더라.

馬山市區改正 工事는 來年부터(1926년 6월 23일자 4면)
馬山府에서는 市區改正에 留意하고 每年 着着進行中인바 新舊馬山을 連結시켜 大都會馬山을 建設할 計劃 下에서 12萬圓의 工事費를 정하여 市區를 改正하기로 결정되었다는바 工事費 12만원 中 국고보조금이 4만5천원 지방비 보조금이 3만7천5백원 府費編入金 3만7천5백원이라는데 國庫補助金은 方在申請中이라하며 工事着手는 대정16년(1927년)도부터 할 豫定이라더라.

工事着着進行 舊馬山市區改正 (1926년 12월 2일자 4면)
馬山府에서는 朝鮮人多數가 住居하는 舊馬山市區改正이 不完全함을 有感으로 여겨오던 바 最近에 이르러 府 當局으로부터 舊馬山市區改正에 特히 活力하여 온다함은 旣報한바이거니와 馬山府 萬町前으로부터 午東洞 淸水精米所까지 距離6十間 廣 5間半 府外連結道路工事는 近近히 着手하야 15年度(1926년)末內로 竣工하기로하고 土地買收에 府當局에서는 勞力 中이라는바 工費 豫算이 6천원에 不過함으로 土地所有者의 特別한 同情을 希望한다더라.

이들은 모두 이미 1910년대에 시행된 1차 도로개설로 생겨난 원마산의 도로망을 더 확산시키자는 의미의 기사입니다.
신문의 내용을 보면 마산의 도시 규모를 키우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발행된 신문에서는 마산 외에도 경남지방에는 진주․밀양․진영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전국 각지의 소읍들까지 시구개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도시계획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마산도시변화연구과정에서 1920년대 중반기에 마산에서 시행된「구마산시구개정(舊馬山市區改正)」에 관한 자료 일부를 찾았습니다.
시구개정사업으로 시작된 마산의 도시변화는 나중에 별도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당시 마산의 시구개정사업 중 하나인 현 중앙동 일대의 도시계획도면입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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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오늘부터는 1920년대 10년간을 올리겠습니다.
'일제강점 제2시기'로 분류되는 이 시기의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요?

<산업수탈이 시작되다>

1920년대는 한국이 일제의 상품시장 및 원료공급지, 특히 식량공급지로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일본의 자본이 한국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던 시기로 「산업수탈기」라 부릅니다.

정치적으로는 3․1운동을 전환점으로 무단정치가 철폐, 소위 「문화정치」가 표방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산미증식계획이 강행되었습니다.

「문화정치」라는 말은 1919년 8월 12일 제3대 조선총독으로 임명된 재등(齋藤)이 서울에 부임해 온 다음 날, 즉 9월 3일 아침에 내린 훈시 중에서 8월 19일에 있었던 관제개혁과 헌병경찰 폐지, 복제(服制) 폐지 등을 언급하면서

「이는 요컨대 문화적 제도의 혁신에 의하여 조선인을 유도 제시하고, 그로써 그 행복 이익의 증진을 도모하여 장래 문화의 발달과 민력의 충실에 응하여 정치․사회상의 대우에 있어서도 내지인과 동일한 취급을 할 究極의 목적을 달하게 할 것을 서기(庶幾)하는 바이다 ․․․․․․․」라는 말에서 유래합니다.
이때 신문과 잡지의 발간이 허가되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되었고 교육기관도 설립합니다. 마산상고(현, 용마고)도 이 때 개교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1920년 7월에는 평양에서 조선물산장려회도 발족해 전국적으로 퍼졌는데 마산은 1923년 2월에 조선물산장려회가 설립 활동하였습니다.

일본공업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교전국의 전쟁수요와 교전국이 이미 장악하고 있던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막대한 이윤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국내시장에서도 구미(歐美)상품의 수입이 줄어 국산화가 많이 되었으며 전시 중 내외시장이 급격히 확대되어 낙후되었던 중화학공업부문도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시경기를 타고 급속하게 발전한 일본경제는 대전 종료 후 전시 수요가 격감하면서 불황에 빠지고 맙니다. 대외무역도 줄어들었습니다. 대전(大戰) 중에 과잉투자를 한 일본공업이 불황에 접어들자 자본의 해외진출이 절실하게 요구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가 자본진출기지로 우선 착안한 곳이 한국이었습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과잉자본을 한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그 동안 한국 경제를 짓눌렀던 조선회사령을
철폐하였습니다.

일제가 회사령을 철폐한 주된 요인은 이와 같은 일본국내 과잉자본의 해외진출이었지만 이밖에도 한국 내 식민지 공업화의 내적 조건의 성숙도 들 수 있습니다.

즉 1910년대의 「식민지 기반 구축기」에 철도․도로․항만 등 사회기반시설의 확충과 금융기관의 정비 및 1915년 12월 조선광업령 시행 이후 주요 광물자원의 생산이 증대되고 또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 등 한국 내부의 공업화 여건도 상당히 작용했던 것입니다.

조선회사령 철폐는 한국공업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철폐 시기는 1920년 4월이었으며, 같은 해 9월에 일본 내의 재벌들을 불러들여 산업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자본유치를 꾀하고 유치공장에 대한 지원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조선회사령 철폐는 도시의 인구집중을 불러, 1910년대 전국인구증가율 2.6%보다 낮았던 도시인구증가율(1.6%)이 1920년-1930년 10년 간 연평균 7.1%로 상승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마산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 기업 설립 붐을 이룹니다. 대부분은 일본인들에 의한 것이었지만 원동무역처럼 한국사람들에 의한 창업도 있었습니다.
20년대 부터 대규모로 시작되는 마산만의 매립공사도 이때의 기업 설립과 관계가 깊습니다.

다음 사진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1927년 일본의 노구치 재벌이 건설한 흥남조선질소비료공장입니다.



그러나 회사령을 철폐한 강점 제2기에도 산업정책의 중심과제는 여전히 식량 및 원료 증산을 위한 산미증식계획의 추진이었습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일본은 항구적인 미곡수입국으로 변하여 한국으로부터 매년 150만석의 미곡을 수입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농업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더욱 침체되어 곡가(穀價)가 급등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유명한 「富山(도야마) 쌀 폭동」이 일어납니다.

「富山(도야마) 쌀 폭동」은 1918년 7월 23일 도야마(富山)현 시모니카와군 우오즈(魚津, 현재 우오즈시)읍의 우오즈항에서 일어 났습니다.
당시 우오즈항에는 북해도로 가는 쌀 수송선 이취환(伊吹丸)이 기항했는데 쌀값 폭등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주부 수십 명이 쌀을 선적(船積)하고 있던 오오마치해안의 십이은행(十二銀行) 쌀 창고 앞에 모여 쌀 반출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이것이 도야마 쌀 폭동의 시작입니다.
당시 모였든 주부들의 남편들은 멀리 출어하였던 어부들이었습니다. 폭동은 8월에 접어들어 현내의 각 읍으로 퍼졌고 결국 경찰과 주부 데모대가 충돌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태를 도야마현의 지방지들이 보도하기 시작했고 8월5일에는 아사히, 마이니치 신문까지 보도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폭동은 8월9일, 대도시인 교토와 나고야로 번졌는데 교토의 경우 4일간에 걸쳐 대소동으로 발전, 급기야 군대까지 출동하여 겨우 가라 앉았습니다.
7월 23일부터 시작된 도야마현 쌀 폭동은 9월 12일 삼지(三池)탄광의 폭동을 끝으로 진정되었습니다.
폭동 와중에서 십 수 명이 사살되었으며 군경의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데라우치 내각이 총사퇴하였고 1920년 말「일본사회주의동맹」 결성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일본국내에서는 그들 스스로 쌀 증산에 큰 기대를 걸 수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당시 한국은 관개시설이 낙후되어 논 대부분이 천수답(天水沓)이기는 하였지만, 일본 농업에 비해 한국 농업의 발전비용이 훨씬 저렴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산미증식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제의 의도는 일본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쌀농사를 강요함으로써 한국 농업을 쌀 중심의 단종경작형(單種耕作型)구조를 한층 더 심화 시켰습니다.
그런가하면 생산율을 웃도는 기아수출을 강요하여 한국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을 감소시켰고, 결국 대다수 한국인의 일상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인천항에 쌓아 놓은 쌀가마니입니다.

강점기 동안 마산항의 쌀 수출량이 그렇게 많았던 이유도 이런 식민지 농업수탈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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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4) - 강점제1시기

58회부터 시작된 1910년대 마산도시변화에 대한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일제 강점 제1시기인 1910년대는 식민지 한국에 대한 정책의 효율성과 보다 경제적인 잉여 창출을 위해 각종 정책을 시행한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비롯하여 교통․통신․운수 등의 사회기반시설 및 식민정책에 적절한 재정․금융체계를 정비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한국 민족자본의 성장을 막기 위해 공업을 억제하고 식량 및 원료공급을 위하여 원시산업을 육성하는 등 식민지 지배를 하기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마산의 도시변화는 신마산과 원마산이 많이 달랐습니다.

개항기 동안 급속히 형성되었던 신마산은 이 시기 동안 별 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신마산은 도시의 정체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로도 개설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건물도 많이 짓지 않았습니다.

마산에 거주했던 일본인도 1911년에 6천여 명이었는데 점차 감소하여 1910년대 중반 이후에는 내내 3,800-4600여명 사이에 머물렀습니다.
이 시기 전국 각 개항지의 인구증가율은 다른 도시에 비해 월등히 더 높았지만 마산은 그렇지 않았던 겁니다.
개항 이후 지속되었던 투자와 고도의 인구증가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마산은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남성동 해안에 대규모 매립이 있었고, 150여 년간 존속해 오던 마산창이 헐렸습니다.
뿐만아니라 마산창 부지를 중심으로 원마산의 중앙부 일대에 근대식 도로도 개설되었으며 구마산 철도역(현 육호광장 자리)의 역세권으로 도시영역이 넓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원마산의 대대적인 도시구조 변화는 이미 통감부 시대부터 시작된 식민지배 기반구축사업의 결과였습니다.

한일병합 후 10년 간,,,,
마산이 본격적인 식민도시로 진입한 시기였으며, 이 때부터 전통도시 마산포는 일제의 마수에 마구 짓밟히기 시작하였습니다.

1920년 마산지도입니다.
1910년 지도와 함께 올리니 비교해보기 바랍니니다. <<<

<1910년 마산지도>


<1920년 마산지도>

  

---------------------------------------------------------------------------

이 것으로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의 '2차 게재' 중 '강점 제1시기(1910년부터 1920년까지)'가 끝났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음처럼 크게 3단계로 나누어 포스팅할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습니다.

1차 ; 고대부터 개항(1899년)까지
2차 ; 개항이후부터 해방(1945년)까지
3차 ;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미 완료한 '1차 게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고려시대 이전 ------ 9회
조선시대----------- 4회
개항기------------- 12회
합계--------------- 25회 완료

'2차 게재'는 다음처럼 구성하기로 했으며 그 두 번째 순서를 마쳤습니다.

개항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총 32회 (26회부터 57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1시기(1911년-1920년)----------총 27회 (58회부터 84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2시기(1921년부터 1930년까지)
일제강점 제3시기(1931년부터 1945년까지)

'3차 게재' 계획입니다.

산업화 이전시기(1945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도약 및 전성기(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체 및 쇠락기(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 본 연재는 마산도시를 연구하면서 확보한 자료를 공유하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혹시 좋은 자료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2011/05/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0) - 강점 제1시기
2011/06/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2011/06/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2) - 강점 제1시기
2011/06/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3) - 강점제1시기
2011/06/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4) - 강점제1시기
2011/07/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5) - 강점제1시기
2011/07/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6) - 강점제1시기
2011/07/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7) - 강점제1시기
2011/07/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8) - 강점제1시기
2011/08/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9) - 강점 제1시기
2011/08/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0) - 강점제1시기
2011/08/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1) - 강점제1시기
2011/08/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2) - 강점제1시기
2011/08/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3) - 강점제1시기
2011/09/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4) - 강점제1시기
2011/09/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5) - 강점제1시기
2011/09/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6) - 강점제1시기
2011/09/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7) - 강점제1시기
2011/10/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8) - 강점제1시기
2011/10/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9) - 강점제1시기
2011/10/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0) - 강점제1시기
2011/10/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1) - 강점제1시기
2011/10/3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2) - 강점제1시기
2011/11/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3) - 강점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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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3) - 강점제1시기

<1910년 말 신마산 벚나무>

일본인들이 신마산에 벚나무를 심은 것이 한일병합 직전이니 여기 나오는 벚나무는 심은지 약 10년 쯤 지난 사진입니다.

이것들이 아직 남아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창원천변 벚나무입니다.



지금은 월영동 아파트 단지로 변한 육군중포병대대 벚나무입니다.




신마산의 창원천변 야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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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2) - 강점제1시기


<1910대 후반 신마산 거리풍경>

오늘은 1910년대 후반 신마산 거리풍경이 담긴 엽서를 모아보았습니다.

쿄마치라고 불렀던 경정(
京町)입니다. 두월동 통술거리죠.
신마산에서 가장 번성했던 거리입니다. 이 중에는 아직까지 살아남은 건물도 있습니다.

통술거리 입구 입니다. 1920년(대정9년) 소인이 찍혀있어서 1910년대 말로 추정하였습니다.


경남대 쪽에서 본 쿄마치입니다. 오른쪽 기와지붕 건물은 지금도 남아있는데, 최근 저 기와 위에 지붕을 다시 덮었습니다.


옛날 마산역 앞 광장. 중앙 안쪽 건물이 최초의 마산역 건물입니다. 지금 마산중부경찰서 앞 벽산 브루밍 아파트 쪽입니다. 오른쪽은 우체국.


마산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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