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목) 오후 마산21포럼 주관으로 '마산항 수변공간 개발방안모색을 위한 전문가 초청 세미나'가 열렸다.
영국에서 도시계획가로 활동하고 있는
 양도식 박사가 발제를 하고 경남대 이찬원 교수와 창원대 조형규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양도식 박사는 발제에서, 수변을 기준으로 가장 선호해야할 건축물과 그 반대인 건축물을 정리하면서 선호도 1등급에 박물관 등 문화예술시설을 꼽았고 가장 선호도가 낮은 건물, 즉 수변에서 가장 멀리 배치되어야할 건물로 주거시설을 꼽았다.

세미나가 끝난 후, 마산바닷가 머리맡에 지어 놓은 현대아이파크와 양덕동 북향 땅에 지어 놓은 3·15아트센터에 얽힌 우울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두 건물은 양도식 박사의 주장과 정반대로 지어졌다.
이미 '현대아이파크'에 대한 글은 올렸기 때문에 3.15아트센터에 대한 글만 올린다.

2009/09/18 - [오늘의 도시이야기] - ‘현대아이파크’의 추억.

                                     <3·15아트센터 야경>


<도시의 섬, 3·15아트센터>

양덕동에 3․15아트센터가 들어선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주차공간이 부족한 게 흠이지만 시설의 수준은 꽤 높은 편이다. 오랫동안 대형문화공간이 없었던 탓에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건축물이다.
격 높은 예술 공연은 물론, 집회 및 토론회 등 그 소용가치가 한두 가지 아니다.
하지만 갈 때마다 아쉬운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는 없어야 한다는 안타까움으로 이 글을 쓴다.
지금 와서 이런 말이 무슨 필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차분히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자성하고 싶어 쓰는 글이다.

건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입지조건이다.
공공성과 기념성이 강한 건물일수록 그 비중은 높아진다. 그것이 건축물의 품위와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3․15아트센터는 부지 위치가 부적절하다고 착공 전부터 말이 많았다.

지역의 건축도시전문가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고 언론을 통해 주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비를 털어 신문에 광고까지 내면서 말렸다. 이 터는 3․15아트센터를 짓기에 적절한 땅이 아니라고.
그 이유로 북향배치, 교통, 주변여건, 대지규모, 지형적 상징성 등을 들었다.
특히 공연 후 여운을 즐기거나 동행자들과 뒷이야기 한 마디 나눌 수 없는, 마치 '도시 속의 섬'과 같이 될거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대안 제시도 했다.
마산의 특성을 살려 아트센터의 적지는 마산만 수변 어딘가가 좋을 것이라 했다.
신포동 매립지 현대아이파크 주변이 좋겠다고 구체적인 제시도 했다. 그렇게 되면 마산만의 정취와 여유로움이 아트센터의 품격을 높여줄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만 어시장 상권과 3․15아트센터의 유기적 연결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남강 없는 촉석루를 생각할 수 없고 포트잭슨만(灣)이 있어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더욱 빛난다고도 했다.
훗날 돌이켜 보면 지금 몇 년 빠르거나 늦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면서 쫓기듯 허겁지겁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하지만 마산시는 이런 주장에 대해 비용 문제, 법적인 문제, 시일문제 등을 이유로 현재의 위치에 공사를 강행, 지금의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어달라고 하다가 지어준다니 발목을 잡는다면서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3·15아트센터가 선지도 그새 몇 년이 지났다.
이제 와서 혀를 차는 시민들이 많다.
공연관람 후 차 한잔하려해도, 간단히 맥주 한잔 나누려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건물이용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미 예견한대로 그것은 섬이었다.
걸어 나올 수 없는 외로운 섬이었다.

현 위치가 부적절하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비난한 시민들 중에서도 그 때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한번 결정해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건축과 도시의 특징 아닌가.
설령 좋은 곳에 다시 짓는다 해도 지금의 아트센터 건립에 투입된 그 천문학적인 비용은 어쩔 것인가.

제발 신중하기 바란다.
제발 멀리보기 바란다.
제발 진심어린 충고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3·15아트센터 전경>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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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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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5아트센터가 섬이라면... 지금이라도 육지와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을까요?

    도시 전문가로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제안도 좀 해주시지요?
    • 허정도
      2010/03/10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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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요.
      답이 없는 계획은 없으니, 깊이 고민하면 문제를 해소하거나 부분적이이라도 도움될만한 길을 찾을 수 있겠죠.
      1-2년 전에 아트센터에서 운동장을 지나는 그린웨이가 제안한 적이 있는데, 복합적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싶네요.
      하지만 아무리해도 바닷가의 낭만은 얻을 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2. 2010/03/09 16:5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말이 되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마산YMCA 부근의 주택과 점포들을 뒷풀이 공간으로 활용하면 어떨까요?
    적당히 골목도 있고 산비탈 아래라서 나름 운치도 있을듯 합니다.

    상업용지가 아니라면 시에서 용도를 변경해서라도 막걸리집, 호프집, 음식점, 노래방 등등...
    헐어내지 않고 리모델링만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길건너 메트로시티 앞의 점포들도 타운을 형성하면 좋을듯 합니다.
    • 허정도
      2010/03/0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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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 수도 있겠네요. ㅎㅎ


‘보리밭을 질주하는 멧돼지’
메이지(明治)시대, 일본 도시에 처음으로 나타난 자동차를 두고 일컬었던 말이다. 상황이 조금 바뀌었지만 도시의 평화는 보리밭을 짓밟는 멧돼지처럼 자동차가 짓밟고 있다.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자동차도 이미 2,000만 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수준도 세계 상위권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차가 많아질 것을 예측치 못한 채 만들어진 우리의 도시는 자동차에 압도당해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전 세계가 함께 앓는 몸살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오래 전부터 선진도시들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개인자동차 통행량을 줄이고 보행과 자전거 혹은 대중교통의 이용률을 높여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답은 없다.
제아무리 도로를 넓히고, 터널을 뚫고, 지하도를 파고, 주차장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걸 몸으로 알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시도 끝에 얻은 유일한 답이었다.
목표를 위한 정책과 방법은 각 도시의 물리적 사회적 자연적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답은 유일했다.

반대방향으로 가려하는 도시가 있다. 바로 마산이다.
마산시는 2007년 발간한 『2020년 마산도시기본계획』에서 2005년과 2020년의 소단별 통행량 예측치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작년11월 12일 마산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이주영 국회의원 정책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김민수 교수가 제시한 자료다.

마산시는 2020년의 통행량 상황을 2005년과 비교하면서,
보행은 13.1%⇒10.1%로 줄고, 대중교통은 32.5%⇒26.7%로 줄고, 택시는 24.2%⇒22.8%로 줄되, 유독 승용차만 21.2%⇒27.9%로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개인자동차를 늘이고 보행과 대중교통을 줄이겠다는 정책을 나는 어떤 도시에서도 본 적이 없다.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 관심 아닌가? 현 정부에서도 ‘친환경 녹색성장’이 주요정책방향 아닌가?

걷거나 버스타지 말고 자가용 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 어이없는 도시정책은 도대체 누구의 상상력이며 비전인가?
비판하는 발제자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싶었다.
걷는 사람과 버스이용자가 줄어들 것이라 예측하고 있으니 오늘 마산의 도시교통정책이 이렇게 거꾸로 가고 있구나 싶었다.

도시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는 땅을 포함한 시설, 시민, 그리고 시민의 ‘행동’이다.
도시는 사람들의 만남과 교류, 그리고 문화, 행사, 유통 등 생활을 담는 행동공간이자 삶의 터전이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사람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위치 이동만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걷는다는 그 자체가 우리의 생활이며 시민의 기본권이다. 그동안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미명 앞에서 철저히 부정되기도 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아름다움으로 변했다.
하지만 사람이 걸어야할 길을 자동차가 턱하니 막고 있어서 차에 밀려난 사람들은 또 다른 차를 피해 이리 저리 꾸불거리며 걸어 다니고 있다.

인간이 자동차를 만든 이유는 그것을 통해 보다 편하고 질 높은 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처럼 자동차 때문에 인간이 이리 저리 내몰리게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언젠가 보행권을 주장하는 단체에서 마산의 도심 보행권 실태를 조사했다. 두 번에 걸친 실태조사의 결과는 이렇다.

남성동 파출소 앞을 지나는 남성로의 경우,
보행자가 이용하는 보도의 폭이 겨우 1미터 전후인데 그나마 이들 대부분도 불법 주․정차로 인해 보행로의 기능은 없어져버렸다.
남성로를 걷는 사람들은 보도를 자동차에 뺏긴 채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로 들어가 이리 저리 앞뒤를 살피며 다니는 실정이다.

불종거리의 경우,
보차 구분이 있기는 하나 상품진열과 입간판, 보도의 불연속성 등이 보행환경을 크게 해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의 질이 우리 삶의 질이라면 보행권은 시민생활의 중요한 바로미터이다.
따라서 쾌적한 보행이 시민의 권리로서 보호받도록 도로 사용의 우선권을 자동차로부터 보행자가 돌려 받아야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도시행정의 계획과 지원이 적극 실현되어야한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임치고, 사람은 걷는다, 그래야 행복하다.
보행권은 인간권이다.
‘도로의 인간화’ 없이 ‘시민 존중의 도시’는 공염불이다.<<<

                          <쿠리티바의 보행자 전용 거리>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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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림
    2010/03/0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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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쉬는 날 버스를 놓쳐 걷게 되었는데 역시나 아찔한 경험을 했답니다.
    아슬아슬하게 제 옆을 스쳐가는 버스에 하마터면 큰일이 날뻔 했지요
    버스를 떠나는데 전 멍하니 놀래서 그자리에 한참을 섰었지요

    그런 곳이 너무 많아서 걷기가 힘들어요
    • 허정도
      2010/03/06 11:03
      댓글 주소 수정/삭제
      걷기 좋은 길을 갖고 싶은 마음,
      큰 욕심 아니겠지요?
  2. 2010/03/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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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자전거를 취미로 둔 입장에서 선진국을 보면 정말 부러워요
    넓은 인도와 자전거도로,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와 도보로 이동이가능하고
    매연없는 쾌적한 도시...
    언제쯤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살 수 있을까요
    • 허정도
      2010/03/0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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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 말입니다.
      도시정책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민들의 의식이라고 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도시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힘을 모으면 보다 나은 미래가 오겠죠.
      문제는 '우리의 생각'이라고 봅니다.



'하늘에 안창남, 땅에는 엄복동'

암울했던 일제기에 자전거 한 대로 민족의 울분을 삭히고 자존심까지 살려주었던 전설적인 자전거 레이서 엄복동(1892∼1951).
1913년 3월, 한·일 선수들이 함께 참가한 ‘전 조선자전차경기대회’를 우승하면서 민족의 스타로 떠오른 엄복동은 그후 계속되었던 한·일 사이클대회에서 일본을 눌러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래주었다.
10년 후인 1923년에는 마산에서도 엄복동의 자전거가 달렸다.
4월 29일∼30일 이틀에 걸쳐 마산체육회가 주최한 '전 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였다.

그 때 엄복동이 달렸던 코스가 지금 마산의 어디였는지 알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87년 전 마산에서 전국규모의 사이클 대회가 열렸다는 사실이 주는 도시적 의미는 크다.

지난 일요일 오후,
만날재와
대산 사이의 ‘바람재’에서 열린 ‘마산프로사이클동호회’ 시산제에 참석하였다.
경남도민일보 사장으로 있을 때 ‘자전거대행진’ 행사를 하며 알게 된 클럽이다.
자전거 타는 분들이 웬 시산제냐 했더니, MTB(Mountain Terrain Bike, 산악자전거)를 이용해 산과 들을 누비기 때문에 음력 정월 좋은 날을 잡아 시산제를 지낸다고 했다.
절을 하고 제문을 읽고 잔을 올리는 등의 제사 행위는 일반 시산제와 다를 바 없었지만 제단에 내건 현수막 옆에 자전거를 세워 놓은 점이 달랐다.

                     <시산제를 지내고 있는 마산프로사이클 회원들>
                                    <마산프로사이클 회원들>
                   <자전거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태유 회장>

제를 지낸 뒤 음식 나눌 때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클럽의 이태유 회장은 자전거 때문에 얻는 즐거움과 건강을 자랑하면서 마산도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도시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MTB는 누구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생활자전거가 활성화되어야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생활자전거가 활성화되면 MTB동호인들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보였다.

여러 회원들이 입을 모아 주문한 말은 만날고개―밤밭고개―청량산으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였다.
“그렇게만 되면 산과 바다가 연결되는 환상적인 자전거도로가 될 텐데, 밤밭고개 도로 때문에 끊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면서 오버브리지(overbridge)로 청량산까지 자전거길이 연결되면 좋겠다고 했다.

- 도시를 살리는 자전거 -

교통수단을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보다
 개인승용차에 의존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있다. 도시정책이 이를 부추기기도 한다.
반시대적이고 반환경적이고 반공공적인 추세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폐기시킨 도시정책이다.
개인이 타는 승용차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은 한 사람이 사용하는 도로의 면적과 에너지를 비롯한 각종 자원의 사용량이 많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국민 일인당 도로연장은 2미터 조금 넘는다. 일본의 1/4, 미국의1/10 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연간 일인당 자동차 주행거리는 23,000킬로미터로 일본의 2배가 넘고 땅이 넓은 미국보다도 길다.
우리 국민들이 이동수단으로 자동차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통계다.
출퇴근은 물론 주말, 휴가철, 명절 귀성 때, 어디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우리는 자동차를 탄다. 도로정체로 한 두시간 길 위에서 보내는 것을 예사롭게 생각할 정도다.
가까운 거리라도 걷기를 싫어하는 'door to door' 현상은 도시의 교통과 주차문제를 악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 대안으로도 자전거가 유효하다.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는 도시 중 대표적인 곳이 네덜란드의 그로닝겐이다.
이 도시의 주민통행 분담률은 자전거가 53%이다. 그럼에도 그로닝겐에서는 자전거도로 지름길 건설과 기존 자전거 노선을 개선 등 완벽한 자전거도로망 구축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독일의 델프트(41%)와 뮌스터(41%), 코펜하겐(34%), 프라이부르그(27%)도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기로 유명한 도시다.
이 선진도시들은 지금도 자전거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코펜하겐에서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배타적 이용을 위해 자동차 차선과 가로변의 주차공간을 몰수하기도 했다.
'좋은 점만 있을 뿐, 나쁜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자전거에 대한 생각이다.


                     <그로닝겐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자전거를 끌수 있도록 배려한 그로닝겐>

자전거 타기에 마산의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고 불평하는 동호인들이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당한 어처구니 없는 경험들도 하나둘 내어 놓았다.
이미 자리잡아가고 있는 창원의 자전거정책을 축으로 마산과 진해에도 자전거 길을 연구 모색한다면 좋은 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나누었다.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회원들 모두 장딴지가 실했고 표정도 밝았다.
건강한 모습이 하도 좋아 '나도 곧 자전거를 타겠다'는,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약속까지 했다.

엄복동이 힘차게 페달을 밟았을 마산 이 도시에 다시 자전거 전통을 세울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마산만이 훤히 내다보이는 바람재에서 산과 바다를 아우르는 통합도시의 자전거 길을 상상했다.<<<

 <추가 ; 바람재 한 구석에 쓰레기가 널려있었다. 아직도 이런가? 싶었다>

                                   <바람재의 쓰레기 더미>
                           <아무렇게 던져 놓은 쓰레기들>

                             <등산객들이 식사하는 자린데....>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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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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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있는 행사에 다녀왔군요.
    자전거는 타지않고 가셨네요.
    그냥 걸어서...
    걷는것도 참 좋습니다.
    자전거 타는 것보다 장단지는 굵어지지 않지만
    그날 저도 쌀재에 있었습니다.
    몇분이 행사마치고 저의 농장에서 차를 마시며
    쉬어갔습니다.
    그기 쓰레기 저도 보았는데 참, 부끄럽대요.
    산이 좋아가는데 그 좋은 산에다
    아직까지 이런 모습을 보다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바람재는 동호인들이 많이 왕래하고 또 행사끝물에
    음식물을 섭취하는 장소라 마음을 다잡아 먹지못하면
    쉽게 유혹에 빠집니다.
    주로 단체손님쓰레기거던요.
    무디기를 만들어 놓으면 그냥 개별산행인도
    그기다 버립니다.
    이 우째야겠습니까?
    • 허정도
      2010/02/23 11:04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날 가까운 곳에 계셨군요.
      얼굴이라도 한번 볼걸 그랬습니다.
      예, 걸어서 갔습니다.
      만날재에서 바람재까지 45분 걸리더군요.
      참 좋았습니다.
      쓰레기 버리는 분들,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도대체 누굴보고 치워라는 건지,,,
  2. 최정건
    2010/02/24 11:4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아쉽습니다, 저는 전에 대곡산에서 무학산 정상으로 가는

    갈에 크로스 컨트리 오토바이을 타고 올라 오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딴지를 걸는 것이 아니지만 제가 이 단체에 대하여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이 단체 회원중에 한 분이 청량산 임도 2층 정자에서 계단내려오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2층 정자의 목재계단이 다 까졌습니다.

걷고 싶은 거리, 걷기 싫은 거리⑤  

볼라드는 인도 차도사이에 설치하는 차량진입 억제용 말뚝으로 차량으로 부터 상대적으로 약자인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물이다.

하지만 규정에 맞지 않게 설치되어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보행자, 특히 시각장애인에게 불편을 주고, 크고작은 안전사고를 유발하며, 도시미관도 저해시키고 있다.



 

2006년 1월 28일 시행된 '교통약자의 이용편의 증진법'을 보면 볼라드는 보행자가 부딪쳤을 때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질로 만들도록 규정되어 있다. 길을 다녀보면 알겠지만 이규정에 맞는 볼라드를 보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 탄성을 가진 재료의 볼라드가 간혹 설치되기도 하지만 아직 대부분이 철재나 석재로 만들어져 있다. 보행자에 대한 배려보다 유지관리의 편리성이 먼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볼라드의 높이는 80~100센티미터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보행자의 눈에 잘 띄고 혹시 부딪쳤을 때 무릎이나 정강이가 모서리에 부딪치지 않도록 해 부상을 최소화 하기위한 조치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잘 지켜지지 않아 주의를 소홀히 하면 다치기 십상이다.
또한 볼라드의 간격은 1.5미터 내외로 하여 보행자나 휠체어의 통행이 원활해야 하나 지나치게 좁은 간격으로 불편을 주는 곳이 많다.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해 밝은색의 반사도료등을 사용하여 쉽게 식별할수 있어야하고 전면에는 점자블록을 설치해 충돌을 예방해야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 장애인에게는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규정대로 설치되지 않은 볼라드에 큰 부상을 당한 시민이 소송을 제기해 지자체가 배상을 한 경우도 있다.
지금도 알게모르게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현재 우리도시의 부족한 주차공간 문제나 운전자가 보행자를 배려하는 의식수준등을 고려할 때 볼라드는 필요한 시설물이다.

차량으로 부터 보행자를 보호하는 원래의 기능을 다하면서 보행에 방해를 최소화 하기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창원 용호상업지역. 볼라드를 대신해 나무를 심어 차량진입을 막고 미관도 향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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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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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부인권
    2010/02/2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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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라드의 문제는 지적하신 것과 같이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은 더욱 문제가 심각하지요.

    행정 편의주의가 낳은 불편이기도 합니다.
    차라리 자동차의 주차문제 때문이라면 '파파라치'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 2010/02/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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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습니다. 관리의 편의 보다 보행자의 편의가 존중받는 정책이 절실합니다.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일곱 번째 길에 나섰다.
1월 9일 토요일 오후 1시 반, 코아 양과점 앞, 30여명이었다.
바람은 없었지만 짙게 흐렸고 기온이 낮았다.
코스는 오동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3.15의거 발원지’에서 시작하여→구 마산형무소 터→오동동 일대→오동동 아케이드→용마고등학교→지하련 거주지→산호동 효자각→용마산→구강포구까지였다.

오동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3.15의거 발원지에서는 특별손님으로 3.15의거기념사업회 백한기 회장님이 직접 나와 의거에 대해 설명해주어 의미가 더했다.
한때 화려했던 오동동의 밤 문화에 대한 설명은 이승기 선생님께서 맡았는데 두 분은 마산상고 동기생이시다.

가는 곳곳마다 새로운 걸 느꼈고 배웠지만, 여기서는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구(舊) 마산형무소 터’에 관한 글을 올린다.

                                    <일곱번째 탐방 코스>

     <3.15의거 발원지 표시동판과 의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백한기 회장님>


8년 전 2002년 벽두,
이 터를 공원으로 만들자는 시민운동을 벌였다.
마산YMCA를 주축으로 ‘한국은행터 공원만들기 마산시민행동’을 조직하고 상임대표를 맡아 운동의 중심에 섰다.
달포 만에 무려 10만 여명의 서명을 받았고, 그것을 마산시의회에 제출 청원하였다.
하지만 부결되었다.

우리들이 이 터를 공원으로 만들려했던 까닭은 ‘도시환경’이라는 측면과 ‘터의 역사성’ 때문이었다.

             <공원만들기 운동의 발대식과 거리서명 캠페인 장면, 2002년>

돌이켜 보자.
마산은 1899년 개항이후 일제 강점기의 무차별한 개발과 매립, 해방 후 귀환동포 정착, 6.25 피난민 정착, 60년대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에 의한 산업화 등 다른 도시가 경험하지 못한 격랑의 세월을 겪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언제 한 번도 도시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도시의 미래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을 하지 않았다. 천혜의 자연이 있었지만 활용하지도 않았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임기응변으로만 해결했다.

도시의 질이 급격히 낮아졌고, 시민들도 도시환경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구(舊) 마산형무소 터’를 공원으로 만들자고 나선 것이다.
공원으로 하기에 충분한 땅은 아니었지만, 도심에 나온 시민들에게 짧은 여유라도 즐기게 해주고 싶었던 하나의 작은 몸짓이었다.

이야기를 먼 곳으로 돌려보자.
건강한 사회는 시민 스스로 생활의 제반 문제를 대응한데서 시작되었다.

유명한 런던의 하이드파크는 원래 왕이 사냥을 즐기던 숲이었다. 하지만 도심공원이 없었던 런던시민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세계최고의 공원이 되었다.
협상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런던시민들이 울타리를 헐어버렸던 것이다.
이른바 오픈스페이스운동, 하이드파크는 이런 격동의 과정을 거쳐 탄생되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내셔널트러스트운동’도 바로 이 경험을 바탕으로 출발하였다.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 자연적 문화적 유산을 시민 스스로 보존하기 위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1895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영국 전 국토의 1.5%, 해안의 17% 가량을 소유하여 공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런던 하이드 파크>

이야기 하나가 더 있다.
사람살기 가장 좋다는 밴쿠버 이야기이다.

1886년 5월 12일 오후 7시 30분, 밴쿠버 최초의 시의회가 열렸다.
당시 밴쿠버 시민은 2,600명이었다.
이  첫 회의에서 의원들은 영국해군기지였던 땅 120만 평을 공원부지로 결정하였다. 민간에 매각되어 주택지나 산업단지로 개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공원이 밴쿠버가 세계에 자랑하고 있는 ‘스탠리파크’다.
124년 전, 인구 2,600명 도시에 120만 평의 공원을 만든 밴쿠버의 결정.
이 결정과 이 비전이 오늘날 밴쿠버를 세계최고의 도시로 만든 주춧돌이었다.

                                         <밴쿠버 스탠리 파크>

밴쿠버 시의회 최초의 결정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깊고도 넓다.
몇년 전, 인구 42만 도시의 마산시장은 1,500평 한국은행 터에 1/3은 건물을 짓고 나머지 천 평만 공원으로 하자는 계획을 발표한바있다.
40만 인구에 1,500평과 2천6백명 인구에 1,200,000평.
왜 마산은 날로 쇠락해가고 밴쿠버는 왜 오늘날 세계최고의 도시가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리자.
마산형무소 터의 지난 세월은 질곡의 역사 그 자체였다.
일제통감정치시절이었던 1909년에 부산감옥소 마산분감으로 사용된 후 무려 60여 년 간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자리다.
일제 때는 독립 운동가들이, 해방 후에는 좌우이념갈등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갇혔던 곳이다.
3.1운동 때에는 유명한 삼진의거를 비롯하여 마산, 함안, 창원, 웅동 등 인근지역에서 만세를 불렀던 모든 선조들이 이곳에 갇혔다.
아동문학가 이원수, 여성 정치인 박순천도 갇혔던 곳이다.


           <일제기 마산 형무소>            <'마산형무소 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


정부가 수립되었던 1948년,
마산의 시인 월초 정진업은 이 형무소에 갇힌 친구를 생각하며 갇히지 않았던 시인의 아픔을 토했다. 「골목길」이라는 시(詩)다.

가치운 몸은 달라도
창살 틈으로 보내는 눈초리는
오직 한마음이라                     

네 손발의 사슬이 풀렸기로
오히려 억압은
첩으로 쌓이는데
아직도 무릎 꿇고
무료히 앉아 있을
벗의 닫혀진 억울한 세월을
너는 어이 잠시라도
잊어보는 것이냐?

고문에 항시 못 이겨        
이를 갈던
공포와 저주는
그래도 잊혀지지 않아                         


총을 멘 보초들 서있는
돌문 앞을 지날 때마다
죄 없이 조라드는
겁 많은 마음이

나무 가지 사이로
철창을 노리고
이룩할 민주의 나라                        
이리 더딤을 한탄하면서                              
밖에서 내 다만 참답게
일 하겠노라
인욕(忍辱)의 벗에게
머리 숙이며 가는
밤마다 정이 드는
나의 골목길이 있다.

식민지시대의 감옥은 단지 신체를 속박시킨다는 의미 외에 폭력적인 통치권력의 상징이다. 공원은 근대 시민들이 공유하는 도시의 열린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 터가 공원으로 변한다는 것은 「폭력적인 통치권력의 상징」이 「근대시민의 자유공간」으로 바뀐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여기에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제시했던 자료 / 왼쪽은 당시 현장상황, 오른쪽은 공원조감도>

이제 세 도시가 통합되면 도시의 큰 그림은 다시 그려질 것이다.
따라서 이 터를 공원으로 하는 문제를 두고 ‘옳다 혹은 그르다’ 식의 논의는 뒤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터를 보니 마산의 도심공원 문제가 다시 떠올라 몇 자 적는다.

공원문제가 이 도시의 쟁점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터 외에도 신포동 매립지를 아파트만 지을 게 아니라 일부를 공원으로 하자는 운동도 있었다.
모두 실패하였다. 마산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지정된 마산시의 공원의 면적은 자그마치 240여만 평이다. 이 면적은 마산 인구 일인당 약 6평 가까이 되는 규모다.
도쿄와 오사카의 공원 면적이 1인당 고작 1평 내외, 세계적인 도시 파리가 3평 반, 몬트리올이 4평, 뉴욕이 5평반인 것을 생각해보면 엄청 큰 규모다.
1인당 9평이나 되는 런던보다는 작지만 어쨌든 통계상으로 마산은 공원의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건 말 그대로 통계일 뿐, 현실은 전혀 아니다.
이미 멀쩡하게 존재하고 있던 산과 계곡을 공원이라 이름 붙여 통계로 잡은 것이다.

이 도시에는 시민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이 제대로 없다.
해변공원은 아예 없고 만날재 공원은 주로 행사용으로 쓰인다. 양덕동 삼각공원은 접근성이 나쁘다.
서항매립이다, 구항매립이다 하면서 20여 만 평의 해면을 매립하고서도 그럴듯한 도심공원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민들과 바다를 단절시켰고 수변공간계획은커녕 해안 전부를 자동차가 씽씽 다니는 길과 수입 원목들이 차지해 버렸다.

지금 계획되고 있는 ‘마산비전 2020’에 중앙공원, 산호공원, 추산공원 개발을 비롯하여 돝섬유원지개발, 구산해양관광단지개발, 팔용유원지개발 등 공원개발 계획이 다양하게 세워져 있지만 어디 한군데 도심공원은 없다.
엄청난 시설비를 요하거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산을 공원화하는 것뿐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토록 철저하게 도심공원이 없는 도시는 별로 보지 못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생활 속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원계획이 시급하다.
화려한 언어로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도심 속에서 생활 속에서 쉬기도 하고 걷기도 할 수 있는 공원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시민 1인당 공원 6평이라는 허구를 현실화시켜야 한다.

해안도시라면,
적어도 바닷가에서 가족이나 친구와 30분 정도는 편안히 걸을 수 있는 공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키 큰 나무 아래 잔디 깔린 바닷가에, 사람들이 걷고 자전거가 달리고 벤치에서 연인의 속삭임이 들려야 해안도시 아닌가?

도심공원이 전무한 도시,
바다가 있지만 바다와 차단된 도시,
역사의 가치에 관심 없는 도시,
그리하여 성장 동력조차 상실한 채 인근도시와의 통합 외에 다른 길을 찾지 못하게 된 도시......

이 도시의 '희망찾기'는 어떻게? <<<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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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림
    2010/01/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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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님 저도 찬성입니다.
    그 곳이 공원이 되면 아마도 오동동 창동 거리도 조금 북적이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창동에서의 추억이 많은 세대로서 늘 아쉬운 부분이지요
    어차피 구 상권일바에야 추억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이 오는 곳으로 만드는 것도
    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황량한 그 곳의 모습은 지날때만다 늘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통합 새도시에선 ...잘~ 되길 바랍니다.

    가포탐방때 뵐께요 ^^
    • 허정도
      2010/01/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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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습니다.
      도심공원이 없는 게 마산의 걱정인데 딱히 이곳이 아니더라도 도심에 좋은 공원하나 들어서면 참 좋겠습니다.
  2. 조원문
    2010/01/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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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정도 회장님 정말좋은 마산의 역사를 배우고갑니다
    저도 마산 토박이인데,,,,죄송 합니다,,너무 모르고 있었읍니다,

    지속적인 마산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많은 자료보도록 하겠읍니다.
    정말 수고 많이 했읍니다...
    • 허정도
      2010/01/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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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소.
      마산과 관련해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세요.


옛 북마산역 자리의 구름다리가 새단장을 하고 있다.


계단과 육교상판에 합성목재를 덧대고, 기존 철재난간도 모두 잘라내어 합성목재로 난간을 설치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원래보다 한결 깔끔해졌다.

구름다리를 단장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나는 새단장한 모습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소중히 숨겨두고 간혹 꺼내보는 무언가를 잃어버린듯한 느낌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나에게 이 구름다리는 어쩌다 한번씩 건널때마다 아련한 옛추억을 떠올려주는 고마운 장치 중의 하나였다.

그 추억은 철길로 인해 끊어진 길을 이어주는 '다리'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수없이 지나간 사람들의 발길에 닳고 닳아 자갈이 도드라진 계단판과, 시대를 반영해 다양한 구호가 써 있던 녹슨 아치와, 기성품에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사람의 손길이 담긴 허술한듯 정직한 철재난간 따위에서 온다. 

내 기억속에 남아있을 구름다리의 모습


시대에 따라 다양한 구호가 쓰여있던 아치


여기까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일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것이 못 쓸 정도로 낡은 것이 아니라면 좀 더 필요한 곳에 예산을 쓰는게 효율적이다. 새것도 언젠간 낡는다.
목분과 고분자화합물을 섞어 만든 재료는 얼핏보면 목재와 비슷해 친환경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친환경적인 인공물이 세상에 있을까?

오히려 덜 반환경적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쓸 수 있으면 그대로 쓰는게 가장 친환경적일 것이다.

지난 세월만큼 정겨운 저 계단판을 다시 밟을 수 있을까?


새난간을 세우기 위해 잘려나간 철재난간


또한 이 구름다리는 신세계 백화점 앞이나 석전사거리에 있는 육교와는 분명히 다르다.
삼역 통합으로 삼십여년전에 사라진 북마산역의 유일한 흔적일 뿐 아니라 제대로 된 건널목이 없었던 시절, 임항선으로 단절된 마산의 동과 서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통로로 수십년을 이어왔다.
그리고 상판을 떠받치는 구조물은 철도레일을 휘어만든 보기드문 형식으로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


어떠한 절차를 거쳐 공사가 진행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도 안타깝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류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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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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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부구조는 제대로 남아있는 것 같은데요, 일단 다행인것 같은나,
    암튼 껍데기만 씌워서 미봉책으로 하려는것 같네요,
    정말 반갑지 않은 일이 벌어졌네요
  2. 2010/01/1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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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기가 막히군요.

    지난번 이주영국회의원 정책 토론회 때도, 마산시 담당 국장님께 제발 육교는 고치지 말고 그냥 두자고 말씀드렸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참 안타깝습니다.

    기차 레일로 만든 저런 육교는 어쩌면 우리나라에 유일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하는 것이지요.
  3. 2010/01/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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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정취를 저렇듯 싹뚝 잘라내버리고 그저 눈(目)으로 새것처럼 단장하면 마음으로는 영영 볼 수 없기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4. 유림
    2010/01/1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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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그런 작업을 했지요?
    차를 타고 지나다니니 몰랐기도 했겠지만.
    지난번 탐방때 찍어둔 사진이 어쩜 소중한 자료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안타깝습니다.
    아들하고 한번 둘러볼 생각이였는데..
  5. 2010/01/1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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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수많은 아이디어가 있을텐데 왜 이렇게 조급하게 일을 할까요?
  6. 최정건
    2010/01/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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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마산시를 보니 저 난간이 고물상에 가지 않아도 다행입니다.
    저 난간이라도 박물관에 보관을 해야하는데
  7. 2010/02/19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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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수없이다녔던 다린데추억이사라져 버릴까 마음이무겁습니다.

걷고 싶은 거리, 걷기 싫은 거리 ④ 발이 편해야 걷기가 즐겁다.

무심코 길을 걷다 무엇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질뻔 한 경험. 누구나 한 두번씩은 겪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의 대부분은 예상치 못한 돌출된 턱이있거나 고르지 못한 바닥에 발이 삐끗하면서 발생한다. 

하지만 크게 넘어져서 다치지 않는 이상 본인의 부주의를 탓하며 그냥 지나칠 것이고,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혹시 넘어질까봐 발 밑을 신경써야 하고 이로 인해 걷기는 불편해진다.



현재 마산시내의 보도에 깔려있는 대부분의 블럭은 20년이 채 안됐다.
2천년도 더 된 로마의 아피아 가도(via appia)중 일부를 아직까지 불편없이 사용하고 있음을 볼 때, 반성과 진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천삼백여년 전에 건설된 아피아 가도


                                           로마시대 도로시공 가상도


아피아 가도는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가 BC 312년에 건설을 시작한 도로이며, 도로명은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처음에는 로마와 카푸아 사이였으나 BC 240년경 브룬디시움(브린디시)까지 연장되었다. 도로는 돌로 포장을 했는데 로마와 남이탈리아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의 간선도로이기도 하였으며, 오늘날도 일부가 사용되고 있다.



시공법을 살펴보면 위의 오른쪽 그림처럼  먼저
바닥을 다지고 모래 혹은 몰탈을 깐 후 굵은 돌을 다져 기초 역할을 하고 그 위에 다시 가는 자갈로 기초보강과 구배를 맞추고 마지막으로 포장재인 돌을 깔았다. 강도를 높이기 위해 콘크리트를 혼합해 사용했다.

구간에 따라 공법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최소 4~5차례의 과정을 거쳐 견고하고 정밀하게 시공한 것은 틀림없다.
이러한 시공과 철저한 유지관리로 2천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쓸 수 있는 것이다.



재료는 약간 다르지만 현재의 도로 포장공법도 로마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덮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이윤을 많이 보기 위해서 인지 표준공법대로 시공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무엇보다도 아무나 쉽게 뜯었다 덮었다를 반복하면서 점점 망가져간다.



                                         마산 월남동 성당 옆 보도

도로를 굴착 후, 다시 복개 할때는 개선하거나 최소한 원래상태로 복구해야 함에도 깨진 블럭으로 대충 덮어놓아도 용납이된다.  





보도의 레벨이 변경되는 맨홀은 올리거나 내려서 수평으로 맞추어야 함에도 그대로 시공해 턱을 만들어 놓은 곳도 부지기수다.






                                        마산의 한 대학교 정문 앞


이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한 대학교 정문의 모습이 우리 도시에서 보행자의 지위를 잘 설명해 준다.



                                              
                                         마산 포교당 정법사 부근 도로

기존포장의 색이 바래 덧칠하는 것도 문제지만 주차된 차가있다고 해서 그부분만 빼고 도색한것은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마산 자산동 무학초등학교 부근

위 사진에 나온 바닥재료는 모두 몇 가지일까?
시멘트블럭(보도블럭), 석재타일, 화강석, 콘크리트, 아스팔트 까지 모두 다섯가지이다. 한가지 재료로 통일한다면 한결 깔끔하고 넓어 보일것이다.




                                            마산시청 옆 도로

동네 약수터에 있어야 할 지압보도가 무슨일인지 시청 옆 큰 도로변에 설치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신을 벗고 이용할 사람이 있을리 만무한 전시행정의 표본이다.  




                                   마산 신월동 중앙고등학교 부근

위 사진은 '총체적 난국'이란 표현 외에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길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인내심이 존경스럽다.


발에 밟히는 재료가 고급이면 더 좋겠지만 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주변 시설물을 고려해 공법대로 시공하고, 유지관리를 엄격하게 한다면 이천년까지는  힘들더라도 적어도 한 세대는 함께 할 수 있을것이다.



점토블럭이나 시멘트블럭등 비교적 저가의 제품으로도 얼마든지 걷기 좋은 거리를 만들 수 있다.


이천년 전 로마의 길이 이십년 된 마산의 길에게 묻는다.
"너희는 왜 그렇게 옷을 자주 갈아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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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지난 5월 14일 문을 연 뒤 모두 87회 올렸습니다.

인간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도시담론을 거리낌 없이 나누고 싶었습니다만 처음해본 짓이라 많이 서툴렀습니다.


                                           팀 블로그 「허정도와 함께하는 도시이야기」

                                                     허정도, 신삼호, 류창현, urban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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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3 - [오늘의 도시이야기] - 걷고 싶은 거리, 걷기 싫은 거리①
2009/11/18 - [오늘의 도시이야기] - 걷고 싶은 거리, 걷기 싫은 거리② 내 집 앞을 지켜라!
2009/12/04 - [오늘의 도시이야기] - 걷고 싶은 거리, 걷기 싫은 거리③ 광고물로 뒤덮힌 도시



 

저작자 표시
Posted by 류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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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부인권
    2009/12/3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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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년이나 가는 도로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중심이 되는 그런 도로만 있어도 좋겠습니다.
    • 2009/12/30 11:5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걷기 좋은 길을 만드는 것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일입니다.
  2. 삼식
    2009/12/3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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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해동안 수고많았습니다.
    내년에도 건필하시길 ---.
    • 2009/12/30 13: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삼식님도 건승하시길 빕니다.
  3. 2009/12/30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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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일전에 걷기운동하러 가다가 보도블럭턱에 걸려 넘어졌지요
    물론 무릎과 팔에 찰과상을 입었구요
    어찌나 신경질이 나던지..
    • 2009/12/30 13:17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저런 큰일 날 뻔 하셨네요. 몸 챙기러 갔다가 오히려 상하고 오셨네요. 선배님 올 한해 잘마무리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2009/12/31 12:2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블로그로 선생님 만나 뵙게 돼 무척 기뻤습니다.
    내년에는 더 큰 활약 기대해도 되겠죠?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 허정도
      2009/12/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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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역시 그렇습니다.
      새해에 좋은 일 많이 있기 바라고,
      내년에는 오프라인에서도 한 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2009/11/13 - [도시 이야기] - 걷고 싶은 거리, 걷기 싫은 거리①
2009/11/18 - [도시 이야기] - 걷고 싶은 거리, 걷기 싫은 거리② 

어느 도시의 상가 - 과연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수많은 광고물과 마주하게 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엘리베이터안의 거울과 출입구 게시판의 협찬광고를,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동네 슈퍼나 철물점의 간판이나 도로를 가로지른 각종 현수막과 본인 의지와 상관 없이 만나게 된다. 

나는 가짜를 마셨나? - 전날 걸죽하게 걸친분들은 소주사진을 보고 구역질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루 일과 중 밖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각종 광고물을 만나거나 스쳐 지나가고, 퇴근해서 집 대문에 붙은 족발집 전단지를 떼기까지 그야말로 광고물의 홍수속에 살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개인의 영업을 위한 대부분의 광고물들이 허락도 없어 내눈을 혹사시키는 상황을 당연시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도시는 어디를 가도 무질서하고 자극적인 광고물로 거리는 어수선하다.
거리의 바닥을 아무리 잘 정비해도 시선은 눈높이에 있는 각종 광고물로 분산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길을 가로막은 간판들

자극적인 원색의 간판들




가뜩이나 좁은골목길에 간판이 절반을 가로막고 있다.



안보면 그만이지만 눈을 감고 걸을 수 는 없는 노릇이다. 
길가에서 마주치는 광고물이 아름답진 않더라도 최소한 눈에 거슬리진 않았으면 하는 바램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광고물은 홍보를 위한 개인의 사유물이기 이전에 공공에 노출되는 도시경관의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깨진 보도블럭을 교체하는 것 못지 않게 불량한 광고물을 선량하게 개선하는일은 중요하다.

가로경관을 해치는데는 대,소기업이 따로없다.



프랑스 파리 샹제리제 거리의 맥도날드 간판의 유명한 일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국내에서 보듯이 원래 맥도날드 자체로고는 빨강 바탕에 노랑 글씨이다.
하지만 샹제리제거리에 간판을 달기 위해서는 1986년 부터 파리에서 시행된 간판에 대한 법규을 준수해야 했다. 

파리 샹제리제 거리의 맥도날드 간판

우리나라의 맥도날드 간판



거리의 특성에 따라 규정을 달리했으며, 샹제리제거리의 간판은 흰색과 금색이외의 색은 사용할 수 없고, 이마저도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만 설치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것이다.
이 규제는 매우 엄격해서 맥도날드도 따를 수 밖에 없었으며 다른 점포도 자연스럽게 간판을 줄이고 디스플레이에 신경을 쓰면서 거리가 아름답게 변하는데 일조하게 되었다.
비단 파리 뿐 만 아니라, 세계의 웬만한 도시를 가봐도 우리처럼 무질서하게 방치한 사례는 드물다.

오스트리아 빈 거리



최근 각 지자체마다 '도시경관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아름다운 간판만들기'등의 이름으로 개선사업을 펴고있다.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정비의 목적이 강하다 보니 점포마다의 개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간판교체 비용을 관청에서 지원하다보니 예산확보의 문제, 시행하지 않는 곳과의 형평성의 문제등이 발생한다.

마산어시장 - 관이 주도한 간판개선사업



용호동 문화의 거리

용호동 문화의 거리



관청에서 주도하여 직접 시행하는 시스템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거리가 가진 역사와 성격에 맞게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개개인이 간판을 교체할 때 그 지침에 따라 설치 하도록 도와준다면 길어도 일이십년 안에 자연스럽게 변화된 거리를 만날 수 있을것이다.  



간혹 웃음을 주는 간판도 만난다.

차를 타도 광고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류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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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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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보면 치열한 경쟁속에 생겨난 이기심의 결정판 같군요..
    저도 간판때문에 참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그게 참 어려운 문제더군요..ㅎ

    다행히 저희가게 간판은 안보입니다 하하

    창원에는 어느정도 정리정돈을 하고 있는 것 같긴하던데
    아직..이곳은...

    길가다 간판에 머리도 부딪혀봤는데 ㅎ
    • 2009/12/04 13:0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명함하나 만들기도 어려운데 간판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대부분 크고 눈에 잘띄게만 만들다보니
      결국은 다 비슷해져 잘 보이지도 않고 경관만 해치는것 같네요.


낡고 오래된 도시공간을 되살리거나 이미 죽었던 옛 도시의 영광을 부활시키는 도시재생프로그램은 현대도시설계의 중요한 장르가 되었다.

잿빛 벽돌의 폐허였던 화력발전소를 한해 관광객 400만 명이 찾게 만든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
오래된 철도역을 재활용하여 ‘오르세’라는 이름의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변모시킨 파리.
설탕공장을 개조한 이탈리아 파르마의 ‘파가니니 음악당’.
모두 재생의 비전으로 되살린 현대도시 최고급 보석들이다.

           <위로 부터 테이트모던미술관, 오르세미술관, 파가니니음악당>


기타큐슈의 모지항(門司港)도 그렇다. 재생에 성공하였다.

마산보다 10년 빠른 1889년 개항한 모지는 한 때 국제무역도시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던 도시다.
은행, 무역회사, 호텔, 대형점포 등 근대산업을 상징하는 대형건물들이 해안을 가득 메웠던 도시다.


- 마산을 생각하며 모지로 가다 -

신문사 대표직 퇴임 후, 부관페리로 밤의 현해탄을 건너 모지로 갔다. 오래 미뤄온 계획이었다.

모지항은 큐슈의 끝자락에 붙어있는 작은 항구다.
간몬해협을 사이에 두고 시모노세키와 마주보고 있다.

                          <시모노세키로 건너오면서 본 모지항>

                            <모지와 시모노세키를 잇는 간몬대교>


마산과 닮은 항구였다.
항구의 지난 과거가 닮았고 바다와 산, 자연이 닮았다.
건너보이는 시모노세키와 오른쪽 오사카로 나가는 간몬해협 위의 간몬대교는, 건너보이는 창원과 오른쪽 거제로 나가는 마산만 위의 마창대교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다른 점이 더 많았다.
바닷물의 맑기가 달랐고, 사람의 손길이 닿은 건물들과 시설들이 달랐다.
달라도 많이 달랐다.

아스팔트 직선도로에 앉을 곳 하나 없는 해안과 오목조목 물터 만들고 데크(Deck)며 잔디며 벽돌이며 벤치며 사람을 유인하는 해안이 달랐다.
문을 연지 100년이 넘었지만 시간의 흔적을 알 수 없는 마산항과 곳곳에 지난 세월 그 번성했던 흔적을 간직한 모지항은 너무 달랐다.
두 도시 모두 영화와 퇴락의 부침을 겪었지만 모지는 개안하여 살아났고 마산은 정체성조차 알기 어렵다.
모지는 희망을 얘기하지만 마산은 드디어,
'우리 힘만으로는 희망이 없다, 옆 도시와 합쳐버리자'고 합의되는 도시가 되고 말았다.

옛 정취를 되살려 놓은 뒤 모지사람들은 이 새 항구를 ‘모지 레트로’라 이름 지었다.
‘레트로(Retro)’는 영어 ‘Retrospective(회고적)’의 약어다.
한 때 번성했던 항구의 풍경이 회상되는 곳이라는 의미다.




 
                    <위 네 사진은 모지항, 아래 네 사진은 마산항>


모지항은 ‘역사와 자연’을 키워드로 해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였다.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모지항역’을 보존하기로 결정하면서 시민들이 직접 나서 ‘모지항보존회’를 조직, 보존기금까지 모금하였다.
그 후,
유럽풍의 모지호텔, 오사카 상선빌딩, 옛 모지항 세관건물, 창고 벽을 그대로 살린 주차장과 미술관, 지난 시절 번성했던 모지항 원래 경관과 항구의 흔적들을 그대로 재생시켰다. 아인슈타인이 묵었던 미쓰이구락부도 있다.
랜드마크 역할은 일본이 자랑하는 건축가 구로가와 기쇼(黑川紀章)가 설계한 전망대가 맡았다.
해변 벤치에 앉은 중년부부의 평화로운 모습이 주변 전경과 잘 어울렸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블루윙모지였다.
블루윙모지는 보행자 전용 도개교, 배가 지날 때마다 다리가 번쩍 들린다.
밤의 조명도 아름다웠다.

보고 싶었던 것들을 실컷 보고 시모노세키로 건너왔다.
가라토 수산시장 데크에서 바다건너 모지를 보며 두 항구를 생각했다.

해풍 건강하게 마시며 바닷길 걷고 싶어서,
키 큰 나무 사이로 걷고 뛰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 보고 싶어서,

···········
················
모지를 바라보며 마산을 생각했다.

 

<위로 부터 전망대, 미쓰이구락부, 모지역, 철도역사관, 오사카상선빌딩, 블루윙모지, 모지항세관, 국제우호도서관, 출광미술관, 옛창고벽을 살린 주차장 내외벽>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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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0 12:3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
    정책판단이 사람들의 삶과 도시의 생명을 결정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마산은 야경만 아름다운 도시라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 허정도
      2009/11/20 13:4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방문 감사합니다.
      마산도 언젠가는 좋은 도시가 되겠죠.
  2. 2009/11/20 17:1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정말 마산과 닮았네요.
    수변공간만이라도 시민에게 돌려진다면
    모지보다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
    • 허정도
      2009/11/20 17:5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자연조건은 마산이 모지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3. 2009/11/21 02:0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모지항은 참 이쁘게 잘 꾸며 놨군여
    • 허정도
      2009/11/21 10:0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이쁘다'는 표현이 적절하네요.
      그렇습니다, 참 이쁩니다.
  4. 주여진
    2009/11/22 00:0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도 허정도님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모든것은 처음엔 새것이였죠...하지만 모든것에는 시간이 따르는 법이죠.
    마산에는 아직도 흙으로 만든 집이 있답니다.
    새것만 고집하지 말고 오래된 것을 어떻게 하면 재활용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할 시점인것 같습니다.
    말로만 환경을 외치지 말고...진정한 환경을 위해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아야겠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마산은 어느 도시 보다 문화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건물은 어는 도시에도 있는법...
    오래된 것, 추억에 잠들어 있는 것들을 찾아 시대별 마을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예를 들어 반월동이나 문화동를 60년대 모습을 간직한 마을로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게 되면, 세트장을 새롭게 만들기 보다는 있는것에 조금만 첨가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너무 개인적인 제 마음을 늘어 놓았네요...
    • 허정도
      2009/11/22 09:3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참 좋은 생각을 가지신 분이네요.
      올드시티와 뉴시티의 도시발전방향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마산 어느 곳에 아직 흙집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 2009/11/22 12:27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 흙집을 저도 보고 싶어요
      다음엔 문화동 반월동을 둘러봐야 겠어요
      아름다운, 정겨운 마산을 그리면서


'마산' 지명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아직 정립된 주장은 없다. 지금까지 제기된 주장들을 모았다.

일본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 1926년에 간행한『마산항지』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라고 전제하며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각 지역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창원 소재 오산진(현 산호동 용마고 부근)에도 매일 시체가 산을 이루어 50구, 30구 혹은 20구의 시체가 동시에 묻히는 등 참혹한 상황이 되었다.
살아남은 이 지역의 고로(古老)들이 서로 상의하여 유명한 풍수사에게 그 연유와 대책을 묻자 오산(午山)의 오(午)자에 문제가 많아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오(午)자 대신 같은 의미인 마(馬)자를 사용하라고 하여 오산(午山)을 마산(馬山)이라 개명하게 되고 이때부터 마산이란 지명이 생겼다’
고 하였다.

이 주장은『마산시사』를 비롯한 관찬자료와 마산과 관련한 많은 문헌에서 인용하였으며 사실상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마산의 지명 기원설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옳지 않다.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자료에서 마산이란 지명이 여러 군데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근거 없이 구전으로 전해오던 이야기를 한 일본지식인이 활자화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조선운송주식회사가 펴낸『조선항만지사정』에서는 마산지명의 기원에 대해
‘조선 제18대 현종(1660년-1674년 재위) 때부터 마산포라고 칭했다’ 고 기록되어 있다.
이 역시 현종의 재위기 이전에 이미 마산이란 지명이 기록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주장일 수밖에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최초로 마산이란 용어가 등장한다며 그 기원을 주장한 학자도 있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된 중종 25년(1530년)보다 100여 년 전인 세종7년(1425년)에 편찬된『경상도지리지』내상조에
‘(경상)우도내상은 창원부에 있는데 바다입구인 마산포와 4리 317보 떨어져있다 - 右道內廂 在昌原府 去海口馬山浦 四里三百十七步所屬’ 라는 마산포에 관한 기록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세종10년(1428년) 8월 기록에
 
‘경상도 마산포의 바닷물이 붉게 물들었는데 물고기가 죽은 놈이 있었다 (그 당시 마산만에 적조현상이 발생했던 것으로 보이는 기록이다)’ 는 마산포 기록이 있으니 이 주장도 타당성이 없다.

음차현상으로 마산 지명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으나 근거가 불명확하다.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대왕 편>


몇 년 전에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고려시대 몽고군이 합포에 진주한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한 박희윤의 주장이다.
그는 몽고군이 일본을 침략하기 위해 합포(마산일대의 당시 지명)에 진주할 때,
 
‘산호동 지역 바냇들에 몽고군의 목마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이로 인해 「용마산」「큰 말굿」「작은 말죽통」 등의 말(馬)과 관련된 지명이 생겨났을 것이다.
또한 용마산 아래에 있는 포구(浦口)라는 의미와 일본원정당시 말들을 실어 나르던 포구(浦口)라는 의미에서 「마산포」라는 지명이 생겼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그 시기를 고려후기로 추측했다.

박희윤의 주장대로라면 원나라 세조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이 곳 합포의 자산성에 정동행성을 둔 것이 1274년이고, 두 번째 원정이 1281년이니 지금으로부터 700년 이 더된 시기에 마산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이다.
600여 년 전에 간행된 사료에 마산이란 지명이 수록되어 있으니 앞의 주장들처럼 시기적으로 오류가 있지는 않다.

확인 되지도 않았고 확인할 수도 없는 ‘마산’ 지명의 정확한 기원은 무엇일까?
이 오래된 지명은 언제 무슨 사연을 담고 만들어졌을까?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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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부인권
    2009/11/09 06:3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허정도
      2009/11/09 09:2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방문 감사합니다
  2. 2009/11/09 10: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마산이 언제 어떻게 지명으로 사용되었는지 생각해본바 없지만
    읽어보니 그 역사는 재법 오래된듯하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2009/11/09 10:3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3. 이은진
    2009/11/10 11:5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마산, 창원, 진해가 통합되는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통합된 도시의 명칭 논란이 야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창원과 진해의 명칭 유래도 같이 고려한다면,
    통합도시의 명칭 논란에 좋은 근거 자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 허정도
      2009/11/10 13:35
      댓글 주소 수정/삭제
      좋은 생각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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