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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2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3)
마산포는 러시아와 일본이 서로 식민야욕을 불태웠던 각축장이었습니다. 시기는 개항 전후였고 그 절정이 「마산포사건」입니다.
「마산포사건」은 러시아가 부동군항(不凍軍港)을 얻기 위해 마산포를 점령하려했던 사건입니다. 사건개요를 요약합니다
러시아는 군사적 목적의 부동항을 얻기 위해 우선 조선정부와 마산포 저탄소(貯炭所) 설치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간파한 일본이 러시아가 목적한 토지를 미리 매입해버림으로써 러시아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1900년 때 일입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단념하지 않고 마산포 남쪽의 율구미(현 마산시 가포동의 국립결핵병원에서 MBC 송신소에 이르는 바다 쪽으로 돌출한 지역)를 얻어 1900년 6월 4일 30여 만평의 러시아 단독조차지를 설치하였습니다.
이에 질세라 일본도 1902년 5월 17일을 기해 자복포(구 한국철강과 월영동 아파트단지, 구 국군통합병원 일대)에 일본 전관거류지 30여만 평을 설치하였습니다.
이미 설치된 신마산 각국공동조계지 인근 두 곳에 러·일 단독조계지가 추가되는 기현상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두 나라 각축이 있었지만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러시아 단독조계는 사라져버렸습니다. 러시아 단독조계가 없어지니 일본도 굳이 단독조계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결국 일본은 각국공동조계지를 그들의 전관거류지처럼 사용하고 자복포의 단독조계는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상황 몇가지 소개합니다.
당시 마산의 분위기가 그랬던 만큼 강대국 군함의 마산 입출항도 많았습니다.
1899년 4월부터 1900년 11월까지 러시아와 일본을 비롯한 외국 군함의 마산항 출입 상황은 러시아가 가장 많은 28척, 일본이 10척, 영국이 4척, 독일이 1척이었는데 이 배는 모두 병함(兵艦) 혹은 수뢰정(水雷艇)이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러시아는 가포 인근인 율구미에 군대까지 주둔시켰습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의미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 두 장은 당시 러시아 해군이 율구미에 주둔했던 사진입니다.
먼저 것은 ‘율구미 주재 러시아 사관 및 부영사 가족’ 사진입니다. 사택으로 보이는 뒷 건물에 사용된 재료는 형태를 보아 조선 현지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조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율구미 주재 러시아 군대 체조장의 사관 및 수병’들 사진입니다. 수병들이 아직 소년 티를 벗지 못했습니다.
개항 나흘 후인 1899년 5월 5일, 러시아 고위공직자들이 마산포에 왔습니다. 주(駐)조선 러시아공사 파블로프가 일행과 함께 만추리아호를 타고 마산포에 도착합니다.
일행은 율구미라 부르는 자복봉 능선을 따라 30여만 평의 토지에 표석 500본, 표목 500본을 꽂아 임의로 그곳이 자신들의 영역임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국기가 달린 5.4m의 표간(標杆)을 자복포 배후의 구릉과 가포에 인접한 해안에 각각 12개를 세웠습니다.
이곳이 나중에 러시아 단독조계지가 됩니다.
위 그림 왼쪽에 그려진 것이 바로 그 표간입니다.
미의회 도서관자료인데 마산포사건과 관련한 일본해군대신 관방서류에 수록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이 도면에는 율구미 능선을 따라 늘어선 표석과 표목의 위치와 함께 러시아 국기가 달려있는 표간의 상세한 도면이 그려져 있으며 표시물의 위치와 숫자는 이 도면을 설명하는 보고서에 별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구미 일대에 꽂힌 표석과 표목 각각 500개, 그리고 율구미 능선과 가포해안에 선 5.4m 높이의 24개 깃발을 상상해 보십시오. 러시아의 위세가 당시 어떠했는지,,,,
표목과 표간은 이미 썩어 없어졌겠지만 표석 500개는 땅 밑 어딘가에서 아직 잠자고 있겠지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표석 발굴에 나서 보면 어떨까요?
이러한 러시아의 행동은 호시탐탐 마산포를 넘보던 일본을 자극하였습니다.
일본은 마산포의 당시 상황을 일일이 본국 정부에 보고하면서 마산포를 러시아보다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에 이어 일본도 자복포에 전관거류지를 설치하게 되었던 겁니다.
다음 그림은 그 시기에 첩보용으로 율구미를 촬영했던 사진입니다.
일본 해군소속 군함 '대도(大嶋)'의 첩보주임 이집원후(伊集院後)가 1900년 5월 1일에 촬영한 것입니다. 가운데 높은 봉이 갈마봉인가요?
마산포로 진출할 의사를 가진 나라가 러시아와 일본, 영국뿐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도 석탄하역장과 해군병원의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마산포 부근에 진출을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1885-1913년 외교보고서』 중 마산관련 자료입니다.
No 65
1901년 9월 17일, 동경
조선에서의 프랑스와 러시아
존경하는 백작각하!
제가 이미 이전의 보고에서 자주 말씀드렸던 바, 조선 내에서의 프랑스의 활동은 일본신문에 계속 표제화되고 있습니다․․․․․․․․
신문들에 의하면 이전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이제 프랑스도 석탄하역창과 해군병원의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마산포 부근에 위치한 작은 항구를 양도해 줄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암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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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더우시죠?
추워 떤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여름 한복판입니다.
지난 겨울 마산에 눈 내렸던 날 기억하십니까?
눈 땜에 집에 갇혔다가 사진을 몇 장 찍어두었습니다.
더위 식히는데 도움될까 싶어 올려봅니다.
매화 꽃봉오리 맺혔던 자리에 굵은 매실이 달려 한 달 전에 따냈습니다.
그새 눈내린지 반 년이 지났습니다.
세월 참 빠르네요,,, 저만치 크리스마스가 또 다가옵니다.
어떻습니까, 더위가 조금 가셨습니까?
한 더위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유난히 덥고 비도 많을 거라는데 올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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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개항의 배경>
한국 개항의 효시인 부산에 일본단독조계가 설치된 이후 전국의 여러 도시에 조계(租界)가 계속 설치되었습니다.
1876년 부산에서 시작된 조선의 개항은 1880년대에 원산·인천·서울(*)·용산(*)·경흥(*), 1890년대에는 진남포·목포·평양(*)·마산·군산·성진, 1900년대에 들어 의주(*)·용암포·청진까지 모두 15곳을 개방하였습니다. (*)표는 개시장(開市場)입니다.
아래 그림은 전국개항장의 위치도(1890년대 이전 ● , 1890년대 ●, 1900년대 ●)입니다.
다음 사진은 대표적인 개항도시였던 인천개항장의 근경(위) 및 부산개항장의 원경(아래)입니다.
1890년대에 접어들자 조선은 강대국들의 이권쟁탈외교 각축장이 되어갔습니다.
특히 철도․광산․은행․통신․어업 등에서 이권을 독점하기 위한 경쟁이 격렬했고, 이러한 왜곡된 외교정세 때문에 국내 사정은 점차 악화되어 갔습니다.
대한제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조정하는 한편 경제적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제로 개항장이 된 부산․원산․인천과 달리 1897년에 자발적으로 목포와 진남포를 개방하였습니다.
단독조계를 두었던 과거와 달리 목포와 진남포에는 각국공동조계지 만을 두어 열강들의 상호견제로 인한 세력균형 속에서 실익을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정부의 이런 의도와는 달리 목포와 진남포에 설치된 공동조계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토지이권다툼이 노골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산포는 그로 부터 2년 뒤인 1899년에 군산․성진과 함께 개항되었습니다.
마산.군산.성진 개항은 앞의 목포․진남포와 같이 외견상으로 자발적이었고 그 형식과 절차도 목포.진남포와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개항이 결정되기까지 마산포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다툼은 목포와 진남포보다 더욱 치열했습니다.
개항직후인 1900년에 제정러시아 대장성이 발행한『조선에 관한 기술(記述)』에서 ‘마산포와 군산을 일찍이 영국에서도 장래성 있는 항구라고 평가했다’ 고 하면서 군산만(群山灣)은 자연적인 조건이 편리하지 못한데 반해 마산포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마산항의 상세(商勢)와 입지를 극찬하고 그들이 일본보다 마산항을 선점해야하는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산포는 부산에서 서쪽으로 60베르스트(verst, 핀란드의 옛단위, 1베르스트는 0.6641마일 또는 1.069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조선의 남쪽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지였다.
외국상업을 위해서 개방되자 이로 인해 현저한 타격을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부산과 함께 상당한 양의 무역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조건이 우세하여 개항 이후 현재 부산항에 위협을 주는 경쟁지로 되었다.
만약 부산에 커다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일본인들이 지금의 우세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부산의 모든 상업상 가치를 빼앗아 버릴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은 단지 러시아뿐만 아니라 19세기말 모든 제국주의국가들에 깔려있었던 마산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마산 개항에는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이를 견제한 '일본의 대륙정책'이 많은 작용을 했습니다.
'러시아 남하정책'은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한반도 남쪽에 부동항(不凍港)을 건설하여 자국의 블라디보스토크과 중국 요녕성의 여순을 해상으로 연결하려고 했던 정책입니다.
'일본의 대륙정책'은 이와 같은 러시아의 해양세력 확장계획에 대한 견제와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향한 자국 세력 확장을 위한 거점으로서 마산포를 수중에 넣으려한 정책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러시아와 일본 두 나라 각축의 먹잇감이 마산이었습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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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빌바오(Bilbao, Spain).
면적 41.3㎢, 인구 35만의 중소도시가 세계적인 도시로 부각되었습니다.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주의 주도인 빌바오.
네르비온강변으로 3km에 이르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철광산업의 부흥을 이어오던 이곳에 새로운 도시디자인을 통해 일약 월드스타급의 도시로의 도약을 이뤄냈습니다.
물론 1991년에 '구겐하임미술관'의 유치가 확정되면서부터 그 신조어(Bilbao Effect)가 톡톡히 효과 본것이기도 합니다.
그 효과를 정량적으로 계산한 자료를 보면, 과거 10년동안의 관광객이 986만명. 수익은 약 2조 1,0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중소도시인 빌바오는 도시규모에 대비되는 엄청난 도시브랜드를 일궈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방안외래관광객 수 = 약 780만명.(2009년)
빌바오는 1970년대까지 45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활기찬 도시였습니다.
철강, 조선산업의 중심지 (빌바오는 스페인 최대항구)로 급성장해오던 이곳에
1970년대 말, 유럽의 산업위기로 인해 그간 이루어낸 경제적 성장이 멈춘것은 물론이고
중공업과 그 부속되는 산업, 이와 견주는 서비스업 마저도 붕괴되고 맙니다.
70년대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관련 산업의 고용이 25%나 감소되고,
이에 따라 실업율도 30%까지 치솟습니다.
인구감소현상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각종 사회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빌바오의 위기 앞에서,
시는 산업위기 등으로 도시침체를 맞은 타도시사례(피츠버그, 글라스고우 등)의 정황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 그 원인을 '도시의 구조적 문제'로 규정합니다.
즉, '산업도시 빌바오'의 도시재생방안으로 '탈산업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탈산업화를 통한 빌바오의 도시회생을 위해 '문화와 예술적인 도시'를 목표로 한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이 1995년에 수립됩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도시디자인을 통해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로 시작해서, 문화와 예술관련 부문을 활성화시키고, 자본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영국 글래스고우 도시재생전략 벤치마킹)
빌바오의 도시재생의 특징은 지역공동체에 대한 지원입니다.
대표적으로,
1991년에 설립된 '빌바오 메트로폴리탄 30'은 공공과 민간의 활동이 도시재생 과정을 주관하도록 하였고,
1992년에 설립된 '빌바오 리아 2000'은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50%씩 공동으로 출자하여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공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관은 독립성을 보장받고(정치적 개입 방지), 운영도 독립적으로 하되, 경제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빌바오계획은 실제로 빌바오항만청에서 외부 항구의 확장공사계획에 따라 네르비온강 주변지역을 활용할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기회였습니다.
이 구상이 통합창원시의 기회로 작용하면 좋겠습니다.
현재까지 메트로폴리탄 빌바오계획에서 사용된 자금은 신공항에 190백만유로, 빌바오전철 900백만유로, 외부항구 600백만유로, 지상궤도열차(트램)에 20백만유로를 투입하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들의 계획은 지금으로 부터 15년전에 되어졌던 것입니다.
빌바오 메트로폴리탄 30의 설립시기로 보면 20년전입니다.
| 1991년 | 빌비오 메트로폴리탄 30설립 |
| 1991년 | 바스크 주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확정 |
| 1992년 | 빌바오 리아 2000설립 |
| 1992년 | 외부항구 확장공사 시작 |
| 1995년 |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 수립 소로사우레 마스터플랜 통과 |
| 1995년 | 지하철개통, 네르비온강 인도교, 수변지구 재개발공사 |
| 1997년 | 구겐하임미술관 완공 |
| 1998년 | Aalborg 법규 통과 - 21 지방 의제 2005-2008년 활동 계획 수립 |
| 1995년 | |
| 2001년 | 소로사우레(Zorrotzaurre) 도시발전관리위원회 구성 |
| 2002년 | 에우스꼬뜨란 완공 |
| 2003년 | 소로사우레 |
| 2004년 | 아메촐라 공원 개장 |
| 2007년 | 사로사우레 마스터플랜 완료 마스터플랜 목적과 지침 목록서 계획 |
※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 디자인
보행자와 자전거이용자를 배려한 캐노피 디자인인 돋보입니다.
그런 도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실천해나가는 것.
절대 서둘러서는 안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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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대한 글은 모두 10편으로 나누어 올릴 예정입니다.
도시문제에 시각을 맞추겠습니다만 개항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간략히 싣겠습니다.
이 글은 마산개항 직전의 국내외 상황을 소략하게 쓴 글입니다.
<개항 전야>
19세기 중엽, 서구 열강들은 식민지 확보를 위해 동아시아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는 19세기 중엽에 베트남을 지배하고 캄푸치아를 보호령으로 하였고, 일찌감치 인도를 병합한 영국은 19세기 전반기에는 동남아시아로 진출하여 미얀마와 말레이반도를 수중에 넣었으며 아편전쟁을 계기로 홍콩을 얻었습니다.
홍콩을 내 준 중국은 그 후 프랑스·러시아·미국 등에도 문호를 개방하였습니다.
이 무렵 일본은 태평양을 건너 온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강경했던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1854년 카나카와(神奈川)조약을 시작으로 영국․러시아․네덜란드 등 여러 선진 국가들도 받아드렸습니다.
1868년 일본은 하급 무사계급의 주동으로 명치유신을 단행하고 천황제 전제국가를 수립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시급한 과제는 빠른 시일 내에 자국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양이쇄국정책(壤夷鎖國政策)이 대세였습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구미각국의 여러 차례 통상요구가 있었고 이로 인한 갈등과 충돌도 많았지만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여론을 등에 업고 굳어 갔습니다.
명치유신 후 일본정부는 덕천막부가 폐지된 사실을 조선정부에 통고합니다. 그러나 대원군의 조선정부는 문서의 격식과 인장이 옛 것과 다르다 하여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고종 9년(1872년)에 일본은 외무대신 화방의질(花房義質)을 부산에 파견하여 교섭을 추진했으나 조선정부는 이도 거절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일본지배층 내부에서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일본의 각료회의에서 조선침략에 대한 찬반논쟁을 하는 장면을 그린 「정한논쟁도(征韓論爭圖)」입니다.
정한론에 힘입어 일본지배층은 장차 조선 침략에 필요한 조사도 시작하였습니다.
조선침략 초기에 사용된 조선관련 문헌 중 대표적인 저작 『조선사정(朝鮮事情), 1876』도 이 때 나왔습니다.
정한계획의 실체는 1875년에 일어난 「강화도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일본은 그들이 당했던 것과 똑 같이 군함 운양호(위 사진)의 무력시위로 조선을 위협하여 강화도조약 혹은 병자수호조약으로 불리는 불평등한 조일수호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 결과 조선은 부산·원산·인천의 3개 항구를 일본에 개방했고 치외법권을 인정했으며 일본화폐의 통용과 무관세 무역을 인정하게 됩니다.
서구제국의 개항압력에도 불구하고 쇄국정책을 견지한 조선은, 서구제국에 의해 강제로 개방된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었습니다.
일본에게 문을 연 조선정부는 그 뒤 미국·중국·영국·독일·이태리·러시아·프랑스·벨기에·덴마크와도 수호조약을 맺고 전국 주요 도시의 문을 개항(開港) 혹은 개시(開市)라는 이름으로 열었습니다.
마산포 개항도 그 산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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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거리면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할 것이고, 대중교통이 편리하면 버스나 지하철을, 규모가 큰 회사는 통근버스를, 이도저도 아니면 자동차를 직접 몰고 출근길에 나섭니다.
마음은 숲길을 걷고 싶지만, 자동차 가득한 도로를 달려야 하는것이 현실
출근시간을 이용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별일없이 운전만 할수도 있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볼수도 있고, 피곤하면 쪽잠을 청할수도 있지요.
요즘은 DMB나 PMP로 방송이나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5년여 동안 15분 거리의 직장까지 걸어서 출근하면서 그시간 동안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그날 하루 있을 일을 계획하는 시간으로 사용했습니다.
퇴근길에는 반대로 하루를 정리하곤 했지요.
15분 이라는 길지않은 시간에 명상과도 같은 마음정리가 가능했던것은 걷던길의 환경이 큰역할을 했습니다.
직장을 마산으로 옮겨 차를 타고 출근을 하면서 새삼 출근길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거리가 먼 만큼 시간은 늘어났지만 운전을 해야하니 깊이있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않습니다.
요즈음 업무관계로 그때의 출근길을 다시 걸으면서 예전엔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를 사진으로 남겨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사는 집은 창원 용호동의 한 아파트이고 용지호수와 용호상업지역을 지나 직장으로 출근했습니다.
아파트를 벗어나면 울창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큰 소나무 숲이 나옵니다.
나무 사이로 새소리를 들으며 걷는 이길이 제일 좋습니다. 무엇보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흙길을 밟는 느낌이 참 상쾌합니다.
퇴근길에는 벤치에 잠시 앉아 여유도 부려봅니다.
가끔 청설모가 나타나 나무타기 뽐을 내곤합니다.
소나무숲을 지나면 탁트인 용지호수가 나타납니다.
예전엔 이곳에서 낚시도 하고 보트도 타곤 했지요.^^
물밖에 보이지않던 호수에 몇년 전부터 다양한 수생식물이 자라고, 왜가리인지 두루미인지 제법 큰 새들도 몇 마리 보입니다.
수질이나 접근성등의 문제만 해결되면 용지공원과 더불어 통합시의 센트럴파크로 손색이 없을것입니다.
호수를 끼고 걷는 길은 여러갈래가 있는데 저는 출근길에는 호수변 산책로를 따라 호수를 바라보며 걷고 퇴근길에는 소나무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탁트인 호수변을 걸으면 눈과 함께 머리도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꽃나무와 수생식물이 자태를 뽐냅니다.
호수를 지나면 상업지역이 나타납니다.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는 특색없는 상가 밀집지역입니다.
저의 직장이 있던곳이기도 합니다. 보행로가 따로 없어 차를 피해 걷기가 불편합니다.
삭막하기만 한 이곳에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가로경관 개선사업을 통해 차도와 주차장만 있던 곳에 보행로와 휴게공간이 곳곳에 생겼습니다. '문화의거리'라는 명칭으로 용호상업지역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 있다고 하니 기대가 큽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의지와 상관없이 다녀야하는 출근길이지만 짧은 구간이라도 기분좋게 걸을수 있는 길이 있다면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저의 출근길에 빗대어 얘기했지만,
결국은 걷기 좋은 길 을 많이 가진 도시가 사람중심의 도시이며 살기좋은 도시 라는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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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원산, 서해 강경, 남해 마산>
18세기 후반부터 조창과 더불어 발달하기 시작한 마산포는 중서부 경남의 곡물과 남해안 수산물의 대표적 집산지로서, 화폐경제와 함께 성장한 굴지의 시장이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마산포구에는 두 개의 굴강, 곧 조운선 전용 선착장인 서굴강과 민간전용인 동굴강이 있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오산선창(午山船艙)․어선창(漁船艙-東城漁船艙)․백일세선창(百一稅船艙)․서성선창(西城船艙) 등 4개의 선창이 펼쳐진 유수한 어항이었습니다.
당시 경상도의 중심포구는 왜관이 있었던 동래와 부산포, 창원의 마산포, 김해의 칠성포였습니다.
창원에는 마산포 뿐만 아니라 지이포(只耳浦, 창원시 상복동 지귀상가 부근), 사화포(沙火浦, 창원시 팔용동 홈플러스 부근), 합포(合浦), 여음포(餘音浦, 귀산부근)가 있었습니다만 이 중에서 중심포구는 마산포였습니다.
마산포 선창은 어선과 상인들로 항상 붐볐고 ‘일창원(一昌原) 이강경(二江景)’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했습니다.
'동해 원산, 서해 강경, 남해 마산'이라고 하여 전국 3대 수산물 집산지이기도 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19세기 이후에는 동북산 북어(北魚)가 원산포에 집하되었다가 마산포를 거쳐 은진(恩津)과 강경포(江景浦)까지 선운되기도 하는 등, 동해와 서해를 연결하는 원격지(遠隔地) 수산물 중개항구로 발전하여 경상도 시장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마산포 시장을 전국에서 손꼽힐만한 규모라는 주장과 달리 어류에 국한하여 시장의 규모를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마산포 시장의 규모가 대단했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19세기 후반에 이미 일본인 상인들도 진출해 있었습니다.
당시 마산포의 정황을 말해주는 문헌들을 소개합니다.
『일성록』순조 33년(1833년) 기록에 의하면 마산포 선창은 객주가 130여 호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다고 합니다.
고종 때 4년 간 함안군수로 재임한 오횡묵의 『경상도 함안군 총쇄록』에는 마산포에 어물과 곡물을 실은 수백 척의 상선이 출입하여 해안에 빈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상업이 발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순조 8년(1808년)에 편찬된『만기요람(萬機要覽)』의 재용편(財用編)에서는 전국 각 도 1,061개의 향시(鄕市) 중 국내 최대의 장시(場市) 15개를 소개하면서 경상도에 있는 276개 향시 중 최대 장시(場市)로 창원 마산포장(馬山浦場) 하나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1893년부터 세곡운송을 위해 마산만을 드나들던 기선 현익호입니다.
현익호는 444톤 2범(帆) 기선으로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배였습니다.
갑오경장에 의해 지세가 현물에서 금납으로 개정되어 마산창의 기능은 중지되었습니다. 1895년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경남의 중심상권으로 자리잡은 마산포 시장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전국에 위세를 떨쳤던 마산포 시장,,,,
19세기 이 도시 마산은 조선에서 이름 높았던 상업도시였습니다.
개항으로 도시가 커지고, 해방 후 귀한동포와 6.25전쟁 후 피난민으로 도시가 커졌습니다.
1960년대 후반 부터는 자유무역지역과 한일합섬으로 공업도시가 되어 '전국 7대 도시'라는 이름까지 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위상에서는 '20세기 마산'이 '19세기 마산포'보다 낮았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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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2010/07/05 07:45
http://panzercho.egloos.com/2767221 마산시립박물관에 있는 마산포 전경 디오드라마의 모습입니다. 위에 있는 마산포구의 동굴강과 서굴강의 경우 예전 합포진성의 전선을 정박시키던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0) 시작하며
요즘 여러분야에서 '디자인(Design)'은 최근의 월드컵열기만큼이나 뜨겁고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도시의 공공공간에 대해 우리 사회의 기대수준이 높아지고, 또한 도시공간에 대한 올바른 표현이 무엇인지 그만큼 고민하게 되는 것으로 우리의 삶이 더욱 윤택해 질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기대에 비해 도시 공공성의 수준은 계획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만들어질 준비가 되어 있진 않은것 같습니다.
도시의 환경은 한번 조성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요구(Needs)에 따라 수정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복합적인 기능과 유연함을 갖춘 도시 환경. 모두가 원하는 것입니다만...
실제로 도시민들이 원하는 내용과 달리 일방적으로 시행되는 도시사업들은 여전히 발전되지 못하고, 낮은 디자인수준과 이질감으로 도시의 창조적 발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행정통합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가게 되는 통합창원시.
통합창원시가 제대로 된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지속적(Sustainable)이고도 창조적인(Creative)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의 외면당하는 도시계획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통합창원시의 훌륭한 정체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존 세개 도시가 가지고 있던 역사적 흔적과 문화적 컨텐츠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변화하고, 통합시의 도시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되는 계획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에 혁신적으로 짧은 기간에 변화에 성공한 도시도 있겠지만,
서서히, 그리고 시민들 자신이 변하면서 도시의 변화를 예감하고 변화를 통해 발전을 위한 계획의 명분을 찾게 되는 것. 오랜 고민으로 도시변화의 방향을 꾸준히 같이 노력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도시의 창조성은 극대화 될 것입니다. 그 것이 도시의 경쟁력이 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금번 연재에서는
통합창원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창조적 도시디자인방법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으로 구성하였으며, 통합창원시만의 방법을 찾는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료출처 :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디자인진흥원, 국회도서관, 각종 웹검색 등을 통해 각 도시의 자료와 사진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도쿄는 1456년 에도성을 시작으로,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막부설치로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30만여채의 가옥화재와 14만명이 사망하는 재난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도쿄로 몰려들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일본경제는 특수를 누렸고, 이로 인해 2차세계대전의 피해를 빨리 회복할수 있었습니다.
꾸준히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 핵도시의 육성에 따른 지속적인 대도시화.
지금의 서울도 똑같은 모습입니다.
도시통합에 따라 창원시(창원+마산+진해)도 인구가 108만이 되었습니다.
통합 창원시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세 도시의 균형발전일 것입니다.
도쿄 또한 같은 고민을 하였습니다.(물론 행정통합에 따른 도시의 기존 기반여건과 행정구역의 확대 측면에서 보면 전혀 다른 사례이긴 합니다만)
20세기 100년동안 일본의 인구는 약3배 증가했고, 그 과정에서 도쿄도의 인구는 약3,300만명이 되어 세계최대 도시권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출산률 저하로 인구가 점점 줄어들어 2050년에는 현재 인구의 20%가 감소할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산업구조도 급격히 바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쿄 뿐만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는 모든 도시들이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도시의 변혁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도시변혁의 필요성은 다음의 네가지 관점으로 정리할수 있습니다.
1. 국제적인 도시간의 경쟁 격화
2. 인구감소시대의 도래
3. 환경문제의 현실화
4. 정보화에 따른 신산업, 신 라이프스타일의 출현
새로운 도시만들기로 도시재생을 도모해야 할 때입니다.
도쿄의 도시재정비는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주목되고 있습니다.
도쿄의 도시계획은 1960년대부터 구체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그리고1982년에는 '도쿄 장기계획-My Town-21세기를 향하여' 라는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통해 도심의 과도한 집중을 해소하고자 다핵형 도시구조로의 전환을 꾀했습니다.
도시기능의 분산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우리로 말하면 행정중심복합도시 비슷한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으로는 인구, 기능, 경제, 문화... 등, 과도한 대도시권의 집중을 막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2000년부터 새로운 장기플랜으로 (8년후에 고시하게 되는) 도시계획을 시작하게 됩니다. 꽤 긴 시간을 갖고 시도되는 계획이었습니다.
목표는 '세계를 리드하는 매력있는 풍성한 국제도시 도쿄 창조' 였습니다.
도쿄 메가로폴리스(Megalopolis)는 구체적으로 5개 권역으로 구분됩니다.
1. 센터, 중심부 재생구역
2. 도쿄만 워터프론트 활성화구역
3. 도시환경재생구역
4. 핵도시 광역제휴 구역
5. 자연환경 보전, 활용구역
동시에 도시간의 연결을 중시하고, 교통망의 정비를 진행하여 전체적인 효율성과 효과적인 기능 제휴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도쿄의 새로운 도시만들기의 도전은 2000년 부터 시작하여 2008년에 도시계획을 고시하게 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현재 미드타운, 국립 신미술관 등 현재 진행형으로 도시재생을 꾀하고 있습니다.
** 도쿄 미드타운
- 위치 : 옛 방위청 철거지
- 시행 : (주)모리 컨소시엄
- 사업비 : 3700여억엔
- 부지면적 : 10만2천평방미터
- 영역구분 : 오피스영역 + 쇼핑영역 + 디자인아트영역
** 국립 신미술관
- 위치 : 미드타운 내 (롯봉기 개발사업의 일환)
- 규모 : 시행
- 사업비
- 부지면적 : 약3만평방미터
- 건축연면적 : 4만8천평방미터
- 특징 : 공모전과 기획전 주목적 (미술관 소장 예술품이 없음)
이에는 정책유도형 도시만들기 방향을 도시계획의 근거가 되는 방침으로 삼고, 도시계획에 책정된 후에는 각종 제도('도시재생 특별조치법', '도쿄의 멋진경관만들기 추진조례' 등)로 받침하였습니다.
** 도쿄 도시계획 추진과정
| 2000년 5월 | 도시계획법 개정 |
| 12월 | 도쿄구상 2000 책정 |
| 2001년 10월 | 도쿄의 새로운 도시만들기 비전 책정 |
| 2002년 12월 | 원안작성 |
| 2003년 3월 | 원안구성 > 시민들에게 온라인개요 공개 > 의견모집 |
| 7월 | 소안(원안 이전단계) 작성 > 열람 |
| 9월 | 공개청문회 |
| 10월 | 도시계획안 작성 |
| 11월 | 도시계획안을 23구,26시,5정,8촌에 의견조회 |
| 2004년 1월 | 도시계획안 공고 및 열람 |
| 3월 | 도쿄 도시계획심의회 상정 |
| 4월 | 결정고시 |
| 2007년 11월 | 마야케 도시계획구역 마스터플랜(안) 공고, 열람 |
| 2008년 2월 | 도쿄 도시계획심의회 상정 > 3월 결정고시 |
우리가 바라는 도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할 통합도시의 미래를 위해서는 도시계획의 방침을 시민의 공감대 위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7월1, 통합창원의 출범으로, 곧 도시계획과 도시디자인(설계)이 화두가 될 것입니다.
기존 3개도시는 행정구역상 5개의 권역(구청)으로 나뉘어졌지만, 이는 행정구역상의 권역입니다.
도시계획상 권역의 설정. 이는 도시의 강점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재설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둘지 말고,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를 만들고,
권역을 구분하여 도시기능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도시계획을 위한 정책수립에 시민, 민간사업자, NPO, 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의 참여와 제휴가 있어야 할것입니다.
도쿄의 8년과 같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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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창과 유정당>
조용했던 마산포구에 조창이 생기자 조창에서 일을 보는 관원은 물론 인근 지역 관원들의 왕래까지 잦아지고 여각(旅閣), 객주(客主) 및 강경상인(江京商人)은 물론 각지의 상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해로와 육로의 접점이니만큼 시장으로서의 지정학적 조건도 좋았지만,
17-18세기 인구증가로 비농업인구가 급증하여 임노동자들이 도시에 집중하는 등 조선조 후기에 발생한 '봉건적 사회질서의 붕괴'가 마산포를 도시화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마산창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민가도 들어섰습니다.
동성리·중성리·오산리·서성리·성산리·성호리, 지금도 대부분 동명으로 이름이 살아있는 6개리가 이 때 형성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마산 도시구조의 주심부(主心部)인 이들 6개리가 오늘날 마산이라는 도시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처럼 마산창은 마산포의 중심이자 마산포를 도시화시킨 발원지였으며 오늘의 마산도시를 있게 한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그림처럼 현 제일은행 마산지점과 남성동 파출소 일대, 지금은 세 블록으로 나누어진 직사각형 1,500여 평의 부지가 마산창이 있었던 유서 깊은 터입니다.
지금은 도시 한복판이지만 당시에는 바다와 가까이 있었습니다.
조창 터와 바다 사이의 '이프, 남흥양복점, 수성목욕탕, 남성동천주교회' 등이 들어서 있는 터는 조창기능을 위한 작업 및 하역공간으로 추정되는 공지였습니다.
1760년 영조가 대동법을 시행하며 세운 마산창은 규모와 위상에서 당시는 물론 근대 이전까지 마산인근 최상위의 관아였습니다.
1899년 마산이 개항되자 개항업무를 집행하던 감리서아문(監理署衙門)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그 보다 일 년 전인 1898년부터는 ‘마산포 우편물취급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창동(倉洞)이란 동명도 마산창의 창(倉)자(字)에서 따온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마산창의 본당이었던 「유정당(惟正堂)」입니다.
마산창 내 8채 건물 중 중심건물이었으며 세곡미 호송관으로 조정에서 내려온 조운어사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사진은 1900년 4월 30일 오후 2시에 있었던 마산포 각국거류지 제2회 경매장면인데 미의회 도서관 소장 자료입니다.
(마산포 개항 후 각국거류지 경매가 모두 다섯 차례 마산포 해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회와 2회 경매까지는 당시 마산포해관으로 사용되던 조창건물에서 진행하였습니다만 3회부터는 1901년 1월 1일 신마산으로 이전한 마산포해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마산포 각국거류지 제2회 경매 정황에 관한 보고」라는 제목으로 일본 해군소속 군함 대도(大嶋)의 첩보주임 이집원후(伊集院後)가 1900년 5월 1일자로 작성한 보고서에 첨부된 사진입니다.
경매 중이라 차일을 쳐 놓긴 했지만 조창건물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유정당이 어떤 건물이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글이 두 편있습니다. 건물 준공 후 이곳을 찾은 창암(蒼巖) 박사해와 간옹(澗翁) 김이건의 시(詩)입니다.
김이건의 시 중 양창(兩倉)과 좌창우고(左倉右庫)는 마산과 진주의 두 조창을 말합니다.
漕倉 惟正堂 조창 유정당 -박사해(朴師海)-
坐 來 新 棟 宇 새로 지은 집에 와 앉으니
蕭 灑 客 心 淸 나그네 마음 상쾌하게 맑아지네
海 色 楹 間 入 바다 빛은 난간 사이로 스며들고
島 霞 席 底 生 섬 노을은 자리 밑에서 일어나네
倘 非 經 緯 密 경위가 치밀하지 않았더라면
那 得 設 施 宏 어찌 규모가 넓었으리오
南 路 知 高 枕 남쪽 지방이 태평함을 알겠거니
蠻 氓 可 樂 成 변방 백성들이 즐겨 지었다오
送 漕船歌 송 조선가 -김이건(金履健)-
․․․․․ ․․․․․
始 建 兩 創 儲 稅 穀 비로소 두 조창 지어 세곡을 저장하고
繼 造 衆 艦 艤 海 澨 이어 많은 배 건조하여 바닷가에 대었다네
暮 春 中 旬 裝 載 了 늦은 봄 중순에 세곡을 다 싣고는
卜 日 將 發 路 渺 渺 좋은 날 받아 떠나려니 길은 아득도 할 사
玉 節 來 臨 燈 夕 後 저녁 등 밝힌 뒤 옥절이 임하고
州 郡 冠 盖 知 多 少 각 고을 관리들 많이도 모였는데
翼 然 傑 構 究 兀 起 나를 듯 헌걸하게 우뚝 솟은 집은
左 倉 右 庫 干 彼 涘 저 물가의 좌창과 우고라네
․․․․․ ․․․․․
이 두 편의 시에 의하면 유정당은 웅장할 정도로 규모가 상당히 컸을 뿐 아니라 시공 수준도 높았던 건물로 보입니다.
바다를 내다 볼 수 있는 전망을 가졌다고 했는데, 아마 대청에 앉아 마산 앞바다에 둥실 떠있는 돝섬을 훤히 내다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정당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고 그간 연구조차 없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겨우 『창원보첩』에 대청(유정당) 7칸․동별당 6칸․서별당 5칸․동고 15칸․서고 13칸․좌익랑 2칸(추정)․우익랑 2칸(추정)․행랑 3칸으로 총 8동 53칸 정도라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마산도시의 발원지였던 마산창이 남겨 놓은 것은 없습니다.
창동(倉洞)이란 지명과 이곳이 마산창 터였음을 알려주는 표지석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오가는 행인들은 알까요?
바로 이 곳이 오늘 마산도시의 발원지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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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포에 조창이 서다>
조선은 태조 재위 중 고려 때 실시하였던 조창제도를 거의 복구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전국 아홉 개 조창에서 세곡을 수납했습니다.
내륙 수로로 연결되는 조창이 충주의 사흥창(司興倉)․원주의 흥원창(興原倉)․춘천의 소양강창(昭陽江倉)․황해도 백천(白川)의 금곡포창(金谷浦倉)․강음(江陰)의 조읍포창(助邑浦倉)의 다섯 개였고,
바닷길이 연결되는 조창은 충청도 아산(牙山)의 공세관창(貢稅串倉)․전라도 용안의 덕성창(德成倉)․영광의 법성창(法聖倉)․나주의 영산창(榮山倉) 네 개였습니다.
경상도의 세곡은 충주의 사흥창에서 수납하였습니다.
조선중기를 지나면서 조운제도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조선(漕船)의 빈번한 침몰사고와 민간인에게 운임을 지불하고 운송하는 임운(賃運)이 생기면서 조창의 기능은 점점 위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조창이 폐쇄되거나 관할구역이 축소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조정은 민호(民戶)를 기준으로 한 공물(貢物)과세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토지기준 과세인 대동법을 실시합니다.
대동법(大同法)은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세금 제도이며 이 때 걷은 쌀을 대동미(大同米)라 불렀습니다.
광해군 즉위년인 1608년 경기도에 처음 실시한 대동법은 이후 강원도․충청도 등으로 확산 혹은 축소되기도 하다가 숙종 3년(1677년)에는 경상도에 시행되고 숙종 34년(1708년)에 황해도를 마지막으로 100년에 걸친 시도 끝에 함경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전국에 시행되었습니다.
이후 영조 36년(1760년)에 경상도 관찰사 조엄(趙曮)이 경상도 지방의 대동미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반하기 위한 조창을 세우도록 건의하여 결정됩니다.
그 때 지금의 경남지방에는 창원의 마산창(馬山倉)과 진주의 가산창(駕山倉), 곧 경상도 좌우 양창(兩倉)이 설치되었습니다. 250년 전 일입니다.
5년 뒤 밀양의 삼랑창(三浪倉)을 후조창(後漕倉)으로 설치하여 경상도에 3곳의 조창을 두었습니다.
마산창(馬山倉)의 위치는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지금의 남성동 파출소 일대입니다.
당시에는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해안이었지만 지금은 매립이 되어 도시 한복판입니다.
-마산창의 터와 건물 등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보다 상세히 올리겠습니다-
마산창의 관할구역은 창원․함안․칠원․진해․거제․웅천․의령 동북면․고성동남면의 8개 읍이었는데 거제와 고성은 1765년에 위치관계로 거제 견내량의 속창(屬倉)에서 관장하였습니다.
여기서의 진해는 지금의 마산시 진동면 일대입니다. 진해라는 명칭은 1907년 일본에 의해 당시 웅서면이었던 현재의 진해시로 넘어갔습니다.
아래 그림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각선도본(各船圖本)에 실린 조운선 그림과 조선시대 이용했던 조운선의 모형입니다.
그림에서는 배의 골격만 나타내었지만 모형은 섬세하게 복원하였습니다.
배의 기본 구조 위에 삼판(杉板)을 얹어 용적량을 늘린 것이 특징이며 배 안에다 세곡을 적재했습니다.
초 봄에 이런 조운선 16척이 각 읍에서 보내온 대동미 9,215석(石) 5두(斗)를 싣고 마산포를 출발하여 거제 견내량→고성 사량도→남해 노량→전라도 영암 갈두포→진도 벽파정→무안 탑성도→영광 법성포→만경 군산포→충청도 태안 서근포→보령 난지포→경기도 강화 이고지포를 지나 한강 마포에 있는 경창(京倉)에 6월 하순경 도착합니다.
1886년 일본과 미국의 차관으로 구입한 기선 해룡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든 세곡이 이 배로 수송되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석두창 때문에 번성했던 포구였으며,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 계획으로 한 때 동아시아의 군사거점도시이기도 했던 곳이 마산지역입니다.
그러나 고려의 조창 기능도 사라지고 몽고군도 떠나자 조선시대 마산포는 조용한 포구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런 마산포가 다시 도시적 형태를 띠면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마산창(馬山倉)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산창 건립은 오늘날 마산도시의 기원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마산창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때문에 집이 들어서고 길이 생겨 마산포가 도시적 형태를 띠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구도심이라 불리며 도시재생의 대상으로 거명되기도 하지만,
250년 전에 들어선 마산창 주변인 창동, 남성동, 동성동 일대는 아직도 마산의 중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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