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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마산포와 신마산이 연결되다 - 중앙마산의 형성>

오늘부터는 ‘중앙마산의 형성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앙마산’이란, 20세기 초에 존재했던 마산의 두 도시, 즉 옛 부터 자연발생적 취락으로 발전해온 '원마산(마산포)'과 일본인들이 건설한 조계지 '신마산'의 중간 지역을 말합니다.
두 도시 사이에는 약 2㎞ 정도의 이격공간(離隔空間)이 있었는데, 이 범위 안에 조성된, 혹은 조성될 도시공간인데 지금 상황에서 보면 대략 마산합포구청(구 마산시청)에서 부터 3.15의거탑까지를 말합니다.


사실 마산포(원마산)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리 잡은 신마산(조계지)은 태생 때부터 이미 마산포와의 도시연담화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각국공동조계지의 위치를 결정할 때부터 연담도시를 의도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항 직후부터 원마산 방향으로 서서히 도시영역을 확장해온 일본인들은 합방 때인 1910년경에 이미 조계지의 북쪽 경계인 신월천을 훨씬 넘어서 장군천까지 진출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1920년대의 마산도시를 알 수 있는 각종 자료를 보면 1920년대 초기까지 신설도로는 장군천까지 개설되었습니다.
건물도 마산 역에서 장군천으로 이어지는 사선형(斜線形) 도로 위쪽에만 들어서 있습니다.
그러다가 1920년대 중반이 되면서 서서히 건축물들이 장군천 주변에 들어서기 시작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선형 도로는 다음의 도로입니다.



원마산과 신마산 두 도시가 이렇게 나누어져 있었던 원인은 보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로 러일전쟁기에 맺어진 치욕적인 한일의정서에 의해 강탈당한 철도용지, 즉 신마산과 원마산 사이에 있는 지금의 완월동․장군동․중앙동 일대인 중앙마산지역을 일본 군부가 군사용 철도용지에 편입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때 결정된 철도용지는 강점기 후 변화하는 마산의 두 도시의 연결을 차단했으며 이로 인한 부민들의 불편도 많았습니다.

1920년대 중반 이후에 와서야 철도용지가 해제되고 중앙마산은 관공서 건물이 군집(群集)하는 공공업무지역 성격의 도시로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나누어져 있던 두 도시가 연결되기 사작한 것이죠.

이러한 중앙마산변화의 전(全) 과정을 다음 포스팅부터 설명하려 합니다.
당시 나온 각종 지도와 문헌 자료를 이용할 것입니다.

중앙마산변화의 핵심은 이 지역을 철도용지로 묶는 과정과 그것을 푸는 과정입니다.
철도용지로 묶는 과정은 이런저런 자료가 있어서 비교적 쉽게 정리가 되었습니다만 해제과정은 자료가 많지 않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정황을 참고해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글쓰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주부터 싣겠습니다.

1) 중앙마산이 철도용지로 된 원인
2) 중앙마산이 철도용지로 강점되는 과정
3) 각종 문헌에 나타나는 중앙마산의 철도용지
4) 문헌을 통해본 당시상황과 중앙마산의 도시계획
5) 중앙마산의 형성과 의미 <<<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2011/12/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2011/12/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2011/12/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0) - 강점제2시기
2012/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1)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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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4)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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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1) - 강점제1시기

-일본인의 마산포 토지 소유-

남성동의 매립으로 1912년 당시 전체면적의 31.4%이던 일본인 소유 토지가 1920년에는 35.0%로 변했습니다.

매립 직후에는 매립시행자인 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이 전량 소유함에 따라 41.1%로 급증하였다가 35.0%가 된 것입니다.

이 시기 한국인들이 소유한 토지는 1912년 당시 63.2% 이었으나 1920년에는 62.5%로 줄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토지소유변화를 단순 비교하면 일본인 소유의 토지는 3.6% 증가하고 한국인 토지는 0.7% 줄어든 셈입니다.

아래 표는 1912년과 1920년의 마산포 토지소유 변화를 나타낸 것입니다.

 구분 정부. 마산부  기업. 단체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게
 필지수  5  10 853   271 18   1,157
 비(%)  0.4 0.9   73.7 23.4   1.6 100.0 
 면적 5,783.54  1,299.18  107,051.13  53,228.14  2,105.79  169,467.77 
 비(%) 3.4  0.8  63.2  31.4  1.2  100.0 
 필지평균  1,156.71 129.92  125.50  196.41  169.99  146.47 

 필지수 10  981 274 12  1,286
 비(%)  0.7 0.8  76.3  21.3   0.9  100.0
 면적 760.99  2,714.05  116,320.88  65,000.11  1,323.64  186,119.67 
 비(%) 0.4  1.5  62.5  35.0  0.7  100.0 
 필지평균 84.55  271.41  118.57   237.23 110.30  144.73 
             


그렇지만 원마산(마산포)에 새로 조성된 박간(迫間) 소유의 토지가 8,078평이었던 것을 감안해보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오히려 이 시기에 박간 외에 다른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에게 1912년 이전에 사들였던 토지를 상당히 넘겼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1912년과 1920년 토지소유를 비교한 아래의 두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 가능합니다.

이렇게 일인 소유의 부지가 1910년 대 후기 동안 작아진 이유는, 매립지 때문에 중심상권이 바뀌면서 발생한 소유권 이동 및 사업장 이동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신마산과 원마산이라는 두 핵에만 집중해 있던 여러 시설들이 시내 전역으로 흩어지는 시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원마산 중심상권에 변화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이미 전국에 알려질 정도의 시장으로 발전해 있던 마산포장(馬山浦場)이 매립이라고 하는 새로운 변화에 의해 크게 바뀌었습니다.
굴강과 선창은 없어지고 박간의 토지가 원마산 해안의 중심이 되는 구역을 차지하게 되어 마산포는 바다와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일찍이 창원부윤 이기(李琦)는 마산포가 매립되면 도시구조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예측하여 1907년(隆熙元年) 11월1일, 일본인 홍청삼(弘淸三)이 세우고 있던 원마산 해안매립계획을 무산시키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당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올렸던 보고에서 「․․․만약에 (원마산 해안을) 타인이 매립해 버리면 (원마산은)입이 틀어 막힌 목구멍이나 문이 잠겨버린 집과 같이 되어 (원마산 내의) 수천 호 주민은 결국 생업을 잃고 흩어져 비참하게 될 것이라․․․ (
昌原港案1, 議政府 外事局, 隆熙元年11月1日字 報告 第3號 / ․․․萬若讓與於他人埋築오면 便同塞口之咽喉요 閉戶之門扉라 本港幾千戶居民은 勢將失業渙散乃己기․․․)고 했는데 이 예측이 현실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② 일본인의 소유변화가 수성동 일대에서는 적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성동은 새로 조성된 매립지와 가깝고 상업용보다 주거용의 건물이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상권변화의 영향이 적은 지역이었습니다.
위의 두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인들의 토지매매는 수성동을 제외한 동성동․오동동․중성동 등에 산재해 있던 토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중심권으로 부상한 매립지 부근의 땅은 매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동안 지속해 왔던 서성선창과 백일세 선창, 그리고 서굴강이 없어지고 외부에서 마산의 선창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새로 개통되는 도시구조의 변화는 당시의 원마산 상권이동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두 사실을 근거로 볼 때, 일본인들의 토지매도 이유는 원마산의 상권이동과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이동 장소는 박간의 매립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중심상권으로 부각된 매립지로 옮겨가기 위해 그 때까지 소유하고 있었던 토지를 처분하거나 아니면 사업장을 그곳으로 이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간파한 박간이 매립지의 차지료(借地料)를 고가로 받았던 것입니다.

매립으로 일인소유의 토지 필지 수는 271필지에서 274필지로 3필지 늘었습니다. 필지 당 평균면적도 196.4㎡에서 237.2㎡로 40.8㎡가 커졌습니다.

일본인 소유의 토지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소규모 형태에서 매립으로 조성된 큰 규모의 형태로 변하는 과정에서 그 단위면적이 커진 것입니다.

이는 1910년대 초기에 비해 일본인들의 소규모 토지 중 일부가 한국인에게 다시 넘어갔지만 대신 중심상권지역에 대한 지배는 강화된 결과입니다.

이런 변화는 개항 때부터 시작된 일인들의 원마산 토지지배가 점점 구체화․집중화되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통계도 일본기업을 제하고 개인 소유의 토지만 계산한 것이므로 실제로 기업소유의 토지까지 합한다면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율은 이 보다 더 높았습니다. 기업소유 부지 중 거의 전부가 일본기업이었기 때문에 이런 계산이 가능합니다.

이에 비해 중국인 소유의 토지는 1912년 당시 1.2%, 18필지였던 것이 1920년에는 0.7%, 12필지로 변하였습니다.

중국인 소유의 토지가 이렇게 작아진 이유는 일본의 지배체제가 합방 이후 점점 강화되면서 중국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림동 일대 중국인 집단주거 현상도 강점기가 지나는 동안 많이 퇴색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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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0) - 강점제1시기

<달라진 마산포 해안>

1910년대 마산포에는 해안선 변화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최초의 대규모 매립공사가 이루어져 석축돌제 등만 조금 있었던 자연형의 해안에 凹형의 폭 약 300m에 이르는 석축 호안과 정박장이 생긴 것입니다.

또한 해안선이 당시 수심 약 2m 정도(당시 수심 기록된 지도로 확인)까지 바다 쪽으로 진출하면서 이전 시기에 비해 훨씬 발전된 형태의 부두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공사가 완성되기 전에는 간석지역의 굴강에 선박을 정박하였을 경우, 간조(干潮) 때에는 수심이 낮아 선박의 이동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남성동 매립으로 오랜 세월 동안 원마산 해안을 지켜온 네 개의 선창과 두 개의 굴강 중 서굴강을 포함하여 서성선창과 백일세선창은 완전히 그 모습이 사라졌으며, 매립지에서 벗어나 있던 동굴강과 어선창․오산선창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동굴강은 위치상 매립에 포함될 부분이었지만 아래 그림처럼 매립 후 상당기간까지 존속하였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그림은 제가 복원한 1920년 도면인데 첫번째 지도와 똑 같습니다.

 




동굴강을 그대로 둔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매립이 필요 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매립 시 방파제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여(방파제는 1924년에 조성) 방파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동굴강의 가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마산포 한국사람들의 원성을 우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동굴강만은 1927년에 일부가 매립되고 1935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매립되어 사라집니다.

박간(迫間)의 매립으로 만들어진 원마산의 해안은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시행된 구항 매립 때까지 70여 년 동안 사용되면서 마산항의 중심부로 이용되었습니다.

凹형의 오목하게 파인 부분은 거제 통영 등 인근연안 여객선이 드나들던 유서 깊은 해안이었죠.

저도 청년시절 배낭메고 거제로 캠핑 갈 때 이 부두에서 배에 올랐습니다. 지금 농협 어시장 지점 자리입니다.<<<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2011/05/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0) - 강점 제1시기
2011/06/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2011/06/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2) - 강점 제1시기
2011/06/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3) - 강점제1시기
2011/06/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4) - 강점제1시기
2011/07/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5) - 강점제1시기
2011/07/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6) - 강점제1시기
2011/07/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7) - 강점제1시기
2011/07/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8) - 강점제1시기
2011/08/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9) - 강점 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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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9) - 강점제1시기


<1910년대 마산포 도로>

1912년부터 1915년까지의 시기에 일어난 마산포의 대대적인 도로개설공사 결과, 그 때까지 자연발생 취락에서 생긴 꾸불꾸불하고 좁은 길을 자르면서 폭 8-10m의 직선형 도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때맞춰 시행한 매립지에서도 같은 크기의 도로가 개설되면서 두 지역의 도로들이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도로의 규모와 형태변화는 마산포(원마산) 도시구조에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마산포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모인 시기를 마산창이 개설된 1760년으로 볼 때 이것은 실로 150년 만의 대변화였습니다.

지난 주에 보았지만 다시 한 번 더 매립 후 달라진 마산포 도면을 보겠습니다.
매립과 도로개설 이전의 도면과 이후 도면입니다.


이 도면
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기에 동서방향으로 동성동에서 부림동을 지나 신마산과 이어지는 도로(현 남성동 파출소 앞도로)와 신마산에서 시작하여 북마산 지역을 지나 창원으로 연결되던 외곽도로(좌상단)가 뚫였습니다.

그리고 교방동과 회원동 지역, 성호동과 추산동지역이 원마산과 원활히 연결되게하는 두 도로(현 부림시장과 창동 네거리를 지나는 도로)도 뚫렸습니다.
성호동의 현 성호초등학교 진입도로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좌측, 즉 신마산에서 들어와 동서로 길게 뻗은 도로의 동쪽 끝 부분 공지는 개인 소유지였습니다.
지도의 형태를 보면 이 땅은 정차장이나 회차장(回車場)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성동 101, 105, 124번지로 추정되는데 현 본초당한의원과 한마빌딩 사이의 부지로 추정됩니다.

마산포 도로개설공사는 1915년 이전까지 시행되었으며 1915년 이후부터 1920년까지는 별로 없었습니다. 1918년 수성동의 남쪽부분에 있던 폭3-4m 도로가 6-7m의 폭으로 넓혀졌을 뿐입니다.
새롭게 개설된 직선형 도로는 매립지에는 6m와 10m, 조창 부근에 개설한 도로는 8m와 10m의 폭이었습니다.

1910년 당시 원마산 복원도에 의하면 전체면적은 198,369.27㎡였는데 그 중 대지 면적이 169.467.77㎡이었으며 도로 면적은 28,901.50㎡로 도로율이 14.57%였습니다.

그러나 박간(迫間)의 남성동매립으로 원마산의 면적은 원래 면적의 19.4%인 38,479.34㎡가 늘어나 236,848.61㎡로 변했으며 도로면적은 매립과 신설도로 등으로 인해 원래 면적의 무려 75.5%나 되는 21,826.44㎡가 늘어난 50,727.94㎡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원마산의 도로율은 1910년 당시 14.57%였던 것이 1920년에는 21.42%로 급증하였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도로율이 높아진 시점은 매립과 도로개설사업이 종결된 1915년경으로서, 약 3-4년에 걸쳐 일어난 변화였습니다.

마산포 도시의 근대화는 이렇게 식민지배를 위한 일본의 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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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8) - 강점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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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8) - 강점제1시기

<마산포에 뚫린 최초의 신작로>

통감부 시절인 1907년경에 이미 마산포의 도로 폭을 조금 넓히거나 형태를 곧게 하는 가로개수 공사가 마산경찰서 주관으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근대식 도로가 건설된 것은 1912년부터 1915년까지였습니다.

이 때 개설된 도로들을 사정토지대장에서 확인해 보면 1912년부터 1915년까지이지만 시기는 다양합니다. 도로의 개설 시기가 토지대장에 기록된 시기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 3-4년 사이에 공사가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업으로 자연발생적인 좁은 골목길뿐이었던 마산포에 폭8m, 10m의 쭉 뻗은 새 도로가 신설되었습니다.

다음 도면은 도로가 개설되기 전의 마산포와 개설 후 모습, 그리고 도로개설 후인 1916년 지도에 나타나는 마산포 모습입니다.
두 번째 도면에서 직선으로 뻗은 넓은 길이 신설된 계획도로입니다.

 

박간(迫間, 하사마)에 의한 매립공사가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시행된 것을 감안하면 이 도로개설공사는 매립공사와 동시에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진행되었을뿐만 아니라 마산포 전체의 도로망 구성을 볼 때 매립지의 도로망과 신설된 도로망은 마산포 전체도로계획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마산의 계획도로 개설은 당시 조선총독부가 1912년 10월 7일에 조선총독부관보 제56호로 각도 장관에게 보낸 훈령 제9호로부터 시작된 전국적 규모의 「시구개정사업」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구개정사업」이란 도시의 도로․교량․하천 등을 근대적으로 정비하고, 구획별로 건축물의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도시계획의 성격입니다.

총독부 훈령 내용은「지방에 있어서 추요(樞要)한 시가지의 시구개정 또는 확장을 하려고 할 때에는 그 계획설명서 및 도면을 첨부하여 미리 인가를 받을 것. 다만 일부의 경이(輕易)한 변경은 그러하지 아니하다」입니다.

이 시구개정사업에 관한 훈령에는 그 구체적인 목적과 비용부담 등에 관한 설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 장의 훈령이 그로부터 20년 이상이나 한국 땅 안의 시가지를 개조하고 규제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마산의 일본지식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마산항지』에서 이 도로개설사업에 대하여「마산포의 시구개정문제(馬山浦ノ市區改正問題)」와 「제4회 민회의원선거」라는 항목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마산의 민회의원 16명 중 마산포에 거주한 의원이 7명이었다. 그런데 마산포와 신마산에 거주하는 의원들끼리 서로 마산포에 개설될 도로의 노선(路線)에 관한 이해관계 때문에 다툼이 많아 회의가 계속 공전되면서 결론을 얻지 못했다. 결국 당국에 일임하게 되었지만 시행하지 못하다가 1912년 제4회 민회의원들에 의해 마산포의 도로개설사업이 비로소 최종 확정되었다. 모두 13호선까지 계획했으나 높은 지가(地價) 때문에 1호에서 5호까지만 공사를 하고 6호부터 13호까지는 시행하지 못했다」

계획도로의 노선 때문에 민회가 공전되고, 민회의원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싸웠으며, 높은 지가 때문에 계획한 것만큼 공사를 시행하지 못했다는 등의 사실은 당시 마산포가 얼마나 상업중심지로서 가치가 높았던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기야 당시 나온 자료를 보면 마산포가 신마산에 비해 훨씬 거래량이 많았으며 이 때문에 신마산의 일본인들도 마산포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니 세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마 앞의 두번째 그림에 표기된 신설도로가 위 기록에 나오는 1호에서 5호까지의 도로일 것입니다. 그러나 6호부터 13호는 시행하지 못했다니, 그곳이 어딘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때 신설된 도로의 위치는 가능한 한 기존의 골목길을 확장하여 도로를 개설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① 기존 도로의 체계를 유지하고
②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보편적인 방법을 선택했으며
③ 토지 보상비용의 절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1912년 토지이용도와 1920년 토지이용도를 비교해 보면 대부분의 도로가 기존의 골목길을 넓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산항지』에「도시계획에 저촉되는 대지의 보상비가 너무 고가였다」라는 내용을 보아도 기존 골목길을 도로로 활용하여 비용절감효과를 노렸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때 뜷린 도로는 마산포 최초의 근대식 도로로서 신마산에서 시작된 장군로와 이어졌으며 매립지의 도로와도 연결되었습니다.
비록 미미하지만 원마산에 최초로 격자형의 근대적 도로망을 갖추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최초로 나타난 정형의 부지와 근대적 도로는 이미 원마산 상권의 중심지였던 이 일대를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번에 걸쳐 살펴 본 바와 같이 ‘남성동 매립’ ‘마산창 철거’ ‘근대식도로개설’ 등 1910년대에 나타난 마산포의 세 가지 변화는 1760년 조창 설립 이래 지속되어온 원마산 도시공간형태를 대폭 바꾸어놓았습니다.

이 변화가 1910년대 전반기 동시에 일어났다는 점에서(매립 1911-1914, 마산창 철거 1913, 도로개설 1912-1915) 이미 통감부 시대부터 시작된 식민지배 기반구축사업의 일환으로 파악됩니다.

즉 신마산에 자리 잡은 일본인들이 이동에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그들의 '최고의 시장'이라고 여겼던 마산포를 적극적으로 개발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효율적이고 근대적인 도시시설을 준비하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식민도시정책의 적극적인 준비’였습니다.<<<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2011/05/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0) - 강점 제1시기
2011/06/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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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7) - 강점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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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6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7) - 강점제1시기


오늘부터는 1910년대 마산포(원마산)의 변화에 대해 올리겠습니다.
이 시기 마산포에는 세 가지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남성동 매립. 마산창의 철거. 그리고 근대식 도로개설입니다.
남성동 매립에 대해서는 이미 직전 '매립'부분 (2011/09/19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6) - 강점제1시기)에서 포스팅했기 때문에 생략하고 오늘은 마산창 철거, 다음 주는 근대식 도로개설에 대해서 올리겠습니다.


<마산창 유정당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1913년, 마산창이 자리 잡고 있던 1,500여 평의 정사각형 땅에 격자형의 8m, 10m 도로가 뚫려 세 토막으로 잘리고 잘린 땅들은 수십 평 규모로 낱낱이 분할되었습니다.

그리고 1760년 개창한 이래 150여 년 동안 우리 지역에서 위계상 가장 높은 지위로 위풍당당했던 마산창 본당 유정당(惟正堂)과 8동 53칸의 부속건물들이 모두 헐렸습니다. 식민지가 되어버린 이 나라의 운명처럼 마산창 터와 유정당이 갈갈이 찢긴 겁니다.

당시 마산에 들어온 가톨릭에서 완월리에 성당을 짓기 전에 이 유정당을 매입해 성당으로 사용할 것을 고려했다가 도심지라 너무 비싸 포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때 가톨릭에서 구입했다면 지금 창동은 어떻게 변해있을까요?
무의미하지만 재미있는 상상입니다.

전통의 유정당이 헐릴 때,,,
긴 세월 떵떵거렸던 건물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1,500평 땅까지 참담하게 잘려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마산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당시 마산창의 위치입니다.


당시 관례로는 좋은 건물을 헐때는 기둥이나 들보 등 중요 자재는 버리지 않고 이축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건물을 짓는데 재사용하였습니다.

가까운 예로, 창원시 대방동에 있는 불곡사 일주문을 들 수 있습니다.
보통 일주문은 기둥이 두 개인데 불곡사 일주문 기둥은 4개입니다만 아래 사진처럼 기둥이 한 줄로 배치되었으니 일주문이 맞긴 맞습니다.

불곡사 일주문은 원래 창원객사의 삼문이었는데 1882년(고종 19) 웅천향교로 옮겼다고 합니다.
삼문은 대궐이나 관청 앞 남향 정문인데 문 세 개가 붙어 있는 것으로 가운데를 정문, 오른쪽을 동협문, 왼쪽을 서협문이라 부릅니다.
1914년 웅천향교가 창원향교와 통합되면서 향교의 다른 건물은 철거되고 삼문만 남은 것을 1943년 불곡사로 옮긴 것입니다.

이곳 저곳 옮겨다닌 저 기둥들을 한번 보시죠.
 


따라서「유정당」 정도의 건물이라면 당연히 어딘가에 남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때가 때인 만큼(한일병합기) 이와 관련한 어떤 기록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 모르죠, 우리 가까이 있는 어떤 목조건물의 기둥과 들보가 유정당의 그것인지,,,

마산창의 건물에 대해서는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규모가 컸을뿐 아니라 시공수준도 높고 입지도 좋아 품격이 높은 건축물이었습니다.

유정당 사진입니다.


유정당이 헐리면서 분할된 마산창 부지는 대구소재 주식회사 경상(慶尙)농공은행를 비롯하여 일본과 한국의 개인소유가 되어 중심상업지 기능을 하면서 일제강점기를 지났고, 지금도 남성동 파출소, 제일은행마산지점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번 올린 적이 있지만 다시 소개합니다.

그림에 조예가 깊었던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승지, 교리, 수찬을 역임하고 1766년 대사간을 지낸 창암(蒼巖) 박사해(朴師海, 1711년-?)가 유정당 준공 후 지은 시(詩)입니다.

 

-漕倉 惟正堂-              朴師海

坐 來 新 棟 宇              새로 지은 당(堂)에 와 앉으니

蕭 灑 客 心 淸              나그네 마음 상쾌하게 맑아지네.

海 色 楹 間 入              바다 빛은 난간 사이로 스며들고

島 霞 席 底 生              섬 노을은 자리 밑에서 일어나네.

倘 非 經 緯 密              경위(經緯)가 치밀하지 않았더라면

那 得 設 施 宏              어찌 규모가 넓었으리오.

南 路 知 高 枕              남쪽 지방이 태평함을 알겠거니

蠻 氓 可 樂 成              변방 백성들이 즐겨 지었다오.<<<




2011/05/16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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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3) - 강점제1시기


마산최초의 근대식 지도

<馬山>

1916년 / 육지측량부 / 조선총독부 / 1:10,000 / / 울산대 도서관

이 지도는 근대적 측량법에 의해서 제작된 최초의 마산 지도입니다.
1916년에 측도하여 1917년에 제판하였고 1917년 6월 25일 인쇄하여 6월 30일 발행하였습니다.
저작권소유자는 조선총독부이고 인쇄 겸 발행자는 육지측량부입니다.

정가(定價)가 십팔전(金拾八錢)이라고 기재된 것을 보아 판매도 했던 것 같습니다.
범례도 지금까지의 것과 달리 각종 시설물은 물론 토지의 상태와 도로의 종류 및 행정구역의 경계까지 세밀히 나누어 표기해 놓았습니다.

본 지도의 제작과정에 관해서 1986년 백서방(栢書房)에서 펴낸 淸水靖夫의 『日本統治機關作製にかかる朝鮮半島地形圖の槪要』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조선의 일 만분의 일 지형도는 주요도시의 대부분에 걸쳐서 작성되었는데 당초에는 45도시, 제2차대전 말기에는 63도시까지 시행되었다. 이것은 일본과 비교해도 놀랄 일로서 당시 일본에서는 6대 도시와 일부의 연습지(演習地) 뿐이었지만 조선에서는 지방정치의 중심지는 물론이고 역사도시, 군사도시는 인구 일만 이사 도시에도 시행되었다.

이것은 한일합방 후 정치적인 예민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민간 도시지도 제작술의 미 발달에 의한 영향도 크다.

일 만분의 일 지형도 제작의 시기는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그 하나는 오만분일 지형도 측량 때 동시에 행해진 것으로서 1915-1917에 43지구, 1919년과 1920년에 각 1지구가 제작되어 당초의 45도시가 된다.

두 번째는 1929년부터 1938년까지 19지구가 제작되었으며 지방도시에 미치고 있다.

당초는 道路․集落 ; 赤, 水部․水田 ; 靑, 地貌 ; 茶, 植生(森林등) ; 綠, 注記․鐵道․地類記號 ; 黑의 5색 인쇄로서 ‘京城’의 菊判2枚, ‘平壤’의 四六變形判, 진남포, 부산, 마산의 菊判이외는 전부 柾判이었다.

시가지의 확대, 주변부의 도시화와의 관계에서 점차로 圖積을 정판에서 국판 또는 四六판, 2면에서 4면으로 크게 하고 주변부를 포함하게끔 되어있다. 색채는 제2회 수정(주로 1919-1922)이후 植生(森林등)의 錄의 特殊網版을 폐하고 등고선을 녹으로 한 4색인쇄로 하고 대부분은 이대로 제2차대전 종료까지 계속하고 있다.

4색인쇄 중에는 赤版의 集落에 문자가 그대로 겹쳐져서 인쇄되어 있는 것과 문자 밑에 적판이 없이 희게 된 것도 있다.

전자는 희게 묘사한 집에 판상으로 万線을 덮어 놓은 것도 있고 후자는 銅原版上으로 이미 가옥에 万線이 그려져서 原版은 1색으로 완성되고 인쇄과정에서 색판마다 分版한 것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일 만분의 일 지형도는 거의 여기에 해당한다. 더욱이 ‘경성’4면은 4색 인쇄 외에 1색 인쇄도 판매되어 있다.

 

이상의 제작과정 기록을 보면 이 지도는 1:10,000 지형도 제작의 1단계였던 1915년-1917년, 43개 도시에 걸쳐 제작될 때 만들어 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소개한 1:50,000 「마산(군사극비)」지도 제작 때 동시에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래는 채색판인데 제가 입수한 것은 흑백 영인본입니다.

지도에서 나타나는 도시공간의 변화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1910년대 중반까지 변한 마산의 도시공간을 정밀하게 알 수 있습니다. 도시의 가로 및 건물 등의 상황뿐만 아니라 해안선과 작은 선착장에 이르기 까지 조그마한 시설물도 대부분 표기되어 있습니다.

공공건물은 물론 교량 명칭도 대부분 표기되어 있으며 일본인들의 종교시설인 복수사(福壽寺, 현 마산여고 담장 남서쪽 모퉁이 부근), 본파본원사(本派本願寺, 전 KBS방송국자리), 묘국사(妙國寺, 장군교의 북서쪽 모퉁이)와 피병원(避病院) 2개소(신마산은 현 월성초등학교 남쪽, 원마산은 현 성호초등학교 서쪽 환주산 언저리) 및 화장장(火葬場, 현 산복도로 위쪽 완월계곡 남쪽 산기슭) 등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신마산지역의 도시 상황도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지도와 내용상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보아 한일병합 후 도시공간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에서도 장군천까지는 신마산 도시가 확장되었으나 장군천 이북은 지방법원지청과 전기회사만 있을 뿐 원마산까지 아무 시설도 없습니다.

구도로(옛 크리스탈호텔 앞 도로)변에 몇몇 건물이 있을 뿐인데 이것으로도 신마산과 원마산(마산포) 두 도시의 연담화는 아직 요원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내용은 원마산의 변화인데 일본인 박간(迫間)에 의한 남성동 매립과 최초의 근대식 도로가 개설된 것이 정확히 나타난 것입니다.

매립지에는 이미 우편소라는 이름으로 건물도 들어서 있으며 이 밖에 몇몇 건물이 더 표기되어 있습니다.

박간이 남성동 해안을 매립한 후에도 동굴강은 매립되지 않다가 1927년에 일부 매립되고 1935년 매립 때 완전히 자취를 감춥니다.
이런 상황이 반영되어 이 지도에 동굴강이 본 모습으로 형태를 드러내고 있으며 신마산에서 원마산의 중심부까지 연결되는 도로와 원마산 중심부 일대의 근대식 직선도로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편, 원마산 도시 영역은 아주 미미하지만 북쪽 방향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삼각형의 원마산 외곽선 형태 는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1910년대의 마산도시구조 변화는 이 지도로 인해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마산도시변천사를 알려주는 정말 귀중한 자료입니다.

위 지도를 현재 위성사진으로 옮겨보았습니다.<<<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2011/05/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0) - 강점 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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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6) - 강점제1시기

<1910년대 건축물>

1910년대에는 마산에 도시변화가 많이 없었던만큼 건축공사도 많이 없었습니다. 종교시설과 일부 교육시설만 약간 들어섰습니다.
개항기에는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한 관아시설들이 주로 건설되었지만 이 시기에는 개항기에 지어 놓은 건물들의 증․개축이 많았으며 관아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용 건물이 많았습니다.

또한 목조건축물이 많았던 이전과 달리 이 시기부터는 벽돌을 이용한 조적조 건축물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적으로 보면 신마산에 집중되었던 건물들이 서서히 원마산 쪽으로 뻗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10년 장군천 이북에 지방법원지청이 들어섰고 현 마산시청 자리에 전기회사가 들어오는 등 공공건물들이 건축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일대(옛 마산시청부근)가 신마산의 마산포 진출이라는 의미 외에 마산포와 신마산 양도시를 관장하는 공공업무지구 성격의 새로운 영역(중앙마산)으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910년 건축된 부산지방법원의 마산지청입니다.

1919년 육지측량부에서 제작해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1/10,000지도「마산」을 보면 마산포에 근대식 시설들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현 삼성생명 부지에 부산감옥 마산분관과 인근에 동척(東拓)출장소, 그리고 전 북마산 파출소 앞의 삼성라디에타 부지에 조면공장(繰綿工場)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또 옛 중앙극장 건너편에 금융조합이, 그리고 보통학교(성호초등학교)와 통도사 포교당, 보통학교의 서쪽 약 250m 지점에 피병원(避病院)이 있습니다.
피병원은 전염병환자 전용병원으로 이 외에 신마산 완월리 아래(현, 마산여고 뒷편)에도 있습니다.
위치를 보아 신마산의 것은 일본인 전용, 원마산의 것은 한국인 전용 아니었나 싶습니다.

1918년에는 조선식산은행이 현 제일은행 부지에 들어섰는데 이 부지는 원래 마산창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이 때 지은 조선식산은행 건물은 해방을 거쳐 현재의 건물을 지은 1970년대까지 이용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았던 근대건축물 중 변변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도시라,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아까운 건물입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이 시기에 건축된 교육시설은 의신여학교와 마산실과고등여학교가 있었습니다.
창신학교 여학생들로서 시작했던 의신여학교 건물은 성지학교에 이어 벽돌조 건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규모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추산동에 있는 포교당 정법사는 1912년 건축되어 최근까지 남았다가 얼마 전 새 건물 짓는다고 철거했습니다. (2011/07/0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5) - 강점제1시기)

불교시설인 포교당을 지은 7년 후(1919년) 마산 최초의 개신교회인 마산포교회가 문창교회로 개명하면서 석조 1층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예배당을 신축하였습니다.
1만 6천원의 건축비를 모아 무학산 기슭의 석재를 사용하여 지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한국교회 석조건물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1911년부터 1920년까지 지은 건물 중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No

건물명

현위치

건축연대

有無

구조 및 규모

양식

면적

비고

1

도립마산병원

 

1911

 

 

 

 

 

2

마산포교당

추산동65

1912

목조1층

한식

30평

통도사正法寺

3

의신여학교

상남동

1913

벽돌조1층

양식

 

창신학교여학생

4

구마산우편소

남성동

1913

 

 

 

매립지(남성동우체국)

5

노동야학교

창동

1914

 

 

140평

1,300엔․교실 6개

6

실과고등여학교

장군동3가

1915

목조1층

의양풍

 

마산여고 전신

7

조선식산은행

남성동3가

1918

벽돌조1층

양식

 

농공은행합병․현제일은행자리

8

문창교회

추산동

1919

석조1층

로마네스크

84평

최초의 석조예배당

9

마산창고(주)

남성동198

1920

 

 

 

한국인 신설회사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2011/05/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0) - 강점 제1시기
2011/06/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2011/06/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2) - 강점 제1시기
2011/06/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3) - 강점 제1시기
2011/06/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4) - 강점 제1시기
2011/07/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5) - 강점 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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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산신세대 2011/08/30 13:16 address edit & del reply

    이런 블로그를 발견해서 뛸듯이 기쁩니다. 그런데 사진을 어떻게 구하시는지요?

    • 허정도 2011/08/30 16:57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사진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구합니다.
      문헌에 나와있는 것들입니다.

2011/06/2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4) - 강점제1시기

<객주들이 마산포 상권지켜>

1910년대 마산의 시가(市街)는 마산포라 불렀던 원마산과 일본인들의 도시 신마산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마산포는 우천이 아니면 어느 때라도 사람들로 붐볐으며 특히 5․10일 장에는 전(全) 지역이 혼잡할 만큼 사람의 왕래와 상거래가 많았습니다.

산업은 상업이 주(主)였고 다음은 어업이었으며 공업은 아직 초보적 단계였습니다. 1911년이 되어서야 종래 재래식 디딜방아뿐이었던 원마산에 일본인 하목철삼(夏目哲三)이 발동기를 이용하는 정미소를 설립한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일한와사(瓦斯, 가스)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이 1911년 3월 16일에 설치 허가되어 중앙동 전 마산시청자리에 발전소를 건립, 같은 해 5월 23일 최초로 전기를 송출한 것을 비롯하여 도시의 변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최초로 전깃불을 생산한 기념으로 옛 마산시청 뒷마당에 세워 놓은 ‘전기불터’ 기념비 사진입니다.

 


금융기관으로는 1905년 제일은행 마산출장소로 시작하여 1907년 월남동(지금의 월남동 천주교회자리)에 신축 건물로 이전한 조선은행 마산출장소 및 경상농공은행 마산지점이 남성동(현 제일은행 자리, 후에 조선식산은행으로 합병)에 있었고 마산금융주식회사․마산지방금융조합․동척출장소 금융부와 민간 대금업자(貸金業者)도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현 남성동 제일은행 자리에 있었던 조선식산은행마산지점입니다. 1918년에 지었습니다. 뒤에 무학산과 학봉이 보입니다.


다음 두 사진은 1911년 발간된 『마산과 진해만』에 수록된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마산지점과 경상농공은행마산지점의 광고입니다.

 

특기할만한 것은 대부분의 동종업자들이 끼리끼리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조합을 구성하여 운영했다는 사실입니다.
조합종류도 곡물상조합․여관조합․주조(酒造)조합에서 이발업조합․농사(農事)조합․고물상조합 등 모두 16업종으로 다양했습니다.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뒤에도 마산의 한국인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상권을 지켜 나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이 그들 스스로 개발한 신마산의 상권을 쥐고 있었던 반면, 한국인 자본가들은 원마산 어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들 대다수는 어시장 객주였습니다.
원마산 어시장은 상인들의 공유재산과 같은 것이어서 원마산 주민의 절반 이상이 어시장 덕에 생계를 꾸려 갔다고 할 만큼 비중이 큰 시장이었습니다.

이처럼 일인들의 침탈 기도를 뿌리치고 어시장 상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 이래 유지되어 온 객주제도 덕분이었습니다.
객주들은 계 조직을 통해 일본 자본가는 물론 다른 지역의 자본 침투도 굳게 막았습니다.
그런가하면 객주들의 계 조직은 이후 상민조합, 합포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마산지역 한국인 자본가의 구심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저축조합까지 운영하면서 상권을 유지 강화하였고, 운송업에도 진출하여 역전의 화물운송업을 차지해 곡물무역업(주로 미곡)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진행된 꾸준한 자본축적이 3․1운동 후 조선회사령이 폐지되자 회사 설립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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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3) - 강점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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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5) - 개항이후

<마산포에서 제일 번화했던 곳은?>

1910년 경 마산포에서 가장 번화했던 곳은 어디일까요?

복원도에 나타나는 1,157필지를 각각 그 사정토지대장을 확인해 각 토지를 등급에 따라 구분하여 그 결과를 그림으로 나타내 당시 도시상황을 확인하였습니다.

토지과세가격과 비교하여 토지등급으로 지가(地價)를 분류해도 오류가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다음 그림은 남성동(당시 元町) 1번지의 사정토지대장입니다.
노란색 원 안에 등급이라는 표기가 되어있는데 등급이 몇 차례 바뀐 흔적이 있습니다.




복원도의 땅 1,157필지는
최저 17등급에서 최고 77등급까지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모두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그림으로 나타내 보았습니다.
 색깔이 짙을수록 비싼 땅, 번화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마산창을 중심으로 서굴강과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남성동 해안 일대가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의 남성동 파출소 아랫길(전 중소기업은행 앞 도로)이 가장 요지(要地)였는데 이 도로변에 1920년 마산 최초의 한국인 회사 「원동상사」가 창업하여 20년대 말 사옥을 신축하였습니다.

중심상권은 중국인 땅이 많았던 부림동과 창동의 경계가 되는 현 경남은행 부림동 지점 앞길로 이어져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창동 네거리의 동서방향 도로변도 지가가 높았습니다.

이러한 중심상권의 영향으로 창동․수성동․부림동․중성동으로 상권이 확산되어 있었지만, 마산포의 동쪽지역인 동성동 일대는 토지등급이 낮아 당시에는 주거지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을 지난 주에 포스팅한 일본인토지소유상황도와 비교해보면 일본인의 마산포 토지매입 현상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비교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그림을 올리겠습니다.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어선창 일대 좁은 지역의 소규모 고가(高價)대지들은 한국인의 소유로 남아있었습니다만 요지(要地) 대부분은 일본인 소유였습니다.

지가가 높은 51등급 이상의 많은 땅들을 비롯해, 특히 71등급 이상의 초고가 대지의 대부분이 일본인 소유였습니다.

한일병합은 1910년 되었지만, 그 시기에 이미 마산포는 이만큼 일본인들에게 먹혀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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