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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직후 시작된 이 도시의 생성과 변화를 31회에 걸친 포스팅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던졌어야할 질문을 뒤늦게 던져봅니다.
그들은 왜 '창원군 외서면 월영리와 신월리 해안'을 개항지로 삼았을까요?
근대 마산의 시작은 개항이었고 개항지는 마산포 남쪽 2㎞지점의 월영리와 신월리 일대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조계지였던 이곳은 ‘신마산’이라 불렀고 그들이 부른 ‘신마산’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항지로 선택되었던 월영리와 신월리,,,,, 그곳은 마산도시의 최남단으로 지형상 말단부였습니다.
동쪽은 합포만, 서쪽은 무학산이 막아 북쪽 마산포 쪽으로만 시역의 확장이 가능했던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자연조건이 이러했슴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조계지로 선정되었던 이유는
① 외부와의 연결은 물론 당시에 문물교류 루트로 이용되었던 해로(海路)와의 입지적 조건이 유리하였으며
② 비록 면적은 넓지 않았지만 경사지와 해안평지를 동시에 끼고 있어서, 산업용지는 평지에 두어 해안을 이용하였고 주거용지는 경사지에 배치해 마산만의 경관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었으며
③ 마산포와는 2㎞ 거리였지만 지형적으로는 해안 평지로 이어지기 때문에 향후 도시 확장과정에서 연결이 용이한 지세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개항지를 결정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월영리와 신월리를 택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신마산의 입지조건은 시역(市域)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무리한 토목공사가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아 가용부지를 넓혀나간 이 도시의 역사는 이와 같은 태생적 조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한 매끄럽지 못한 가로망 연결과 지금도 계속되는 매립 등 마산도시의 비효율적인 도시구조도 개항지의 위치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에 와서 개항지 결정에 대해 백번 말해봐야 자신의 탄생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부질 없는 줄은 알지만 '만약에,,,' 라는 마음이 없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마산의 개항지가 지금의 어시장과 남성동 일대인 '마산포' 였다면, 아니면 오산리였던 산호동이나 내륙이었던 양덕동 쪽이었다면 이 도시는 어찌되었을까요?
오늘처럼 이런 모습일까요?
상상할 수 없는 다른 모습이었을까요?
개항 후 10년,,,,
이 시기는 마산이 근대도시로 기틀을 잡기 시작했던 때였으며 서구의 온갖 근대적 문물들이 마산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던 대변화의 시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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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써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의 '2차 게재' 중 '개항(1899년) 이후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의 시기'가 끝났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음처럼 크게 3단계로 나누어 포스팅할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습니다.
1차 ; 고대부터 개항(1899년)까지
2차 ; 개항이후부터 해방(1945년)까지
3차 ;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미 완료한 '1차 게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고려시대 이전 ------ 9회
조선시대----------- 4회
개항기------------- 12회
합계--------------- 25회 완료
'2차 게재'는 다음처럼 구성하기로 했으며 그 첫번째 순서를 마쳤습니다.
개항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총 32회 (26회부터 57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1시기(1911년부터 1920년까지)
일제강점 제2시기(1921년부터 1930년까지)
일제강점 제3시기(1931년부터 1945년까지)
'3차 게재' 계획입니다.
산업화 이전시기(1945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도약 및 전성기(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체 및 쇠락기(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 본 연재는 마산도시를 연구하면서 확보한 자료를 공유하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혹시 좋은 자료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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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포의 길과 땅>
-마산포의 길-
포구를 끼고 발생한 마을의 경우, 마을 규모가 작을 때는 한 개의 선창을 중심으로 단순하지만 마을 규모가 클 때는 몇 개의 선창을 연결하는 주도로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길들이 형성됩니다.
마산포의 경우는 후자처럼 창원가도(昌原街道)를 중심으로 수계(水系)와 능선 그리고 등고선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얼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난 회에 올렸지만 다시 한 번 마산포 복원도를 보겠습니다.
남성동 파출소 일대, 즉 조창지 부근지역은 조창과 관련한 관리들 거주지 혹은 조창관련 건물들 탓에 계획된 도로로 보이는 직교격자형이 많았습니다.
이 지역은 한일병합 이후 근대식도로가 개설되면서 금융 등을 비롯한 새로운 산업시설을 담당하는 마산포의 중심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와 달리 인구 증가와 함께 동쪽(그림에서 오른쪽, 지금의 아구찜 거리와 코아양과점 뒷편)으로 취락이 확산되면서 소규모 토지에 불규칙한 미로(迷路)형 세도(細道)가 많았습니다.
1908년에 제작된 마산지도 중 마산포(원마산)의 도로를 표기한 것과 복원도에서 골목길 부분을 확대한 것이 다음의 두 그림입니다.
비교해 보면 당시 마산포 골목길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마산포를 통과하는 창원가도의 위치를 비정해 보았습니다.
아래 그림(1902년 제작된 지도)을 통해 산호동 해안을 끼고 창원읍과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복원도의 ●지점과 ●지점을 잇는 도로가 이른바 창원가도(昌原街道)로 보입니다.
진주와 창원을 연결하면서 마산포를 관통하는 창원가도(昌原街道)의 형태는 마산포 생성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과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그림은 당시 마산포가 외부와 연결되는 도로체계를 도로의 형상과 인근지역의 위치를 감안하여 정리해본 도면입니다. 회원․성호․교방․석전지역이 마산포 와 연결되는 주도로라고 보면 됩니다.
그림에서 굵은 점선으로 그려진 길이 당시에 가장 번화했던 길입니다.
-마산포의 땅-
복원도에서 확인된 1910년 경 마산포의 면적은 약 170,000㎡(51,000평)이었습니다.
각 필지별 대지의 규모는 작았습니다.
총 1,157필지 중 50㎡(15평)미만이 20%, 50-100㎡(15-30평)이 33%, 100-200㎡(30-60평)이 28%로 60평 이하의 땅이 81%를 차지했습니다.
좁고 꾸불꾸불한 골목길에 조그만 집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산포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대지는 그림에서 녹색으로 표시된 마산창(현 제일은행 마산지점과 남성동 파출소 일대) 부지였는데 면적은 5,097.52㎡(1,530평)였습니다. 사정(査定) 당시의 지번은 '원정(元町, 남성동) 142번지'였습니다.
아래 그림의 점선 내 토지 형태를 유심히 보면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대지 중 어선창 쪽으로 나가는 길가에 일정한 폭의 전면부를 가진 소규모 필지들이 군집해 있습니다.
이 토지형태에서 착안, 이곳에서 마산포 시장이 발원한 후 시간이 흐르면서 조창주변의 상권과 연결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추정 이유는 유독 이곳의 대지 형태가 이질적이라는 점과 이 지역이 민간인 전용굴강으로 추정되는 동굴강과 연근해 어선들이 모여들었던 어선창, 그리고 창원가도 변에 있으면서 오산진(현재의 산호동 용마산아래 마을)과 연결되는 오산선창이 이어지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길을 따라 장이 열렸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장터로 사용되었던 길가에 점포가 상설화된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한편, 마산창을 기준으로 선창에 이르는 일대의 도로는 반듯한 직교격자형이고 토지도 정형이며 규모도 큽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마산창을 중심으로 의도적으로 계획된 도시구조체계라고 볼 수 있으며 부지의 용도는 마산창과 관련된 관리들의 가옥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된다.
박희윤은 이 지역을 큰 곡물(穀物) 객주와 선어물(鮮魚物) 객주들의 건물이 들어서있던 상업 및 업무지역이라고 추정했습니다만 부지의 위치나 형태, 그리고 인근의 다른 토지 중 관리가 거주했을만한 부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관리들의 가옥으로 추정한 것입니다.
아무튼 이 지역은 개항기부터 금융기관이 들어서는 등 도시의 중심지로서 기능했지만 한일병합 후에 근대식도로가 개설되면서 마산포의 중심기능을 점점 강화하게 되었고 이런 현상은 최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손수레나 지게만 통행이 가능했던 마산포 골목길,,,,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 앉은 작은 집들,,,,
없는 것도 만들어서 ‘이것입네’하는 세상인데,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이 골목길과 오래된 동네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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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최초의 개항이후 1910년 일제에 의해 완전 강점당할 때까지 34년간은 이 땅 안의 모든 기존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질서로 재편성되는 시기였습니다.
이 재편 과정에서 신도시(新都市)가 생겨나기도 하고 반대로 많은 전통적 도시들이 상대적 또는 절대적인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전자는 마산을 비롯한 개항장 소재지들로서 외국인거류민들을 중심으로 통상 무역이 활발히 전개되던 신도시들이었고 후자는 지방행정의 중심으로서 1,000여 년의 전통을 이어받은 전래의 도시들이었습니다.
전자에 속하는 도시 중에서 마산․인천․군산․목포․부산․진남포․신의주․원산․청진 등의 9개 도시와 후자에 속하는 도시 중에서 경성․대구․평양의 세 도시가 1914년 부(府, 현재의 시)로 바뀝니다.
개항 이후 국제 사회에서 한국 내 지배력을 강화해 온 일제는 청일전쟁, 노일전쟁, 을사조약으로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반도 식민지화를 구체화시켰습니다.
특히 노일전쟁 막바지였던 1905년 7월, 미국 국무장관 태프트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가쓰라(계, 桂)-태프트’ 비밀협상을 맺었습니다.
이 협약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일본이 인정함을 전제로 ‘미국은 일본이 한국에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노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고 극동의 평화에 직접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고 하여 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일본의 정책을 미국이 방조하고 협력한 협약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05년 8월 22일에는 제2차 영일동맹까지 맺었습니다.
이 동맹에서 영국은 ‘일본국이 한국에서 정치상, 군사상 및 경제상의 특수한 이익을 가지며 영국은 일본국이 이 이익을 옹호 증진시키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 감리 및 보호의 조치를 한국에 대해 취하는 것을 승인’ 하였습니다.
같은 해 9월 5일 노일전쟁의 종결을 위해 중재한 포츠머드조약에서도 이 점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일본은 국제사회에서의 실력과시는 물론 한국식민지화를 공공연히 사실화시켰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참담하고 억울한 일이지만 당시의 우리 사정은 그랬습니다.
국제정세가 이랬기 때문에 을사조약으로 설치된 통감부는 한반도의 식민통치를 위해 행정권을 철저히 장악,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먼저 각 지방에 이사청을 설치하였습니다. 마산 이사청도 이 때 설치되었습니다.
마산 이사청 건물입니다.
1899년부터 있었던 영사관건물을 헐고 1908년에 지어 이사청으로 사용했습니다. 목조2층 건물로 현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자리(구, 창원군청)에 있었습니다.
창원군청 초기까지 원형이 남아 있었는데 건축적 가치도 없는 현재 건물로 개축하면서 철거되었습니다.
남아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근대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을 것 같은데 아깝습니다.
아래 사진은 지금의 모습입니다.
왼쪽의 큰 나무가 위 흑백사진에 보이는 저 나무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산이사청의 관할 구역은 부산이사청과 대구이사청 관할구역 이외의 지역, 즉 경남서부일대지역이었습니다.
지청(支廳)으로 진주지청이 1907년 1월 5일 설립되었고, 진주지청에서는 마산이사청 관할구역 중 좌측, 즉 경상남도 서남부 일대인 진주․사천․곤양․남해․하동․의령․초계․협천․삼가․단성․산청․함양․안의․거창 등을 관할했습니다.
통감부는 이사청 뿐 아니라 외청(外廳)으로 철도관리국․법원․재정감사청․관측소․영림창(營林廠)․우편국 등까지 설치함으로써 사실상 한국의 행정․입법․사법의 전권을 장악했습니다.
마산의 우편국은 이보다 훨씬 빠른 1899년 11월 16일 현재의 남성동 제일은행 터에 있었던 구 창원감리서에서 개설되었습니다. 개항에 필요한 시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제의 횡포로 인해 전국적으로 배일사상이 팽배해지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는 등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1907년 6월 하순 헤이그밀사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황제 양위(7월 20일), 한일신조약(韓日新條約, 丁未7조약, 7월 24일), 언론 탄압을 위한 신문지법(新聞紙法) 제정․공포(7월 24일), 한국군대 해산(7월 31일), 연호 변경(광무에서 융희로 변경, 8월 2일) 등 일련의 조처를 불과 일 주일 남짓한 사이에 해치워버렸습니다.
그 중 신문지법(新聞紙法)은 광무 황제의 법률 제1호로 이것이 이른바「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입니다. 일제하는 물론 8․15 후까지도 효력을 지니고 있었던 우리나라 언론탄압의 효시였습니다.
일제는 이처럼 한반도 통치의 내적 조건을 조성하면서 장차 다가올 식민지배의 기반구축사업인 사회기반시설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철도는 1899년 경의선 일부 개통을 시작으로 1905년 경부선과 마산선(마산-삼랑진), 1906년 경의선과 경인선, 1910년에는 평남선까지 설치하였습니다.
간선도로는 1907년부터 1910년의 한일합방까지 외채차입금 총 공사비 293만 여원을 투입하여 진남포-평양선을 위시한 14개 노선 총 연장 1,993㎞를 뚫었습니다.
그런가하면 1906년에 착공한 부산․ 인천․ 진남포․ 원산․ 청진․ 목포․ 신의주․ 성진 등 여러 개항장들과 함께 마산에도 항만을 개축하고 세관설비공사도 하여 본격적인 식민지 수탈의 기반시설을 조성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1899년에 지은 러시아영사관 건물입니다.
현 월포초등학교 부지에 있었으며 목조2층 건물로 양식적 특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이 건물이 그 자리에 존치되어 있었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일본과 러시아의 건물이 서로 경쟁하듯 인근 지역에 서서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을 때,
인근 월영리 주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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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도심에 자리잡은 용지공원은 입지나 규모면에서 창원의 대표공원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그 명성만큼 시민들의 이용도도 높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용지호수 주변은 밤낮없이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반면, 포정사 주변의 잔디공원의 상황은 좀 다릅니다.
소풍이나 사생대회같은 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사람구경하기가 힘듭니다.
용호상업지역이나 용호동 주택가에 근접해 있지만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않고, 사람들을 끌어들일만한 뭔가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공원이 한적하면 좋지'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맞는말입니다. 한가로이 산책하며 사색에 잠길만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공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겠지요.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봤습니다.
생뚱맞은 이야긴지 모르겠지만 공원 한켠에 고기를 구울수 있는 가족피크닉장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얌전히 식탁을 지키지 못하는 아이덕분에 가족끼리 삼겹살집 한번 가기힘든 저의 개인적인 푸념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이들은 맘껏 뛰어놀 수 있어서 좋고, 어른들은 식당에서처럼 다른 손님 눈치 안봐도 되서 좋고.... 무엇보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야외에서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을 가질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겠지요. 덩달아 공원의 활용도도 높아질겁니다.
물론 관리가 쉽지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입니다.
일산의 피크닉장 처럼 숯불이나 과대불판사용, 세척행위등 금하는 이용규칙을 만들어 준수하고, 필요하다면 테이블 대여를 예약제로하여 약간의 이용료를 지불하고, 관리인이 상주하여 꾸준히 관리한다면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용지공원이 아니더라도 인근에 이런 피크닉장이 하나 생기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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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손 닿기 전의 신마산 옛 모습
<마산포 각국조계도>
1899년 / 네델란드인 스태든으로 추정 / 각국정부 / 막대추정 / 군산 마산포 성진 각국조계장정 / 규장각
이 지도는 외부대신 박제순과 각국 대표들이 맺은「군산․마산포․성진 각국조계장정」에 첨부된 설계도면입니다.
개항기 마산관련 자료 가운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지도로 근대적인 측량기법으로 작성된 마산시내 최초의 지형도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등고선으로 표시된 지도라 지형의 고저(高低)와 기복(起伏)을 잘 알 수 있으며 해안의 간조선과 만조선 그리고 하천까지, 사람 손이 닿기 전의 조계지(신마산) 옛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있는 자료입니다.
등고선의 단위(고저차)가 표기되지 않아 아쉽습니다만 현재의 지형과 비교해보면 등고선의 고저차가 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도에 나타난 자연지형 및 관련자료들을 종합해보면, 마산포에서 진주로 가던 '진주가도'는 해안에서 5-6번째 등고선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각국공동조계지의 범역(Settlement Boundary)이 그려져 있으며 주도로(Main Road)의 동쪽(도면의 방위표에는 착오로 W와 E가 바뀌어 있습니다) 해변에 세관을 비롯한 개별 필지들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조계지 최초로 조성할 부지로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주도로는 지금의 월남동 성당 정문 앞의 간선도로이며 짙게 표기된 도로가 사잇길인데 이 지도에서 계획된대로 길이 뚫렸고 모두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북쪽 신월천 중간 쯤에 급경사로 인한 폭포(Bluff)가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복개되었기 때문에 지금 저 위치에 폭포가 보이지 않습니다만 이 주위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도 비가 많이 오면 지하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고 합니다.
지도 중간에 표기된 하천이 옛 마산시장 관사 앞의 창원천(대곡천)이며, 아래 쪽 하천이 월영천인데 지금은 복개되어 경남대 정문앞 월영광장 지하에 흐르고 있습니다.
폭포 윗부분에 해관장 관사(Grounds Reserved for a Commissioner's Residence)가 표기되어있습니다. 지금의 제일여고 자리입니다.
해관장 관사는 계획만 했을 뿐 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마산 신사(神社)가 들어섰고 일제기 내내 마산공원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지금의 월포초등학교와 경남아파트, 마산종합복지관 터는 봉곳하게 틔어오른 작은 봉우리라 조계지와 마산 앞바다를 내다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 가면 솟아 올랐던 당시의 지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 지형을 보면 조계지는 마산 앞바다와 무학산 사이의 좁은 경사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형적 조건은 지난 100년간 이 도시에 매립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평지가 별로 없었는 당시 지형을 보면,
이곳 월영리와 신월리에 살았던 마산의 옛 사람들은 다랑이논 몇 뼘 외에 합포만과 갯벌, 그리고 무학산록에 기대어 생업을 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지도에 표기된 조계지의 범역을 현재로 옮겨 보았습니다.
속칭 깡통골목에서 경남대 정문 앞 월영광장까지, 뒤로는 제일여고 뒷경계 까지가 조계지였습니다.
두 개의 해안선은 간조선과 만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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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租界地現況圖* (조계지현황도*)>
1899년 / 창원감리 / / / 「창원보첩」감리보고 제7호 / 奎章閣
그 때문에 일본은 마산조계지에서 무려 60,000㎡나 되는 땅을 영사관 부지로 먼저 차지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조계장정 제10관 제2조에 각 영사관 부지는 15,000㎡를 넘기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를 무시하고 나섰던 겁니다.
일본의 이러한 위법적 의도를 간파한 창원감리가 이 사실을 외부대신에게 보고하였습니다.
본 지도는 그 보고서에 첨부되었던 것입니다.
지도를 그린 목적은 일본의 영사관부지에 대한 야욕을 저지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지금 시점에서보면 초기 마산각국공동조계지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비록 축척도 없이 붓으로 그린 재래식 지도이지만 조계지내의 당시 모습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도면 중앙부에 일본영사관의 영역을 넓게 표시하고 있는데, 이 만큼의 토지를 차지하려 했다는 겁니다.
지도 설명을 위해 예목(例目)을 표기해 놓아서 구로(舊路)․신작로․표목․해관․천․인가 등의 위치와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표목은 각국공동조계지가 결정되면서 박은 것이며, 조계지 내의 인가(人家)는 당시 월영리를 이룬 마을로 보입니다.
영국․일본․러시아 영사관 예정 부지가 영관기(英館基)․일영관기(日領館基)․노관기(露館基)로 표기되어있으며 서쪽에 월영대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도에는 바다로 내려오는 세 개의 하천이 그려져 있습니다.
가운데 창원천은 지금도 시내 중심을 흐르고 있지만 조계지의 경계점인 왼쪽 월영천(현 경남대 정문 부근)과 오른쪽 신월천(현 경남은행 신마산지점 우측도로)은 복개되어 지금은 땅 속에서만 흐르고 있습니다.
지도 좌측에 칠원계(漆原界)라는 표시는 당시 자복포를 포함한 현재의 경남대 서쪽이 칠원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래편 가운데 바다와 면해있는 기역자 부지는 세관(당시 해관)입니다.
해안 가까이 직선으로 신작로가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개항 직후 이미 예정되었던 주도로의 공사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신작로는 마산 최초로 개설된 근대식 도로인데 개설 후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마산의 주간선도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작로 좌측 끝부분이 경남대 앞 월영광장인데 그 곳이 그 때까지는 바다였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은 시내 한복판인 월영대의 위치도 당시에는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이었다는 사실까지 학인시켜주고 있습니다.
특히 본 도면에 의해 ‘진주가도’라 불리면서 창원-마산-진동(당시 진해)-진주로 연결되던 구도로의 위치와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옛날 마산사람들이 진주방면으로 갈 때 이용했던 길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해안과 마을 사이를 지나는 꾸부렁한 저 길이 마산포를 진동지역을 거쳐 고성, 진주와 이어주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 길을 오고갔던 마산포 사람들의 발자국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지도의 위치를 현재로 옮겨 보았습니다.
그림의 방향이 다릅니다만 비교하기는 쉬울 겁니다.
푸른색이 위 지도에 표기된 세 개의 하천이며 황색직선은 위 지도에 직선으로 반듯하게 난 신작로, 곧 현재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마산시내의 간선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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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시작으로 그동안 제가 수집한 마산의 지도를 간간이 소개할 계획입니다.
먼저 일본과 우리나라의 근대지도에 얽힌 글 한 편 올립니다.<<<
「고대 지나(支那)에서 행한 도량형 및 측량 등의 기술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조선반도를 거쳐 점차 일본에 도래하였다. 따라서 일본에 있어 태고로부터 행한 원시적 측량은 이의 영향을 받아 상당한 변천을 보았다」
이 글은 『일본토목사(日本土木史)』의 측량 장(章) 서두입니다.
이 글에서처럼 고대 일본은 중국의 측량술을 우리나라를 통해 도입하고 개선해 나갔습니다.
근대 일본의 측량술은 이노우 타다타카(伊能忠敬, 1745-1818)가 기틀을 세웠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측량기술 개발이 일본근대측량술의 발전을 앞 당겼습니다.
'일본의 김정호'라 부를 수 있는 이노우 타다타카는 1745년 혼슈 지바현에서 태어났습니다.
50세가 되던 1794년, 장남에게 가사를 맡기고 에도(江戶, 지금의 동경)에 나가 서양의 천문, 역법, 측량을 배웠습니다.
1800년 막부(幕府)의 명을 받아 홋카이도 동남 연안을 측량한 것을 시작으로 1818년 에도부(江戶府) 측량도를 완성하기까지 19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측량에 몰두하였습니다. 측량기기는 직접 제작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노우가 제작한 지도는 당시의 기술수준에 비교해 놀랄만큼 정확했습니다.
이노우의 업적은 1/36,000(대도, 大圖) 1/216,000(중도, 中圖) 1/432,000(소도, 小圖)라고 부르는 유명한 이노우도(伊能圖), 즉 대일본연해여지전도(大日本沿海與地全圖)가 대표적입니다.
아래 지도가 이노우가 제작한 '대일본연해여지전도' 중 서일본, 즉 큐슈 쪽입니다. 왼쪽 윗부분에 대마도도 보입니다.
몇년 전에 "일본 최고의 지도에 독도 표기가 없으니 독도는 원래 일본영토가 아니다"라며 국내언론들이 크게 보도한 그 지도입니다.
이노우가 직접 실측한 이 지도는 그가 죽은지 3년이 지난 1821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김정호 보다 60여년 먼저 태어난 이노우가 이런 근대식 지도를 남겼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일본의 근대 측량술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이노우는 일본인들에게 ‘일본 근대측량의 아버지’로 불리면서 지금까지 일본국민들로 부터 대단한 숭앙을 받고 있습니다.
측량과 관련한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측량을 하기 위해 일본 열도를 답사한 거리가 4만 킬로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지바현에 있는 그의 생가에 선 그의 동상입니다.
이노우(伊能)와 같은 선각자가 있었던 탓인지 일본은 19세기 중반부터 서구의 측량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힘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측량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해 측량기술의 개발과 전승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도제작을 이적행위로 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측량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일본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1876년)에서 조선항로의 측량을 요구했습니다만 우리 정부는 아무런 주저 없이 그들의 측량을 허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약 체결 이후에도 일본의 조선항로측량은 뚜렷이 진행되지 않았으며 일본 내부의 측량 기술력을 향상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실제로 일제가 한반도 침략을 목적으로 이 땅의 측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895년경이었습니다.
1895년 3개조로 나눈 일제 임시측량반이 한반도에 파견되어 1/50,000 지도를 간행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한반도 측량계획은 조선주민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1개조만 남아 1900년까지 1/200,000 지도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공식적인 시도와는 별도로 일본육군참모본부가 한반도를 비밀리에 측량하여 제작한 지도를 완성했는데 이것이 1899년 발행한 1/50,000의「군용비도(軍用秘圖)」입니다. 총 300개의 도엽으로 만들어진 지형도입니다만 여기에 마산 도엽은 빠져있습니다.
1895년에 들어온 일본인 측량부대를 관청에서는 제반 편의를 제공하는 등 극진히 대우하였습니다만 주민들은 대부분 이들을 싫어했고 지역에 따라 격렬히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측량기사들에게 칼을 주어 스스로 신변을 보호하게도 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함흥, 대구, 제천, 여주와 함께 창원지역에서 특히 저항이 심했다고 합니다.
창원에서는 1895년 11월 동래부 근방에서 요코이(橫井) 측량수가 작업 중 한국인 6-7명에게 담배가 든 휴대품 등을 강탈당하였고 투석의 위험이 있어 간신히 도망쳐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또 창원의 자여역(自如驛)에서 스이스이(垂水) 측량수가 동행한 고용 한국인이 촌민과 논쟁한 후 얻어맞자 이를 제지하였습니다.
그날 밤 촌민 수십 명이 스이스이의 숙소를 습격하려했습니다만 창원부에서 출장 온 한국 관리가 제지하여 무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측량수를 습격하려던 주모자는 그 근방의 관리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근대적 측량을 최초로 접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일본육지측량부'가 펴낸 『육지측량부연혁지』에 의하면 1896년에 조선왕족 이준용이 일본 육지측량부 제도작업을 참관하였고, 1898년 이주환이 2년 과정의 초등지형측량학과를 졸업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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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도 2010/08/18 07:12
박현수 학생, 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네.
생각대로 잘풀린다니 다행이군.
창의적인 작품으로 높은 평가 받아 꼭 마산에 다시 한 번 오기 바라네.
빡빡이 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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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거리면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할 것이고, 대중교통이 편리하면 버스나 지하철을, 규모가 큰 회사는 통근버스를, 이도저도 아니면 자동차를 직접 몰고 출근길에 나섭니다.
마음은 숲길을 걷고 싶지만, 자동차 가득한 도로를 달려야 하는것이 현실
출근시간을 이용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별일없이 운전만 할수도 있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볼수도 있고, 피곤하면 쪽잠을 청할수도 있지요.
요즘은 DMB나 PMP로 방송이나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5년여 동안 15분 거리의 직장까지 걸어서 출근하면서 그시간 동안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그날 하루 있을 일을 계획하는 시간으로 사용했습니다.
퇴근길에는 반대로 하루를 정리하곤 했지요.
15분 이라는 길지않은 시간에 명상과도 같은 마음정리가 가능했던것은 걷던길의 환경이 큰역할을 했습니다.
직장을 마산으로 옮겨 차를 타고 출근을 하면서 새삼 출근길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거리가 먼 만큼 시간은 늘어났지만 운전을 해야하니 깊이있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않습니다.
요즈음 업무관계로 그때의 출근길을 다시 걸으면서 예전엔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를 사진으로 남겨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사는 집은 창원 용호동의 한 아파트이고 용지호수와 용호상업지역을 지나 직장으로 출근했습니다.
아파트를 벗어나면 울창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큰 소나무 숲이 나옵니다.
나무 사이로 새소리를 들으며 걷는 이길이 제일 좋습니다. 무엇보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흙길을 밟는 느낌이 참 상쾌합니다.
퇴근길에는 벤치에 잠시 앉아 여유도 부려봅니다.
가끔 청설모가 나타나 나무타기 뽐을 내곤합니다.
소나무숲을 지나면 탁트인 용지호수가 나타납니다.
예전엔 이곳에서 낚시도 하고 보트도 타곤 했지요.^^
물밖에 보이지않던 호수에 몇년 전부터 다양한 수생식물이 자라고, 왜가리인지 두루미인지 제법 큰 새들도 몇 마리 보입니다.
수질이나 접근성등의 문제만 해결되면 용지공원과 더불어 통합시의 센트럴파크로 손색이 없을것입니다.
호수를 끼고 걷는 길은 여러갈래가 있는데 저는 출근길에는 호수변 산책로를 따라 호수를 바라보며 걷고 퇴근길에는 소나무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탁트인 호수변을 걸으면 눈과 함께 머리도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꽃나무와 수생식물이 자태를 뽐냅니다.
호수를 지나면 상업지역이 나타납니다.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는 특색없는 상가 밀집지역입니다.
저의 직장이 있던곳이기도 합니다. 보행로가 따로 없어 차를 피해 걷기가 불편합니다.
삭막하기만 한 이곳에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가로경관 개선사업을 통해 차도와 주차장만 있던 곳에 보행로와 휴게공간이 곳곳에 생겼습니다. '문화의거리'라는 명칭으로 용호상업지역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 있다고 하니 기대가 큽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의지와 상관없이 다녀야하는 출근길이지만 짧은 구간이라도 기분좋게 걸을수 있는 길이 있다면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저의 출근길에 빗대어 얘기했지만,
결국은 걷기 좋은 길 을 많이 가진 도시가 사람중심의 도시이며 살기좋은 도시 라는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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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원산, 서해 강경, 남해 마산>
18세기 후반부터 조창과 더불어 발달하기 시작한 마산포는 중서부 경남의 곡물과 남해안 수산물의 대표적 집산지로서, 화폐경제와 함께 성장한 굴지의 시장이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마산포구에는 두 개의 굴강, 곧 조운선 전용 선착장인 서굴강과 민간전용인 동굴강이 있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오산선창(午山船艙)․어선창(漁船艙-東城漁船艙)․백일세선창(百一稅船艙)․서성선창(西城船艙) 등 4개의 선창이 펼쳐진 유수한 어항이었습니다.
당시 경상도의 중심포구는 왜관이 있었던 동래와 부산포, 창원의 마산포, 김해의 칠성포였습니다.
창원에는 마산포 뿐만 아니라 지이포(只耳浦, 창원시 상복동 지귀상가 부근), 사화포(沙火浦, 창원시 팔용동 홈플러스 부근), 합포(合浦), 여음포(餘音浦, 귀산부근)가 있었습니다만 이 중에서 중심포구는 마산포였습니다.
마산포 선창은 어선과 상인들로 항상 붐볐고 ‘일창원(一昌原) 이강경(二江景)’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했습니다.
'동해 원산, 서해 강경, 남해 마산'이라고 하여 전국 3대 수산물 집산지이기도 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19세기 이후에는 동북산 북어(北魚)가 원산포에 집하되었다가 마산포를 거쳐 은진(恩津)과 강경포(江景浦)까지 선운되기도 하는 등, 동해와 서해를 연결하는 원격지(遠隔地) 수산물 중개항구로 발전하여 경상도 시장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마산포 시장을 전국에서 손꼽힐만한 규모라는 주장과 달리 어류에 국한하여 시장의 규모를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마산포 시장의 규모가 대단했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19세기 후반에 이미 일본인 상인들도 진출해 있었습니다.
당시 마산포의 정황을 말해주는 문헌들을 소개합니다.
『일성록』순조 33년(1833년) 기록에 의하면 마산포 선창은 객주가 130여 호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다고 합니다.
고종 때 4년 간 함안군수로 재임한 오횡묵의 『경상도 함안군 총쇄록』에는 마산포에 어물과 곡물을 실은 수백 척의 상선이 출입하여 해안에 빈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상업이 발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순조 8년(1808년)에 편찬된『만기요람(萬機要覽)』의 재용편(財用編)에서는 전국 각 도 1,061개의 향시(鄕市) 중 국내 최대의 장시(場市) 15개를 소개하면서 경상도에 있는 276개 향시 중 최대 장시(場市)로 창원 마산포장(馬山浦場) 하나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1893년부터 세곡운송을 위해 마산만을 드나들던 기선 현익호입니다.
현익호는 444톤 2범(帆) 기선으로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배였습니다.
갑오경장에 의해 지세가 현물에서 금납으로 개정되어 마산창의 기능은 중지되었습니다. 1895년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경남의 중심상권으로 자리잡은 마산포 시장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전국에 위세를 떨쳤던 마산포 시장,,,,
19세기 이 도시 마산은 조선에서 이름 높았던 상업도시였습니다.
개항으로 도시가 커지고, 해방 후 귀한동포와 6.25전쟁 후 피난민으로 도시가 커졌습니다.
1960년대 후반 부터는 자유무역지역과 한일합섬으로 공업도시가 되어 '전국 7대 도시'라는 이름까지 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위상에서는 '20세기 마산'이 '19세기 마산포'보다 낮았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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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2010/07/05 07:45
http://panzercho.egloos.com/2767221 마산시립박물관에 있는 마산포 전경 디오드라마의 모습입니다. 위에 있는 마산포구의 동굴강과 서굴강의 경우 예전 합포진성의 전선을 정박시키던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0) 시작하며
요즘 여러분야에서 '디자인(Design)'은 최근의 월드컵열기만큼이나 뜨겁고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도시의 공공공간에 대해 우리 사회의 기대수준이 높아지고, 또한 도시공간에 대한 올바른 표현이 무엇인지 그만큼 고민하게 되는 것으로 우리의 삶이 더욱 윤택해 질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기대에 비해 도시 공공성의 수준은 계획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만들어질 준비가 되어 있진 않은것 같습니다.
도시의 환경은 한번 조성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요구(Needs)에 따라 수정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복합적인 기능과 유연함을 갖춘 도시 환경. 모두가 원하는 것입니다만...
실제로 도시민들이 원하는 내용과 달리 일방적으로 시행되는 도시사업들은 여전히 발전되지 못하고, 낮은 디자인수준과 이질감으로 도시의 창조적 발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행정통합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가게 되는 통합창원시.
통합창원시가 제대로 된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지속적(Sustainable)이고도 창조적인(Creative)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의 외면당하는 도시계획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통합창원시의 훌륭한 정체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존 세개 도시가 가지고 있던 역사적 흔적과 문화적 컨텐츠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변화하고, 통합시의 도시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되는 계획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에 혁신적으로 짧은 기간에 변화에 성공한 도시도 있겠지만,
서서히, 그리고 시민들 자신이 변하면서 도시의 변화를 예감하고 변화를 통해 발전을 위한 계획의 명분을 찾게 되는 것. 오랜 고민으로 도시변화의 방향을 꾸준히 같이 노력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도시의 창조성은 극대화 될 것입니다. 그 것이 도시의 경쟁력이 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금번 연재에서는
통합창원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창조적 도시디자인방법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으로 구성하였으며, 통합창원시만의 방법을 찾는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료출처 :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디자인진흥원, 국회도서관, 각종 웹검색 등을 통해 각 도시의 자료와 사진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도쿄는 1456년 에도성을 시작으로,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막부설치로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30만여채의 가옥화재와 14만명이 사망하는 재난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도쿄로 몰려들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일본경제는 특수를 누렸고, 이로 인해 2차세계대전의 피해를 빨리 회복할수 있었습니다.
꾸준히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 핵도시의 육성에 따른 지속적인 대도시화.
지금의 서울도 똑같은 모습입니다.
도시통합에 따라 창원시(창원+마산+진해)도 인구가 108만이 되었습니다.
통합 창원시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세 도시의 균형발전일 것입니다.
도쿄 또한 같은 고민을 하였습니다.(물론 행정통합에 따른 도시의 기존 기반여건과 행정구역의 확대 측면에서 보면 전혀 다른 사례이긴 합니다만)
20세기 100년동안 일본의 인구는 약3배 증가했고, 그 과정에서 도쿄도의 인구는 약3,300만명이 되어 세계최대 도시권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출산률 저하로 인구가 점점 줄어들어 2050년에는 현재 인구의 20%가 감소할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산업구조도 급격히 바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쿄 뿐만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는 모든 도시들이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도시의 변혁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도시변혁의 필요성은 다음의 네가지 관점으로 정리할수 있습니다.
1. 국제적인 도시간의 경쟁 격화
2. 인구감소시대의 도래
3. 환경문제의 현실화
4. 정보화에 따른 신산업, 신 라이프스타일의 출현
새로운 도시만들기로 도시재생을 도모해야 할 때입니다.
도쿄의 도시재정비는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주목되고 있습니다.
도쿄의 도시계획은 1960년대부터 구체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그리고1982년에는 '도쿄 장기계획-My Town-21세기를 향하여' 라는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통해 도심의 과도한 집중을 해소하고자 다핵형 도시구조로의 전환을 꾀했습니다.
도시기능의 분산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우리로 말하면 행정중심복합도시 비슷한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으로는 인구, 기능, 경제, 문화... 등, 과도한 대도시권의 집중을 막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2000년부터 새로운 장기플랜으로 (8년후에 고시하게 되는) 도시계획을 시작하게 됩니다. 꽤 긴 시간을 갖고 시도되는 계획이었습니다.
목표는 '세계를 리드하는 매력있는 풍성한 국제도시 도쿄 창조' 였습니다.
도쿄 메가로폴리스(Megalopolis)는 구체적으로 5개 권역으로 구분됩니다.
1. 센터, 중심부 재생구역
2. 도쿄만 워터프론트 활성화구역
3. 도시환경재생구역
4. 핵도시 광역제휴 구역
5. 자연환경 보전, 활용구역
동시에 도시간의 연결을 중시하고, 교통망의 정비를 진행하여 전체적인 효율성과 효과적인 기능 제휴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도쿄의 새로운 도시만들기의 도전은 2000년 부터 시작하여 2008년에 도시계획을 고시하게 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현재 미드타운, 국립 신미술관 등 현재 진행형으로 도시재생을 꾀하고 있습니다.
** 도쿄 미드타운
- 위치 : 옛 방위청 철거지
- 시행 : (주)모리 컨소시엄
- 사업비 : 3700여억엔
- 부지면적 : 10만2천평방미터
- 영역구분 : 오피스영역 + 쇼핑영역 + 디자인아트영역
** 국립 신미술관
- 위치 : 미드타운 내 (롯봉기 개발사업의 일환)
- 규모 : 시행
- 사업비
- 부지면적 : 약3만평방미터
- 건축연면적 : 4만8천평방미터
- 특징 : 공모전과 기획전 주목적 (미술관 소장 예술품이 없음)
이에는 정책유도형 도시만들기 방향을 도시계획의 근거가 되는 방침으로 삼고, 도시계획에 책정된 후에는 각종 제도('도시재생 특별조치법', '도쿄의 멋진경관만들기 추진조례' 등)로 받침하였습니다.
** 도쿄 도시계획 추진과정
| 2000년 5월 | 도시계획법 개정 |
| 12월 | 도쿄구상 2000 책정 |
| 2001년 10월 | 도쿄의 새로운 도시만들기 비전 책정 |
| 2002년 12월 | 원안작성 |
| 2003년 3월 | 원안구성 > 시민들에게 온라인개요 공개 > 의견모집 |
| 7월 | 소안(원안 이전단계) 작성 > 열람 |
| 9월 | 공개청문회 |
| 10월 | 도시계획안 작성 |
| 11월 | 도시계획안을 23구,26시,5정,8촌에 의견조회 |
| 2004년 1월 | 도시계획안 공고 및 열람 |
| 3월 | 도쿄 도시계획심의회 상정 |
| 4월 | 결정고시 |
| 2007년 11월 | 마야케 도시계획구역 마스터플랜(안) 공고, 열람 |
| 2008년 2월 | 도쿄 도시계획심의회 상정 > 3월 결정고시 |
우리가 바라는 도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할 통합도시의 미래를 위해서는 도시계획의 방침을 시민의 공감대 위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7월1, 통합창원의 출범으로, 곧 도시계획과 도시디자인(설계)이 화두가 될 것입니다.
기존 3개도시는 행정구역상 5개의 권역(구청)으로 나뉘어졌지만, 이는 행정구역상의 권역입니다.
도시계획상 권역의 설정. 이는 도시의 강점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재설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둘지 말고,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를 만들고,
권역을 구분하여 도시기능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도시계획을 위한 정책수립에 시민, 민간사업자, NPO, 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의 참여와 제휴가 있어야 할것입니다.
도쿄의 8년과 같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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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선반은 간단히 말해 앞서 설명되었던 측창채광으로 들어오는 빛을 실내 깊숙이 들이는 장치입니다. 햇빛이 선반의 반사면에 부딪혀 다시 천정으로 반사되어 유입되는 것으로 측창채광에 비해 실내에 빛이 고른 분포를 가지게 됩니다. 개..
'마우스랜드'라는 생쥐들이 모여사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들도 우리가 사는 사회처럼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뽑은 지도자는 생쥐가 아니라 매번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가 생쥐를 위해 일할리가 없..
<1920년대 교장들의 학교건물에 대한 생각> 직전 포스팅에서 설명드린 『朝鮮と建築(조선과 건축)』의 1928년 편을 보면 「學校建築號」라는 주제의 특집기사가 있습니다. 당시의 학교건축물 현황의 일편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
● 어는날 갑자기! 사는 곳이 해안도로 근처라 아침마다매 창문을 열면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시설물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시멘트를 담아두는 창고와도 같은 곳으로 '싸이로(Silo)'라는 놈이다. 그런데 몇일 전부터 이 싸..
<1920년대 마산의 건축물과 각종공사> 마산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근대식 건축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한일병합 이전까지는 주로 목조로 지은 공공기관이 주류였습니다만 1910년경부터는 벽돌조도 많이 지었습니다...
측창채광은 천창채광과는 달리, 말그대로 벽면에 위치한 개구부(창문 등)를 통해 자연채광을 실내로 들여오는 방법입니다. 창문외에도 유리블럭, 낮은 고창, 채광뜰(Sunken)이나 안뜰로난 수직 개구부 등을 통해 측창채광으로 얻는..
‘진해’ 지명에 대한 글입니다. ‘진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옛 마산시 진동면 일대’의 ‘진해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대한제국시대에는 ‘통합 이전 창원시(옛 의창군)와 옛 마산시 진동면·진전면·진북면 일원’을 ‘진해군’이라..
<마산사람들의 배일감정> 일본인에 의해 사회 모든 분야가 달라지면서 한국인의 생활 방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1918년경만 하더라도 마산포 장날에 머리카락을 짧게 단발한 한국인이 보이면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1년이 지난 1919..
자연채광 부분에서 잠시 거론되었지만, 파사드(전면) 개구부(측면 창문)를 통해 유입되는 자연채광이 닿지 않는 공간에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 천창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측면에 창을 두는 것이 아니라 머리위 천정에 창을..
1년동안 벽에 걸어두고, 또는 책상위에 놓게 되는 달력들은 1월에는 넘쳐납니다. 여기 저기서 받아둔 달력중에서 어떤 달력을 놓을까 잠시 고민하게 됩니다. 절에서 나온 달력이며, 근사한 미술작품을 곁들인 은행달력, 자사의 실적홍..
지난 연말, 재경마산향우회 송년회용으로 마산도시사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서툰 작품이지만 나쁜 평은 하지 않아 공개합니다. 곧 설입니다. 마산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 마산에 얽힌 추억이라도 나누어보시죠. 분량은 1..
자연채광은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건물내 다양한 공간들에 햇볕이 잘 들도록 하는 통합적 설계방법입니다. 자연채광을 위한 설계에 있어서는 방(실)별로 유사한 목적과 유사한 빛 환경을 필요로 하는 방들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
최근 창원호텔 맞은편에 현장이 생겼습니다. 두 달 남짓 사무실이 있는 정우상가쯤에서 중앙동 민원센터까지 하루에 두세번씩 걸어갔다 옵니다. 분명 보도가 설치되어 있는 길임에도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차도로 내려갔다 올라오길 몇차..
<마산상공회> 1914년에 조선인 상업회의소가 와해되고 1908년에 설립된 일본인 상업회의소도 그 뒤 흐지부지된 후 1920년대까지 지역의 상공인들 단체는 없었습니다. 이 공백기에 「마산간담회」「마산경제회」「마산번영회」라는 상..
앞서까지는 외피에 대한 내용을 다뤄왔으면, 이제 더욱 시스템적이면서도 메카니즘적인 조명분야에 대한 내용을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주광율(DF)는 실내와 실외 밝기간의 관계를 수치로 나타낸것입니다. 자연채광을 통한 건물의 그린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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