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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7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98. 통주사변의 희생자

98. 통주사변(通州事變)의 희생자

 

 

통주사변이라 함은 소화 1277일 북경 근교의 노구교(蘆溝橋)서 발발한 중일병(中日兵) 충돌사건의 한 개의 부산물적 비극을 말함이다.

 

발생 연월일이 기억되지 않으나 통주시내에 우거(寓居)나 거주하는 조선인과 일본인들을 준전시(準戰時) 중 중국병이 야반(夜半)과 미명에 걸쳐서 전격적으로 무차별 대학살을 행한 참상을 말하는 것인바,

 

그 당시 일본 신문을 보면 중국의 군인 혹은 비적(匪賊)이라고 했는데, 종전 후 일본의 전문가들의 진상조사 저서를 보면,

 

중국군이 단순한 일본인(조선인도 포함)들의 증오감이 아니라 오히려 남의 나라에서 야간 군사훈련이란 명목으로 도전 행동을 감행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그늘에서 중국인들에게 방약무인 행동을 한 자에 대한 분격이 폭발, 말하자면 노한 자가 이성을 잃고 그 앞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는 발도주의(拔刀主義)였으니 이 중에 증오의 대상만을 가릴 수 없는 판국이니 억울한 자 적지 않았다.

 

완연(宛然)이 옥석이 구분(俱焚)된 종말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마산과 근교 고성 희생자를 소개한다.

 

-기동(冀東) 정부에서 전달된 조위금 수취자-

 

기동(冀東)은 기동방공자치정부(冀東防共自治政府)를 말하는 것으로 화북성에 위치한 1930년 후반 단명한 일본 제국의 괴뢰국 중 하나이다. 통주(通州)는 기동(冀東)정부의 수도(올린 이).

 

* 김두병(사망) 마산부 원정 92, 주소 ;오동동 62, 조위금과 물적 손해배상, 35백원

* 서석악(동처 부상) 1천원

* 김점수(사망) 마산부 표정 38, 조위금과 위문금 금 1442, 물적 배상금 금 242

* 우수취인 미망인 홍말남(26)

* 김정모(사망) 고성군 거류면 초리 269, 조위금 금 22백원, 물적 손해배상금 금 2백원

* 우수취인 미망인 김선인(42), 주소 ; 마산부 오동동 25, 전달 ; 소화 14114, 전달처 ; 마산부청 사회계<<<

 

노구교(蘆溝橋 / 루거우차오) 사건은 193777일에 베이핑(현 베이징 시) 서남쪽 방향 루거우차오(루거우 다리)에서 일본군의 자작극으로 벌어진 발포 사건으로, 중일 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제국과 중화민국은 전쟁 상태로 돌입, 그 후 전선을 확대하게 되었다.

아래 사진이 노구교. 12세기에 건설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다리이다(올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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