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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8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01. 독립교회의 탄생 102.제약회사의 선전 경쟁

101. 독립교회의 탄생

 

19271127일 마산 문창 장로교회에서 벗어나온 교인 일단이 신앙의 자유와 자활적 정신에 입각하여 모든 교파를 초월하고 그리스도에게로, 인위적 조직과 제도를 더나 성서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이념을 내어 걸고 독립 마산예수교회를 창설했다.

 

당시 교인 총수는 손덕우 장로를 비롯하여 남녀 200여명, 초대 교역자로는 김산(金山) 목사(중국 남경 금릉대학 출신)를 추대하니 교회 초창기에 희생적인 노력이 많았다.

 

19281127일에 헌당식을 거행했다. 당시 김 목사를 중심으로 교회에 희생적으로 봉사한 교인은 다음과 같다.

 

손덕우(장로)

한좌건, 김주봉, 박덕우, 박채우, 김은수, 최종안, 이창우, 최원칙, 유진구, 정대근, 박덕근, 황덕수, 문덕중, 이일래, 서상삼, 설반옥, 김달필, 홍삼시, 정외희, 구봉남

 

192945일 예배당 뒤 대지 54평을 추가 매수하고 교회 부대사업으로 중앙유치원을 신설, 보모 김현경 씨를 초빙하여 많은 어린니들을 기독교 정신으로 보육했다.

(역대 원장-박성칙, 이봉수, 김은수)

 

 

<1919년 건축한 문창교회. 이 교회에서 독립교회가 분리되었다 - 옮긴 이>

 

 

 

 

102. 제약회사의 선전 경쟁

 

지금은 옛날 같고 거짓말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종전(終戰) 전까지만 해도 제약도시라는 별칭이 있었던 일본 부산시(富山市)에서는 수만 명의 선전원을 일본, 조선, 만주에 파견하여 15종입(種入)-1(, 가정 상비 구급약)를 집집마다 비치시켜 매월 1회 수금원이 순방하는데 약대는 복용한 봉투에 넣어 두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또 각 열차마다 이 구급약을 서비스하여 승객의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였고, 철도당국도 이 약을 상비해 두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이런 일은 눈을 닦고 볼래야 볼 수가 없다.

 

이것은 가정상비약에 대한 얘기지만 제약회사에서는 각 병원에 어느 정도 후대를 하였던가?

 

마산도립병원에 오래 근무한 생존자의 한 사람인 동인의원 조석환 원장의 회고담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일본서 돌아와서 마산도립병원에 봉직한 것은 1927년부터였지만 각 가정에다 상비약을 비치했던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것보다 각 관공립 혹은 개업의들이 경험한바 제약회사들의 서비스란 특수한 것이었다.”

 

단순한 선전용이나 광고용이 아닌 고급 약을 대량으로 병원에 무료 제공해 주는 것이다.

 

회사도 무명회사가 아니라 현재도 일본 국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제일(第一), 산내(山內), 염야(鹽野), 무전(武田), 삼정(三井), 전변(田邊) 등의 제약회사에서 필요한 약은 매월 빼지 않고 우송해 왔으므로 각 병원에서 약품 구입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으며,

 

더욱이 도립병원 같은 곳에서는 사무 감사 때 변명하기가 오히려 귀찮았을 뿐 아니라 처치 곤란해서 당시 사체 안치소 옆에다가 암거(暗渠)를 파고 많은 약품들을 소각 처리한 일까지 있었다고 하였다.<<<

 

 

<1927년 건축한 도립마산병원, 현 도립마산의료원 위치 - 옮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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