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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3일 올린 글에서처럼, <2011/11/23 - '군항도시 진해' 탄생 배경>
100여년 전 진해의 중평벌판 그 평화로웠던 마을에 일본의 군대가 청천벽력처럼 들이닥쳤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부랑자 신세가 된 당시 진해사람들의 정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을 것입니다.
이 참담한 상황을 전후해 민족의 최고지도층이 보여준 극단적인 두 사례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첫째는 주민들의 아픔에 동참한 사례로 매천 황현에 대한 이야깁니다.
당시 진해지역에서 일어난 아비규환을 두고 황현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倭人勒奪慶南之鎭海灣………定期軍港………熊川距鎭海數百里而亦捲入港域吏民漁散如逢亂離 ; 웅천에서 수백리의 항역이 군항으로 포함되어 이속도 농민도 고기잡이도 모두 흩어져 마치 난리를 만난 것 같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웅천에서 수백리’라고 표현한 것은 웅천에서 거제도 끝까지에 이르는 진해만 군항지역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을사조약 1년 후인 1906년에 쓴 글입니다.
이등박문의 강압적인 통감정치가 횡횡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매천의 애국심과 기개가 더욱 잘 드러납니다.
둘째는 정반대의 경우입니다.
일본군부가 진해 11개 마을주민들을 내쫓기 직전의 일로, 왕족이자 내부대신이었던 향운 이지용이 저지른 일입니다.
그는 진해지역 토지강제수용에 대한 안건이 고종황제에게 상주(上奏)되기 이틀 전에 경상남도관찰사서리 진주군수 민병성에게 훈령을 내렸습니다.
「진해만을 우리나라 군항으로 예정하는 사항은 이미 정부의 협의를 거쳤으니 조속히 해당지역의 각 군수로 하여금 該 지방민에게 주지케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고종황제가 최종 결정도 하기 전에 훈령을 내린 것은 힘없는 황제를 능멸하고 일본을 향한 자신의 적극적인 충성심을 과시한 사악한 일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황제의 재가가 내린 다음날인 8월 22일에는 경상남도관찰사서리에게,
「………본 훈령이 도달되면 조속히 당해 만(灣) 부근 각 군수에게 별칙(別飭)하여 적선 내 토지의 매매·교환·양여·전당·대차를 일절 엄금하라. 만약에 사호(絲毫)라도 소우(疏虞)함이 있을 때는 해당 각 군수는 중경(重警)에 처해질 것이고 귀관 또한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니 충분한 주의를 가하라」는 훈령을 내렸습니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싶었는지, 이틀 후인 8월 24일에는 진해군수·거제군수·웅천군수에게도 같은 취지의 훈령까지 내렸습니다.
일제에 대한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충성으로, 일본군부가 추진하는 진해군항 건설에 진력을 다했습니다.
이지용은 1904년 2월 23일 러일전쟁 와중에서 굴욕적으로 체결한 한일의정서를 작성 서명하였고, 을사조약에 찬성한 을사오적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매천 황현은 한일병합 사실을 전해 듣고 1910년 9월 10일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로써 망국의 한을 풀었고,
이지용은 훈1등 백작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영화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천은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민족의 사표가 되었고,
이지용은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대표적인 친일파로 규정하였고 그가 남긴 재산은 모두 국가에 귀속시켰습니다.<<<
2011/08/31 - [감춰진 도시이야기] - 욱일승천기를 모방했다는 진해 중원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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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회사령’이 폐지되었습니다.
‘회사령’은 1910년 12월 30일 조선총독부가 공포해 3일 만인 1911년 1월 1일부터 시행한 ‘기업통제령’입니다.
분문 및 부칙 20개조로 되어 있는 회사령의 주요 내용은 한국에서의 회사설립 및 한국 외에 설립된 회사가 한국 내에 지점을 설치코자 할 때는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령’의 표면상 이유는 한국의 산업을 위한다는 것이었으나 그 본질은 식민지인 한국에 일본 국내공업과 경합되는 근대공업을 억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국의 기업 성장을 억제하고 한국을 일본자본주의를 위한 원료공급지로, 상품판매시장으로 육성한다는 의도로 만든 규정이었습니다.
회사령은 1910년대 내내 한국 내에서 한국 사람들이 마음대로 기업을 할 수 없게 통제함으로써 한국의 산업 발전에 큰 저해요소가 되었습니다.
이 법령 때문에 1910년에서 1920년 사이 10년 동안은 공업발전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도시인구증가율이 연평균 1.6%로 총인구 증가율 2.6%보다 1% 정도 낮았습니다.
이와 같은 ‘회사령’이 폐지되자 일본 자본가들이 대거 한국으로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마산에도 영향을 끼쳐 일본인들이 기업을 앞세워 본격적으로 원마산에 진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회사 설립을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던 마산의 한국 자본가들도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1920년대 초기 마산의 회사 설립 상황을 보면 주식회사마산정미소(1919년 10월 15일 설립, 자본금 10만원)․남선양조주식회사(1919년 11월 14일 설립, 자본금 10만원)․마산창고주식회사(1920년 5월 2일 설립, 자본금 10만원)․원동무역주식회사(1920년 5월 16일 설립, 자본금 50만원)․마산운수합자회사(1922년 9월 1일 설립, 자본금 7천원) 등입니다.
이 중 대표적인 한국인 무역회사가 원동무역주식회사입니다.
아래 사진은 1928년 신축한 남성동 원동무역 사옥의 당시 모습과 현재의 모습, 그리고 원동무역 터 앞에 세워 놓은 표지석입니다.
이 회사는 마산 경제계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인 주식회사였으며 회사의 대표는 지역 유지 옥기환이었고, 업무는 육산부․해산부․위탁부․부대사업 등이었습니다.
옥기환 선생은 마산 지역에서 추앙받던 지도자로 일찍이 노동야학과 민족교육에도 관심이 높았으며 원동무역의 수익금으로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 미군정기에 초대 마산부윤(시장)을 지낸 분입니다.
1910년대에는 한국인 회사가 단 하나도 없었고 1923년 이후로도 회사 설립은 드물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때의 회사설립에 대한 지역사회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사령 폐지에 따른 마산지역의 산업화는 도시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20년대 중반 쯤 부터 원마산(마산포)에 대대적인 도로개설공사가 일어났으며, 필요한 산업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마산 앞바다가 매립으로 메워졌습니다.
그리고 신마산과 원마산으로 나누어져있던 두 도시의 중간지역(중앙마산, 도립의료원 일대)이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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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의 마산인구 변화>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한 1920년대 마산의 인구변화입니다.
1921년부터 1923년까지의 통계는 구하지 못했습니다.
| 연도 | 한국인 | 일본인 | 외국인 | 합계 | 일본인비율(%) |
| 1920 | 11,923 | 4,172 | 70 | 16,165 | 25.8 |
| 1921 | |||||
| 1922 | |||||
| 1923 | |||||
| 1924 | 13,616 | 5,168 | 98 | 18,882 | 27.4 |
| 1925 | 17,148 | 4,824 | 109 | 22,081 | 21.8 |
| 1926 | 17,802 | 4,975 | 124 | 22,901 | 21.7 |
| 1927 | 18,019 | 5,095 | 129 | 23,243 | 21.9 |
| 1928 | 18,300 | 5,339 | 95 | 23,734 | 22.5 |
| 1929 | 19,309 | 5,592 | 87 | 24,988 | 22.4 |
| 1930 | 20,149 | 5,559 | 102 | 25,810 | 21.5 |
| 1930/1920 | 169.0% | 133.2% | 145.7% | 159.7ㅋ% |
이 표에 의하면 1924년의 마산인구는 전체 18,882명으로 1920년의 16,165명에 비해 4년 동안 2,717명(116.8%)이 늘어났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1910년대의 같은 기간에 비교하면 인구 성장의 폭이 늘어난 셈입니다.
그리고 1924년 18,882명이 1930년에는 25,810명이 되어 6년 동안에 136.7%로 변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성장의 폭이 조금씩 높아진 셈입니다.
일본인은 1920년 당시 4,172명이던 것이 1924년에는 5,168명으로서 약 천여 명 늘어나고 그 뒤에도 조금씩 늘어나 1930년에는 5,559명이 되었습니다.
1920년 대비 1930년 일본인 인구성장률은 133.2%였지만 한국인들은 1920년에 11,923명에서 1924년 13,616명, 1930년에 20,149명이 되어 1920년 대비 1930년의 인구 성장률이 169.0%였습니다. 같은 시기 일본인의 증가율에 비해 월등히 높았습니다.
1920년대 말 마산의 양조장에서 일하고 있는 일본인들 사진입니다.
전체 인구 중 일본인들이 차지한 비율은 1920년의 25.8%에서 1924년에는 27.4%로 약간 늘어났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하여 1930년에는 21.5%까지 떨어졌습니다.
일본인의 비율은 이 이후에도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는데 이는 일본인의 숫자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1914년에 실시한 지방제도 개혁에서 동시에 부가 된 12개 지역의 인구성장률을 비교한 자료입니다.
증가
율
순 서 1
2
3
4
5
6
7
8
9
10
11
12
전국
평균 도시
편균
1920-
1925 청진
94.9 대구
73.1 신의주
68.1 목포
62.7군산
57.7 인천
56.8 평양
52.5 부산
44.9 마산
42.6 서울
38.4 원산
33.6 진남
포
27.6 13.1
47.1
1925-
1930 신의
주
107.3 청진
74.0 평양
57.3 진남
포
40.6 부산
37.0 목포
29.8 군산
22.1 대구
21.9 마산
21.9 인천
21.0 원산
17.4 서울
15.1 7.8
39.9
이 표를 보면 마산의 인구 증가율은 강점 제2시기 전후반기 모두 동일하게 12개 부 중 아홉 번째로서 동 시기의 다른 도시에 비해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
강점 제2시기인 1920년대는 회사령 폐지로 인한 농촌인구의 도시유입 영향으로 1910년대에 비해 도시인구가 많이 늘어났습니다만,
마산은 전국 도시평균 증가율에는 미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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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 2011/12/07 15:43
경남도민일보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입니다. 엊그제 새해가 시작된 것 같았는데, 벌써 '송년 시즌'이라뇨. '세월이 화살'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갱상도 블로거'들과 2011년을 함께 마무리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연대와 소통으로 결속을 다지는 것은 물론 올 한 해 되돌아볼 일은 없는지, 새해 준비는 어떻게 하면 좋을 지 같이 모여 수다 좀 떠들어 보자는 취지입니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무거운 이야기까지 온갖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재밌고, 유익한 자리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곁들여서 이날 2011년 '갱상도 블로그 공동체'의 변화 발전을 위해 애쓰신 분을 뽑아 격려하는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12월, 이런저런 약속 많으시겠지만, 부디 많은 블로거가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8일과 13일 또는 14일무렵 참석 확인전화 드리겠습니다.
제목: '가는 해 안 잡는다, 오는 해도 막지 말자!'(가제)
언제: 2011년 12월 15일 저녁 7시
모이는 곳: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밥 먹으면서 술도 한 잔 할 수 있는 곳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댓글이나 문자 보내주시면 확정되는 대로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장소 예약 관계로 14일 저녁까지만 받겠습니다.
참가비: 1만 원.
문의: 민병욱 019-559-9102 블로그 http://min.idomin.com 이메일 min@idomin.com
<진행순서>(초초안)
-7시~7시 40분 즐겁게 밥 먹고, 마시기
-7시 40분~8시 간단한 참가자 소개
-8시~10시 자유로운 발표와 토론
예) 올해 블로그 생태계에서는 어떤 일이…. 올 한해 갱블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 (기뻤던 일, 고쳤으면 하는 것들)…. 내년에 갱블 차원에서 해볼 만한 일은 어떤 게 있을까…. 올해 갱블에서는 누가 갱블 발전을 위해 애썼는지 뽑아 봅시다.
**이야기 나눌만한 '거리' 있으시면 제안해 주십시오.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마산포에 뚫린 최초의 신작로>
통감부 시절인 1907년경에 이미 마산포의 도로 폭을 조금 넓히거나 형태를 곧게 하는 가로개수 공사가 마산경찰서 주관으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근대식 도로가 건설된 것은 1912년부터 1915년까지였습니다.
이 때 개설된 도로들을 사정토지대장에서 확인해 보면 1912년부터 1915년까지이지만 시기는 다양합니다. 도로의 개설 시기가 토지대장에 기록된 시기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 3-4년 사이에 공사가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업으로 자연발생적인 좁은 골목길뿐이었던 마산포에 폭8m, 10m의 쭉 뻗은 새 도로가 신설되었습니다.
다음 도면은 도로가 개설되기 전의 마산포와 개설 후 모습, 그리고 도로개설 후인 1916년 지도에 나타나는 마산포 모습입니다.
두 번째 도면에서 직선으로 뻗은 넓은 길이 신설된 계획도로입니다.
박간(迫間, 하사마)에 의한 매립공사가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시행된 것을 감안하면 이 도로개설공사는 매립공사와 동시에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진행되었을뿐만 아니라 마산포 전체의 도로망 구성을 볼 때 매립지의 도로망과 신설된 도로망은 마산포 전체도로계획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마산의 계획도로 개설은 당시 조선총독부가 1912년 10월 7일에 조선총독부관보 제56호로 각도 장관에게 보낸 훈령 제9호로부터 시작된 전국적 규모의 「시구개정사업」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구개정사업」이란 도시의 도로․교량․하천 등을 근대적으로 정비하고, 구획별로 건축물의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도시계획의 성격입니다.
총독부 훈령 내용은「지방에 있어서 추요(樞要)한 시가지의 시구개정 또는 확장을 하려고 할 때에는 그 계획설명서 및 도면을 첨부하여 미리 인가를 받을 것. 다만 일부의 경이(輕易)한 변경은 그러하지 아니하다」입니다.
이 시구개정사업에 관한 훈령에는 그 구체적인 목적과 비용부담 등에 관한 설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 장의 훈령이 그로부터 20년 이상이나 한국 땅 안의 시가지를 개조하고 규제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마산의 일본지식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마산항지』에서 이 도로개설사업에 대하여「마산포의 시구개정문제(馬山浦ノ市區改正問題)」와 「제4회 민회의원선거」라는 항목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마산의 민회의원 16명 중 마산포에 거주한 의원이 7명이었다. 그런데 마산포와 신마산에 거주하는 의원들끼리 서로 마산포에 개설될 도로의 노선(路線)에 관한 이해관계 때문에 다툼이 많아 회의가 계속 공전되면서 결론을 얻지 못했다. 결국 당국에 일임하게 되었지만 시행하지 못하다가 1912년 제4회 민회의원들에 의해 마산포의 도로개설사업이 비로소 최종 확정되었다. 모두 13호선까지 계획했으나 높은 지가(地價) 때문에 1호에서 5호까지만 공사를 하고 6호부터 13호까지는 시행하지 못했다」
계획도로의 노선 때문에 민회가 공전되고, 민회의원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싸웠으며, 높은 지가 때문에 계획한 것만큼 공사를 시행하지 못했다는 등의 사실은 당시 마산포가 얼마나 상업중심지로서 가치가 높았던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기야 당시 나온 자료를 보면 마산포가 신마산에 비해 훨씬 거래량이 많았으며 이 때문에 신마산의 일본인들도 마산포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니 세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마 앞의 두번째 그림에 표기된 신설도로가 위 기록에 나오는 1호에서 5호까지의 도로일 것입니다. 그러나 6호부터 13호는 시행하지 못했다니, 그곳이 어딘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때 신설된 도로의 위치는 가능한 한 기존의 골목길을 확장하여 도로를 개설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① 기존 도로의 체계를 유지하고
②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보편적인 방법을 선택했으며
③ 토지 보상비용의 절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1912년 토지이용도와 1920년 토지이용도를 비교해 보면 대부분의 도로가 기존의 골목길을 넓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산항지』에「도시계획에 저촉되는 대지의 보상비가 너무 고가였다」라는 내용을 보아도 기존 골목길을 도로로 활용하여 비용절감효과를 노렸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때 뜷린 도로는 마산포 최초의 근대식 도로로서 신마산에서 시작된 장군로와 이어졌으며 매립지의 도로와도 연결되었습니다.
비록 미미하지만 원마산에 최초로 격자형의 근대적 도로망을 갖추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최초로 나타난 정형의 부지와 근대적 도로는 이미 원마산 상권의 중심지였던 이 일대를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번에 걸쳐 살펴 본 바와 같이 ‘남성동 매립’ ‘마산창 철거’ ‘근대식도로개설’ 등 1910년대에 나타난 마산포의 세 가지 변화는 1760년 조창 설립 이래 지속되어온 원마산 도시공간형태를 대폭 바꾸어놓았습니다.
이 변화가 1910년대 전반기 동시에 일어났다는 점에서(매립 1911-1914, 마산창 철거 1913, 도로개설 1912-1915) 이미 통감부 시대부터 시작된 식민지배 기반구축사업의 일환으로 파악됩니다.
즉 신마산에 자리 잡은 일본인들이 이동에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그들의 '최고의 시장'이라고 여겼던 마산포를 적극적으로 개발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효율적이고 근대적인 도시시설을 준비하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식민도시정책의 적극적인 준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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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강점 제1시기에 시행된 매립에 대해 올리겠습니다.
이 시기에는 봉암동과 남성동 두 번의 매립 밖에 없었습니다.
<마산자유무역지역의 최초 매립>
매립이 시작되기 전, 마산의 해안에는 70m에서 200m에 이르는 간석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 봉암동, 현 마산자유무역지역에는 최고 1㎞에 달할 정도의 대규모 간석지가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지도 중 마산만의 수심이 나타나 있는 것들을 보면 봉암 지역의 넓은 간석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보시죠.
연두색으로 표시된 지역으로 현재 마산자유무역지역입니다.
이런 간석지는 당시 마산포 주변의 주민들에게는 해산물을 제공하는 보고(寶庫)였지만 일제의 눈에는 얕은 수심이 경제적으로 매력 있는 매립 대상지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합방 직 후 곧장 매립공사가 있었습니다.
합방 후 최초의 마산 앞바다 매립인 셈입니다.
사실 이 봉암동 간석지 매립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1916년 일본육지측량부에서 측도하여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1 / 50,000 지도에 최초로 매립되어 있는 것이 나타날 뿐인데 매립의 주체가 누구인지 알아낼 방법도 없었습니다.
바로 다음 지도입니다.
이 지도 만으로는
그렇게라도 추정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1916년 발행된 1 / 50,000 도면에 나타나는데 지도제작 기간을 고려해보면 1910년대 초반에 매립했을 것이다.
㉯ 도면상 일부는 논으로 이미 표기가 되어 있고 일부는 호안표시는 있지만 아직 논표시가 없는 것으로보아 매립이 진행 중이다. 인력으로 공사를 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공사를 시작한지는 꽤 오래되었을 것이다.
㉰ 바다 매립은 완공 직후부터 곧 바로 논으로 사용하기가 곤란하다.
㉱ 동척마산출장소가 1909년10월 6일 개설되었다.
㉲ 간석지 매립은 그 주변일대에 사는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을 것이어서 일사천리로 공사를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추론을 근거로 한일합방 직후에 바로 매립을 시작하여 1913년-1915년 사이에 이 정도로 공사가 진척되었던 것 아닌가 하는 겁니다.
면적은 지도 비교에서 확인한 결과 약 9만여 평이었으며 위치는 양덕천․산호천․삼호천 하구(河口)입니다.
이 매립지의 영역을 가장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1947년 미군이 촬영한 항공사진입니다.
진작 매립이 끝나 농토로 변했습니다.
이 지역의 현 위성사진입니다.
오래동안 봉암동에서 거주했던 분의 증언에 의하면 해방 이후 봉암동 지역에서는 이 매립지를 '청수둑안'이라고 불렀다고 하면서 이 매립지는 일본인 '청수'의 소유였다고 했습니다.
이 시기에 신마산 지역에서는 매립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1910년대에도 마산의 해안매립에 눈독을 들이는 일본 자본가들은 있었습니다.
『매일신문』 1919년 6월 11일자 기사에서 '마산만 매립을 구상하고 있다'는 기사 때문입니다.
현대문으로 약간 바꾸었습니다.
「馬山 本町 1丁目에서 同 3丁目에 이르는 海面을 埋築하기로 計劃을 세우고 東京 某 實業家가 不日 技師를 派遣하여 實測을 하고 當局에 出願할 것인데 該 海面埋築의 目的은 五州輕鐵 開通 後 馬山을 豫想한 것인데 同 埋立地에 家屋 及 倉庫를 建築하야 一般의 要求에 應하고자 한다더라」
본정 1정목에서 3정목은 현재의 월남동1가에서 3가 까지를 말하는 것인데 이 지역은 192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인 목가전평삼랑(目加田平三郞)과 국종웅일(國宗雄一) 두 사람이 매립한 위치와 꼭 같습니다.
기사에 나오는 동경의 모 실업가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으며, 이 기사의 매립추진계획이 목가전평삼랑(目加田平三郞)의 매립과 이어진 것인지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 시기(1910년대)에 이미 마산만의 상업용 매립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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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포 최초의 수익용 매립-
馬山(1919年修正測圖)
1919년 / 육지측량부 / 조선총독부 / 1:10,000 / 柏書房 影印本 / 울산대 도서관
지난 주에 포스팅한 「馬山」을 보완한 지도입니다.
1916년 측도하여 1917년 발행했던 지도「馬山」을 1919년 제1회 수정측도하고 1924년 6월 25일 인쇄하여 6월 30일 발행한 것이 이 지도입니다.
따라서 이 지도의 도시상황은 1919년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저작권과 인쇄 및 발행자는 앞의 지도와 같습니다만 지도 가격은 인상되어 18전하던 것이 40전으로 많이 올랐습니다.
영인본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삭제했는지 모르지만 이 지도에는 범례가 없다는 것이 앞 지도와 다릅니다.
지도에 나타나는 도시공간의 상황은 1916년 당시의 지도인 「馬山」과 거의 동일합니다. 1916년 이후부터 1919년까지의 시기에는 마산 도시공간의 변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밀하게 검토해보면 약간 달라진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예를 보아 이 지도의 제작이 매우 정밀하게 수정측도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 두 그림을 보면 매립 이후의 남성동 상황변화가 뚜렷이 나타납니다.
1916년에는 우편소와 몇몇 건물만 있었을 뿐이었던 이곳에 도로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전과 많이 달라져있습니다.
두 지도의 남성동 매립지와 현재 위성사진을 비교한 그림입니다. 빨간색으로 표시해 놓은 곳이 남성동파출소 자리입니다.
불과 100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도시가 얼마나 변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들을 자세히 비교해 보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길 중에서 어느 길이 옛부터 있었던 길인지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두 지도에 나타나는 남성동 매립지의 도로망도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16년에는 큰길만 있었지만 1919년에는 좁은 길까지 뚫렸습니다. 건물도 그 사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매립지 시작 부분에 '우편소'라고 적혀있는 건물이 지금의 남성동 성당 앞에 있는 남성동우체국입니다. 물론 지금 건물은 다시 지은 것이고요.
이 남성동 매립은 일제가 시행한 최초의 수익목적 매립입니다.
이 매립 이후 해방 때까지 마산 해안에는 땅으로 돈을 벌기 위한 일본상인들의 매립이 줄을 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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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최초의 근대식 지도
<馬山>
1916년 / 육지측량부 / 조선총독부 / 1:10,000 / / 울산대 도서관
이 지도는 근대적 측량법에 의해서 제작된 최초의 마산 지도입니다.
1916년에 측도하여 1917년에 제판하였고 1917년 6월 25일 인쇄하여 6월 30일 발행하였습니다.
저작권소유자는 조선총독부이고 인쇄 겸 발행자는 육지측량부입니다.
정가(定價)가 십팔전(金拾八錢)이라고 기재된 것을 보아 판매도 했던 것 같습니다.
범례도 지금까지의 것과 달리 각종 시설물은 물론 토지의 상태와 도로의 종류 및 행정구역의 경계까지 세밀히 나누어 표기해 놓았습니다.
본 지도의 제작과정에 관해서 1986년 백서방(栢書房)에서 펴낸 淸水靖夫의 『日本統治機關作製にかかる朝鮮半島地形圖の槪要』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조선의 일 만분의 일 지형도는 주요도시의 대부분에 걸쳐서 작성되었는데 당초에는 45도시, 제2차대전 말기에는 63도시까지 시행되었다. 이것은 일본과 비교해도 놀랄 일로서 당시 일본에서는 6대 도시와 일부의 연습지(演習地) 뿐이었지만 조선에서는 지방정치의 중심지는 물론이고 역사도시, 군사도시는 인구 일만 이사 도시에도 시행되었다.
이것은 한일합방 후 정치적인 예민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민간 도시지도 제작술의 미 발달에 의한 영향도 크다.
일 만분의 일 지형도 제작의 시기는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그 하나는 오만분일 지형도 측량 때 동시에 행해진 것으로서 1915-1917에 43지구, 1919년과 1920년에 각 1지구가 제작되어 당초의 45도시가 된다.
두 번째는 1929년부터 1938년까지 19지구가 제작되었으며 지방도시에 미치고 있다.
당초는 道路․集落 ; 赤, 水部․水田 ; 靑, 地貌 ; 茶, 植生(森林등) ; 綠, 注記․鐵道․地類記號 ; 黑의 5색 인쇄로서 ‘京城’의 菊判2枚, ‘平壤’의 四六變形判, 진남포, 부산, 마산의 菊判이외는 전부 柾判이었다.
시가지의 확대, 주변부의 도시화와의 관계에서 점차로 圖積을 정판에서 국판 또는 四六판, 2면에서 4면으로 크게 하고 주변부를 포함하게끔 되어있다. 색채는 제2회 수정(주로 1919-1922)이후 植生(森林등)의 錄의 特殊網版을 폐하고 등고선을 녹으로 한 4색인쇄로 하고 대부분은 이대로 제2차대전 종료까지 계속하고 있다.
4색인쇄 중에는 赤版의 集落에 문자가 그대로 겹쳐져서 인쇄되어 있는 것과 문자 밑에 적판이 없이 희게 된 것도 있다.
전자는 희게 묘사한 집에 판상으로 万線을 덮어 놓은 것도 있고 후자는 銅原版上으로 이미 가옥에 万線이 그려져서 原版은 1색으로 완성되고 인쇄과정에서 색판마다 分版한 것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일 만분의 일 지형도는 거의 여기에 해당한다. 더욱이 ‘경성’4면은 4색 인쇄 외에 1색 인쇄도 판매되어 있다.
이상의 제작과정 기록을 보면 이 지도는 1:10,000 지형도 제작의 1단계였던 1915년-1917년, 43개 도시에 걸쳐 제작될 때 만들어 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소개한 1:50,000 「마산(군사극비)」지도 제작 때 동시에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래는 채색판인데 제가 입수한 것은 흑백 영인본입니다.
지도에서 나타나는 도시공간의 변화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1910년대 중반까지 변한 마산의 도시공간을 정밀하게 알 수 있습니다. 도시의 가로 및 건물 등의 상황뿐만 아니라 해안선과 작은 선착장에 이르기 까지 조그마한 시설물도 대부분 표기되어 있습니다.
공공건물은 물론 교량 명칭도 대부분 표기되어 있으며 일본인들의 종교시설인 복수사(福壽寺, 현 마산여고 담장 남서쪽 모퉁이 부근), 본파본원사(本派本願寺, 전 KBS방송국자리), 묘국사(妙國寺, 장군교의 북서쪽 모퉁이)와 피병원(避病院) 2개소(신마산은 현 월성초등학교 남쪽, 원마산은 현 성호초등학교 서쪽 환주산 언저리) 및 화장장(火葬場, 현 산복도로 위쪽 완월계곡 남쪽 산기슭) 등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신마산지역의 도시 상황도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지도와 내용상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보아 한일병합 후 도시공간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에서도 장군천까지는 신마산 도시가 확장되었으나 장군천 이북은 지방법원지청과 전기회사만 있을 뿐 원마산까지 아무 시설도 없습니다.
구도로(옛 크리스탈호텔 앞 도로)변에 몇몇 건물이 있을 뿐인데 이것으로도 신마산과 원마산(마산포) 두 도시의 연담화는 아직 요원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내용은 원마산의 변화인데 일본인 박간(迫間)에 의한 남성동 매립과 최초의 근대식 도로가 개설된 것이 정확히 나타난 것입니다.
매립지에는 이미 우편소라는 이름으로 건물도 들어서 있으며 이 밖에 몇몇 건물이 더 표기되어 있습니다.
박간이 남성동 해안을 매립한 후에도 동굴강은 매립되지 않다가 1927년에 일부 매립되고 1935년 매립 때 완전히 자취를 감춥니다.
이런 상황이 반영되어 이 지도에 동굴강이 본 모습으로 형태를 드러내고 있으며 신마산에서 원마산의 중심부까지 연결되는 도로와 원마산 중심부 일대의 근대식 직선도로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편, 원마산 도시 영역은 아주 미미하지만 북쪽 방향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삼각형의 원마산 외곽선 형태
1910년대의 마산도시구조 변화는 이 지도로 인해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마산도시변천사를 알려주는 정말 귀중한 자료입니다.
위 지도를 현재 위성사진으로 옮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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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직 후 제작된 마산인근 군사극비 지도-
<마산 (군사극비)>
1916년 / 육지측량부 / 총독부임시토지조사국 / 1 : 50,000 / 1/50,000지형도 / 국립중앙도서관
확대해 보았습니다.
이 지도는 1906년에 측도하고 1921년에 축도제판(縮圖製版)하여 같은 해 11월 25일 발행된 지도입니다.
제작자는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육지측량부․참모본부가 동시에 표기되어있으며, 제목은 「軍事極秘 (戰地ニ限リ極秘)」로 되어 있고 그 아래 진해만요새근방9호(共三十一面), 오만분일지형도 마산5호(共十五面)라고 기재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군사용 지도인 것 같습니다
이 지도와 관련된 기록을 소개합니다.
1986년 일본인 청수정부(淸水靖夫)가 쓴 『日本統治機關作製にかかる朝鮮半島地形圖の槪要』라는 책에 나옵니다.
조선반도 1/50,000지형도는 한일합방 이전 일본 육군에 의해 제작되어 병합 후 약도(제1차 지형도)로서의 형태로 햇빛을 보게 된다.
합병 후, 약도에 손을 가하여 지형도(제2차 지형도)가 작성되고 삼각측량 ․ 지형 측량 후, 기본도측도(제3차 지형도)가 완성되어 이것이 제2차대전종료까지 사용되었다. 이 지형도는 또 미국육군지도국(Army Map Survice)이 전략 용으로 전쟁 전후에 걸쳐서 복제한 지도이기도 했다.
1/50,000 기본도 측도(지형도)와 동시에 1/25,000와 1/10,000지형도도 주요지역에 제작이 진행되었다 ․․․․․․․
조선의 기본도는 1/50,000지형도(일본도 같음)였었는데 약간씩 내용이 다른 3종류의 1/50,000지도가 제작되어 있었다. 제1차의 지형도는 통칭 약도라고 말하는 한일합방이전에 제작된 지형도이고, 제2차 지형도는 합방 후 약도의 수정 형으로 제작된 지형도로서 내용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제3차는 삼각측량의 위치의 기준을 둔 기본도이다 ․․․․․․․
기본도(제3차의 지형도)정식 명칭은 「오만분일지형도」라고 한다. 한반도에 삼각점 망이 완성되어 그 결과에 기초를 두고 작성된 지형도이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사이에 전역이 완성되었다. 각 년차의 측량 도면 수는 지형도. 간행목록. 기타에서 조사한즉 전체가 727면이지만 측량․지도백년사에 있는 기재는 722면으로서 5면의 차이가 있다․․․․․․․
1926년 이래 비밀지도 구역 중 특수한 기밀지구에 무관한 지역은 등고선, 표고숫자를 삭제하고 해안 등의 변지형(變地形)의 상세를 생략한 교통도를 간행했다.
위의 기록을 읽어보면 이 지도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완성된 제3차 지형도인 기본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사극비’라고 기재된 것은 그 후 일본군에서도 이 지도를 사용한 결과로 보입니다.
1:50,000 지도이기 때문에 세밀한 도시 공간 변화를 알 수는 없지만 1916년 동시에 제작된 1:10,000 지도「馬山」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1:10,000 지도「馬山」에서는 표기할 수 없었던 마산부 범역 밖의 상황을 알 수 있어서 요긴한 자료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마산부의 북쪽으로 칠원을 거쳐 대구로 가는 길, 함안을 거쳐 진주로 가는 길, 그리고 창원을 지나 부산으로 가는 길이 1905년 개통된 마산선 철도와 함께 표시되어 있으며 중리․칠원․창원․진영지역까지 연결되는 대소 도로망이 나타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도로 사이사이로 형성되어 있는 취락도 표기가 잘 되어 있어서 당시 마산 근방의 사정까지 잘 알 수 있는 지도입니다.
도시를 지나는 간선도로, 특히 석전동에서 창원읍 쪽과 줄이 방향으로 나누어지는 삼거리가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고, 공사를 막 끝낸 남성동 지역의 매립지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지명으로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명칭들이 죄다 눈에 보입니다.
교방리, 회원리, 산호리, 상남리, 자산리, 완월리, 신월리, 봉정리(현 봉암동)까지 말입니다.
합방 전후에 발간된 다른 자료들과 비교해 보면 이 지역 매립은 합방 직후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래 동안 봉암동에서 거주했던 분을 만나 확인했더니 “해방 이후 봉암동 지역에서는 이 매립지를 ‘청수둑안’이라고 불렀다”고 하면서 이 매립지의 소유자는 일본인 ‘청수’였다고 했습니다.
위 지도에 나오는 범위를 현 위성사진으로 한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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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시의 첫 지도-
<마산부 관할구역도 / 馬山府管轄區域圖>
1913년 / 조선총독부官房總務局 / 조선총독부 / / 조선총독부 관보호외 / 서울대 중앙도서관
이 지도는 1914년 조선총독부가 단행한 지방행정구역 개편을 목적으로 1913년 12월 29일자로 발행한 것입니다. 총독부령 제111호로 도의 위치와 관할구역 그리고 부(府)와 (郡)의 명칭 및 관할구역 등에 관한 조정명령이었습니다.
이 때 개편된 마산부가 사실상 마산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지도는 마산시의 첫 지도가 되는 셈입니다.
이 행정구역개편에서 마산부에는 관할구역으로 마산포각국거류지일원, 외서면의 완월리, 신월리, 월영리, 자산리, 서성리, 성호리, 중성리, 성산리, 동성리 및 오산리, 상남리, 교방리의 일부가 포함되었습니다.
지명을 이렇게 소개하였지만 사실은 앞서 포스팅했듯이 1910년부터 이미 원마산에도 한국식 지역지명 대신 일본식 정명(町名)으로 변경되어 있었습니다.
2011/02/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7) - 개항이후
같이 단행된 관할구역 획정에서 창원군 부분에는 마산부 부내면, 상남면, 하남면, 동면, 북면, 내서면, 구산면, 대산면, 진동면, 진북면, 진서면, 양전면, 웅읍면, 웅동면, 천가면, 진해면, 웅서면, 외서면 중 마산부에 속하지 않은 지역이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관할구역에 관한 지도이기 때문에 마산부의 경계가 뚜렷이 나타나있습니다.
이 지도에 의한 마산부 경계는 동쪽으로 마산만 해안선을, 서쪽으로 대곡산과 무학산 정상을, 남쪽으로 율구미, 북쪽으로 오동교부터 노비산까지를 포함하고 있으나 서원곡은 제외되어 있습니다.
범례에서는 마산부의 경계선 및 도로․철도와 정차장․논․밭․산악․하천․바다․건물 등을 표시하고 있는데 도로와 건물 표시 때문에 당시 신마산의 원마산 쪽 진출 정도를 약간 가늠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현재의 마산경찰서 부근까지만 개설되어있던 중앙간선도로를 보면, 1910년에 원마산까지 3m폭으로만 개설되었다가 1912년에 15m 폭으로 완전 개통되었는데 그것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마산 역 앞에서 장군교 방향으로 사선형의 직선도로 서편 안쪽은 건물이 대부분 들어선 것으로 나타나 있고 조계지의 고지대는 고운로(孤雲路) 아래까지만 개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지도의 마산부 경계를 현재 위성사진에 옮겨보았습니다.
일본인 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에 의해 시행된 남성동 매립공사는 완성되지 않은 형태이나 공사중 임이 뚜렷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당시 이미 육군중포병대대 입구(현 남부터미날부근)에서 시작해 신월계라 불렀던 전 마산극장 앞까지는 해안에 직선의 호안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마산상황을 알 수 있는 참 좋은 자료인데, 흠이 있다면 동쪽을 북쪽이라고 나타낸 방위표시의 오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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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 pellet mills 2011/08/02 19:29
음.. 공감합니다. 어서 우리도 독도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할 텐데요. 그런데.. 우리 정부는 크게 손을 대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저런 극악무도한 일에 세계인이 알도록 홍보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 일을 해야합니다. 언론사, 정부, 국민....
<마산시의 시작>
사라져버린 ‘마산시’,,,,
오늘은 그 ‘마산시’의 시작을 알아보겠습니다.
마산이라는 지명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하였습니다만 이 글은 행정구역명칭으로서의 ‘마산’에 대한 내용입니다. <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1895년 을미개혁으로 태종13년(1413년) 이후 480여 년간 지속되어온 8도제가 폐지되고 부제(府制)가 시행되었습니다.
전국에 23부를 두고 336군을 부의 관할로 두어 종래의 부, 목, 군, 현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던 하급행정구역들을 군으로 통칭하였습니다.
이때 마산은 진주부 관할의 21개 군 중 창원군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부제(府制)의 인위적인 행정구역획정이 마찰을 빚어 실시 1년 3개월 만에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1896년 병신개혁(丙申改革)으로 13도제가 채택되었습니다.
이때의 13도는 종래의 8도를 바탕으로 경기․강원․황해의 3개도를 제외한 나머지를 남북 양도로 분할한 것이었는데 오늘날의 도(道) 구역은 이때 결정된 것입니다.
13도 밑에는 7부(광주․개성․강화․인천․동래․덕원․경흥), 1목(제주), 331군을 두었는데 마산은 경상남도 창원군에 속했고 경상남도의 수부도시는 진주였습니다.
3년 뒤인 1899년(광무3년), 창원군은 개항에 따른 조치로서 창원부로 승격되어 창원감리서를 두었고 개항장의 관리업무를 감리가 처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03년(광무7년)에 창원부는 다시 창원군으로 바뀌었는데 이 때 전국은 3부, 1목, 339군으로 변경되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제는 통감부와 이사관 관제를 발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1900년에 설치된 일본영사관을 1906년 9월 1일자로 이사청으로 바꾸고 일본 거류민에 대해서는 치외법권적 행정권을 행사하는 거류민단제(居留民團制)를 실시하였습니다.
이 조치에 따라 우리 정부는 같은 해 9월 24일 개항장의 감리서를 폐지하고 창원군을 다시 창원부로 개칭하여 감리의 소관 업무를 부윤에게 인계하였습니다.
여기까지의 복잡한 변화가 한일병합 이전까지 일입니다.
한일병합으로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통치기구에 관한 일련의 관제(官制)를 발포하면서 강점 직후의 과도기적 체계를 발포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 개청 하루 전날인 1910년 9월 30일이었습니다.
이 때 종전 13도 1수부 11부 317군에서 수부였던 경성부(京城府)를 격하하여 13도 12부 317군으로 개편하였습니다.
이 개편에서 마산은 이전의 창원부에서 마산부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됩니다. 마산이 최초로 행정구역명칭으로 되었습니다. 경남에는 부산과 마산이 부(府)가되었습니다.
이전의 11개 부(府)는 모두 개항장 혹은 개시장이었던 곳이었지만 다시 개편된 부(府) 12개는 모두 통감치하의 일본이사청과 일본거류민단이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부(府)의 명칭, 예컨데「마산부」는 ‘마산’이사청과 ‘마산’일본거류민단의 ‘마산’을 그대로 딴 것이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1908년 마산이사청으로 건축하여 1914년 마산부청이 된 건물 사진과 당시 이 건물이 있었던 자리(노란 점)입니다. 지금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터는 옛 창원군청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정문 기둥의 현판을 자세히 보면 '馬山府廳(마산부청)'이라는 한자가 보입니다.
부청은 1910년 10월 1일 개청하였습니다.
이사청은 이 날로 폐지되고 전국의 이사청 청사가 각각의 부청 청사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마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창원부가 마산부로 바뀌었지만 호칭이 달라진 것 외 지방행정단위로서의 성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또한 1899년 시행되었던 마산의 개항도 1911년 1월 1일 진해 일본군항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폐지되고 개항과 함께 시작된 각국공동조계지도 1914년 3월 31일자로 폐지되었습니다.
한국 땅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니 조계지 폐지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합방 후 3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식민통치의 틀이 잡히자 총독부는 본격적인 식민통치를 위해 대대적으로 지방행정을 개편합니다.
1913년 10월과 1914년 4월에 걸쳐 단행된 이 개편은 1914년 3월 1일과 4월 1일을 기해 일제히 실행에 옮깁니다.
마산은 이 지방제도 개혁 때 경성․인천․군산․목포․대구․부산․평양․신의주․원산․청진․진남포 등과 함께 관하에 면(面)을 가지지 않는 지방행정의 기초단위로서의 부(府, 지금의 시)가 되었습니다.
이 때 결정된 마산부의 관할구역은 마산부의 각국거류지와 창원군 외서면의 완월리․신월리․월영리․자산리․서성리․성호리․중성리․성산리․동성리 및 오산리․상남리․교방리.회원리의 일부였습니다.
지금으로 보자면, 동쪽으로 마산만 해안선을 경계로 서쪽으로 대곡산과 무학산 정상, 남쪽으로 밤밭고개, 북쪽으로 오동동다리를 경계로 노비산까지의 범위였습니다.
그러다가 1942년 9월 30일자로 마산부의 행정구역이 크게 확장됩니다.
창원군 내서면의 교방리·회원리·산호리·석전리·양덕리와 창원면의 봉암리, 구산면의 가포리 등 7개리가 마산부에 편입됨으로써 마산부 행정구역이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이때의 마산부가 해방 4년 뒤인 1949년 지방자치법제정 때 부(府)에서 시(市)로 바뀌면서 마산시가 되었습니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마산의 행정구역 개편은 이처럼 창원군(1895년)-창원군(1896년)-창원부(1899년)-창원군(1903년)-창원부(1906년)-마산부(1910년)-마산부(1914년)-마산시(1949년)로 바뀌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와 같은 곡절을 겪었던 마산시는 2010년 7월 1일 진해 창원과 합쳐 창원시가 되었습니다.
마산부로 시작된 독립 시(市)의 백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죠.
‘마산시’가 없어진지 그새 1년이 되었습니다.
평생 ‘마산시 회원동...’으로 시작되는 주소를 사용했던 저로서는 제 의지와 상관 없이 갑자기 ‘창원시.....’로 시작되는 주소를 사용하자니 아직 뭔가 어색합니다.
별로 내키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마산 창원 진해가 아닌 다른 이름, 예를 들어 ‘경남시’였다면 ‘마산’이 없어져버렸다는 느낌보다 세 도시가 통합되었다는 느낌이 더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합시의 명칭을 세 도시 중 하나였던 창원시로 결정해버린 것은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름을 잃은 진해와 마산시민들의 상실감 때문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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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마산의 건축물과 각종공사> 마산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근대식 건축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한일병합 이전까지는 주로 목조로 지은 공공기관이 주류였습니다만 1910년경부터는 벽돌조도 많이 지었습니다...
측창채광은 천창채광과는 달리, 말그대로 벽면에 위치한 개구부(창문 등)를 통해 자연채광을 실내로 들여오는 방법입니다. 창문외에도 유리블럭, 낮은 고창, 채광뜰(Sunken)이나 안뜰로난 수직 개구부 등을 통해 측창채광으로 얻는..
‘진해’ 지명에 대한 글입니다. ‘진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옛 마산시 진동면 일대’의 ‘진해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대한제국시대에는 ‘통합 이전 창원시(옛 의창군)와 옛 마산시 진동면·진전면·진북면 일원’을 ‘진해군’이라..
<마산사람들의 배일감정> 일본인에 의해 사회 모든 분야가 달라지면서 한국인의 생활 방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1918년경만 하더라도 마산포 장날에 머리카락을 짧게 단발한 한국인이 보이면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1년이 지난 1919..
자연채광 부분에서 잠시 거론되었지만, 파사드(전면) 개구부(측면 창문)를 통해 유입되는 자연채광이 닿지 않는 공간에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 천창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측면에 창을 두는 것이 아니라 머리위 천정에 창을..
1년동안 벽에 걸어두고, 또는 책상위에 놓게 되는 달력들은 1월에는 넘쳐납니다. 여기 저기서 받아둔 달력중에서 어떤 달력을 놓을까 잠시 고민하게 됩니다. 절에서 나온 달력이며, 근사한 미술작품을 곁들인 은행달력, 자사의 실적홍..
지난 연말, 재경마산향우회 송년회용으로 마산도시사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서툰 작품이지만 나쁜 평은 하지 않아 공개합니다. 곧 설입니다. 마산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 마산에 얽힌 추억이라도 나누어보시죠. 분량은 1..
자연채광은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건물내 다양한 공간들에 햇볕이 잘 들도록 하는 통합적 설계방법입니다. 자연채광을 위한 설계에 있어서는 방(실)별로 유사한 목적과 유사한 빛 환경을 필요로 하는 방들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
최근 창원호텔 맞은편에 현장이 생겼습니다. 두 달 남짓 사무실이 있는 정우상가쯤에서 중앙동 민원센터까지 하루에 두세번씩 걸어갔다 옵니다. 분명 보도가 설치되어 있는 길임에도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차도로 내려갔다 올라오길 몇차..
<마산상공회> 1914년에 조선인 상업회의소가 와해되고 1908년에 설립된 일본인 상업회의소도 그 뒤 흐지부지된 후 1920년대까지 지역의 상공인들 단체는 없었습니다. 이 공백기에 「마산간담회」「마산경제회」「마산번영회」라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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