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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4) - 강점제3시기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한반도에도 연합군의 공습이 있었습니다.

최초로 한반도 근해, 즉 부산과 제주도 남방에 미군비행기가 날아다닌 것은 1944년 7월 8일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심심찮게 내습하다가 1945년 들어서는 빈도가 잦아져 45년 5월 경 부터는 거의 매일 같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부터는 한반도 남부뿐만 아니라 인천 황해도 대전 광주 원산 청진 나남 나진 등에까지 내습하여 항해중인 선박과 운행 중인 열차 및 육상 해상 시설에 총격과 폭격을 가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태평양 전쟁에서 맹위를 떨쳤던 미군 B-25 경폭격기입니다. 

미군의 공습에 당황한 조선총독부는 1945년 4월 4일자로 '소개(疏開)실시요강'을 공포하였고, 이어서 4월 7일 '소개공지대(疏開空地帶)'로 경성 5개, 부산1개, 평양1개소를 고시했습니다.

그러다가 6월 14일에는 전국의 중소도시 20 곳에 소개공지(疏開空地)를 고시했는데 신의주 함흥 여수 대구 원산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때 마산에도 소개공지 1개소가 고시되었습니다.

소개관련 공지는 지역에 따라 규모와 형태가 달랐습니다.

마산에 고시된 '소개공지'는 중요시설 주변 30m∼50m내에 있는 기존건축물을 철거·소개하여 공지를 확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그 때 마산에 고시된 '소개공지'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겁니다.

도시사학자 손정목 선생은 일제기의 '소개공지대'와 '소개공지'에 대해 '도시계획의 눈으로 보면 소개공지대는 방공법에 의한 새로운 계획가로의 설정이었고 소개공지는 새로운 계획광장의 설정이었다' 고 견해를 밝힌바 있습니다.  

2010년 9월, 신마산 창포동 도시 한복판에 일본인들이 팠던 방공호로 추정되는 동굴이 발견된 적도 있습니다. 건축공사를 하던 중 땅바닥이 아래로 꺼지면서 발견되었습니다.

규모는 지하 1.5m 지점에 폭 3m, 높이 2m, 길이 20m 정도 되는 반원형 동굴이었습니다.

벽이나 기둥, 지붕 등 동굴을 지탱하기 위한 구조물은 아무 것도 없었고 인력으로 흙만 파내 뚫은 것이었습니다. 마사토와 황토가 섞인 토질이었는데 매우 견고해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동굴 사진입니다.

이 동굴이 강점기 마산의 '소개공지'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해방직전의 급박했던 전황을 생각해보면, 이 동굴은 바로 한반도에 미공군기의 폭격이 시작되었던 그 때 팠던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무시무시한 공습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땅 속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최선이었고,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등 태평양 전쟁을 겪었던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쟁흔적이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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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6) - 강점제3시기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중앙부두 공사>

중앙부두 건설공사도 제1부두와 같이 1936년 10월 조선총독부에서 경성의 삼택조(三宅組)에 맡겨 시공하여 제1부두와 같은 날인 1939년 5월 19일 준공하였습니다. 총 25,475평 규모로서 총길이 1,080m의 물양장도 갖추었습니다.

현재 이 중앙부두에는 연안여객터미널․마산지방항만청․모래부두․쌍용양회 시멘트 사일로․세관․검역소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만 현대아이파크 앞에 합동청사가 준공되었기 때문에 공공기관은 곧 이전할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들이 이전하고 나면 이 일대를 근래에 조성한 서항부두와 함께 해양친수공원으로 조성할 것입니다. 마산 해안에 큰 변화를 가져올 계획이므로 시민들 기대가 높습니다.

시멘트 사일로도 철거한다고 하는데 여수엑스포 때처럼 재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래 설계도는 중앙부두 공사 때 작성된 도면입니다. 조선총독부 내무국 초량토목출장소에서 설계한 것인데 정부기록보존소에 보존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이 설계도면 좌상부에 있는 단면도를 보면 당시 해안매립지의 지반고(Ground Level)를 알 수 있습니다. 설계도를 보면 만조 시의 해수면과 지반면이 거의 동일한 위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낮게 설계된 지반고가 태풍 매미 때의 엄청난 피해를 불러왔고 지금도 어시장 해안에 사리(매달 음력 보름과 그믐날, 조수가 가장 많이 밀려오는 때) 때가 되면 바닷물이 육지를 덮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한 장의 설계도가 말하고 있는 의미는 큽니다.

일본인들이 적은 돈을 들여 마산해안을 매립하려했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에 이 설계도는 태풍매미의 원인을 분석하는 자료로 중앙언론에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매립지의 지반고를 적절한 높이까지 올리려면 엄청난 양의 흙을 반입해 다져넣어야 되는데 그러기엔 건설장비가 없었던 당시에 어려움이 많았을테고 당연히 고비용이 필요했을 겁니다. 따라서 도시의 백년대계보다는 적은 돈을 들여 당장 필요한 부지를 확보하겠다는 판단을 했던 겁니다.

그렇게 볼 때 태풍매미 때의 피해와 지금 어시장에서 입는 피해는 일제가 남기고간 부실한 매립 탓입니다.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제1부두 2차 공사>

제1부두 1차 공사에 이어서 시행된 제2차 공사는 8,600여 평 규모의 추가 공사로 매립되어 이 이후 제1부두는 총 면적 12,000평 규모의 용지를 확보했습니다.

해안선에는 석축안벽이 설치되었고 그 외 물양장․계선장(繫船場) 등이 건설되었지만 준공되기 직전 해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두공사는 거의 끝난 상태여서 해방직후부터 부두로 사용되었으나 서류상으로는 1966년 6월 3일 비로소 지목이 설정되고 국유화가 된 땅입니다.

위치는 가고파국화축제가 열리는 바로 그 곳입니다.

위의 두 매립지 위치도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2012/08/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2012/08/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2012/08/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2012/09/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5) - 강점제3시기

2012/09/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6) - 강점제3시기

2012/09/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2012/09/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2012/10/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9) - 강점제3시기

2012/10/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0) - 강점제3시기

2012/10/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2012/10/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2) - 강점제3시기

2012/10/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3) - 강점제3시기

2012/11/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4) - 강점제3시기

2012/11/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5) - 강점제3시기

2012/11/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6) - 강점제3시기

2012/11/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7) - 강점제3시기

2012/12/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2012/12/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9) - 강점제3시기

2012/12/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0) - 강점제3시기

2012/12/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1) - 강점제3시기

2013/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2) - 강점제3시기

2013/01/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3) - 강점제3시기

2013/01/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4) - 강점제3시기

2013/0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5) - 강점제3시기

2013/0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6) - 강점제3시기

2013/02/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7) - 강점제3시기

2013/02/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8)- 강점제3시기

2013/02/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9) - 강점제3시기

2013/02/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0) - 강점제3시기

2013/03/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1) - 강점제3시기

2013/03/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2) - 강점제3시기

2013/03/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3) - 강점제3시기

2013/03/25 - [오늘의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4) - 강점제3시기

2013/04/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5)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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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강점제3시기인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제작된 마산관련 지도를 해제하고 그 외 관련 자료를 토대로 마산 도시구조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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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山港平面圖*>

1931년 / 내무국토목과항만계 / 조선총독부 / 1:15,000 / 마산만매립서류 / 서울대중앙도서관

 

 

 

이 지도는 마산의 매립공사에 관한 도면으로, 마산시가지 전역이 비교적 상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간행연도인 1931년 이전에 이미 매립이 끝난 부분을 ‘기성부분(旣成部分)’으로, 현재 시공 중인 부분을 ‘공사중(工事中)’으로 구분하여 각기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매립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원마산 해안에 박간(迫間)의 매립지와 신마산 해안 목가전평삼랑(目加田平三郞)에 의해 완공된 10,500여 평이 ‘기성부분’의 범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계지 개설 당시에 이미 대지로 확보되었던 세관부지 일대도 「기성부분」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제작과정에서의 오류로 보입니다.

반면에 지전원치(池田源治)와 영삼구간(永森久幹)이 매립하는 신마산 창포동 일대 2,200여 평 공사와 마산매축회사에서 시행한 66,000여 평의 대규모 매립공사가 ‘공사중(工事中)’으로 정확하게 표시되어있습니다.

매립도면이라 그런지 범례를 두어 방파제(BW), 물치장(L), 잔교(P), 공사중 등 네 가지로 구분해 놓았으며 당시 마산부 해안에 있었던 각종 시설이 잘 표시되어 있을뿐 아니라 수심도 상세히 표시되어 있습니다.

훗날 1940년경 일본인 죽본웅차(竹本熊次)에 의해 착공되는 오동동 매립지가 이 지도에 점선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부터 계획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착공이 왜 그렇게 늦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 마산부 내에 그 때까지 개설되었던 도로들이 자세히 표기되어 있어서 이 시기까지 도시개발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잘 알 수 있어서 도시변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지도입니다. 도면에서 알 수 있듯이 본 지도가 제작될 당시만해도 신마산 조계지 서측 경사지는 개발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상세한 표현은 아닙니다만 건물들도 그려져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신마산의 건물들은 장군천 부근까지 다가왔으나 장군천 이북에는 1911년 개통된 대로변에도 건물이 없습니다. 다만 현 시청 부지에 발전소만 있고 구도로(크리스탈호텔 앞 도로) 변에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조계지에도 한국 사람들의 가옥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대대적인 매립과 개발로 마산 도시가 급변하던 시기의 지도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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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3) - 강점제3시기

<술과 꽃의 도시, 마산 1>

한 도시를 짧은 말 한마디로 규정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도시는 그 도시의 특유한 자연조건과 문화조건 혹은 대표적인 생산품 등으로 그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목포하면 항구, 진해는 벚꽃 등과 같은 것들을 두고 하는 말니다.

이런 관점에서 일제강점기 마산을 말한다면「술과 꽃의 도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산지역의 역사에서 술과 관련된 기록이 등장하는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마산지역을 찾은 관료나 시인들의 시를 보면 술과 관련된 작품이 적지 않습니다.

고려의 유명한 시인 정지상은 “푸른 물결 아득하고 돌이 우뚝한데……백년 풍류에 싯귀가 새롭고 만리 강산에 한잔 술을 드네”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시기의 또 다른 이는 “기이한 바위가 바닷가에 우뚝한데 모두들 유선(儒仙)이 읊조리던 축대라 말한다……주객은 만날 때에 여러 번이나 잔을 든다”라고 읊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바다와 산, 그리고 바위가 어우러진 마산의 풍광, 특히 유선으로 불린 최치원이 노닐었다는 월영대 주변에서 술 마시는 장면을 시로 묘사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학자들이 남긴 시에도 월영대와 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숙종 때에 행정개혁에 관심이 많았던 김이건이라는 사람은 “조창에서 고식을 싣고 출발하기 전에 위로의 마음으로 음식을 내려주고 포구에서는 기생들이 춤을 추어”라는 조금 색다른 의미의 시를 남겼습니다.

조운선을 타고 바닷길을 통해 한양까지 가는 일은 앞길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험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같이 관청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고 기생들로 하여금 춤까지 추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술이 항해의 안전을 축원하는 용도로 쓰였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근대기에 마산지역이 술로 유명해지는 결정적인 계기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들어온 일본청주 때문입니다.

개항 직후인 1904년 일본인 동충용(東忠勇)이 최초로 아즈마(東)양조장을 설립한 이후 마산의 양조산업은 1928년 전국 지역별 주조생산량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였습니다.

다음 사진은 식민지시대 일본사람들이 마산에서 생산한 청주 통입니다.

당시 술의 질(質)을 좌우하는 요소는 물맛과 기후 그리고 양질의 쌀 등 세 가지였는데 마산은 이 중 하나도 모자람이 없는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물의 경우 마산의 물은 감로수와 같다고 평가하였습니다.

무학산 뒤편에 자리한 감천리의 물로 막걸리를 빚으면 청량사이다와 같다던가, 세찬 완월폭포의 물을 기관차에 넣으면 오르막 길도 힘차게 올라갈 정도라는 말에서, 우리는 지역사회에서 물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산 시내의 샘물 중에서도 광대바위 샘물(일명 몽고정)을 비롯한 몇 곳의 샘은 1911년 총독부 검사 결과 가장 우수한 샘물로 인정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샘들은 1919년-1920년에 마산을 비롯한 전국을 휩쓴 콜레라 발생이후 공동수도가 생기는 바람에 쇠퇴하였지만 아직까지도 ‘물 좋은 마산’이라는 별명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일본 술 청주는 쌀로 만들기 때문에 비옥한 평야지대를 끼고 있어야 했는데 마산 인근의 고성, 김해, 창원과 같은 넓은 들이 뒷받침하였고, 겨울에 춥지 않고 여름에 덥지 않은 기후도 술 빗기에 제격이었습니다. <<<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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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0)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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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2)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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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8 00:00

조선총독부가 대한민국정부의 전신?

창원시 추진하고 있는 마산임항선 철도부지의 푸른 길 가꾸기 사업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철도부지를 관리하는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 창원시더러 임항선 부지를 사용하려면 400억에 매입하라했기 때문입니다. 임대할 경우에는 연간 4억 정도가 필요하지만 장기임대는 곤란하며, 현행 법률상 다른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은 국유지인 철도부지를 관리하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매입요구 주체는 사실상 정부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 글은 정부의 이런 입장에 대한 질문입니다.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에 부설하는 철도는 식민지의 방대한 토지와 물자 그리고 노동력수탈을 전제로 합니다. 20세기 벽두에 시작된 일제의 한반도 철도공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제는 철도건설을 이유로 조상 대대로 지켜온 한국인의 논과 밭을 무상 혹은 무상에 가까운 헐값으로 탈취했습니다. 탈취과정도 악랄했습니다. 공권력과 경찰을 앞세워 제멋대로 경계말뚝을 박았고, 이에 저항하면 법을 들먹이며 힘으로 눌렀습니다.

한참 농사를 짓고 있던 논밭까지 뒤집어엎은 후 그 농작물을 군마의 먹이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창졸간에 땅을 빼앗긴 한국 민중들의 참상은 목불인견이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대한매일신보는 가옥을 철거당한 주민들이 길바닥을 헤매고, 전답을 빼앗긴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논두렁 밭두렁에서 울고불고 하는 형편 이라고 기사로 남겼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철도공사 때 노역착취도 극심했습니다.

전국의 연선 주민들이 철도역부로 동원되어 살인적인 노역을 강요당했습니다. 총칼로 무장한 일본 감독자는 무자비한 폭행에다 처형까지 감행하여, 철도공사에 끌려가면 ‘살아서 갔다가 죽어서 돌아온다(生行歸死)’는 말까지 떠돌았습니다.

부녀자를 겁탈하고 양민을 학살하고 비협조적인 군수를 폭행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영국 언론인 멕켄지는 ‘일제의 철도부지 수탈은 약소민족에게 자행할 수 있는 가장 범죄적인 포학이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거지가 되었다’ 고 했습니다.

땅을 지키기 위해 일제와 친일세력을 상대로 거센 저항도 하였지만 주권 잃은 나라의 민초들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식민지 시대의 철도는 일본에 의한 피해 당사자인 한국인들의 토지와 노동력으로 건설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문명의 이기(利器)이기 이전에 침략과 수탈과 탄압의 도구였습니다.

마산 임항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철로 역시 오래 전 마산사람들의 피와 땀이 서린 통한의 땅입니다.

1905년과 1923년 두 번에 걸친 수탈과정에서, 마산사람들도 집단으로 일제에 저항했지만 결국 토지를 뺏기고 말았습니다. 강제로 동원된 공사장에서 배고픔과 수모를 참아가며 노역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참혹한 역사가 서린 저 임항선 철로를 대한민국의 정부가 창원시에 돈을 받고 팔려합니다.

저는 이런 정부의 입장과 법률이 납득되지 않습니다.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탈취해간 철도부지를, 땅을 뺏긴 지역의 주민들이 공익을 위해 사용하자는데 돈을 받고 팔려니 말입니다.

최근 우리 정부의 대법원은 일본기업더러 식민지 시대 우리 국민에게 끼친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식민지 피해보상 해석을 정부차원에서 민간 기업에까지 확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시대정신입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해서는 민간 기업에까지 피해보상을 요구하면서 일본에게 빼앗겼던 자국민들의 땅은 돈 받고 되넘기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조선총독부가 대한민국정부의 전신인지, 아니면 오래된 장물이라 주인이 바뀐 건지, 진실을 외면하는 이중적 역사 해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에 묻습니다.

첫째, 저 철도가 무상 토지수탈과 강제 인력동원에 의한 식민지 철도라면, 국유지라는 단순한 판단에 앞서 역사적 성찰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 아닌지요?

둘째, 조선총독부의 토지소유권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대한민국정부는, 일제의 토지강탈 과정을 확인할 의무는 없고 토지소유에 대한 권리만 있는지요?

셋째, 수명이 끝난 임항선 철도부지가 원래 마산사람들의 땅이었다면, 최초에 땅을 빼앗긴 사람들의 후손들 즉 지금의 마산사람들 품으로 돌려주어야 마땅한 것 아닌지요? 역사는 그렇게 바로 잡는 것 아닌지요?

답을 듣고 싶습니다.<<<

<2012년 7월 1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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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4) - 강점제2시기

<마산에 놓인 두 번째 철도>

마산에 최초로 철도가 개통된 것은 개항 6년 후인 1905년이었습니다. 러일전쟁 종전으로 일본이 조선을 본격적으로 집어 삼키기 시작할 즈음이었습니다. 경부선 개통과 같은 해였으며 마산이 종착지라 ‘마산선’이라고도 불렀고 삼랑진에서 마산과 연결된다 해서 ‘삼마선’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마산선은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철도회사를 일본 군부가 러일전쟁을 빌미로 그 사업권을 강제 접수한 다음, 자국의 중요 인력을 동원하여 개통시킨 철도였습니다. 비록 국력이 약해서 강제로 탈취 당한 철도였지만, 이 철도의 개통은 마산의 도시화를 촉진시켰으며 마산을 일본열도와 한반도 내륙을 연결하는 교통요충지로 만들었습니다.

마산선이 개통된 20여년 뒤, 진주 방면으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철도가 놓였습니다. ‘경남선’이라 불린 이 철도는 사설(私設) 조선철도회사에 의해 마산과 진주를 잇는 철도였습니다. 당시 사설철도 건설은 일본 본국의 유휴자본을 식민지에 투자함과 동시에 식민지 기반시설을 확충한다는 두 가지 목적으로 일본 정부가 나서 적극 장려한 정책이었습니다.

1923년 12월 1일 마산과 군북 간을 우선 개통했다가 2년 뒤인 1925년 6월 15일 진주까지 연결되었습니다. 작년 12월 15일 정부가 폐선하기로 결정한 임항선이 바로 이 철도입니다. 1967년 진주-순천 간 80.5㎞가 연결되어 경전선으로 불리면서 경남과 전남을 연결한 철도이기도 합니다.

개통하기까지 곡절이 많았습니다. 1920년 9월 2일자 동아일보에서는 「남선철도공정 연내기공은 도저불능이라는 제목으로, 경남 마산을 기점으로하여 남조선 각지를 연결하는 이 철도가 괴질 때문에 측량이 불가능해 기공이 늦어진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1919년과 1920년에 동아시아 전역을 뒤덮은 콜레라 때문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당시에는 비록 마산에서 진주까지만 연결되었지만 향후 한반도의 중요한 철도노선과 연결시킨다는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당시에 제작된 지도인데, 황색표시가 ‘경남선’ 녹색표시가 ‘마산선’입니다. 그 밑의 그림은 현재 위치입니다.

다음은 이 철도가 군북과 개통될 당시 동아일보의 1923년 11월 26일자 기사와 개통 축하회를 알리는 광고입니다. 축하회에는 2원 이상 낸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경남선은 마산역을 시발로 북마산, 중리, 산인, 함안, 신음, 군북, 원북, 평촌, 반성, 이천, 갈촌, 남문산, 개양 순으로 진주와 연결되었으며 기존의 마산선과 함께 도시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교통축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근 함안․군북의 농촌 지역이 마산 권역으로 편입되면서 북마산 역 주변인 상남동과 교방동 지역에 역세권이 형성, 도시의 범역이 넓어졌습니다. 철도 건설공사에서 생긴 흙은 같은 시기에 추진되던 마산만 매립공사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1927년 조선총독부는 철도건설 12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운수계통의 정비와 운영의 통일성을 꾀하기 위해 전국의 사설철도를 모두 매입해 국유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마산 진주 간을 잇던 70㎞의 경남선도 1931년 4월 11일 7,573,477엔의 보상금으로 국철(國鐵)이 되었습니다.

철도의 명칭도 기존의 마산선과 경남선을 합쳐 경전남부선(慶全南部線)으로 개칭했으며 마산선과 경남선의 시발역이던 마산역은 통합 경전남부선의 중심 역으로 변했습니다.

1970년대,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등에 힘입어 도시지역이 팽창하고 인구가 증가하자 한 때 도시 성장의 상징이었던 두 철도가 오히려 도시 발전을 저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습니다. 이에 따라 도심을 관통하던 철도를 변경, 외곽지역에서 도시를 경유하는 형태로 바꾸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마산역, 구마산역, 북마산역이라는 세역이 없어지고 하나로 통합되어 1977년 12월 16일 현재의 마산역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름 하여 ‘삼역통합’이었습니다.

이 때 1905년부터 마산을 횡단했던 철도 마산선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는 중앙건선도로로 변했습니다. 경남은행 본점 앞 대로입니다.

그러나 한 때 경남선이라 불렀던 현재의 임항선 철도는 항만과 내륙을 연결하는 산업용 철도로 작년 말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용빈도가 낮고 도시중심을 관통하고 있어서 옛 마산시가 이 철로 주변을 그린웨이로 꾸몄는데, 그 사업을 이어 받아 통합창원시에서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15일, 정부의 폐선 발표를 듣고 시민단체는 철도레일을 걷어낸 그린웨이의 큰 그림을 다시 그리자고 요구하였습니다. 창원시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동의를 하면서도 그럴 경우 우리 시가 부담해야할 비용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소유는 국가이지만 저 철도부지의 관리는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 하는데,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 '창원시가 매입하고 싶으면 400억 원을 내고, 임대하려면 연간 4억2천만 원을 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임대는 무기한으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는 그린웨이의 내용 구상과 함께, 어떻게 하면 400억이라는 거액을 들이지 않고 저 땅을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400억을 받아야겠다는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도심공원을 위해 땅은 필요하지만 돈 400억이 자신 없는 창원시, 비용을 물지 않고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민단체,,, 곧 이 문제가 지역사회 의제로 떠오를 것 같은데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오는 22일(금) 오후 4시 합포구청(옛 마산시청)에서 이주영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공동주관으로 이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계획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지난 80년간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 날랐던 저 철로는 겹겹의 흔적을 안고 쇠로 만든 육교와 함께 이 도시가 겪었던 격랑의 시간들을 회상시켜줍니다. 도시 한복판에 말없이 누워있는 저 두 가닥 쇠길 위로,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애환들이 오고 갔을지, 오며가며 쳐다 볼 때마다 온갖 생각이 듭니다. <<<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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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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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2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3) - 강점제2시기

마산(조선교통도 마산5호)

1926년 / 일본 육지측량부 / 조선총독부 / 1:50,000 / 조선교통도 / 국립지리원

이 지도는 1916년에 측도하여 1926년 6월 25일에 인쇄, 6월 30일에 발행한 것으로 저작권 소유자는 조선총독부이며 인쇄 겸 발행자는 육지측량부입니다.

1916년 측도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1925년 6월에 개통한 경남선 철도가 뚜렷이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발행 연도인 1926년 당시의 지도인 것이 분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도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교통도’이기 때문에 등고선 등의 표기는 없고 그 대신 도로 사정을 잘 알 수 있도록 제작되어 있다는 것이 이 지도의 특징입니다.

이 지도의 제작과 관련된 기록을 소개하겠습니다.
글의 출처는 1986년 栢書房(株)에서 펴낸 淸水靖夫의 『日本統治機關作製にかかる朝鮮半島地形圖の槪要』입니다.  

정식 명칭은 「五萬分一地形圖」라고 한다. 한반도에 삼각점 망이 완성되어 그 결과를 기초로 해서 작성된 지형도이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사이에 全域이 완성되었다․․․․․․․․․․․․․․․

1926년 이래 비밀지도 구역 중 특수한 기밀지구에 무관한 지역은 등고선과 표고숫자를 삭제하고 해안 등의 變地形의 상세를 생략한 교통도를 간행했다.

산지를 다갈색의 평조로 바림하고, 물 부분을 담청색(海部는 바닷가를 향해 바림하고), 기타를 흑3색 인쇄로 수요에 응했다. 1935년 현재 37면이 解秘단색 인쇄도면이고 교통도는 64면이었다․․․․․․․․․․․․․

조선의 오만분일은 經緯度(경도차 15분, 위도차 10분)가 확실히 구별되어 있는데 ․․․․․․․․․․․․․․

본 도면들의 저작권소유자는 조선총독부, 인쇄 겸 발행자는 육지측량부이지만 요새 근방도에서는 육지측량부. 참모본부의 명칭으로 되어있고 제2차대전 중의 비밀취급 도중에는 참모 본부 만의 것도 있다.

 
위 기록을 보면, 이 지도는 「五萬分一地形圖」로 1916년 경에 측도해 제작한 것을 1926년에 등고선과 표고숫자를 삭제하여 발행한 것 같습니다.

마산부의 경계가 뚜렷이 표기되어 있으며, 여기에 나타난 신마산의 변화는 이전 지도와 다를 바 없지만 중앙마산은 약간 달라져서 구도로 주변에 건물이 상당수 표기되어 있습니다.

관심가질만한 내용은 원마산의 북쪽 상남동 지역으로 도시공간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며, 무엇보다도 1925년 개통한 경남선 철도가 지도상에 최초로 나타난다는 것이 다른 지도와 다른 점입니다.

합방 후 일본인이 매립한 봉암동 지역 간석지는 여기에서도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지도에 나타나 있는 범역과 같은 현 위성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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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2 09:0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0) - 강점제2시기

2010년 4월 8일에 시작한 연재가 오늘로 100회를 맞았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글을 올린 것이 그럭저럭 2년이 다되었군요.

보잘것 없는 글을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산포와 신마산이 연결되다 - 중앙마산의 형성>

4) 문헌을 통해 본 당시 상황과 중앙마산의 도시계획

직전 포스팅에서 올린 중앙마산에 대한 문헌의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당시 중앙마산의 상황이 다음과 같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중앙마산의 범역은 신월천에서 장군천을 거쳐 척산교에 이르는 철도용지 내 시가를 뜻했다.

② 마산은 마산포․신마산․중앙마산이라는 세 영역으로 나누어지는데 마산포 방면은 한인을 상대하는 상점이 많고, 신마산은 정비된 가로에 군인 및 관리를 상대로 하는 상점이 많으며 중앙부는 관아․학교․사원․철도소재지가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사택이 많이 있다.

③ 1931년에는 중앙마산의 토지 5천 평을 경매했는데 그 부근에 매립도 5만평을 할 것이고 향후 중앙마산이 상업지 혹은 관공서지역으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마산뿐만 아니라 타지에서도 입찰에 응할 사람이 많았다.

④ 완월․신월 두 개 동을 합하여 일본인 360호 1,500인, 한국인 750호 4,0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⑤ 중앙 마산 중 일부 신마산에 접한 곳은 상황(商況)이 오히려 신마산쪽을 능가하지만 그 외는 대부분 철도용지를 차용한 전답인데 장군천 이북, 즉 현재 시청 남측의 우방아파트 지역인 중앙공설운동장을 포함하여 척산교에 이르는 이 지역 때문에 신마산과 원마산이 전혀 공간적으로 융화되지 않으며 도시 발전에도 장애가 되었다.

⑥ 도시의 서쪽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관공서의 위치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고 도시발전에도 지장이 많았는데 이에 대해 특히 원마산 주민들의 불만이 심했다. 이런 이유로 교통이 편리한 중앙마산으로 관공서를 이전해 줄 것을 부민들은 원했다. 그러나 일부 관리들은 이를 원치 않았다.

⑦ 부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1930년 마산 우편국을 중앙마산으로 이전 신축하였고 같은 이유로 마산부청도 이전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⑧ 마산부가 중앙마산의 도시계획을 잘 세워 세 영역을 합쳐 하나의 대도시로 만들어야 하고 이 일이 머지않아 성사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⑨ 이런 연유로 부에서는 이 용지를 불하하는 대 개정을 실시하여 기본 조사를 마치고 총공사비도 계상(計上)하였다. 그 불용경지(不用耕地) 총면적 11,189.90평을 철도국에서 불하받아 이에 대하여 삭지(削地) 성토를 하고 도로 및 택지를 개설하는 계획이었다.

⑩ 장군천의 장군교 상부지역 일대가 田中 遜이 운영한 월포원이었으며 현존하는 장장군(張將軍)의 묘는 월포원 내에 있었다.

⑪ 1929년 이전에 이미 철도부지가 마산부로 불하되었다.

⑫ 철도용지가 마산부에 불하된 이후인 1929년경에는 속속 신건물이 들어서고 있으며 부청과 공회당의 부지가 확정되었다.

⑬ 중앙마산 해면의 매축이 시행 중에 있으며 이 공사가 완료되면 중앙마산의 발전으로 마산 시가지에 큰 변화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
1920년대 당시 중앙마산의 출현과 그 가능성 그리고 필요성에 대한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 실정이 반영되어 마산부에서는 중앙마산 조성을 위해 도시계획사업을 입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행정서류「마산시가계획인가의 건(馬山市街計劃認可ノ件)」이란 제목으로 계획․추진된 이 사업은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산시가계획인가의 건」은 '중앙마산 연재'에서 보여드린 각종 문헌에서 나타나듯이 중앙마산의 도시조성 여론이 확산되고 있던 1924년 10월 30일 신청하여 1925년 5월 6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인가받았습니다.

철도용지 해제를 전제로 추진된 이 계획의 공간적 범위를 그림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아래 그림은 중앙마산 도시설계도면인데 길이는 전 불로장유(장군로에서 마산여고 방향으로 꺾어지는 모퉁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하여 장군천을 건너 지금의 마산세무서․마산법원․도립병원․미래치과를 지나 경남데파트까지입니다.

폭은 장군천을 기점으로 이북방향은 중앙간선도로인 현재의 장군로에서 장군교 정도까지의 직사각형 범위였고, 장군천 남쪽은 개항기 때 개설되어 마산 역과 연결되는 사선(斜線)도로 이북까지를 포함한 대 규모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장군로 동쪽(현․마산시청 쪽)도 길게 한 블록이 계획되었습니다.

두번 째 그림은 같은 축척의 현재 시가지 도면입니다.



도시설계의 내용은 원마산과 신마산의 시가를 연담화 시키기 위해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철도용지이면서도 사실상 철도용지로 사용되지 않는 곳을 관유지와 민유지 및 도로로 개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도로의 형태를 길이 방향으로는 7칸을 나눈 후 각 칸을 다시 소로를 이용해 두 칸씩 나누었으며 폭 방향으로는 3칸을 나눈 후 그 중 후면의 두 블록은 길이 방향처럼 소로를 이용해 두 칸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인가를 받기 위한 서류에는 당시의 설계도면인 이 그림 외에 축척 1/100의 단면도, 평면도 등까지 상세하게 그려서 첨부되어 있습니다.

중앙마산조성을 위한 도시계획은 총독부 인가를 득한 후 시행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지적도를 보면 계획도면과 같은 형태의 도로가 잘 표시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토지대장과 지적도를 확인해보니, 도로가 생기면서 토지가 분할된 시점은 1926년이었습니다.

지적도의 내용 중 계획도면과 다른 점이 있다면 토지를 분할하여 정리한 영역이 옛 진주가도 동쪽 부분(옛 크리스탈호텔 앞길과 중앙간선도로 사이)에만 우선 시행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토지대장에 나타나는 중앙마산의 토지는 1912년 사정(査定) 때부터 지목은「鐵(철)」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토지가 분할되고 지목이 바뀐 다음 해인 1927년에 장군로와 진주가도 사이의 모든 토지의 지목은「垈地(대지)」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중앙마산이 1929년 11월과 1931년 9월에 도립병원과 당 기숙사 및 지방법원 부지확보를 목적으로 세분화된 블럭을 합필하기 위해「馬山市街計劃路線 中 一部廢止ノ件(마산시가계획노선 중 일부폐지의 건)」이란 제목의 서류가 상정되어 추진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립병원은 현 도립의료원입니다.
1926년 현재의 위치에 2,600여 평의 부지를 마련하여 연건평 438평의 병원건물을 신축하여 1927년 5월 10일 완공하였는데 이것이 마산 최초의 종합병원입니다.

또한 1929년 11월에 중앙동 2가와 3가의 도로 887m를 폭 20m로 확장하는 계획까지 세워 1930년 4월에 인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 도로 확장 계획은 이미 1929년에 분할해 놓았다가 이 때 총독부 인가를 받아 1934년에 도로로 지목을 변경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이후의 각종자료(1947년 항공사진, 1954년 지도, 1965년 지도 등)를 보면 중앙마산의 이 도시계획사업은 장군로변의 한 블록 정도만 실제 시행이 되었으며 진주가도의 서쪽은 시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지적도와 토지대장 등 법적인 변화는 있었지만 그 때까지 실제로 도로개설을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한편 이 계획서류에 첨부된 도면에는 시가계획구역 외의 지역도 점선으로 도로계획을 하고 있는데, 1930년대에 실제로 시행된 도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 계획과 전혀 다르게 시행되었습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2011/12/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2011/12/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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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상완 2012.03.16 15:0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의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스토리가 있는 문화 상품으로 개발한다면 그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 저를 속물이라 욕할 수도 있겠지만 그 흔적들이 사라져 가는 현장들이 안타까울 다름입니다...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고 자문해봅니다... 선생님의 건투를 빕니다.

2011.12.28 00:00

강탈당한 진해와 두 지도자


지난 11월 23일 올린 글에서처럼,      <2011/11/23 - '군항도시 진해' 탄생 배경>
100여년 전 진해의 중평벌판 그 평화로웠던 마을에
일본의 군대가
청천벽력처럼 들이닥쳤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부랑자 신세가 된 당시 진해사람들의 정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을 것입니다.

이 참담한 상황을 전후해 민족의 최고지도층이 보여준 극단적인 두 사례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첫째는 주민들의 아픔에 동참한 사례로 매천 황현에 대한 이야깁니다.

당시 진해지역에서 일어난 아비규환을 두고 황현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倭人勒奪慶南之鎭海灣………定期軍港………熊川距鎭海數百里而亦捲入港域吏民漁散如逢亂離  ; 웅천에서 수백리의 항역이 군항으로 포함되어 이속도 농민도 고기잡이도 모두 흩어져 마치 난리를 만난 것 같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웅천에서 수백리’라고 표현한 것은 웅천에서 거제도 끝까지에 이르는 진해만 군항지역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을사조약 1년 후인 1906년에 쓴 글입니다.
이등박문의 강압적인 통감정치가 횡횡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매천의 애국심과 기개가 더욱 잘 드러납니다.



둘째는 정반대의 경우입니다.

일본군부가 진해 11개 마을주민들을 내쫓기 직전의 일로, 왕족이자 내부대신이었던 향운 이지용이 저지른 일입니다.

그는 진해지역 토지강제수용에 대한 안건이 고종황제에게 상주(上奏)되기 이틀 전에 경상남도관찰사서리 진주군수 민병성에게 훈령을 내렸습니다.
 
「진해만을 우리나라 군항으로 예정하는 사항은 이미 정부의 협의를 거쳤으니 조속히 해당지역의 각 군수로 하여금 該 지방민에게 주지케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고종황제가 최종 결정도 하기 전에 훈령을 내린 것은 힘없는 황제를 능멸하고 일본을 향한 자신의 적극적인 충성심을 과시한 사악한 일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황제의 재가가 내린 다음날인 8월 22일에는 경상남도관찰사서리에게,
「………본 훈령이 도달되면 조속히 당해 만(灣) 부근 각 군수에게 별칙(別飭)하여 적선 내 토지의 매매·교환·양여·전당·대차를 일절 엄금하라. 만약에 사호(絲毫)라도 소우(疏虞)함이 있을 때는 해당 각 군수는 중경(重警)에 처해질 것이고 귀관 또한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니 충분한 주의를 가하라」는 훈령을 내렸습니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싶었는지, 이틀 후인 8월 24일에는 진해군수·거제군수·웅천군수에게도 같은 취지의 훈령까지 내렸습니다.

일제에 대한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충성으로, 일본군부가 추진하는 진해군항 건설에 진력을 다했습니다.

이지용은 1904년 2월 23일 러일전쟁 와중에서 굴욕적으로 체결한 한일의정서를 작성 서명하였고, 을사조약에 찬성한 을사오적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매천 황현은 한일병합 사실을 전해 듣고 1910년 9월 10일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로써 망국의 한을 풀었고,
이지용은 훈1등 백작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영화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천은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민족의 사표가 되었고,
이지용은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대표적인 친일파로 규정하였고 그가 남긴 재산은 모두 국가에 귀속시켰습니다.<<<



2011/08/31 - [감춰진 도시이야기] - 욱일승천기를 모방했다는 진해 중원광장
2011/09/28 - [감춰진 도시이야기] - 누가 이 나무를 모르시나요?
2011/10/26 - [감춰진 도시이야기] - 아! 경화동,,,
2011/11/23 - [감춰진 도시이야기] - '군항도시 진해' 탄생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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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2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회사령 폐지와 마산도시변화>

1920년 4월 ‘회사령’이 폐지되었습니다.

‘회사령’은 1910년 12월 30일 조선총독부가 공포해 3일 만인 1911년 1월 1일부터 시행한 ‘기업통제령’입니다.

분문 및 부칙 20개조로 되어 있는 회사령의 주요 내용은 한국에서의 회사설립 및 한국 외에 설립된 회사가 한국 내에 지점을 설치코자 할 때는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령’의 표면상 이유는 한국의 산업을 위한다는 것이었으나 그 본질은 식민지인 한국에 일본 국내공업과 경합되는 근대공업을 억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국의 기업 성장을 억제하고 한국을 일본자본주의를 위한 원료공급지로, 상품판매시장으로 육성한다는 의도로 만든 규정이었습니다.

회사령은 1910년대 내내 한국 내에서 한국 사람들이 마음대로 기업을 할 수 없게 통제함으로써 한국의 산업 발전에 큰 저해요소가 되었습니다.

이 법령 때문에 1910년에서 1920년 사이 10년 동안은 공업발전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도시인구증가율이 연평균 1.6%로 총인구 증가율 2.6%보다 1% 정도 낮았습니다.

이와 같은 ‘회사령’이 폐지되자 일본 자본가들이 대거 한국으로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마산에도 영향을 끼쳐 일본인들이 기업을 앞세워 본격적으로 원마산에 진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회사 설립을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던 마산의 한국 자본가들도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1920년대 초기 마산의 회사 설립 상황을 보면 주식회사마산정미소(1919년 10월 15일 설립, 자본금 10만원)․남선양조주식회사(1919년 11월 14일 설립, 자본금 10만원)․마산창고주식회사(1920년 5월 2일 설립, 자본금 10만원)․원동무역주식회사(1920년 5월 16일 설립, 자본금 50만원)․마산운수합자회사(1922년 9월 1일 설립, 자본금 7천원) 등입니다.

이 중 대표적인 한국인 무역회사가 원동무역주식회사입니다.
아래 사진은 1928년 신축한 남성동 원동무역 사옥의 당시 모습과 현재의 모습, 그리고 원동무역 터 앞에 세워 놓은 표지석입니다.
 


이 회사는 마산 경제계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인 주식회사였으며 회사의 대표는 지역 유지 옥기환이었고, 업무는 육산부․해산부․위탁부․부대사업 등이었습니다.

옥기환 선생은 마산 지역에서 추앙받던 지도자로 일찍이 노동야학과 민족교육에도 관심이 높았으며 원동무역의 수익금으로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 미군정기에 초대 마산부윤(시장)을 지낸 분입니다.



1910년대에는 한국인 회사가 단 하나도 없었고 1923년 이후로도 회사 설립은 드물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때의 회사설립에 대한 지역사회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사령 폐지에 따른 마산지역의 산업화는 도시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20년대 중반 쯤 부터 원마산(마산포)에 대대적인 도로개설공사가 일어났으며, 필요한 산업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마산 앞바다가 매립으로 메워졌습니다.
그리고 신마산과 원마산으로 나누어져있던 두 도시의 중간지역(중앙마산, 도립의료원 일대)이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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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복산 2011.12.12 16:5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1928년이면 83년 전에 세원진 건물이군요. 표지석을 세워 둔 것으로 보아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건물인데...점점 원형을 일어 가고 있군요. 이런 의미 있는 건믈을 의미 있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개인 노래방이나 영업장 말고 상공회의소 건물 같은 공공성이 있는 건물로 사용하면 보존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 허정도 2011.12.12 23:24 신고 address edit & del

      요즈음 진해 일로 너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제가 뭘 도와 드릴까 생각하지만 해드릴 것이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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