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5 마산시 회원동 500번지 11월 28일(토) 오후,「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네 번 째 길을 걸었다. 마산시립박물관 앞마당에서부터 길을 열었다. 벌써 네번째라 낯이 익었고, 처음보는 얼굴도 있었다. 성덕암→회원현성→환주산 정상망루→성문→일제기 화장장터를 거쳐 한강 정구를 기려 세운 관해정을 둘러본 뒤 산복도로를 길게 걸어 회원동으로 왔다. 회원동 코스는 화란주택→회원천→정자나무와 비석들→회원동 500번지 골목길→철도시장→구 창신학교 터까지 였고, 이어서 북마산역 터와 노비산을 끝으로 네 번째 일정을 마쳤다. 오후 1시 반에 시작된 도시탐방은 5시 15분, 모두 3시간 45분 걸려 끝났다. 걸은 길은 대략 5-6킬로미터 정도. 스스로 원해 걸은 탓인지, 어느 한 사람 다리 아프다 투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학생, 공무원, 주부,.. 2009. 11. 30. 시비(是非)는 가려야 『시비(是非)를 던지다』 제목이 좋았습니다. 양시(兩是), 양비(兩非)가 아니라, 옳고 그름(是非)을 따져본다는 의미의 제목이 좋았습니다. 저자는 한문학자 강명관 교수입니다. 젊었을 때는 민주화니 운동권이니 하며 한 가닥 했던 분인 듯했습니다. 서너 페이지가 한 꼭지로 된 조선시대생활풍속사를 엮은 책입니다. 글이 참 맛깔스러웠습니다. 조선시대의 이야기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삶과 연관시킨 점이 좋았습니다. 중앙의 지방 차별, 거짓과 허위, 허망한 권력, 모순된 착취구조, 왜곡된 역사 등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난마들이 줄줄이 엮여 나옵니다. 머릿속에는 있었지만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들을 낱낱이 밝혀낸 책이었습니다. ························.. 2009. 11. 28. 마산 청주 주조장의 마지막 모습: 장군동 주조장의 정체 ? -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가 1차 탐방시 장군동 양조장의 실체를 몰라서 답답해 하다가, 유대장님이 저에게 조사를 한번 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듣고 그냥 지나쳤었다. 그후 마산 역사사진을 정리하다가 혹시나 해서, 대조해보니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굴뚝과 건물의 지붕선을 보면 정확히 동일 건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순간 '빙고',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위 사진에서 모서리 가로수를 지우면 정확히 같은 각도에서 본 사진이 된다. ) - 이건물은 1925년에 청주양조면허를 얻어 마산부 통정(장군동)에서 창립한 千島園 주조장으로, 창업주는 遠勝豊吉, 명주 彌生의 생산량은 연간 500석 내외였다고 한다. (마산상공회의소 100년사) - 천도원 주조장은 옛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다가 삼광청주로 .. 2009. 11. 26. 250년 된 원마산(마산포) 골목길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세 번째 참석 후의 글이다. 원마산(마산포)에 자연취락이 형성되면서 생긴 ‘길’에 대한 이야기다. 1760년, 마산창(馬山倉)이 설치된 후 마산이 도시 형태를 띠면서 도시공간의 성격도 형성되었다. 요즈음 말로 하자면 마산창 주변은 공공업무지구로, 현재 황금당 옆 골목길 주변은 상업지역으로, 동성동과 오동동 즉 코아양과점 뒤편 일대는 배후 주거지로 사용되었다. ‘·······사람이 다니면서 길이 생겼다’는 루쉰의 말처럼, 마산포에도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다니면서 ‘길’이 생겼다. 자연취락 특유의 좁고 꾸불꾸불한 ‘길’이었다.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는 원마산의 좁은 골목길들은 멀게는 250년 가깝게는 200년이 족히 된 마산사람들의 ‘길’이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곳 사람들이, 때.. 2009. 11. 25. 마산도시의 발원지 「마산창(馬山倉)」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에 참여, 세 번째 도시 탐방에 나섰다. 낯익은 사람, 낯선 사람 모두 30여 명이었다. 평안안과 건너 편 창동 입구에서 걷기 시작해 처음 머문 곳이 마산창, 시간은 250년 전 영조 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조선시대 이전, 마산포는 고려시대 조창이었던 석두창과 고려 말 몽고군의 일본정벌 시도로 북적인 적도 했으나 조선시대 중기에는 조용한 포구였다. 마산포에 다시 사람이 모인 것은 대동미의 수납과 운반을 위한 조창, 즉 마산창(馬山倉) 때문이었다. 조용했던 포구에 조창이 생기자 정기시장이 섰고, 전국의 다양한 상품들이 몰려왔다. 조창과 관련있는 관원은 물론 각지의 상인들도 마산포를 찾았다. 그리고 이들과 마산포 인근주민들의 왕래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민가가 들어섰다. 동성·중성·.. 2009. 11. 23. 모지를 바라보며 마산을 생각하다 낡고 오래된 도시공간을 되살리거나 이미 죽었던 옛 도시의 영광을 부활시키는 도시재생프로그램은 현대도시설계의 중요한 장르가 되었다. 잿빛 벽돌의 폐허였던 화력발전소를 한해 관광객 400만 명이 찾게 만든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 오래된 철도역을 재활용하여 ‘오르세’라는 이름의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변모시킨 파리. 설탕공장을 개조한 이탈리아 파르마의 ‘파가니니 음악당’. 모두 재생의 비전으로 되살린 현대도시 최고급 보석들이다. 기타큐슈의 모지항(門司港)도 그렇다. 재생에 성공하였다. 마산보다 10년 빠른 1889년 개항한 모지는 한 때 국제무역도시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던 도시다. 은행, 무역회사, 호텔, 대형점포 등 근대산업을 상징하는 대형건물들이 해안을 가득 메웠던 도시다. - 마산을 생각하며 모지.. 2009. 11. 20. 내 집 앞을 지켜라! 걷고 싶은 거리, 걷기 싫은 거리② 걷기를 방해하는 노상 장애물들 즐거운 걷기를 방해하는 요소 중 첫번째는 아마 자동차일 것이다. 주차된 차든, 움직이는 차든 보행자가 알아서 비켜가지 않으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것이 현실이다. 보행로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에서 보행자의 지위는 제일 아래이다. 자동차 못지 않게 걷기를 방해는 것은 길에 내어놓은 온갖 장애물 들이다. 영업을 위한 도구부터 자기차의 주차공간을 확보하기위한 가지각색의 구조물까지 종류만해도 손에 꼽기 힘들 정도다. 이러한 장애물들은 보행안전상의 문제 뿐 만 아니라, 도시 미관을 저해하고,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갈등을 일으킨다. 엄염한 불법이지만 단속의 손길은 멀다. 문제점을 한번 파악해 보고자 '의식적으로' 마산 회원동과 석전동 일대를 걸.. 2009. 11. 18. 옛 마산세관의 발자취를 따라서 옛 마산세관의 발자취를 따라서 ● 사진과 지도를 통해서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유장근교수의 도시탐방대에서는 신마산의 조계지에 설치된 신작로를 따라서 유서 있는 건물들을 찾아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현재 건물이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건물사진과 지도를 통해서 시간속의 여행을 체험하는 색다른 의미가 있을것 같았다. 특히 조계지내에 설치된 세관은 개항과 함께 설치된 시설로서 그 위치가 변천하는 과정과 건축의 이력을 알아보는 것을 통해서, 땅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추어 보고자 한다. ● 남성동 해관업무개시 해관은 110년 전 구한말인 1899년 5월 1일 마산항이 개항장으로 발족됨과 동시에 마산해관지서로로 창설되었다.. 해관세무사는 조선말기 관세의 징수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개항장에 창설하였던 해관의.. 2009. 11. 16. MBC 일요광장 방송 2009. 11. 16. 걷고 싶은 거리, 걷기 싫은 거리① '디자인서울'을 표방한 수도 서울을 필두로 전국 지차체의 공공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고, 가시적인 효과가 뚜렷한 가로경관의 개선사업을 앞 다투어 시행하고 있다. 개선은 좋지만 과잉디자인 경계해야. 가히 가로디자인의 '춘추전국시대'라 불릴만 하다. 하지만 지자체간 경쟁하듯 '예쁜성과물 내기'에만 집착하기에는 사업의 중요성이 너무나 크다. 새로 지은 건물은 맘에 안들더라도 주로 그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만 불편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거리는 시민 모두의 불편으로 다가온다. 로마의 거리가 지금도 남아있듯 최소한 100년은 내다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타임지가 선정한 '21세기 세계의 리더 100인'에 선정된적이 있는 도시계획 및 건축가 김진애씨도 인사동길을 설계하면서 '.. 2009. 11. 13. 창의적 도전 필요한 민선교육감 어제 오후,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학교운동장을 찾아보자’ 라는 제목의 작은 토론회에 참석했다. 네 시간이나 차를 타고 왔다는 두 분이 발제를 하고 세 분의 전문가가 토론자로 나섰다. 소박했지만 중요한 주제였다. 요즘 점점 확산되는 ‘학교운동장 인조잔디’에 대한 이야기와 ‘학교운동장 형식’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인조잔디' 이야기다. ‘인조잔디는 유해할 뿐 아니라 수명이 7-8년이라 앞으로 애물단지가 된다’는 게 핵심이었다. 파워블로거 마산YMCA 이윤기 부장이 쓴 글 http://www.ymca.pe.kr/385 http://www.ymca.pe.kr/389 두 개가 있으니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다음은 '학교운동장의 형식'. 발제는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김인호 교수가 맡았다. 건축가 시절, 학.. 2009. 11. 11. ‘마산’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마산' 지명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아직 정립된 주장은 없다. 지금까지 제기된 주장들을 모았다. 일본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 1926년에 간행한『마산항지』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라고 전제하며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각 지역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창원 소재 오산진(현 산호동 용마고 부근)에도 매일 시체가 산을 이루어 50구, 30구 혹은 20구의 시체가 동시에 묻히는 등 참혹한 상황이 되었다. 살아남은 이 지역의 고로(古老)들이 서로 상의하여 유명한 풍수사에게 그 연유와 대책을 묻자 오산(午山)의 오(午)자에 문제가 많아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오(午)자 대신 같은 의미인 마(馬)자를 사용하라고 하여 오산(午山)을 마산(馬山)이라 개명하게 되고 이때부터 마산이란 지명이 생겼.. 2009. 11. 9. 게으름의 미학 게으름이란? 여태껏 근면, 성실, 협동이라는 단어는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많이 들으면서 성장하였고, 게으르면 빌어먹는다는 말을 통해 나태함에 경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성장기인 육 칠십년대에는 절대 빈곤의 사회여건상 그렇지 않으면 딱 굶어죽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정서에는 근면이 지고지순한 도덕적 덕목으로 취급되고, 게으름은 거의 경멸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게으름으로 인한 폐해는 두말할 나위 없지만, 그러나 근면으로 인한 폐해는 무엇일까? 이러한 발상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게으름의 미학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들은 너무나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가치관 속에서 게으름은 경쟁.. 2009. 11. 6. 굵고 짧은 놈, 가늘지만 긴 놈 크고 잘생겨야 대접 받는 세상이라, 말로는 ‘작고 힘없다고 깔봐서는 안 된다’면서도 내 무의식도 세상따라 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크고 잘 생긴 놈이 허무하게 스러져갈 때, 작고 약한 놈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제 몸을 뽐내고 있습니다. 우리 집 대문과 담장에 붙은 담장이넝쿨이야깁니다. 크게 잘 자란 넝쿨은 지난여름 짙은 녹색에 넓은 잎사귀 뽐내며 담장을 온통 제 것인 양 휘감았습니다. 볼만했습니다. 그 위세가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바람이 불면 아이손바닥만한 초록잎사귀가 출렁거렸는데 그 광경에 지난여름이 다 시원했습니다. 담장을 온통 뒤덮은 넝쿨과 새파란 잎사귀는 마치 화려한 고급포장지로 싼 선물상자처럼 멋졌습니다. 바로 그 곁에 동전만한 잎사귀가 달린 가느다란 넝쿨 몇 줄기가 떨어질 .. 2009. 11. 4. 술과 꽃의 도시 《유장근교수의「도시탐방대」에 참여해, 한 때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마산의 술 공장과 벚꽃 휘날렸던 창원천을 둘러보니 일제기 ‘술과 꽃의 도시’로 명성이 높았던 ‘그 옛날 마산’이 생각나 이 글을 포스팅한다》 특정한 도시를 한두 가지 단어로 정확히 규정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도시건 그 도시 특유의 자연조건과 문화조건을 이용해 한마디로 규정하기도 한다. 부산하면 항구, 진해하면 벚꽃, 춘천하면 호수 등과 같은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경의 마산은 ‘술과 꽃의 도시’였다. - 술의 도시 마산 - 개항 직후인 1904년 최초로 아즈마(東)양조장이 설립된 이후 꾸준히 성장했던 마산의 양조산업은 1928년에 부산을 제치고 이윽고 국내 지역별 주조생산량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2009. 11. 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