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6/105

김형윤의 <마산야화> - 121. 경영난의 남선일보 121. 경영난의 남선일보(南鮮日報) 마산지방에서 발간하는 일간지(일문 4페이지)는 멀리 명치 38년 경에 마산신문으로 발행하다가 폐간, 그 후 명치 43년 경 경성일보가 발행권을 가졌다. 강용일(岡 庸一)이란 사람이 10년 계약으로 운영하였는데, 기계는 16혈(頁) 수동식, 소설은 일본서 지형(紙型)아닌 연판(鉛版)으로 들어오고, 사옥은 신마산 진일기계사 창고 옆에 있다가 다시 구 러시아 영사관(현 일성펌프공장)으로 옮겼으나, 기계에 모터 장치란 꿈에도 모를 때고, 족답(足踏)으로는 회전이 되지 않아서 기계공 4명이 수동을 하여 신문 한 장이 나오는 시간이 약 4초 내지 5초가 소요되었다. 기계공 4명 모두 유발자(有髮者)라 수동할 때 상방(相方) 2명의 상투가 수동 회수에 따라 꺼떡거리는 광경은 지금.. 2016. 10. 31.
김형윤의 <마산야화> - 120. 신문기자 대회 120. 신문기자 대회 1919년에 제등 실(齊藤 實)이 조선총독으로 칙임 후 종래의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탈피함으로써 총독부 어용지 경성일보(日文) 외 각 도마다 일인이 경영하는 신문은 있어도 한국민 민영지는 전혀 없었다. 제등(齊藤)은 선심이나 쓰는 양으로 우리 민간지로 조선일보를 비롯해서 동아일보 그리고 친일분자 민원식이 국민신문을, 그리고 시대일보(후에 중외일보-중앙일보-조선중앙일보) 등으로 어두웠던 근역(槿域) 삼천리의 언론계에 처음으로 일조(一條)의 여명이 비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국내 방방곡곡에는 언론에 갈증 났던 열혈청년들이 솔선하여 각 사의 지국을 설치, 신문기자의 홍수시대를 이루었다. 때는 경향각지에 사회주의 사상이 팽창한 시절이라 조선일보 본사 간부급 대부분이 좌경사상에 침윤된 .. 2016. 10. 24.
김형윤의 <마산야화> - 119. 태운환의 취항 119. 태운환(太運丸)의 취항 바다에 화륜선(火輪船)이 생긴 뒤로 목조 범선이 취급하던 하물과 승객을 거의 아끼던 시절에 마산 앞바다에 하나의 색다른 배가 생겨 일반의 호기심을 자아냈었는데 그게 바로 ‘빡락선’(혹은 똑딱선)이라는 발동선이었다. 1912년에 진해(현동)-마산간의 화객(貨客)을 취급하던 배였는데 몸집이 크고 속도가 느릿느릿하게만 보이던 화륜선보다 통탕통탕 성급한 소리를 내며 까불까불 달리는 ‘빨락선’에 인기가 집중되었던 것이다. 물론 회조업(廻漕業)은 스노우찌(須之內, 수지내)라는 일인이 독점하였으나, 매표는 노천 선착장에서 일인과 조선인 두 사람이 따로따로 출찰(出札)하였다. 개업한 이틀째부터 자연히 생기게 되니, 일본 매표구는 파리를 날리는 판이 되고 조선인 매표구는 저가(시장)처럼 .. 2016. 10. 17.
김형윤의 <마산야화> - 117. 이등의 밤중 도독술, 118. 영친왕의 정략결혼 117. 이등(伊藤)의 밤중 도독 술 융희 황제가 남한 순행 때 수행해 왔던 이등박문은 숙소인 삼증구미길(三增久米吉) 이사관 관저 근처는 경계가 사뭇 삼엄했다. 삼증 이사관 부인도 행여나 해서 밤중에 눈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데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으로 조심조심 숨을 죽여 살펴보았더니 다름 아닌 이등이 찬장을 열고 비치되어 있는 술병을 흔들어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도오꼬(銅壺, 동호)에다 데운 뒤 쭈그리고 않아서 두 홉이나 마시고 있지 않은가? 산증 부인은 비로소 이등이 호주(好酒)하는 줄을 알고 마음을 놓았다. 이 말을 부군에게 아니하고 1, 2년이 지나 남편이 마산부에서 최임하고 동경으로떠날 때 비로소 발설한 것인데 남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한 대판매일신문 주재기자로부터 새어나온 .. 2016. 10. 1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16. 융희 황제의 남한 순행 116. 융희 황제의 남한 순행 조선 왕조 최후의 황제인 순종 이척(李拓)은 1909년 1월 10일~12일(원문에는 '등극한 1907년(융희 원년) 10월'로 되어 있어서 바로 잡았다)에 소위 경부·경의선 철도부설 시찰이라는 명목 아래 마산포를 순행하였다. 이 순행을 축하하는 뜻에서 일본의 연합 함대가 마산만에 투묘(投錨)하고 101발의 축포를 터뜨렸다. 한편 마산 이사청(현 경남대 평생교육원) 정문과 숙사(宿舍)인 이사관사(부윤관사-현 마산종합복지관) 앞 그리고 경교(京橋, 제일각 앞)와 창원교(전 럭키회관 앞)에는 한제폐하(韓帝陛下)의 어남순(御南巡) 환영대송문(歡迎大松門)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수행원은 통감 이등박문, 한국의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 등 외교 문무백관이었다. 숙소는 삼증(三增) 이사관.. 2016.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