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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1/24 남해안 경관 더 늦기전에 지켜야 (2)
- 2010/05/2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통합 창원시의 발전방향에는 ‘해양문화 중심도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해역환경관리협력기구(PEMSEA-팸시)가 주관하는 「2012년 제4차 동아시아 해양회의」 개최도시로서 당연한 비전입니다.
이 회의에는 동아시아국가의 해양관련 장관, 교수, 전문가 등 2,000여 명이 참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19일(금) 오후에 CECO에서 「남해안 선벨트 한중해양도시의 국제협력 방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주최는 「국회 남해안시대를 위한 의원 연구모임」과 「경상남도」였고, 「창원MBC」와 「경남발전연구원」이 주관하였습니다.
이런 류의 행사가 늘 그렇듯이 인사말이 참 길었습니다.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 등 내노라 하는 여섯분의 인사말 때문에 개회된지 40분이 지난 뒤에야 본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본 행사는 박양호 국토연구원장의 ‘남해안 선벨트시대의 국가발전’이라는 기조강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최점봉 중국연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한중 해양도시 교류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으로, 남기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가 ‘남해안선벨트 해양문화중심도시 육성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기조발제를 하였습니다.
오후 4시에 시작한 토론회는 두 발제가 끝나자 6시가 되었습니다. 토론자 일곱 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한 시간이었습니다.
최덕철 경남대 대외부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는 임은순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부 교수, 강정운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 유장근 경남대 인문학부 교수, 박병희 순천대 경제학과 교수, 경남발전연구원 정재희 박사, 창원시 정재홍 해양개발사업소장이 참여했고 저도 말석에 끼어 한마디 했습니다.
모든 토론자들이 자신의 전공에 따라 관광, 행정, 역사, 경제 등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저는 남해안의 해안경관관리에 대해 간략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평소 생각해오던 것이었습니다.
도다리 잡고 홍합만 따면서 살아간다면 그까짓 경관 아무 상관없지만,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남해안의 미래를 기대한다면 해안경관은 절대필수조건입니다.
중국 산동성의 칭타오와 웨이하이나 옌타이를 여행한 분들이 한결 같이 그 도시의 경관에 찬사를 보내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자연경관이 더 우수한 우리 남해안의 경관이 그 도시들 보다 못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의 해안경관은 ‘사람에 의한 파괴’의 연속이었고 ‘무제한 인정되는 경관(건조물의 형태와 색채 등)사유권’의 남발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해안건조물에 대한 법과 행정은 ‘짓느냐, 못짓느냐’에 대한 잣대만 남아 있습니다.
‘○○보호구역’에는 ‘공장이나 식당을 지을 수 없다’ 혹은 ‘주거시설이나 체육시설은 지을 수 있다’는 식의 규정이 연안관리의 전부입니다.
'무엇을' 으로만 법이 작용하고 '어떻게'에 대해서는 아무 통제가 없는 셈이죠.
주변자연경관과 ‘어떤 형태로, 어떤 색깔로’ 조화시켜 건축하느냐의 문제는 법에서 규정하지 않고 전적으로 집주인 의지에 달려있으며, 이런 현실이 천혜의 해안경관을 파괴하는 주범이라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대안 없이 비판만 한다는 핀잔을 들을까봐 몇 마디 덧붙였습니다.
중앙정부는 중앙정부대로, 도는 도, 시군은 시군대로 해안경관을 지키고 관리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인허가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와 경상남도에서는 각 지역의 특성(예를 들어 자연경관지역, 항만지역, 어촌지역, 친수공간지역, 해수욕장지역 등)에 맞는 경관 가이드라인과 규정을 만들거나 우수경관지역 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하고,
기초지방자치단체(시와 군)에서는 입지관리 및 경관심의관리제도를 도입하고, 인센티브, 세부 가이드라인, 지구지정 등을 통해 경관을 관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민관협의체 도입도 검토해볼만한 제도라고도 권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간혹 육지에서 바라보는 경관에 대해서는 제약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바라보는 경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어디서도 통제하지 않습니다.
해안경관을 지킬 장치가 어디에도 없다는 말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해양국가들과 미국이나 캐나다 처럼 국토의 면적이 넓은 나라에서는 지형적 여건이나 생활방법 및 산업구조가 우리와 달라 해안을 따라 주거지나 생활기반시설을 만드는 경우가 잘 없습니다.
따라서 해안경관 훼손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안 가치에 대한 인식부족과 오래된 생할방식, 개발지상주의, 개발주체의 탐욕 등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해안경관관리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안할 수 없는 것이 해안경관관리입니다.
통합창원시의 마산 구산면의 아름다운 자연해안선 한 번 보시죠.
아래 사진은 거제도의 한 팬션마을과 지중해의 마을입니다.
건물 짓는 비용은 거제 팬션마을이 훨씬 더 들어간 것 같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제 눈에는 을씨년스럽게 형태와 색깔이 제각각인 우리 해안마을과 아주리빛 바닷물과 잘 어울리는 지중해 마을이 확연히 비교됩니다.
마을공동체의 합의 없이 지중해 저런 경관이 가능할까요?
아무 규제 없이 한 마을을 저리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요?
밑의 사진은 저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을 한복판에 나있는 길입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주조색(하얀)과 보조색(파란)의 단순한 컨셉이 돋보입니다.
제 사진도 한장 올려보았습니다.
‘경관이 밥 먹여 주냐?’라는 분도 있습니다만 그 분들에게 이렇게 답하고 싶네요.
‘경관이 밥 먹여준다’ 고요.
소득 3만 불을 바라보는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이 곧 자산입니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 사는 사람은 그 삶도 아름다울 겁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절경의 남해안, 지금이라도 지켜야 합니다.
통합시의 마산 구산면,,,,
가 보셨나요?
부드럽고 차분한 리아스 식 해안,,,,
차마 '자산'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순수 자연의 속살입니다.
그 해안,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름답게 가꾸면서 즐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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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포 선정이유와 민중의 고통>
왜?
원 세조 쿠빌라이와 고려 충렬왕은 대일본 원정기지로 남도의 작은 포구 합포를 택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당시 이 도시가 가졌던 자연적 사회적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학계에서 정리된 내용은 대략 다음의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위치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합포가 해로(海路)상 일본과의 최단거리에 있는 항구입니다. 그리고 거제도와 쓰시마 사이를 지나는 쓰시마 난류를 타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쓰시마를 거쳐 일본 본토로 갈 수 있는 첩경(합포-거제도-대마도-이키-일본본토)이라는 점입니다.
해로 뿐 아니라 육로도 수도 개경에서 일본으로 가기 위한 최단거리에 위치한 항구가 합포였습니다.
둘째는 항구시설입니다.
합포에는 이미 조창이었던 석두창이 설치되어 상대적으로 다른 포구보다 양호한 항구시설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조운선을 위한 정박시설, 내륙으로의 조세운반을 위한 교통로, 조운선의 건조와 수리를 위한 조선시설, 군량미 보관에 용이한 기존의 창고시설 등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석두창에서 인근 지역의 조세가 수납되고 있었기 때문에 군량의 확보도 유리했을 것입니다.
셋째는 포구의 조건입니다.
아래 그림처럼 합포는 리아스식 해안에 포구가 깊어 내륙 깊숙이 자리 잡은 형세입니다.
거제도를 비롯한 모도․저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 때문에 외해의 풍랑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하였을 겁니다.
넷째는 기존의 군사시설 때문입니다.
통일신라 이후부터 동남도병마절도사영(東南道兵馬節度使營)이 설치된 이래 합포에는 계속 군사기지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위한 시설과 무기의 제조 및 보관 등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백성들의 고통-
이 네 가지 조건에 의해 합포가 대일본원정기지로 선택되었지만, 두 번에 걸친 전쟁준비로 겪은 마산인근의 백성들이 받았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정벌준비에도 쉽게 동원되었을 뿐 아니라 조세도 타 지역민보다 가혹하게 부담하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정벌은 권력 확장을 꾀한 통치권자의 정치적 목적과 의도 이전에 백성들에게는 피할 수도 이겨낼 수도 없었던 또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수선사(오늘의 송광사) 승려 원감국사 충지(沖止)는 일본정벌로 고난을 당하고 있던 영남지방 민중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영남의 쓰러진 모습
말로 하려니 눈물이 앞서네
두 도에서는 군량을 바치고
세 산에서는 전함을 만드느라
세금은 백배나 늘었고
역역은 삼년에 걸쳐
징발은 성화같이 급하고
호령은 우레같이 전하네
····
처자식은 땅에 주저앉아 울고
부모는 하늘보고 울부짖네
저승과 이승은 다르건만
목숨 보전을 어찌 기약하랴
남은 사람은 노인과 어린이 뿐
억지로 살려니 얼마나 고달프랴
고을마다 반은 도망간 집이요
마을마다 모두 황폐한 토지로다
,,,, 전쟁 때 힘 없는 백성만 죽어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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