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을 질주하는 멧돼지’
메이지(明治)시대, 일본 도시에 처음으로 나타난 자동차를 두고 일컬었던 말이다. 상황이 조금 바뀌었지만 도시의 평화는 보리밭을 짓밟는 멧돼지처럼 자동차가 짓밟고 있다.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자동차도 이미 2,000만 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수준도 세계 상위권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차가 많아질 것을 예측치 못한 채 만들어진 우리의 도시는 자동차에 압도당해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전 세계가 함께 앓는 몸살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오래 전부터 선진도시들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개인자동차 통행량을 줄이고 보행과 자전거 혹은 대중교통의 이용률을 높여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답은 없다.
제아무리 도로를 넓히고, 터널을 뚫고, 지하도를 파고, 주차장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걸 몸으로 알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시도 끝에 얻은 유일한 답이었다.
목표를 위한 정책과 방법은 각 도시의 물리적 사회적 자연적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답은 유일했다.

반대방향으로 가려하는 도시가 있다. 바로 마산이다.
마산시는 2007년 발간한 『2020년 마산도시기본계획』에서 2005년과 2020년의 소단별 통행량 예측치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작년11월 12일 마산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이주영 국회의원 정책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김민수 교수가 제시한 자료다.

마산시는 2020년의 통행량 상황을 2005년과 비교하면서,
보행은 13.1%⇒10.1%로 줄고, 대중교통은 32.5%⇒26.7%로 줄고, 택시는 24.2%⇒22.8%로 줄되, 유독 승용차만 21.2%⇒27.9%로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개인자동차를 늘이고 보행과 대중교통을 줄이겠다는 정책을 나는 어떤 도시에서도 본 적이 없다.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 관심 아닌가? 현 정부에서도 ‘친환경 녹색성장’이 주요정책방향 아닌가?

걷거나 버스타지 말고 자가용 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 어이없는 도시정책은 도대체 누구의 상상력이며 비전인가?
비판하는 발제자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싶었다.
걷는 사람과 버스이용자가 줄어들 것이라 예측하고 있으니 오늘 마산의 도시교통정책이 이렇게 거꾸로 가고 있구나 싶었다.

도시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는 땅을 포함한 시설, 시민, 그리고 시민의 ‘행동’이다.
도시는 사람들의 만남과 교류, 그리고 문화, 행사, 유통 등 생활을 담는 행동공간이자 삶의 터전이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사람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위치 이동만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걷는다는 그 자체가 우리의 생활이며 시민의 기본권이다. 그동안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미명 앞에서 철저히 부정되기도 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아름다움으로 변했다.
하지만 사람이 걸어야할 길을 자동차가 턱하니 막고 있어서 차에 밀려난 사람들은 또 다른 차를 피해 이리 저리 꾸불거리며 걸어 다니고 있다.

인간이 자동차를 만든 이유는 그것을 통해 보다 편하고 질 높은 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처럼 자동차 때문에 인간이 이리 저리 내몰리게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언젠가 보행권을 주장하는 단체에서 마산의 도심 보행권 실태를 조사했다. 두 번에 걸친 실태조사의 결과는 이렇다.

남성동 파출소 앞을 지나는 남성로의 경우,
보행자가 이용하는 보도의 폭이 겨우 1미터 전후인데 그나마 이들 대부분도 불법 주․정차로 인해 보행로의 기능은 없어져버렸다.
남성로를 걷는 사람들은 보도를 자동차에 뺏긴 채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로 들어가 이리 저리 앞뒤를 살피며 다니는 실정이다.

불종거리의 경우,
보차 구분이 있기는 하나 상품진열과 입간판, 보도의 불연속성 등이 보행환경을 크게 해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의 질이 우리 삶의 질이라면 보행권은 시민생활의 중요한 바로미터이다.
따라서 쾌적한 보행이 시민의 권리로서 보호받도록 도로 사용의 우선권을 자동차로부터 보행자가 돌려 받아야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도시행정의 계획과 지원이 적극 실현되어야한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임치고, 사람은 걷는다, 그래야 행복하다.
보행권은 인간권이다.
‘도로의 인간화’ 없이 ‘시민 존중의 도시’는 공염불이다.<<<

                          <쿠리티바의 보행자 전용 거리>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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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림
    2010/03/0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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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쉬는 날 버스를 놓쳐 걷게 되었는데 역시나 아찔한 경험을 했답니다.
    아슬아슬하게 제 옆을 스쳐가는 버스에 하마터면 큰일이 날뻔 했지요
    버스를 떠나는데 전 멍하니 놀래서 그자리에 한참을 섰었지요

    그런 곳이 너무 많아서 걷기가 힘들어요
    • 허정도
      2010/03/06 11:03
      댓글 주소 수정/삭제
      걷기 좋은 길을 갖고 싶은 마음,
      큰 욕심 아니겠지요?
  2. 2010/03/08 19:3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도 자전거를 취미로 둔 입장에서 선진국을 보면 정말 부러워요
    넓은 인도와 자전거도로,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와 도보로 이동이가능하고
    매연없는 쾌적한 도시...
    언제쯤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살 수 있을까요
    • 허정도
      2010/03/08 23:11
      댓글 주소 수정/삭제
      글쎄 말입니다.
      도시정책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민들의 의식이라고 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도시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힘을 모으면 보다 나은 미래가 오겠죠.
      문제는 '우리의 생각'이라고 봅니다.

먼 곳에서 10여 명의 손님이 왔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현직 교수와 젊은 대학원생들이었는데 모두 마산이 초행이었다.

오후 3시 경 버스 편으로 양덕동 터미널에 도착한 이들의 마산 여행은 이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멀게는 여몽연합군의 정동행성으로부터 조창과 개항, 식민지 시대를 거쳐 가깝게는 3·15의거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0년을 넘나드는 마산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저녁식사는 신마산 두월동에 나가 해결했다.

‘통술거리’라 명명된 두월동 거리는 개항 직후인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차지한 조계지에서 최고 번화가로 쿄마찌(京町)라 불렀던 곳. 거리의 내력을 안 여행자들은 자신들이 100년 전 조계지 한 가운데 앉았다는 것만으로 매우 즐거워했다.

통술집 특유의 신선한 해물과 풍성한 양 때문에 모두들 낯선 도시의 밤을 한껏 즐겼다.


▲ 마산 통술거리와 통술집의 기본차림상

숙박은 돝섬에서 했다.
세련되지도 않고 고급스럽지도 않았지만 정성들여 꾸며 놓은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고, 섬에 왔다기보다 마치 큰 유람선을 탄 듯해서 항구도시의 소박한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섬에서 도시전체야경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 자랑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본인들이 조성한 개항장 거리를 걸어 마산이사청과 신동공사 터를 찾았다. 합방 직전 융희황제(순종)가 마산에 왔던 이야기와 개항 직 후 이 도시를 농단한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역사의 흔적을 더듬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의미만 되새겼을 뿐, 어느 것 하나 눈과 감성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마산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담하게 사라져 버린 문화유산들에 대한 질책을 그들로부터 받았고, 현존하는 일본헌병대 건물만이라도 보존하라는 당부에는 책임 못질 약속을 했다.

100년 도시를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둘러보고 남성동으로 이동했다.
조창이 있던 남성동 네거리와 창동·동성동의 수백 년 된 골목길은 여행자들에게 지나간 시간의 신비한 체험이었지만 이곳 역시 매 마른 설명 외에 달리 보여줄 게 없었다.

다음은 어시장. 퍼덕이는 것은 도다리와 볼락만이 아니었다. 생선과 뒤섞인 사람에게도 생명이 퍼덕이고 있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항구시민에게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 마산 어시장. 싱싱한 해산물 만큼 언제나 활기가 넘쳐난다.


점심은 중성동 생선국 집을 찾았다. 장사를 시작한지 무려 40년 가까운 이 식당은 고객의 평균연령이 전국에서 가장 높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오래된 단골손님이 많다.

특이하게 생긴 생선 모양을 보고 웃고, ‘탱수’니 ‘아구’니 하는 이름 때문에도 웃었지만,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 맛에는 모두들 신기한 듯 놀랐다. 그들에게는 생선국 한 그릇도 새로운 문화체험이었다.

떠나면서, 시간을 가지고 다시 찾겠다는 약속도 하고, 뭐니 뭐니 해도 엊저녁 ‘통술집’이 제일 좋았다는 평가까지 있었지만, 모두들 한결같이 “이렇게 재미있는 여행은 처음이었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이 행사는 기왕 마산을 찾는 분들에게 이 도시의 생생한 현장을 체험시켜주자는 친구의 제의로 만든 작은 이벤트였다. 개항장, 조창지, 수백 년 된 골목길, 돝섬과 바다와 어시장, 그리고 통술집과 생선국.

오직 마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들 문화 컨텐츠의 위력은 예상했던 대로 놀라웠다. 24시간 동안 벌어진 이 작은 이벤트를 통해 그 동안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던 이 도시의 가능성도 찾을 수 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마산 도시 발전을 원한다면, 그래서 사람 살만한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면, 24시간 마산 여행이 성공한 까닭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Posted by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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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은진
    2009/09/0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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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가 없는 것은 사람들이 없는 것이지,
    땅은 이야기를 감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선조들을 잘 모르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모르니 이야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허정도 선생님 알려주신 코스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전에 저도 돝섬에서 숙박하는 것을 고려해 보았는데
    배가 일찍 끊어진다고 하던데
    통술 먹고, 내 짐작에는 배가 없을 텐데
    의문이 드는 군요.

    돝섬의 숙박시설만 잘 해도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허정도
      2009/09/07 16:3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방문 감사합니다.
      당시에는 늦은 시간까지 배가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여행이 별겁니까?
      낯선 공간에서 낯선 체험을 하는 것이 최고의 여행아니겠습니까?
      소박했기 때문에 더 좋았던 추억입니다.
      감사합니다.
  2. 2009/09/07 23:4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블로그도 운영하십니까?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마산기행, 저가 이곳저곳 디다본 느낌이군요.
    마산에 살면서 마산을 이야기하지만
    이 글을 읽고 정말 저는 아는 것이 없구나를 느꼈습니다.
    우리 고장의 좋은 역사공부 잘 했습니다.
    기회되시면 중성동 생선국집 한번만 안내해 주십시요.
    그 댓가로 저가 쏘겠습니다.
    이 글로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으니 말입니다. 하하~
    • 2009/09/08 08:21
      댓글 주소 수정/삭제
      환영합니다.
      ‘林馬’라고 하니 괜찮은데 ‘임마’라 하니 조금 미안하네요.
      어쩔 수가 없네요, ‘임마’를 ‘임마’라 하니,,,


      별 것도 아닌 글을 좋게 봐주어 고맙습니다.
      소박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 늘려있는 역사와 문화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철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마산 같은 올드시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죠.
      언제 기회 되면 함께 둘러보시죠.
      제가 아는 대로 안내해 보겠습니다.
      저보다 아는 게 훨씬 많은 친구들도 있으니,
      제가 모르는 부분은 친구들에게 물어서라도 해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임마’가 누굴까????
    • 2009/09/08 15:1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임마'를 모르신다고요???
      위 林馬를 함 눌러보시면 금방 알 수있을텐데요?
      울 대표님을 넘 존경하는 소박한 마산시민입니다 하하~
  3. 2009/11/13 10:2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부끄러운 말입니다만 마산 토박이면서 정말 마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아니 알 기회가 없었다고 하면 변명이 될까요?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고향이 너무나 그리워
    다시 돌아왔지만
    추억은 떠올릴뿐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공부 많이해서 친구들 마산오면 이야기 해주고 싶네요
    • 허정도
      2009/11/13 11: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방문감사합니다.
      다음 카페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에 가셔서 마산도시탐방에 참여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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