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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초등학교1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1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4) "한 집에서 46년을 살아오면서" ------------------------- 김○○ 1940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598-16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조합사무실, 자택 - 반갑습니다. 이 동네에서 아주 오래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동네의 옛날 얘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살고 계신 데는 언제부터 사셨습니까? = 우리 동네 내력을 역사로 남겨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여기 69년도에 들어 왔습니다. - 예. 정말 오래 되었네요. = 68년도에 집이 완공 되고 69년도에 입주가 되었는데 우리도 69년도에 들어왔으니까 올해가 46년째인가 그럴 겁니다. 여기가 원래 나락 심고 하던 논이고 미나리꽝이고 그랬다고 합디다. 몇 사람 업자들이 모여 가지고 택지.. 2021. 1. 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5) - 강점제3시기 오늘도 사진 석장 소개합니다. 29. 마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 1904년 일본거류민회에 의해 발족된 학교로 현 월영초등학교의 전신입니다. 1936년 4월에 마산공립중학교(현 마산고)가 설립된 이후 고등과를 폐지하였습니다. 이 학교는 일본인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개항 직후부터 일제 패망까지 운영된 마산 유일의 일본인 학교입니다. 30. 마산공립보통학교 1901년 4월 마산공립소학교라는 교명으로 개교한 마산공립보통학교는 현 성호초등학교의 전신입니다. 위 마산공립심상소학교가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학교였다면 이 학교는 한국인들을 위한 학교였습니다. 31. 식산은행 마산지점 1918년에 지은 건물로 남성동 현 제일은행 자리에 있었던 건물입니다. 벽돌조 1층 양식으로 1970년대까지 남아있었습니다. 2013. 8. 1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1941년 간행된『약진마산의전모(躍進馬山の全貌)』와『마산개항백년사』에 게재된 내용에 의하면 1930년대 마산의 교육기관은 공립으로 마산공립중학교․마산공립상업학교․마산공립고등여학교가 있었습니다. 반면 사립으로는 창신․호신․의신학교․마산노동야학교 등이 있었으며 초등교육기관으로서 마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마산성호공립심상소학교․마산완월공립심상소학교가 있었습니다. 유아교육기관으로는 사립마산유치원과 사립대자유치원 등 몇 개의 시설이 있었으며 종교기관에서 사회교육차원에서 행한 교육시설도 있었습니다. 현 마산고등학교의 전신인 마산공립중학교는 1936년 개설하였으며 입학생의 대다수가 일본인이었습니다. 한국인 학생은 친일파 자제이거나 성적이 우수한 극소수의 학생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마산상업고등학교를 거쳐 몇 년 전.. 2012. 10. 1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강점 제3시기에는 마산의 인구도 많이 변했습니다. 1930년에 25,810명이던 것이 1941년에는 41,546명이 됨으로써 증가율이 161%에 이르렀습니다. 그 중 한국인이 20,149명에서 35,670명 177%가 늘어난 데 비해 일본인은 5,559명에서 5,865명 105.5%로 변화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을 제외한 기타의 외국인은 102명에서 11명 10.8%로 심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다음사진은 1930년대 한국인들이 다녔던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와 일본인들이 다녔던 마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입니다. 1930년 이후부터 해방 때까지의 인구 변화는 다음 표와 같습니다. (1944년의 54,000명은『통계연보』를 인용한 표를 이용했는데 천 단위 이하는 삭제되어 있었으며.. 2012. 8. 2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5) - 강점제2시기 직전 포스팅에서 설명드린 『朝鮮と建築(조선과 건축)』의 1928년 편을 보면 「學校建築號」라는 주제의 특집기사가 있습니다. 당시의 학교건축물 현황의 일편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잡지 편집진에서 국내의 중요한 학무당국자와 전국 각 학교 교장들에게 당시의 학교시설에 관해 세 가지의 질문지를 보낸 후 이에 응답한 학교관리자의 의견을 게재한 것입니다. 마산에서는 일본인들이 다녔던 마산공립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와 한국인들이 다녔던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의 교장이 이 질문에 응답하였고, 그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책에 실린 질문과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질문 1) 재래학교의 건축에 대한 감상 2) 장래 지을 학교 건축에서 개선해야할 점 3) 기타 학교 건축에서 눈에 띄는 점 ■ 마산공립소.. 2012. 2. 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9) - 강점제1시기 1912년부터 1915년까지의 시기에 일어난 마산포의 대대적인 도로개설공사 결과, 그 때까지 자연발생 취락에서 생긴 꾸불꾸불하고 좁은 길을 자르면서 폭 8-10m의 직선형 도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때맞춰 시행한 매립지에서도 같은 크기의 도로가 개설되면서 두 지역의 도로들이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도로의 규모와 형태변화는 마산포(원마산) 도시구조에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마산포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모인 시기를 마산창이 개설된 1760년으로 볼 때 이것은 실로 150년 만의 대변화였습니다. 지난 주에 보았지만 다시 한 번 더 매립 후 달라진 마산포 도면을 보겠습니다. 매립과 도로개설 이전의 도면과 이후 도면입니다. 이 도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기에 동서방향으로 동성동에서 부.. 2011. 10. 1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3) - 강점제1시기 마산최초의 근대식 지도 1916년 / 육지측량부 / 조선총독부 / 1:10,000 / / 울산대 도서관 이 지도는 근대적 측량법에 의해서 제작된 최초의 마산 지도입니다. 1916년에 측도하여 1917년에 제판하였고 1917년 6월 25일 인쇄하여 6월 30일 발행하였습니다. 저작권소유자는 조선총독부이고 인쇄 겸 발행자는 육지측량부입니다. 정가(定價)가 십팔전(金拾八錢)이라고 기재된 것을 보아 판매도 했던 것 같습니다. 범례도 지금까지의 것과 달리 각종 시설물은 물론 토지의 상태와 도로의 종류 및 행정구역의 경계까지 세밀히 나누어 표기해 놓았습니다. 본 지도의 제작과정에 관해서 1986년 백서방(栢書房)에서 펴낸 淸水靖夫의 『日本統治機關作製にかかる朝鮮半島地形圖の槪要』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그 내용을 소.. 2011. 8. 2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6) - 강점제1시기 1910년대에는 마산에 도시변화가 많이 없었던만큼 건축공사도 많이 없었습니다. 종교시설과 일부 교육시설만 약간 들어섰습니다. 개항기에는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한 관아시설들이 주로 건설되었지만 이 시기에는 개항기에 지어 놓은 건물들의 증․개축이 많았으며 관아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용 건물이 많았습니다. 또한 목조건축물이 많았던 이전과 달리 이 시기부터는 벽돌을 이용한 조적조 건축물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적으로 보면 신마산에 집중되었던 건물들이 서서히 원마산 쪽으로 뻗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10년 장군천 이북에 지방법원지청이 들어섰고 현 마산시청 자리에 전기회사가 들어오는 등 공공건물들이 건축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일대(옛 마산시청부근)가 신마산의 마산포 진출이라는 의미 외에 마산포와 신마산.. 2011. 7. 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5) - 강점제1시기 합방 2년 후인 1912년 4월 8일 당시 양산 통도사 주지인 천보(天輔) 김구하(金九河) 큰 스님이 마산지역의 포교를 위해 사답(寺畓)을 팔아 현 추산동 포교당(정법사) 터에 설법전(說法殿)을 창설한 것이 근대 마산불교의 시초입니다. 1년 후인 1913년 서울 각황사에서 전국 30본사(本寺) 주지들이 조직한 ‘불교진흥회’의 발기 간사인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1864년-1921년)이 진주에서 마산으로 이주하여 8년 동안 살았습니다. 이 때 위암은 마산불교진흥회를 조직하여 불교 발전에 진력을 다했으며 천보(天輔)스님과 자주 교류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이 1912년에 건축한 추산동 포교당입니다. 새 건물을 짓는다고 최근 헐었습니다. 마산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건축이 사라진 겁니다. 우리 지역 불교사의 상.. 2011. 7. 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마산 최초로 근대식 학교가 섰습니다. 창원군에 있던 소학교가 마산으로 이전하면서 개설한 공립소학교로, 현재의 성호초등학교입니다. 1901년 4월에 개교하였으며 한국인들이 다녔습니다. 마산공립소학교는 1904년에 지방 유지들의 성금 2,000여원으로 교사(校舍)를 지었고 1911년 마산공립보통학교로 교명이 바뀌었습니다. 아쉽게도 1904년에 지은 교사의 사진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은 1927년에 벽돌조 2층으로 지은 교사입니다. 일본인을 위한 최초의 정식 교육기관은 마산심상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입니다. 1902년 11월 조계지 내 남쪽 끝 해안의 한옥을 한 채 빌려 일본불교 정토종 개교사(開敎師) 삼우전지문사(三隅田持門師)가 마산포일본인소학교를 세웠는데 1904년 6월 마산심상소학교가 설립되자 .. 2010.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