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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마산1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2) 지금까지 올렸던 글에 대한 요점과 관점 그리고 성과를 정리한 글입니다. 마산은 오래 전부터 존속해왔던 조선인 집촌의 원마산(마산포) 지역과 개항 이후 인위적으로 조성된 신마산 지역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각각의 영역을 확산시키면서 마침내 하나의 도시로 연담화되어 가는 변화과정을 겪었습니다. 마산의 도시구조가 지금과 같은 틀을 갖춘 것은 이 시기였으며, 이 때 형성된 도시구조는 이후에 규모만 확장되었을 뿐 큰 변화 없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용 중 과거에 존재했던 도시공간의 복원은 그 자체로서 해당 시기에 지니고 있던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유익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도시구조의 물적 형태를 시계열적으로 설명하였기 때문에 도시사학(都市史學.. 2014. 5. 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4) - 강점제3시기 120회부터 시작된 1930년대 이후 마산도시변화에 대한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일제 강점 제3시기는 만주사변에 이어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전쟁기로서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한 시기로, 일제는 한국인의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잠재우기 위하여 소위 황국신민화정책을 폈습니다. 1930년의 마산 인구는 27,885명이었는데 1940년에는 36,429명이었습니다. 비율로 보면 30.6% 증가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목포가 85.2%, 부산이 70.9%, 진주가 71.9% 증가한 것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강점 후기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인구가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중앙마산 조성계획은 193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중앙동 2가와 3가, 즉.. 2013. 12. 3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2) - 강점제3시기 이번에는 강점 제3시기에 있었던 마산의 도시구조 변화에 대해 정리합니다. 만주사변 등으로 1930년 이후 국내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최악이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도시의 물리적 환경도 점점 열악해갔습니다. 그러나 마산의 경우, 위치가 전선과 멀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일본과 대륙을 연결하는 접점이라는 점과 군수물자 공급창이라는 점 때문에 새로운 매립도 시도되는 등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마산의 건설경기가 과도하게 상승하여 ‘황금시대’ 운운할 정도였습니다. 지형적으로 볼 때 매립 전의 마산은 자산동 입구, 즉 몽고정 부근에 해안이 깊고 환주산이 해안 쪽으로 돌출해 있어서 가용대지가 협소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두 개의 철도와 한 개의 간선도로(현재의 장군로)가 지나고 있어서 .. 2013. 12. 1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2) - 강점제3시기 1937년 / 마산부 / / 마산시구개정관계서류, 문서번호 1014 / 정부기록보존소 정부기록보존소에 소장되어 있는 지도입니다. 제작시기에 맞춰 아주 정확하게 표기된 지도로 보입니다. 조계지는 물론 신마산 전역에 이미 개통된 도로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으며 주요 시설들도 명기되어 있습니다. 원마산 역시 그 때까지 개설되었던 도로가 그려져 있고 당시 이미 준공되었던 신포동 매립이 완성된 것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죽본조(竹本組)가 매립한 오동동 해안의 매립은 점선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형태는 달랐습니다. 이 지도를 통해서 장군천까지 완전하게 도시를 이룬 신마산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마산 역시 교방천까지 도시의 범역이 확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1920년대부터 시작된 중앙마산의 조성도 진.. 2013. 1. 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마산상공회의소 백년사』에는 1939년 현재 마산에서 활동한 개인 영업자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제조업과 운수업 등은 제외한 통계입니다. 이들 개인영업자 중 한국인 상인들은 주로 원마산 중심상가와 부림동 시장 및 남성동 해안 일대에서 곡물, 면사포 등의 포목류, 해산물, 식료품, 고무신 등 생활필수품을 많이 취급했고 대금업도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 상인들은 주로 건축자재, 철물, 과장, 서적과 문방구, 가구, 의복, 술과 고기, 연료, 선구(船具) 등을 판매했고 대금업도 10여명 정도 되었고 토건청부업도 있었습니다. 자료에 나타난 개인영업자의 숫자는 232명이며 영업장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을 이용해 232개의 영업장을 원마산․신마산․중앙마산으로 나누고 다시 각 동별로 나.. 2012. 9. 2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일제가 「조선시가지계획령」에 의해 고시 제556호로 발포한 마산의 시가지 계획은 구역면적 43,287,000㎡, 계획인구 80,000명, 목표연도는 1961년까지, 내용은 가로개설 및 구획정리였습니다. 계획인구 8만명, 목표연도 1961년이라는 일제의 계획을 보니 어떻습니까? 이 고시가 발포된 시기는 1941년 4월 19일이었습니다. 발포시기와 달리 마산은 1936년과 1938년에 가로(街路)축조공사를 이미 시행하였는데 이 공사도 「조선시가지계획령」에 의한 것이었다고 추정됩니다. 도시사학자 손정목(사진)은 「조선시가지계획령」 분석을 통해 원마산 지역은 1920년대에 총독부의 재정 지원으로 실시한 시구개정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인 반면, 신마산 지역은 시구개정을 하지 않았지만 개항장을 조성할 때 비교적 도.. 2012. 8. 1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9) - 강점제2시기 85회부터 시작된 1920년대 마산도시변화에 대한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일제강점 제2시기인 1920년대는 한국이 일제의 상품시장 및 원료공급지, 특히 식량공급지로 산업구조가 재편되었던 산업수탈기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기만적인 소위 문화정치가 표방되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산미증식계획이 강행되었고 회사령이 철폐되었습니다. 1920년대의 마산인구는 1920년에 16,165명이었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성장의 폭이 조금씩 많아져 1930년에는 25,810명이 되었습니다. 일본인은 1920년 당시 4,172명이던 것이 1930년에는 5,559명이 되어 1920년에 비해 133.2%로 늘어났지만 한국인들은 같은 시기에 169.0%로서 일본인의 증가율에 비해 약간 높았습니다. 조선회사령 폐지로 마산의 민족자본가들도 .. 2012. 7. 2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0) - 강점제2시기 2010년 4월 8일에 시작한 연재가 오늘로 100회를 맞았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글을 올린 것이 그럭저럭 2년이 다되었군요. 보잘것 없는 글을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4) 문헌을 통해 본 당시 상황과 중앙마산의 도시계획 직전 포스팅에서 올린 중앙마산에 대한 문헌의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당시 중앙마산의 상황이 다음과 같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중앙마산의 범역은 신월천에서 장군천을 거쳐 척산교에 이르는 철도용지 내 시가를 뜻했다. ② 마산은 마산포․신마산․중앙마산이라는 세 영역으로 나누어지는데 마산포 방면은 한인을 상대하는 상점이 많고, 신마산은 정비된 가로에 군인 및 관리를 상대로 하는 상점이 많으며 중앙부는 관아․학교․사원․철도소재지가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사택이 많이 있다. ③ 1931년에는.. 2012. 3. 1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9) - 강점제2시기 3) 각종 문헌에 나타나는 '중앙마산'의 철도용지 ‘중앙마산’이라는 용어는 이 글에서 처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일제기에 간행된 마산관련 몇몇 자료에서「중앙마산(中央馬山)」혹은「중앙방면(中央方面)」「중앙부」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지역이 신마산과 원마산의 두 영역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두 지역 사이에 있는 다른 성격의 도시공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1920년대 일본인이 발간한 문헌에 나오는 '중앙마산' 관련 기록들을 모아 소개하겠습니다. 내용을 간추려 번역한 것이며 명칭은 현재 사용하는 용어로 고쳐 적습니다. ①『馬山港誌(마산항지, 1926)』- 諏方史郞(추방사랑) a. 위치와 지세(p.3) 마산부의 대체적인 지세는 본래 마산포 즉 마산포 방면과 이전의 각국거류지 및 군영,.. 2012. 3. 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오늘부터는 ‘중앙마산의 형성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앙마산’이란, 20세기 초에 존재했던 마산의 두 도시, 즉 옛 부터 자연발생적 취락으로 발전해온 '원마산(마산포)'과 일본인들이 건설한 조계지 '신마산'의 중간 지역을 말합니다. 두 도시 사이에는 약 2㎞ 정도의 이격공간(離隔空間)이 있었는데, 이 범위 안에 조성된 혹은 조성될 도시공간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보면 대략 마산합포구청(구 마산시청)에서 부터 3.15의거탑까지를 말합니다. 사실 마산포(원마산)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리 잡은 신마산(조계지)은 태생 때부터 이미 마산포와의 도시연담화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각국공동조계지의 위치를 결정할 때부터 연담도시를 의도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 2012.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