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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by 허정도 2012. 8. 27.

<강점 제3시기 마산의 무역>

무역량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별의미가 없는 것 같아 빼다보니 글이 짧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 후 일제가 중국대륙으로 진출하면서 병참기지 기능을 맡았던 한국의 역할은 마산의 무역량을 늘이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0년대 마산항의 무역은 그 구조상 1920년대와 별 차이가 없이 수․이입에 비해 수․이출의 금액이 훨씬 많았습니다. 전체금액은 1930년의 730만 엔에서 1939년에는 1,770만 엔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 이후 마산항의 무역 증대는 정상적인 무역이라기보다는 일본의 침략전쟁 수행에 필요한 제반물자의 반․출입 증가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제하 마산항의 수․이출, 특히 미곡의 일본 반출량 증가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굶주림을 강요한 결과였으며 전쟁 중에 이루어진 기아수출이었습니다.

             (사진은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 쌀가마를 야적해 놓은 인천항입니다)

1940년대에도 1930년대와 비슷한 양상이었습니다. 1941년 일제에 의해 일어난 소위 태평양전쟁 이후 전쟁에 필요한 식량과 군수품 비축을 위해 한국산 미곡의 반출은 더욱 많아졌고, 대용식량으로 만주산 조와 대두 등을 수입하였습니다.

특히 태평양전쟁 중 한국인들은 양질의 쌀을 빼앗긴 대신 일제가 수입한 만주산 깻묵으로 식량을 대신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바야흐로 전쟁의 광풍이 불기 시작한 강점제3시기는 전시물자 부족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물자난을 해결하기 위해 공출이란 이름으로 한국 가정의 식기는 물론 제기까지, 심지어 교회나 사찰의 종에 이르기까지 쇠로 만든 것들을 모조리 약탈해가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마산에서 일본이나 중국 등지로 각종 수출품을 실어낸 곳은 지금의 제1부두, 제2부두, 중앙부두였습니다. 세 항만 모두 일제가 건설했는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위성사진에서 세 부두 위치를 확인해 볼까요?

다음 사진은 해방 후 찍은 항공사진인데, 바다 쪽으로 툭 나온 부두가 제2부두, 왼쪽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중앙부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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