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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8)- 강점제3시기

by 허정도 2013. 2. 11.

-강점 제3시기의 매립-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마산 해안의 매립은 1930년대 들어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하이라이트가 1929년에 착공하여 6년 간 시공한 후 1935년 완공한 신포동의 중앙마산지역 매립인데 이 매립으로 그 동안 둘로 나누어져있던 마산의 도시공간이 지형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국전암시(菊田岩市)의 창포동 3가 매립>

1931년 12월 4일 창포동 3가 1-1번지 801평이 매립되었습니다. 일본인 조선업자로 창포동 3가 5번지에 살던 국전암시(菊田岩市)에 의해 조선공장 부지조성을 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정부기록보존소에 보존된 「공유수면매립준공인가서 / 문서번호 87-969」에 의하면 토지소유권 취득자 통지서에 토지 취득 일자가 1932년 3월 25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비고란에는 도로․구거 및 호안석원(護岸石垣)은 국유지로 한다고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위치는 현재 창포동 광신아파트 자리이며 아래 매립과 동 시기에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국전암시(菊田岩市), 천야도추(天野都搥)의 창포동 2가 매립>

창포동 경남아파트 부지의 매립입니다.

1932년 8월 20일 옛 아주방직(당시에는 마산조면공장)과 그 주변인 창포동 2가 2번지에서 10번지까지의 3,213평이 강점3시기 두 번째로 매립되었습니다. 기록마다 면적이 조금씩 다른데 여기서 적용한 3,213평은 사정지적도와 토지대장을 확인한 것입니다.

위의 국전암시(菊田岩市)와 목재상 천야도추(天野都搥) 두 명이 공동으로 매립하여 준공하였습니다.

매립공사 준공인가신청서(정부기록보존소,「공유수면매립준공인가서 / 문서번호87-969」)에 따르면 매립의 목적은 택지조성이었습니다. 준공인가와 동시에 세관잔교 옆 모퉁이(매립도면에서는 A구역이라 칭함, 창포동 2가 7번지) 163평 및 도로․구거․물양장․호안석원 등을 국가에 귀속시킨다고 되어 있었는데 사정토지대장을 확인한 결과 국가 소유로 되어 있었습니다.

1899년부터 자리 잡고 있던 마산세관이 이 매립으로 해안을 접할 수 없게 되었지만 부잔교(浮棧橋)만은 남아있었다고 하며, 1928년에 준공한 목가전평삼랑(目加田平三郞)의 매립 터와 해안도로에 나란히 호안하여 도로를 개설하였습니다.

아래 그림이 당시에 매립된 부지입니다. 노란원이 표시된 작은 땅이 국전암시의 창포동 3가 매립이고 흰색원으로 표시된 큰 땅이 국전암시와 천야도추가 함께 시행한 매립지입니다.

그 밑의 그림은 당시 이 매립과 관련한 설계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