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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0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 2010/03/05 보행권은 인간권이다 (4)
- 2009/10/12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10)
-馬山市街圖-
1915 / / 마산상업회의소 / / 馬山案內 /
이 지도는 제작연도가 1915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마산도시연구에서 1915년 경 마산의 도시 상황을 나타내는 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도는 사실상 1908년 제작한 「馬山全圖」를 모사한 것입니다. 올 초에 포스팅한 아래 글을 보면 이 지도가 다른 지도를 배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2011/01/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0) - 개항이후
따라서 내용에 흠이 많습니다.
1915년에는 원마산까지 뚫렸던 중앙간선도로가 마산역까지만 그려져있고, 남성동에 대규모 매립공사가 시행되고 있었는데 그와 관련한 표기도 전혀 없습니다.
지도가 제작될 당시에는 고운로 윗부분은 미처 개발되지 않았는데 마치 개발이 종료된 것처럼 도로표기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馬山全圖」와 다른 점은 1910년 개청한 지방법원지청과 1911년 개통된 현 마산시청 부지의 발전소(지도에는 전등회사)가 표시되어 있다는 겁니다.
러시아영사관․마산부청․경찰서 등 공공성이 있는 건물의 위치를 상세하게 표시해 놓았다는 점도 이 지도의 특기할만한 내용입니다.
다른 표기들도 1908년 제작한 「馬山全圖」대동소이합니다.
이렇게 된 까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보았습니다.
이미 그려져 있던 1908년「馬山全圖」를 모사해 놓고 거기다가 1908년 이후 건설되거나 이전한 건물 몇 채만 추가로 표기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중앙간선도로 건설과 매립공사, 장군천 직선호안 등의 도시변화는 간과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馬山市街圖-
1915년 / 上原榮 / 마산교육회 / / 鄕土の調査 / 고려대학교도서관
이 지도도 위의 경우처럼 1910년 제작된 「마산시가도」를 모사한 지도입니다. 이 것 역시 아래 글을 보면 배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11/01/10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0) - 개항이후
'1910년 제작된 「마산시가도」원본'은 이 지도 제작자와 동일인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마산교육장 직을 가졌던 일본인 교육자 上原榮입니다.
자신이 그린 지도를 몇년 후 다시 배꼈는데, 그래도 지도 내용에 오류가 많습니다.
이미 개설되어 있던 시청 앞 도로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것을 비롯해 부적절한 표기가 많습니다.
이 지도도 위의 것처럼 각국공동조계지 윗쪽이 사실과 다르게 도로가 모두 개설된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마산 역 옆에 있던 마산병원과 소학교(월영초등학교)․상업회의소 등이 표기되어 있어서 약간의 변화는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이후 마산은 군사전략적, 경제적, 지리적 조건 등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도시의 위상에 비추어 그 시기에 남겨 놓은 사료가 많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지역에 살았던 일본지식인 몇 명이 남겨 놓은 문헌 몇 권 정도입니다. 위에 소개한 上原榮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두 지도가 비록 내용은 좀 부실하지만 그런 점에서 소중한 자료이며 가치도 큽니다.
위 지도에서 보다시피 도시사연구에서 연구대상시기에 제작된 지도를 사용할 경우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과 달리 정보가 제한되어 있었고 이동수단도 변변치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기 제작된 지도를 정확한 확인 없이 조금씩 수정해 사용한 사례를 많이 보았거든요.
마산도시변천과정에 대한 문헌(마산시사, 논문 등) 중에도 잘못된 지도를 이용한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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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국연구에 놀라다-
<마산항근방지도 (馬山港近傍地圖)>
1912-1914 / / / 1:20,000 / / 일본국회도서관
「마산항 근방지도」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도는 육지보다는 바다를 중심으로 제작된 것으로 수심과 간석지, 그리고 해안선 등이 상세히 표시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작 당시 마산의 도시공간 상황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지도입니다.
우여곡절을 거쳐 일본국회도서관에서 찾은 귀한 지도입니다.
아쉬운 건 제작자와 제작연도에 관해 표기가 없는 겁니다.
제작자와 제작연도를 어떻게 알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소장처에 확인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본국회도서관으로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제작자와 제작연도가 어덯게 되는지 알 수 없느냐고요.
제가 보낸 질문서에 대해 문서번호「NDL(L)1-9-57」로 '일본국회도서관 협력부 국제 협력과'에서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1999년 7월 1일에 받았고 답변자의 이름은 ‘문빈(門彬)’ 이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다음이 편지 원문입니다.
馬山港近傍地圖について
同圖(當館請求記號 YG-D25(外))は,刊行年及び發行者は不明です1910年代と推定されますが, 詳細については不明です.
「지도의 간행년도 및 발행자는 불명확하며 대략 1910년대라고 추정되지만 자세한 사항은 알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 작은 도시의 90여 년 전 지도 제작시기를 추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비슷한 연대의 다른 자료들과 비교해보면 1910년대라는 추정은 정확하였습니다.
답신을 받고 많이 놀랐습니다.
질문은 하였지만 답이 올 것이라는 믿음도 없었고, 특히 그들이 마산지도의 제작연도를 어떻게 알겠는가 라고 생각하였거든요.
지도의 제작연도를 알기 위해서는 각 시기별 도시발전과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1910년대 마산도시상황을 모르면 1910년대라고 답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본의 한국연구'에 대해 듣고 본 것은 좀 있지만 그 정도라는 것을 그때까지는 몰랐습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하는 궁색한 반성이 되었고, 싫고 미운 일본이지만 배워야할 것도 많은 나라가 또한 일본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놀랄만한 일입니다.
지피지기 (知彼知己)해야 이긴다는데,,,, 참 큰일입니다.
이 글에서 제가 이 지도의 제작년도를 1912-1914년이라고 표시한 근거는
첫째, 1911년 완성된 현 마산시청 부지의 발전소가 표시되어 있다는 점.
둘째, 1912년 개통된 신마산과 원마산 연결도로가 표시되어 있다는 점.
셋째, 1915년 준공된 박간(迫間)에 의한 매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 등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지도의 제작 시기는 지난 69회로 포스팅한 「마산부관할구역도」가 제작된 1913년과 동일한 시기입니다.
실제로 두 지도에서 나타나는 도시의 공간 변화 상황이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마산부관할구역도」에서는 장군천이 자연적 형태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 이 지도에서는 장군천 양안이 직선으로 변하고 도로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것으로 이 시기의 신마산 도시공간이 장군천까지 진출해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에는 1909년 육군중포병대대가 마산 월영동 쪽으로 이전하면서 임의로 매립한 자복포 일대의 매립지 범위와 매립지의 용도를 알 수 있습니다.
월영동 부분을 확대한 그림입니다. 연병장이라고 표기해놓았습니다.
이 지도의 영역을 현재 위성사진에서 본 것이 다음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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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건축물>
1910년대에는 마산에 도시변화가 많이 없었던만큼 건축공사도 많이 없었습니다. 종교시설과 일부 교육시설만 약간 들어섰습니다.
개항기에는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한 관아시설들이 주로 건설되었지만 이 시기에는 개항기에 지어 놓은 건물들의 증․개축이 많았으며 관아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용 건물이 많았습니다.
또한 목조건축물이 많았던 이전과 달리 이 시기부터는 벽돌을 이용한 조적조 건축물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적으로 보면 신마산에 집중되었던 건물들이 서서히 원마산 쪽으로 뻗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10년 장군천 이북에 지방법원지청이 들어섰고 현 마산시청 자리에 전기회사가 들어오는 등 공공건물들이 건축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일대(옛 마산시청부근)가 신마산의 마산포 진출이라는 의미 외에 마산포와 신마산 양도시를 관장하는 공공업무지구 성격의 새로운 영역(중앙마산)으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910년 건축된 부산지방법원의 마산지청입니다.
1919년 육지측량부에서 제작해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1/10,000지도「마산」을 보면 마산포에 근대식 시설들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현 삼성생명 부지에 부산감옥 마산분관과 인근에 동척(東拓)출장소, 그리고 전 북마산 파출소 앞의 삼성라디에타 부지에 조면공장(繰綿工場)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또 옛 중앙극장 건너편에 금융조합이, 그리고 보통학교(성호초등학교)와 통도사 포교당, 보통학교의 서쪽 약 250m 지점에 피병원(避病院)이 있습니다.
피병원은 전염병환자 전용병원으로 이 외에 신마산 완월리 아래(현, 마산여고 뒷편)에도 있습니다.
위치를 보아 신마산의 것은 일본인 전용, 원마산의 것은 한국인 전용 아니었나 싶습니다.
1918년에는 조선식산은행이 현 제일은행 부지에 들어섰는데 이 부지는 원래 마산창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이 때 지은 조선식산은행 건물은 해방을 거쳐 현재의 건물을 지은 1970년대까지 이용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았던 근대건축물 중 변변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도시라,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아까운 건물입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창신학교 여학생들로서 시작했던 의신여학교 건물은 성지학교에 이어 벽돌조 건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규모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추산동에 있는 포교당 정법사는 1912년 건축되어 최근까지 남았다가 얼마 전 새 건물 짓는다고 철거했습니다. (2011/07/04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5) - 강점제1시기)
불교시설인 포교당을 지은 7년 후(1919년) 마산 최초의 개신교회인 마산포교회가 문창교회로 개명하면서 석조 1층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예배당을 신축하였습니다.
1만 6천원의 건축비를 모아 무학산 기슭의 석재를 사용하여 지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한국교회 석조건물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1911년부터 1920년까지 지은 건물 중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
No |
건물명 |
현위치 |
건축연대 |
有無 |
구조 및 규모 |
양식 |
면적 |
비고 |
|
1 |
도립마산병원 |
|
1911 |
|
|
|
|
|
|
2 |
마산포교당 |
추산동65 |
1912 |
有 |
목조1층 |
한식 |
30평 |
통도사正法寺 |
|
3 |
의신여학교 |
상남동 |
1913 |
無 |
벽돌조1층 |
양식 |
|
창신학교여학생 |
|
4 |
구마산우편소 |
남성동 |
1913 |
無 |
|
|
|
매립지(남성동우체국) |
|
5 |
노동야학교 |
창동 |
1914 |
無 |
|
|
140평 |
1,300엔․교실 6개 |
|
6 |
실과고등여학교 |
장군동3가 |
1915 |
無 |
목조1층 |
의양풍 |
|
마산여고 전신 |
|
7 |
조선식산은행 |
남성동3가 |
1918 |
無 |
벽돌조1층 |
양식 |
|
농공은행합병․현제일은행자리 |
|
8 |
문창교회 |
추산동 |
1919 |
無 |
석조1층 |
로마네스크 |
84평 |
최초의 석조예배당 |
|
9 |
마산창고(주) |
남성동198 |
1920 |
無 |
|
|
|
한국인 신설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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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마산의 시가(市街)는 마산포라 불렀던 원마산과 일본인들의 도시 신마산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마산포는 우천이 아니면 어느 때라도 사람들로 붐볐으며 특히 5․10일 장에는 전(全) 지역이 혼잡할 만큼 사람의 왕래와 상거래가 많았습니다.
산업은 상업이 주(主)였고 다음은 어업이었으며 공업은 아직 초보적 단계였습니다. 1911년이 되어서야 종래 재래식 디딜방아뿐이었던 원마산에 일본인 하목철삼(夏目哲三)이 발동기를 이용하는 정미소를 설립한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일한와사(瓦斯, 가스)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이 1911년 3월 16일에 설치 허가되어 중앙동 전 마산시청자리에 발전소를 건립, 같은 해 5월 23일 최초로 전기를 송출한 것을 비롯하여 도시의 변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최초로 전깃불을 생산한 기념으로 옛 마산시청 뒷마당에 세워 놓은 ‘전기불터’ 기념비 사진입니다.
금융기관으로는 1905년 제일은행 마산출장소로 시작하여 1907년 월남동(지금의 월남동 천주교회자리)에 신축 건물로 이전한 조선은행 마산출장소 및 경상농공은행 마산지점이 남성동(현 제일은행 자리, 후에 조선식산은행으로 합병)에 있었고 마산금융주식회사․마산지방금융조합․동척출장소 금융부와 민간 대금업자(貸金業者)도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현 남성동 제일은행 자리에 있었던 조선식산은행마산지점입니다. 1918년에 지었습니다. 뒤에 무학산과 학봉이 보입니다.
다음 두 사진은 1911년 발간된 『마산과 진해만』에 수록된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마산지점과 경상농공은행마산지점의 광고입니다.
특기할만한 것은 대부분의 동종업자들이 끼리끼리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조합을 구성하여 운영했다는 사실입니다.
조합종류도 곡물상조합․여관조합․주조(酒造)조합에서 이발업조합․농사(農事)조합․고물상조합 등 모두 16업종으로 다양했습니다.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뒤에도 마산의 한국인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상권을 지켜 나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이 그들 스스로 개발한 신마산의 상권을 쥐고 있었던 반면, 한국인 자본가들은 원마산 어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들 대다수는 어시장 객주였습니다.
원마산 어시장은 상인들의 공유재산과 같은 것이어서 원마산 주민의 절반 이상이 어시장 덕에 생계를 꾸려 갔다고 할 만큼 비중이 큰 시장이었습니다.
이처럼 일인들의 침탈 기도를 뿌리치고 어시장 상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 이래 유지되어 온 객주제도 덕분이었습니다.
객주들은 계 조직을 통해 일본 자본가는 물론 다른 지역의 자본 침투도 굳게 막았습니다.
그런가하면 객주들의 계 조직은 이후 상민조합, 합포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마산지역 한국인 자본가의 구심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저축조합까지 운영하면서 상권을 유지 강화하였고, 운송업에도 진출하여 역전의 화물운송업을 차지해 곡물무역업(주로 미곡)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진행된 꾸준한 자본축적이 3․1운동 후 조선회사령이 폐지되자 회사 설립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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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2) - 강점 제1시기 (0) | 2011/06/13 |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0) | 2011/06/06 |
<1910년대의 마산 무역>
당시 마산전경사진입니다.
현 대우백화점과 삼익아파트 일대에 매립을 하기 전이라 해안선이 환주산 밑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고, 신마산과 마산포 사이의 옛 마산시청부터 몽고정까지는 전부 논밭입니다. 왼쪽에 문신미술관이 있는 환주산을 시작으로 멀리 용마산과 팔용산 자락이 차례로 보입니다.
환주산과 용마산 사이에 있는 마을이 마산포이고, 산 능선 중 잘룩 들어간 곳이 현재 봉암다리가 있는 곳입니다. 매립 전이라 마산만이 꽤 넓습니다.
1911년 새해벽두부터 개항지였던 마산항이 폐쇄되긴 했지만, 식민지의 통치와 수탈에 필요한 선박에 대해서는 세관장의 특별허가라는 명목으로 선박의 출입항을 허용했습니다.
따라서 식민지 수탈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일본 선박은 개항기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통계상으로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다음 표는 강점 제1시기였던 1910년부터 1920년까지의 마산항 대외교역량입니다.
(이출과 이입은 한국과 일본간의 교역을 말합니다. 병합이 되었다해서 타국 간의 용어인 수출과 수입과 다르게 사용하였습니다)
|
연 도 |
수․이 출 |
수․이 입 |
합 계 |
|
1910 1911 1912 1913 1914 1915 1916 1917 1918 1919 1920 |
158,834 121,806 76,421 66,106 89,074 151,844 68,652 141,357 1,322,969 3,214,239 3,735,912 |
566,869 1,002,922 876,321 861,931 719,220 711,465 767,112 911,112 1,007,818 1,844,900 2,105,906 |
725,703 1,124,728 952,742 928,037 808,294 863,309 835,764 1,052,469 2,330,787 5,059,139 5,841,818 |
이 표를 보면 합방 직후 마산항의 대외교역 규모는 수출 면에서 다소 위축을 보인 반면 수입 면에서는 급격히 증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합방 해인 1910년에 수․이출이 약 16만 엔, 수․이입이 약 57만 엔이었는데 1911년에는 수․이출은 12여만 엔으로 다소 감소한 반면 수․이입은 100여만 엔으로 거의두 배나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증가는 비록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식민지 초기에 시장 개척을 위한 일본 상인들의 경제활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런가하면 1918-1919년부터 수․이출입액이 급증하게 되는데 그 원인은 확인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무튼 마산항이 개항이 종료된 이후에도 교역량에서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늘었습니다.
진해만 군항 신설 등의 영향과 점점 늘어가는 식민지 경제수탈이 그 원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918년 '조선및만주사출판부'가 펴낸 『最新朝鮮地誌(中)』에 의하면,
당시 마산에는 일본 외의 국가로 나가는 선박은 없었습니다.
일본과의 항로는 대판상선회사의 대판-인천 간 정기선이 매월 4회 기항하고 있었습니다.
연안 항로는 조선우선(郵船)회사의 부산-여수선, 부산-거제선의 정기선이 매월 2회 발착하는 것과 진해기선조합이 경영하는 마산-진해간의 1일 7회 왕복하는 작은 기선 3척이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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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을 질주하는 멧돼지’
메이지(明治)시대, 일본 도시에 처음으로 나타난 자동차를 두고 일컬었던 말이다. 상황이 조금 바뀌었지만 도시의 평화는 보리밭을 짓밟는 멧돼지처럼 자동차가 짓밟고 있다.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자동차도 이미 2,000만 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수준도 세계 상위권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차가 많아질 것을 예측치 못한 채 만들어진 우리의 도시는 자동차에 압도당해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전 세계가 함께 앓는 몸살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오래 전부터 선진도시들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개인자동차 통행량을 줄이고 보행과 자전거 혹은 대중교통의 이용률을 높여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답은 없다.
제아무리 도로를 넓히고, 터널을 뚫고, 지하도를 파고, 주차장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걸 몸으로 알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시도 끝에 얻은 유일한 답이었다.
목표를 위한 정책과 방법은 각 도시의 물리적 사회적 자연적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답은 유일했다.
반대방향으로 가려하는 도시가 있다. 바로 마산이다.
마산시는 2007년 발간한 『2020년 마산도시기본계획』에서 2005년과 2020년의 소단별 통행량 예측치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작년11월 12일 마산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이주영 국회의원 정책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김민수 교수가 제시한 자료다.
마산시는 2020년의 통행량 상황을 2005년과 비교하면서,
보행은 13.1%⇒10.1%로 줄고, 대중교통은 32.5%⇒26.7%로 줄고, 택시는 24.2%⇒22.8%로 줄되, 유독 승용차만 21.2%⇒27.9%로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개인자동차를 늘이고 보행과 대중교통을 줄이겠다는 정책을 나는 어떤 도시에서도 본 적이 없다.
환경문제가 전 지구적 관심 아닌가? 현 정부에서도 ‘친환경 녹색성장’이 주요정책방향 아닌가?
걷거나 버스타지 말고 자가용 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 어이없는 도시정책은 도대체 누구의 상상력이며 비전인가?
비판하는 발제자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싶었다.
걷는 사람과 버스이용자가 줄어들 것이라 예측하고 있으니 오늘 마산의 도시교통정책이 이렇게 거꾸로 가고 있구나 싶었다.
도시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는 땅을 포함한 시설, 시민, 그리고 시민의 ‘행동’이다.
도시는 사람들의 만남과 교류, 그리고 문화, 행사, 유통 등 생활을 담는 행동공간이자 삶의 터전이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사람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위치 이동만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걷는다는 그 자체가 우리의 생활이며 시민의 기본권이다. 그동안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미명 앞에서 철저히 부정되기도 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아름다움으로 변했다.
하지만 사람이 걸어야할 길을 자동차가 턱하니 막고 있어서 차에 밀려난 사람들은 또 다른 차를 피해 이리 저리 꾸불거리며 걸어 다니고 있다.
인간이 자동차를 만든 이유는 그것을 통해 보다 편하고 질 높은 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처럼 자동차 때문에 인간이 이리 저리 내몰리게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언젠가 보행권을 주장하는 단체에서 마산의 도심 보행권 실태를 조사했다. 두 번에 걸친 실태조사의 결과는 이렇다.
남성동 파출소 앞을 지나는 남성로의 경우,
보행자가 이용하는 보도의 폭이 겨우 1미터 전후인데 그나마 이들 대부분도 불법 주․정차로 인해 보행로의 기능은 없어져버렸다.
남성로를 걷는 사람들은 보도를 자동차에 뺏긴 채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로 들어가 이리 저리 앞뒤를 살피며 다니는 실정이다.
불종거리의 경우,
보차 구분이 있기는 하나 상품진열과 입간판, 보도의 불연속성 등이 보행환경을 크게 해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의 질이 우리 삶의 질이라면 보행권은 시민생활의 중요한 바로미터이다.
따라서 쾌적한 보행이 시민의 권리로서 보호받도록 도로 사용의 우선권을 자동차로부터 보행자가 돌려 받아야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도시행정의 계획과 지원이 적극 실현되어야한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임치고, 사람은 걷는다, 그래야 행복하다.
보행권은 인간권이다.
‘도로의 인간화’ 없이 ‘시민 존중의 도시’는 공염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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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2010/03/06 09:10
어제 쉬는 날 버스를 놓쳐 걷게 되었는데 역시나 아찔한 경험을 했답니다.
아슬아슬하게 제 옆을 스쳐가는 버스에 하마터면 큰일이 날뻔 했지요
버스를 떠나는데 전 멍하니 놀래서 그자리에 한참을 섰었지요
그런 곳이 너무 많아서 걷기가 힘들어요 -
slug 2010/03/08 19:30
저도 자전거를 취미로 둔 입장에서 선진국을 보면 정말 부러워요
넓은 인도와 자전거도로,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와 도보로 이동이가능하고
매연없는 쾌적한 도시...
언제쯤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살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마산 창신공고 건축과에서 우리를 가르친 선생님입니다.
2학년 1학기가 시작되던 1969년 봄에 우리 반 담임으로 부임하셨으니 선생님 만난 지 꼭 40년 되었습니다.
첫날 인사에서 선생님은,
마산이 고향이며 한양공대 건축과를 졸업한 후 공군 제대하고 학교로 왔다고, 잘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날 입었던 선생님의 차분하고 개성 있는 카키색 양복과 화려하게 붉었던 넥타이가 참 멋졌습니다.
옷 뿐 아니었습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서늘한 눈매, 약간 웨이브진 머리칼, 요즘 말로 얼짱이었습니다.
첫날 그 멋졌던 선생님의 모습은 그 후 오래 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부장을 했다는 선생님은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흰색·붉은색·푸른색 분필로 세계의 유명 건축물들을 그려가며 강의하던 모습은 환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의 사모님과 열애 중일 때라, 그 야릇한 소문이 하이틴이었던 우리들을 더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밀어붙이던 경제개발 시기라 공고졸업하면 취직은 잘되었습니다만 교육시설은 엉망이었습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원래 인문고였는데 정부시책에 맞춰 공고로 전환하였고, 나는 첫 입학생이었습니다.
그러니 실업교육을 시킬 충분한 준비를 못한 채 학생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건축공부에서 기본인 제도판조차 준비가 제대로 안 되었고 교재도 변변치 않았습니다.
어영부영 1학년을 대충 마친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대학교재에서 우리 수준에 맞는 내용을 발췌, 등사본 교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내용이 대학교재의 엑기스였다는 건 세월이 제법 흘러 내가 건축에 대해 뭘 좀 안 뒤 알았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찍은 졸업사진>
-졸업 후에도 이어진 선생님의 사랑-
1972년 말, 겨울 날씨가 한창일 때였습니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마산시청 옆의 작은 설계사무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녁 8시 쯤 선생님께서 사무소에 찾아 오셨습니다.
가끔 찾아왔지만 밤에 오신 적은 없었는데, 그 날은 내가 야근하는 줄 아신 것처럼 그렇게 찾아 오셨습니다.
분명히 마음먹고 날 찾아오셨을 겁니다.
그날 저녁 사무소에는 나 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날보고
“여기 난로 옆에 와 앉아보라”고 하셨습니다.
피어오르는 불이 빤히 보이는 검은 색 난로였는데 깔때기 모양의 석유통과 난로가 한 세트로 장착된 것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를 뿐 아니라 ‘선생님’은 왠지 어렵고 무서워 주저주저하며 의자를 끌어와 선생님 곁에 슬 앉았습니다.
“이제 건축을 좀 배웠냐?”
“아, 예에, 조금,,,”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예-에”
“지금 네 실력은 건축하지 않는 일반사람들도 알고 있는 상식 수준 정도다, 조그만 재주 믿다가 큰 코 다치니 절대 노력을 게을리 하지마라.”
“아, 예-에”
그날 밤 선생님의 그 한마디, 그것은 내게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내 능력이 상식수준’이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내가 제법 하는 줄 착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럴만한 이유도 나름대로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전 해에 실업계고등학생들이 겨루는 각종 기능경기대회에서 설계 잘 한다고 상을 많이 받았거든요.
주변에서 ‘잘한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고요.
그런 분위기 때문에 내가 마치 뭐나 된 것처럼 속으로 우쭐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직 어렸거든요.
그러나 나는, 그날 밤 내 기를 콱 죽이는 선생님의 그 말씀을 가슴 깊숙이 새겨 넣었습니다.
제법 긴 세월이 흐른 뒤까지 선생님의 그 말씀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 겨울밤,
선생님의 그 말씀 한 마디는 젊은 시절 내가 건축가로 성장하는 기름진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몇 년 후,
공부가 하고 싶어 어려운 여건을 뚫고 대학에 가려했을 때, 선생님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내가 유명 건축가 문하로 가게 되어 서울로 올라갈 때, 선생님은 더 없이 기뻐하시며 “꼭 좋은 건축가가 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도 선생님처럼 건축사가 되었고, 동종업계 같은 회원으로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건축이나 도시 관련 각종 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3.15의거기념사업회’에서는 선생님과 나란히 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내가 도시문제를 주제로 발표나 토론을 할 때면 선생님은 언제나 방청석에 앉아 내게 힘을 보내주었습니다.
좁은 지역이라, 사회생활하면서 선생님과 자주 얼굴을 마주치며 지냈습니다.
해마다 오월 스승의 날이 되면,
어느 해는 넥타이니 카네이션이니 조그만 선물을 들고 선생님을 찾았고,
어느 해는 통술집에서 선생님께 술잔을 드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십년 전 쯤 이었을 겁니다.
한 번은 선생님께,
“그 겨울 밤 난로 옆에서 하신 그 말씀 한마디가 제게 끼친 영향이 너무 컸습니다”
고 말씀드렸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가만히 생각하시더니,
“잘 모르겠는데, 내가 그랬던가? 허허”
웃으셨습니다.
선생님을 만나면 늘 무언가를 의논드리고 묻고 했습니다.
도의원을 지내기도 한 선생님은 지역의 주요현안에 대해 당신 나름의 생각을 갖고 계셨기에 들어 두어야할 말씀이 많았습니다.
그랬는데,
언제부터인가 선생님께서도 가끔 내 의견을 물었습니다.
내 나이 쉰 가까이 되고, 선생님께서 예순 정도 되었을 때부터였습니다.
선생님의 둘째 아들 진로문제를 두고도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그런 모습이 좋았습니다.
날 믿어주는 선생님이 고마웠습니다.
그 옛날,
까마득한 40년 전 사제지간이 그렇게 이어지는 게 참 좋았습니다.
서너 달 전,
신문사 대표직을 마치고 나니 앞으로의 내 진로를 물으시고 깊은 신뢰를 보내주셨습니다.
나는 선생님께,
‘옛날의 선생님으로 다시 돌아가 절 이끌어 달라’고 부탁드렸고, 선생님은 내 청을 기분 좋게 받아주셨습니다.
그랬던 우리 선생님께서 며칠 전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6일 아침 일찍,
선생님의 둘째 아들이 내게 부음을 알려 왔습니다.
전화하던 중 목이 콱 막히며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녁에 도립 마산의료원 영안실에서 아들을 만났더니,
“어제 밤에 선생님(선생님의 아들은 날 선생님이라 부릅니다)의 얼굴이 TV에 비치는 걸 보며 좋아하셨는데 오늘 새벽 2시에 그만 돌아가셨......"
끝내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장례식 날,
땅에 묻히는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영정 속 선생님은 조용히 웃고 계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허전했습니다.
기댈 수 있는 언덕 하나가 허물어져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선생님 생각이 나서
‘혹시 고등학교 앨범이 있는지, 있다면 선생님 젊은 시절 사진이 있을 텐데’
싶어서 이리저리 찾아보았더니 책장 한 구석에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낡은 졸업앨범이 있었습니다.
앞의 흑백사진은 거기서 찾은 선생님의 40여 년 전 모습입니다.
스물아홉 우리 선생님입니다.
"김정수 선생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끌어 주시고 믿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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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2009/10/13 18:07
저는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어느덧 교직경력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학교 수업이, 학교 생활이 이제는 익숙해지고
그 만큼 열정도 엷어졌습니다.
이버님께서....짧은 시절 교직생활 동안에 이렇게 제자의 가슴속애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음에 비해
저는 아직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
김동훈 2009/10/13 22:18
선생님,
저는 큰아들 동훈입니다.
위로와 격려 덕분에 아버지를 마지막 가시는 길 잘 모시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묘소도 잘 정돈하고 아버지 유품도 정리하고 왔습니다.
사람들과 무심코 하던 얘기가 저에게 이렇게 닥칠 줄은 몰랐는데
현실이 되었습니다.
樹欲靜而風不止 , 子欲養而親不待
불과 며칠사이에 세상이 많이 달라진 느낌이네요.
약간의 적응기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돋보기, 틀니 등 평소 쓰시던 물건들을 챙기고,
학생증, 교사신분증, 수십년 전의 비망록, 메모들을 비롯한
수십년씩 된 기록들을 챙기고,
병상에서도 마지막까지 쓰시던 글들을 읽어보며 회상했습니다.
깨알같은 글씨로 연말까지의 일정을 꼼꼼이 기록해두신 수첩에서
날이 갈수록 힘이 약해지는 필체와 실천하지 못하고 X표를 하신 계획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지막 열흘여간 병원에서 함께 생활하며 수발을 들었습니다.
일생동안 가장 고통스러웠지만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산소호흡기 탓에 발음은 부정확하지만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대화를 나누고
숟가락으로 식사를 떠서 드리고, 세수를 시켜드리고, 이를 닦아드리고,
어릴적 저의 기저귀를 갈아 주셨듯이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드렸던,
운명하시기 며칠 전에는 신부님을 모시고 병자세례를 받으시고
하염없이 울기도 했고,
며느리의 배를 만지시면서 뱃속의 아기이름을 지어주지 못해서
끝내 미안하다고 하시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의식이 돌아오실 때면
어머니와 자식들의 볼에 입맞춤을 하시며 안아주시던
어버지가 그립습니다.
평소 깜끔하신 분이셨는데 함께 목욕 한번 제대로 못한 것과
하루 시간을 비운 사이 운명하셔서 임종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 아픕니다.
하늘에서 고통없이 편안히 계실 겁니다.
이제는 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 잘 모셔야 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김동훈 拜上-
허정도 2009/10/14 07:39
선생님게서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던 큰 아들이군요.
큰 아들 결혼 않는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가시기 전 큰 며느리도 보고 임신한 것까지 아셨으니 제 마음도 참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무는 바람이 건드리고, 부모는 예고 없이 떠나버리지요.
선생님께서 그렇게 어려운 시간 보내실 때 함께하지 못해 정말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가셨지만 두 아들 두 며느리, 그 밑에 손자들,,,
이렇게 이어 갈거니 외롭지는 않으실테죠.
어머님이신 우리 사모님 건강 회복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아드님과 가족 모두에게 진심으로 위로 드립니다.
-
-
백영식 2009/10/20 11:07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벌써 10여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기억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잘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자주 찾아뵙고 해야하는지 그러지 못해서 너무나 죄송할 뿐입니다.
이번에 고인이 되신 김정수선생님 글을 읽다가 낯익은 허교수님 글을 읽고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둘째 아들 동한이형과 친분이 있어서 저도 간간이 얼굴만 뵙고 했었는데
부고 소식을 듣고 대구에서 부랴부랴 마산에 찾아 갔었습니다.
저는 지금 대구에서 공무원 신분으로 있습니다.
건축학도로서 끝까지 최선을 못하고 있어서 늘 아쉽지만 나름대로 건축 공무원으로써
성실하게 맡은 바 직무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 방학때 한번씩 찾아뵙던 때가 그립습니다.
지나고나면 추억이 참 소중하다는걸 느낍니다.
그리고 아침 방송에 나오신다길래 보았습니다.
긴장되지 않고 말씀을 너무나 잘 하시는 모습에 뿌듯했습니다 ㅎㅎ
덕분에 저도 갈수록 집사람한테 소흘히 하는것 같아서 미안했는데 이제 책도 읽어주고 해야겠습니다
얘기가 길어지는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고 사모님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
영영사랑 2009/11/26 01:01
김정수지부장님의 소식에 너무 놀랬습니다. 제가 협회다닐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때오셔서 `천양아 부모잃은 죄인이니 하늘보지말고 울어라`하시면서 어깨를 두드려주셨는데......
무심히 세월이 지났네요. 허소장님의 아름다운추억이 계시듯 저에게도 철없던이십대에 4년을 모신 지부장님이신데 이렇게 소식을 듣네요. 살면서 지난시절이 그리워지고 후회도하지만 그때가 참 행복했습니다 늦었지만 지부장님~고통없는 하늘나라에서 편안하시기를 빕니다. ~ 올해가 가기전에 연락한번드릴께요~
<마산포와 신마산이 연결되다 - 중앙마산의 형성> 오늘부터는 ‘중앙마산의 형성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앙마산’이란, 20세기 초에 존재했던 마산의 두 도시, 즉 옛 부터 자연발생적 취락으로 발전해온 '원..
광선반은 간단히 말해 앞서 설명되었던 측창채광으로 들어오는 빛을 실내 깊숙이 들이는 장치입니다. 햇빛이 선반의 반사면에 부딪혀 다시 천정으로 반사되어 유입되는 것으로 측창채광에 비해 실내에 빛이 고른 분포를 가지게 됩니다. 개..
'마우스랜드'라는 생쥐들이 모여사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들도 우리가 사는 사회처럼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뽑은 지도자는 생쥐가 아니라 매번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가 생쥐를 위해 일할리가 없..
<1920년대 교장들의 학교건물에 대한 생각> 직전 포스팅에서 설명드린 『朝鮮と建築(조선과 건축)』의 1928년 편을 보면 「學校建築號」라는 주제의 특집기사가 있습니다. 당시의 학교건축물 현황의 일편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
● 어는날 갑자기! 사는 곳이 해안도로 근처라 아침마다매 창문을 열면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시설물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시멘트를 담아두는 창고와도 같은 곳으로 '싸이로(Silo)'라는 놈이다. 그런데 몇일 전부터 이 싸..
<1920년대 마산의 건축물과 각종공사> 마산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근대식 건축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한일병합 이전까지는 주로 목조로 지은 공공기관이 주류였습니다만 1910년경부터는 벽돌조도 많이 지었습니다...
측창채광은 천창채광과는 달리, 말그대로 벽면에 위치한 개구부(창문 등)를 통해 자연채광을 실내로 들여오는 방법입니다. 창문외에도 유리블럭, 낮은 고창, 채광뜰(Sunken)이나 안뜰로난 수직 개구부 등을 통해 측창채광으로 얻는..
‘진해’ 지명에 대한 글입니다. ‘진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옛 마산시 진동면 일대’의 ‘진해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대한제국시대에는 ‘통합 이전 창원시(옛 의창군)와 옛 마산시 진동면·진전면·진북면 일원’을 ‘진해군’이라..
<마산사람들의 배일감정> 일본인에 의해 사회 모든 분야가 달라지면서 한국인의 생활 방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1918년경만 하더라도 마산포 장날에 머리카락을 짧게 단발한 한국인이 보이면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1년이 지난 1919..
자연채광 부분에서 잠시 거론되었지만, 파사드(전면) 개구부(측면 창문)를 통해 유입되는 자연채광이 닿지 않는 공간에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으로 천창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측면에 창을 두는 것이 아니라 머리위 천정에 창을..
1년동안 벽에 걸어두고, 또는 책상위에 놓게 되는 달력들은 1월에는 넘쳐납니다. 여기 저기서 받아둔 달력중에서 어떤 달력을 놓을까 잠시 고민하게 됩니다. 절에서 나온 달력이며, 근사한 미술작품을 곁들인 은행달력, 자사의 실적홍..
지난 연말, 재경마산향우회 송년회용으로 마산도시사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서툰 작품이지만 나쁜 평은 하지 않아 공개합니다. 곧 설입니다. 마산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 마산에 얽힌 추억이라도 나누어보시죠. 분량은 1..
자연채광은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건물내 다양한 공간들에 햇볕이 잘 들도록 하는 통합적 설계방법입니다. 자연채광을 위한 설계에 있어서는 방(실)별로 유사한 목적과 유사한 빛 환경을 필요로 하는 방들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
최근 창원호텔 맞은편에 현장이 생겼습니다. 두 달 남짓 사무실이 있는 정우상가쯤에서 중앙동 민원센터까지 하루에 두세번씩 걸어갔다 옵니다. 분명 보도가 설치되어 있는 길임에도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차도로 내려갔다 올라오길 몇차..
<마산상공회> 1914년에 조선인 상업회의소가 와해되고 1908년에 설립된 일본인 상업회의소도 그 뒤 흐지부지된 후 1920년대까지 지역의 상공인들 단체는 없었습니다. 이 공백기에 「마산간담회」「마산경제회」「마산번영회」라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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