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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2) - 강점 제1시기

by 허정도 2011. 6. 13.
<전국 최초의 시외버스가 마산에서?>

마산에 전국 최초로 시외버스가 다녔다면 믿어지십니까?
햇수로 100년 전인 1912년 9월 마산-진주간을 달리는 버스가 생겼습니다.
한달 전인 8월에 대구-경주-포항간 버스가 생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마산-진주간 버스가 1911년 12월에 최초로 영업인가를 받았으니 최초라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한국자동차역사에 관한 기록을 보면 1911년 진주에 살았던 ‘에가와(繪川)’라는 일본인이 포드 8인승 무개차 1대를 들여와 마산-삼천포간 버스영업을 시작한 것이 한국 최초의 버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일신보에 의하면 마산-진주와 진주-삼천포간 버스를 1911년 12월에 인가를 받고 다음 해 9월 마산-진주부터 운행이 시작되었으며 대판에 자동차를 주문했는데 한 대만 도착해 마산-진주를 먼저 운행했다고 합니다.
고성군 기록관리사로 있는 김상민 선생이 확인해주었습니다.

바로 이 차입니다.



이 버스에는 승객이 10명 정도까지 탈 수 있었으며, 낮에는 지붕이 없이 달렸지만 밤이 되면 천막지붕을 치고 가스등도 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멋졌을 것 같지 않습니까?
요금은 일반인들이 타기에는 상당히 비싼 1인당 3원 80전이었습니다. 당시 쌀 한가마니 값이 4원이었으니 말입니다.

마차로 하루 종일 걸려 다녔던 마산-진주간 70여km 길을 버스로 4시간 만에 주파하였는데, 도로 주변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생전 처음보는 버스를 보기 위해 길가에 나와 넋을 잃고 구경했다고 합니다.
요금은 비쌌지만 하도 빠르고 편리해 그 때까지 이용하던 마차와 인력차는 승객이 없어졌고 급기야 마차는 영업을 중지했다는 '매일신보 1912년 10월17일자 기사'도 있습니다.

당시 유행한 노래 한 구절 소개합니다.
‘낙동강 700리에 공구리(콘크리트) 다리 놓고 신작로에는 자동차 바람에 먼지만 나누나’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는 1903년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에 미국 공관을 통해 들어온 포드자동차였습니다.
하지만 1901년 봄 미국 시카고대학의 사진학 교수이며 여행가였던 버튼 홈즈가 자동차를 타고 한강을 구경하러 가다가 소달구지를 들이받은 사고가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그 이전에도 우리나라에는 서양 외교관이나 기술자 또는 선교사들이 갖고 온 자동차가 간혹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특수한 자동차 외에 일반국민들의 눈에 자동차가 선보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들과 국가 대신들이 자가용으로 몰고 다니기 시작했던 1913년경부터였습니다.
같은 해 서울 낙산 부자 이봉래 씨와 일본 청년 곤도 그리고 장사꾼 오리이 3인이 합자해 20만원으로 첫 자동차회사를 세우고 "포드T형" 승용차 2대를 도입해 서울에서 시간제로 임대 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택시의 시초이며. 이 시기가 우리나라 운송사업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하는데 마산-진주를 오간 버스가 1912년이면 이보다 일년 전이니 얼마나 빨랐습니까?

1910년대 마산-진주 간 자동차에 관한 기록은 승전이조(勝田伊助)가 1940년 간행한『진주대관』에도 있습니다. 교통사고 기록인데 여기서도 에가와의 버스회사가 1912년 설립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12년 9월 에가와씨는 진주-마산 간 승합자동차 전기노선 영업을 개시하여 커다란 편의를 제공해 왔으나 얼마 안가서 심한 경영난에 빠졌고 다시 일어나기는 하였으나 불행히도 1917년 6월에 자기가 손수 마산으로부터(진주로) 운전 중 군북고개에서 자동차가 전락하여 승객인 진해 해군기지사령관 동향 해군중장, 그 수행원 붕정 경리중령, 보문 소령 등을 비롯한 승객다수와 더불어 본인도 또한 부상을 입었고 기생 배봉악은 즉사하는 참사를 일으켰다. 에가와씨는 결국 체형처분을 받고 옥창에서 신음하는 신세가 되었다」

『마산시사』를 비롯한 몇몇 자료에서는 마산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자동차는 192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오류인 것 같습니다.
도시사학자 손정목 선생의 『일제강점기도시사회상연구』에 의하면 마산 뿐 아니라 1910년대 초반에는 전국적으로 지금의 시외버스가 다투어 생겼다고 합니다. 1912년에는 대구-경주-포항 간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고 1913년에서 1914년 사이에 경성-장호원 간, 경성-춘천 간, 경기도 벽란도(碧瀾渡)-황해도 해주 간에도 자동차 영업이 개시되었습니다.
이 기록들을 보아도 마산-진주간 버스가 꽤 일찍 생겼죠?

‘조선및만주사출판부’가 1918년 펴낸『最新朝鮮地誌(中)』에서도 당시 마산의 육상교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철도를 이용해 삼랑진에서 경부선으로 접속하여 남북 각 도읍과의 교통이 편리하고 도로는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인 진주에 통하는 2등도로(현, 국도), 칠원 및 창원으로 통하는 3등도로(현, 지방도)가 있다. 무엇보다도 車馬의 통행이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특히 마산-진주 간에는 매일 자동차편(본 글의 에가와 소유 버스)있는데 거리는 17리(1리 4km) 22정(1丁 109.1m)이며 4시간이 소요된다」는 글입니다. ( )안은 설명용 글입니다.

한편, 1910년대 마산 시내의 교통수단은 29회(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에서 소개한 인력거 외에 승합마차가 있었습니다.

1915년 일본인 강용일(
岡庸一)이 쓰고 마산상업회의소가 펴낸 『마산안내』를 보면, 당시 마산부내를 연결하는 육상 교통으로는 마산승합마차(馬山乘合馬車)가 운행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운임은 1구(區)부터 5구(區)까지 나누어 받았으며 마산포(원마산)에 있는 주차장을 기준으로 마산부 내를 각 5구로 나누었는데 가깝게는 재판소(옛 마산법원)로부터 멀게는 요새사령부의 관사(현 월영동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마산포에 있었던 주차장의 위치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마산포에 신설도로가 개설된 이후의 토지형태와 도시공간구성을 보면 현재의 대신증권 건너편에 있는 본초당한의원과 그 뒤쪽 일대였던 것 같습니다.

1912년이니 햇수로 100년 전입니다, 마산에 최초의 버스가 나타난 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