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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11. 일어 만능 시대

111. 일어 만능 시대

 

 

한말 나라 운명이 바야흐로 기울어져 갈 때 일어 열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당시 몇몇 출판업자들은 재빨리 일어강습 책을 출판했는데 왈() 속수일어독본(速修日語讀本), 일어대성(日語大成), 일어대해(日語大海) 등으로 이름 붙여 도시보다 농촌 서당 출신들이 열독(熱讀)하였고 더벅머리 총각과 유처(有妻) 유자(有子)한 상투쟁이들이 삭발을 하고는 보통학교 상급생으로 전입학하기도 하였다.

 

<1926년에 발간된 박중화의 일어대해>

 

 

대체로 한문 실력자들이라 한문만 가지고는 개명한 사회에 있어 낙오자를 면할 수 없었으므로 신식학교에 들어가서 산술과 일어를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우선 보통학교만이라도 졸업하게 되면 면 사무원이나 헌병보조원, 아니면 순사, 철도 역부도 골라서 할 수 있는 판국이요, 조금 더 면학을 하면 재판소 고원(雇員) 또는 군청 부청에서 금테를 두르고 패검(佩劍)한 주사가 되어 부자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실력 중에서도 특히 일어의 덕분이었으니 아까 말한 일어책자들이 그들에게는 바로 금과옥조가 되었던 것이다.

 

다른 글은 몰라도 일어만 할 줄 알면 여자이면 일인집 하녀도 되었고, 사환도 될 수가 있었다.

 

예를 한 가지 들면, 자산동에 일자무식꾼으로 유명했던 정창순이란 자가 있었는데 어디서 일어를 배웠는지는 모르되 그 능숙한 일어구사로 당시의 일인 박간(迫間)과 고등(古藤)이란 자를 반하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정창순을 이등박문에게 천거하여 고성군수로 임명케 하여 조선인 토지를 약탈해 보겠다는 획책을 꾸미려 하였던 것이다.

 

음흉한 이등박문도 문맹인 그를 임명한다는 것은 자신의 위신문제라 하여 거절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우스운 얘기는 쥐꼬리만한 일어 실력을 가지고 영화 변사를 하는 자, 민사소송에 원, 피고 대리로 출정하여 희극거리가 되었던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해방 후에는 그렇게 독판을 치던 영어도 열이 식은 모양이요, 해방 전 조선 민족 말살을 획책하던 그들에 대한 원한이 아직도 골수에 사무쳐 있는데도 일어과를 두어 순진무구한 학생들의 머리를 현혹케 하고 있는 요즘, 항간에는 민족정기도 배부른 연후라는 배짱에서인지 날로 늘어나는 것은 일어 강습소, 일어학원의 간판들이다.

 

중앙에서 발행하는 몇 개 일간지 안내 광고란을 보면 동경 일어니 무슨 일어 강습소 운운하는 건수가 하루 평균 25건이나 된다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다.

 

이것은 한말 시절의 일어 열과는 도저히 대조가 될 수 없는 백열(白熱)적인 기묘한 현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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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강점제3시기인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제작된 마산관련 지도를 해제하고 그 외 관련 자료를 토대로 마산 도시구조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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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山港平面圖*>

1931년 / 내무국토목과항만계 / 조선총독부 / 1:15,000 / 마산만매립서류 / 서울대중앙도서관

 

 

 

이 지도는 마산의 매립공사에 관한 도면으로, 마산시가지 전역이 비교적 상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간행연도인 1931년 이전에 이미 매립이 끝난 부분을 ‘기성부분(旣成部分)’으로, 현재 시공 중인 부분을 ‘공사중(工事中)’으로 구분하여 각기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매립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원마산 해안에 박간(迫間)의 매립지와 신마산 해안 목가전평삼랑(目加田平三郞)에 의해 완공된 10,500여 평이 ‘기성부분’의 범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계지 개설 당시에 이미 대지로 확보되었던 세관부지 일대도 「기성부분」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제작과정에서의 오류로 보입니다.

반면에 지전원치(池田源治)와 영삼구간(永森久幹)이 매립하는 신마산 창포동 일대 2,200여 평 공사와 마산매축회사에서 시행한 66,000여 평의 대규모 매립공사가 ‘공사중(工事中)’으로 정확하게 표시되어있습니다.

매립도면이라 그런지 범례를 두어 방파제(BW), 물치장(L), 잔교(P), 공사중 등 네 가지로 구분해 놓았으며 당시 마산부 해안에 있었던 각종 시설이 잘 표시되어 있을뿐 아니라 수심도 상세히 표시되어 있습니다.

훗날 1940년경 일본인 죽본웅차(竹本熊次)에 의해 착공되는 오동동 매립지가 이 지도에 점선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부터 계획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착공이 왜 그렇게 늦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 마산부 내에 그 때까지 개설되었던 도로들이 자세히 표기되어 있어서 이 시기까지 도시개발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잘 알 수 있어서 도시변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지도입니다. 도면에서 알 수 있듯이 본 지도가 제작될 당시만해도 신마산 조계지 서측 경사지는 개발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상세한 표현은 아닙니다만 건물들도 그려져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신마산의 건물들은 장군천 부근까지 다가왔으나 장군천 이북에는 1911년 개통된 대로변에도 건물이 없습니다. 다만 현 시청 부지에 발전소만 있고 구도로(크리스탈호텔 앞 도로) 변에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조계지에도 한국 사람들의 가옥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대대적인 매립과 개발로 마산 도시가 급변하던 시기의 지도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2012/08/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2012/08/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2012/08/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2012/09/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5) - 강점제3시기 

2012/09/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6) - 강점제3시기 

2012/09/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2012/09/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2012/10/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9) - 강점제3시기

2012/10/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0) - 강점제3시기 

2012/10/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2012/10/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2) - 강점제3시기 

2012/10/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3) - 강점제3시기 

2012/11/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4) - 강점제3시기 

2012/11/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5) - 강점제3시기

2012/11/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6) - 강점제3시기 

2012/11/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7)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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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9) - 강점제2시기

85회부터 시작된 1920년대 마산도시변화에 대한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일제강점 제2시기인 1920년대는 한국이 일제의 상품시장 및 원료공급지, 특히 식량공급지로 산업구조가 재편되었던 산업수탈기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기만적인 소위 문화정치가 표방되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산미증식계획이 강행되었고 회사령이 철폐되었습니다.

1920년대의 마산인구는 1920년에 16,165명이었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성장의 폭이 조금씩 많아져 1930년에는 25,810명이 되었습니다.

일본인은 1920년 당시 4,172명이던 것이 1930년에는 5,559명이 되어 1920년에 비해 133.2%로 늘어났지만 한국인들은 같은 시기에 169.0%로서 일본인의 증가율에 비해 약간 높았습니다. 

조선회사령 폐지로 마산의 민족자본가들도 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일본인 역시 기업을 앞세워 원마산으로 많이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이 요인이 되어 1920년대 중반 이후 마산은 원마산의 도로건설과 마산만 해안 전역에 매립공사가 시작되는 등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원마산 지역의 매립은 박간(迫間)의 매립 때 매립되지 않고 남아있던 동굴강의 일부가 1927년 매립되었고, 1929년에는 오동동일대 해변 1,700여 평이 매립되어 대규모 매립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신마산에도 현재의 경남은행 신마산 지점 건너편 일대 총 10,500여 평이 매립되었고 중앙마산의 해면(현 신포동)도 대규모 매립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20년대 중반부터 마산은 매립이라는 도시의 대변화가 시작되었으며 이 변화는 해방 때까지 지속됨으로써 도시구조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합방기 이전에 이미 장군천까지 도로가 개설되었지만 건물은 많이 들어서지 않았지만 1920년대 후반에는 철근콘크리트조의 모더니즘 영향을 받은 건물도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건물의 용도는 산업시설과 교육시설 등이 많았습니다. 상수도는 1930년에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1920년대의 특이한 변화는 20년대 중반 이후 신마산과 원마산의 중간 지점인 장군천과 몽고정 사이의 중앙마산에 공공지역을 위주의 새로운 영역이 조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철도용지였던 이곳을 불하하여 가용지로 만들었던 중앙마산의 형성은 마산을 두 지역으로 분절하고 있었던 기현상을 해소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두 도시가 연담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마산 서쪽 모퉁이에 집중해있던 관공서들이 도시의 중심부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중앙마산의 형성과정은 중앙동2가와 3가에 대규모 도로계획을 입안하여 1927년 총독부의 허가를 얻음으로서 착수되었는데, 허가를 득한 후 이곳을 마산부가 불하를 받아 도로를 개설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원마산은 현재의 추산동과 상남동․교방동 즉 현재의 북마산 쪽으로 범역이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마산 범역 확산의 중요한 이유는 마산과 진주를 연결하는 철도 경남선이 개통된 것과 구마산 역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일대가 교통과 유통의 중심기능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마산의 상황은 시구개정사업이란 명분까지 갖추어 보다 많은 도로가 개설되었는데 이 과정에 중앙정부의 재정지원까지 있었습니다.

1910년에 이미 개설되어 있던 창동과 남성동 지역의 도로망이 이 때 중성동․오동동․동성동으로 많이 확산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도로망 확산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1920년 기준으로 원마산에서의 일본인 소유 토지는 전체의 35.0%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1930년에는 38.8%로 늘어났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인들의 토지소유는 1920년 62.5%이던 것이 1930년에는 55.2%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변화는 개인소유의 대지만으로 산정한 결과입니다.

기업과 단체가 사실상 일본인들의 소유였기 때문에 이를 합하면 실제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율은 이보다 훨씬 높아집니다.

이런 토지소유율의 변화를 통해 일본인의 원마산 토지 지배는 강점기가 진행될수록 심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일병합 10년이 지난 1920년대,,,,  해안 매립과 중앙마산 개발로 마산의 지도가 완전히 바뀌기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다음은 1930년 마산지도입니다.

1920년, 1910년, 1899년 개항 당시의  지도와 함께 올리니 비교해보기 바랍니니다. <<<

 

<1930년>

<1920년>

<1910년>

<1899년 개항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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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의 '2차 게재' 중 '강점 제2시기(1920년부터 1930년까지)'가 끝났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음처럼 크게 3단계로 나누어 포스팅할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습니다.

1차 ; 고대부터 개항(1899년)까지

2차 ; 개항이후부터 해방(1945년)까지

3차 ;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미 완료한 '1차 게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고려시대 이전 ------ 9회

조선시대----------- 4회

개항기------------- 12회

합계--------------- 25회 완료

 

'2차 게재'는 다음처럼 구성하기로 했으며 세 번째 순서를 마쳤습니다.

개항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총 32회 (26회부터 57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1시기(1911년-1920년)----------총 27회 (58회부터 84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2시기(1921년부터 1930년까지)----총 35회 (85회부터 119회까지) / 완료

일제강점 제3시기(1931년부터 1945년까지)

 

'3차 게재' 계획입니다.

산업화 이전시기(1945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도약 및 전성기(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체 및 쇠락기(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 본 연재는 마산도시를 연구하면서 확보한 자료를 공유하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혹시 좋은 자료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2011/12/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2011/12/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2011/12/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0) - 강점제2시기

2012/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1) - 강점제2시기

2012/01/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2012/01/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3) - 강점제2시기

2012/01/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4) - 강점제2시기

2012/0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5) - 강점제2시기

2012/0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2012/0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7) - 강점제2시기

2012/02/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8) - 강점제2시기

2012/03/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9) - 강점제2시기

2012/03/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0) - 강점제2시기

2012/03/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1) - 강점제2시기

2012/03/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2) - 강점제2시기

2012/04/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3) - 강점제2시기

2012/04/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5) - 강점제2시기

2012/04/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106) - 강점제2시기

2012/04/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7) - 강점제2시기

2012/05/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8) - 강점제2시기

2012/05/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9) - 강점제2시기

2012/05/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0) - 강점제2시기

2012/05/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1) - 강점제2시기

2012/06/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2) - 강점제2시기

2012/06/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3) - 강점제2시기

2012/06/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4) - 강점제2시기

2012/06/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5) - 강점제2시기

2012/07/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6) - 강점제2시기

2012/07/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7) - 강점제2시기

2012/07/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8)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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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1) - 강점제2시기

<1920년대 마산포 해안선 변화>

1920년대 마산포 해안의 변화는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는 남성동 매립 후 항만의 선박이용 빈도가 높아지자 1924년 매립지역 해안에 길이 63.6m의 사석방파제가 건설된 것이며,

둘째는 1910년대 박간(迫間)의 매립 때 시공하지 않았던 동굴강이, 1927년 현재 대신증권에서 어시장으로 내려오는 도로와 매립지의 도로망이 연결되면서 부분적으로 매립되었던 겁니다. 다음 그림(푸른 원 내)처럼 말입니다.

셋째는 현 몽고장유의 전신인 야마다(山田)장유의 사주 산전신조(山田信助)가 시행한 오동동 매립입니다. 2012/05/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8) - 강점제2시기


『마산시사』 등 마산도시변화와 관련한 각종자료를 보면 박간(迫間)의 매립 이후 마산만 연안을 드나드는 선박의 이용이 편리해졌다고 합니다.

원마산 해안에서 처리한 물동량을 별도로 구분하여 정리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정확한 결과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선박의 이용이 편리해졌다는 사실은 남성동 해안을 이용하는 유통량도 점점 많아졌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원마산 해안이 마산 수산산업 및 종합유통의 중심적 기능을 확보했던 것 같습니다.

박간(迫間)의 매립이 비록 원마산의 금싸라기 토지였던 해안 일대를 피폐화시킨 악랄한 매립이긴 했지만 이 매립으로 조성된 새 항만은 규모와 기능 면에서 마산포에 또 다른 변화와 기회를 갖다준 대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에 비해 옛 모습 그대로 존속했던 오산선창과 어선창 쪽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선박의 접안 사정이 나쁘고 육로로 연결되는 도로 사정도 나빠 선창의 사용빈도가 낮아졌을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부두로서의 기능이 쇠퇴해 갔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2011/12/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2011/12/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2011/12/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0) - 강점제2시기
2012/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1) - 강점제2시기
2012/01/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2012/01/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3) - 강점제2시기
2012/01/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4) - 강점제2시기
2012/0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5) - 강점제2시기
2012/0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2012/0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7) - 강점제2시기
2012/02/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8) - 강점제2시기
2012/03/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9) - 강점제2시기
2012/03/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0) - 강점제2시기
2012/03/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1) - 강점제2시기
2012/03/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2) - 강점제2시기
2012/04/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3) - 강점제2시기
2012/04/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4) - 강점제2시기
2012/04/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5) - 강점제2시기
2012/04/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106) - 강점제2시기
2012/04/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7) - 강점제2시기
2012/05/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8) - 강점제2시기
2012/05/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9) - 강점제2시기
2012/05/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0)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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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28 09:21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허정도 2012.05.29 18:31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자주 들러 주십시오.

2012.04.2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106) - 강점제2시기

-강점 제2시기의 매립-

마산포에는 1910년대에 이미 일본인 박간의 매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마산만의 매립은 192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해방 때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매립이 빈번했던 까닭은 마산 해안의 창탄지역이 일본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저비용 고수익, 즉 손쉽게 큰돈을 쥘 수 있었던 투자의 방편이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령 폐지로 1920년대 벽두에 시작된 국내 공업시설 확충 붐과 연결시켜 생각하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1920년대(강점 제2시기) 매립착공은 많았지만 준공된 곳은 마산포 두 군데, 신마산 한 군데 모두 세 곳이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마산부가 시행한 남성동 30번지 동굴강 일부 매립>

1920년대 첫번째 매립입니다. 전 동성동 사무소와 그 주변인 남성동 30-1번지의 동굴강 일부 105평이 마산부가 직영으로 시행하여 1927년 2월 27일에 준공된 매립입니다.

다른 자료에서는 대부분 100평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정부기록보존소의 문서에는 107평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105평이라 하는 것은 토지대장에 기재된 면적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 매립에 대해서는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찾은「공유수면관계서류」의 「문서번호87-061, 필름번호87-058」를 참고하였으며 서류에는 아래와 같은 도면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고려시대 석두창이 있었던 나포(螺浦)로 추정되는 곳이며 동굴강이란 이름으로 조선시대 내내 마산포 어선들이 정박했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1910년대 일본인 박간(迫間)의 매립공사 때 제외되었다가 이 때 남아 있던 일부가 매립된 것입니다.

매립면적은 총 252평이었으며 측구가 35m이었고 암거(暗渠)도 약간 있었습니다.

매립의 목적은 ‘시가(市街)정리’였으며 이 매립으로 현재의 삼성생명 앞에서 대신증권으로 내려오는 직선도로가 박간의 매립지인 선창지역까지 연결되었습니다.

현재 ‘너른마당’이라 부르는 곳으로 최근 통합창원시에서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작은 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다음은 이 매립지의 위치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❼번으로 표기한 곳이 이 매립지입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2011/12/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2011/12/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2011/12/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0) - 강점제2시기
2012/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1) - 강점제2시기
2012/01/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2012/01/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3) - 강점제2시기
2012/01/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4) - 강점제2시기
2012/0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5) - 강점제2시기
2012/0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2012/0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7) - 강점제2시기
2012/02/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8) - 강점제2시기
2012/03/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9) - 강점제2시기
2012/03/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0) - 강점제2시기
2012/03/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1) - 강점제2시기
2012/03/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2) - 강점제2시기
2012/04/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3) - 강점제2시기
2012/04/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4)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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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8) - 강점제2시기

<마산포와 신마산이 연결되다 - 중앙마산의 형성>

 2) 중앙마산이 철도용지로 강점되는 과정

철도용지를 둘러싼 일제의 공공연한 토지약탈은 마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경계 측량을 할 때 경계를 속인다든지, 원래 정해진 경계보다 턱없이 많게 토지를 점령한다든지, 군용지라고 속여 민간의 토지를 침범한다든지, 일본군의 군용도로를 만든다면서 민가를 헐어버린다든지, 개인 사유지를 일본정부에서 내려준 것이라면서 팻말을 박아 자기 땅으로 만들어버린다든지 하는 등 일본인들의 횡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마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산의 철도용지도 지난 주 포스팅에서 언급한 한일의정서 제4조를 적용시켰던 겁니다.            
2012/0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번천사 (97) - 강점제2시기
 
철도용지 확보과정에서 마산의 일본 세력은 급속도로 확대되었고, 그 과정에서 도시도 중대한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조약체결 직후부터 마산에는 일본군인과 군량 및 마량(馬糧)을 실은 일본군함이 무시(無時)로 드나들면서 유린했는데 이 시기에 철도용지 명목으로 토지를 압수했던 겁니다.

압수 면적은 일본인 대지주 박간(迫間)의 개인사유지를 제외하고도 12만평(1,210斗落)이나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산합포구청이 된 옛 마산시청 일대의 중앙마산지역이었습니다.

토지강탈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하나를 소개합니다.

1904년 7월 일제는 점찍어둔 철도부지에 입표(立標)하고, 마산포 내 한국인 소유의 토지를 아무런 보상도 없이 강제 점용하는 폭거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사정에 대하여 마산포 주민의 안녕을 책임진 감리가 도면을 그려가면서까지 그 부당성을 외부대신에게 보고하기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마산포 주민들의 생활근거지를 박탈한 일제는 그 보상은 외면한 채 오히려 철도규칙을 만들어 한국인과 한국의 관리들을 우롱하였습니다.

창원보첩 四, 광무 9년(1905년) 2월 5일자 감리보고 제8호에 나와있는 철도규칙의 내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철도 위를 보행하는 자 및 전선을 손대는 자는 그 자리에서 체포하여 엄벌에 처하고
㉯ 군용철도와 전선을 파괴하는 자 또는 그 모의를 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며
㉰ 범행자가 속한 군수와 촌리도 엄벌에 처한다

이런 악랄한 규정 때문에 억울하게 재산 뺏기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다음 사진은  당시 철도용지 수용 방해자 학살장면입니다. 1906년 찍은 사진인데 마산에서 촬영한 것은 아닙니다.


토지주였지만 토지의 매매와 경작은 물론 심지어 출입까지 통제 당했던 마산포 주민들은 이 악랄한 일제의 탈취에 격분하여 창원감리에게 사정을 호소하였고, 창원감리 현학표는 이런 사실을 외부대신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이 보고에 대해 외부대신은 지령을 통해 간섭 의사를 밝혔으며 이때부터 이 문제가 확대되었습니다.

정부의 지령에 따라 감리는 뒤늦게 철도부지에 대해 조사를 착수하였습니다.

조사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일인(日人)들이 토지를 강탈하면서 당시 일본영사와 철도감부반장이 일본인 박간(迫間)의 하수인 홍청장(弘淸藏,)
과 공모하여 한국인 손덕우를 앞 세워 한국인 토지주들을 회유했던 겁니다.  철도부지와 관련된 기록에는 모두 홍청장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弘淸藏은 후에 남성동 매립 때 박간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당시 마산의 유지 일본인 홍청삼입니다
)

한국인 손덕우는 구한말 창원 감영의 감찰사 역임한 지역 유지로, 마산민의소 의장, 마산구락부 초대부장, 마산정미소 중역, 창신학교 부교장, 기독교 장로, 한말 박영효의 지인으로 창신학교 설립자 중 한 사람입니다.
1910년대에는 마산부 참사와 학무위원을 지낸 사람입니다. 마산포 사건 때도 박간(迫間)의 요구에 응해 박간이 원하는 토지를 구입하기 위해 지주를 찾아 통영까지 가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지역에서 덕망은 높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손덕우와 관련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인들이 손덕우를 통해 토지 가격은 얼마든지 지불하겠다고 약속하여 토지주의 서명날인을 받아 표목까지 박았지만, 뒤에 가서 이 약속을 부인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손덕우만 구금되는 수모를 겪고 일본영사와 철도감부반장은 그 책임을 서로 전가시키며 발뺌을 했다 합니다.

여기까지가 일본군(日本軍)의 마산철도용지 강점 과정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입니다.
김용욱과 김준의 연구에서 밝혀진 내용을 옮겼습니다.

이 이후의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록을 발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을사조약 체결로 통감정치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철도용지 강점 계획이 일본의 의도대로 쉽게 시행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1911년 간행된『馬山と鎭海灣(마산과 진해만)』에서 나오는 통계와 다른 여러 자료에서도 중앙마산지역의 철도용지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아도 을사조약 직전에 일본군부의 의도대로 마산의 철도용지가 결정된 것으로 짐작되었습니다만, 그후 제작된 사정지적도와 사정토지대장을 확인해본 결과, 사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 원래 그들이 계획했던 규모와 형태와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탈취한 토지 중 일부는 나중에 마산 거주 일본인들의 자녀 교육비 충당을 위한다는 명복으로 일본거류민단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1908년 일본거류민단은 예산의 상당부분을 점하는 교육비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철도용지를 싸게 대부 받아 원하는 사람에게 전대(轉貸)함으로써 연간 10,000원의 이익을 얻었습니다. 당시 백미가 1石當 19원이었으니 적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강제로 빼았은 땅을 임대하여 후세교육비로 사용했던 셈이죠.

강압적으로 무상 탈취한 토지를 철도용지란 이름으로 20여 년간 소유한 일본 군부는 1920년대에 들어서 입장이 바뀝니다.

1920년대 들어서자 마산부민들이 마산포와 신마산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는 철도용지가 마산의 도시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신마산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상 불편했던 관아건물의 위치에 대하여 불만 때문에 관아건물을 중앙지역으로 옮기자는 요구가 일었습니다.

이런 여론에 따라 일제는 철도용지를 마산부에 불하하게 되었고 마산부는 이 토지 중 상당 부분을 기업과 개인에게 불하하는 한편 마산의 중요한 광공서를 이곳으로 이전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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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1) - 강점제1시기

-일본인의 마산포 토지 소유-

남성동의 매립으로 1912년 당시 전체면적의 31.4%이던 일본인 소유 토지가 1920년에는 35.0%로 변했습니다.

매립 직후에는 매립시행자인 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이 전량 소유함에 따라 41.1%로 급증하였다가 35.0%가 된 것입니다.

이 시기 한국인들이 소유한 토지는 1912년 당시 63.2% 이었으나 1920년에는 62.5%로 줄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토지소유변화를 단순 비교하면 일본인 소유의 토지는 3.6% 증가하고 한국인 토지는 0.7% 줄어든 셈입니다.

아래 표는 1912년과 1920년의 마산포 토지소유 변화를 나타낸 것입니다.

 구분 정부. 마산부  기업. 단체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게
 필지수  5  10 853   271 18   1,157
 비(%)  0.4 0.9   73.7 23.4   1.6 100.0 
 면적 5,783.54  1,299.18  107,051.13  53,228.14  2,105.79  169,467.77 
 비(%) 3.4  0.8  63.2  31.4  1.2  100.0 
 필지평균  1,156.71 129.92  125.50  196.41  169.99  146.47 

 필지수 10  981 274 12  1,286
 비(%)  0.7 0.8  76.3  21.3   0.9  100.0
 면적 760.99  2,714.05  116,320.88  65,000.11  1,323.64  186,119.67 
 비(%) 0.4  1.5  62.5  35.0  0.7  100.0 
 필지평균 84.55  271.41  118.57   237.23 110.30  144.73 
             


그렇지만 원마산(마산포)에 새로 조성된 박간(迫間) 소유의 토지가 8,078평이었던 것을 감안해보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오히려 이 시기에 박간 외에 다른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에게 1912년 이전에 사들였던 토지를 상당히 넘겼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1912년과 1920년 토지소유를 비교한 아래의 두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 가능합니다.

이렇게 일인 소유의 부지가 1910년 대 후기 동안 작아진 이유는, 매립지 때문에 중심상권이 바뀌면서 발생한 소유권 이동 및 사업장 이동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신마산과 원마산이라는 두 핵에만 집중해 있던 여러 시설들이 시내 전역으로 흩어지는 시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원마산 중심상권에 변화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이미 전국에 알려질 정도의 시장으로 발전해 있던 마산포장(馬山浦場)이 매립이라고 하는 새로운 변화에 의해 크게 바뀌었습니다.
굴강과 선창은 없어지고 박간의 토지가 원마산 해안의 중심이 되는 구역을 차지하게 되어 마산포는 바다와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일찍이 창원부윤 이기(李琦)는 마산포가 매립되면 도시구조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예측하여 1907년(隆熙元年) 11월1일, 일본인 홍청삼(弘淸三)이 세우고 있던 원마산 해안매립계획을 무산시키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당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올렸던 보고에서 「․․․만약에 (원마산 해안을) 타인이 매립해 버리면 (원마산은)입이 틀어 막힌 목구멍이나 문이 잠겨버린 집과 같이 되어 (원마산 내의) 수천 호 주민은 결국 생업을 잃고 흩어져 비참하게 될 것이라․․․ (
昌原港案1, 議政府 外事局, 隆熙元年11月1日字 報告 第3號 / ․․․萬若讓與於他人埋築오면 便同塞口之咽喉요 閉戶之門扉라 本港幾千戶居民은 勢將失業渙散乃己기․․․)고 했는데 이 예측이 현실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② 일본인의 소유변화가 수성동 일대에서는 적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성동은 새로 조성된 매립지와 가깝고 상업용보다 주거용의 건물이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상권변화의 영향이 적은 지역이었습니다.
위의 두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인들의 토지매매는 수성동을 제외한 동성동․오동동․중성동 등에 산재해 있던 토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중심권으로 부상한 매립지 부근의 땅은 매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동안 지속해 왔던 서성선창과 백일세 선창, 그리고 서굴강이 없어지고 외부에서 마산의 선창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새로 개통되는 도시구조의 변화는 당시의 원마산 상권이동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두 사실을 근거로 볼 때, 일본인들의 토지매도 이유는 원마산의 상권이동과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이동 장소는 박간의 매립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중심상권으로 부각된 매립지로 옮겨가기 위해 그 때까지 소유하고 있었던 토지를 처분하거나 아니면 사업장을 그곳으로 이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간파한 박간이 매립지의 차지료(借地料)를 고가로 받았던 것입니다.

매립으로 일인소유의 토지 필지 수는 271필지에서 274필지로 3필지 늘었습니다. 필지 당 평균면적도 196.4㎡에서 237.2㎡로 40.8㎡가 커졌습니다.

일본인 소유의 토지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소규모 형태에서 매립으로 조성된 큰 규모의 형태로 변하는 과정에서 그 단위면적이 커진 것입니다.

이는 1910년대 초기에 비해 일본인들의 소규모 토지 중 일부가 한국인에게 다시 넘어갔지만 대신 중심상권지역에 대한 지배는 강화된 결과입니다.

이런 변화는 개항 때부터 시작된 일인들의 원마산 토지지배가 점점 구체화․집중화되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통계도 일본기업을 제하고 개인 소유의 토지만 계산한 것이므로 실제로 기업소유의 토지까지 합한다면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율은 이 보다 더 높았습니다. 기업소유 부지 중 거의 전부가 일본기업이었기 때문에 이런 계산이 가능합니다.

이에 비해 중국인 소유의 토지는 1912년 당시 1.2%, 18필지였던 것이 1920년에는 0.7%, 12필지로 변하였습니다.

중국인 소유의 토지가 이렇게 작아진 이유는 일본의 지배체제가 합방 이후 점점 강화되면서 중국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림동 일대 중국인 집단주거 현상도 강점기가 지나는 동안 많이 퇴색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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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0) - 강점제1시기

<달라진 마산포 해안>

1910년대 마산포에는 해안선 변화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최초의 대규모 매립공사가 이루어져 석축돌제 등만 조금 있었던 자연형의 해안에 凹형의 폭 약 300m에 이르는 석축 호안과 정박장이 생긴 것입니다.

또한 해안선이 당시 수심 약 2m 정도(당시 수심 기록된 지도로 확인)까지 바다 쪽으로 진출하면서 이전 시기에 비해 훨씬 발전된 형태의 부두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공사가 완성되기 전에는 간석지역의 굴강에 선박을 정박하였을 경우, 간조(干潮) 때에는 수심이 낮아 선박의 이동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남성동 매립으로 오랜 세월 동안 원마산 해안을 지켜온 네 개의 선창과 두 개의 굴강 중 서굴강을 포함하여 서성선창과 백일세선창은 완전히 그 모습이 사라졌으며, 매립지에서 벗어나 있던 동굴강과 어선창․오산선창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동굴강은 위치상 매립에 포함될 부분이었지만 아래 그림처럼 매립 후 상당기간까지 존속하였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그림은 제가 복원한 1920년 도면인데 첫번째 지도와 똑 같습니다.

 




동굴강을 그대로 둔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매립이 필요 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매립 시 방파제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여(방파제는 1924년에 조성) 방파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동굴강의 가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마산포 한국사람들의 원성을 우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동굴강만은 1927년에 일부가 매립되고 1935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매립되어 사라집니다.

박간(迫間)의 매립으로 만들어진 원마산의 해안은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시행된 구항 매립 때까지 70여 년 동안 사용되면서 마산항의 중심부로 이용되었습니다.

凹형의 오목하게 파인 부분은 거제 통영 등 인근연안 여객선이 드나들던 유서 깊은 해안이었죠.

저도 청년시절 배낭메고 거제로 캠핑 갈 때 이 부두에서 배에 올랐습니다. 지금 농협 어시장 지점 자리입니다.<<<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2011/05/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0) - 강점 제1시기
2011/06/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2011/06/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2) - 강점 제1시기
2011/06/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3) - 강점제1시기
2011/06/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4) - 강점제1시기
2011/07/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5) - 강점제1시기
2011/07/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6) - 강점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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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8) - 강점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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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9) - 강점제1시기


<1910년대 마산포 도로>

1912년부터 1915년까지의 시기에 일어난 마산포의 대대적인 도로개설공사 결과, 그 때까지 자연발생 취락에서 생긴 꾸불꾸불하고 좁은 길을 자르면서 폭 8-10m의 직선형 도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때맞춰 시행한 매립지에서도 같은 크기의 도로가 개설되면서 두 지역의 도로들이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도로의 규모와 형태변화는 마산포(원마산) 도시구조에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마산포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모인 시기를 마산창이 개설된 1760년으로 볼 때 이것은 실로 150년 만의 대변화였습니다.

지난 주에 보았지만 다시 한 번 더 매립 후 달라진 마산포 도면을 보겠습니다.
매립과 도로개설 이전의 도면과 이후 도면입니다.


이 도면
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기에 동서방향으로 동성동에서 부림동을 지나 신마산과 이어지는 도로(현 남성동 파출소 앞도로)와 신마산에서 시작하여 북마산 지역을 지나 창원으로 연결되던 외곽도로(좌상단)가 뚫였습니다.

그리고 교방동과 회원동 지역, 성호동과 추산동지역이 원마산과 원활히 연결되게하는 두 도로(현 부림시장과 창동 네거리를 지나는 도로)도 뚫렸습니다.
성호동의 현 성호초등학교 진입도로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좌측, 즉 신마산에서 들어와 동서로 길게 뻗은 도로의 동쪽 끝 부분 공지는 개인 소유지였습니다.
지도의 형태를 보면 이 땅은 정차장이나 회차장(回車場)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성동 101, 105, 124번지로 추정되는데 현 본초당한의원과 한마빌딩 사이의 부지로 추정됩니다.

마산포 도로개설공사는 1915년 이전까지 시행되었으며 1915년 이후부터 1920년까지는 별로 없었습니다. 1918년 수성동의 남쪽부분에 있던 폭3-4m 도로가 6-7m의 폭으로 넓혀졌을 뿐입니다.
새롭게 개설된 직선형 도로는 매립지에는 6m와 10m, 조창 부근에 개설한 도로는 8m와 10m의 폭이었습니다.

1910년 당시 원마산 복원도에 의하면 전체면적은 198,369.27㎡였는데 그 중 대지 면적이 169.467.77㎡이었으며 도로 면적은 28,901.50㎡로 도로율이 14.57%였습니다.

그러나 박간(迫間)의 남성동매립으로 원마산의 면적은 원래 면적의 19.4%인 38,479.34㎡가 늘어나 236,848.61㎡로 변했으며 도로면적은 매립과 신설도로 등으로 인해 원래 면적의 무려 75.5%나 되는 21,826.44㎡가 늘어난 50,727.94㎡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원마산의 도로율은 1910년 당시 14.57%였던 것이 1920년에는 21.42%로 급증하였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도로율이 높아진 시점은 매립과 도로개설사업이 종결된 1915년경으로서, 약 3-4년에 걸쳐 일어난 변화였습니다.

마산포 도시의 근대화는 이렇게 식민지배를 위한 일본의 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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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8) - 강점제1시기

<마산포에 뚫린 최초의 신작로>

통감부 시절인 1907년경에 이미 마산포의 도로 폭을 조금 넓히거나 형태를 곧게 하는 가로개수 공사가 마산경찰서 주관으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근대식 도로가 건설된 것은 1912년부터 1915년까지였습니다.

이 때 개설된 도로들을 사정토지대장에서 확인해 보면 1912년부터 1915년까지이지만 시기는 다양합니다. 도로의 개설 시기가 토지대장에 기록된 시기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 3-4년 사이에 공사가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업으로 자연발생적인 좁은 골목길뿐이었던 마산포에 폭8m, 10m의 쭉 뻗은 새 도로가 신설되었습니다.

다음 도면은 도로가 개설되기 전의 마산포와 개설 후 모습, 그리고 도로개설 후인 1916년 지도에 나타나는 마산포 모습입니다.
두 번째 도면에서 직선으로 뻗은 넓은 길이 신설된 계획도로입니다.

 

박간(迫間, 하사마)에 의한 매립공사가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시행된 것을 감안하면 이 도로개설공사는 매립공사와 동시에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진행되었을뿐만 아니라 마산포 전체의 도로망 구성을 볼 때 매립지의 도로망과 신설된 도로망은 마산포 전체도로계획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마산의 계획도로 개설은 당시 조선총독부가 1912년 10월 7일에 조선총독부관보 제56호로 각도 장관에게 보낸 훈령 제9호로부터 시작된 전국적 규모의 「시구개정사업」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구개정사업」이란 도시의 도로․교량․하천 등을 근대적으로 정비하고, 구획별로 건축물의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도시계획의 성격입니다.

총독부 훈령 내용은「지방에 있어서 추요(樞要)한 시가지의 시구개정 또는 확장을 하려고 할 때에는 그 계획설명서 및 도면을 첨부하여 미리 인가를 받을 것. 다만 일부의 경이(輕易)한 변경은 그러하지 아니하다」입니다.

이 시구개정사업에 관한 훈령에는 그 구체적인 목적과 비용부담 등에 관한 설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 장의 훈령이 그로부터 20년 이상이나 한국 땅 안의 시가지를 개조하고 규제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마산의 일본지식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은『마산항지』에서 이 도로개설사업에 대하여「마산포의 시구개정문제(馬山浦ノ市區改正問題)」와 「제4회 민회의원선거」라는 항목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마산의 민회의원 16명 중 마산포에 거주한 의원이 7명이었다. 그런데 마산포와 신마산에 거주하는 의원들끼리 서로 마산포에 개설될 도로의 노선(路線)에 관한 이해관계 때문에 다툼이 많아 회의가 계속 공전되면서 결론을 얻지 못했다. 결국 당국에 일임하게 되었지만 시행하지 못하다가 1912년 제4회 민회의원들에 의해 마산포의 도로개설사업이 비로소 최종 확정되었다. 모두 13호선까지 계획했으나 높은 지가(地價) 때문에 1호에서 5호까지만 공사를 하고 6호부터 13호까지는 시행하지 못했다」

계획도로의 노선 때문에 민회가 공전되고, 민회의원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싸웠으며, 높은 지가 때문에 계획한 것만큼 공사를 시행하지 못했다는 등의 사실은 당시 마산포가 얼마나 상업중심지로서 가치가 높았던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기야 당시 나온 자료를 보면 마산포가 신마산에 비해 훨씬 거래량이 많았으며 이 때문에 신마산의 일본인들도 마산포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니 세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마 앞의 두번째 그림에 표기된 신설도로가 위 기록에 나오는 1호에서 5호까지의 도로일 것입니다. 그러나 6호부터 13호는 시행하지 못했다니, 그곳이 어딘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때 신설된 도로의 위치는 가능한 한 기존의 골목길을 확장하여 도로를 개설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① 기존 도로의 체계를 유지하고
②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보편적인 방법을 선택했으며
③ 토지 보상비용의 절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1912년 토지이용도와 1920년 토지이용도를 비교해 보면 대부분의 도로가 기존의 골목길을 넓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산항지』에「도시계획에 저촉되는 대지의 보상비가 너무 고가였다」라는 내용을 보아도 기존 골목길을 도로로 활용하여 비용절감효과를 노렸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때 뜷린 도로는 마산포 최초의 근대식 도로로서 신마산에서 시작된 장군로와 이어졌으며 매립지의 도로와도 연결되었습니다.
비록 미미하지만 원마산에 최초로 격자형의 근대적 도로망을 갖추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최초로 나타난 정형의 부지와 근대적 도로는 이미 원마산 상권의 중심지였던 이 일대를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번에 걸쳐 살펴 본 바와 같이 ‘남성동 매립’ ‘마산창 철거’ ‘근대식도로개설’ 등 1910년대에 나타난 마산포의 세 가지 변화는 1760년 조창 설립 이래 지속되어온 원마산 도시공간형태를 대폭 바꾸어놓았습니다.

이 변화가 1910년대 전반기 동시에 일어났다는 점에서(매립 1911-1914, 마산창 철거 1913, 도로개설 1912-1915) 이미 통감부 시대부터 시작된 식민지배 기반구축사업의 일환으로 파악됩니다.

즉 신마산에 자리 잡은 일본인들이 이동에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그들의 '최고의 시장'이라고 여겼던 마산포를 적극적으로 개발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효율적이고 근대적인 도시시설을 준비하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식민도시정책의 적극적인 준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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