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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진해』(1912) - 8. 교육

by 운무허정도 2025. 1. 13.

8. 교육

 

진해에 심상고등소학교(아래 사진, 1920년대)가 개교된 것은 올해(명치 45년, 1912) 1월 10일부터이며 개교 당초에는 130여명 아동을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250명에 도달했다.

 

그 이유는 당지에 개교를 보기 이전에는 아동 모두가 해상 7해리(약 13km)여를 소증기선(기선(汽船)의 옛 명칭으로 기계력(증기기관)으로 추진시키는 배의 총칭)으로 마산에 통학했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며 아침 해뜨기 전부터 저녁 5시나 6시경이 될 때까지는 집에 못 돌아올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 기선의 승강은 아주 위험한 것이라 바다 속에 떨어진 아동 숫자도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몸이 발육 도상에 있는 아동에게 마산 진해 해상 통학이란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아동 학부모들이나 유지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개교해야만 된다는 의기로 개교운동을 개시했다.

또한 당국에서도 이유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기어코 학교조합 설립인가가 떨어졌다.

그 다음에 해군건축지부 가설 청사를 빌리기로 하고 1월 10일부터 간신히 개교하게 된 것이다. 학부모들이나 아동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당지에 학교가 세워졌다고 내지에 남겨 둔 자녀들을 불러내는 분들도 있었고, 마산까지의 통학이 너무나 아동들에게 무리가 있다고 해서 이주 후에도 학교로 보내지 않고 있던 분들도 아동을 바로 입학시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마산에서 인계를 맡아온 아동 수가 130여명이었는데 좀 있다가 250명이 되고, 신학기와 동시에 450명으로 증가하여 6월 말에는 550명을 넘었다.

가설교실은 임시적으로 갖춘 것이라 교실이 좁아서 올해 중에는 북광소로(北廣小路, 기타히로코지) 아래 원산(圓山, 円山, 마루야마) 옆에 꽤나 장대하게 신축할 것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도 건축에 제법 기일이 필요하므로 교사 두 동(棟)을 증축하긴 했지만 그래도 무서운 기세로 아동 수가 증가하니 충분하다고 못하겠다.

자이만(財灣) 교장 이하 여러 교원도 거의 눈이 핑 돌만큼 다망(多忙)하다는 것이다.

제2기 건축이 끝날 무렵에는 그 숫자가 천명으로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간에 조선에서 보기 드물게 크나큰 교실을 건축해야만 되는 것이다.

보통교육 양상은 이상과 같거니와, 중등교육을 실시할 설비는 아직 못 미치고 있다. 당국의 의지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설치해 교육기관 완성을 꾀하는 것이라 한다.

기타 실업방면에서 공업, 상업에 관한 간이 학교도 일어설 기운이 다가올 것임을 틀림없을 터이다.

우리 진해는 세계 제일의 군항으로서 명성을 사해(四海)에 떨칠 뿐만 아니라 절호의 교육지로서 만국에 자랑하게 될 것이다.

유아교육기관은 유치원을 설립하고자 두세 명의 유지가 발기인이 되어서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듣는다.

교육이 융성해가는 것은 기뻐해야 할 현상이라 믿는다.<<<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권 근대 문헌 속 진해』 중 진해』 부분이다. 1912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스기야마 만타(杉山萬太)이다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