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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00:00

총독에게 폭탄 던진 65세 강우규 의사

부끄러웠던 그날 저녁

 

지난 9월 19일 옛 서울 역 건물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축문화제’에 갔다가 역 광장에서 왈우(曰愚) 강우규(姜宇奎) 의사 동상을 처음 보았다.

 

 

세운지 오래되었겠지만 서울 갈 일이 자주 없는 나는 처음이었다.

마침 시간이 여유로워 천천히 동상을 감상한 뒤 설명문까지 차분히 읽었다.

기단부에 새겨진 설명문 사진이다.

 

 

기록문 중 생년(1859년)은 오기로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등 관련자료 다수에서는 1855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바로 잡아야할 일이다.

 

마침 외국인 여러 명이 동상 주변으로 와 ‘이게 누구 동상이지?’라는 표정으로 동상과 아래 설명문을 살폈다. 하지만 동상에는 한글 외에 아무 설명도 없었다.

실망하고 돌아서는 그들에게 미안했다. 외국어 설명문도 필요하다.

 

이 포스팅은 그날 이후 든 생각이다.

1855년생 강우규 의사께서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던 것은 1919년 9월 2일, 선생의 나이 65세 때였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60년 국민 평균 연령이 남자 52.1살, 여자 54.7살이다.

그렇게 볼 때, 1919년 65살은 지금의 8~90과 다르지 않은 나이다.

1909년 안중근 의사 이등박문 저격 뒤부터 일경의 요인 경호가 심했지만, 강 의사께서 총독 사이토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워낙 연세드신 어르신이라 일경이 눈여겨 보지 않았서였다. 당시 65살은 그 정도였다.

 

그 연세에 적의 수괴를 치기 위해 폭탄을 던지다니,,

재산도 많았다는데 모두 조국의 독립과 민족교육을 위해 바치고, 나라가 망하자 만주와 러시아 벌판에서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위해 힘을 다했고, 이윽고 남은 몸까지 민족을 위해 던진 선생,,

재판에서도 "총독을 처단하고자 한 것은 정의와 인도에 입각하여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기록된 강우규 의사.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선생의 마지막(사형)은 서대문형무소였다.

1920년 11월 29일 오전 10시 30분, 만주에서 온 장남 중건이 마련해 준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떠났다.

한많았던 생을 끝내며 시를 남겼다. 이른바 사세시(辭世詩), 남은 동족들에게 밝힌 선생의 심경이다.

 

사세시(辭世詩)

斷頭臺上  猶在春風  (단두대상  유재춘풍)   /   단두대에 올라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有身無國  豈無感想  (유신무국  기무감상)   /   몸은 있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선생의 그 치열했던 삶을 생각하니 목구멍 저 아래서 뭐가 올컥 치밀어 올랐다.

꼭 필요했던 일이지만 나이 탓하며 피한 적이 더러 있었다.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만큼 강우규 선생의 기개가 더 높게 느껴진다.

그것은 안일을 위한 핑계였을 뿐이라는 깨우침을 선생께서 주셨다.

 

2019년 9월 19일 그날 저녁,

선생께서 폭탄을 든지 100년 되는 그날 그 저녁, 그 부끄러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관련된 이야기>

왈우 선생 의거 두 달이 지난 1919년 11월, 상해 임시정부 외교위원장 직함으로 몽양 여운형 선생이 일본 동경을 방문했다.

이 때 일본 정부가 마련한 환영행사에서 몽양이 당당하게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한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일이다.

방문기간 동안 몽양은 일본의 정치가와 고급관료들을 만났는데, 이 중에는 미즈노 렌타로(水野 錬太郎, 1868~1949) 내무대신도 있었다.

미즈노 렌타로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문부대신 역임한 일본의 정치가인데, 강우규 의사 폭탄 투척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현직 일본 내무대신이었다.

여운형이 그를 만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여운형 선생이 미즈노 렌타로에게 인사차 악수하면서 “경성 역에서 강우규의 폭탄에 얼마나 무서웠느냐”고 짓궂게 물었다.

그러자 미즈노가 얼굴이 시뻘게지고 고개를 어디로 돌릴지 몰라 당황하며 몸을 떨었다고 한다.

그날 강우규 의사 폭탄이 그만큼 무서웠다는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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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7 00:00

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구글과 애플

탈원전 정책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지난 9월 3일 창원시정연구원과 창원상공회의소는 ‘정부 에너지 정책 변화와 지역 경제 세미나’를 개최해 원전 산업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탈원전을 감행하는 나라가 없고 원전 산업 전성기에 탈원전하는 것은 자해행위라고 주장했다.

한 언론사 경제부기자는 보수 야당 의원의 말을 빌려 ‘탈원전 정책은 반민주적 반헌법적 작태’라는 표현을 자료집에 실었고, 언론은 이를 받아 크게 보도하였다.

탈원전 정책을 찬성하는 발표자는 한 사람도 없었고,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발표자도 없었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오직 경제적 어려움만 주장하였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경제 전문가도 아니었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자. 도대체 국민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재앙은 8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방사능 오염수 처리비용 200조원 때문에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일본을 우리는 비난한다. 그러면서 한편 원전을 더 짓게 해달라고 조르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안전의식이 있는 사람들인지, 경제를 아는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

원전을 계속 더 건설하면 재생에너지산업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어려워도 괜찮고 원전 산업계만 좋아지면 되는 것인가?

지진, 각종 비리 사건 등으로 원전을 항상 불안하게 바라보는 국민들의 불안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을 애써 무시하고 시간을 허비하다가 망한 코닥 필름을 잊었는가? 세계 원전의 절반을 건설한 웨스팅하우스의 몰락을 잊었는가?

재생에너지 산업을 미루게 되면 우리 산업 전체가 어려워진다.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선언한 세계적 기업(RE100)이 이제 192개가 되었다.

구글, 애플, BMW, 월마트, 이케아 등등 세계 상위 100대 기업은 모두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선언하였고 그 협력업체에게까지 요구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부터 신재생에너지로만 필요 전력을 충당한다>

 

이런 추세를 볼 때, 원전을 붙들고 있으면 전자제품의 일본 부품 사태보다 훨씬 큰 어려움을 맞이할 것이다.

그 때 후회하면 이미 늦다.

이미 일부 기업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용 때문에 계약을 파기한 사례가 발생하였다. 삼성, 엘지는 재생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나라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이야기도 들린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원전 대국이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고 재생에너지 100%를 선언한 이유는 안전성보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에 요구한다.

탈원전 정책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선택한 정책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로 인한 고용불안이나 기업의 어려움에 대하여 재정적,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폭염으로 인한 원전의 냉각기능 상실과 지진 등 자연재해에 의한 사고를 철저히 대비할 뿐 아니라 노후 원전의 조속한 폐쇄를 촉구한다.

또한 기업은 원전산업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재생에너지 산업이나 관련 산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더 이상 새로운 원전의 건설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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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00:00

2003년생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의 외침

어른들, 언제까지 돈타령만 할 건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2003년생 소녀 그레타 툰베리에 대한 이야깁니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9월 23일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연설자로 나섰습니다.

툰베리는 세계의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는 이 자리에 있어서 안 됩니다. 저는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학교에 돌아갔어야 합니다. 근데 당신들 모두는(어른들은) 희망을 말하면서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당신들은 속빈 말로 내 꿈과 유년시절을 빼앗아갔습니다.” 라고 질타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정상들을 향해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각국 정치 지도자들은 돈 타령과 영구적 경제성장 타령만 하고 있다. 언제까지 돈타령만 할텐가” 라며 꾸짖었습니다.

그러고는 “미래세대의 눈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우리 세대는 결코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매서운 비판을 쏟아 냈습니다.

툰베리는 연설 도중 떨리는 목소리로 격한 감정을 조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회의장을 깜짝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과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쏘아보기도 했습니다.

 

 

툰베리는 작년 8월 스톡홀름 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 대책 촉구 1인 시위를 벌이면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급기야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녀는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비행기 대신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툰베리의 이런 모습에 동조하는 전 세계 미래 세대들이 툰베리의 캠페인을 이어갔으며 이로 인해 유엔총회의 기후변화 대응이 글로벌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는 올해 대안 노벨상인 바른 생활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바른 생활상’은 1980년 스웨덴의 한 우표 수집가의 기금으로 만들어 졌으며, 지구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에 대안을 모색하는 실천가에게 주어집니다. 기존의 질서에 맞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주는 값진 상입니다.

지난 9월 25일 AP통신에 따르면 바른생활재단은 툰베리가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정치적 요구를 고무시킨 공로가 인정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재단은 또 툰베리는 모두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2003년생 스웨덴 한 소녀의 외침, 우리 어른들이 못 들은척해도 될까요? 우리 아들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긴데 말입니다.

툰베리의 연설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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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3 00:00

탈원전 정책은 유지되어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전 세계 추세, 새 원전 건설은 결코 안돼

 

요즘 창원 경제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어렵고 260 여개 원전 관련업체의 생존이 위태롭다고 한다.

창원시정연구원은 탈석탄.탈원전 등 정부 에너지 정책이 급변하면서 창원 소재 대기업 및 협력업체 경영여건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한 보수언론의 경제부장은 “문 정부의 탈원전정책은 반민주적, 반헌법적 작태”라고 자유한국당 이언주의원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세계적 추세와 역행하는 온갖 거짓뉴스를 보도한 보수언론을 소개하는 형태로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였다.

태양광은 가동기간이 30년 이지만 원전은 60년이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원자력공학과 출신으로 지금까지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아 온 어느 교수는 탈원전은 ‘원자력산업이 전성기에 있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하면 안 될 자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장면>

 

탈원전이 자해라면 대통령은 왜?

 

9월 5일자 보도에 두산중공업이 영국원전에 2천억 원 부품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탈원전 국가는 원전 수출도 못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계약에 성공했을까? 미국이나 일본은 원전을 짓지 않지만 수출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전체 매출 15조 원 중 원전 부문은 1조 5천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탈원전 추세 때문에 수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두산은 원전설비만 제조하는 회사가 아니다. 바닷물 담수사업, 가스, 석탄발전 설비, 풍력산업, 건설기계, 엔진 등 많은 사업부가 있다. 2018년 매출은 15조원에 이르고 2017년보다 6.5% 증가하였고 2019년 3월 현재 동기 대비 매출액이 7.1% 증가하여 금년 매출은 1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주가 하락은 전 세계 원전 회사와 같은 현상이다.

세계 원전의 절반이상을 건설한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망했다. 프랑스 원전사 아레바도 망했고 일본 도시바 원전사업도 망했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기업의 생존이 위태롭다고 하는데 매출은 어떻게 증가하는가. 두산중공업은 원전 전문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종전과 변함이 없다. 2084년이 되어야 탈원전국가가 된다. 65년 이후의 일이다.

계획 중이던 원전 5기 포기한 것이 탈원전의 전부이다. 그런데 탈원전 정책이 급변적이라니 할 말이 없다.

원전업계가 어려운 이유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세계의 탈원전 때문이다.

원전산업이 전성기라는 말은 완전한 거짓 뉴스이다. 30년 전에 전 세계의 원전은 451기였다. 2019년 9월 8일 현재 450기이다. 30년 전에 보다 오히려 원전이 줄어 들었는데 전성기라니 이해할 수 없다.

원전은 탄소배출을 석탄보다 10분의 1수준인 것은 맞다. 그러나 기후변화당사국총회는 원전을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채택하지 않는다. 경제성,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전의 종주국 미국과 세계 2위 원전 대국 프랑스가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데 어떻게 전성기인가.

일본의 재앙을 모르나. 오염수 한 가지 처리하는데 200조원이 든다는 데 원전이 전성기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

원전은 60년을 가동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폐쇄후 30년-40년 원전 부지는 못 쓰는 땅이 되는 것은 계산 하지 않는다.

 

탈원전 정책이 반헌법적.반민주적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핵심 공약으로 탈원전을 내세워 당선되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는데 왜 반민주적인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이다.

탈원전 하지 않는 것이 반헌법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도지사, 유승민 의원 모두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한 바 있다.

 

산업은 흥망성쇠가 있는 법이다.

과거 봉제 산업이 한국을 먹여 살렸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철강, 전자, 자동차 산업이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경제성, 안전성이 없는 원전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그 자리에 태양광, 풍력산업이 들어서고 있다.

전 세계 재생에너지 신규 시장규모는 500조원이나 원전 신규산업은 50조원도 되지 못한다.

미국의 대표기업이면서 종업원 40만 명, 140년 역사의 코닥이 이러한 산업의 변화를 읽지 못하여 망했다. 반대로 독일의 지멘스는 원전산업을 접자 주가가 오르고 성장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한 탈원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적 어려움이나 노동자의 일자리 불안이 있다면 당연히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원전을 다시 건설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경제가 중요하지만 국민의 안전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이 글은 2019년 9월 11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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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산인 2019.09.24 17: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원전은 더 이상 안됩니다. 미래 세대도 생각해야합니다.

2019.09.16 00:00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기후위기, 시간이 없습니다"

 

"기후위기, 시간이 없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가 2014년 9월 24일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담에 모인 세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지금 기후변화문제는 인류의 존재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음은 그의 연설문 요약입니다.

우리는 매주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통해 기후변화의 위기에 이미 봉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가뭄은 더 심해지고, 바다는 더 따뜻해지고 산성화되고 있으며 메탄 가스는 바닥에서 계속 증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극심한 날씨 현상과 높은 온도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서남극과 아이슬란드의 빙하는 이전 연구에서 예측했던 것보다 수십 년 빠른 속도로,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빠른 속도로 녹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과장도 아니고 빈말도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과학계도 인정하고, 산업체와 정부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미국 국방성도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 해군 태평양 총독인 새뮤얼 락크리어도 기후변화야말로 우리 보안에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했습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역사 어느 때보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참으로 어려운 사안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순간, 새로운 역사를 만들든지 아니면 비난을 받든지 각오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전구를 바꾼다든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즉 개인의 행동으로 해결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었다는 말입니다.

이젠 산업계와 세계의 모든 정부가 대단위의 결정적인 행동을 취해야만 할 때입니다.

저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과학자여야 할 이유도 없지요.

그러나 세계 과학계는 이미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도 했습니다. 모두 협력해서 행동하지 않으면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금이 바로 행동을 개시할 순간입니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재생에너지 체제가 실제 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로운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기존의 기술을 이용해 생산하는 청정 재생에너지로 2050년이 되면 지구의 수요를 100% 채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개발에 따라 수백만의 새로운 직업이 창출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사안은 논쟁의 가치가 없습니다. 왜냐면 인류의 문제니까요.

깨끗한 물과 공기 그리고 존재 가능한 기후는 인간에게 빼앗을 수 없는 권리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 해결에 정치적인 갈등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도덕적 책무입니다. 물론 매우 벅찬 임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요.

존경하는 UN 대표님들, 또 세계 지도자 여러분,

인류 존재에 가장 중대한 사안에 대해 여려분이 해답을 제시할 때입니다. 바로 지금이 용기와 정직으로 이 문제를 직면해야 할 때입니다.

 

디카프리오 연설 5년이 지난 2019년 9월, 16세 스웨덴 여학생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디카프리오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가기를 포기하고 기후위기를 알리는 일에 나섰습니다. 유엔에서, 유럽의회에서, 프랑스 의회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연설을 했습니다.

요트를 타고 보름간 항해하여 기후정상회담에 참석하러 뉴욕에 갔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세계 100여개국 150만 청소년들이 지구의 미래를 위하여 길거리로 나섰는데 어른들도 동참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2018. 12,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연설하는 그레타 툰베리>

 

그레타 툰베리는 “60년후 우리들의 미래 세대가 지금 이 순간 뭔가 할 수 있었을 때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이냐“고 외칩니다.

이런 활동들이 높게 평가되어 2019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추천되었습니다.

 

경남 창원에서는 9월 21일 오후 5시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청소년과 어른들이 함께 모여 외치기로 하였습니다.

“기후위기 시간이 없습니다”

자녀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합니다.

 

박종권 / 경남탈핵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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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9 00:00

방사능 올림픽은 절대로 안된다

 

성명서 / 탈핵경남시민행동

 

 

 

 

그린피스의 원자력 분야 전문가인 ‘숀 버니’ 그린피스 수석은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정부는 방사능 오염수 110만 톤을 바다로 방류할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한국이 가장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후 8년 5개월이 된 지금도 피해 복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방사능 오염수는 매일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오염수 처리업체가 제시한 처리비용은 200조원이다. 따라서 일본은 방사능 오염수 처리를 결국 포기하고 바다에 방류할 가능성이 크다.

후쿠시마에서 흘러나온 방사능 물질로 태평양 일대가 오염되고 예상(20-30년)보다 훨씬 빨리 태평양을 돌아 이미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보도가 있다. 그린피스의 주장처럼 한국의 바다 역시 방사능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아베정권은 방사능 오염수 바다 방출 계획을 철회하고 우리나라와 중국 등 인접 국가들과 충분히 협의하여 바다오염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를 촉구한다.

또 후쿠시마 지역의 토양과 하천은 방사능 수치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언론보도가 수차례 있었다.

선수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조치가 완벽하게 이루지지 못하면 2020년 도쿄 올림픽은 특별 재난을 이유로 하여 연기하거나 개최지를 변경할 것을 촉구한다.

 

후쿠시마 재앙은 이처럼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아베정부는 핵발전소의 재가동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를 바란다.

아베정권은 핵발전 사고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고 중국, 일본, 한국이 함께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기를 축구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은 개성의 발전, 신체의 균형, 건강의 유지라는 목적이 있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땅에서 음식물을 섭취하고 운동경기를 한다는 것은 이 목적에 결코 부합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CBS, 8.5일자)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의견이 68.9%로 나타났다.

선수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안전조치가 없으면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핵 시민단체 ‘비욘드 뉴클리어’는 8월 7일 일본 시민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후쿠시마 재앙이 극복되지 않았음에도 아베정부가 정치적 목적에 올림픽을 이용한다는 점을 비난했다.

 

아베는 정권 유지에 매몰되어 도덕성을 이미 상실했다.

아베는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커녕 무역보복으로 대응하는 졸렬함을 보여줬다.

탈원전을 염원하는 탈핵경남시민행동 회원들은 한마음으로 아베정권을 규탄하고 일본제품 불매, 올림픽 보이콧 동참, 방사능 바다 방출 제지 등 반 아베 규탄행동에 나설 것이다.

 

2019.8.19.

탈핵경남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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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00:00

토지주택박물관 관람과 의령 자굴산 산행

이 포스팅은 학봉산악회 회원들이 진주혁신도시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 내 토지주택박물관과 의령 자굴산을 다녀온 기록입니다. 글은 회원인 손상락 박사가 썼습니다.

- 일시 ; 2019년 5월 31일∼6월 1일(금, 토)

 

5월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로운 한 달을 맞이하는 지난 5월 31일(금)과 6월 1일에 우리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100산 탐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박 2일에 걸쳐 진주 혁신도시에 본사의 둥지를 틀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토지주택박물관 견학과 자굴산 산행을 기획했다.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손흥민이 강원도 산골에서 2002년 월드컵 개막전을 보면서 월드스타를 꿈꾸던 오월의 마지막 날에 이루어지는 1일차에는 토지주택박물관을 견학하고, 날이 새어 새로운 달이 되면 의령 자굴산을 오르는 일정이었다.

1일차인 5월 31일 금요일 오후 3시,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산 문화예술의 전당인 3.15아트센터 주차장에 집결한 우리 일행은 메트로팀과 비메트로팀으로 차량 2대에 분승하여(김흥수 회원은 개별 이동) 진주 혁신도시 토지주택박물관으로 출발하였다. 회원 대부분이 도시건축분야 전문가라 택한 목적지였다. 

 

 

저성장시대에 도시정책의 대안적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도시재생과 관련하여 향후 쇠퇴되고 지방도시의 소멸위기 마저 걱정해야 하는 오늘날, 지역의 도시재생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사전에 공문을 통해 관람 승인을 요청함과 동시에 안내와 해설까지 사전에 부탁해서 이루어졌다.

항상 이동 차량을 후원해주시는 분의 애마인 아우디와 넥서스로 남해고속도로를 한 시간 가량 달려 진주 혁신도시 한국토지주택공사 주차장에 도착한 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자랑하는 개관 20주년을 맞은 토지주택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수준 높은 학예사로부터 주거문화의 시대적 흐름을 관통하는 고급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움집에서부터 한옥 그리고 “잘 살아보세”하며 고도성장기의 산업화‧도시화 시대에 집(아파트)을 짓고 도시를 만들어온 주택‧주거문화와 도시의 발전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침 박물관에서는 2017년의 토지주택박물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전(2017. 12. 11~)을 하고 있었다. “사랑과 가족”을 주제로, 이름하여 “사랑, 옛 문서에 담긴 사랑이야기”였다. 옛 문서에 남겨진 가족·결혼·부부생활·돈·이별에 대한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스토리를 엮어가고 있었다.

 

 

100여 년 전 토지문서에 나타난 법순과 푼수의 첫사랑 이야기, 역사 속 선조들의 결혼과 부부생활 이야기, 어긋난 사랑과 첩·치정·돈에 대한 이야기, 자매·상속·증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신을 직접 종으로 파는 아들의 부모공경 이야기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클라이막스는 1998년 안동시 장성동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업지구에서 발굴해 전국민의 눈물을 흘리게한 원이 엄마의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두고 먼저 떠난 고성이씨 이응태의 아내가 쓴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원이 아빠에게 보내는 애절한 편지”다.

이응태 아내의 편지 내용을 잠시 보면,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했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등등. 400여 년전 당시의 부부애와 가정생활, 그리고 남녀 동등관계 등에 대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았다.

 

이렇게 박물관의 주택·토지에 관한 전시와 특별전 관람 등 1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낸 후 6시경 내일의 산행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진주의 먹거리를 탐방할 수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진주 원도심에 자리한 이 식당은 번화가가 아닌 뒤안길에 자리한 허름한 곳이었다. 우리 일행이 조금 일찍 도착해서인지 한산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진주에서 맛있고 특색 있는 소문난 식당이라는 말대로 손님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돼지고기 불고기인 것 같은데, 육수를 먼저 끓인 후 돼지고기 주물럭을 넣어 한참 뒤집기를 하니 특색 있는 먹음직스러운 주물럭 두루치기가 완성되었다.

시장기에다 특색 있는 두루치기에 젓가락질과 술잔 기울이기를 바쁘게 반복하니 모두들 음식 맛에 대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주 메뉴를 다 먹은 후 나오는 디저트가 특이했다. 바로 그 주인공이 “토란 들깨국”라는 것이었는데, 특이하고 맛이 있어 모두들 더 먹고 싶었는데, 주인장께서 국이 얼마 없다시면서 김용운 회장님만 한 그릇 더 드렸다.

진주 최고의 두루치기에 상추 쌈과 소주로 민생고를 해결한 후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야! 잘 먹었다. 특색 있네. 다음에 다시 한 번 와야겠다”며 만족감과 포만감을 품고 식당을 나섰다. 우리 말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했는데, 아니 허름하지만 소문난 식당 먹을 것이 많았다.

"맞어, 분위기 있고 품위 있는 곳은 아니더라도 여행자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으로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특색 있는 먹거리가 필요해. 그것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려니"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절묘한 식당의 선택이었다.

 

7시 15분경 식당을 나서 진주성 야경을 일견하기 위해 진주성으로 갔다. 진주에 와서 진주성을 밟지 않으면 진주에 왔다 할 수 없기에 말이다. 시간 덕택에 입장료는 무료였다.

성내 산책 중 우리는 박물관 우측의 삼층석탑(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을 만났다. 안내판을 보니 통일신라시대 석탑인 국보 제105호였다. 아름다웠다.

 

 

산청군 소재 범허사라 하는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41년 대구의 일본인 골동품상이 구입해서 공장에 세워놓았던 것을 1947년 경복궁으로 이전했다가 긴 타향살이를 마감하고 2017년 2월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석탑을 살펴보던 우리 일행은 “원형 그대로 이다, 아니다, 복원을 위해 손을 대었다”는 등 분분한 이야기가 오가다가, 주말이면 가끔 지역 내 이곳저곳의 왜성이나 성곽 등의 발굴현장을 탐방하기도 해서 문화재에 대해 어설프지 않는 식견을 갖고 있는 신삼호 회원의 주장대로 원형 그대로가 아닌 일부 손을 댄 것이 맞았다. 사물을 보는 눈은 경험에서 축적되는 것이 판명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진주성을 한 바퀴 돌면서 산책을 하는데, 진주의 상징이요 문화재인 진주성의 지척 어디에선가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신나는 유행가가 울려 퍼졌다. 진주성 가까이 있는,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진주시가 설치를 했다는 분수광장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순간 “갓 쓰고 두루막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든 화려하거나 멋지지는 않더라도 조화가 필요하려니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화재와 그 주변에 대한 보다 세심한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진주성벽에서 내려다 본 남강과 의암>

 

이렇게 진주성을 한 바퀴 산책하고 8시 30분경 숙소에 도착했다.

진짜 시작은 여기서 부터였다. 웃음 섞인 이야기들과 노래가 이어졌다. 어디선가 “아모르 파티”가 나오자 인문학의 대가께서 그 의미와 해석(運命愛: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이 따랐고 그럴수록 건배 횟수도 늘어갔다. 이윽고 명창 김용운 회장님의 무반주 노래가 나오자 모두들 다시 한 번 그 실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흥을 돋우는 모임의 조미료처럼, 노래에 관한 이야기가 한참 동안 오가다가 노래의 감정과 느낌이 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내용인즉,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장사익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자지러지는 느낌이 전해오는 장윤정 스타일, 비음이 섞여 흐르는 이미자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꺾는 맛이 나는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등등 각자 흥을 느끼고 감상하는 스타일의 다양성을 재발견했다.

 

 

노래 말에 관한 한 대미를 장식한 히트송은 유행가가 아닌 동요였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어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였다. 노랫말이 주는 어느 회원님의 재해석에 또 다른 시대상을 느끼게 했고, 이는 당시의 가족사와도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 회원도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이번에는 산악회 사진전 실행 여부로 화두가 옮겨졌다. 지난 4월 일본 홋가이도 해외원정 시 논의된 바 있는 산악회 차원의 등산·여행과 관련 사진전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붙었다.

왜 하느냐에서부터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회원, 일반 대중이 많이 찾는 장소에 게시하는 것은 핀잔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튀어나왔다. “개떡 같은 사진이라도 찰떡같이 기획할 수 있다”는 강한 의욕을 피력하는 회원, 사진전 시행을 염두에 두고 이미 출품사진을 확보하고 있다는 회원 등등. '정신없는 산악회'인듯하면서도 실행 여부를 둘러싼 의견에 다양성과 균형성을 재발견했다. 하지만 이것뿐, 실행 여부에 대한 결론은 끝까지 나지 않았다.

밤은 깊어 시계침이 새로운 달 6월 초하루를 가리킬 즈음, 원로님과 회장님은 큰방으로 가서 2일차 산행을 위한 체력 비축용 잠을 청하시고, 다른 회원들은 사진전과 기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더 주고받았다.

하지만 술에 장사 없는 법. 시간이 계속 흐르자 한분 한분씩 체력 소진으로 각 방으로 가서 베개를 벗 삼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새벽녘까지 거실에서는 여전히 인문학과 인생을 논하며 잠꼬대 같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몇분 회원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잠꼬대 같은 소리 중 백미는 “이불 속에서도 와 이리 손이 차노.?” 였다.

 

 

10주년 기념 산행의 날이 밝았다. 7시 출발 예정이었지만 지난 밤 무리 탓에 1시간 가량 지체된 기상이었다. 게다가 거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 혼돈 속에서도 질서와 균형·조화를 찾아가는 산악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후 다시 질서를 찾기 시작하면서 언제 전쟁터와 같은 거실이었는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말끔히 정리되었다.

9시경 숙소에서 나와 인근 콩나물국밥집에서 속풀이 식사를 한 후 우리는 두 대의 차량으로 이동해 9시 40분경 자굴산 산행 출발지 '쇠목재'에 도착했다.

 

 

어제 밤 무리 탓에 힘든 몸을 끌고 시작된 산행이었다.

15분가량 산을 오르니 기와를 올린 꽤 모양새 있는 정자를 만났다. 반가웠다. 전날 밤의 취기와 무리로 체력이 소진된 탓에 가쁜 숨을 가다듬기 위해 배낭을 풀고 잠시 허리를 내려 쉬었다.

둘러보니 당호가 없는 정자였다. 우리 산악회가 마산 무학산 둘레길에 있는 정자에 산악회 창설 10주년 기념으로 '취풍정'이라는 현판을 설치한 것이 문득 생각나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기도 했다.

자굴산 중턱 쯤에 이르러 산행루트의 갈래 길을 마주쳤다. 백산대장은 2일차 산행루트를 미리 마음에 그리고 있었을텐데, 가던 길을 멈추고 어디로 갈 건가를 두고 이야기했다. 다른 때와 달리 회원들의 눈빛에 전날 밤 음주로 체력이 소진되어 회복이 안 되었으니 짧고 평이한 코스(둘레길)로 가자는 기색이 역력했다.

통상 산행 속도는 시간당 2∼2.5킬로를 이동하는데, 쇠목재(베이스, 해발고도 650m)에서 자굴산 정상(897m)까지 약 1.3킬로를 전날 밤의 여파로 1시간 20분 걸려 11시경에 정상을 정복하는 거북이 산행이었다.

 

기진맥진하여 정신없이 산행을 했던 터라 정상에서 10주년 기념 산행의 회장님 기념사도 잊은 채 산행을 하다가 하산 도중 둘레길 중턱에서 회장님의 기념사를 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2시 10분경 하산을 완료, 출발지 쇠목재에 도착해 의령 읍내로 가니 12시 50분경이었다. 유명한 종로식당에서 쇠고기 수육과 국밥, 그리고 전통주로 속풀이를 하면서 배를 채운 후 회비 1만원 거출해 그 유명한 의령 망개떡을 구입하여 회장님 하사품으로 받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 관람과 자굴산 산행이라는, 의미 있고 스토리 있고 진한 추억까지 가슴에 잔뜩 남겨준 학봉산악회 10주년 기념 100산 탐방 1박 2일의 산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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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00:00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4 – 삿포로(札幌), 뒷풀이

4. 28 (일요일, 넷째 날) - 맑음

 

8시 반 출발을 앞둔 호텔 앞 주차장에서 간밤에 있었다는 지진 얘기가 한창이다.

허와 서, 두 원로는 웬 지진 얘기라며 금시초문이다. 가이드가 진짜 있었다고 확인해주면서 지진의 강도를 규모와 진도로 구분까지 해가며 설명해준다.

원로 두 사람만 곯아떨어져 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놀라 깨어났다! ... 나이만 먹는다고 아무나 원로가 되나요? 자연재해에도 무심할 정도로 도가 터야지, 원로원 가입기준이 하나 생긴 셈이다!

막 출발하자말자 누가 호텔방에 도수 있는 선글라스 놔두고 왔다고 한다. 도로로 나오자 말자 바로 차를 돌려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새로 ‘정규직’이 된 김 구청장이다. 어젯밤 기대치 않은 깜짝 승진의 감동과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는 게 정답일 듯.

이 에피소드는 학봉산악회 ‘정규(직)’ 회원의 위상을 웅변해준다. 향후 학봉의 정규회원 가입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될 것이 틀림 없으렸다!!!

가이드 기사가 호텔서 그다지 멀지 않은 어느 집 앞에 차를 세우더니 큰 봉지 두 개를 들고 온다. 오늘 일정상 점심식사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비행기 안에서 드시라고 도시락을 준비했단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가이드의 성심이 엿보인다. 내가 너무 좋게만 보는 것인가, 호호.

아파호텔 객실마다 일본 극우가 쓴 문고본 책들이 비치되어 있는 것, 그리고 호텔 방 뒷면 창문이 바깥이 안 보이도록 해놓은 것 등이 궁금해서 이동 중에 가이드한테 그 이유를 물어본다.

뒷 창문 바깥 안 보이게 해놓은 건 아마 노천탕 때문인 것 같고, 아파호텔 체인 사장 남편이 극우인사인데 자기가 쓴 책을 출판해 홍보용으로 비치해놓은 것 같다고. 일본에는 그런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데, 언론의 자유라 금지할 수도 없고... 대개들 그냥 무시한다고.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는 타키노레이엔(瀧野靈園)의 묘지공원 두대불전(頭大仏殿)을 보러간다.

 

 

이 불전의 모습을 묘사하기는 쉽지 않으니 사진들 참조하시기 바란다. 며칠 전에 씨네아트 리좀에서 ‘안도 타다오’라는 다큐영화를 보았는데 이 묘지공원은 나오지 않아 의아했고, 베네통 그룹의 파브리카연구소를 그가 설계했음을 알게 되었다.

파브리카연구소는 전 세계에서 25세 미만의 젊은 창의인들을 모아 숙식하면서 무엇이든 상상하고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일체의 지원을 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지식인 장기 레지던스라고나 할까.

공원 입구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모아이상과 33명의 보살상을 보러 간다.

모아이 상들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다르다. 말해 놓고 보니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모아이상들이 날 쏙 빼닮았다는 중론이다.

생각난다. 주왕산 계곡을 내려오면서 암벽의 사람 옆 얼굴, 그것도 날 쏙 닮았다고들 했다. 그래 나는 인류의 표본이야, 갑자기 자긍심이 밀려온다...

허 원로가 나를 나와 가장 닮은 것으로 보이는 모아이상 옆에 세우고는 작품사진을 찍는다.

 

 

작품의 이름은 ‘비몽사몽’을 제치고 ‘반모반인’으로 정한다. 이거 공동작품으로 인정 안 하면 초상권 행사할거다. 가장 먼 쪽에 다른 모아이들보다 키도 덩치도 더 큰 석상이 하나 있다.

내가 보니 임 보급대장과 닮았다. 그는 이 얘기를 듣자말자 가서 확인한다. 그도 허 원로의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웃는 바람에 대칭성이 사라졌다고... 나는 표정을 모아이처럼 잘 했다고 칭찬 듣고...

 

 

공항이 있는 남쪽 신치토세 방향으로 내려간다.

좋은 길을 두고 산길로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가는 이유는 일본서 가장 물이 맑다는 산정호수 시코츠코(支笏湖)를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점심 먹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 호수를 두고 분화구인가 아닌가 논란이 일었고, 이렇게 큰 화산 분화구는 없다는 주장이다. 가이드 아니라고 확인해준다. 그럼 어떻게 해서 생긴 건가? 설명한 것 같은데 못 들었다.

 

드디어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다.

좌석 예약이 안 되어 있고 가장 늦게 도착해 뿔뿔이 흩어져 앉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운데 자리들이 많다.

돈 더 주면 좋은 자리로 바꿔준다는 제안에 어안이 벙벙. 빈자리 있으면 처음부터 줄 것이지. 비상구 옆 좌석은 원래 가치가 낮은 자리인데 발 뻗을 여유가 있다고 가치가 상승했나보다. 어쨌든 고객 입장에서는 저가항공 이용자의 비애이고, 항공사 입장에서는 수익 극대화 방법의 일환이겠지, 이해하고 넘어간다.

가이드는 우리가 눈에 안보일 때까지 서 있다 가고, 비행기는 12시 55분 정각에 이륙한다.

신 대장의 양보로 허 원로와 나란히 앉은 나는 도시락 까먹고, 열심히 얘기도 하고, 호텔서 가져온 일본 극우가 쓴 소책자도 몇 페이지 읽고, 잠시 졸고 하다 보니 벌써 김해공항이다.

 

시간을 보니 15시 40분. 아, 3박4일은 좀 지친다. 그래도 2박3일은 짧고, 4박5일은 피곤할 것 같고. 해서 가장 적당한 일정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시간이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마땅한 식당이 떠오르지들 않나보다. 기내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앉았던 회원들 중에는 눈치가 보여 도시락을 못 먹은 사람도 있다. 누구는 아침도 못 먹었다네. 세상 불공평하다. 먹은 사람들 중에는 도시락 내용이 좀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일단 마산으로 가면서 의논해서 전화 연락하기로 하고 올 때처럼 두 팀으로 나뉘어 돌아간다.

우리 차에서는 허 원로 제안으로 생아구를 잘 한다는 다정식당으로 정했고, 통보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온다. 저쪽 팀에서는 회장이 다정식당을 제안했다나. 누군가 말하길 우연의 일치이지만 허 원로와 김 회장이 처음으로 통했다며 앞으로 죽이 잘 맞을 것 같다나. 하하 역시 쯔기다시 이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싶다.

 

17시에 마산의 '다정 생아구' 식당에 도착하다.

조금 이른 석식이지만 오늘은 제대로들 못 먹어서 괜찮다. 해단식도 해야 하고...

이번 산행 겸 여행에 대한 자평들도 있었다. 너무 학습 위주 여행이었다, 마지막 밤은 시내에서 지내야 했는데... 비용 절약 위해서는 패키지 이용도 검토해야. 패키지도 별도 가이드 둘 수 있다는 둥. 그래, 해외 갈 때는 공부도 좋지만 즐거움도 있어야지...

해외원정단장이 향후 해외원정지는 직권 결정한다고 선언한다.

검토 중인 후보지 중 인도네시아의 모 해변이 1순위란다. 부하 직원이 추천했다는데, 세계 제일의 석양과 노을을 볼 수 있단다. 어쨌든 알아서 하시고...

정신없는 산악회로 규정하는 바람에 무등산에서 정규직이 되지 못했던 김 부총무, "회장은 뭐 인사만 하고 권한은 직책 맡은 사람이 가지고 있고, 정신없는 산악회 맞네."

하하, 정규직 되더니 인자 눈에 보이는 게 없제? 원로원 가입만 늦어질 껏이다! 김교쑤! [끝]<<<

글 / 서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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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1 00:00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3 – 비에이(美瑛), 삿포로(札幌)

4. 27 (토, 셋째 날) - 흐리다가 삿포로 도착 후 맑음

 

숙소에서 조식을 먹은 후 9시 출발을 위해 탑승 준비들 한다.

게스트하우스 리좀과 무관하지 않은 나는 펜션 주인장 부부와 함께 건물 입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같은 숙박업자로서...

떠나는 차 안에서 김 구청장 숙소 파트너였던 김 교수 왈, 자는 데 보니까 정말 몸이 안 좋다는 걸 알았단다. 어젯밤에 너무 닦달한 게 좀 후회스럽다. 그런데도 그동안 전혀 내색을 안 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가이드는 어젯밤에 주인장이 놀랬다 한다. 경험상 한국인 단체손님 왔으니 오늘밤 잠 설칠 각오했다는데, 조용한데다가(노래 소리가 잘 안 들렸나보다) 11시도 안 되어 취침하다니 다른 한국인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그동안 안 좋은 이미지 개선했다면 좋은 일이지...

먼저 간 곳은 ‘시라히게노다키(しらひげの瀧, 흰수염폭포)’와 ‘시로가네하시(白金橋)’다.

 

 

용암이 흘러 생긴 작은 개천이라 한다. 작은 개천이 넓은 개천과 만나는 곳에 폭포가 생겼는데 절벽 위에서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절벽 수직면의 군데군데서 흘러나온다. 가까이 갈 수는 없고 백금교 다리 위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다.

폭포 바로 위에 집들이 들어서 있어 위험해 보였지만 전혀 아니라며 그 때문에 오히려 인기가 많다고 가이드 설명한다.

 

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나와 ‘아오이이케(靑い池)’를 구경한다.

 

 

둑을 따라 산책길이 나 있다. 이 연못은 혹시 용암이 또 흐르면 막을 목적으로 인공으로 조성되었다. 나무들을 그냥 두고 둑을 쌓아 나무들이 물에 잠겼다.

신기하긴 하지만 한국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김기덕 영화의 무대, 청송 주산지의 운치와는 비교가 안 된다. 물 색깔이 파랗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지금은 색깔조차 이름값을 못하는 것 같다. 이 호수가 무언가에 나와서 유명해졌다는데... 무엇인지 잊어먹었다.

 

일본의 유명한 풍경사진 작가 마에다신조(前田眞三)의 기념관, 타쿠신칸(拓眞館)으로 이동한다.

 

 

마에다는 가장 일본다운 경치를 찾아서 전국을 쏘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했고, 비에이의 구릉지대를 사철 쏘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한다. 구릉지의 낮밤, 노을, 석양, 계절 등 다양한 순간들이 포착되어 있다.

누군가 사진은 기다림의 작업이라 했던가. 같은 곳에서 같은 전경을 찍어도 사진은 다를 수 있다. 작가의 인내와 수고로움을 짐작할만하다.

척진관을 나와 바로 옆에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 속 오솔길을 따라 프로므나드(산책)한다.

사진들 찍기 바쁘다. 햇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나무 숲길 끝은 언덕 위 도로로 이어진다. 밑에서 보면 병풍처럼 둘러선 언덕 위에 올라서니 신천지가 펼쳐진다. 끝없이 펼쳐진 구릉지대. 멀리 눈 덮인 연봉들이 보이고 그 중 어딘가가 이틀 전 주봉 턱 밑까지 가보았던 대설산이 있겠지.

나는 사진 찍느라 뒤쳐졌는데, 마에다의 사진작품에 혹했는지 구릉지의 절경에 반했는지 이미 사진작가회를 결성했단다. 나도 무조건 회원이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10월에 전시회 개최까지 결정하고, 전시장으로 갤러리 리좀 예약까지 부탁한다. 진도를 한 번에 다 나가니 현실감이 없다.

 

언덕길에서 내려와 자작나무 숲길을 다시 돌아간다.

가이드 상, 전시회 리플렛에 실을 작가 얼굴사진 찍어준다 해서 모두들 번갈아가며 자작나무 숲길을 배경으로 폼들을 잡는다. 벌써 사진작가 된 줄 착각에 빠진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사진 공유는 없다. 우리는 경쟁자인 것이다!

 

 

비에이 구릉지대를 이리저리 더 돌아다니다가 일명 파노라마 로드라는 길에 잠시 멈춰 구릉지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비에이역을 거쳐 비에이쵸(美瑛町)의 고마소바(ごまそば;검은깨 소바)점 쯔루키(鶴喜)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제 정든(?) 비에이죠를 떠날 시간이다.

구릉이여 아듀(A Dieu!=to God). 연중 가장 경관이 못하다는 4월이 이 정도 감동을 주는데 언제 다시 한 번 와서 비에이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려나.

이동 중에 내가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일어도 우리처럼 한자 없이 히라가나와 카타카나만으로 전용이 가능하지 않나? 혹시 그런 움직임은 없냐고? 가이드 답변, 못 들어봤다면서 자기 생각엔 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아서가 아닌지... 그래선지 일본인들은 언어유희를 많이 즐긴다고. 언어 후진국이라나!

 

나카후라노(中富良野)에 있는 도미타(富田) 농장으로 간다.

주차장에 내리자말자 살짝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아무도 없어. 이크, 부리나케 뒤편 산 쪽에 뭔가 있는 것 같아 올라가보니 아무 것도 없다. 다시 내려와 우측으로 건물 뒤편이 수상해서 가보니 라벤더 노상 밭도 있고 하우스도 있다.

일행은 하우스 안에서 라벤더 꽃들을 구경하고 있다. 누군가 실종되었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까. 버려진 느낌이 이럴까?

7~8월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는 라벤더 밭. 아,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흐드러진 라벤더 밭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이번 북해도 여행은 프랑스 유학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계기가 적지 않다.

그다지 크지 않은 농장을 둘러보는데 라벤더를 넣은 빵 같은 것을 총무가 사먹자고 한다.

원로 두 사람 거절하고 커피나 한 잔 먹자 하니 총무 왈, 그건 공금 지출이 안 된다고 자른다. 할 수 없이 엔화가 없어 보급대장에게 커피 한 잔 얻어먹는다. 그런데 회장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들어온다. 공금으로 샀단다. 항의를 받자 자기는 빵 대신이라고 강변한다.

그럼 빵 대신 커피는 왜 안 되는데? 회장님의 기호는 일반회원과 별도로 취급하는 건가? 총무님 회장에게 너무 아부하시는 건 아닌지요? 이것이 아이스크림 사건의 전말이다. 결국 이틀 뒤 해단식에서 회장은 아이스크림 값을 토해낸다.

회장은 억울하다고 했지만, ‘회장단 위에 원로원’(‘조물주 위에 건물주’의 패러디) 다시 한 번 절감했을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쯔기다시’라는 사실도. ‘원로원 외 기타 둥둥’.

원하는 것 있으면 구입하라며 가이드 상이 근처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을 들린다. 다들 뭔가 샀는지 모르겠지만 보급대장이 원했던 유리창 닦게는 결국 못 찾았다고. “글쎄요,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

 

이 도시 외곽에 있는 후라노 와인공장으로 이동하다.

입구에서 바로 지하 와인저장소로 내려간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연도별로 제작된 포도주병을 전시 보관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프랑스의 샤토(Chateaux, 성)들에서 거대한 지하 저장소를 본 나는 시들하다. 이층에서 공짜 시음을 하고 바로 나오려고 하니 총무가 유료시식 안 할 거냐고 해서 안 한다고 답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 허 원로 등과 함께 공기를 쇤다.

다른 사람들이 한참 있다 나오더니 하는 말 와인 5가지를 유료 시음했다며 왜 안 하셨냐 한다. 헛기침이 난다. 이 몸은 프랑스 본토 포도주를 충분히 마셔본 사람이란 말이야. 그런 게 눈에 들어오겠어.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이제 북해도의 마지막 밤을 보낼 삿포로를 향한 장도를 시작할 참이다.

두 시간 못 미쳐 도착할 예정이란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가이드 운전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5월 1일부로 천황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변경된다.

우리가 방문했던 대형마트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세일이 진행 중이었다. 공식행사 중 총리가 ‘천황 만세’를 부르는데 지난 번 연호 변경 때 이에 대해 위헌 소송이 제기되었고, 일본 헌재가 합헌으로 판정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번에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가다보니 고속도로 갓길에 승용차 두 대가 서 있고 경찰이 단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뒤에 선 차의 종류는 ‘토요타 크라운,’ 경찰차가 아니어서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이른바 ‘복면 패트롤카’라고 한다. 일종의 암행순찰로 위법행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갈 카메라가 위헌이라며 모두 제거했다 하지 않았나? 어느 게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는 계속해서 삿포로시의 개척사 시대 이야기를 계속한다. 현재 인구는 200만 명, 대도시다. 평지인데다 마천루도 없어 도시의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고 방향도 해가 없으면 짐작할 수 없다. 이런 곳에야말로 랜드마크가 필요하다고 가르친 게 도시학자와 건축가들 아니었던가요?

첫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누군가의 부탁으로 남성용 주간지 1권을 샀던 총무는 오늘 또 1권을 샀다. 두 잡지에서 여성들의 노출 정도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하나는 좀 노골적인 대중 잡지 같고, 다른 하나는 거의 포르노 잡지에 가깝다. 인물들 연락처까지 있다. 생각 있으면 전화하라는 신호인가. 무슨 생각? 몰라! 편의점이나 서점에서 대놓고 팔고 있으니 점잖은 한국 선비들, 어이없다.

한국인은 이보다 더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쾌락을 추구하며 ‘눈 감고 아웅’하는 데 비해 일본인은 뭐 굳이 숨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닌가라는 논평에 다들 동의한다. 이웃사촌 간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이드는 이러한 일본인의 성 관념에 대해 지진이 빈발하는 재해국가 사람들의 특징은 아닐까, 즉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항상 즐기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철학박사는 일본 문화의 감각주의 성향도 여기서 기인한 건 아닐까라는 가설까지 세운다. ‘감각의 제국’이라는 유명한 영화까지 거론된다. 다들 그럴듯한 해석이다.

그렇다고 염세주의까지는 아닌 것 같고. 섬나라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항상 대륙 경영을 호시탐탐 노리고 이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과감하게 실행했던 침공의 역사를 감안하면 말이다.

어쨌든 일본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은 한국인에게 일본은 정말 쉬운 나라가 아니다. 일본과 일본인을 무작정 무시하는 태도와 일본 뒤만 따라가는 행태와 그래도 배울 건 많다고 보는 한국인의 이중적인 일본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삿포로 시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출구 근처 도로표지판에 백석(白石)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어! 우리의 사랑하는 백석 시인과 한자도 같네. 확인해보니 흰 돌이 많은 지방이란 장소명이다. 하지만 무등산 때처럼 단어의 뜻만으로 추리하는 것은 틀릴 확률이 높다는 경험을 한 바 있어 확신할 수는 없다. 혹시 백석이 일본 유학시절에 삿포로에 어떤 인연을 남겨놓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얼핏 든다. 누가 알랴! 나중에 백석 연구자들에게 물어나 볼거나? 상상은 자유고 끝이 없다.

 

홋카이도청으로 직행한다.

 

 

북해도의 상징이라는 아카렌가(붉은 벽돌건물) 구 청사의 2층 전시장에서 북해도의 역사를 공부하다.

마침 사할린 관련 전시와 아이누족 등 소수민족 관련 전시도 하고 있다. 건물이 낡아 곧 보수공사가 예정되어 있다. 전시 내용과 가이드 설명을 통해 사할린 동포 문제의 원인이 망국과 분단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일제에 끌려온 노동자들은 일본 항복 후 이미 망해 없어진 조선의 국민으로 간주되었고, 당시 남북한 어느 곳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국민으로서 여권 발급을 해주지 않아 국제 미아로 방치되었다는 것. 자주국가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일본 북해도의 국제적 현안은 러시아가 약속했으면서 아직 반환하지 않고 있는 북방 4개 섬을 돌려받는 것이다. 소수민족의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는 내년 올림픽을 대비해 인권 중시국의 인상을 주기 위해서란다.

그들의 존재를 원(原)주민이 아닌 ‘선(先)주민’으로 표현한 것은 뭔가 의도가 있어 보인다. 아이누족이 일본의 원주민이고 체격이 왜소하다고 왜놈이라고 비하해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완전히 잘못된 지식이란다. 사진으로 보는 아이누족은 키가 크고 덩치도 있는데다 잘 생겼다. 이 또한 식자우환이다!

삿포로 맥주 공장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에서 삿포로 맥주의 역사를 훓어보고, 인접해 있는 비어가든에서 걸게 저녁식사를 한다.

 

 

‘쯔기다시’가 다시 등장한다. 게를 비롯한 안주가 나온 후 여러 가지 종류의 삿포로 맥주를 마시면서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구워먹는다. 우예 된 일인지 고기가 너무 많이 나와 결국 마이 남긴다. 사람으로 가득 찬 홀을 한 바퀴 둘러본다. 우리보다 걸게 먹고 마시는 팀은 없다.

인사말 하라는 허 원로의 지시에 김 회장 폭탄선언을 한다. 김 예비회원을 이 시간부로 ‘정규직’으로 발령한다는 것이다. 회장 직권이란다. 모두들 환영 및 축하 박수다. 원로들도 어쩔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 분석해보자. 전날 밤 비정규직 논란으로 더 이상 구청장 출신의 전직 동료가 더 이상의 설움을 받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안타까운 동료애의 발로, 언제 ‘정규직’으로 받아줄지 모르고 계속 갖고 놀려고 드는 고집 센 원로들과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것은 회장임에도 쯔기다시로 처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자긍심의 발로, 그리고 다른 회원들은 비정규직 시절이 없었거나 짧았다는 사실을 감안해 공평성의 원칙의 적용 등이 아니겠는가?

큼큼. 내가 생각해도 제대로 분석한 것 같은데... 회장의 단독 결정에 다들 환영하는 것을 보니 이제 원로원 전횡 시대는 끝이 나는가 보다. 아, 옛날이여. 이젠 ‘황제 천국’이 될까.

실컷 먹고 마신 후 나오면서 비어가든 건물 입구에서 단체기념사진 해프닝 발생. 안 찍겠다는 걸 사진사가 공짜라 해서 찍었더니 사진 인화는 공짜가 아니란다. 잘못 알아들은 건지 속은 건지 분간이 안 간다.

 

 

인접한 쇼핑센터에서 자유시간, 별 일 없는 나는 김교수와 정교수와 함께 맥주 한 잔 더 한다. 좀 있다 허 원로가 창밖에 지나가는 걸 보고 잡아들인다. 무슨 얘기들 했는지 하나도 생각 안 난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마지막 밤을 보낼 숙소를 향해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이 빛나는 시내를 지나간다. 가이드 하는 말, 삿포로 유흥도심은 중앙가로 남서쪽에 있는데 호텔로 가는 방향이라며 번화가를 한 바퀴 돌아준다.

어느 건물 3층인가 4층인가에서 손님 주문 받고 있는 듯 술집아가씨 두 명이 맨살의 엉덩이를 바깥 유리창 쪽으로 드러내고 서 있는 뒤태가 훤히 보인다. 이야, hot place 맞네! 그것만 제외하면 유흥가라 하지만 한국의 도시들만 못한 것 같고, 장기불황의 그늘도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번화가를 빠져나와 어디론지 외곽으로 계속 간다.

가이드 상 호텔에서 시내를 왕래하는 셔틀이 있지만 11시엔가 막차라면서 혹시 시내 나가신다면 올 때는 택시 타야 한다고... 말들은 안 했지만 상당수 회원들 불만이 이때부터 싹텄다는 사실은 곧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 날 밤인데 왜 호텔을 시내에 정하지 않았냐는 거지.

어딘지는 몰라도 시내에서 제법 남쪽인 것 같은데, 이름은 아파호텔이다. 멋지지는 않지만 대형호텔이다. 방 배정하고 사우나한 후 1235호실(3인실)에 모여 남은 술과 비어가든 나오면서 들렀던 쇼핑센터에서 사 온 치즈를 안주 삼아 한 잔들 한 후 조용히 자러들 간다.

속들이 부글부글 끓었을까. 아마 그래서 잠들을 깊이 들지 못했나보다. 새벽에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려 다들 깼다고 하는 말이다. <<<

글 / 서익진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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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4 00:00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2 – 다이세쓰산(大雪山), 비에이(美瑛)

4. 26 (금, 둘째 날) - 오전에 흐리다가 오후에 눈

 

모두들 새벽같이 일어났나 보다. 새벽 4시부터 동이 훤하니까.

홋카이도는 한국보다 비행기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동쪽에 위치해 있음에도 같은 표준시를 쓰니까 생긴 현상이다.

사우나 하고 호텔 뷔페 간편식으로 조식을 먹고, 짐 다 싸들고 나와 차에다 싣는다.

9시 경 아사히다케 호텔에서 눈앞에 보이는 걸어서 5분 정도 걸릴 것 같은 위치에 있는 케이블카 정거장을 향해 간다.

호텔 정문 맞은편에 ‘비지터 센터’(방문자의 집)가 있다. 아직 문이 잠겨 있어 그냥 지나치고 케이블카 정거장으로 직진한다.

우측으로 대설산 정상이 정면으로 나타난다. 사진들 찍으라고 큰 푯말까지 박아놓았다. 바쁘게 사진들 찍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오늘 날씨들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히 쾌청하다.

허 원로, 어제 밤에 내가 향(?) 피우며 올린 기도가 통했다며 고맙다 한다. 나도 박자를 맞추어 마침 마산에는 비가 온다는데 내가 염력으로 여기 있던 비구름을 마산 쪽으로 보내버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설산의 진면목이 서서히 나타난다. 케이블카 뒤쪽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쪽 방향으로 평야가 갈수록 더 넓어지고, 어제 이곳으로 올 때 사진 찍느라 되돌아가서 멈추었던 장소 옆에 있는 저수지도 보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좌측과 우측으로 길게 늘어진 산맥들의 흰 연봉들도 더 길어져간다. 내 눈에는 좌측 연봉이 훨씬 더 길어 보인다.

해발 1,600미터에 있는 스가타미역(姿見驛)에 내리다. 그래봤자 이 케이블카에는 시점과 종점밖에 없다. 가이드가 눈에 발이 빠질 우려가 있다며 장화를 빌려야 한다 했지만, 다들 그냥 산으로 다가가 사진들 찍느라 분주하다. 60센티 이상 쌓인 눈이라지만 표면이 약간 얼어서인지 걷기에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약간 경사진 오르막 위 평지가 시작되는 곳에 걸상 밖에 없는 작은 전망휴게소가 설치된 곳에 올라가 사방을 구경한다.

 

 

바로 옆에 더 이상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표지판이 서 있다. 산책로인지 등산로인지 발자국들이 이미 나 있다. 가이드 말로는 얼마 전 실종 사건이 난 후 입산금지를 한 것 같다고 한다.

질서 잘 지키는 한국인들로서 어찌 감히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데 완만한 경사지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대설산 주봉이 가파르게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곳에 증기기관차처럼 쉭쉭 소리를 내며 김 기둥을 뿜어내고 있는 곳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데까지는 가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발자국도 나 있고 그 우측에는 전망휴게소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가. 비행기 타고 예까지 왔는데, 2시간 정도 눈길 산보를 예상하고 왔는데 이게 뭐람. 게다가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정상까지는 못 가더라도 그곳까지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작정 나와 몇 사람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다지 멀지도 않다. 가까이 가서보니 두 개의 분화구에서 뿜는 소리와 세기가 굉장하다. 뒤돌아보니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올라온다.

 

 

분화구와 정상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일명 죽음의 계곡을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데 갑자기 김 부총무의 ‘사람 살려’라는 외침이 들린다.

돌아보니 발 하나가 눈 속에 푹 빠졌다. 숨구멍이다. 꽁꽁 언 호수에도 이런 숨구멍들이 있는데 빠지면 죽기 십상이어서 매우 조심해야 하지만 눈밭의 숨구멍은 위험하지는 않다. 도리어 재밌다.

내려오면서 여러 사람이 발이 빠졌고, 나도 두 번이나 빠졌다. 내가 “발이 빠진 수만큼 죄를 지었지만, 이제 빠진 것으로 땜했다”고 하니 다들 안심한다. 죄들 짓고 살기는 사는가보다. 하기야 요즘 같은 세상, 죄 안 짓고 우예 살 수 있겄노.

우리는 내려오는데 뒤늦게 출발한 우리 일행 몇 사람이 올라오다가 중간에 만나서 다 같이 내려왔다. 이들은 결국 김 뿜는 분화구를 가까이 가 보지는 못한 것이다.

내려오는 케이블카를 타자마자 바로 구름이 밀려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허 원로 내 기도 빨 덕분에 산에 있을 때는 쾌청했다며 서도사로 인정한다고 하자, 아이고 나도 염력이 다 되어 더 이상 구름을 보내버릴 힘이 없다고 엄살을 떨었다. 조금 더 내려오니 다시 쾌청해졌다. 중간에 구름 속을 지나온 것이다.

 

올라갈 때 닫혀 있던 비지터 센터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다.

대설산 관련 정보들이 비치되어 있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서가에 대설산의 식생 등 조사보고서가 빼곡이 꽂혀 있다. 누구나 관심 있는 사람은 보라는 것 아닌가.

자료(정보와 지식)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모두 수집해 보관할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공개까지 하다니. 선진국답다. 좋은 것 좋다 하고, 잘 하는 것 잘한다 하는 것도 친일일까?

흑곰 한 마리가 진열되어 있다. 물론 박제이지만 살아 있는 듯한 위용을 자랑한다. 어제 잤던 호텔 이름이 왜 베어몬트인가 알겠더라.

 

11시 30분경 비에이(美瑛) 마을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한다.

차 안에서 가이드가 일본 맥주 역사를 설명하고 3일째 되는 날 삿포로맥주박물관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알려준다.

도중에 옆 계곡 길로 새서 칠복암(七福岩)의 주상절리를 구경한다.

다시 나오는 길에 보니 차도 외에는 모두 눈으로 덮여 있는데 나무들마다 땅에 인접한 부분의 주위는 눈이 녹아 둥그렇게 패여 있다. 그 이유를 두고 설왕설래한다. 누군가 나무도 생물이라 열 때문에 눈이 녹지 않았을까라는 썰을 풀었고, 다들 대체로 동의한다. 왜? 진짜 이유를 모르니까. 근데 무생물인 표지판들도 조금씩 그러하니 이건 어떻게 설명하나. 몸의 열기가 낮은 탓이겠지... 허허허.

얼마 지나지 않아 비에이 마을에 들어서자 점심시간이다.

가이드 왈 카레와 라멘-볶음밥 중 선택하라고 해서 투표하기로 한다. 원로 두 사람은 아무거나 좋다며 기권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카레가 대세다. 카레 집으로 가는 도중에 도로변 주택마다 건물 정면 이마에 연도로 보이는 네 자리 숫자가 붙어 있다.

비에이 마을은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 삿포로 경영을 위해 이 지역에다 대지를 조성해 놓고 자발적으로 이주해 오는 본토민에게 땅을 나눠주기 위해 조성한 인공마을이다.

연도는 그들의 선조가 처음으로 이주했던 해를 지칭한다. 오래 된 것은 1870년대이고 20세기 전반도 상당히 많다. 이 마을이 계획도시라는 것은 거의 100% 격자형 도로망으로 증명된다.

패밀리레스토랑 다이마루에서 다양한 카레 요리로 점심을 먹었다. 어쩌다 ‘찌께다시’란 말이 나왔다. 가이드가 ‘쯔기다시(附き出し)’로 바로잡아주면서 이건 속어로서 ‘기타 등등’의 의미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찌께다시는 일본의의 갱상도 사투리쯤 되겠다.

회원들 왈, “우리가 바로 쯔기다시네.” 대장 외 기타 등등. 쯔기다시는 이후 여행 내내 몇 번이나 반복 사용될 정도로 인기어가 되었다. 학봉산악회에서 대장원로의 위상과 함께 나머지 회원들의 자조적인(?)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에피소드로 보인다.

식사 후 몇 사람이 카레집 건너편에 있는 전기용품 전문점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하는 말, 임 보급대장이 맘에 드는 유리창 닦는 도구가 있어 여주인에게 물어보니 파는 물건이 아니고 자기들이 쓰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으니, 부드러운 말투로 “글쎄요,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라고 답하더라며, 김 부총무 감탄해 마지않는다. 한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주인장은 퉁명스럽게 ‘몰라요’ 했을 것이 틀림없다는 투다.

 

오후 2시경부터 비에이 마을을 둘러싼 구릉지대에 흩어져 있는 명소들을 찾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멀리 왼쪽으로는 다이세츠산 아사히다케 연봉과 오른쪽으로 토카치다케(十勝岳, 2077미터) 연봉이 보이는 비에이 구릉들(패치워크)은 모두 밭으로 가꾸어져 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작물은 거의 없고 맨땅이다. 때가 되면 씨뿌릴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무가 거의 없는 구릉지대에 군데군데 나무들이 서 있다.

 

 

그중에서 광고나 영화 촬영지로 유명해진 나무들을 찾아가서 사진도 찍고 주변 경관을 감상한다. 떡갈나무 ‘세븐스타’, ‘켄과 메리의 나무’라 불리는 포플러나무, 이름은 없지만 차도에 일렬로 늘어선 자작나무 군 등이 대표적이다.

 

호쿠세이노오카(北西の丘) 전망공원에 갔다. 이 구릉지대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비에이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날씨가 쌀쌀해져 따끈한 커피들이 생각났는지 카페를 찾는다. 카페라는 팻말을 보고 살펴보니 장사를 안 하는 것 같다. 누군가 옆에 있는 작은 슈퍼에 따뜻한 캔커피 판다고 해서 우루루 들어갔다. 몸 좀 녹이면서 커피는 캔으로 때웠다.

출발하려고 차를 탔는데 허원로와 임대장이 안 보인다.

누군가 카페 팻말이 붙은 쪽으로 옆길로 더 들어가보니 비닐하우스 안에 카페가 있고 거기에 있다는 전언이다. 아니 카페를 찾았으면 다른 사람들도 불러 같이 가지 않고 둘 만 가다니 꽤심하지 아니한가.

우리도 혼내주자는 음모가 저절로 꾸며진다. 차를 숨기자는 것이다. 가이드 기사 한술 더 뜬다. 안 그래도 차에 주유를 해야 하는데 비에이 시내에 갔다 오자는 거다. 대충 근처에 숨어있다 놀래켜 주자는 생각이었는데 일이 커진 것이다.

언덕 밑으로 내려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다들 맴들이 약해져 반대편 길을 따라 원위치한다. 마침 주차장에 다시 도착하는 순간 저쪽에서 두 사람이 어슬렁거리며 나온다. 다들 어디 있었냐며 오히려 나무라는 눈치다. 음모는 자백으로 곧 밝혀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날이 추워져 더 이상 구경을 포기하고 일단 카미후라노(上富良野)에 있는 숙소 ‘스텔라’ 펜션에 짐 풀어놓고 온천목욕하려 가기로 하다.

시각은 오후 5시 경. 눈 덮인 자작나무 산길을 구비구비 거슬러 올라가니 프랑스 유학 시절 그르노블 외곽에 있는 샹후쓰(Chamrousses) 스키장 올라가는 길이 겹쳐 보인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눈 덮인 산길 경치인가. 어언 강산이 세 차례나 바뀌었다. 세월의 흐름은 실감나지 않지만 과거는 생생하다.

토카치다케 밑에 있는 후키아게(吹上)온천 백은장(白銀莊)이다.

산장 같은 건물이 주변과 어울려 보인다. 산속 외딴 곳, 등산로 입구도 있다. 들어가니 노천탕을 멋지게 꾸며놓았다. 온천물이 고이고 또 흘러가도록 시내처럼 만들어져 있다.

이런 곳에서 하룻밤 잤으면 하는 말에 가이드가 이 건물에는 숙소도 있다 한다. 지자체가 관광객을 위해 운영해 다른 온천숙소보다 약간 싸다고 한다.

아깝다. 가이드상 좀 쓰지 그랬소. 혼자 생각이다. 노천탕은 남탕과 여탕 중간에 남녀혼탕이 있다. 발꿈치만 들면 가리게 너머로 안이 다 보인다.

청춘남녀 한 쌍이 어쩌고 있다는 둥 수영복이 없어 혼탕에 못 들어가는 한도 풀고 사라져버린 청춘들을 안타까워들 한다. 나 혼자만 그런가. 진눈깨비 같은 눈발도 흩날리고, 분위기 죽인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다.

이게 일본 집밥일까. 일본 소주와 정종은 무엇이든 맛있어.

 

 

TV 방영되었던 주인장 스토리가 녹화로 재생되고 있다. 6년 전 은퇴 후 이곳에 정착했다고. 사설 천문대도 운영 중이라고, 그제야 펜션 이름이 스텔라인 까닭을 짐작한다.

식사 내내 젊은 부부가 시중을 들더니 딸과 사위라 한다. 다음날 아침 떠나는 차 안에서 가이드 왈 젊은 남자는 일종의 데릴사위라 한다. 도쿄 유학 보낸 딸년이 졸업도 하기 전에 남친을 데리고 왔다나. 그래서 여기 와서 같이 살면 결혼을 허락한다고 했단다... 이거 부모 갑질 아니여...

3인용 방인 이층 다다미방에서 술 마시고 돌아가며 생노래를 부른다.

 

 

유일한 예비회원인 김 전 구청장. 몸 ‘조시’ 안 좋다며 노래를 안 한다. 어쩌다 내가 예비회원을 비정규직에 빗대는 바람에 논란이 되었다. 결국 돌아가며 노래하기로 한다.

걸핏하면 M고를 걸고 넘어지는 허 원로, 이번에도 C고가 헐 잘한다며 차별한다. 이거 자격지심(自激之心) 아니여. 내가 M고를 대변한다. C고가 노래 잘 한 것은 맞지만 창의성들이 없지 않나, 즉 음정 박자 잘 맞추면 뭐 하나 감정 넣어 자기 식으로 불러야지 하며 억지논리를 끌어댄다.

마지막으로 김 전 구청장이 결국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자랑은 막을 내리고 잠들 자러 가다. 밤 10시밖에 안 됐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내일 날씨들 걱정에 내가 내일 오전 중으로 날씨 개일 것이라고 예언한다.

다음날 진짜로 그리 되니 가짜 서 도사가 진짜 서 도사로 공인되는 순간이다.

일급비밀! 가이드가 일기예보를 보고 나에게 언질을 주었다. 근데 그게 딱 맞아떨어지다니, 이것도 일본의 실력인가?<<<

글 / 서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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