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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1 00:00

김형윤의 <삼진기행> 4 / 1954년 4월 17일 (토)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4

 

이야기는 본선(本線)에서 조금 지났지만은 이교재 선생을 검거한 이만갑이라는 자(者)는 어떠한 자인가를 말 안할 수 없다.

기자(김형윤 선생 자신)와 이만갑은 (지금은 일반의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마산 간이농업학교 동기동창이며 재학 중에 성질이 못된 자로써 장성(長成)한 뒤 그의 의부(義父)?되는 황용석(이 자는 기자보다 1년 선배로 졸업 후 헌병보조원으로 또 그 후 고등계로 전환하여 자살직전까지 관부열락선 상무형사로 기자가 일본 경도에서 추방 귀국 시 미행한 자)의 소개로 순사에 응시하여,

독립운동자 체포에 날 완(腕, 솜씨)을 뽐내어서 그때 유명한 상해의열단 김시현 일파 검거에 실패된 벌(罰)로 경부도 못되고 순사부장으로 진주 밀양 마산 등 경찰서로 전전하여 상당수의 애국자를 검거투옥한 자이며,

고문으로 1920년경 마산서의 조선인 고등계 주임 김 경부(警部)라는 자의 백중(伯仲)을 다투든 자며, 일설에는 친모를 XXX취체(取締)로 구류(拘留)시킨 전무후무한 모범경관이며, 그 의부 황용석을 구타까지 범한 자

피차(彼此) 장성(長成)이라 나는 사회주의자로 그는 형사로서 갈 길은 확연하였지만은 내가 일인 구타 사건 시에는 이만갑은 나의 직접취조자-생각하면 기이하기도 한 이야기다.

이만하면 그자의 위인(爲人, 사람 됨됨이)은 알 수 있는 일이다.

8·15이후 흐지부지한 반민특위의 수배를 받았으나 바보 같은 [특위] 어릿광대 놀음에 탈면(脫免)과 함께 고비원주(高飛遠走, 종적을 감추려고 멀리 달아나다)하고 만자이다.

생각하면 삼진지방은 공자도 나고 도척이도 난 모양이다. 한화휴제(閑話休題) 이교재 선생을 투옥한 후 일경은 선생을 고초를 주어 범죄를 추가하고 선생의 애처되는 홍씨까지 구속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혹한 고문을 자행하는 일방 초가지붕은 물론 온돌과 부엌까지 샅샅이 수색하였으나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특기하여 만천하에 소개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선생이 받았던 상해임정의 밀영서이다.

보통 심약한 인간 같으면 남편이 그 지경이요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는 이 불안하고도 가정이 망할 커다란 화근은 벌써 불살라버릴 것이지만은 선생의 미망인은 아무리 일본이 욱일승천의 세를 가지고 있지만은 석양이 닥칠 때는 반드시 오리라는 장한 뜻과 굳은 신념으로 이 불안한 지령서를 굴뚝 속이 아니면 밧줄에 묶어서 우물 속에 어떠한 때에는 부녀자의 월경대로서 일각일분(一刻一分)도 머릿속에 떠난 일 없이 심적 고통을 겪어오던 피눈물이 쏟아질 과거!

반드시 닥쳐올 조국독립의 강철 같은 신념 앞에 모든 사(邪)된 권력과 부귀가 어디 있으리오?

그러나 중생을 위하는 순도자의 가는 길은 언제나 박해가 따라다니는 모양으로 선생일거 후 기다(幾多)의 애국가는 변절하고 혹은 적진에 투항(投降)하고 주민과 친우는 자기 신변을 겁내어 접근하기 꺼려하여 설상가상으로 고리변업자(高利邊業者)는 맹호같이 달려들었으니 차귀(借鬼)는 선생의 문전에 낙역부절(絡繹不絶)되는 형편이라

그렇지 않아도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가 일시에 파산되어 적빈여세(赤貧如洗) 그대로 조석의 끼니까지 막연한 내락(奈落)에 빠지고 있었으나 그때는 일본의 악정이 있어 그렇다고 하고 자기의 생명을 조국에 바친 종적도 없이 8·15 해방된 후에는 선생의 집안에 누가 한번 따뜻이 찾아 주었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선생에게 전달한 위임장. 이 위임장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교재를 경상남북도 상주 대표로 인정하여 ‘애국지사 연락에 관한 일, 독립운동에 대한 비밀적 지방조직을 행할 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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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00:00

김형윤의 <삼진기행> 3 / 1954년 4월 16일 (금)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3

 

산협의 좁은 비렁(‘벼랑’의 방언)을 얼마쯤 나가니, 간데 마다 산은 백구질을 하여 황토만 노출(露出)한 독산인데 이 산 중복(中腹)쯤 되는 곳에 선생의 백골(白骨)이 묻혀있는 허물어진 분묘가 눈에 뜨이고 조금 아래 양지쪽에 두 봉(封)의 묘소가 있는데 이곳은 선생의 선친 선영이다.

노(老) 미망인은 여기서 시부모와 부군을 추억하는 듯 몇 개의 풀을 뽑고 있었다.

선생의 봉분 아래는 산이 급각도로 수직하며 묘소 정면은 협소하여 성묘하기에도 부자유하다.

선생이 지하에든지 봄바람 가을달이 몇 번이나 지났건만 찾는 사람 별로 없고 유족생계가 화급하여 그랬는지 봉축은 허물어져 황폐 그대로 이고 한 조각 표석조차 없으니 마음 없는 초동이야 지하의 고인이 어찌 누구인줄 알까보냐.

일행의 단심으로 묘전에 간단한 요핵(核)을 차려놓고 추념의 제를 지내게 되었으니 제문의 애절함에 전배자는 물론 유족의 단장애(斷腸哀)는 어느 누가 알아주랴.

오십 반평생 제물(祭物) 앞이나 무덤 앞에 절해본 일이 없는 기자가 뜻밖에도 이 날 제주(祭主)라는 직위로 초헌(初獻)을 올리고 절을 하게 된 것도 비망록에 기록하여 둘 일이다.

이어서 일행의 대표로 이(李) 마산시장이 아헌(亞獻), 다음으로 이 씨 문중 취객으로 허 금조(금융조합)이사의 순으로 정성껏 잔 들어 올리고 일동이 함께 재배하니 일행 중 백발이 휘날리는 윤치왕 군의학교 교장, 전 마산여고 교장 권영운 씨, 김형철 삼성병원장 등 삼노(三老)가 이날 특이한 채색(彩色)과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정성어린 추모의 제를 마치고 일행은 고인의 선영 앞 장방형으로 된 석축 위의 잔디에서 파제(罷祭) 제물을 벌려놓고 고인의 불타는 애국정신과 그 업적에 경탄과 찬양(讚揚)의 꽃을 피웠다.

아울러 허물어진 봉분의 수축, 유족의 생활대책 문제가 화제에 올라 즉석에서 선열의 기념사업 추진 발기인으로 권영운 김상용 양씨 외 기자 3명이 지명을 받고 단시일 내에 이 사업의 구체안을 구상하여 유종의 결실을 보도록 하였다.

각설(却說), 이교재 선생은 어떠한 경로를 밟고 어떠한 결과를 맺었는가 우선 윤곽만을 소개하고 상보(詳報)는 기념사업추위에 있을 것을 믿고 미루어 두기로 한다.

선생은 1919 독립운동이 전국 우내(宇內, 온 세계)에 창일하였을 때 감연(敢然)히 상해로 망명하여 당시 대한임시정부의 동지와 규합하고 굳은 결심과 사(死) 서(誓)하고(죽음을 맹세하고) 중대 밀명을 띈 밀사로 국내에 잠입 활약하였다함은 이미 소개한 바이나

국내 험의(험疑, ?) 처음 군자금 징모 사건으로 지명 수배되어 동지 이병수씨(현존)와 통영 마산 진주 방면으로 전전 피신하던 중 김도산 일행의 신파연극을 변장 관람 중 동(同) 고향인 오서리 출신 이만갑이라는 진주서 고등형사(부장)에게 발각 피검되어 혹독한 고문을 겪었으며 종시(終始) 일관(一貫) 굳게 입을 다물고 자백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유치장 혹은 감방에서도 다만 동지들에게 「수구여병(守口如甁)」의 구호로써 동지들을 경고 하였다고한다.

5년 언도 후 공소심에서 3년형을 마치고 출옥 즉시 초지일관 백절불굴 조국광복의 열혈은 촌흐(寸?)도 냉(冷, 식다)함이 없이 상해 임정과 더욱 긴밀한 연락을 하다가 다시 혈고서파부(血告書播付, ?)사건이 발각되어 부산형무소에서 2년 언도를 받고 복역 중 일차 피검당시 전신 타박의 어혈병과 야만적 생식기 고문 여독의 화로 드디어 사십구 세를 일기로 열혈 심장의 고동도 장한을 품은 채 옥중에 정돈(停頓)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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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8 00:00

김형윤의 <삼진기행> 2 / 1954년 4월 15일 (목)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2

 

일행은 이(李) 열사가 생전에 생장하셨다는 봉곡 부락 길가에 정차를 하고, 좁다란 밭 기슭을 타서 가면 신작로에서 불과 3·4분 만에 선생의 구거에 당도된다.

가옥은 농촌의 공통으로, 나지막한 토장(土墻, 흙담)과 싸리(柴, 시 / 산야에 절로 나는 왜소한 잡목)문을 들어서니 선생이 거처하던 노후하였던 집은 전항(前項)의 말과 같이 소실되고 소나무 향기와 흙냄새가 나는 새(新)집으로 변하였다.

이름과 외관만은 새집이지만 찬바람이 스며드는 쓸쓸하기 한량없으니 생계야말로 과반사(過半思)가 아닐까?

선생의 계보를 들어보면 수대를 두고 독자(獨子)로서 백숙형제(伯叔兄弟)가 없었고 원척(遠戚, 먼 일가) 외에는 혈혈 고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으며 장(長)하여는 조국광복에 침식을 돌보지 않았으니 담석지저(儋石之儲, 얼마 되지 않는 액수의 저축)가 있을 리 없다.

불행한 혁명가의 후일은 천하의 통례인가?

선생이 순(殉, 목숨을 바침)한 후 유족으로서 금년 칠순의 홍태출 노온(老媼, 늙은 여인)과 일점혈육으로 당년 27세의 독녀 이태순 씨(현, 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 모친)가 있을 뿐!

적적황요(寂寂荒寥, 매우 외롭고 쓸쓸함)한 이 애국가의 가정은 글자 그대로 모녀 단 두 사람이 형영상조(形影相吊, 의지할 곳 없이 몹시 외로움)로 슬픈 일 즐거운 일 무슨 일이고 간에 아무리 둘러보아도 두 사람 외에 논하고 의지할 곳이 없었다.

3·1운동 후 애국하는 열혈열사의 탄압이 그(其) 극에 달하자 옛날 친근자(親近者)도 종기가 다치는 듯 전부가 이들 유가족을 기피하고 소원(疎遠)이하였다.

이런 일을 지금 애국자로서 기세 올리는 자는 한번 자야(子夜, 밤 12시경의 한밤중) 사방이 고요할 때 남모르게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 살펴 보아라.

양심 있는 자면 똥물에라도 빠져 죽어야할 것이어늘 어찌하여서 이 자들이 감히 두천족지(頭天足地)하는가?

지금 원척(遠戚)의 이정순 군이 양자로 입가하여 노부인을 돕고 있으나 부락민들까지도 선생의 구거(舊居)에 위문한 일이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섭섭한 일이다.

왕년 백범 김구 선생이 일차 고(故) 동지의 유족을 위문한 외 사회·민간할 것 없이 금반 우리 일행이 최초인 모양이다.

홍 노온(老媼)은 우리 일행을 맞아들이며 과거 상해 임정으로부터 선생이 군자금모집이라는 중대한 사명을 띠고 국내에 잠입할 시 가졌든 조완구·김구 양 선생의 명의로 발부한 비밀지령서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귀한 기념물이다. 노부인은 감격과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종시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일행 중 마산 금조(金組, 금융조합) 허기중 씨로부터 우리를 일일이 소개하고 위문금으로써 윤 군의교장(軍醫校長), 최 65육군병원장, 유 항공수리창장, 김 동양주정사장, 이 마고교장, 손 마산교육감, 주 창원교육감, 이 마산시장 제씨로부터 각기 금일봉을 드리고 곧 이어서 열사가 고이 잠든 오서리 오리허(許, 오리쯤 떨어진)에 있는 대실골(竹谷山, 죽곡산) 묘지로 향하였다.

묘소로 향할 제(際)에 고인과 청년시절에 막역하였던 친우 오륙 명과 미망인 그리고 양자인 이 군 등의 길안내로 굽은 밭길을 지나 산기슭을 둘러서 안치된 분묘 앞에 도착되었을 시에는 시간은 벌써 4시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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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00:00

총독에게 폭탄 던진 65세 강우규 의사

부끄러웠던 그날 저녁

 

지난 9월 19일 옛 서울 역 건물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축문화제’에 갔다가 역 광장에서 왈우(曰愚) 강우규(姜宇奎) 의사 동상을 처음 보았다.

 

 

세운지 오래되었겠지만 서울 갈 일이 자주 없는 나는 처음이었다.

마침 시간이 여유로워 천천히 동상을 감상한 뒤 설명문까지 차분히 읽었다.

기단부에 새겨진 설명문 사진이다.

 

 

기록문 중 생년(1859년)은 오기로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등 관련자료 다수에서는 1855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바로 잡아야할 일이다.

 

마침 외국인 여러 명이 동상 주변으로 와 ‘이게 누구 동상이지?’라는 표정으로 동상과 아래 설명문을 살폈다. 하지만 동상에는 한글 외에 아무 설명도 없었다.

실망하고 돌아서는 그들에게 미안했다. 외국어 설명문도 필요하다.

 

이 포스팅은 그날 이후 든 생각이다.

1855년생 강우규 의사께서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던 것은 1919년 9월 2일, 선생의 나이 65세 때였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60년 국민 평균 연령이 남자 52.1살, 여자 54.7살이었다.

그렇게 볼 때, 1919년 65살은 지금의 8~90과 다르지 않은 나이다.

1909년 안중근 의사 이등박문 저격 뒤부터 일경의 요인 경호가 심했지만, 강 의사께서 총독 사이토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워낙 연세드신 어르신이라 일경이 눈여겨 보지 않았서였다. 당시 65살은 그 정도였다.

 

그 연세에 적의 수괴를 치기 위해 폭탄을 던지다니,,

재산도 많았다는데 모두 조국의 독립과 민족교육을 위해 바치고, 나라가 망하자 만주와 러시아 벌판에서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위해 힘을 다했고, 이윽고 남은 몸까지 민족을 위해 던진 선생,,

재판에서도 "총독을 처단하고자 한 것은 정의와 인도에 입각하여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기록된 강우규 의사.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선생의 마지막(사형)은 서대문형무소였다.

1920년 11월 29일 오전 10시 30분, 만주에서 온 장남 중건이 마련해 준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떠났다.

한많았던 생을 끝내며 시를 남겼다. 이른바 사세시(辭世詩), 남은 동족들에게 밝힌 선생의 심경이다.

 

사세시(辭世詩)

斷頭臺上  猶在春風  (단두대상  유재춘풍)   /   단두대에 올라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有身無國  豈無感想  (유신무국  기무감상)   /   몸은 있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선생의 그 치열했던 삶을 생각하니 목구멍 저 아래서 뭐가 올컥 치밀어 올랐다.

꼭 필요했던 일이지만 나이 탓하며 피한 적이 더러 있었다.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만큼 강우규 선생의 기개가 더 높게 느껴진다.

그것은 안일을 위한 핑계였을 뿐이라는 깨우침을 선생께서 주셨다.

 

2019년 9월 19일 그날 저녁,

선생께서 폭탄을 든지 100년 되는 그날 그 저녁, 그 부끄러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관련된 이야기>

왈우 선생 의거 두 달이 지난 1919년 11월, 상해 임시정부 외교위원장 직함으로 몽양 여운형 선생이 일본 동경을 방문했다.

이 때 일본 정부가 마련한 환영행사에서 몽양이 당당하게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한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일이다.

방문기간 동안 몽양은 일본의 정치가와 고급관료들을 만났는데, 이 중에는 미즈노 렌타로(水野 錬太郎, 1868~1949) 내무대신도 있었다.

미즈노 렌타로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문부대신 역임한 일본의 정치가인데, 강우규 의사 폭탄 투척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현직 일본 내무대신이었다.

여운형이 그를 만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여운형 선생이 미즈노 렌타로에게 인사차 악수하면서 “경성 역에서 강우규의 폭탄에 얼마나 무서웠느냐”고 짓궂게 물었다.

그러자 미즈노가 얼굴이 시뻘게지고 고개를 어디로 돌릴지 몰라 당황하며 몸을 떨었다고 한다.

그날 강우규 의사 폭탄이 그만큼 무서웠다는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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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7 00:00

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구글과 애플

탈원전 정책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지난 9월 3일 창원시정연구원과 창원상공회의소는 ‘정부 에너지 정책 변화와 지역 경제 세미나’를 개최해 원전 산업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탈원전을 감행하는 나라가 없고 원전 산업 전성기에 탈원전하는 것은 자해행위라고 주장했다.

한 언론사 경제부기자는 보수 야당 의원의 말을 빌려 ‘탈원전 정책은 반민주적 반헌법적 작태’라는 표현을 자료집에 실었고, 언론은 이를 받아 크게 보도하였다.

탈원전 정책을 찬성하는 발표자는 한 사람도 없었고,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발표자도 없었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오직 경제적 어려움만 주장하였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경제 전문가도 아니었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자. 도대체 국민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재앙은 8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방사능 오염수 처리비용 200조원 때문에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일본을 우리는 비난한다. 그러면서 한편 원전을 더 짓게 해달라고 조르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안전의식이 있는 사람들인지, 경제를 아는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

원전을 계속 더 건설하면 재생에너지산업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어려워도 괜찮고 원전 산업계만 좋아지면 되는 것인가?

지진, 각종 비리 사건 등으로 원전을 항상 불안하게 바라보는 국민들의 불안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을 애써 무시하고 시간을 허비하다가 망한 코닥 필름을 잊었는가? 세계 원전의 절반을 건설한 웨스팅하우스의 몰락을 잊었는가?

재생에너지 산업을 미루게 되면 우리 산업 전체가 어려워진다.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선언한 세계적 기업(RE100)이 이제 192개가 되었다.

구글, 애플, BMW, 월마트, 이케아 등등 세계 상위 100대 기업은 모두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선언하였고 그 협력업체에게까지 요구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부터 신재생에너지로만 필요 전력을 충당한다>

 

이런 추세를 볼 때, 원전을 붙들고 있으면 전자제품의 일본 부품 사태보다 훨씬 큰 어려움을 맞이할 것이다.

그 때 후회하면 이미 늦다.

이미 일부 기업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용 때문에 계약을 파기한 사례가 발생하였다. 삼성, 엘지는 재생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나라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이야기도 들린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원전 대국이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고 재생에너지 100%를 선언한 이유는 안전성보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에 요구한다.

탈원전 정책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선택한 정책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로 인한 고용불안이나 기업의 어려움에 대하여 재정적,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폭염으로 인한 원전의 냉각기능 상실과 지진 등 자연재해에 의한 사고를 철저히 대비할 뿐 아니라 노후 원전의 조속한 폐쇄를 촉구한다.

또한 기업은 원전산업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재생에너지 산업이나 관련 산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더 이상 새로운 원전의 건설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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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00:00

2003년생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의 외침

어른들, 언제까지 돈타령만 할 건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2003년생 소녀 그레타 툰베리에 대한 이야깁니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9월 23일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연설자로 나섰습니다.

툰베리는 세계의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는 이 자리에 있어서 안 됩니다. 저는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학교에 돌아갔어야 합니다. 근데 당신들 모두는(어른들은) 희망을 말하면서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당신들은 속빈 말로 내 꿈과 유년시절을 빼앗아갔습니다.” 라고 질타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정상들을 향해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각국 정치 지도자들은 돈 타령과 영구적 경제성장 타령만 하고 있다. 언제까지 돈타령만 할텐가” 라며 꾸짖었습니다.

그러고는 “미래세대의 눈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우리 세대는 결코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매서운 비판을 쏟아 냈습니다.

툰베리는 연설 도중 떨리는 목소리로 격한 감정을 조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회의장을 깜짝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과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쏘아보기도 했습니다.

 

 

툰베리는 작년 8월 스톡홀름 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 대책 촉구 1인 시위를 벌이면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급기야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녀는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비행기 대신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툰베리의 이런 모습에 동조하는 전 세계 미래 세대들이 툰베리의 캠페인을 이어갔으며 이로 인해 유엔총회의 기후변화 대응이 글로벌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는 올해 대안 노벨상인 바른 생활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바른 생활상’은 1980년 스웨덴의 한 우표 수집가의 기금으로 만들어 졌으며, 지구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에 대안을 모색하는 실천가에게 주어집니다. 기존의 질서에 맞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주는 값진 상입니다.

지난 9월 25일 AP통신에 따르면 바른생활재단은 툰베리가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정치적 요구를 고무시킨 공로가 인정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재단은 또 툰베리는 모두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2003년생 스웨덴 한 소녀의 외침, 우리 어른들이 못 들은척해도 될까요? 우리 아들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긴데 말입니다.

툰베리의 연설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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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3 00:00

탈원전 정책은 유지되어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전 세계 추세, 새 원전 건설은 결코 안돼

 

요즘 창원 경제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어렵고 260 여개 원전 관련업체의 생존이 위태롭다고 한다.

창원시정연구원은 탈석탄.탈원전 등 정부 에너지 정책이 급변하면서 창원 소재 대기업 및 협력업체 경영여건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한 보수언론의 경제부장은 “문 정부의 탈원전정책은 반민주적, 반헌법적 작태”라고 자유한국당 이언주의원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세계적 추세와 역행하는 온갖 거짓뉴스를 보도한 보수언론을 소개하는 형태로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였다.

태양광은 가동기간이 30년 이지만 원전은 60년이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원자력공학과 출신으로 지금까지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아 온 어느 교수는 탈원전은 ‘원자력산업이 전성기에 있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하면 안 될 자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장면>

 

탈원전이 자해라면 대통령은 왜?

 

9월 5일자 보도에 두산중공업이 영국원전에 2천억 원 부품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탈원전 국가는 원전 수출도 못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계약에 성공했을까? 미국이나 일본은 원전을 짓지 않지만 수출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전체 매출 15조 원 중 원전 부문은 1조 5천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탈원전 추세 때문에 수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두산은 원전설비만 제조하는 회사가 아니다. 바닷물 담수사업, 가스, 석탄발전 설비, 풍력산업, 건설기계, 엔진 등 많은 사업부가 있다. 2018년 매출은 15조원에 이르고 2017년보다 6.5% 증가하였고 2019년 3월 현재 동기 대비 매출액이 7.1% 증가하여 금년 매출은 1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주가 하락은 전 세계 원전 회사와 같은 현상이다.

세계 원전의 절반이상을 건설한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망했다. 프랑스 원전사 아레바도 망했고 일본 도시바 원전사업도 망했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기업의 생존이 위태롭다고 하는데 매출은 어떻게 증가하는가. 두산중공업은 원전 전문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종전과 변함이 없다. 2084년이 되어야 탈원전국가가 된다. 65년 이후의 일이다.

계획 중이던 원전 5기 포기한 것이 탈원전의 전부이다. 그런데 탈원전 정책이 급변적이라니 할 말이 없다.

원전업계가 어려운 이유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세계의 탈원전 때문이다.

원전산업이 전성기라는 말은 완전한 거짓 뉴스이다. 30년 전에 전 세계의 원전은 451기였다. 2019년 9월 8일 현재 450기이다. 30년 전에 보다 오히려 원전이 줄어 들었는데 전성기라니 이해할 수 없다.

원전은 탄소배출을 석탄보다 10분의 1수준인 것은 맞다. 그러나 기후변화당사국총회는 원전을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채택하지 않는다. 경제성,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전의 종주국 미국과 세계 2위 원전 대국 프랑스가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데 어떻게 전성기인가.

일본의 재앙을 모르나. 오염수 한 가지 처리하는데 200조원이 든다는 데 원전이 전성기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

원전은 60년을 가동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폐쇄후 30년-40년 원전 부지는 못 쓰는 땅이 되는 것은 계산 하지 않는다.

 

탈원전 정책이 반헌법적.반민주적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핵심 공약으로 탈원전을 내세워 당선되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는데 왜 반민주적인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이다.

탈원전 하지 않는 것이 반헌법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도지사, 유승민 의원 모두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한 바 있다.

 

산업은 흥망성쇠가 있는 법이다.

과거 봉제 산업이 한국을 먹여 살렸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철강, 전자, 자동차 산업이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경제성, 안전성이 없는 원전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그 자리에 태양광, 풍력산업이 들어서고 있다.

전 세계 재생에너지 신규 시장규모는 500조원이나 원전 신규산업은 50조원도 되지 못한다.

미국의 대표기업이면서 종업원 40만 명, 140년 역사의 코닥이 이러한 산업의 변화를 읽지 못하여 망했다. 반대로 독일의 지멘스는 원전산업을 접자 주가가 오르고 성장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한 탈원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적 어려움이나 노동자의 일자리 불안이 있다면 당연히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원전을 다시 건설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경제가 중요하지만 국민의 안전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이 글은 2019년 9월 11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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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산인 2019.09.24 17: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원전은 더 이상 안됩니다. 미래 세대도 생각해야합니다.

2019.09.16 00:00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기후위기, 시간이 없습니다"

 

"기후위기, 시간이 없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가 2014년 9월 24일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담에 모인 세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지금 기후변화문제는 인류의 존재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음은 그의 연설문 요약입니다.

우리는 매주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통해 기후변화의 위기에 이미 봉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가뭄은 더 심해지고, 바다는 더 따뜻해지고 산성화되고 있으며 메탄 가스는 바닥에서 계속 증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극심한 날씨 현상과 높은 온도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서남극과 아이슬란드의 빙하는 이전 연구에서 예측했던 것보다 수십 년 빠른 속도로,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빠른 속도로 녹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과장도 아니고 빈말도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과학계도 인정하고, 산업체와 정부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미국 국방성도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 해군 태평양 총독인 새뮤얼 락크리어도 기후변화야말로 우리 보안에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했습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역사 어느 때보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참으로 어려운 사안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순간, 새로운 역사를 만들든지 아니면 비난을 받든지 각오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전구를 바꾼다든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즉 개인의 행동으로 해결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었다는 말입니다.

이젠 산업계와 세계의 모든 정부가 대단위의 결정적인 행동을 취해야만 할 때입니다.

저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과학자여야 할 이유도 없지요.

그러나 세계 과학계는 이미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도 했습니다. 모두 협력해서 행동하지 않으면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금이 바로 행동을 개시할 순간입니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재생에너지 체제가 실제 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로운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기존의 기술을 이용해 생산하는 청정 재생에너지로 2050년이 되면 지구의 수요를 100% 채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개발에 따라 수백만의 새로운 직업이 창출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사안은 논쟁의 가치가 없습니다. 왜냐면 인류의 문제니까요.

깨끗한 물과 공기 그리고 존재 가능한 기후는 인간에게 빼앗을 수 없는 권리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 해결에 정치적인 갈등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도덕적 책무입니다. 물론 매우 벅찬 임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요.

존경하는 UN 대표님들, 또 세계 지도자 여러분,

인류 존재에 가장 중대한 사안에 대해 여려분이 해답을 제시할 때입니다. 바로 지금이 용기와 정직으로 이 문제를 직면해야 할 때입니다.

 

디카프리오 연설 5년이 지난 2019년 9월, 16세 스웨덴 여학생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디카프리오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가기를 포기하고 기후위기를 알리는 일에 나섰습니다. 유엔에서, 유럽의회에서, 프랑스 의회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연설을 했습니다.

요트를 타고 보름간 항해하여 기후정상회담에 참석하러 뉴욕에 갔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세계 100여개국 150만 청소년들이 지구의 미래를 위하여 길거리로 나섰는데 어른들도 동참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2018. 12,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연설하는 그레타 툰베리>

 

그레타 툰베리는 “60년후 우리들의 미래 세대가 지금 이 순간 뭔가 할 수 있었을 때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이냐“고 외칩니다.

이런 활동들이 높게 평가되어 2019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추천되었습니다.

 

경남 창원에서는 9월 21일 오후 5시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청소년과 어른들이 함께 모여 외치기로 하였습니다.

“기후위기 시간이 없습니다”

자녀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합니다.

 

박종권 / 경남탈핵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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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9 00:00

방사능 올림픽은 절대로 안된다

 

성명서 / 탈핵경남시민행동

 

 

 

 

그린피스의 원자력 분야 전문가인 ‘숀 버니’ 그린피스 수석은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정부는 방사능 오염수 110만 톤을 바다로 방류할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한국이 가장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후 8년 5개월이 된 지금도 피해 복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방사능 오염수는 매일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오염수 처리업체가 제시한 처리비용은 200조원이다. 따라서 일본은 방사능 오염수 처리를 결국 포기하고 바다에 방류할 가능성이 크다.

후쿠시마에서 흘러나온 방사능 물질로 태평양 일대가 오염되고 예상(20-30년)보다 훨씬 빨리 태평양을 돌아 이미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보도가 있다. 그린피스의 주장처럼 한국의 바다 역시 방사능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아베정권은 방사능 오염수 바다 방출 계획을 철회하고 우리나라와 중국 등 인접 국가들과 충분히 협의하여 바다오염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를 촉구한다.

또 후쿠시마 지역의 토양과 하천은 방사능 수치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언론보도가 수차례 있었다.

선수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조치가 완벽하게 이루지지 못하면 2020년 도쿄 올림픽은 특별 재난을 이유로 하여 연기하거나 개최지를 변경할 것을 촉구한다.

 

후쿠시마 재앙은 이처럼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아베정부는 핵발전소의 재가동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를 바란다.

아베정권은 핵발전 사고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고 중국, 일본, 한국이 함께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기를 축구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은 개성의 발전, 신체의 균형, 건강의 유지라는 목적이 있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땅에서 음식물을 섭취하고 운동경기를 한다는 것은 이 목적에 결코 부합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CBS, 8.5일자)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의견이 68.9%로 나타났다.

선수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안전조치가 없으면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핵 시민단체 ‘비욘드 뉴클리어’는 8월 7일 일본 시민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후쿠시마 재앙이 극복되지 않았음에도 아베정부가 정치적 목적에 올림픽을 이용한다는 점을 비난했다.

 

아베는 정권 유지에 매몰되어 도덕성을 이미 상실했다.

아베는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커녕 무역보복으로 대응하는 졸렬함을 보여줬다.

탈원전을 염원하는 탈핵경남시민행동 회원들은 한마음으로 아베정권을 규탄하고 일본제품 불매, 올림픽 보이콧 동참, 방사능 바다 방출 제지 등 반 아베 규탄행동에 나설 것이다.

 

2019.8.19.

탈핵경남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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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00:00

토지주택박물관 관람과 의령 자굴산 산행

이 포스팅은 학봉산악회 회원들이 진주혁신도시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 내 토지주택박물관과 의령 자굴산을 다녀온 기록입니다. 글은 회원인 손상락 박사가 썼습니다.

- 일시 ; 2019년 5월 31일∼6월 1일(금, 토)

 

5월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로운 한 달을 맞이하는 지난 5월 31일(금)과 6월 1일에 우리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100산 탐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박 2일에 걸쳐 진주 혁신도시에 본사의 둥지를 틀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토지주택박물관 견학과 자굴산 산행을 기획했다.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손흥민이 강원도 산골에서 2002년 월드컵 개막전을 보면서 월드스타를 꿈꾸던 오월의 마지막 날에 이루어지는 1일차에는 토지주택박물관을 견학하고, 날이 새어 새로운 달이 되면 의령 자굴산을 오르는 일정이었다.

1일차인 5월 31일 금요일 오후 3시,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산 문화예술의 전당인 3.15아트센터 주차장에 집결한 우리 일행은 메트로팀과 비메트로팀으로 차량 2대에 분승하여(김흥수 회원은 개별 이동) 진주 혁신도시 토지주택박물관으로 출발하였다. 회원 대부분이 도시건축분야 전문가라 택한 목적지였다. 

 

 

저성장시대에 도시정책의 대안적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도시재생과 관련하여 향후 쇠퇴되고 지방도시의 소멸위기 마저 걱정해야 하는 오늘날, 지역의 도시재생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사전에 공문을 통해 관람 승인을 요청함과 동시에 안내와 해설까지 사전에 부탁해서 이루어졌다.

항상 이동 차량을 후원해주시는 분의 애마인 아우디와 넥서스로 남해고속도로를 한 시간 가량 달려 진주 혁신도시 한국토지주택공사 주차장에 도착한 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자랑하는 개관 20주년을 맞은 토지주택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수준 높은 학예사로부터 주거문화의 시대적 흐름을 관통하는 고급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움집에서부터 한옥 그리고 “잘 살아보세”하며 고도성장기의 산업화‧도시화 시대에 집(아파트)을 짓고 도시를 만들어온 주택‧주거문화와 도시의 발전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침 박물관에서는 2017년의 토지주택박물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전(2017. 12. 11~)을 하고 있었다. “사랑과 가족”을 주제로, 이름하여 “사랑, 옛 문서에 담긴 사랑이야기”였다. 옛 문서에 남겨진 가족·결혼·부부생활·돈·이별에 대한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스토리를 엮어가고 있었다.

 

 

100여 년 전 토지문서에 나타난 법순과 푼수의 첫사랑 이야기, 역사 속 선조들의 결혼과 부부생활 이야기, 어긋난 사랑과 첩·치정·돈에 대한 이야기, 자매·상속·증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신을 직접 종으로 파는 아들의 부모공경 이야기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클라이막스는 1998년 안동시 장성동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업지구에서 발굴해 전국민의 눈물을 흘리게한 원이 엄마의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두고 먼저 떠난 고성이씨 이응태의 아내가 쓴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원이 아빠에게 보내는 애절한 편지”다.

이응태 아내의 편지 내용을 잠시 보면,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했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등등. 400여 년전 당시의 부부애와 가정생활, 그리고 남녀 동등관계 등에 대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았다.

 

이렇게 박물관의 주택·토지에 관한 전시와 특별전 관람 등 1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낸 후 6시경 내일의 산행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진주의 먹거리를 탐방할 수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진주 원도심에 자리한 이 식당은 번화가가 아닌 뒤안길에 자리한 허름한 곳이었다. 우리 일행이 조금 일찍 도착해서인지 한산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진주에서 맛있고 특색 있는 소문난 식당이라는 말대로 손님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돼지고기 불고기인 것 같은데, 육수를 먼저 끓인 후 돼지고기 주물럭을 넣어 한참 뒤집기를 하니 특색 있는 먹음직스러운 주물럭 두루치기가 완성되었다.

시장기에다 특색 있는 두루치기에 젓가락질과 술잔 기울이기를 바쁘게 반복하니 모두들 음식 맛에 대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주 메뉴를 다 먹은 후 나오는 디저트가 특이했다. 바로 그 주인공이 “토란 들깨국”라는 것이었는데, 특이하고 맛이 있어 모두들 더 먹고 싶었는데, 주인장께서 국이 얼마 없다시면서 김용운 회장님만 한 그릇 더 드렸다.

진주 최고의 두루치기에 상추 쌈과 소주로 민생고를 해결한 후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야! 잘 먹었다. 특색 있네. 다음에 다시 한 번 와야겠다”며 만족감과 포만감을 품고 식당을 나섰다. 우리 말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했는데, 아니 허름하지만 소문난 식당 먹을 것이 많았다.

"맞어, 분위기 있고 품위 있는 곳은 아니더라도 여행자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으로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특색 있는 먹거리가 필요해. 그것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려니"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절묘한 식당의 선택이었다.

 

7시 15분경 식당을 나서 진주성 야경을 일견하기 위해 진주성으로 갔다. 진주에 와서 진주성을 밟지 않으면 진주에 왔다 할 수 없기에 말이다. 시간 덕택에 입장료는 무료였다.

성내 산책 중 우리는 박물관 우측의 삼층석탑(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을 만났다. 안내판을 보니 통일신라시대 석탑인 국보 제105호였다. 아름다웠다.

 

 

산청군 소재 범허사라 하는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41년 대구의 일본인 골동품상이 구입해서 공장에 세워놓았던 것을 1947년 경복궁으로 이전했다가 긴 타향살이를 마감하고 2017년 2월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석탑을 살펴보던 우리 일행은 “원형 그대로 이다, 아니다, 복원을 위해 손을 대었다”는 등 분분한 이야기가 오가다가, 주말이면 가끔 지역 내 이곳저곳의 왜성이나 성곽 등의 발굴현장을 탐방하기도 해서 문화재에 대해 어설프지 않는 식견을 갖고 있는 신삼호 회원의 주장대로 원형 그대로가 아닌 일부 손을 댄 것이 맞았다. 사물을 보는 눈은 경험에서 축적되는 것이 판명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진주성을 한 바퀴 돌면서 산책을 하는데, 진주의 상징이요 문화재인 진주성의 지척 어디에선가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신나는 유행가가 울려 퍼졌다. 진주성 가까이 있는,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진주시가 설치를 했다는 분수광장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순간 “갓 쓰고 두루막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든 화려하거나 멋지지는 않더라도 조화가 필요하려니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화재와 그 주변에 대한 보다 세심한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진주성벽에서 내려다 본 남강과 의암>

 

이렇게 진주성을 한 바퀴 산책하고 8시 30분경 숙소에 도착했다.

진짜 시작은 여기서 부터였다. 웃음 섞인 이야기들과 노래가 이어졌다. 어디선가 “아모르 파티”가 나오자 인문학의 대가께서 그 의미와 해석(運命愛: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이 따랐고 그럴수록 건배 횟수도 늘어갔다. 이윽고 명창 김용운 회장님의 무반주 노래가 나오자 모두들 다시 한 번 그 실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흥을 돋우는 모임의 조미료처럼, 노래에 관한 이야기가 한참 동안 오가다가 노래의 감정과 느낌이 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내용인즉,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장사익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자지러지는 느낌이 전해오는 장윤정 스타일, 비음이 섞여 흐르는 이미자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꺾는 맛이 나는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등등 각자 흥을 느끼고 감상하는 스타일의 다양성을 재발견했다.

 

 

노래 말에 관한 한 대미를 장식한 히트송은 유행가가 아닌 동요였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어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였다. 노랫말이 주는 어느 회원님의 재해석에 또 다른 시대상을 느끼게 했고, 이는 당시의 가족사와도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 회원도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이번에는 산악회 사진전 실행 여부로 화두가 옮겨졌다. 지난 4월 일본 홋가이도 해외원정 시 논의된 바 있는 산악회 차원의 등산·여행과 관련 사진전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붙었다.

왜 하느냐에서부터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회원, 일반 대중이 많이 찾는 장소에 게시하는 것은 핀잔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튀어나왔다. “개떡 같은 사진이라도 찰떡같이 기획할 수 있다”는 강한 의욕을 피력하는 회원, 사진전 시행을 염두에 두고 이미 출품사진을 확보하고 있다는 회원 등등. '정신없는 산악회'인듯하면서도 실행 여부를 둘러싼 의견에 다양성과 균형성을 재발견했다. 하지만 이것뿐, 실행 여부에 대한 결론은 끝까지 나지 않았다.

밤은 깊어 시계침이 새로운 달 6월 초하루를 가리킬 즈음, 원로님과 회장님은 큰방으로 가서 2일차 산행을 위한 체력 비축용 잠을 청하시고, 다른 회원들은 사진전과 기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더 주고받았다.

하지만 술에 장사 없는 법. 시간이 계속 흐르자 한분 한분씩 체력 소진으로 각 방으로 가서 베개를 벗 삼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새벽녘까지 거실에서는 여전히 인문학과 인생을 논하며 잠꼬대 같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몇분 회원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잠꼬대 같은 소리 중 백미는 “이불 속에서도 와 이리 손이 차노.?” 였다.

 

 

10주년 기념 산행의 날이 밝았다. 7시 출발 예정이었지만 지난 밤 무리 탓에 1시간 가량 지체된 기상이었다. 게다가 거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 혼돈 속에서도 질서와 균형·조화를 찾아가는 산악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후 다시 질서를 찾기 시작하면서 언제 전쟁터와 같은 거실이었는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말끔히 정리되었다.

9시경 숙소에서 나와 인근 콩나물국밥집에서 속풀이 식사를 한 후 우리는 두 대의 차량으로 이동해 9시 40분경 자굴산 산행 출발지 '쇠목재'에 도착했다.

 

 

어제 밤 무리 탓에 힘든 몸을 끌고 시작된 산행이었다.

15분가량 산을 오르니 기와를 올린 꽤 모양새 있는 정자를 만났다. 반가웠다. 전날 밤의 취기와 무리로 체력이 소진된 탓에 가쁜 숨을 가다듬기 위해 배낭을 풀고 잠시 허리를 내려 쉬었다.

둘러보니 당호가 없는 정자였다. 우리 산악회가 마산 무학산 둘레길에 있는 정자에 산악회 창설 10주년 기념으로 '취풍정'이라는 현판을 설치한 것이 문득 생각나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기도 했다.

자굴산 중턱 쯤에 이르러 산행루트의 갈래 길을 마주쳤다. 백산대장은 2일차 산행루트를 미리 마음에 그리고 있었을텐데, 가던 길을 멈추고 어디로 갈 건가를 두고 이야기했다. 다른 때와 달리 회원들의 눈빛에 전날 밤 음주로 체력이 소진되어 회복이 안 되었으니 짧고 평이한 코스(둘레길)로 가자는 기색이 역력했다.

통상 산행 속도는 시간당 2∼2.5킬로를 이동하는데, 쇠목재(베이스, 해발고도 650m)에서 자굴산 정상(897m)까지 약 1.3킬로를 전날 밤의 여파로 1시간 20분 걸려 11시경에 정상을 정복하는 거북이 산행이었다.

 

기진맥진하여 정신없이 산행을 했던 터라 정상에서 10주년 기념 산행의 회장님 기념사도 잊은 채 산행을 하다가 하산 도중 둘레길 중턱에서 회장님의 기념사를 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2시 10분경 하산을 완료, 출발지 쇠목재에 도착해 의령 읍내로 가니 12시 50분경이었다. 유명한 종로식당에서 쇠고기 수육과 국밥, 그리고 전통주로 속풀이를 하면서 배를 채운 후 회비 1만원 거출해 그 유명한 의령 망개떡을 구입하여 회장님 하사품으로 받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 관람과 자굴산 산행이라는, 의미 있고 스토리 있고 진한 추억까지 가슴에 잔뜩 남겨준 학봉산악회 10주년 기념 100산 탐방 1박 2일의 산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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