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9.04.08 00:00

아이 먼저 생각하자 - GMO에 대하여

박순희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엄마이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아토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토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의 건강을 위해 생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였다. 조금은 비싸지만 하나뿐인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기꺼이 가입하였고 열심히 생협 물품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생협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통하여 GMO(유전자조작식품)식품을 알게 되었고 GMO가 암을 유발할 뿐 아니라 자폐증, 아토피 등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급식이 걱정되었다.

알아보니 학교급식에서는 수많은 GMO 식자재가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서울, 부산, 광주, 수원, 순천 등등 20 여 곳에서는 이미 학교급식에서 GMO를 퇴출하였고 경남은 여전히 GMO 재료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내년부터 경남의 학교급식에서도 GMO를 퇴출하겠다고 공약한 도지사, 교육감이 당선되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교육청에 전화를 하였다.

내년부터는 경남의 학교급식에서 GMO 재료를 쓰지 않나요?”

아니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다른 지역에서는 식용유, 간장, 된장, 고추장같은 양념류는 NON-GMO 재료를 쓴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된장이나 식용유 한 가지 정도만 우선 실시해 볼려고 합니다.”

교육감님이 공약하신 것 아닌가요?”

공약이라고 모두 이행할 수는 없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시행하던데 왜 우리는 못하죠?”

물량 공급 여부를 알수 없고요, NON-GMO 여부도 확인이 어렵습니다.”

물량 공급이 안된다는 건가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같은 나라에서 우리 경남만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우리 아이들 생각해서 어렵더라도 꼭 좀 시행해 주세요

“GMO가 인체에 해롭다는 증거가 아직 없습니다.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안전하다는 증거도 없대요. 그래서 많은 지역에서 GMO를 배제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아이는 겨우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아토피도 있어요. 불안합니다.”

“..........”

그렇다. 박순희씨 말처럼 우리 아이 생각하면 못할 일이 무엇인가.

공급물량이 모자라면 다른 지역에서라도 구해오고, GMO 여부는 어떻게 해서라도 확인하면 된다.

우리 아이 생각해서 어렵더라도 반드시 내년부터 6개 품목은 시행해야.<<<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박종권

 

 

 

Trackback 0 Comment 0
2019.04.01 00:00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0 - 재생에너지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이 글은 2017년 10월 12일 포스팅한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의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9편을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기후조건, 에너지 자원, 산업구조, 원전의 발전 비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등이 아주 닮았다.

일본은 1965년 최초의 원전 '도카이원전 1호기'를 가동한 이래 60년 동안 모두 60기를 건설했다. 세계 3위의 원전 강국이었다. 우리나라는 24, 세계 5위다.

일본의 현재 에너지 상황을 좀 살펴보자.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전에는 54, 정확하게 전력부담률이 우리와 같은 30%였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하자 일본정부는 54기 모든 원전을 동시에 정지시켰다. 순환 단전 등 특단의 절약 정책으로 정전사태를 막았다. 우리와 같이 경제급전의 원칙으로 평상시 가동하지 않던 가스발전을 최대한 가동해 원전 없는 4년을 보냈다.

2015년 센다이 원전 1호기를 격렬한 찬반 논쟁 끝에 재가동했다.

2018년 말 재가동 원전은 9기까지 늘어났다. 일본의 2017년 원전 전력부담률은 3.6%에 불과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 통계에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이 40기로 되어 있으나 8년 이상 장기 중단 중인 원전이 무려 29기에 이른다.

장기간 가동하지 많은 원전은 재가동하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2기 정도만 재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11기가 가동될 것이다. 54기에서 8년 만에 11기로 축소되는 것이다.

일본에는 현재 2기가 건설 중인데 '오마1호기'2005년 공사를 시작했고 또 '시마네3호기'2009년 시작해 98% 진척도를 보이고 있으나 지방자치단체 반대가 심해 가동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1996'가시와자키 7호기' 가동 이후 23년 동안 단 5기 원전만이 추가로 가동됐고 '도마리 3호기' 신규 가동 이후(2009) 10년 동안 단 한 기의 신규 가동이 없었다.

후쿠시마 사고가 없었더라도 이미 원전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원전회사는 어떠한가.

세계 최대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한 도시바는 영국 원전 건설에서도 손을 떼기로 했고 미국 원전 건설에서도 엄청난 손실을 보아 140년 역사를 뒤로하고 몰락했다.

히타치는 영국 원전 사업에서 3조 원 손실을 보고 포기했고 미쓰비시는 터키 원전사업을 포기했다. 10년 전에 원전 사업을 버린 '지멘스'는 살아남았고 원전에 올인한 '아레바'는 망했다. 일본 원전회사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일본의 전력소비는 어떠한가.

'Enerdata' 통계에 의하면 2010년 일본의 전력소비량은 총 1037테라와트, 2011979, 2016950, 2017년에는 1019 테라와트이다.

사고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정체 또는 감소 추세이다. 가스발전을 늘렸고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렸기 때문에 원전이 없었음에도 전력소비는 여전하다. 촛불 켜고 사는 사람은 없다.

201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2%였으나 2017년에는 18%로 늘었다. 한국은 같은 기간 1.8%에서 3.4%로 늘었다.

창원에 있는 원전 관련 회사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 어려움은 10년 전부터 발생했다.

10년 동안 단 한 건 수출도 성공하지 못했다. 세계적인 산업의 변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미국, 일본, 유럽에서 외면받는 산업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잊지 말자. 세계 굴지의 회사들도 변화의 물결을 피해 가지 못해 스러지고 있다.

 

 

원전 해체 시장과 재생에너지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하고 정부는 토목 위주의 반짝 정책에서 4차 산업 쪽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Trackback 0 Comment 0
2019.03.25 00:00

YMCA 연원을 찾다 - 2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 국제담당국장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라는 분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친절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약속한대로 36일 오전 1115분 세인트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 정면입구 계단에서 만났다.

나는 e메일을 통해 약속한 대로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나를 확인한 캔 국장이 다가오면서 이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은 시티 오브 런던의 러드게이트 힐에 있는 높이 108m의 성공회 성당으로 런던 주교좌가 자리 잡고 있다.

중세 시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런던을 대표하는 성당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왕족과 함께 해온 곳이라면 세인트 폴 대성당은 오랜 시간 서민들과 함께 호흡해온 곳이다.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완전히 불타 버렸지만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Christoper Wren)35년을 투자해 재건축했다. 둥근 돔이 있는 현재의 모습은 그때 재건된 모습 그대로다.

이는 영국 노르만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높이가 110m에 이른다.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돔이며 성 베드로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과 더불어 세계 3대 성당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훗날 워싱턴 국회 의사당이나 파리의 판테온 건축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1965년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이 거행된 장소로 유명하다.

성당 내부는 매우 호화로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벽화는 모자이크로 되어 있고, 천장화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성당 내부에 들어선 사람들은 그 웅장한 규모와 정교한 장식에 눈길을 빼앗긴다. 성당 내부 계단을 통해 돔까지 올라갈 수 있다. 스톤 갤러리에 올라서면 런던 시내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지하 납골당에는 이 성당의 설계자인 크리스토퍼 렌 등 영국을 빛낸 유명인사 200여 명의 묘가 있다.

이 대성당은 런던을 방문한 여행객들의 대부분 들르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1666년 화재 전후의 St. Paul’s Cathedral>

 

Ken Montgomery 국장은 먼저 조지 윌리암스가 점원이었던 Hitchcock & Rogers상회 장소로 나를 안내했다.

지금은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 옛 모습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이미 옛 Hitchcock & Rogers 상회는 흔적 조차 없어졌고, 그 자리에는 도시개발로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상상해보면 당시에 가장 번화한 요지였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였다.

성당 앞에서 보면 전면 왼쪽 모퉁이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이었다. 이 새 건물의 전면 오른쪽 모퉁이 쯤에 Hitchcock & Rogers 상회가 있었다는데 지금 모습으로는 도저히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건물의 일층 안쪽 벽에 크지 않은 동판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오래동안 보고 싶었던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조지 윌리암스가 근무했던 당시의 Hitchcock & Rogers 상회 건물>

 

설명문 / 1844년 George Williams는 런던에서 일하는 열정적인 11명의 청년들과 함께 그가 일하면서 살던 이곳의 양복점에 YMCA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이곳에서 YMCA는 처음부터 세상을 아우르도록 성장했습니다

 

이어서 캔 국장은 조지 윌리암스가 영면해있는 세인트폴 대성당 지하로 나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이 위대한 건축물을 설계한 크리스토퍼 렌, 영국이 자랑하는 해군제독 호레이쇼 넬슨, 웰링턴 공작 등이 잠들어 있다.

방문한 날 마침 묘소 공간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고 있었지만 조지 윌리암스의 묘는 입구 첫 위치여서 경계 밖에서도 잘 볼 수 있었다.

바닥에 부착된 브론즈 표식판에는 조지 윌리암스의 이름과 생몰 기록이 품위있게 양각되어 있었다.

 

 

그를 기념하는석상 아래에는

<나의 마지막 유산이자 소중한 것은 YMCA입니다. 나는 많은 나라의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YMCA를 계속 이어가고 확장하도록 그들에게 YMCA를 맡깁니다.>

라는 영문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는 내가 평생 활동해온 YMCA를 탄생시킨 분 앞에서 감사와 존경의 예를 갖추었다.

 

성당나와 캔 국장은 캡을 타고 두 장소를 더 안내해주었다.

초기 시민강좌를 하며 런던시민들에게 YMCA를 크게 부각시켜 YMCA의 성지(SHRINE)라고도 부르는 EXETER HALL이 있던 장소와 조지 윌리암스가 생애 마지막 26년을 살았던 장소(No.13 RUSSELL SQUARE)였다.

<EXETER HALL이 있었던 당시 건물 /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있다>

 

<No.13 RUSSELL SQUARE 표지판 앞에서 Ken Montgomery와 함께>

 

이미 당시의 건물은 없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었지만 No.13 RUSSELL SQUARE에는 기념표지판이 붙어져 있어서 YMCA의 위상과 조지 윌리암스의 역사적 평가를 실감했다.

Darlington에 산다는 캔 몽고메리 국장은 이 안내를 위해 3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고마운 안내였다.

 

평생 YMCA 운동을 해오면서, 조지 윌리암스가 YMCA를 탄생시켰던 히치콕 앤 로저스(Hitchcock & Rogers)상회와 YMCA 탄생 유적들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소망을 이루었다. 조지 윌리암스의 묘소까지 참배한 행운은 기대하지 않았던 덤이었다.

내게 이 행운을 누릴 수 있게 도와준 이는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을 지낸 후 현재 홍콩에 있는 아시아태평양YMCA연맹 남부원 사무총장이다.<<<

 

 

 

 

Trackback 0 Comment 0
2019.03.18 00:00

YMCA 연원을 찾다 - 1

오랫동안 회원으로 활동한 YMCA의 연원을 찾아보았다.

얼마 전, 업무 차 런던에 하루 머물렀는데 마침 약속이 오후로 잡혀 오전 시간을 이용했다.

나를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의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 국제담당국장이었다.

 

YMCA184466일 런던의 한 상점에서 일하던 조지 윌리암스를 비롯한 12명의 청년들에 의해 탄생되었다.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 1821~1905)>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세계를 지배했고, 수도 런던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구 200만에 도달한 세계 최고 최대의 도시였다.

자신들이 이루어낸 과학기술의 발전이 새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는 확신에 차있던 꿈의 도시였다.

그런 만큼 어두움의 그림자도 깊었다.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은 무제한적 투자와 건설, 끝없는 생산과 착취가 수반되었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극심했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기독교는 이런 현실을 외면했다. 교회와 교파는 자신들의 이익을 쫓아 분열했고 종교적 소명도 자기중심적으로 분출했다.

초기 YMCA가 쉽게 전파된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의 요청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YMCA를 창설한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 1821~1905)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매우 성실하고 사려 깊은 청년이었다.

그는 1821년 영국 남부의 애쉬웨이(Ashway)에서 성공적인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네 살이 되던 1835년 글로인 스쿨(Gloyn School)을 졸업하고 열다섯에 브리지 워터(Bridge water)의 홈즈 직조공장 견습공으로 취직했다.

조지 윌리암스는 그곳에서 뜻이 맞는 친구들을 규합, 작은 기도 모임 주관하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된 1841,

윌리암스는 런던의 대형 포목점인 히치콕 앤 로저스(Hitchcock & Rogers) 상회에 조수 점원으로 취직을 하는데, 그것이 그의 생애를 결정 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조지 윌리암스가 일했던 Hitchcock & Rogers상회 / 지금은 철거 되고 없다>

 

그 시기에 그가 남긴 기록이다.

“1841년 하느님의 섭리로 나는 런던에 왔다. 그리고 세인트 폴즈 처치야드(St. Paul’s Churchyard)의 어느 상점에 직장을 얻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저녁시간의 대부분은 멋대로 분망하게 보냈으며, 여기저기 오락장엘 드나들었다. 저들의 말투, 부도덕함, 술타령 등 어느 것 하나 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가 그 상점에 취직했을 때 130~150명의 조수점원이 있었다. ……. 나는 5~6명의 점원들과 한 방을 썼는데……

 

<St. Paul’s Churchyard의 현재 모습>

 

조지 윌리암스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회의와 문제의식을 가진 청년들과 은밀한 기도모임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키웠다.

그러던 중 1843년 말 어느 날, 모임을 함께 갖던 조지 윌리암스와 친구들은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되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임을 조직화해서 확산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YMCA (The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 기독교 청년회)는 그렇게 시작한 열두 명의 청년에 의해 탄생되었다. 184466일 조지 월리암스의 하숙방에서였다.

창설 초기의 활동은 주로 성경연구와 기도회였지만 세력이 점점 확장되면서 인문, 자연, 종교에 관한 공개강연회와 출판, 도서실 설치 등 다양화되어갔다.

처음에는 10여 개 점포의 젊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활동했으나 참여인원이 많아지면서 일반 청년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었다.

창립 후 회원들이 급증했다. 창설 4년 뒤인 1848년에 런던 회원이 100여명으로 늘어났으며 지방 회원도 520명 가입했다.

 

175년 전 런던 세인트폴 처치 야드의 조그만 방에서 시작된 YMCA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시민조직체가 되었다.

전 세계 123개국에 7,139YMCA, 800여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0 - 재생에너지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0) 2019.04.01
YMCA 연원을 찾다 - 2  (0) 2019.03.25
YMCA 연원을 찾다 - 1  (0) 2019.03.18
무등산 산행기-3  (0) 2019.03.11
무등산 산행기-2  (0) 2019.03.04
무등산 산행기-1  (0) 2019.02.25
Trackback 0 Comment 0
2019.03.11 00:00

무등산 산행기-3

무등산 산행기-3

 

장불재를 내려다보며 하산하다.

장불재는 무학산 서마지기보다 훨씬 더 평평하고 너르다. 마산 같으면 만날재 같은 역할을 했다. 한쪽에는 방송중계탑들이 모여 있다.

 

하산길은 일방적인 내리막이 아니다. 중봉으로 가는 넓고 평평한 임도를 마다하고 북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간다.

광주천 발원지 표말이 나온다. 정말 소소한 웅덩이, 물은 있지만 마실 수는 없다.

좀 더 내려가니 갈림길이다. 등산객들 대다수는 바로 직진 하산길을 가는데 우리는 중봉 방향 쪽 오솔길로 들어선다.

 

 

능선들의 중간을 가로질러 가다보니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한다. 그러나 정말 이 코스로 잘 왔다. 무등산을 국립공원으로 만드는 데 산 위의 주상절리와 함께 중요한 요인이 된 엄청난 규모의 너덜을 두 개나 건넜다.

앞서 가는 일행들이 일렬로 너덜강(경상도식 이름)을 건너는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서 본 저승의 어느 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무슨 고찰의 터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가다보니 작은 갈림길이 나온다. 먼저 도착한 허 원로, 한 등산객에게서 막걸리를 얻어 마시고 있다.

혼자 마시기 미안한지 권하는 잔을 모두들 마다하다. 산행 중에서는 술 안 마시는 게 좋다고 말한 게 당신인 것 같은데...

산악회 이름을 영자(영혼이 자유로운,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산악회로 바꾸자는 실없는 얘기도 하며, 무등산이 멋지다며 칭찬도 하며, 한참을 왔나보다 하는데 갑자기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씩씩하게 큰 길을 따라 얼마 안가서 좌측으로 상당히 가파르게 꺾이는 곳에 멀리 무등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사각정이 하나 있다.

잠깐 휴식을 취한 정자의 이름은 만치정(晩峙亭; 나뭇꾼들이 저녁 무렵 풀피리 불며 쉬어가는 언덕을 의미하며 늦재의 한자식 표현).

 

 

 

이제 다들 다리가 좀 아픈지 뒷걸음으로 내려온다. 희한하게도 뒷걸음질 치면 모인 다리가 좀 풀어지는 듯안 느낌이 든다. 나만 그런가? (그 며칠 후 신문에서 뒷걸음치면 치매 예방에 좋다는 기사를 봤다.)

원효사 뒷문 쪽에 도착하니 지도가 그려진 팻말이 하나 있다. 다들 어디쯤인지 궁금해 지도를 바라보는데 현재위치 표시가 없다. 역시 허 원로, 지나가던 국립공원 차량 탑승자에게 불평 섞인 민원을 제기한다.

원효사 일주문을 통과하니 바로 주차장이다. 오늘 산행길은 약 12km. 아~ 장단지가 모여온다.

점심 겸 저녁, 이 역시 허 원로가 순대가 유명하다며 추천한 창평전통시장의 창평장터국밥’.

식당으로 가기 위해 무등산을 조금 내려오니 어제는 보지 못했던 계곡 초입에 마을이 나타나고 어젯밤(?)을 보냈던 단풍산장’의 큰 간판이 보인다.

좀 더 내려오니 무등산 수박 단지라는 대형 입간판도 다가선다. 사실 이번 등산 전까지는 무등산 하면 수박밖에 몰랐다. 수박을 팔았더라면 반드시 샀을 것이다.

삼거리에서 우측에 있다는 소쇄원도 무시하고 좌측 광주호를 끼고 '창평장터국밥'으로 GoGo.!

목적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무등산이 광주 동쪽 끝에 있고 담양군과 경계를 이룬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창평장터국밥'집 사장은 자신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기 집 자랑을 한참 늘어놓고 우리가 앉은 방 벽에 그려진 풍악놀이 그림도 자랑한다. 하도 생동감이 있어 한 컷했다. 감상들 하시며 추억도 되새겨보시길 ...

이 글을 여기까지 써놓고 앞선 산행기를 고참원로 블로그에서 원로 시키는 대로 했더니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코치가 없었다면 아마 아직도 못 찾았을 것이다.

블로그의 마지막 산행기가 20161229일자 비슬산 산행기다. 100산을 근 2년이나 안 간 것인지 아니면 그 후로는 산행기를 안 쓴 것인지 헷갈린다.

몇 개 더 살펴보니 대개 사진 위주로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에이, 미리 보았더라면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있었냐?

 

다시 섬진강휴게소.

커피 한 잔씩 들며 쉬었다가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다들 좋았다는 감상 피력하며 다시 만날 기약을 하다. 고작 일주일 후 무학산 둘레길에서.

무등산(無等山), 내 맘대로 해석하길,

광주인들에겐 같은 등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산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등급 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산이다. 나 같은 초보 등산객도 큰 무리 없이 오르내릴 수 있는 무등등한 산이기에.

꼭 한 번 와보고 싶었지만 올 기회가 없었던 산, 다시 올 기약을 하기도 어려운 산.

안녕!

 

[광주 무등산 산행 개요]

* 20181130~121: 12

* 참가자 : 허정도(원로, 해외원정대장), 서익진(가짜 원로, 백산 산행기 담당), 김재현(예비 회원), 정규식(전 회장), 신삼호(전 백산대장, 육대주추진단장), 손상락, 임학만(보급 및 백산대장), 신성기(신입회원)

* 불참자 : 김용운(회장), 김흥수

* 코스 : 창원마산 3.15아트센터 주차장 남해고속도로 섬진강 휴게소 광주서구 나주식육식당 단풍산장(일박) - 원효사 주차장 무등산 옛길 입구 중봉 위 능선 삼거리 서석대(정상) - 입석대 장불재 광주천 발원지 너덜강 만치정 원효사 주차장 장평장터국밥 섬진강휴게소 3.15아트센터 - 해산

 

 

, 사진 / 서익진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YMCA 연원을 찾다 - 2  (0) 2019.03.25
YMCA 연원을 찾다 - 1  (0) 2019.03.18
무등산 산행기-3  (0) 2019.03.11
무등산 산행기-2  (0) 2019.03.04
무등산 산행기-1  (0) 2019.02.25
노회찬의 추억  (0) 2018.07.30
Trackback 0 Comment 0
2019.03.04 00:00

무등산 산행기-2

무등산 산행기 - 2

 

갑자기 울리는 알람 소리. 아침 6시다.

8시에 식당에서 바지락 죽 먹기로 되어 있는데 무슨 기상이 6시람. 7시 기상해도 충분한데... 다들 나이 값 하느라 그런지 별 불평도 없이 일어난다.

바지락 죽 일인당 1만원. 그러나 그 환상적인 맛 덕분에 100산대장 어젯밤 받았던 비난을 상당히 회복했다.

 

 

주인장이 포장해준 닭 조리탕 남은 것을 받아들고 전체 기념사진을 찍는데 차오차오 개가 우리 옆에 어슬링거린다. 이름이 문수란다. 좀 위에 있는 원효사에서 키우다 사정이 안 되어 자기에게 그냥 주었단다.

문수와 함께 사진 찍으려고 앞에 앉혔는데 셔터 누르는 찰나 도망가 버려 실패했다. 그래 환생하신 문수보살께서 어찌 중생들과 같이 사진 찍으려 했으랴.

830 숙소 출발.

 

금방 원효사 앞 사설주차장(3천원/하루)에 주차하고 즉시 산행을 시작했다.

무등산이 국립공원인 줄은 안내판 보고 이미 알았지만 산행로(팻말에는 옛길로 되어 있다) 입구에 수 명의 직원이 서서 감시하는 줄은 몰랐다.

입산자 자동 체크 장치도 있다. 어흐, 담배와 라이터 뺐길까봐 조바심이 들었는데, 조사는 하지 않는다.

막 오르막으로 들어서다가 물을 준비하지 않은 게 생각나 다시 내려와 가게에서 생수 작은 것 8개를 신삼호 대원이 구입해 나하고 4개씩 나누어 배낭에 넣었다. 다른 회원들 이미 올라가 버리고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 안 올라가서 만난 제철유적지 푯말을 그냥 지나쳐 올라가니 김덕령 의병장 묘 푯말이 나온다. 이번에는 유심히 읽어본다. 그의 활약상과 무고로 인한 억울한 죽음에 관한 간단한 기록이다. 언제 어디서나 영웅을 시샘하는 자들은 있게 마련인가!

 

 

조금 더 올라가니 무등산 옛길 물통거리란 나무 팻말이 나온다. 나뭇꾼들의 땔감이나 숯 이동길이었다가 1960년대에 무등산 정상에 군부대가 들어선 후부터 보급품 나르던 길이었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그냥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봉에서 오는 능선 길과 만나는 곳에 도착해보니 절반 이상은 올라온 것 같기도 하고, 화장실 겸 휴게소가 있어 보급대장이 나눠준 보급품을 먹으며 줄어든 에너지를 재충전하다. 보급대장의 은혜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다시 출발해 얼마 지나니 갑자기 주상절리 형태의 암벽이 턱 하니 나타난다.

사진들 찍으며 야단법석 하는데 지난 가는 등산객 진짜 서석대는 좀 더 위에 있단다. 약간 머쓱해진다.

서석대(瑞石臺) 장관을 바라보는 전망대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주상절리는 보통 해안가에 있는데 산봉우리 주상절리대라 처음 본다. 국내 유일한 것인지 궁금하다.

 

 

좌측으로 난 길을 돌아서 올라가니 서석대 위쪽 뒤편에 무학산 서마지기 같은 펑퍼짐한 곳이 나오고 무등산 정상이 정면으로 마주보인다.

등산객인 시민은 더 이상 접근금지다. 군부대가 무등산 정상의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을 점령한 것이다.

푯말에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정상의 원래 모습과 비교해 보니 암석봉우리들을 통째로 파괴해 버렸다. 이러한 만행을 과연 1960년대 야만의 시대, 군부독재정권이 아니고서야 어찌 감히 저지를 수 있었을까? 전두환의 광주시민 학살도 그 연장선임을 알겠다.

서석대(1100m)라고 새겨진 비석 앞에서 학봉산악회 현수막을 앞세우고 단체증명사진을 찍다.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현수막이 주인공이다. 이 사진을 위해 여기까지 발을 절뚝이며 올라온 것이다.

 

 

 

서석대는 한자로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해설판은 이 유식한 해석이 식자우환임을 금방 깨닫게 한다. 선돌의 한자식 표현(음 차용)으로 고대 선돌 숭배신앙의 중요한 표상이라는 거다. 반만 맞춘 것도 아니다. 전혀 맞추지 못했다.

! 상식(常識)의 허망함이여! 세인이여, 상식이 많다고 자랑하지 말지어다!

그렇다면 옆에 있는 입석대(立石臺)도 마찬가지로 선돌의 한자식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고, 역시 그러함이 곧 확인되었다.

사방이 확 트인 곳이라서 그런지 올라올 때는 없던 세찬 찬바람이 횡행한다.

이제 보급품을 소진시키고 하산할 시간이다.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백산대장 멋진 곳을 찾았다. 돌병풍으로 둘러싸여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다.

돌병풍을 우측으로 돌아가니 아늑한 서향받이 조그마한 분지가 나타나고 중심부에 파헤쳐진 무덤(?)이 있다. 문외한이 봐도 명당자리인데... 국립공원 내 무덤의 이전 공고를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짐승이 그랬는지 파헤쳐진 이유를 모르겠다.

드디어 100산대장이 자기도 모르게 숨겨두었던 반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다. 남은 보급품을 끌러먹는데 여전히 온기를 간직한 닭도리탕이 남다른 맛을 준다.

 

 

산 정상에서 먹는 닭도리탕은 세상에서 역사상 우리가 처음일 것이고 향후 역사에서도 있을 법하지 않은 쾌거가 아닐까.

기대하지 못했던 커피까지 나눠주는 보급대장. 모두들 만족하며 선견력 있음을 맘속으로(?) 칭송하다. 언젠가 송덕비라도 세워줘야 하지 않을까.

배를 든든히 채우고 본격적으로 하산한다. 곧 입석대를 만났다. 단체도 찍고 개인별로도 찍고.

 

 

입석대에 관찰사 등의 이름이 큰 글자로 새겨져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실감난다.

전 세계 유명 관광지마다 한국인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곳이 없다하니, 낙서의 민족인지 기록의 민족인지 헷갈린다. 나도 어딘가 이름을 새겨 놓아야 할까봐? <<<

글, 사진 / 서익진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YMCA 연원을 찾다 - 1  (0) 2019.03.18
무등산 산행기-3  (0) 2019.03.11
무등산 산행기-2  (0) 2019.03.04
무등산 산행기-1  (0) 2019.02.25
노회찬의 추억  (0) 2018.07.30
2018년 새해인사  (0) 2018.01.01
Trackback 0 Comment 0
2019.02.25 00:00

무등산 산행기-1

무등산 산행기 - 1

 

학봉산악회 전 100(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 대장 신삼호 회원에게 몇 년 전부터 약속했던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오랜만에 가는 100산 등산이라 인자부터 산행기 꼭 쓰겠다고 덜컥 약속해삤다.

또 어기자니 면이 서지 않고... 잘 찍지도 않던 사진도 찍고 하니 허정도 고참원로 날리는 멘트, “우와 열심히 하네, 기대된다.”. 부담시럽게... 안 쓰모 안 될 이유가 또 생기뿌릿다.

 

20181130일 오후 2, 3.15아트센터 주차장에 8명의 선수 집결. 신삼호 회원과 임학만 회원의 승용차 2대에 내맘대로 정한 원로팀과 비원로팀으로 나눠 타고 출발.

원로팀 차 안의 화제는 단연 허정도 회원이 출발 전에 한 권씩 나눠준 따끈따끈한 최신작 도시의 얼굴들이다. 마침 경상대 출판부장 전화인지, 여러 곳에서 주문이 온다는 얘기를 훔쳐듣다.

대박 예감이 든 동승자들, “대박==이라며 벌써부터 한턱내기를 종용했다. 그러나 역시 반격의 대가, 이 위기 속에서도 받아친다. 한턱 약속 대신 서평을 써서 어디든지 올려라는 거다. 밥 한 그릇, 술 한 잔에 서평 하나, 어째 갑자기 엄청 밑지는 장사라는 느낌이 확 든다.

웃고 떠들다보니 벌써 휴식장소로 약속한 섬진강 휴게소. 커피 한 잔씩 들고 다시 출발.

서광주 인터체인지였던가를 돌아나오니 차창으로 흘러가는 나에겐 좀 생경한 빛고을 광주 거리다. 5.18의 비극을 잠깐 생각하게 하더니 곧 떠오른 추억의 얼굴 하나.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연천 신망리 6군단 직할 포병대대 알파소대에서 2년 정도 같이 군대생활을 했던 광주 출신의 한 친구다. 시도 쓰고 노래도 잘 하던 화가였다. 그는 사지반장, 나는 2.4종 창고지기. 둘이 죽이 맞아 야산 꼭대기 사지반 참호에서 시간을 죽이고 추운 겨울밤 페치카 불에다 라면을 반합에 끓여먹던 추억이 아스라하다.

제대 후 꼭 만나자고 했지만 40년이 다가도록 만나지 못했다. 그나 나나 생활에 쪼달렸던 것 같고, 그동안 마산과 광주는 얼마나 멀었던가? 남해고속도로가 뚫려 공간은 지척이 되었지만 심리적 거리는 그만큼 줄지는 않은 것 같다.

광주 서구 어느 이면도로의 나주식육식당.’ 허원로의 추천으로 100산대장이 일찌감치 5시에 예약을 했단다.

 

 

이 시간에도 손님이 있는 걸 보니 유명한 맛집인가?

소고기 생고기가 부위별로 두 접시. 꼭 육회 같다. 생고기와 육회의 차이를 두고 설왕설래하다가 여주인을 불러 물었다.

정답: 오늘 갓 도살한 고기는 그냥 먹는 생고기, 하루만 지나면 양념으로 버물러 먹는 육회.

 

여주인은 바깥주인이 직접 도살한 소만 사용하며 좆나게 맛있다는 걸쭉한 말발에 모두들 나자빠지다. 어원 놀이 끝에 경상도에서는 좆빠지게’->‘좆나, 전라도에서는 좆나게로 변했고, 최근 전국적으로 졸라로 전화되었다는 추정에 모두들 동의하다.

허 원로, ‘졸라의 어원이 숭하니 애들에게 알려줘 가급적 안 쓰게 해야 한다고, 원로다운 결론을 내렸다.

유사어로 허벌나게허벌은 뭘까? 아무도 몰라. 안주인 얘기로 근처에 옛날부터 도살장이 있었다 하던데, 나오면서 보니까 인접 거리에 식육식당 간판이 상당히 많고 용감하게도(?) ‘백정식육식당이라는 간판을 버젓이 내건 집도 있다.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내비아가씨 시키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서석동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김재현 교수 왈, ‘상스러운 돌이라고 해석하자 다들 군말 없다, ? 모르니까. 근처에 그런 방구가 있나보다 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진실이 드러날 것임을 그때는 어찌 짐작이나 했으리.

숙소가 무등산 어딘가 산장이라는데, 무등산은 보이지도 않고 산자락을 올라가다 고개 비슷한 것을 넘어서더니 다시 내려간다. 무등산이 무학산보다 200미터 이상 더 높다는데, 아이고 내려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곧 도착.

이름 하여 단풍산장’.

 

 

초겨울 단풍은 모두 지고 없는데 처음 보는 개 한 마리 반갑게 맞이한다.

차오차오 종으로 중국에서는 엄청나게 비싼 인기 만점 견공이라나. 그러자 개님이 더욱 멋있어 보였고, 쓰다듬어주며 같이 좀 놀아주었다.

 

 

그런데 식당 집합 신호가 떨어진다. 이른 석식을 먹고 바로 달려왔는데 산장 식당에 닭조리탕을 예약해놓았다고... 모두들 구시렁거리면서도 100산대장이 하신 일을 어쩌겠는가... 막걸리를 안주삼아 겨우 몇 점씩 먹고는 대부분을 남겼다.

주인장이 내일 아침에 다시 데워줄테니 산에 올라가서 먹으라 한다. 으잉, 그런 생각은 꿈에도... , 여기에도 100산대장이 숨겨놓은 또 하나의 반전의 복선이 숨어 있을 줄이야.

금방 방으로 돌아와 각자 주무실 준비하고 거실에 모였다.

100산대장이 영원한 보급대장의 진가를 다시 발휘하다. 수출용 진로소주 큰 병 하나와 중국산 술 큰 병 하나를 꺼내놓는다.

 

 

소주, 맥주, 막걸리에 이은 술 파티 겸 회의 아닌 회의. 무엇보다 신입 김재현과 신성기의 정식 가입 여부를 논의하는데, 허 원로, 오늘 하는 것 보고 결정한다는 엄포를 놓자 학봉산악회 회원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려는 듯 다른 기존 회원들도 맞장구치며 분위기를 잡는다.

신성기 예비회원 눈치 빠르게도 원로들 주무실 방에 잽싸게 침구를 깔아놓고 오자 허원로 당장 합격 판정을 내린다. 속이 훤히 내다보인다. 그럼 김재현 예비회원은?

철학과 교수답게 소신과 강단이 있다. 회장, 100산대장, 해외원정대장, 육대주추진단장, 보급대장, 무슨 소린지 출발 때부터 해온 정신없는산악회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내년 시산제에서 무릎 꿇는 것 보고 결정한다는 판결에 내가 왜 무릎을 꿇어라는 얼굴이다. 모두들 산신에게 무릎 꿇고 절한다는 의민데...

나도 후명년 시산제까지 1년간 의무 산행하는 것 본 후에 결정하자고 공갈을 친다. 사람 놀려먹고 놀림감인 줄 알면서도 박자 맞춰주는 재미로 화기애매한학봉산악회.

해외 원정 산행안이 나와 논란 끝에 425일에 34일 북해도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해외원정대장 허원로가 김재현 회원(?)에게 일정 짤 것을 지시하고 김 회원(?) 그렇게 하겠다 한다. 이거 도대체 앞뒤가 맞는 거여? 정신없는 산악회 맞는 거 아녀?

시간가는 줄도, 두 병의 독주가 비는 것도 몰랐다.

11시가 넘었나? 술이 떨어지자 회원인지 아닌지 애매한 김재현 예비회원, 술 더 없냐고 큰소리친다. 막 가자는 건가? 100산대장 잽싸게 식당에 가서 막걸리 3통을 더 가져온다.

이젠 김재현 썰 푸는 판이다. 허 원로는 습관대로 벌써 누워 가늘게 코를 골고 몇 사람도 자리에 누웠다.

내가 같은 직장 다녔다고 끝까지 김재현을 상대하고 다른 몇 사람도 같이 어울린다.

김재현 철학자 삼미(三味)’ 이론을 전개한다. 모임은 재미와 의미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묘미가 있어야 한단다. 정말 괜찮은 이론이다. 다른 데서 써먹을 만하다. 막걸리도 떨어지고 파장이다.

김 교수를 방으로 끌고 들어와 눕히고 나도 옆에 누워 잠을 청한다. 조금 있다 부시럭 소리가 나더니 김 교수 일어나 여기가 어디야? 나 집에 갈거야라며 고함친다.

내가 그의 손을 잡고는 여기 집이야, 누워 자면 돼해도 여러 번 같은 고함을 치더니 진짜로 일어서서 몇 발짝 옮겨 거실로 나가더니 폭 고꾸라져 잔다. , 고작 서너 걸음 가더니 집에 다 온 것으로 생각했나보다.

철학자의 술 쿠세(?)는 정말 점잖다. 고함 몇 마디로 끝이다. 아침 기상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화장실 찾는 사건 있었다는 후일담은 나는 자느라 알지 못했다.)<<<

글, 사진 / 서익진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등산 산행기-3  (0) 2019.03.11
무등산 산행기-2  (0) 2019.03.04
무등산 산행기-1  (0) 2019.02.25
노회찬의 추억  (0) 2018.07.30
2018년 새해인사  (0) 2018.01.01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 9. 신고리 5,6호기 시민참여단에게 드리는 글  (0) 2017.10.12
Trackback 0 Comment 0
2018.07.30 00:00

노회찬의 추억

노회찬 의원과 저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매체를 통해 저만 그를 알았을 뿐 그는 저를 몰랐습니다.

노회찬 의원을 직접 만난 것은 20162월쯤이었습니다. 그해 4월 선거를 앞두고 창원에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처음 만난 곳은 창원 상남동의 한 식당이었습니다. 노동운동가였던 박성철과 여영국 도의원이 함께 했고 그날 먹은 음식은 갈비탕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의원님이라 불렀고 그는 저를 이사장님이라 불렀습니다. YMCA 이사장을 했던 제 경력 때문입니다.

출마를 앞두고 지역민들 얼굴을 익히는 자리여서 특별한 기억은 없습니다. 저와 그가 다 잘 아는 노동운동가 황주석 최순영 부부를 이야기한 것이 기억납니다.

출마하려 창원까지 내려온 게 미안했던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공적으로는 거침이 없지만 사적으로는 과묵한 분이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만남의 기억은 뚜렷합니다. 총선 직전인 그해 3월 말 경이었습니다.

선거운동본부 요청으로 만들어진 도시문제 지역현안 공부 자리였습니다.

갑자기 창원에 내려온 그에게 지역 사정을 자세히 알게 하고 TV토론도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공부는 선거 사무실 안쪽의 후보사무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학습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분들은 자리를 물리고 저와 노 의원 단 둘이 앉았습니다.

노 의원의 학습태도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시작할 때는 약간 어색했지만 워낙 진지하게 제 설명을 듣는 노 의원의 자세 때문에 곧 공부 분위기가 잡혔습니다.

경기고 출신답게 노 의원의 집중도와 이해력은 탁월했습니다.

제 설명 사이사이 그의 질문이 섞이면서 알차게 진행된 공부였습니다. 한 시간 반쯤 걸렸던, 오래 기억될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만 노회찬 의원이 유독 관심을 가진 부분은 두 가지로 기억됩니다.

하나는 창원의 환경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사례로 꺼낸 슈투트가르트 바람길 이야기였습니다.

처음 듣는다면서 재미있어했고 몇 차례 질문도 던졌습니다. 자신의 지역구였던 노원구 사례와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방대한 구상이라 쉽지 않겠다면서 더 늦기 전에 이런 시도가 필요하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지역구인 창원성산구를 둘러싸고 있는 산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노 의원에게 "모든 구민들이 어디에서건 5분 이내에 숲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이 어떠냐"고 했더니, 노 의원은 고개를 들어 날 빤히 쳐다보며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성산구의 지형적 특성을 설명하며 제 생각을 말했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공약 같다고 했습니다.

특히 숲길을 걷는 것은 신분이나 경제력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혜택이라는 점이 마음에 끌린다고 했습니다.

실제 이 숲길 이야기는 선거 과정에서 노 의원이 구민들에게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공부가 끝날 즈음, 이런 일들은 단체장의 손을 빌려야 가능하다는 점에 우리 두 사람 함께 동의했습니다.

언젠가는 창원시장도 바뀌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서로 나누며 공부를 마쳤습니다.

.

.

.

  

안타깝고 그리워서 짧은 추억 글 한편으로 당신을 추모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준 당신은 혼자 홀연히 떠나셨네요.

보고 싶습니다.

부디 영면하십시오.<<<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리 비록 개울처럼 어우러져 흐르다

뿔뿔이 흩어졌어도

우리 비록 돌처럼 여기 저기 버려져

말없이 살고 있어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으나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당신을 생각합니다.

 

도종환의 시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Trackback 0 Comment 0
2018.01.01 00:00

2018년 새해인사

새해 인사드립니다.

꿈 꾸는 것과 희망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 바랍니다.

 

 

 

 

 

 

Trackback 0 Comment 0
2017.10.12 07:08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 9. 신고리 5,6호기 시민참여단에게 드리는 글

 

원자력발전의 경제성을 이야기하면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과소계상, 원전 해체비용과 환경 복구 비용 과소 계상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사고 보험 문제입니다.

 

자동차를 운행하면 반드시 보험을 들어야하는 것처럼 원자력발전소도 사고 보험을 들어야 하지만 보험회사는 보험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 피해금액이 너무 커 여러 보험회사가 공동으로 운영해도 단 한 번의 사고로 보험회사를 파산시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수원은 조건부 보험을 가입하고 있습니다.

보상금액 한도 5,000억원, 사고 후 10년이 지난 손해와 환경 관련사고는 정부가 보상하고 그 이외의 사고는 10개 보험회사가 공동으로 보상하는 조건입니다.

한수원은 한국전력이 100% 출자한 공기업입니다. 한국전력 주주는 정부 18%, 산업은행 33%, 국민연금 6.5% 외국인 30%, 일반인 12%로 구성되어 있는 공기업입니다.

외국인 투자자와 일반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서 보험을 정부가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특혜인 셈이죠.

원자력은 단 한 번의 대형사고라도 피해규모가 우리나라의 경우 최소 1천조 이상입니다.

후쿠시마는 피해금액이 정부발표 220조이지만 삼중수소 제거비용을 계산 안한 것입니다. 재미

과학자 강정민 박사는 이 비용까지 계산하면 690조라고 주장합니다.

고리원전 주변에 울산 산업도시, 부산항이 각각 19km, 28km 이내에 위치합니다. 고리 원전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수출이 전면 중단됩니다.

더구나 반경 30km 이내 380만의 주민이 거주하기 때문에 피해규모는 후쿠시마와 비교가 안 됩니다.

피해금액을 적게 잡아 500조로 계산하면 보험으로 5천억 보상해 줍니다. 피해금액 500조에 보상금액 5천억.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자동차사고 견적이 500만원 나왔는데 보험회사가 5천원 보상해주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보험에 들지 않는 것과 같죠.

제대로 보험들고 보험료를 내면 어떻게 될까요?

1kwh100원 정도의 보험료를 내야 합니다. (독일에서는 1kwh1천원으로 계산했다.)

우리나라 원전 단가는 68원이니까 보험료를 보태면 168원이 됩니다. 가스보다 2배 비쌉니다.

원자력은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습니다. 

몇 일전 우리나라 유력 경제지 증권뉴스에 이런 내용이 실렸습니다.

세계3대 신용평가사인 S&P앞으로 17년 내 미국 원전 절반이 없어지고 38년 내 모든 원전이 없어진다는 내용입니다.

그 이유는 건설비용의 상승, 가스 가격의 하락과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의 하락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때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원전 관련 종목을 사지 말라는 뜻입니다.

시민참여단 여러분, 원전 건설 재개를 원하는 측이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경제성입니다.

그런데 보험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원자력의 경제성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Trackback 0 Comment 0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2 -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이 글은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 기고문입니다.> 지난 5월 9일 제1야당 대표는 &ldquo;교통사고 때문에 자동차를 폐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비 없는 에너지 정책 정말 무책임하다.&rdquo;라고 원전사고를 교..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1 - 우리나라의 잦은 지진, 불안하다

<이 글은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 기고문입니다.> 지난 4월 4일 발생한 강원도 고성, 속초의 산불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 19일과 4월 22일 사흘 간격으로 발생한 지진은 강원도 지역 주민..

쓰레기 대란, 이제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할 때다

대한민국 곳곳이 쓰레기 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최근 필리핀으로 쓰레기를 불법 수출했다가 국가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쓰레기 대란은 2017년 중국이 플라스틱 수입 중단 조치를 발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수출이 막힌..

London and Quadrant / L & Q

"No one should be denied the opportunity to achieve their potential because of where they live." &ldquo;어느 누구도 그들이 사는 곳 때문에 그들..

창녕 대봉늪 왕버들군락 보존을 위한 환경단체 입장문

이 글은 지난 4월 11일 부터 17일까지 창녕 대봉늪 왕버들군락을 지키기 위해 결행된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이보경 사무국장의 단식에 대한 환경단체의 입장문입니다. ▮ 왕버들군락의 온전성이 희귀하고 아름다운 1등급 습지 대봉늪 지..

미세먼지 줄이는 쉬운 방법

요즘 많은 사람들이 미세먼지로 고통 받고 있다. 노인들은 미세먼지가 심한 때 돌아가시기도 한다. 특히 호흡기 질환이 있는 노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교통사고보다 미세먼지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을 만큼 미세먼지는 우리들의 건강에..

아이 먼저 생각하자 - GMO에 대하여

박순희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엄마이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아토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토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의 건강을 위해 생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였다. 조금은 비싸지만 하나..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0 - 재생에너지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이 글은 2017년 10월 12일 포스팅한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의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9편을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기후조건, 에너지 자원, 산업구조, 원전의 발전 비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

YMCA 연원을 찾다 - 2

나를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 국제담당국장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라는 분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친절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약속한대로 3월 6일 오전 11시 15분 세인트폴 대성당(St. Paul’s Cath..

YMCA 연원을 찾다 - 1

오랫동안 회원으로 활동한 YMCA의 연원을 찾아보았다. 얼마 전, 업무 차 런던에 하루 머물렀는데 마침 약속이 오후로 잡혀 오전 시간을 이용했다. 나를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의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 국제..

무등산 산행기-3

무등산 산행기-3 장불재를 내려다보며 하산하다. 장불재는 무학산 서마지기보다 훨씬 더 평평하고 너르다. 마산 같으면 만날재 같은 역할을 했다. 한쪽에는 방송중계탑들이 모여 있다. 하산길은 일방적인 내리막이 아니다. 중봉으로 ..

무등산 산행기-2

무등산 산행기 - 2 갑자기 울리는 알람 소리. 아침 6시다. 8시에 식당에서 바지락 죽 먹기로 되어 있는데 무슨 기상이 6시람. 7시 기상해도 충분한데... 다들 나이 값 하느라 그런지 별 불평도 없이 일어난다. 바지락 죽 ..

무등산 산행기-1

무등산 산행기 - 1 학봉산악회 전 100산(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 대장 신삼호 회원에게 몇 년 전부터 약속했던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오랜만에 가는 100산 등산이라 인자부터 산행기 꼭 쓰겠다고 덜..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3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5. 마치는 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숙소로 시작되었지만 당시..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2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1) 단지계획 2) 주동계획 가. 동선유형 주동의 동선유형은 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