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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도시이야기55

옛날 사진 속에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 2021년 1월 19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950년대 설립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옛날 사진 속에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 며칠 전 마산의 한 고등학교의 1960년대 초반의 졸업앨범 한 권을 (자료수집용으로) 샀다. 앨범을 살펴보는데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사진 크기가 너무 작아 확대해서 보니 '노동의원'이라고 세로로 쓴 한글 간판이 선명하다. (표시 부분) 노동의원! 중앙동 1가에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라 궁금해했었던 바로 그 '마산노동병원'인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이 사진은 1962년 5월 16일, '5.16혁명 1주년'을 맞아 학생들이 시가행진을 벌이.. 2021. 3. 29.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7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10) "진짜 본토박이" ------------------------- 배○○ 1941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604-2 날짜 : 2015년 1월 16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얘기부터 기억나시는대로 좀 해 주시지요. = 바로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자랐지요. 6.25전쟁이 났을 때 내가 아홉 살 먹었는데 진해 웅천으로 피난을 갔거든요. 회원국민학교 입학 하고는 바로 피난을 갔어요. 거기로 피난 갔다가 석달만에 돌아왔어요. 그때는 여기가 전부 초가집이고 완전히 농촌이었지요. 농사 짓고 닭 키우고 소 키우고 완전히 농촌이었지요. 그래 기억나는 게... 군인들이 논에 엎드려 숨어 있고... 우리가 수류탄도 .. 2021. 3. 22.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6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9) "서민들 살기 좋은 동네" ------------------------- 심○○ 1943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8-6 날짜 : 2015년 1월 10일 장소 : 자택 - 이 동네 사정을 제일 잘 아신다고 해서 찾아 왔습니다. = 그런데 이 동네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내가 온 지 얼추 한 사십 년 되어 가는데, 뭐 유물이 있다든지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 재개발을 하게 되면 동네가 다 헐리게 되고 그러면 동네 흔적이 다 사라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동네 전경도 사진으로 남기고 또 여기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 동네 옛날 모습 그러니까 어디에 국화밭이 있었고 미나리꽝이 있었고 조그만 공장이 있었다고 하는 그런 옛날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 2021. 3. 8.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5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8) "여기가 제2의 고향이지요" ------------------------- 이○○ 1937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670-3 날짜 : 2015년 1월 9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옛날 동네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 이 동네 사신 지도 오래되었지요? = 나는 별 이야기거리가 없는데... 본 고향은 의령인데 거기서 면서기 하다가 막살하고 부산에 내려가 있다가 마산으로 왔어요. 내가 서른일곱 살 때 여기로 왔어요. 자유수출에 있는 일본 사람 회사인데 고모 아버지가 동업한다고 회사 차릴 때 왔거든요. 그러니까 사십년 전에 이리 왔지요. - 예. 수출자유지역에 어느 회사였습니까? = 마산강관이라고 파이프 만드는 회사였지요. 일본 회사인데 고모부가 사장을 잘 알아서 나를 넣어.. 2021. 2. 1.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4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7) "허허벌판에 이룬 삶의 터전" ------------------------- 박○○ 1947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672-22 날짜 : 2015년 1월 8일 장소 : 관룡사 - 반갑습니다. 예전 이 동네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 옛날에는 이 일대가 거의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지금 현동에 가면 국화밭 있죠? 거기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여기는 특별한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무학상가 있는 그 근방에 옛날 주택 부서진 데 있죠? 여러 집 있습니다. 거기는 별로 변한 게 없습니다. 그쪽에 국화밭이 형성되어 있다가 저쪽 현동으로 가버렸거든요. - 지금 무학상가 위쪽에 국화밭이 있었다는 거지요? = 그쪽으로 있었고 주택도 쭉 있었어요. - 다른 분 얘기 들으니까 미나리꽝도 있었다고 하.. 2021. 1. 25.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3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6) "사십 년을 살아온 제2의 고향" ------------------------- 조○○ 1940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2-2 날짜 : 2015년 1월 7일 장소 : 자택 - 선생님께서도 우체국에 오래 근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나도 우체국에 근무했습니다. 한 삼십 년 됩니다. 예전에는 체신부에 근무한다고 체신인이라 했어요. 체신부가 건국 이후 부터 내려오다가 과학이 발달되고 정보통신 계통 업무가 늘어나다 보니까 정보통신부로 개명이 되었다가 다시 전파 업무를 관장하게 되다 보니까 모든 방송전파 업무를 관리를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전파관리국에서 전화국도 관리 했고 통신도 관리했지요. 처음에는 체신부에서 전화와 모로스 전신 업무를 담당했는데 업무가 점점 늘어나서 전화국에서 .. 2021. 1. 18.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2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5) "서민들 사는 보통 동네에서의 조용한 기쁨" ------------------------- 최○○ 1936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1-5 날짜 : 2015년 1월 7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저기 걸린 액자는 좀 특이하군요? = 저건 내가 우체국장 하다가 정년퇴직 했더니 누가 기념으로 준 겁니다. 청춘은 결코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다 마음의 상태이다는, 이 말은 젊다고 청춘이 아니고 늙어도 마음만 먹고 있으면 청춘이다는 뜻입니다. 정년퇴직 하더라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라는 뜻에서 내한테 준 것입니다. - 예. 보통 동양고전에서 좋은 말을 가져와서 액자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서양 사람 이름이 적혀 있네요? = 그렇지요. 사무엘 울만이 유명한 사람은 아.. 2021. 1. 11.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1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4) "한 집에서 46년을 살아오면서" ------------------------- 김○○ 1940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598-16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조합사무실, 자택 - 반갑습니다. 이 동네에서 아주 오래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동네의 옛날 얘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살고 계신 데는 언제부터 사셨습니까? = 우리 동네 내력을 역사로 남겨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여기 69년도에 들어 왔습니다. - 예. 정말 오래 되었네요. = 68년도에 집이 완공 되고 69년도에 입주가 되었는데 우리도 69년도에 들어왔으니까 올해가 46년째인가 그럴 겁니다. 여기가 원래 나락 심고 하던 논이고 미나리꽝이고 그랬다고 합디다. 몇 사람 업자들이 모여 가지고 택지.. 2021. 1. 4.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0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3) "삼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콩나물을 길렀다" ------------------------- 권○○ 1949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무학상가 지하 수정식품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수정식품 - 이 콩나물 공장이 이 동네에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공장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이 콩나물 공장 하신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 그러니까 원래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서 하던 거를 내가 인수 받았어요. 그때가 80년도인가 81년도인가? 그러니까 벌써 삼십 년이 넘었어요. 그런데 삼십 년이 지나도 돈을 못벌었으니까 못나가고 이래 있는 거지요. 벌써 나가야 되는데... 허허. 내 앞에 하던 분도 벌써 돌아가셨고요. - 예. 그럼 이 아파트 들어서고 난 뒤에 공장을 하.. 2020. 12. 28.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9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2) "동네 지킴이, 칠원쌀상회" ------------------------- 이○○ 1948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무학상가 1층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지금 조합원 중에서 이 동네에 아주 오래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 예. 이 자리에만 거의 40년을 살았네요. 하여튼 요 동네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처음 왔을 때는 이 아파트 들어서기 전인데 내나 같은 동네입니다. 여기가 3-5번지인데 거기가 교원동 3-6번지이네요. 내가 여기 이사올 때는 단층 슬라브집 지어놓은 데 바로 들어 왔거든요. 주인이 진해에 있었는데 우리가 먼저 들어 왔어요. 방 큰 거 한 칸에 부엌 있고 다락방 있고 조그만 했어요. 지금도 내나 그대로 있거든요. 사람이 살고 있.. 2020. 12. 21.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8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1) 주민 면담은 2015년 1월 중에 이뤄졌습니다. 2) 인터뷰이(interviewee)는 가급적 오래 거주하신 분들을 모시고자 하였습니다. 3) 게재 순서는 편의상 인터뷰가 이뤄진 시간순으로 하였습니다. 4) 인터뷰어(interviewer) 및 인터뷰 내용의 정리, 편집은 박영주(경남대박물관 비상임연구원)가 맡았습니다. 5) 인터뷰 내용은 표준어, 보통 높임말 어투, 구어체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내용상의 수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6) 인터뷰 내용은 오래 전의 일들을 개인의 기억으로 되살렸기 때문에 일부 착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7) 소중한 말씀을 해 주신 인터뷰이 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1) "새로운 희망의 터전을 꿈꾸며" ---------------.. 2020. 12. 14.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7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2 3) 봉화산봉수대(烽火山烽燧臺) 회원동 봉화산에 있는 고려 말~조선 시대의 봉수대(아래 사진)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다. 봉화산 봉수대는 회원동과 석전동의 경계에 위치한 봉화산 성내에 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 위급 상황을 수도에 알리는 통신 수단으로 쌓았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지도에서는 ‘성황당봉수(城隍堂烽燧)’로 표기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창원지역의 서낭신을 모신 성황당이 봉화산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봉화산 봉수대는 부산 지역에서 출발하는 직봉(直烽) 2로의 간봉(間烽) 6로로서 동래의 다대포 봉수대에서 시작하여, 진해 고산 봉수대를 거쳐 이곳 봉화산 봉수대에서 함안 칠서 안곡.. 2020. 12. 7.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6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1 1) 교방동 관해정(校坊洞觀海亭)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였던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년~1620년)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1604년에 세운 누정이다. 관해정은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쳤고 현재의 건물은 1886년에 중건한 것이다. 관해정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큰 방문 위에 걸려있는 ‘취백당(聚白堂)’이라는 간판이 있다. 이는 ‘백미(白眉), 즉 뛰어난 인재들을 모으는 집’이라는 뜻이다. 2003년 시굴 당시 중수 전의 것으로 보이는 건물지와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한강은 자신의 스승 남명(南冥)을 모시고 산해정(山海亭, 남명의 김해시절 장수처(藏修處))을 다녀온 뒤 스승과 .. 2020. 11. 3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5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3 ● 협동정미소 터 상남동 회산다리 건너 회원천변에 붙은 회원동 429-1번지. 현재 환금프라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곳을 이병철이 1936년 마산에 세운 협동정미소가 있던 곳으로 추정해 왔다(머니투데이 성희용기자, 경제기행-삼성, 중교리에서 타임스퀘어까지(3)-27세 200만평 대지주가 되다(http://news.mt.co.kr/mtview.php?no=2004100609333465335&vgb=column&columnType=&code=column119) 일본에서 돌아와 사업을 하기로 한 이병철은 마산에서 정미업을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확신하고 친분이 있던 .. 2020. 11. 23.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4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2 ● 교원동 일대의 공장들 건설목공소(가구 제조), 교원동 117번지, 대표 김협환 광전사(전기공사업), 교원동 54번지, 대표 한만규 대광메리야쓰공업사(세타, 방모), 교원동 69-7번지, 대표 박응호, 1958년 설립 대성편물공업사, 교원동 76번지, 대표 이형근, 1959년 조사 대영공업사(솟, 다라이), 교원동 76번지, 대표 박희철, 1951년 설립 동아인쇄소, 교원동 72-9번지, 대표 안보상, 1963년 설립 동양메리야쓰공업사, 교원동 76번지, 대표 이형근, 1958년 설립 마산피혁공장, 교원동 21번지, 대표 박경식, 박경화, 1940년 설립 산호메리야스공업사(장갑), 교원동 34번지, 대표 허성.. 2020. 11. 16.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3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1 회원동과 교원동, 교방동 일대의 기업체와 공장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실제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되는 회사와 공장들을 살펴봄으로써 스토리텔링 발굴을 위한 시야를 좀 더 넓힐 수 있지 않나 생각되기 때문이다. 먼저 이 지역에 주소를 두었던 기업체와 공장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았다. 목록은 마산상공회의소에서 발간한 마산상공연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료를 기초로 하여 기타 여러 자료에서 발췌하는 방식으로 작성하였다. 여러 업종의 제조업체를 기본으로 하되 단순 판매업, 서비스업종 등은 생략하였다. 지역의 경제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의 흐름을 중심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목록은 회사 명칭.. 2020. 11. 9.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2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5 ● 북마산중앙시장, 북마산청과시장 북마산중앙시장이 현재의 자리에 들어선 것은 37년 전인 1976년 11월이다. 이 시장은 북마산 우시장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1967년에 우시장 자리에 선화고등공민학교가 들어서면서 우시장은 사라져갔다. 2년 후에는 학교가 상남동 64-1번지 일대, 지금 마산문학관 바로 밑으로 옮겨가게 된다. 학교가 옮겨가면서 우시장의 넓은 공터에는 자연스레 난전이 형성되고 어느새 가건물이 들어섰다. 교통이 편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북마산역이 바로 인근에 있어서 시장이 형성될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시장에서는 주로 의류와 생선을 취급했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청과물을 취급.. 2020. 11. 2.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1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4 ● 비치거리 상남동에서 회산다리를 건넌 회원동 초입의 거리를 말한다. 옛날 이곳에는 비석이 있었기 때문에 비석거리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이 일대 토박이들이 ‘비치거리계’ 모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노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재건약국 옆쪽에 비석이 서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없어졌다고 한다. 이곳에는 창원군 내서면장을 지냈던 진봉계의 공적비도 세워져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도 없다. ● 구름다리 구 북마산역 광장에서 교원동 쪽으로 임항선 철로 위에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는 육교로 구름다리, 북마산 구름교로 불리고 있다. 1971년경에 세워진 길이 28.8m 폭 3.0m의 강재슬라브 다.. 2020. 10. 26.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0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3 ● 회원동 500번지 회원동 500번지 일대의 동네를 말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 일본군 기마병의 마굿간과 창고가 있었다. 징병 징용 등으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동포들이 해방 후에 돌아와 거기에 칸을 치고 살게 되면서 부터 '나래비 마을' 또는 '하모니카 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피란민들의 판자집도 다닥다닥 들어서면서 빈민층이 모여 사는 동네가 되었다. 마산의 대표적인 빈민주거지역이 되면서 사람들이 세칭 ‘회원동 500번지’로 부르게 되었다. 일본군 창고집(아래 사진 중앙 상부의 직사각형 건물 세 동)은 1979년에야 헐리고 그 자리에 새한아파트 세 동이 들어섰다. 현재.. 2020. 10. 19.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9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2 ● 배넘이 고개 [배드나무 고개, 배드난 고개] 회원동 골짜기에서 마재고개로 넘어가는 산중허리를 세인들이 지금도 배넘이고개(배드나무 고개)라고 부른다. 먼 옛날 해일이 넘쳐 배가 산고개를 넘어 갔다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온다. 이 고개에서는 지금도 메밀이 드문드문 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배가 메밀을 싣고 고개를 넘어가다가 파선을 당했는데 그 메밀 싹이 튼 것이라 한다. 또 회원동 앤지밭골에는 오랜 옛날에 바닷물이 그곳까지 들어왔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두척산(무학산)에는 배넘이고개라는 이름을 가진 고개가 한 군데 더 있다. 완월동 공동묘지 뒤에서 서원골로 넘어가는 산중허리를 배넘이고개라고 한다.. 2020. 10. 12.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8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1 ● 돌산 못산마을 위쪽 무학산 자락으로 돌과 바위가 많았다고 한다. 예전 주공아파트 위쪽 편으로 돌이 많아서 돌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돌산에는 절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 배암골 무학산과 봉화산 사이의 골짜기로 배암(뱀)처럼 길게 뻗었다고 붙은 이름이다. 아주 오래된 이름으로 연로하신 토박이들 한두 분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 연계밭골 [蓮溪田谷, 앤지밭골, 앵기밭골] 회원동 못산마을 위쪽 무학산 산기슭에 있는 조그만 산골 마을이다. 지금은 이 골짜기가 회원동에서 가깝지만 예전에는 제법 멀리 떨어진 골짜기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옛날 앤지닭(영계)가 울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지만 유사.. 2020. 10. 5.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7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5 ● 공동우물 집 안으로 수도가 들어오기 전에는 모두 물을 길어 먹었다. 자연적으로 솟는 약수터나 샘터의 물을 먹거나 아니면 우물을 팠다. 대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평지의 동리에는 그런 샘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물을 파지 않을 수 없었다. 드물게 집안에 우물을 판 경우도 있지만, 우물 파는 데는 비용도 많이 들고 또 아무데나 물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개의 우물은 공동이었다. 우물이 있어야 사람들이 살 수 있기 때문에 마을이 형성되는 데에는 우물이 필수적이다. 우물은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한다. 그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공간이 아마 우물일 것이다. 우물은 공동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공간이다... 2020. 9. 28.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6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4 ● 주변이 온통 국화밭이었던 시절 마산은 오랫동안 국화의 도시로 유명했다. 지금도 매년 가을이면 국화축제가 벌어진다. 2014년에 제14회를 맞이한 가고파국화축제는 마산의 대표 축제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마산은 국화의 주산지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상업적 국화재배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그 현장이 회원동이다. 1960년 회원동에서 여섯 농가가 처음으로 국화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전에 국화 재배에 처음 성공한 이는 여대기(余大基, 회원동 464번지 / '토마토 裁培技術(서울: 富民文化社, 1972)'이란 책을 쓰기도 한 우리나라 화훼농업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란 독농가이.. 2020. 9. 21.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5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3 ● 회원천의 다리들 회원동과 교원동은 회원천을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왔다. 사람들이 양쪽을 오가기 위해서 자연스레 징검다리 같은 다리가 놓여졌다. 그후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돌다리, 콘크리트 다리로 변모해 왔다. 현재 사업구역의 북쪽면은 회원천과 접해 있으며 그 길이는 350여 미터 정도이다. 현재 이 구간에는 상류에서부터 주공교 아래로 무명교, 정자교, 무명교, 석교, 무명교, 회합교 등 모두 7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7개의 다리 중에서 3개의 다리는 이름을 알 수 없다. 원래부터 별다른 이름이 없었거나 다리 확장 및 보수 공사 과정에서 다리 명판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옛 지도와 항공.. 2020. 9. 14.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4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2 ● 못산(못안, 모산) 회원동에서 무학농원으로 가는 중간지점에 있었던 마을의 이름이다. 옛날에 못이 있었다고 한다. 택지 개발로 옛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작은 골목길(회원남26길)에서 옛 마을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지만 그나마 최근 회원2지구 재개발사업으로 건물이 철어되어 골목 식별이 어렵다. 현재의 도로명주소로는 회원남26길, 회원남25길, 회원남31길 일대이다. 이 마을의 이름을 딴 모산상회라고 하는 쌀가게가 이십여 년 전까지 있었다고 한다. ● 회원천(檜原川) 회원천은 무학산 북동쪽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앤지밭골, 회원동을 지나 상남동에서 교방천과 합류하여 오동동을 지나 마산.. 2020. 9. 7.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3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1 ● 회원동(檜原洞) 회원동의 회원(檜原)은 의창현(義昌縣)의 별호(別號)였던 회산(檜山)의 회(檜) 자와 회원현(檜原縣)의 원(原) 자를 합성해 만든 지명이다. ● 교방동(校坊洞) 회원현의 향교(鄕校)가 있었기 때문에 교방으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회원현은 고려 충렬왕 8년인 1282년에 의안(義安)이 의창(義昌), 합포(合浦)가 회원(會原)으로 개칭되고 현령관(縣令官)으로 승격되었다. 그후 조선 태종 8년인 1408년에 의창현(義昌縣)과 회원현(會原縣)을 합해 창원부(昌原府)를 만들면서 독자적인 행정단위로서의 회원현은 사라졌다. 회원현으로 발족한지 126년만의 일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 존속했던 회원현의.. 2020. 8. 31.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 1.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변천 - 2 순조 말기인 1832년경에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따르면, 창원도호부는 부내면(府內面), 동면(東面), 북면(北面), 남면(南面), 서면(西面) 등 5개 면을 두었다. 면(面)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모두 16개의 운을 두었다. 부내면(府內面)에는 일운(一運)과 이운(二運)을 두었고, 남면(南面)은 도하일운(道下一運), 도하이운(道下二運), 도상일운(道上一運), 도상이운(道上二運), 도상삼운(道上三運) 등 5개의 운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동면(東面), 북면(北面), 서면(西面)은 각각 일운(一運), 이운(二運), 삼운(三運) 등 3개의 운으로 되어 있었다. 한편 남면 관할의 운에 나타나는 '도상(.. 2020. 8. 24.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 오늘부터 포스팅하는 자료는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본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위치는 다음과 같다. 재개발사업의 명칭은 회원1지구이지만 이곳은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 등 3개 동에 걸쳐있다. 포스팅할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변천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3. 주민 아홉 분의 이야기 1) "새로운 희망의 터전을 꿈꾸며" --.. 2020. 8. 17.
김형윤의 <삼진기행> 1 / 1954년 4월 14일 (수) 오늘부터의 포스팅은 창원지역에서 평생 언론인으로 살다간 목발(目拔) 김형윤(金亨潤) 선생이 남긴 기행문이다. 마산일보(현 경남신문)에 실렸고, 기고자는 본명 대신 ‘H 생’이라 되어 있다. 제목은 「삼진기행」이며 1954년 4월 14일부터 23일까지 9회 실렸다. 당시 마산일보 사장이었던 김형윤 선생이 15명의 벗들과 함께 1933년 순국한 독립지사 '죽헌 이교재 선생'의 유족을 찾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을 찾았던 기록이다. 이 글의 가치는 이교재 선생과 유족에 대한 내용과 함께,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당시의 삼진지역(진동, 진전, 진북) 상황을 이해하는데 있다. 김형윤 선생의 기고문에 맞추어 모두 9회에 걸쳐 포스팅할 예정이다. 원문 그대로 옮기지만 일부 고문(古文)은 읽기 편하게 고쳐 쓰고,.. 2019. 10. 21.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8 Ⅳ. 맺음말 이 글에서 우리는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일어난 1차 시위에 참가한 하상칠이라는 특정 개인의 경험에서 도출된 다음 두 가지 의문에 답하고자 노력했다. 하나는 시위 참가 동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침묵의 이유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의문과 관련해 사회적 요인을 바탕으로 개인적 요인들에 천착함으로써 개인에게 체화된 사회적 정의감을 확인했다. 두 번째 의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서 국가가 개인에게 가한 보복 공포증과 빨갱이 트라우마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볼 수 있었다. 하상칠의 증언은 3․15의거 당일 시청과 무학국교 앞에서 벌어졌던 야간시위의 전개과정을 좀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향후 4월혁명 공로자 신청이 추가 시행된.. 2018.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