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맺음말
이 글에서 우리는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일어난 1차 시위에 참가한 하상칠이라는 특정 개인의 경험에서 도출된 다음 두 가지 의문에 답하고자 노력했다.
하나는 시위 참가 동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침묵의 이유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의문과 관련해 사회적 요인을 바탕으로 개인적 요인들에 천착함으로써 개인에게 체화된 사회적 정의감을 확인했다.
두 번째 의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서 국가가 개인에게 가한 보복 공포증과 빨갱이 트라우마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볼 수 있었다.
<1985년 회갑연 때 가족과 함께 / 맨 왼쪽이 글쓴 이>
하상칠의 증언은 3․15의거 당일 시청과 무학국교 앞에서 벌어졌던 야간시위의 전개과정을 좀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향후 4월혁명 공로자 신청이 추가 시행된다면 하상칠과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구제되고, 나아가 2020년 3․15의거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예정된 『3․15의거사』 개정판을 낼 때 그의 증언이 반영되어 좀 더 생생하고 구체적인 역사 서술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의 연구가 3․15의거의 다른 참여자들에 대한 미시사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기대감과는 반대로 이 글을 준비하는 내내 왜 당사자가 살아있던 동안에 이러한 논문을 쓸 생각을 하지 못 했던가라는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그의 사망 후에야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증빙자료는 고사하고 85세의 노인이 50년 전 사건에 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한 증언밖에 없는데다가 그를 아는 소수의 사람에게서 그것도 극히 한정되고 단편적인 정보밖에 얻을 수 없다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구술사 분야에 종사하거나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너무 늦기 전에 가급적 많은 사람의 구술부터 받아두는 것 자체가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개별 연구자 차원에 맡겨두어서는 안 되며 공공의 관심과 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방법론적으로 이 글은 여전히 한계를 드러낸다.
첫째, 미시사 방법론의 원용만으로는 증거의 단편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아마 주관성과 객관성 간의 거리는 완전히 소멸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미시사 방법론이 가진 영원한 한계일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조사자나 연구자의 더 많은 노력에 의해서만 다소간에 해소될 수 있다.
둘째, 미시사 방법론을 원용해 하상칠이라는 개인의 삶과 활동을 천착했지만 관련 자료와 참조인의 부족으로 좀 더 생생한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개인과 사회 간의 상호작용을 엄밀하고도 구체적으로 추적하기 어려웠고, 하상칠이라는 개인의 생애와 사회적 활동을 그가 참여한 역사적 사건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窓)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자신하기도 힘들다.
이는 3․15의거와 관련된 개인들에 대한 구술 자료가 늘어나고 개인별 사례 탐구가 누적되어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후속연구와 관련해 우리는 하상칠의 증언이 참임을 믿지만 국가보훈처에서는 객관적 증빙서류의 미비를 이유로 유공자 선정을 거부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하상칠 같은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고 역사적 사건의 리얼리티를 더 잘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행의 객관적 증거주의가 가진 장단점을 명시하고 유공자 선정 방법의 개선책을 제시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끝)
서익진 / 경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감춰진 도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 (0) | 2020.08.17 |
---|---|
김형윤의 <삼진기행> 1 / 1954년 4월 14일 (수) (0) | 2019.10.21 |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8 (0) | 2018.11.19 |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6 (0) | 2018.11.05 |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5 (0) | 2018.10.29 |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4 (0) | 2018.10.22 |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6) "사십 년을 살아온 제2의 고향" ------------------------- 조○○ 1940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2-2 날짜 : 2015년 1월 7일 장소 : 자택 - 선생님께서도 우체국에..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5) "서민들 사는 보통 동네에서의 조용한 기쁨" ------------------------- 최○○ 1936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1-5 날짜 : 2015년 1월 7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4) "한 집에서 46년을 살아오면서" ------------------------- 김○○ 1940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598-16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조합사무실, 자택 - 반..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3) "삼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콩나물을 길렀다" ------------------------- 권○○ 1949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무학상가 지하 수정식품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2) "동네 지킴이, 칠원쌀상회" ------------------------- 이○○ 1948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무학상가 1층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지금 ..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일러두기> 1) 주민 면담은 2015년 1월 중에 이뤄졌습니다. 2) 인터뷰이(interviewee)는 가급적 오래 거주하신 분들을 모시고자 하였습니다. 3) 게재 순서는 편의상 인터뷰가 이뤄진 시..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2 3) 봉화산봉수대(烽火山烽燧臺) 회원동 봉화산에 있는 고려 말~조선 시대의 봉수대(아래 사진)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1 1) 교방동 관해정(校坊洞觀海亭)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였던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년~1620년)가 그의 제자들과 함..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3 ● 협동정미소 터 상남동 회산다리 건너 회원천변에 붙은 회원동 429-1번지. 현재 환금프라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삼성그룹 창업자..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2 ● 교원동 일대의 공장들 건설목공소(가구 제조), 교원동 117번지, 대표 김협환 광전사(전기공사업), 교원동 54번지, 대표 한..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1 회원동과 교원동, 교방동 일대의 기업체와 공장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실제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되는 회사와 공장들을 살펴봄으로..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5 ● 북마산중앙시장, 북마산청과시장 북마산중앙시장이 현재의 자리에 들어선 것은 37년 전인 1976년 11월이다. 이 ..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4 ● 비치거리 상남동에서 회산다리를 건넌 회원동 초입의 거리를 말한다. 옛날 이곳에는 비석이 있었기 때문에 비석거리로 ..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3 ● 회원동 500번지 회원동 500번지 일대의 동네를 말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 일본군 기마병의 마굿간과 창고가..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2 ● 배넘이 고개 [배드나무 고개, 배드난 고개] 회원동 골짜기에서 마재고개로 넘어가는 산중허리를 세인들이 지금도 배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