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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9.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3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1

 

회원동과 교원동, 교방동 일대의 기업체와 공장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실제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되는 회사와 공장들을 살펴봄으로써 스토리텔링 발굴을 위한 시야를 좀 더 넓힐 수 있지 않나 생각되기 때문이다.

먼저 이 지역에 주소를 두었던 기업체와 공장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았다.

목록은 마산상공회의소에서 발간한 마산상공연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료를 기초로 하여 기타 여러 자료에서 발췌하는 방식으로 작성하였다.

여러 업종의 제조업체를 기본으로 하되 단순 판매업, 서비스업종 등은 생략하였다. 지역의 경제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의 흐름을 중심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목록은 회사 명칭과 생산품, 소재지, 대표자, 설립년도 등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취합한 것으로, 회사의 존속기간, 매출과 영업실적 등등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전반적인 경영 상태를 파악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다만 이 목록을 통해서 1950년대 이후 지역의 기업 및 공장의 존재 실태에 대해서 개략적인 추정을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한때 마산은 장유양조업 못지않게 섬유공업으로도 유명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면방직 및 모방직 산업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마산에도 많은 면직물 공장이 들어서는데 대표적인 것이 메리야스 공장이었다.

이들 메리야스 공장은 대개 가내공업 수준의 소규모 공장이었는데 1960년대 후반 화학섬유가 국내 생산되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천연섬유에서 인조섬유로 소비가 이동하면서 점차 사라져가는 양상을 보였다.

 

● 회원동 일대의 공장들

가내공업센타(쉐타), 회원동 363-1번지, 대표 최석경

갑을제면공장, 회원동 46번지, 대표 김갑수

경남포장공업주식회사, 회원동 444번지, 대표 채수인, 1970년 설립

고광건재사, 회원동 405번지, 대표 최덕림

곡륜목공장(제재), 회원동 207번지, 대표 이경도, 1940년 설립

광림산업사(타이루), 회원동 327번지, 대표 이강재, 1954년 설립

광성스텐공업사, 회원동 29-4번지, 대표 김정식

기일제과소, 회원동 430번지, 대표 이기주

남성모직공업사(방모사, 방모직물), 회원동 355-13번지, 대표 박재환, 1962년 설립

남성스텐공업사(각종 스텐제품), 회원동 403번지, 대표 남호현, 1967년 설립

내서양조장, 회원동 203번지, 대표 강선규 <제6대 국회의원(민중당) / 아래 사진>, 1935년 설립

내서주조장(탁주), 회원동 203번지, 대표 이성근, 1965년

노벨악기공업사, 회원동 442번지, 대표 송삼희

노벨제과소, 회원동 500번지, 대표 민영홍

대동국수공장, 회원동 6번지, 대표 조영시

대동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380번지, 대표 고주용, 1955년 설립

대동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443번지, 대표 정복조, 1950년 설립

대륙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443번지, 대표 손재일, 1951년 설립

대명공업사(기계부속), 회원동 362번지, 대표 김성희

대성섬유공업사(쉐타), 회원동 3-4번지, 대표 조병웅

대성정미소(국수, 도정), 회원동, 대표 서학룡

대양직물공장(면직물, 아세테이트사), 회원동 348번지, 대표 심보갑, 1948년(1956년?)

대원산업사(쉐타), 회원동 661번지, 대표 김창규, 1972년 설립

대한메리야스공업사(메리야스, 세타), 회원동 333번지, 대표 김봉현, 1965년 설립

도금공장, 회원동 443번지, 대표 김남훈

동조제면공장, 회원동 35-7번지, 대표 조문호

동해직물공장(골텐), 회원동 348번지, 대표 조상규, 1951년 설립

떡방아간, 회원동 430번지, 대표 문정순

마산비누공업사(세탁비누), 회원동, 전원주, 1962년 설립

마산아교공업사, 회원동 170번지, 대표 박영환

마산직물공업사(사견, 재생모), 회원동 403번지, 대표 권희준, 1961년 설립

면장갑공장, 회원동 327번지, 대표 이현숙

면장갑공장, 회원동 341번지, 대표 홍재호, 1968년 설립

목공소, 회원동 209번지, 대표 김민전

목공소, 회원동 305번지, 대표 한성

미흥스텐공업사(스텐식기), 회원동 443번지, 대표 차보현

봉현제와공장(기와, 토관), 회원동 342번지, 대표 최재근, 1950년 설립

북마메리야스공업사, 회원동 500번지, 대표 정태형, 1959년 조사

삼공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467번지, 대표 홍재성, 1952년 설립

삼부제면공장, 회원동 36번지, 대표 김부사자

삼성직물공업사(소창), 회원동, 대표 김석원

삼천리소주공장(희석식소주), 회원동 595-1번지, 대표 구순기, 1968년 설립

삼풍제면공장, 회원동 40번지, 대표 최일권

삼흥기계공업사(미싱부속), 회원동 352번지, 대표 이갑상, 1959년 설립

숟가락공장, 회원동 398번지, 대표 한사봉

숟가락공장, 회원동 403번지, 대표 김달동

숟가락공장, 회원동 500번지, 대표 김태성

숟가락공장, 회원동 500번지, 대표 정재우

숟가락공장, 회원동, 대표 옥장술

알미늄공장(숫가락), 회원동 207번지, 대표 옥장술

알미늄공장(숫가락), 회원동 207번지, 대표 차보현

알미늄공장(숫가락), 회원동 410번지, 대표 박상기

알미늄공장(숫가락), 회원동 410번지, 대표 조성래

양산철공소(육해상용 디젤엔진), 회원동 348-12번지, 대표 최호민, 최인훈, 1955년 설립

양진토건사, 회원동 345-1번지, 대표 황봉재

엿공장, 회원동 1-5번지, 대표 구귀남

영흥유지화학공업사(세탁비누), 회원동 541-2번지, 대표 장인섭, 1954년 설립

용마기계공업사(다이야젠그네 하우스), 회원동 403번지, 대표 김희제

용신공업사(공작기), 회원동 403번지, 대표 김도선

원동정미소, 회원동 403번지, 대표 김진권, 김형일, 1961년 설립

월성직물공업사(면직물), 회원동 443번지, 대표 최복수, 1956년 설립

일성제지공업사(모조지, 선화지), 회원동 500번지, 대표 전한규, 전용수, 1961년 설립

일성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443번지, 대표 권복수, 1954년 설립

일진산업사(두부, 콩나물), 회원동 355번지, 대표 명말선

일진산업사(엿), 회원동 1-5번지, 대표 구기룡, 1954년 설립

정미소, 회원동 227번지, 대표 이경도

정미소, 회원동 483번지, 대표 배용봉, 1942년 설립

제일국수공장, 회원동 437번지, 대표 남차석

제일물산주식회사(제과제빵), 회원동 384번지, 대표 김시웅, 1967년 설립

제일벽돌, 회원동 356번지, 대표 천희옥

제일제과공사(건빵), 회원동 382번지, 대표 홍성달, 1962년 설립

중앙섬유공업주식회사(모직물), 회원동 363-1번지, 대표 최무용, 1971년 설립

칠칠정미소, 회원동 52번지, 대표 김진수

크로바제과소, 회원동 500번지, 대표 이상우

태흥인쇄소, 회원동 212번지, 대표 성상근

평화산업사(쉐타), 회원동 409번지, 대표 이광세

풍국제면(국수), 회원동 425번지, 대표 정복조, 1968년 설립

한성직물공업사(면직물), 회원동 442번지, 대표 오한일, 1955년 설립

한일직물공장(면직물), 회원동 359번지, 대표 윤한일, 1956년 설립

합자회사 회원정미소, 회원동 436번지, 대표 최인두, 1946년 설립

해동국수공장, 회원동 52-8번지, 대표 조덕순

호남제과소, 회원동 36번지, 대표 곽규수

환금정미소, 회원동 403번지, 대표 김일권, 1955년 설립

회산용접소, 회원동 403번지, 대표 주외술

회원연탄공장, 회원동 430번지, 대표 진정수, 1958년 설립

회원정미소, 회원동 402번지, 대표 강백희

흥농기업사(정부미도정), 회원동 436번지, 대표 백종기, 1966년 설립

흥아직물공장(뽀뿌링), 회원동 80번지, 대표 조순옥, 1951년 설립<<<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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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2.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2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5

 

● 북마산중앙시장, 북마산청과시장

북마산중앙시장이 현재의 자리에 들어선 것은 37년 전인 1976년 11월이다. 이 시장은 북마산 우시장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1967년에 우시장 자리에 선화고등공민학교가 들어서면서 우시장은 사라져갔다.

2년 후에는 학교가 상남동 64-1번지 일대, 지금 마산문학관 바로 밑으로 옮겨가게 된다. 

학교가 옮겨가면서 우시장의 넓은 공터에는 자연스레 난전이 형성되고 어느새 가건물이 들어섰다. 

교통이 편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북마산역이 바로 인근에 있어서 시장이 형성될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시장에서는 주로 의류와 생선을 취급했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청과물을 취급하는 경매시장도 들어서게 된다. 

시장이 어느 정도 활성화되자 상인들은 본격적인 시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조합을 추진한다. 땅 소유주와의 협상이 잘 풀리지 않자 회원천 회산다리 밑 상남동 40-1번지 일대의 빈 땅 860여 평을 매입하고 시장 이전을 추진하게 된다. 

진주의 대동건설이 건축을 맡았고 1976년에 새 시장이 문을 열었다. 청과시장도 함께 옮기기로 했으나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청과시장은 그대로 남았다. 18개의 점포를 가진 북마산청과시장(주)은 김인택 씨가 대표를 맡아 1990년대 중반까지는 청과물 중계를 하였다. 

당시 마산에는 신포동의 마산청과시장이 가장 큰 시장이었고 월영동에도 신마산청과 시장이 있었지만 거래량은 얼마되지 않았다.

회산다리 밑으로 옮긴 북마산중앙시장은 196개의 점포를 가진 시장으로, 지하에는 생선류가 주이고 1층은 메리야스, 포목 같은 의류가 주종을 이뤘는데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고 한다. “북마산중앙시장에는 돌을 가져다 놔도 팔린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장사가 잘 되니까 자연스레 주변에 노점 좌판이 몰려들어 시장 상인들과 갈등도 있었다고 한다. 좌판이 점점 커지면서 경전선 철로 주변으로 상권이 확산되면서 ‘철둑시장’도 생겨났는데 1997년경이 되면서 거의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한 이십여 년전에는 시장 건물을 2층으로 증축을 했는데 허가가 나지 않아 완공을 못해 오랫동안 앙상한 흉물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2층 외벽을 깨끗하게 단장을 한 상태이다. 

마산에 백화점이 들어서고 대형 마트가 여기저기 생기면서 북마산중앙시장 역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부림시장 보다는 다소 사정이 나아 2000년까지는 그런대로 장사가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재건축을 추진 중이지만 건축경기도 그렇고 해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도 지하의 횟집들은 아직도 성업 중이다.

 

 

● 마포중학교, 후생주택, 남영주택

현재 교원동에는 2010년 11월 완공된 무학자이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있다. 

그 자리에는 예전에 ‘후생주택’과 ‘남영주택’이 있던 자리였다. 당시 교원동 일대에는 집없는 서민들을 위해 지은 시영주택인 후생주택이 줄지어 들어섰다. 

그리고 1969년에는 ‘삼남(三南)지방 폭우’가 발생했는데, 1967년, 68년 2년동안 계속된 가뭄으로 혹심한 피해를 입은 삼남지방이 1969년에는 수마에 휩쓸린 사건이다.

1969년 9월 14일 오후부터 16일 낮까지 부산, 경남, 전남 등 남해지방과 제주와 경북 일부 지역에 집중폭우가 쏟아져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이 폭우로 2백89명이 죽고 1백7명이 실종했으며, 2백21명이 부상했다. 이것은 1959년 9월 17일 내습, 8백46명을 사망 실종하게 한 사라호 태풍 이래 가장 비참한 재난이었다.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마산에서도 교원동에다 ‘남영주택’을 지어 수재민들을 수용하기도 했다. 또 콜레라가 발생하여 여러 사망자가 생기자 격리병사(62평)를 짓기도 했다.

그 주택들이 들어서기 전에 그 자리에는 마포중학교(馬浦中學校)라는 중학교가 있었다. 10여 년 미만의 짧은 기간 동안 있었던 학교라 그런지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었다.

 

마포중학교 상량식 (남조선민보, 1950.2.25.)

 

그래서 자료에 나타난 마포중학교의 연혁을 살펴보기로 한다.

1946년 3월 고등공민학교령에 의하여 마산고등공민학교 인가

1948년 9월 마포중학교 설립기성회 조직

1950년 3월 건벽돌 교사 5교실 준공

1951년 6월 재단법인 마포학원 인가, 7월에 마포중학교 설립인가, 동년 9월 개교식 거행

마포중학교는 처음에 마산 상남동 74번지 호주 선교회 마산지부의 건물에서 공민학교로 출발했다. 

그러나 호주 선교회 소유 건물이기 때문에 교원동 40번지~43번지 일대에 2829평에 달하는 새로운 터를 마련하고 학교 설립을 준비했다.

1950년 4월 당시 마포학원설립기성회(馬浦學園設立期成會) 대표자는 마산의 유력 실업인 김종신(金鍾信)이 맡았다. 재단법인 마포학원 이사로는 손문기, 문삼찬, 이병진, 김상룡, 한태일, 손성수, 박봉기, 박성실, 유석형, 이만희 등 당시 마산지역의 유력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후 4년제 중학교로 개교한 마포중학교는 주야간 학급을 운영하였다. 

마포중학교는 개교 이후 10여 년이 지난 1961년 3월에 재단법인 마포학원의 임원이 교체되었는데 정석현 등 7명이 새 이사로 선임되었다. 이 시기를 뒤로 해서 더 이상의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아마도 이 시기에 마포중학교는 폐교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1958년에는 회원동 480번지에 웨슬레고등공민학교(교장 서익수)가 설립되어 정규 학교에 취학하지 못한 많은 불우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활동을 벌여 나가기도 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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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26.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1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4

 

● 비치거리

상남동에서 회산다리를 건넌 회원동 초입의 거리를 말한다옛날 이곳에는 비석이 있었기 때문에 비석거리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이 일대 토박이들이 비치거리계’ 모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노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재건약국 옆쪽에 비석이 서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없어졌다고 한다

이곳에는 창원군 내서면장을 지냈던 진봉계의 공적비도 세워져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도 없다.

 

● 구름다리

구 북마산역 광장에서 교원동 쪽으로 임항선 철로 위에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는 육교로 구름다리, 북마산 구름교로 불리고 있다.

1971년경에 세워진 길이 28.8m 폭 3.0m의 강재슬라브 다리이다. 

이 다리는 철로 레일을 휘어서 만든 특이한 공법의 다리로도 유명하다. 

이 다리가 설치되기 전에는 북마산역과 교원동 교방동 일대를 왕래하려면 멀리 돌아가야 했었는데 다리가 설치되면서 북마산 일대 주민들의 통행이 아주 편리해져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다. 

당시 신문에는 다리 완공 소식이 사진과 함께 크게 실리기도 했다.

이 구름다리는 당시 국회의원 한태일(1909-1995)이 사비를 들여 세웠다고 알려졌다. 

한태일은 1967년 6월에 치러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인물로 고려모직주식회사 사장, 마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당시 마산 상공계의 거두였다.

 

 

● 북마산역

예전에 마산에 있던 세 개의 기차역 중 하나로 상남동 1-39번지 일대에 있었다.

1924년 2월 경남선(마산-진주)의 일부인 마산-군북 노선이 개통되며 역이 설치되었다. 

다음해에 경남선이 완공된 후 함안 군북 진주 등 경남 서부지역의 여객 및 화물 수송과 교역의 중심이 되었다. 

그 부근의 농촌지대와 거래하는 여객이나 화물의 철도 이용도가 높아졌고 더욱이 구마산 장날에는 농작물을 이고 진 승객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1967년에는 경남선이 순천까지 연결되면서 그 절정기를 맞았다. 

북마산역 역전마당은 예전에 아주 활기찬 시장이었다. 일년내내 싸전이 열렸으며 봄 되면 딸기전이었고 가을 되면 감시장이었고, 기차가 도착하면 순식간에 번개시장이 섰다. 

오후 6시 40분이 되면 인근 함안 등지에서 통근 통학하는 사람들로 역마당이 가득찼다고 한다.

삼역통합으로 북마산역은 폐역이 되었지만 노선은 계속 유지되었다. 

이 노선은 마산항 제1부두선(馬山港 第一埠頭線) 또는 마산임항선(馬山臨港線)으로 불렀는데 , 마산역에서 마산항역을 잇는 총연장 8.6km인 한국철도공사의 철도 노선이었다.

2011년 2월에 폐선되고 그 선로에는 임항선 그린웨이가 조성되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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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19.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0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3

 

● 회원동 500번지

회원동 500번지 일대의 동네를 말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 일본군 기마병의 마굿간과 창고가 있었다. 

징병 징용 등으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동포들이 해방 후에 돌아와 거기에 칸을 치고 살게 되면서 부터 '나래비 마을' 또는 '하모니카 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피란민들의 판자집도 다닥다닥 들어서면서 빈민층이 모여 사는 동네가 되었다. 

마산의 대표적인 빈민주거지역이 되면서 사람들이 세칭 ‘회원동 500번지’로 부르게 되었다. 

일본군 창고집(아래 사진 중앙 상부의 직사각형 건물 세 동)은 1979년에야 헐리고 그 자리에 새한아파트 세 동이 들어섰다. 

현재 회원2구역 재개발구역에 포함되어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 아리랑고개

교방천에서 무학산을 바라보면 오른쪽교원동 방면으로 철로 옆을 따라 쭉 이어진 고갯길이다

현재 그 길의 이름은 노산서 2이다. ‘아리랑고개길이라고 이름지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길이다

지금 보면 고갯길’ 같이 보이지 않지만 나이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예전에는 제법 높았다고 한다

교방천 쪽에서 짐이라도 들고 그 길을 올라가자면 꽤 힘들었다고 한다날이라도 더웠으면 중간에 다리쉼이 생각도 날 법한 길이다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아리랑고개는 힘들지만 결국에는 이겨내고 올라야만 하는 고개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비록 낮은 고개지만 그런 이름이 자연스레 붙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고개마루 바로 밑 지점 쯤에 아리랑 실비’ 조그마한 술집이 있어 한두 잔 막걸리를 팔고 있다.

고개마루에 오르면 왼쪽으로는 교방동 위로 올라가는 골목이 나오고 몇발자욱 더 가면 오른쪽으로는 북마산 구름다리가 있었다

왼쪽으로 비스듬히 뻗어나가는 좁은 교원동 골목길은 회원천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아리랑고개는 나무전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무학산이나 무학산 너머 감천 골짜기에서 땔감을 해서 소달구지에 싣거나 지게에 지고 와서 팔았다고 한다화목 같은 장작도 팔았지만 주로 갈비를 많이 팔았다고 한다

장작은 어시장이나 포교당 절 앞에서 많이 팔았고 이쪽 아리랑고개에서는 소나무 갈비를 짚동처럼 묶은 갈비를 주로 팔았다고 한다

교통이 편리해지고 연탄이 보급되면서 아리랑고개 나무전도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이곳에 예전에 마산부 관문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 회산다리

상남동과 회원동 사이의 회원천에 놓인 다리로 회산교(檜山橋)라고도 한다예전에는 회원교(檜原橋)라고도 했다

지금 다리에는 한글로 회산교라고 새겨져있다회산(檜山)은 창원의 오래된 별호(別號)인데 이름에서 연륜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 이 다리는 어떤 유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목발 김형윤 선생(아래 사진)은 마산야화(馬山野話)에서, '이 다리에 옛날에 隆熙二年建立이란 표석(標石)이 있었는데 해방 후에 반가지(半可知)의 애국가(愛國家)들의 손으로 삭제(削除)되고 단기연호(檀紀年號)로 박혀버렸다'고 애석해 하면서, '마산에서 함안진주로 통하는 신작로(新作路)가 생긴 때가 1908(융희 2)인데 이 표석이 그 증거'라고 밝히고 있다

 

 

또 신마산 시청 앞의 도로는 1914년경에 생겼다고 한다

마산에서 진해현(진동)을 거쳐 진주로 이어지는 신작로즉 진주가도(晋州街道)가 1908년에 닦였다는 것이다

참고로 1912년 당시 마산 진주간 180리 길을 자동차로 가는데 4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뽀얀 먼지 날리는 신작로 풍경이 떠오른다.

마산 최초의 신작로에 놓인 유서깊은 다리인데 지금 그 표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도 없다

오래된 지도를 보면 회산다리는 돌다리로 표시되어 있다

사실 1970년에 회산다리 도로즉 지금의 북성로를 폭 20m로 확장하기 전만 해도 길이 그렇게 넓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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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12.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9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2

 

● 배넘이 고개 [배드나무 고개, 배드난 고개]

회원동 골짜기에서 마재고개로 넘어가는 산중허리를 세인들이 지금도 배넘이고개(배드나무 고개)라고 부른다. 

먼 옛날 해일이 넘쳐 배가 산고개를 넘어 갔다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온다. 

이 고개에서는 지금도 메밀이 드문드문 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배가 메밀을 싣고 고개를 넘어가다가 파선을 당했는데 그 메밀 싹이 튼 것이라 한다. 

또 회원동 앤지밭골에는 오랜 옛날에 바닷물이 그곳까지 들어왔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두척산(무학산)에는 배넘이고개라는 이름을 가진 고개가 한 군데 더 있다. 완월동 공동묘지 뒤에서 서원골로 넘어가는 산중허리를 배넘이고개라고 한다. 

역시 바닷물이 넘쳐 배가 산을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고개이다.

 

● 회원 서낭당

회원동 북쪽 골짜기 쪽에 있었다고 하는 서낭당인데 현재는 아는 이도 없고 흔적도 없다.

 

● 상보

회원천에서 회원 뒷들로 들어오는 보(洑)라고 한다.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 성황산봉수터(城隍山烽燧)

무학산 줄기인 해발 265m의 봉화산(烽火山)에 있으며 고려 말에 왜구의 침입을 서울에 알리는 신호수단으로 쌓은 것이라 추정된다. 

봉화산봉수대(烽火山烽燧臺)라고도 하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다. 

봉화산 봉수대는 간봉(間峰) 6로로서 처음 부산 다대포봉수대에서 시작하여, 웅천(熊川)의 고산(高山) 봉수대→봉화산봉수대→칠원(漆原)의 안곡산(安谷山)봉수대→창녕 현풍 노산봉수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서울 목멱산(남산) 봉수대로 연결되었다.

 

● 회원동 둥구나무 [정자나무]

회원천변의 회원동 543번지에 있는 수령 5백년이 넘는 느티나무로 회원동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나무의 일부가 고사하고 부러졌지만 높이 13m 가슴 높이 둘레 3.8m의 거목으로 1982년부터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해 오고 있다. 

느티나무는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 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어 왔으며, 오래된 느티나무는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 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이 나무 역시 지역주민들로부터 보호받아 왔다.

350여 년 전 통영의 통제사(統制使)가 이 나무를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주변에 거주하는 노씨(盧氏) 가문의 6대조(六代祖)가 만류하여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둥구나무도 회원동의 당산나무로 예전에는 해마다 회원동의 동제(洞祭)를 이 나무 아래에서 지내왔다고 한다. 

당제(堂祭), 당산제(堂山祭)로도 부르는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마을 공동의 제사인데 현재는 중단된 지 오래이다. 

오래 사신 분의 얘기에 의하면 동제는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크게 지냈다고 한다. 가을걷이가 끝난 뒤에 돼지도 잡고 떡도 하고 해서 제물을 차려 놓고, 부정을 타지 않은 깨끗한 사람이 제주가 되어 제를 지냈다고 한다. 

제가 끝나고 나면 건구(매구, 풍물)도 치며 놀았다고 한다. 제를 지낼 노인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맥을 이을 사람이 없어 중단되고 말았다며 아쉬워했다.

 

회원동 둥구나무 (2009년)

 

● 둥구나무 비석군

회원동 둥구나무 옆의 하천변에 세 개의 비석이 서 있다. 

세 개의 비는 枕溪亭交河盧公諱世煥遺蹟碑(침계정교하노공휘세환유적비), 金海金公昌鑄善蹟紀念碑(김해김공창주선적기념비), 五一六軍事革命碑(오일육군사혁명비) 등이다. 

이 비들은 그리 오래된 게 아니다. 

김창주 선적기념비는 일제강점기인 정축년(1937년)에 세워진 것이고, 침계정 노세환 유적비는 신축년(1961년), 그리고 오일육군사혁명비 역시 1960년대에 세워진 것이다. 

이중에서 오일육군사혁명비(아래 사진)는 특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비는 박정희 정권 말기에 국방장관을 지낸 노재현 씨 집안에서 5.16을 찬양하며 세웠다. 

 

 

이후 시민단체에서 비를 철거했으나 일부 주민들이 비를 다시 세워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고 둥구나무 있는 곳에서 회원천을 따라 조금 위로 올라가면 마산연합시우회관이 있다. 

그 회관 옆에 江焉金震權先生功績碑(강언김진권선생공적비)라는 또 하나의 비가 있다. 이 비는 회원동에서 원동정미소를 경영했던 실업인 김진권의 공적을 기려 1975년에 세워졌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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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5.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8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1

 

● 돌산

못산마을 위쪽 무학산 자락으로 돌과 바위가 많았다고 한다.

예전 주공아파트 위쪽 편으로 돌이 많아서 돌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돌산에는 절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 배암골

무학산과 봉화산 사이의 골짜기로 배암(뱀)처럼 길게 뻗었다고 붙은 이름이다.

아주 오래된 이름으로 연로하신 토박이들 한두 분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 연계밭골 [蓮溪田谷, 앤지밭골, 앵기밭골]

회원동 못산마을 위쪽 무학산 산기슭에 있는 조그만 산골 마을이다.

지금은 이 골짜기가 회원동에서 가깝지만 예전에는 제법 멀리 떨어진 골짜기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옛날 앤지닭(영계)가 울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지만 유사한 발음으로 추정한 속설일 뿐이다.

인근 무학농장이 어른들의 놀이터로 유명했다면 연계밭골은 1970~80년대 학생들의 단골 소풍장소로 유명했다.

1926년에 펴낸 조선교통도(아래 그림)에 연계전곡(蓮溪田谷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朝鮮交通圖(馬山五號), 1926.

 

● 문바우 [문암]

무학농원 서쪽 산등성이에 있는 바위로 문처럼 생겼다고 한다.

예전에는 멀리서도 잘 보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숲이 우거져 어느 바위인지 찾기가 어렵다.

 

● 탕건바우

회원동의 남서쪽 무학산 기슭에 있는 탕건 모양의 바위라고 한다.

산에 나무가 거의 없던 민둥산 시절에는 산에 있는 바위들이 두드러져 보였으나 지금은 숲이 우거져 바위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 절터골

돌산 위쪽 산골짜기로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절터골 위쪽에 조그마한 폭포가 있었는데 소라고동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약수바위

절터골 폭포 옆에 있는 바위로 이 바위 밑에 샘물이 있는데, 약물처럼 물맛이 좋다고 한다.

예전에는 회원골 사람들이 자주 찾았다고 하는데 현재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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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28.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7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5

 

● 공동우물

집 안으로 수도가 들어오기 전에는 모두 물을 길어 먹었다. 

자연적으로 솟는 약수터나 샘터의 물을 먹거나 아니면 우물을 팠다. 대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평지의 동리에는 그런 샘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물을 파지 않을 수 없었다. 

드물게 집안에 우물을 판 경우도 있지만, 우물 파는 데는 비용도 많이 들고 또 아무데나 물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개의 우물은 공동이었다. 

우물이 있어야 사람들이 살 수 있기 때문에 마을이 형성되는 데에는 우물이 필수적이다. 

우물은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한다. 그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공간이 아마 우물일 것이다. 

우물은 공동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공간이다. 

그 우물물로 공동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들의 공동체적 의식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 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산에서는 1927년부터 추산정수장과 봉암수원지 공사를 해서 1930 5월부터 수돗물을 공급한 것이 시초이다. 하지만 당시 일부에게만 수돗물이 공급되는데 그쳤다. 

해방 이후에도 공업도시화에 따른 인구증가와 시설부족으로 만성적인 수돗물 부족 현상을 겪었다. 

그러다가 1985년에 마산권광역상수도확장 1차사업이 완료되고 마산의 수도보귭율이 90%를 넘어서면서 물부족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전에는,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공동우물이나 개인 지하수나 간이상수도를 이용했다. 또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거의가 공동우물을 이용했다.

사업구역 내에도 여러 군데 공동우물이 있었는데, 오래된 골목인 회원남29길과 노산서25길로 이어지는 주위 동네에는 네 군데의 공동새미(우물)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 수도가 들어오고 난 뒤에도 주민들은 이 공동새미의 물을 오랫동안 이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거의 막히거나 덮인 상태이다.

 

● 공장들

현재의 사업구역은 예전부터 오래된 주거지와 논밭으로 이뤄진 지역으로 공장은 거의 없었던 지역이다. 

과거에 이 구역에 있었던 공장으로는 우선 우피공장을 들 수 있다. 

현재의 회합교 주변의 대창고물상과 그 아래 주차장(교원동 21번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대에 있었던 큰 공장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40 9, 일본인 시네마시(常松泰), 카미하루(上原作太郞) 등에 의해 자본금 195천 원으로 설립된 마산피혁흥업(馬山皮革興業())은 각종 피혁류의 제유(製鞣) 및 각종 원()모피 부산물을 가공 판매하는 회사였다. 

 

마산피혁공장에 대한 당시 보도 (부산일보, 1940.4.3.)

 

또 이 회사는 햄과 쏘세지를 만드는 돈육가공공장을 자매 회사로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다(동아일보 1940 4 27일 기사). 

해방 후에도 마산피혁흥업이란 이름으로 운영하다가 1956경부터는 마산피혁공장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주로 소가죽과 돼지가죽을 가공 생산했는데 폐업 시기는 알 수 없다. 

한편 이 공장에서는 소가죽을 가공하여 공업용 아교를 생산하기도 했는데 동네 주민들은 이를 부리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무학상가아파트 자리는 원래 요꼬 공장이 있던 자리였다. 요꼬는 일본어로 횡편, 즉 가로를 뜻하는데 편물기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직물을 짜는 것을 말한다. 

요꼬는 일반적으로는 스웨터 짜는 것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요코를 짜는 가내공장이 교원동, 회원동 일대에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이 요꼬 공장은 꽤 큰 편이었다고 한다. 1978년에 이 공장이 헐리고 난 자리에 무학상가가 들어섰다.

무학상가 옆의 교원동 3-24번지와 3-25번지 일대에는 영일공업사라고 철공장이 있었는데 무학상가가 들어선 이후까지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학상가 지하에는 수정식품이라고 하는 콩나물공장이 지금도 콩나물을 생산하고 있다. 

이 콩나물공장은 현재 사업구역 내에서는 유일한 공장이다. 

현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 1981년경에 다른 사람이 하던 공장을 인수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하니 그때부터만 하더라도 34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콩나물 공장 자리는 원래 물이 많은 무렁논이어서인지 지금도 수량이 풍부해서 콩나물을 기르기에는 아주 좋다고 한다.

 

 무학상가

현재의 무학상가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요꼬공장이 있었는데 그 공장을 헐어낸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1층의 무학상가가 들어선 것은 1978년 3월이라고 한다. 

처음 상가가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주변에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분양이 잘 되었다고 한다. 상가 점포는 모두 39개였는데 쌀가게를 비롯해 생선장사, 식육점, 참기름집, 철물점, 잡화가게, 연쇄점 등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장사가 좀 되는 듯 했으나 회산다리 쪽에 시장이 생기고 하면서 차츰 장사가 잘 안됐다고 한다. 결국 세월이 지나며 가게가 하나둘 비게 되었고 상가 위에다 2층 3층의 아파트를 증축해 주상복합 건물이 되었다. 

한때 이 상가 지하는 민방위 대피소로도 쓰였다고 한다. 

현재 이 아파트에는 모두 16가구가 주소를 두고 있고 지하에는 수정식품이라는 오래된 콩나물 공장이 있다. 1층에 있는 칠원쌀상회라는 쌀가게는 37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목욕탕

사업구역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으로는 교원동 26번지 하천가의 남일탕(대표 남현우, 남상발)이 아주 유명했다고 한다.

지하수가 좋다는 소문이 났던 남일탕은 몇 년 전에 헐리고 그 자리에는 노산 어린이집이 들어서 있다.

그 다음으로 교방동의 태양탕, 황금탕, 회원동의 주공탕 등이 들어섰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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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21.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6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4

 

● 주변이 온통 국화밭이었던 시절

마산은 오랫동안 국화의 도시로 유명했다. 지금도 매년 가을이면 국화축제가 벌어진다. 2014년에 제14회를 맞이한 가고파국화축제는 마산의 대표 축제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마산은 국화의 주산지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상업적 국화재배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그 현장이 회원동이다. 1960년 회원동에서 여섯 농가가 처음으로 국화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원동의 국화재배 비닐하우스 (양해광, 1975)

 

그전에 국화 재배에 처음 성공한 이는 여대기(余大基, 회원동 464번지 / '토마토 裁培技術(서울: 富民文化社, 1972)'이란 책을 쓰기도 한 우리나라 화훼농업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란 독농가이다. 

진주농림고보를 나온 그는 일본의 원예전문지를 보며 원예기술을 익혀왔다. 

그러던 중 전조억제(電照抑制) 재배법을 시험해 국화 재배에 성공하게 된다. 가마니로 덮은 비닐하우스에서 온도와 빛을 조절해 적절한 시기에 꽃이 피게 하는 것이다. 

국화는 해가 짧아져야 꽃을 피우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8월에 양묘, 9월에 정식, 10월까지 두 달 동안 전등을 비춰 주다가 겨울이 되면서 점점 짧게 빛을 비춰 꽃을 피게 만드는 것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국화와 카네이션을 차례로 피우는데 성공하면서 많은 농민들이 높은 소득을 기대하고 국화재배에 나서게 된다. 

회원동에서 처음 국화재배에 나선 여섯 농가는 여대기, 배문수, 김기억, 차진호, 조순제, 성무경 씨 등이다.

회원동 일대의 회원꽃단지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회원동뿐만 아니라 인근의 교방동, 교원동, 석전동, 양덕동 일대로 재배단지가 확대되었다. 

마산의 국화 재배는 70년대 중반에 이미 재배면적 8만여 평에 130여 가구가 참여하여 연간 1600만 송이를 생산해 전국 수요량의 70% 이상을 공급하기도 했다.

1971년에는 일본으로 수출을 하기 시작했고 1980년도에는 마산창원지구 화훼조합이 설립되었다. 

잘 될 때에는 국화 농사 한 평 지어가지고 땅 한 평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연료파동과 정부의 가정의례간소화 정책 등으로 인해 침체를 겪었다. 

그러다가 1978년경부터 회원동 일대에 택지조성사업이 시작되면서 꽃단지는 마산 현동 우산마을 일대로 차츰 옮겨 갔다.

지금 사업구역 내에도 예전에 집터가 아닌 곳은 거의가 국화밭이었다. 

이전에 미나리를 심었던 미나리꽝에도 국화를 심었다고 한다. 현재 재개발조합의 조합원 주민들 중에도 예전에 국화밭을 했던 분들이 계시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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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4.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5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3

 

● 회원천의 다리들

회원동과 교원동은 회원천을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왔다. 사람들이 양쪽을 오가기 위해서 자연스레 징검다리 같은 다리가 놓여졌다.

그후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돌다리, 콘크리트 다리로 변모해 왔다.

현재 사업구역의 북쪽면은 회원천과 접해 있으며 그 길이는 350여 미터 정도이다.

현재 이 구간에는 상류에서부터 주공교 아래로 무명교, 정자교, 무명교, 석교, 무명교, 회합교 등 모두 7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7개의 다리 중에서 3개의 다리는 이름을 알 수 없다. 원래부터 별다른 이름이 없었거나 다리 확장 및 보수 공사 과정에서 다리 명판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옛 지도와 항공사진, 주민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이들 7개의 다리 중에서 주공교 바로 아래의 회원천북길과 연결된 무명교, 노산서26길과 연결된 무명교와 노산서24길과 연결된 작은 무명교가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그 뒤로 돌다리(석교)와 주공교, 정자교, 회합교가 차례로 설치되었다. 

이중에 주공교 바로 아래 다리는 회원동 마을과 옛날 못산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가장 중요한 다리였다. 현재는 왕래가 별로 없이 한적하다. 

이 다리에는 못산교라는 이름을 붙이면 좋을 것 같다. 

주공교는 회원동과 교방동 주공아파트단지를 연결하던 도로에 난 다리여서 붙은 이름이다. 

주공아파트는 재건축되어 벽산블루밍아파트란 새 이름을 가졌지만 다리는 옛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정자교라고 이름 붙은 다리는 공영주택과 정자나무숲을 연결하는 다리로 차가 다닐 수 없는 인도교이다.

그 아래 노산서26길과 연결된 무명교도 못산마을 아래 동네와 회원천 건너 들판으로 오가던 오래된 다리이다. 이 다리도 차가 다닐 수 없는 인도교이다. 

노산서25길과 무학상가아파트로 연결된 석교는 옛날에는 석재로 만들어져 돌다리로 불렸던 다리이다. 

현재 있는 다리는 1980년대 초의 홍수로 떠내려간 뒤 1983년에 콘크리트로 새로 놓은 다리이다. 석교 바로 아래의 이름없는 작은 다리도 오래된 다리이다. 

오래된 골목인 노산서24길과 연결되어 있지만 현재는 통행하는 사람이 적다. 

바로 아래의 큰 다리는 교방동과 회원동 일대를 연결하는 큰 도로가 개설되면서 만들어진 새 다리이다. 회원구와 합포구를 연결하는 다리라고 해서 회합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회합교 바로 아래에 오래된 다리 두 개가 나란히 있다. 

그중에 한 다리는 돌기둥으로 교각을 세운 돌다리이다. 

다리 한 귀퉁이에 한글로 침류교라는 각자가 새겨진 작은 화강암 표지석이 있는데 이를 통해서 꽤 오래된 다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침류교 표지석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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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7.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4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2

 

● 못산(못안, 모산)

회원동에서 무학농원으로 가는 중간지점에 있었던 마을의 이름이다. 옛날에 못이 있었다고 한다.

택지 개발로 옛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작은 골목길(회원남26길)에서 옛 마을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지만 그나마 최근 회원2지구 재개발사업으로 건물이 철어되어 골목 식별이 어렵다.

현재의 도로명주소로는 회원남26길, 회원남25길, 회원남31길 일대이다.

이 마을의 이름을 딴 모산상회라고 하는 쌀가게가 이십여 년 전까지 있었다고 한다.

 

● 회원천(檜原川)

 

1960년대의 회원천 하류 (마산시, 1965)

 

회원천은 무학산 북동쪽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앤지밭골, 회원동을 지나 상남동에서 교방천과 합류하여 오동동을 지나 마산만으로 흘러든다.

유로 연장 4.49㎞의 하천으로 상류는 경사가 매우 급하나 해발 고도 50m를 기점으로 경사가 완만해진다.

상류 구간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걸쳐 이뤄진 하천 바닥 공사로 인해 콘크리트로 덮여 있다.

회원천 하류에 1974년 건설되었던 오동동 아케이드 상가는 37년만인 2011년에 철거되었고 생태하천 조성 공사가 시행되었다.

회원천은 회원동과 교원동을 거쳐 흐른다.

이 일대에서 마을이 먼저 형성된 지역은 회산교 주변과 좀 위로 올라온 못산마을, 앤지밭골 등으로 모두 회원천변에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하천 주변으로 모여들어 집을 짓고 우물을 파고 마을을 이뤘다.

무학산의 산비탈을 개간해 논과 밭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천변에 자연스레 솟는 샘의 물을 길어다 먹거나 우물을 팠다.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에 나가 물고기도 잡고 목욕도 하고 빨래도 했다.

쓰레기도 버리고 생활오수도 버렸다. 하천변 양 옆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면서 자연스레 길이 만들어지고 다리가 놓였다.

하천변의 큰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주어 사람들이 나와 쉬는 놀이터의 역할도 했다. 하천은 이처럼 지역주민들에게는 또하나의 중요한 생활공간이었다.

하지만 마산이라고 하는 도시가 팽창하면서 회원천도 몸살을 앓았다.

도시의 생활하수와 산업폐수의 배출통로가 되고, 도시개발로 복개되고 건천화되면서 악취가 진동하는 곳으로 변모해 버린지 오래되었다.

무학산 동사면의 산록에서 계곡을 따라 흐르는 회원천은 소하천이지만 경사가 급한 편이다.

큰물이 나면 순식간에 범람하여 도랑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수해가 자주 발생해 천변은 수해상습지역이었다.

1979년에는 ‘8.25수해로 인해 집이 유실되는 등 많은 피해가 발생해 일부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하천 직강 공사를 했다.

10년 전인 19699월에도 삼남지방 홍수로 서원골의 풀장이 터지면서 교방동과 상남동 일대에 큰 피해를 입혔고 회원천 주변에도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마산 창원지역의 사망자가 94명에 달했다. 1959년의 사라호 태풍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제강점기에도 하천의 홍수피해는 계속 발생했다.

회원천을 생명이 살아있는 물길로 되살리려고 하는 노력이 결실을 거둬 아주 오래 전처럼 맑은 수질을 회복해서 지역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생활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1979년 8.25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회원천변 (마산시, 1979)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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