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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21.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6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4

 

● 주변이 온통 국화밭이었던 시절

마산은 오랫동안 국화의 도시로 유명했다. 지금도 매년 가을이면 국화축제가 벌어진다. 2014년에 제14회를 맞이한 가고파국화축제는 마산의 대표 축제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마산은 국화의 주산지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상업적 국화재배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그 현장이 회원동이다. 1960년 회원동에서 여섯 농가가 처음으로 국화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원동의 국화재배 비닐하우스 (양해광, 1975)

 

그전에 국화 재배에 처음 성공한 이는 여대기(余大基, 회원동 464번지 / '토마토 裁培技術(서울: 富民文化社, 1972)'이란 책을 쓰기도 한 우리나라 화훼농업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란 독농가이다. 

진주농림고보를 나온 그는 일본의 원예전문지를 보며 원예기술을 익혀왔다. 

그러던 중 전조억제(電照抑制) 재배법을 시험해 국화 재배에 성공하게 된다. 가마니로 덮은 비닐하우스에서 온도와 빛을 조절해 적절한 시기에 꽃이 피게 하는 것이다. 

국화는 해가 짧아져야 꽃을 피우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8월에 양묘, 9월에 정식, 10월까지 두 달 동안 전등을 비춰 주다가 겨울이 되면서 점점 짧게 빛을 비춰 꽃을 피게 만드는 것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국화와 카네이션을 차례로 피우는데 성공하면서 많은 농민들이 높은 소득을 기대하고 국화재배에 나서게 된다. 

회원동에서 처음 국화재배에 나선 여섯 농가는 여대기, 배문수, 김기억, 차진호, 조순제, 성무경 씨 등이다.

회원동 일대의 회원꽃단지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회원동뿐만 아니라 인근의 교방동, 교원동, 석전동, 양덕동 일대로 재배단지가 확대되었다. 

마산의 국화 재배는 70년대 중반에 이미 재배면적 8만여 평에 130여 가구가 참여하여 연간 1600만 송이를 생산해 전국 수요량의 70% 이상을 공급하기도 했다.

1971년에는 일본으로 수출을 하기 시작했고 1980년도에는 마산창원지구 화훼조합이 설립되었다. 

잘 될 때에는 국화 농사 한 평 지어가지고 땅 한 평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연료파동과 정부의 가정의례간소화 정책 등으로 인해 침체를 겪었다. 

그러다가 1978년경부터 회원동 일대에 택지조성사업이 시작되면서 꽃단지는 마산 현동 우산마을 일대로 차츰 옮겨 갔다.

지금 사업구역 내에도 예전에 집터가 아닌 곳은 거의가 국화밭이었다. 

이전에 미나리를 심었던 미나리꽝에도 국화를 심었다고 한다. 현재 재개발조합의 조합원 주민들 중에도 예전에 국화밭을 했던 분들이 계시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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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4.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5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3

 

● 회원천의 다리들

회원동과 교원동은 회원천을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왔다. 사람들이 양쪽을 오가기 위해서 자연스레 징검다리 같은 다리가 놓여졌다.

그후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돌다리, 콘크리트 다리로 변모해 왔다.

현재 사업구역의 북쪽면은 회원천과 접해 있으며 그 길이는 350여 미터 정도이다.

현재 이 구간에는 상류에서부터 주공교 아래로 무명교, 정자교, 무명교, 석교, 무명교, 회합교 등 모두 7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7개의 다리 중에서 3개의 다리는 이름을 알 수 없다. 원래부터 별다른 이름이 없었거나 다리 확장 및 보수 공사 과정에서 다리 명판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옛 지도와 항공사진, 주민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이들 7개의 다리 중에서 주공교 바로 아래의 회원천북길과 연결된 무명교, 노산서26길과 연결된 무명교와 노산서24길과 연결된 작은 무명교가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그 뒤로 돌다리(석교)와 주공교, 정자교, 회합교가 차례로 설치되었다. 

이중에 주공교 바로 아래 다리는 회원동 마을과 옛날 못산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가장 중요한 다리였다. 현재는 왕래가 별로 없이 한적하다. 

이 다리에는 못산교라는 이름을 붙이면 좋을 것 같다. 

주공교는 회원동과 교방동 주공아파트단지를 연결하던 도로에 난 다리여서 붙은 이름이다. 

주공아파트는 재건축되어 벽산블루밍아파트란 새 이름을 가졌지만 다리는 옛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정자교라고 이름 붙은 다리는 공영주택과 정자나무숲을 연결하는 다리로 차가 다닐 수 없는 인도교이다.

그 아래 노산서26길과 연결된 무명교도 못산마을 아래 동네와 회원천 건너 들판으로 오가던 오래된 다리이다. 이 다리도 차가 다닐 수 없는 인도교이다. 

노산서25길과 무학상가아파트로 연결된 석교는 옛날에는 석재로 만들어져 돌다리로 불렸던 다리이다. 

현재 있는 다리는 1980년대 초의 홍수로 떠내려간 뒤 1983년에 콘크리트로 새로 놓은 다리이다. 석교 바로 아래의 이름없는 작은 다리도 오래된 다리이다. 

오래된 골목인 노산서24길과 연결되어 있지만 현재는 통행하는 사람이 적다. 

바로 아래의 큰 다리는 교방동과 회원동 일대를 연결하는 큰 도로가 개설되면서 만들어진 새 다리이다. 회원구와 합포구를 연결하는 다리라고 해서 회합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회합교 바로 아래에 오래된 다리 두 개가 나란히 있다. 

그중에 한 다리는 돌기둥으로 교각을 세운 돌다리이다. 

다리 한 귀퉁이에 한글로 침류교라는 각자가 새겨진 작은 화강암 표지석이 있는데 이를 통해서 꽤 오래된 다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침류교 표지석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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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7.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4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2

 

● 못산(못안, 모산)

회원동에서 무학농원으로 가는 중간지점에 있었던 마을의 이름이다. 옛날에 못이 있었다고 한다.

택지 개발로 옛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작은 골목길(회원남26길)에서 옛 마을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지만 그나마 최근 회원2지구 재개발사업으로 건물이 철어되어 골목 식별이 어렵다.

현재의 도로명주소로는 회원남26길, 회원남25길, 회원남31길 일대이다.

이 마을의 이름을 딴 모산상회라고 하는 쌀가게가 이십여 년 전까지 있었다고 한다.

 

● 회원천(檜原川)

 

1960년대의 회원천 하류 (마산시, 1965)

 

회원천은 무학산 북동쪽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앤지밭골, 회원동을 지나 상남동에서 교방천과 합류하여 오동동을 지나 마산만으로 흘러든다.

유로 연장 4.49㎞의 하천으로 상류는 경사가 매우 급하나 해발 고도 50m를 기점으로 경사가 완만해진다.

상류 구간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걸쳐 이뤄진 하천 바닥 공사로 인해 콘크리트로 덮여 있다.

회원천 하류에 1974년 건설되었던 오동동 아케이드 상가는 37년만인 2011년에 철거되었고 생태하천 조성 공사가 시행되었다.

회원천은 회원동과 교원동을 거쳐 흐른다.

이 일대에서 마을이 먼저 형성된 지역은 회산교 주변과 좀 위로 올라온 못산마을, 앤지밭골 등으로 모두 회원천변에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 하천 주변으로 모여들어 집을 짓고 우물을 파고 마을을 이뤘다.

무학산의 산비탈을 개간해 논과 밭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천변에 자연스레 솟는 샘의 물을 길어다 먹거나 우물을 팠다.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에 나가 물고기도 잡고 목욕도 하고 빨래도 했다.

쓰레기도 버리고 생활오수도 버렸다. 하천변 양 옆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면서 자연스레 길이 만들어지고 다리가 놓였다.

하천변의 큰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주어 사람들이 나와 쉬는 놀이터의 역할도 했다. 하천은 이처럼 지역주민들에게는 또하나의 중요한 생활공간이었다.

하지만 마산이라고 하는 도시가 팽창하면서 회원천도 몸살을 앓았다.

도시의 생활하수와 산업폐수의 배출통로가 되고, 도시개발로 복개되고 건천화되면서 악취가 진동하는 곳으로 변모해 버린지 오래되었다.

무학산 동사면의 산록에서 계곡을 따라 흐르는 회원천은 소하천이지만 경사가 급한 편이다.

큰물이 나면 순식간에 범람하여 도랑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수해가 자주 발생해 천변은 수해상습지역이었다.

1979년에는 ‘8.25수해로 인해 집이 유실되는 등 많은 피해가 발생해 일부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하천 직강 공사를 했다.

10년 전인 19699월에도 삼남지방 홍수로 서원골의 풀장이 터지면서 교방동과 상남동 일대에 큰 피해를 입혔고 회원천 주변에도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마산 창원지역의 사망자가 94명에 달했다. 1959년의 사라호 태풍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제강점기에도 하천의 홍수피해는 계속 발생했다.

회원천을 생명이 살아있는 물길로 되살리려고 하는 노력이 결실을 거둬 아주 오래 전처럼 맑은 수질을 회복해서 지역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생활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1979년 8.25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회원천변 (마산시, 1979)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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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31.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3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1

 

국가기록원, 동리구역변경지도, 1913

 

● 회원동(檜原洞)

회원동의 회원(檜原)은 의창현(義昌縣)의 별호(別號)였던 회산(檜山)의 회(檜) 자와 회원현(檜原縣)의 원(原) 자를 합성해 만든 지명이다.

 

● 교방동(校坊洞)

회원현의 향교(鄕校)가 있었기 때문에 교방으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회원현은 고려 충렬왕 8년인 1282년에 의안(義安)이 의창(義昌), 합포(合浦)가 회원(會原)으로 개칭되고 현령관(縣令官)으로 승격되었다.

그후 조선 태종 8년인 1408년에 의창현(義昌縣)과 회원현(會原縣)을 합해 창원부(昌原府)를 만들면서 독자적인 행정단위로서의 회원현은 사라졌다.

회원현으로 발족한지 126년만의 일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 존속했던 회원현의 치소(治所)는 추산(騶山)의 회원현성지(會原縣城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회원현에 향교가 설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다만 1604년에 처음 지어진 관해정(觀海亭)이 뒤에 서원의 역할도 했는데 바로 회원서원(檜原書院)이다.

회원서원은 1871년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질 때까지 존속하였는데 이 때문에 그 일대 골짜기를 서원골(書院谷)로 부르게 되었고, 교방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연유된 게 아닌가 한다.

 

● 교원동(校原洞)

교원동의 교원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방동과 회원동의 일부 구역을 분리하여 새로 교원리(校原里)를 만들면서 교방동의 교와 회원동의 원을 합성해 만든 명칭이다.<<<

 

1950년 12월에 촬영된 회원동 일대의 항공사진 (국토지리정보원, 1950)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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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24.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

1.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변천 - 2

 

순조 말기인 1832년경에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따르면, 창원도호부는 부내면(府內面), 동면(東面), 북면(北面), 남면(南面), 서면(西面) 5개 면을 두었다.

() 아래에는 운()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모두 16개의 운을 두었다.

부내면(府內面)에는 일운(一運)과 이운(二運)을 두었고, 남면(南面)은 도하일운(道下一運), 도하이운(道下二運), 도상일운(道上一運), 도상이운(道上二運), 도상삼운(道上三運) 5개의 운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동면(東面), 북면(北面), 서면(西面)은 각각 일운(一運), 이운(二運), 삼운(三運) 3개의 운으로 되어 있었다.

한편 남면 관할의 운에 나타나는 '도상(道上)', '도하(道下)'라는 명칭은, 창원도호부에서 안민고개를 넘어 웅천현의 보평역으로 가는 역로를 기준으로 남쪽을 '도하(道下)', 북쪽을 '도상(道上)'이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이중에서 서면삼운(西面三運)에는 구강리(舊江里), 회원리(檜原里), 교방동리(校坊洞里), 상남리(上南里), 오산리(午山里), 성산리(城山里), 서성리(西城里), 완월리(翫月里), 월영리(月影里), 두릉리(杜陵里), 내포리(內浦里) 11개 동()이 속리(屬里)로 속해 있었다.

서면삼운의 회원리(檜原里), 교방동리(校坊洞里)가 오늘날의 회원동, 교원동, 교방동 일대이다.

다음은 본 재개발 구역의 위치와 회원동, 교원동, 교방동으로 나누어져있는 현황도이다.

 

 

회원리(檜原里)는 일제강점기인 1910101일부로 창원부가 마산부(馬山府)로 개칭되면서 마산부 외서면(外西面) 회원리로 되었다가 1914년의 행정구역 통합으로 창원군 내서면(內西面)에 편입되었다.

1943101일부로 내서면 교방리, 산호리, 석전리, 양덕리, 창원면 봉암리, 구산면 가포리와 함께 마산부에 편입되었다.

해방 후인 1947720일에 마산시 고시로 회원동으로 개칭되었고, 마산시 조례 제393호로 197011일부로 회원1동과 회원2동으로 분동되었다.

199071일에 구제가 실시되어 회원구 회원1, 회원2동이 되었다가 20001231일에 합포구와 회원구가 폐지되면서 마산시 회원1, 회원2동이 되었다.

201071일에 창원시, 진해시와 통합하면서 마산회원구 회원1, 회원2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방동리(校坊洞里)191431일 마산부 외서면 교방리(校坊里)가 되었으며 1943101일 마산부 내서면 교방리로 편입되었다.

1949815일 마산시 내서면 교방동로 개칭되었다.

1958815일 시 조례에 의해 교방동이 행정동이 되었다.

199071일 구청제 실시로 마산시 합포구 교방동이 되었다가 200111일 구청제 폐지로 마산시 교방동으로 되었다.

201071일 통합 창원시 출범으로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교원동(校原洞)1913927, 외서면(外西面) 관할 리()의 구역과 명칭을 변경하는 경상남도의 도령에 따라 교원리(校原里)가 새로 설치되면서 출범하였다.

즉 당시 회원리(檜原里)의 일부(회원천을 건너서 교방리(校坊里)에 돌입한 부분) 및 교방리의 일부(중앙을 남북으로 횡단하는 성호리(城湖里)로부터 회원리로 통하는 도로 동쪽 부분)를 포함한 일대를 교원리(校原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따라서 교원리는 교방동의 교와 회원동의 원을 합성해 만든 명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마산부 교원리가 되었다.

1917년 발간된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에도 교원리가 나온다.

1949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마산부가 마산시로 승격되면서 경상남도 마산시 교원동이 되었으며, 1990년 합포구 신설로 마산시 합포구 교원동이 되었다.

1997512일에 교원동과 상남1동을 통합하여 행정동인 노산동을 신설하였다.

20011월 구제 폐지로 다시 마산시 교원동이 되었으며, 201071일 통합 창원시의 출범으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원동이 되었다.

교원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노산동 관할 하에 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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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17.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

오늘부터 포스팅하는 자료는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본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위치는 다음과 같다.

 

 

재개발사업의 명칭은 회원1지구이지만 이곳은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 등 3개 동에 걸쳐있다.

포스팅할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변천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3. 주민 아홉 분의 이야기

1) "새로운 희망의 터전을 꿈꾸며" ------------------------- 유○○

2) "동네 지킴이, 칠원쌀상회"------------------------------- 이○○

3) "삼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콩나물을 길렀다" ---------- 권○○

4) "한 집에서 46년을 살아오면서 " ------------------------ 김○○

5) "서민들 사는 보통 동네에서의 조용한 기쁨" ----------- 최○○

6) "사십 년을 살아온 제2의 고향" -------------------------- 조○○

7) "여기가 제2의 고향이지요" ------------------------------ 이창○

8) "서민들 살기좋은 동네" ---------------------------------- 심○○

9) "진짜 본토박이" ------------------------------------------- 배○○

 

 

1.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변천 - 1

현재 회원1구역은 행정구역상 창원시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 등 2개의 구와 회원2동, 교원동, 교방동 등 3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원동과 교방동은 마산합포구에 회원2동은 마산회원구에 속해 있다. 각 동별로 행정구역의 변천 과정을 간략히 정리한다.

현재의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 일대는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골포현(骨浦縣), 합포현(合浦縣), 회원현(會原縣)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조선시대 태종 8년(1408년)에 의창현(義昌縣)과 회원현(會原縣)을 통합해 창원부(昌原府)를 설치함으로써 이후 근세에 이르기까지 창원부에 속한 지역이었다.

 

<행정지명변천일람표, 마산시사, 2011>

 

조선시대에 지방 군현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면리제(面里制)가 시행되었다.

면리제는 중앙권력이 지방을 통치하기 위한 행정체제로서 부(府), 군(郡)과 현(縣)에 면이 소속되어 있었고 면을 또 여러 개의 리로 나누어 관할하는 방식으로 시행되었다.

면리제는 조선시대 지방행정제도의 근간으로서 지금도 그 기본틀이 유지되고 있다.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의 경우에도 5개 면(面)을 두었다.

면의 명칭은 대개 동서남북의 방위면(方位面)을 사용하였는데 창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정조 13년(1789년)에 간행된, 한성과 각 도의 호수와 인구수를 기록한 호구통계기록인 '호구총수 戶口總數'를 보면 창원부의 서면(西面)에 24개 방리(坊里)가 소속되어 있는데 그중에 회원리(檜原里)와 교방동리(校防洞里)가 이 지역의 옛이름이다.

교방동리(校防洞里)는 교방동리(校坊洞里)의 오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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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6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4 ● 주변이 온통 국화밭이었던 시절 마산은 오랫동안 국화의 도시로 유명했다. 지금도 매년 가을이면 국화축제가 벌어진다. 2014년에 제..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5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3 ● 회원천의 다리들 회원동과 교원동은 회원천을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왔다. 사람들이 양쪽을 오가기 위해서 자연스레 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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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1) 사업구역 내 삶터의 흔적 - 2 ● 못산(못안, 모산) 회원동에서 무학농원으로 가는 중간지점에 있었던 마을의 이름이다. 옛날에 못이 있었다고 한다. 택지 개발로 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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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

1.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변천 - 2 순조 말기인 1832년경에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따르면, 창원도호부는 부내면(府內面), 동면(東面), 북면(北面), 남면(南面), 서면(西面) 등 5개 면을 두었다.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

오늘부터 포스팅하는 자료는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 사업 &lsquo;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rsquo;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본 재개..

시·도 금고 관리는 탈석탄 금융기관에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공동대표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사를 포함해 총자산 규모가 4경 5000조 원(미화 39조 달러)에 이르는 전 세계 450개 기관의 투자가들은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신규 프로젝트 금융이나 투자 중단을 선언..

<조선토목사업지>의 마산 상수도

이 글은 1928년에 펴낸 <조선토목사업지>에 기록된 마산의 '상수도' 편이다. 초벌 번역이라 글이 거칠다. 마산은 경상남도의 제일 중요한 항구로서 내지 및 연안 항해선박의 중요 기항지이다. 또한 (항구의) 뒷편으로는 마산선과..

<조선토목사업지>의 마산항만

이 글은 1928년에 펴낸 <조선토목사업지>에 기록된 마산의 '항만' 편 번역문이다. 초벌 번역이라 글이 거칠다. 그림은 책의 표지와 목차이다. 마산항은 경상남도의 중앙 진해만의 가장 안쪽에 있다. 동경 28도 33분, 북위..

학봉 산악회 진주 비봉산 산행 2

2020년 6월 6일&sim;7일(금&sim;토, 1박2일) 참가회원 8명 : 김재현&middot;서익진&middot;정규식&middot;신삼호&middot;손상락(글쓴이)&middot;임학만&middot;신성기&middot;..

학봉산악회 진주 비봉산 산행 1

2020년 6월 6일&sim;7일(금&sim;토, 1박2일) 참가회원 : 김재현&middot;서익진&middot;정규식&middot;신삼호&middot;손상락(글쓴 이)&middot;임학만&middot;신성기&middot;허정..

새로움을 꿈꾸며 - 8 / 건설 안전

<안전사고 원인은 부패 &middot;&middot;&middot; 우리 안전한가?> 1995년 6월 29일 목요일 저녁, 경악스러운 긴급뉴스가 전국을 뒤덮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새로움을 꿈꾸며 - 7 / 사회적 가치

<모두의 행복을 위한 길 &lsquo;사회적 가치&rsquo;> 걱정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 자살률, 노인빈곤율 모두 세계 상위다. 2011년부터 OECD가 해온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

새로움을 꿈꾸며 - 6 / 면책

공직자를 춤추게 하는 &lsquo;면책&rsquo; 2016년 1월, 갑작스러운 폭설로 제주공항이 마비되었다. 예상치 못하고 공항으로 나온 승객들은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되었다. 공항 당국에서 모포와 편의 물품을 제공해주..

새로움을 꿈꾸며 - 5 / 건설 부패

부정&middot;부패&middot;부실의 대명사 &lsquo;건설산업&rsquo; 건축은 권력의 표상이었고 당 시대 문명의 상징이었다. 로마시대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문장력과 회화, 기하학을 건축가의 조건으로 들었다. 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