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춰진 도시이야기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7

by 운무허정도 2021. 3. 22.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10) "진짜 본토박이" ------------------------- 배○○

1941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604-2

날짜 : 2015년 1월 16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얘기부터 기억나시는대로 좀 해 주시지요.

= 바로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자랐지요. 6.25전쟁이 났을 때 내가 아홉 살 먹었는데 진해 웅천으로 피난을 갔거든요. 회원국민학교 입학 하고는 바로 피난을 갔어요.

거기로 피난 갔다가 석달만에 돌아왔어요. 그때는 여기가 전부 초가집이고 완전히 농촌이었지요. 농사 짓고 닭 키우고 소 키우고 완전히 농촌이었지요.

그래 기억나는 게... 군인들이 논에 엎드려 숨어 있고... 우리가 수류탄도 줍고 그랬거든요. 무엇인가 싶어서 주워보면 조그마한 단지처럼 생겼는데 그걸 도랑에 돌멩이 사이에 끼워놓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때 여기 미군들이 많았어요. 처녀들은 밖으로 못댕겼어요. 미군들이 건딜려고 해서... 그래서 우리 언니들도 막 숨겨놓고 그랬어요.

- 어릴 때 여기 사실 때는 이 동네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저 위 골짜기에도 마을이 있었지요?

= 여기는 그냥 회원동이라고 했어요. 저 앤지밭골 골짜기 거기는 전부 농촌이고 사는 사람도 스무남 집 정도 될까? 사람이 많이 안살았어요. 앤지밭골은 우리 아주 조그만 할 때부터 앤지밭골이라 했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네요. 앤지밭골에서 내려오다 보면 중간에 못이 있었거든요.

그 주변이 다 논인데 논 중간에 언덕이 있고 그 옆에 못이 있었는데 애 하나가 빠져죽고 난 뒤 그 못을 없앴버렸어요. 그게 언젠지 모르겠는데... 거기서 조금더 내려오면 거기가 못산이거든요. 그런데 못이 가운데 있으니까 못산인가 싶기도 하네요. 옛날에 못산쌀가게가 있었는데 없어진지 오래됐습니다.

그러니까 앤지밭골 밑 동네가 못산마을이고 그 다음이 우리 마을인데 이 마을은 그냥 회원동이라 했어요. 사람은 못산에 많이 살았고 앤지밭골에는 별로 많이 안살았어요.

- 지금 이 동네 안에서 제일 오래된 집은 어느 집입니까? 옛날에는 다 초가집이었지요?

= 주변이 다 논밭이고 집들은 다 초가집인데 어쩌다가 기와집 하나 있고... 초가가 점점 없어지고 쓰레트로 바뀌었다가 쓰레트 없어지고 슬라브 올리고 그랬어요.

우리 이 집도 옛날에 조그만 기와집이었어요. 지금 집들이 다 오래됐지요. 아직도 집이 옛날 그대로이지요. 요 앞에 골목도 옛날 그대로고 입니다. 내나 우리 쪼깬을 때 그 골목이고... 집도 다 농사 지어 묵던 집 그대로 이지요. 조금씩 수리해서 살다가 재개발 한다는 소리 듣고 수리도 안하고 그대로 살다보니 옛날 그 집 그대로 입니다.

물새는 집도 있고... 얄굿습니다. 요 밑에 골목으로 조금 가면 옛날에 풍수하던 사람 집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씨라서 이풍수라고 불렀어요. 사람도 죽고 다 어디로 가버리고 지금은 빈집입니다.

또 그 골목 끝에 돌깨는 돌쟁이 집이 있었는데 집도 뜯겨나가고 빈터 뿐입니다. 옛날에 이 동네에는 송씨, 허씨들이 많이 살았는데 다 어디로 가고 없어요.

- 앞에 이 골목이 거의 동네 한가운데 있는데 옛날에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 내나 골목이지요. 우에 골목, 아래 골목... 어른들이 그리 부르대요. 여기 우리 집 있는 데는 아래골목이고, 우에 골목은 연탄집 위에 있는 거기가 우에 골목이고... 그리고 동네 골목, 여기가 또랑인데 지금은 복개를 안보이지만 개울이지요.

지금은 다 덮어놔서 안보이지만 또랑 따라서 공동새미가 졸졸하이 네 개나 있었어요.

- 그럼 지금 회원천이라 부르는 저 하천은 어릴 때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 큰또랑이라고 했지요. 우리 동네 여기는 작은 또랑이라고 하고... 작은 또랑은 지금 복개를 해서 덮어놨지만 지금도 그 밑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요.

옛날에 우리가 빨래 하러 큰또랑 갔다 아닙니까. 큰또랑 가면 물이 펑펑 내려오니까 거기 앉아서 빨래 하고 그랬지요.

- 예. 물이 깨끗했겠네요?

= 옛날에는 앤지밭골에 마을이 있어도 더러운 거는 논으로 다 갔지 또랑으로 꾸중물 내려오고 그런 거는 없었거든요.

물이 맑았어요. 무학산 물이 참 좋고 그랬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못해요. 똥물보다 더 더러워서... 비 좀 왔다 하면 다리가 떠내려 갈 정도로 여기에 물이 많았어요.

물이 깨끗할 때는 송사리 같은 조그만 물고기도 있었고 가재도 있었고 고동도 있었어요. 새까맣고 쪼깬 고동... 삶아서 꼬리 끊어 빨아 먹던 그 고동도 있었는데...

- 그러면 서원골 쪽으로는 빨래 하러 안갔습니까?

= 갔지요. 거기 가면 나무 주워와서 불 피우고... 옛날에는 다 알미늄 니무 대아거든요. 그 대야로 빨래 삶아 가지고 깨끗하게 빨아서 큰 바우에 널어놓고 냄비에다가 밥 해 먹고 놀고... 그랬다 아닙니까.

하하 재미 있었지요. 여기 큰또랑은 빨래를 해도 빨래 널 큰 바우 같은 게 없거든요. 거기는 우리가 놀기삼아 어불리서 갔다 아닙니까. 하하 그때가 좋았어요.

- 또랑 건너 둥구나무(아래 사진) 있는 데는 옛날에는 어땠습니까?

= 우리 쪼매할 때부터 있던 정지나무가 지금까지 있는 겁니다. 정지나무 원 둥치는 죽고 옆 가지가 살아있거든요. 누구든지 회원동 정지나무라 하면 다 찾아왔어요. 택시도 알고 전부가 다 알았어요.

어릴 때 보면 큰 정지나무가 있는데 노인네들이 거기 누워자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또 옛날 노인네들이 거기서 제 지내고 그랬거든요. 깨끗한 사람이 제를 지내야 되거든요.

부정 타면 안된다고 상주도 못보고 아무도 못봐요. 그런데 지금은 제도 없고... 옛날 노인들 다 돌아가시고 나니까 술꾼들, 노름쟁이들만 모이쌌대요.

- 아, 거기서 제를, 그러니까 동제를 지냈다고요? 그럼 동제를 언제 지냈습니까? 정월에?

= 그때가 우리 처녀 시절인데... 그때가... 정월에 안지내고 가을이든가? 춥도 덥도 안할 때니까 가을입니다.

정월하고 팔월에는 안했어요. 동네에서 그 나무가 전통있는 나무라고 해서 거기다 오만 거 다 차려놓고...

 

 

- 제를 아주 크게 지냈던 모양이죠? 언제까지 제를 지냈습니까?

= 옛날 노인네들이 크게 지냈지요. 상주거나 추접은 사람은 부정탄다고 거기에 못가고... 회원 마을 사람은 다 모였으니까 큰 행사였지요.

떡도 하고 돼지도 잡아서 동네에 다 갈라먹고 그랬어요. 건구도 치고... 제 안지낸지가 삼십년도 넘었것 같네요. 내가 의령으로 시집 갔다가 보리 숭년지고 난 뒤 여기로 다시 이사를 왔는데 그때까지도 제를 지내더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열아홉살에 시집을 의령으로 갔다가 스물두살에 여기 내려왔어요. 신랑은 군에 가버리고 아들 하나 낳아가지고 보리숭년이 져서 여기 내려왔는데 그때까지 제를 지내더라고요.

내가 스물세살까지... 지금 내가 칠십네 살이니까 한 사십일 년이나 이 년 되는가 보네요. 노인들이 차차 돌아가시니까 누가 할 겁니까? 할 사람이 없는데... 옛날 노인들이 돌아가시고 나니 할 사람이 없어요.

- 당시에 이 마을에는 사람이 얼마나 살았습니까?

= 어릴 때 이 동네에는 많이 살았지요. 또랑 건너 하고 합하면 한 백 집?

이 동네만 해도 지금 있는 것만 백 집 되지요. 회원동 마을이 크거든요. 저 건너편에는 일본놈 말 키우는 창고가 있었는데 거기가 새한아파트 됐어요.

- 거기 창고는 어떻게 되어 있었습니까?

= 소 키우는 것처럼 일본놈들 말을 쭉 매어놓고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말 지켜주고 말 밥 먹여주고 그랬다고 하대요. 그 한참 뒤에 말 창고 뜯은 그 자리에 새한아파트가 들어섰어요.

- 이 동네에 당시에 절은 없었습니까?

= 우리 쪼맨할 때는 돌산이라 하는 데에... 돌산이 교방동에 들어가는데, 저 위에 육일약국 있지요? 그 건너편부터 주공아파트 그 위로는 돌산이라 했어요. 돌이 많다고 돌산이라 했어요.

그 돌산에 절이 하나 있었어요. 지금까지 있는데 절 이름이 잘 생각이 안나네요. 옛날에는 절에 간다 하면 돌산 절에 가고 그랬지요.

- 옛날에는 동네마다 조그만 공장이 많았지 않습니까?

= 또랑가 둥구나무 밑 쪽에 작은 장갑 공장이 있었고 또 바로 밑 교원동에 우피 공장이 있었어요. 소가죽을 벗겨서 그 껍데기를 고아가지고 부리풀 만들었어요.

그걸 부리풀이라 하든데 그게 고무신 만드는 공장에도 가고 또 어디에도 가고... 그걸 또 녹여서...

- 그러니까 부리풀은 아교를 말하는 거군요? 접착제로 쓴 거지요?

= 소가죽을 가져오면 그 속살은 삶아먹기도 하고 그랬지요.

제비산 밑에 도치막이 있었어요. 또 우리 동네에 정미소는 또랑가 정자나무 밑에 있었어요. 우리 처녀 땐데 거기 하던 사람이 배씨라서 배씨 정미소라 그랬어요.

둥구나무 바로 밑에 다리 딱 건너면 거기 있었는데... 그럴 때 미군들이 많았어요.

- 그럼 그 당시가 전쟁 때이군요. 정미소, 장갑공장, 우피공장...

= 그리고 방장 공장이 있었어요. 요 앞에 작은 또랑 건너가 교원동인데 거기에 있었지요.

그때 우리가 열여섯 살, 열일곱 살 먹었을 처녀 시절인데, 거기서 방장도 만들고 마스크, 손수건도 만들고 이랬어요. 그 공장 했던 사장이 이만열이란 사람입니다.

또 그때는 일본 있다 나온 사람들이 요꼬를 많이 하대요. 우리 집에서도 방을 세 놓으니까 그 작은 방 사람이 요꼬를 짜더라고요. 그때 가정집에서도 기계 하나 가지고 요꼬 짜고 많이 그랬어요.

- 옛날에 이 근방에서 국화도 많이 키웠지요?

= 하우스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리고 저 위에 무학농장이라고 있었는데 포도, 배, 복숭 이런 거 하던 농장인데 마산에서 최고로 큰 농장이었지요. 과일나무가 있고 그 농장 안에 여관도 있고 하니까 사람들이 놀러 많이 갔지요.

해치 하면 농장 안에 가서 하고... 그 농장 주인이 말을 타고 내려오면 동네가 딸깍딸깍 했구마는...

- 농장 주인 성씨가 뭐였습니까?

= 천씨였는데 회원동에서 최고로 부자였어요. 농장에서 말 타고 내려오면 동네가 들썩들썩 했지요.

영감쟁이가 멋이 있었는데... 그 뒤에 한일합섬에서 사서 소도 키우고 짐승도 키우고 그러다가 한일합섬에서 또 어디 팔았다고 하던데... 몇손을 넘어간 모양이더라고요.

- 그럼 무학농장은 언제 생긴 것 같습니까?

= 우리 쪼맨 했을 때도 있었으니까 오래 됐을 거예요.

우리 오빠가 살아 계시면 팔십네 살인데 오빠가 그 농장에 댕기고 할 때 우리가 쪼맨했으니까요. 농장이 한 마을을 다 차지해 있을 정도로 큽니다. 지금도 젖소 키우고, 오리 식당, 닭백숙 식당도 있고 그렇습니다.

- 어릴 때는 밑에 시장이 없었겠네요?

= 옛날에는 시장 한번 가려면 부림시장까지 가야 되는데, 다라이 이고 갔다오면 멀었지요. 그전에는 회원동 전체에 시장이 없었어요. 시장이라고는 부림시장 밖에 없었지요.

어시장은 멀다고 잘 안가고... 북마산역 앞에 쌀장사들이 좀 있었고 그 건너편에 소전걸이 있었고... 한참 뒤에 북마산 중앙시장 들어서고 또 철길 있는 데도 시장이 생겼는데 장사가 최고 잘 된단다고 그래요.

부림시장은 죽었는데 여기는 아파트 들어오고 사람이 많이 끓으니까요.

- 그리고 이 동네는 큰 부자집이 있다든지 그런 것도 없이 다 비슷한 형편이었던 모양입니다.

= 우리 어릴 때야 다 농사 짓고 사니까 농사를 많이 짓는 사람이 부자인데... 비슷비슷 했지요.

그중에서 좀 많이 지은 집이 송씨 집이었어요. 큰 집, 작은 집, 졸졸하이 집을 지어 살았는데 송씨 부자집이라 했거든요.

- 그러면 그 송씨들이 지금도 살고 있습니까?

= 옛날에 좀 부자로 살면 애들이 대학까지 나와서 다 서울로 어디로 가버리니까... 집 팔고 터값만 받아먹고 다 떠났지요. 옛날 부모들 살던 집은 허물어지고...

- 그럼 이 동네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집은 어느 집입니까? 동네는 얼마나 오래 됐다고 들었습니까?

= 얼마나 오래 됐는지 모르지요. 내 알기만 해도 백 년이 넘는데 몇백년 됐는지는 알 수가 있습니까?

그래도 삼대 사대 그렇게 오래 산 집은 없어요. 옛날 사람들은 전부다 동네 떠나고 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 옛날 농사 짓던 헌집을 사서 들어온 사람들이지요. 이 동네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이... 나 하고 바로 이 밑에 사는 내 친구, 이미숙이라고 있는데 그 친구도 토백이입니다.

바로 옆에 살아도 동으로는 그 친구는 교원동이고 나는 회원동입니다. 그리고 노원호 씨라고 내하고 두 살 차이인데 동네서 같이 자란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나 하고 내 친구 하나 하고 세 사람이 토백이이네요. 나머지는 전부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뭐 말 한마디 하면, 토백이값한다, 이럽니다. 하하하.

이 동네 완전 본토박이는 세 사람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이사 가고 없어요.

- 예. 말그대로 진짜 본토백이군요. 그러면 부모님들은 뭘 하셨습니까?

= 내나 농사 지었죠. 우리 아버지 고향은 밀양이고 분성 배씨인데 우리 어머니는 진양 강씨이고요.

우리 형제가 오빠가 다섯 명이고 내 위로 언니 다섯 명, 내 밑에 여동생 남동생 있제 하니까 열 명도 넘었어요. 옛날에는 생기는대로 낳으니까 열 명도 넘었는데 인자 다 돌아가시고, 언니 하나, 내 밑에 동생 둘 뿐입니다.

- 이 동네서 나서 지금까지 살고 계신데 재개발 한다니까 마음이 어떠십니까?

= 재개발 되면 어쩌겠어요. 돈 쪼매 내주면 가도오도 못할 건데... 요새는 일억오천은 줘야 조그만 집이라도 산다고 하던데... 사람들은 재개발 되면 전부 촌에 터 사서 집 지어서 간다고 하고, 여기 아파트 들어와 살 사람이 거의 없어요.

지금 여기는 전부 늙은 사람 뿐이지 젊은 사람 없거든요. 젊은 사람은 다 나가 있고 나이 많은 사람들 밖이거든요. 지금 우리 동네 이 근처에 집이 일곱 채가 비어 있어요.

터 값만 삼천만 원 받은 집도 있고 사천만 원, 육천만 원 받은 집도 있지만 빙돌아 다 비어 있습니다. 덕방 하는 사람들이 사가지고 아파트 들어서면 팔려고 하다가 팔년이나 구년이나 썩히고 있는 데도 있어요.

재개발 되면 할 수 없지. 어디로 가게 될런가, 어찌 될런가... 앤지밭골로 가 터를 좀 사서 집 지으려고 해도 터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엄두도 내기 힘들어요.

앤지밭골이 큰 도시가 됐어요. 옛날에는 앤지밭골이 골짜기였는데 지금은 절이 두 개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양옥집을 지어 놓고 잘 돼어 있더라고요. 거기는 공기 좋고 물도 좋고 해서 살아보고 싶은 곳인데 잘 될런가 모르겠어요.<<<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모두 27회 포스팅했다. 이 편이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