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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531

마산항지(1926년) - 34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8. 러일의 국교단절 러일간의 기압이 갑자기 내려가 국교가 단절된 것은 명치 37년(1904) 2월 10일, 청황의 선전포고 때부터다. 이에 앞서 오사카상선회사의 시라카와마루(白川丸)는 한국 동남연안의 정기선으로 어느 날 마산에 입항한 그 배에 한 외국인이 타고 있었는데, 중국 산동성 지부(芝罘)에 가서 일본함대의 주력이 마산포의 전면인 진해만을 점거하고 있음을 전보로 알렸고 이것이 외국 신문에 게재되어 우리 해군은 크게 놀랐다. 곧바로 각 선박의 진해만 출입을 금지하여 해상 경계는 아주 엄격해지고 실리도와 견내량에는 탐조대를 설치하고 우편기(郵便旗) 깃발을 달고 각 어장을 순항하는 순라선(巡邏船)을 빼고는 어선이라도 빠짐없이 검문토록 했다. 이 바람에 마산거류민은 일상생활품의 공급이 .. 2023. 1. 30.
마산항지(1926년) - 33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5. 일본인 거류민회의 성립 일본인회 이사인 센고쿠 간쿠로(仙石勘九郞) 씨가 고질인 결핵이 악화되어 이사직의 자퇴를 요구해오니 평의회는 이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고 후임 후보자로 미야하라 가네유키(宮原兼行) 씨를 선태했다. 미야하라 씨가 수임 의사를 표명한 그 평의원회가 개최된 날은 명치 36년(1903) 1월 11일이었다. 그때 센고쿠 이사는 귀신의 호적부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동포 입주자는 점점 늘어나 거류지, 중앙부, 마산포를 통털어 100호, 200여 명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의원회는 일본인회 회규가 협소하고 동포 통일의 불편을 느껴 이 조직을 일본인거류민회(日本人居留民會)로, 이사를 거류민회 민장(民長)으로 고치고 주민 호구장부의 조제 및 기타.. 2023. 1. 23.
마산항지(1926년) - 32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3. 각국거류지의 첫 장날(初市) 명치 35년(1902) 8월 3일은 음역 6월 30일에 해당되니 거류지의 첫 장날임을 각지에 선전하며 시장터를 마산영사관에서 아래로 내려온 현재의 혼마치 네거리 주변 일대로 정했다. 선전 노력의 효과가 났는지 지방시장 상인의 출점이 꽤 많았으며 사방 주위의 손님도 상당수가 모이고 동포들은 첫 시장을 경축하려 상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제공하니 그들도 좋아하고 앞으로 더 성대해질 것 같았다. 한편으로 정기장을 잃게 된 구강(舊江) 민중들은 크게 분노하여 이전에 반대하고 그것의 회복에 분주하거나 혹은 감리서에 압박을 넣거나 경성 정부에까지 운동하기도 했다. 또한 시장의 이전으로 재산까지 없어진 자가 나오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새 시장을 연 지 20여 회 즉 .. 2023. 1. 16.
마산항지(1926년) - 31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저자가 일본인이므로 여기서 '동포'란 마산 거주 일본인을 말한다. 1, 일본인회의 조직 명치 32년(1899) 5월 1일의 개항 당시 우리 일본 동포로서 마산포에 거류한 자는 야마모토 고조(山本好藏), 스미다 마사키치(隅田政吉), 하마다 린조(濱田林藏)와 그 외 2~3명에 불과했다. 미곡상인 나가사키(長崎) 현 사족 출신의 마츠바라 하야조(松原早藏) 씨가 본거를 부산의 친형 마츠바라 도모조(松原友藏) 씨 집에 두면서 창원읍내에 임시로 살며 가을에 미곡 매출로 왕래하는 일 외에는 부산영사관 마산분관원 2~3명과 경찰관 2명이 있을 뿐이었다. 같은 해 11월 3일 제1회 각국거류지 경매 이래 마산의 좋은 입지와 산수의 풍광명미함이 강지에 선전되어 이주자도 역시 점점 늘어나 동 33년(190.. 2023. 1. 9.
마산항지(1926년) - 30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13. 전관거류지(專管居留地)의 협정 성립 6월 10일, 사카타 영사와 한 감리와의 교섭결과 가협정이 이루어져 서로 조인해서 교환했다. 〔일본전관거류지 가계약서〕 1. 전관거류지의 연간 조세는 일시적으로 일본정부 소유지에만 부과하도록 한다. 1. 한국정부 소유지 및 민유지는 예산상 바로 매수할 수가 없으므로 당분간 현상을 유지해 다른 외국인에게 팔거나 필려주지 않을 것. 1. 도로 및 구거(溝渠)는 미매수지 전부의 매수가 끝날 때까지 조세를 가하지 않을 것. 1. 전관지 북쪽 경계성 부근의 교차하는 곳은 실검(實檢)하고 일본전관지 내에 있는 한국정부 소유지과 교환해야 할 것. 1. 마산포에서의 악한과 무뢰배의 정황을 한국인 손에서 수사할 수 있게 정찰원을 상시 배치시킬 것. 1. 창원감리서.. 2023. 1. 2.
마산항지(1926년) - 29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12. 일본 기생(藝妓)이 폭행 당하다 러시아 소코프 영사가 오랫동안 군함 안에서 집무하여 해상영사관이라 불리었다. 그 후 현재의 혼마치(本町) 4정목에 있는 러시아인 소유의 일식 건축 민가를 빌려 쓰고 있더니, 올해 3월 중에 현재 다이마치(臺町)의 우리 영사관 남족에 위치한 소나무 숲 언덕에 신축사업을 설계했다. 건축 재료인 연와는 작진등 아래 해변가에서 구워내었다. 5월ᅟ하순에 준공하여 6월 1일에 낙성식을 그 관내에서 치루었다. 이에 앞서 우리 일본 동포들은 모두 마산포란 누추한 곳에 살고 있었기에 사카타 영사는 거류지에로의 이주를 권유했다. 이에 호응하여 첫 번째로 거류지에 이주한 이는 술, 차 검도, 궁도, 생화, 요리, 조원(造園), 바둑 등 각종 기예에 통달한 호리에 다마노신.. 2022. 12. 26.
마산항지(1926년) - 28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10. 러시아의 율구미 경영 마산포 사건은 위에서 서술한 경과를 통해 해결하고 러시아는 기어코 율구미 땅을 러시아제국의 전관거류지로 선언하며 바로 시설의 경영에 나섰다. 러시아의 운송선은 여순 혹은 블라디보스톡 방면에서 건축자재를 가득 싣고 왕래하며 러시아 동양함대의 육상사령부, 숙소, 장교 집회소, 하사관 집회소 등의 위치가 점차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병사들이 시설의 기초토목 공사에 소요될 연와(煉瓦)를 굽는 가마에서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 광무 신축(辛丑) 5년(1901) 즉 명치 34년 3월 3일, 소코프 영사가 우리 영사관에 와서 율구미 경영에 따른 공사를 맡아줄 업자의 알선을 의뢰해왔다. 이에 바로 이마즈 가키치(今津嘉吉), 오카모토 유우(岡本勇) 두 사람을 소개하여 계약이 성립.. 2022. 12. 19.
마산항지(1926년) - 27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8. 각국거류지 제2회 경매 이달(광무 4년, 1900년 4월) 30일 각국거류지 제2회 경매가 행해졌는데 러시아의 경매사도 단(壇) 밑에 섰지만, 제1회와 같은 희한한 가격은 나타나지 않았을 뿐더러 실하게는 원가 그대로 경락되거나 비싸도 10배 정도나 2~3할 높은 범위 내에서 멈춰졌다. 이는 러시아가 해군 근거지 경영을 율구미로 변경한 것이 한 원인이 되겠지만 또 다른 원인은 각국거류지의 위치는 진해만으로부터 부도수도(釜島水道)를 통해 마산만에 깊이 들어간 데 있고 선박 운행에 불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 장래가 바람일지 비일지 혹은 눈일지 안개일지 앞날이 막막하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9. 율구미(栗仇味) 논쟁과 그 해결 5월 1일 사카타(坂田) 영사는 임관을 알릴 겸 율구미의.. 2022. 12. 12.
마산항지(1926년) - 26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7. 한로조약(韓露條約)과 러시아 영사의 난폭함 이보다 앞서 3월 3일에 러시아의 파블로프 공사는 경성 정부와 아래와 같은 조약을 체결했다. 1. 한국정부는 새로 개항한 마산포 거류지에서 거리 2리 이내에 있는 율구미만(栗仇味灣)에 러시아 동양함대를 위한 석탄 저장소 및 해군병원 한 군데를 건설하기로 한다. 2. 러시아는 한국에 대해 결코 거제도 및 그 대안 육지와 아울러 부근의 여러 섬에 대해 조차를 요구하지 않는다. 3. 위 지역 내에서는 한국은 결코 다른 나라로부터의 조차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4월 11일 러시아의 마산 주재관 소코프(러시아 외교관으로 서울 주재 러시아공사관에서 근무하다가 1900년 3월 마산포 주재 러시아 부영사로 부임하였다. 마산포에 상주하면서 대한제국 남부.. 2022. 12. 5.
마산항지(1926년) - 25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6. 괴이한 러시아인의 잠꼬대 광무 경자(庚子) 4년(1900) 즉 명치 33년 3월 18일, 우라지밀 미스첸코(미센코, 마산포 개항 후 이주한 러시아 상인. 각국거류지 내의 대지주의 한 사람으로 신동공사(紳董公社, municipal office)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러시아 군함과 수병에 대한 잡화 및 식료품 소매를 하면서 거류지의 토목 건축 등의 공사 청부도 추진했다.)라는 러시아인이 느닷없이 나타나 현 마산포 사이와이마치(幸町)에 있는, 러시아 해군 식량품 조달을 하는 오카모도 유우(岡本勇) 씨 집에 머물렀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너무 크게 부풀러지기도 하고 혹은 시시콜콜하기도 하여 믿을 수 없는 것이었으나 다음의 일절만은 당시 러시아인이 반도를 삼켜버리려는 꿈을 꾸고 있었다는 소.. 2022. 11. 28.
마산항지(1926년) - 24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5. 난폭한 러시아의 토지 유린 제1회 거류지 경매에 5개월 앞서 7월 2일, 경성의 러시아공사관 서기관 스타텐(슈테인, 師德仁, 당시 러시아공사관의 서기관 겸 통역관) 씨를 태운 군함 코레츠(코레예츠 호, 1886년 취항한 러시아제국 해군의 포함(砲艦). 1904년 2월 9일 일본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벌어진 제물포 해전에서 폭파된 후 자침하였다) 호가 마산에 입항하여 창원의 안(安) 감리를 코레츠 호로 유인하여 토지 매수의 알선을 강요하며 자복동으로 동행해 소요지를 답사, 측량하고 경계 표식을 세웠다.(참고자료-당시 경계 표식도, 아래 도면) 그러나 그 땅에는 하자마(迫間) 씨가 이미 히로시 세이조 씨를 시켜 매루토록 한 토지, 갈대밭을 합쳐 약 2만 평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 러시아.. 2022. 11. 21.
마산항지(1926년) - 23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4. 각국거류지 제1회 경매 이후 각국거류지의 정리는 차차 진척되어 광무 3년(1899) 11월 1일에 제1회 토지경매가 진행된다는 고시가 나왔다. 그 지역은 A호 제1지구에서 35소구획이고 총면적 약 9,131평, 즉 3만185평방미터이며 이는 전체 면적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해병에 연해 있어 장래가 촉망되어 일본, 러시아 양국은 물론 기타 외국인에게도 희망자가 많다고 전해졌다. 그 외의 지역은 오늘날에는 극히 중요지 되지 않는 현재의 하마마치(濱町) 해안로에서 혼마치(本町) 2-5정목(丁目) 남쪽 일대다. 이 경매에 참가하거나 관람하기 위해 10월 30일 일본 우선(郵船) 부산지점장 시마무라 아사오(島村淺夫), 경매사 오이케 츄스케(大池忠助) 외 2~3명이 작은 기선 이쿠쇼마루.. 2022. 11. 14.
마산항지(1926년) - 22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3. 일본의 토지 매수 상황 돌이켜 우리 일본의 토지 매수 상황을 회고해 본다. 홀연히 키 큰 괴한이 한복(韓服)을 입고 성긴 수염을 단채 나타나 각 리, 각 동에 출몰하니 그 신분을 사람들은 의문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누가 보아도 한인과 아무런 차등이 나타나지 않으나 그 말투와 거조를 주의 깊게 바라보면 순 한국인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야음을 이용해 혹은 폭풍우 날에도 신출귀몰하게 활동했으니 범상한 일이 아니었다. 영사관 분관의 고쿠부(國分), 와타나베(渡邊), 두 통역관 중의 한 사람과 한둘의 사복 순사는 그를 미행했다. 그는 한인의 집을 방문하자 인사를 잘하고 큰 소리로 이야기할 때도 있었으며 한 번도 화를 내는 법이 없이 아주 재미있는 인물 같았다. 이 괴한이 바로 오.. 2022. 11. 7.
마산항지(1926년) - 21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1. 각국거류지의 정리 광무 3년(1899) 5월 1일 마산 각국거류지의 수수(授受)를 완료한 부산세관은 바로 마산출장소를 창원감리서의 별실에 설치하여 거류지 사무의 정리에 착수하였다. 이때 우리 일본 정부도 역시 마산에 부산영사관 마산분관을 두고 외무(外務) 서기생(書記生) 가와마치 다츠이치로(川上立一郞, 1888년부터 부산영사관에서 근무하던 일본 외교관. 마산포 개항이 결정되자 1898년 4월 마산포로 와서 영사관 부지 선정 등의 조사를 했다. 1899년 마산포 개항 후 부산영사관 마산분관 주임이 되어 마산분관이 영사관으로 승격될 때까지 있었다. 1900년 10월 원산영사관 성진분관으로 옮겨 1902년 9월에 대리영사가 되어 1906년 1월 영사관 폐지 때까지 있었다) 씨를 분관 주임으.. 2022. 10. 31.
마산항지(1926년) - 20 - 건권(乾卷) / 제5장 근고사(近古史) 제5장 근고사(近古史) 6. 마산항의 개방 26세 희왕(熙王, 고종)은 국제관계를 고려해 사대주의를 일소하고 청국 숭배한 병폐를 고치려 했다. 조선의 국호를 대한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태양력의 사용을 선언하고 단발령을 내리며 건양(建陽)이란 연호를 쓰고 다음 해에 광무(光武)로 개원하였다. 이듬해인 광무 2년 무술(戊戌, 1898)년 5월 26일, 한국 정부는 우리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마산항과 함경북도 성진, 전라북도 군산을 자유항으로, 평양을 자유시장으로 개방할 것을 국제사회에 선언하였다. 이로써 창원항인 신마산포에 창원감리서(昌原監理署)를 두고 창원부윤 안길수(대한제국 시기의 관료. 1898년(광무 2) 고부군수로 부임하여 전임 군수 조병갑이 설치한 만석보(萬石洑)를 철거하였다. 마산포.. 2022. 10. 24.
마산항지(1926년) - 19 - 건권(乾卷) / 제5장 근고사(近古史) 제5장 근고사(近古史) 4. 마산의 이름 유래 히데요시 전쟁(임진왜란)이 끝나면서 곳곳에 역병이 유행하여 창원성(昌原城)이 있는 오산진(午山津)에서는 날마다 송장이 산더미를 이루는 참상을 보였다. 오십인총, 삼십인총, 이십인총 등이 도처에 나타나 살아남은 노인들이 상의해 풍수사(風水師)를 불러 신의 마음을 헤아리게 했다. 신에 빙의한 풍수사가 이르기를, 오산의 오(午) 자는 오래 산다는 길한 자인데 저주받은 이 땅에서 그 글자를 씀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샀느니 라고 했다. 상의 끝에 오(午) 자는 말 마(馬) 자와 동의어라 오산을 마산으로 고치기로 하니, 이것이 오늘날 마산부 이름의 유래(당시 민간에 떠돌던 하나의 속설로 보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세종 7년(1425)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 2022. 10. 17.
마산항지(1926년) - 18 - 건권(乾卷) / 제5장 근고사(近古史) 제5장 근고사(近古史) 3. 사추마군(蕯軍, 융군)의 호랑이 잡이 기록(搏虎錄) 가고시마(鹿兒島)에서 출판된 『시즈노오다마키』(倭文麻環-아래 그림)란 책에서 창원을 차왕(茶碗)이라 기재한 박호록(搏虎錄)의 기사가 있는데 창원의 발음이 잘못 전해진 것 같다. 호랑이를 잡은 곳은 현재의 창원군 내서면 회원리에서 회성리에 이르는 지역의 산악으로 그 중심은 봉화대(烽火臺) 산 부근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그 전문의 초록을 실으니 참고자료로 해 주기 바란다. 분로쿠(文祿) 원년(1592) 임진년 히데요시 정한의 역(役)이 일어났을 때 사츠마(蕯摩)의 성주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는 아들 히사야스(久保)와 더불어 참전하여 조선해의 거제도 북쪽 곶에 축성하여 수궁 방어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거제도는 일면 가라섬(韓島.. 2022. 10. 10.
마산항지(1926년) - 17 - 건권(乾卷) / 제5장 근고사(近古史) 제5장 근고사(近古史) 1. 이씨조선의 흥기 고려 말 함경도 함흥 사람, 이, 즉위 후 단(旦)을 자(字)로 스는 성계(成桂ㅡ 아래 사진) 병마사(兵馬使)가 왜구를 전라도 운봉현(雲奉縣) 병산(屛山)에서 물리치고 점점 세력을 키우더니 스스로 삼군 도통사(都統使)가 되어 급기야는 고려조를 무너뜨리고 반도 천하의 통일을 이룩해 왕위에 올랐다. 이 인물이 이찌조선(李氏朝鮮)의 시조왕(始祖王)으로 즉위하니 그 해를 개국기원 원년으로 정한 그때는 일본 99대 고가메야마(後龜山) 천황 즉위 9년 임신(壬申, 1392)년 7월이었다. 이 왕실이 그 후 약 5백 년간 계속하여 마지막 무렵 대한(大韓)으로 개조하여 왕위 대신 황체라 칭하였는데 얼마 가지 않아 대한민국은 그 모든 것을 명치 대황제에게 바치고 나라를 일본 .. 2022. 10. 3.
마산항지(1926년) - 16 - 건권(乾卷) / 제4장 중고사(中古史) 제4장 중고사(中古史) 6. 왜구의 침해 원나라의 정동전쟁이 끝나고 약 70년이 지난 왜구의 침해하는 국난이 고려에 또 일어나게 되었다. 왜구란 무엇인가? 소위 일본의 해전 무리에 대해 원과 고려인들이 호칭하는 바, 왜(倭)는 야마토라고 읽고, 야마토국의 해적이란 의미가 된다. 가마쿠라 막부의 집권직 호조 다카토키(北條高時)가 겐코우(元弘) 원년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이 남쪽 지방에 사냥 행차한 틈을 타서 고후시미(後伏見) 천환의 아들 료인(量仁) 친왕을 옹립해 즉위하게 한 이래 국내는 남복조로 나뉘어 그 기간이 문란해기며 세상은 어수선해져 영웅할거의 전국시대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때를 놓쳐 관직에 오르지 못했던 호족은 일족과 부하들을 이끌고 바다에 나가 스스로 해적대장군이라 칭하며 그 약탈은 지나(支.. 2022. 9. 26.
마산항지(1926년) - 15 - 건권(乾卷) / 제4장 중고사(中古史) 제4장 중고사(中古史) 4. 스와오카미(諏方大神)의 기서(奇瑞) 몽한려(蒙漢麗)의 침공군은 분에이(文永), 고안(弘安)의 양 전쟁에서 폭풍우 때문에 고민에 찾는데, 당시 이것은 나가노(長野) 지방과 스와오카미(諏方大神)가 불어낸 신풍(神風)이란 소문이 자자했다. 스와오카미란 태고적 이즈모(出雲) 왕조의 주권자 오쿠니누시노미코토(大國主神)의 아들인 다케이나가타노미코토(建躬名方命)를 신으로 모신 것인데 부신 및 형신인 고토시로누시노미코토(事代主尊)는 다카마가하라(高天原) 왕조의 명에 따라 영토를 고스란히 갖다 받쳤는데 다케이나가타노미코토는 혼자 이에 반대하여 그 군대와 싸우다 패배해 나가노 산중까지 쫓기어 마침내 항복했다가 그 자리에 눌러앉게 된, 국토 애석(哀惜)의 신이기도 하다. 그 지방에는 누지나무(梶.. 2022. 9. 19.
마산항지(1926년) - 14 - 건권(乾卷) / 제4장 중고사(中古史) 제4장 중고사(中古史) 3. 제2차 정동전쟁(征東役) 신사(辛巳, 1281) 충렬왕 즉위 7년, 곧 일본 91대 고우다(後宇多) 천황 고안(弘安) 4년 정월 정동원수부(征東元帥府)는 합포로 이전하여 신첨군(新簽軍, 새로 징발해 평성한 군대. 원나라는 주로 정복지역의 이민족으로 이 군대를 편성해 참전시켰다) 1만5천은 함안의 파수고개(오기 - 巴嶺, 고려사의 기록에는 巴嶺이 아니라 절령(岊嶺)이다. 절령은 황해도 서흥군에 있는 험한 고개로 고려 원종 11년(1270)부터 충렬왕 16년(1290)까지 원 나라와의 경계였다. 충렬왕 7년(1281) 1월 28일 을축 기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정동행성에서 첩문을 보내어 신첨군 1만5천 명의 식량 및 대군이 절령에서 합포에 이르기까지 말에게 먹일 자료를.. 2022. 9. 12.
마산항지(1926년) - 13 - 건권(乾卷) / 제4장 중고사(中古史) 제4장 중고사(中古史) 2. 정동군(征東軍)의 출발지 이에 앞서 원의 세소제는 이미 남송(南宋)의 왕실을 움직여 무위(武威)는 사방으로 드날렸으나 오직 일본열도 제국만은 의연하게 동행 우뚝 서서 대치하는 모습은 마치 원나라가 일어난 것을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이에 따라 수차례 선유사(宣諭使)를 보내어 조공을 재촉했던 것이다. 당시의 가마쿠라바쿠후(鎌倉幕府)의 집정직에 있던 호조사가노미노카미 도키무네(北條相模守時宗)는 강인하고 과단력 있는 성격의 인물이라 원나라에서 사신이 올 때마다 그 서한의 존대 무례함을 힐책해서 그 사신을 방축 시키거나 참살까지 해서 답서를 주지 않았다. 쿠빌라이는 화를 내며 일본을 정복하기로 결정하여 새로이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을 세워 원나라의 종왕(宗王)을 그곳의 좌승상.. 2022. 9. 5.
마산항지(1926년) - 12 - 건권(乾卷) / 제4장 중고사(中古史) 제4장 중고사(中古史) 1. 내우외환 마산의 중고시대는 고려왕조 시대에 있고 마산 지방이 아직 고려의 판도에 들어가기 전 즉 경진(庚辰) 고려 건국 3년(920), 겨울 10월, 백제의 재흥을 꾀하던 견훤은 신라를 침범하여 지금의 합천 옛 땅인 다라(太良), 현 마산과 창원의 옛 당인 구시(仇史), 현 김해군 지방인 진례 및 기타 여러 군을 탈취했다. 병신(丙申, 936) 고려 건국 19년 가울 9월, 고려 시조인 왕건이 통일을 이루고 경자(庚子, 940) 고려 건국 23년 봄 여러 군현에 새로운 제도를 시행할 때 합포현을 세우고 19세기 명종 7년, 정유(丁酉,1177)에 환주산의 합포현성을 크게 확장하여 동남도병마절도사를 병치하였다. 24세 원종 왕 이전부터 왜구 즉 일본해적은 반도의 남해에 출몰해 .. 2022. 8. 29.
마산항지(1926년) - 11 - 건권(乾卷) / 제3장 상고사(上古史) 2. 일본 황실의 대한책(對韓策) 우리 조정 수진(崇神) 청황 시대부터 반도 동남변에서 일어난 동종 민족인 시라발(斯良原) 즉 신라왕국이 일본 황실의 멍에로부터 벗어나려고 해, 황군 및 왜한국은 이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수십 년 간 전투를 계속해 왔다. 그간 금한(金韓) 왕자인 소나가시치(蘇那葛朱智), 아라한(安良韓) 왕자 츠노가시치(都怒葛朱智) 가 입조해서 애소하기도 하고 가시라(金首露)인 시호노리츠히코(潮乘彦命)가 파견되어 임나한(任那韓)이란 신흥국이 나오기도 했다. 약 2백 년 동안 신라를 조용히 다스렸으나 완강한 신라는 다시 대두하여 진구황후(神功皇后, 진구황후가 신라에 군대를 보내 굴복시켰다는 소위 삼한정벌설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동시대의 삼국지나 삼국사기와 같은 사른 사서에는 없는 왜.. 2022. 8. 22.
마산항지(1926년) - 10 - 건권(乾卷) / 제3장 상고사(上古史) 제3장 상고사(上古史) 1. 고시가라(古志加良) 이름의 연유 마산의 역사는 창원군의 그것과 분리해서 기술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재의 마산부 전부는 거의 창원군 외서면의 일부분이며 그 위치는 창원군치의 거의 중앙부에 있어서 창원의 배 속에 싸여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방의 상고사(上古史)를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재료는 없지만 중국의 고사기록인 위지(魏志), 위략(魏略), 한서(漢書) 등과 일본의 고사서인 고사기(古事記), 구사기(舊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아래 사진)에 따르면 반도에는 마한국(馬韓國)이 있었는데 그 세력 범위 안에 진한(秦韓) 및 변한(弁韓)이 있어 합쳐서 삼한(三韓)이라 불렀다. 그 동남 경계에 삼한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고시가라국(古志加良國)이 있으며 일본신화의 태고로부.. 2022. 8. 15.
마산항지(1926년) - 9 - 건권(乾卷) / 제2장 영광에 찬 마산의 산과 바다 4. 융희 황제의 행차 명치 42년(1909) 즉 대한 융희 2년(3년의 誤植) 1월 10일, 부왕인 광무(光武) 황제의 선양을 받으신 한황 이척(李坧)폐하는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남쪽 순행(순종황제는 1909년 1월 7일부터 13일까지 대구, 부산, 마산을 순행했는데 이를 남순행(南巡幸), 1월 27일부터 2월 3일까지는 평양, 신의주, 의주, 개성 등지를 순행했는데 이를 서북순행(西北巡幸)이라 했다) 길에 올라 부산에서 철도로 마산으로 오시고 마산 이사청을 행재소(行在所)로 삼으셨다. 이에 앞서 어가(御駕)가 남순 하신다는 소식에 관계당국은 밤낮 가리지 않고 봉영(奉迎) 준비에 분주하고 청록의 물방울이 그려진 큰 봉영문(奉迎門)이 마산역전, 교마치2정목, 반룡교 부근(현 교바시, 京橋), 동 1.. 2022. 8. 8.
마산항지(1926년) - 8 - 건권(乾卷) / 제2장 영광에 찬 마산의 산과 바다 3. 동궁 요시히토(嘉仁) 친왕의 광림(台覽) 금상(今上) 천황 다이쇼(大正, 1879~1926, 재위 1912~1926) 폐하가 아직 명치 대제의 동궁(東宮)으로 있을 때, 명치 40년(1907) 10월 22일 마산의 풍광을 보러 오신 영광은 만대의 역사를 빛나게 할 터. 당일 마산의 관공민의 열렬한 환영의 모습은 나의 메모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0월 13일 아리스가와노미야 다케히토(有栖川宮威仁) 친왕, 윤군대장 가츠라 타로(桂太郞), 해군대장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이와쿠라 도모사다(岩倉貝定),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등 제씨와 동궁 직원들이 모신 동궁친왕 전하는 군함 가토리(香取)에 승선하여 한국 황실을 방문하는 목적으로 군함 가시마(鹿島), 이와테(磐手), 도키와(常磐), 아사마.. 2022. 8. 1.
마산항지(1926년) - 7 - 건권(乾卷) / 제2장 영광에 찬 마산의 산과 바다 제2장 영광에 찬 마산의 산과 바다 1. 고려 충렬왕의 행사(行幸) 마산은 원래 합포로 불려 왔는데 이 명칭은 현재의 마산 행정구에 한정되지 않고 마산만 연안 전부에 대한 호칭이었던 것 같다. 그 관할은 현재의 창원군 내서면 회원리에 그 중심을 두고 진성(鎭城)은 현 마산부 자산동에 있는 환주산(還珠山, 현재의 추산 騶山)에 그 폐허(會原縣城址- 아래 사진)가 남아 있다. 몽고의 호족 출신으로 원나라 왕조를 세운 쿠빌라이 황제 홀필열(忽必㤠)은, 징기스칸의 손자로 그 위망이 높고 주변국을 정복하여 그 조공을 받던 터. 고려 25세 충렬왕(忠烈王)을 부마(駙馬)로 삼고 반도를 그 영토에 넣었다. 이미 남송을 통하여 일본의 동향을 알아보도록 했는데, 일본은 파견된 사신을 받지 않거나 죽이기까지 하면서 원 왕.. 2022. 7. 25.
마산항지(1926년) - 6 - 건권(乾卷) / 제1장 마산항의 대관 제1장 마산항의 대관 3. 지질(地味)과 수질 마산 부근 일대의 땅은 대체로 제3기층에 속하며 산이나 계곡에는 화강암 혹은 그 결정편암이 노출되어 돋아난 데가 많다. 해변의 평야는 대개 충적층이므로 지질은 비옥하다. 그러기에 해변 제방 안의 소금기 많은 논밭 이외에는 쌀과 보리와의 이모작, 혹은 보리와 소채류 교대작의 수확이 있다. 산에는 큰 나무가 없어서 울창하지는 않지만 묘역이나 기타 특별히 보호의 손길이 미치는 데는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느슨한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관공사유지(官公私有地)로서 남벌금지구역 혹은 총독부 임정(林政) 방침을 따르는 조림지 등에는 나무가 울창하게 땅을 덮게 된 몇 년 후에는 마산 육군 군용림 등 일부에서는 송이버섯이 생육하기도 한다. 이십여 년 .. 2022. 7. 18.
마산항지(1926년) - 5 - 건권(乾卷) / 제1장 마산항의 대관 제1 마산항의 대관 2. 날씨(風信)와 기온 마산에는 아직 측후소가 설치되지 않아 겨우 부청이나 기타 한두 개의 불완전한 사설 기관이 있을 뿐이다. 여름에는 남풍이 불며 때로는 유쿠(琉球, 오키나와) 방면에서 일어나는 폭풍우, 곧 태풍이 내습하여 나무를 꺾어버리고 집을 날려 버리는 참혹한 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낙동강 연안의 수리조합이나 농장 등의 경작지는 물이 범람하여 누런 호수가 되며 수확이 전무한 흉년을 호소하기도 하며 교통기관의 운전이 방해되기도 한다. 그래도 북에는 산이 있고 남으로 경사져 있는 마산에서는 과거에 이와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수해지에 식량이나 연료, 피난용구, 배, 예방약품 등을 공급, 구제하는 일이 예사다. 혹서(酷暑)는 7월 중순부터 8월 하순까지이며 최고 화.. 2022.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