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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639

마산항지(1926년) - 83 - 곤권(坤卷) / 제10장 창원군청 제10장 창원군청 미야코마치(都町) 1정목에 있다. 창원군(昌原郡)의 행정 및 재정을 집행, 관리하는 곳이다. 별실에는 토목관구(土木管區) 및 군농회(郡農會)가 있다. 창원군청이 무슨 이유로 마산부 관치 내에 있는지 의심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 이유는 군내에는 청사를 세울 만한 마땅한 곳이 없다는 점, 그리고 그 위치가 군치(郡治)의 거의 중심점이라는 점에서 군민의 편의를 도모했기 때문이다. 이는 가고시마(鹿兒島) 군청이 가고시마 시에, 기타아이즈(北會津) 군청이 와카마츠(若松) 시내에 있는 이치와 같다. 창원군은 융희 2년 즉 명치 42년(1909)의 지방제도 개정으로 인해 창원, 웅천, 진해(현재의 진동)의 3군과 김해군 대산면, 진주군 양전면, 칠원군 구산면을 합쳐서 창원군을 설치한 데 기인한다. 융.. 2024. 1. 22.
마산항지(1926년) - 82 - 곤권(坤卷) / 제9장 사직기관 제9장 사직기관 1.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 토오리마치(通町) 4정목에 있으며 정문은 미야코마치(都町) 3정목으로 열려있다.(아래 사진) 한국정부 시대의 재판소는 지방군수의 권한에 속해 왔지만, 명치 41년(1908) 사법제도의 개선에 따라 마산포는 창원감리서 내에 마산구(馬山區) 재판소를 두고, 법무보좌관으로서 판사 오쿠보 우타하후(久保歌治) 씨가, 감독서기 요시나리 긴타로(吉成欽太郞) 씨, 통역 겸 서기 우에노 에이스케(上野榮助) 씨와 함께 착임하여 청사를 마산포, 현재의 도미마치(富町)에 있는 일어학교 교사로 이전했다. 다음 해 명치 42년(1909) 봄에 부산지방법원 마산지부가 설치되어 판사 이우라 요시히사(井浦義久), 검사 신도오 간자부로(新藤寬三郎) 두 사람이 착임하여 현재의 다이마치(臺町)의 .. 2024. 1. 15.
마산항지(1926년) - 81 - 곤권(坤卷) / 제8장 경비기관 제8장 경비기관 1. 마산경찰서 미야코마치(都町) 2정목에 있으며 대정 10년(1921) 10월에 신축의 낙성식을 올렸다.(아래 사진) 당초 일본영사관 경찰은 각국거류지 경찰서를 아울러서 이사청의 맞은편, 현재의 도모에마치(巴町)에 있는 각국거류지 경찰서 건물을 빌려서 썼으며 명치 38년(1905) 중에 마산경찰서의 표패(表牌, 현판)를 내건 것이 그 시점이다. 그 후 점차 개축, 발달하여 오늘에 이른다. 당시에는 통영에 분서를 두고 함안 칠원, 창녕, 영산 네 곳의 경관주재소를 관할하였다. 그 후 경상남도 내에는 부산 이외에 진주에만 경찰서의 설비가 있어 마산서장은 진주서장과 경찰부장을 겸임한다는 등의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마산이사청이 진주에 지청을 두고 부이사관을 주재하게 했던 시대의 일이라 .. 2024. 1. 8.
마산항지(1926년) - 80 - 곤권(坤卷) / 제7장 금융기관 5. 내서금융조합 대정 11년(1922)에 설치되어 마산포 신마치에 주소를 두고 있다. 그 내용은 창원군 내서면 일대를 목적으로 하는 농촌조합으로서 총독부에서 교부된 최저리 자금은 1만5천 원에 불과하다. 또한 조합원의 출자액은 1건당 20원이며 대출은 금 200원을 한도로 한다. 변제는 반드시 현금이라야 할 필요 없이 농산물의 수확을 시가로 계산하여 대신 갚을 수가 있는 간편법이 있다. 예입금은 정기예금, 당좌예금이란 점에서 도시조합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당 조합은 명칭이 가리키듯이 내서면 내에 세워두는 것이 당연하나 군부(郡部)에서는 교통이 불편하고 사무소를 차릴 말한 가옥도 없으니 마산부 내에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대정 12년(1923)도의 제1회 총회에서 구마산, 마산포의 양 도시조합에 가입할.. 2024. 1. 1.
마산항지(1926년) - 78 - 곤권(坤卷) / 제7장 금융기관 제7장 금융기관 1. 민간대차금리(民間貸借金利) 내지인 사이에서는 저당이 있는 보통의 대차(貸借)는, 하루 이자는 최저를 금 4전으로 하고 최고 10전을 탐하는 것은 고리대에 속한다. 한 달 이자로서는 확실한 부동산을 저당 잡고 2% 내지 3% 사이에 있는 것이 보통이다. 내지인이 아닌 선인에 대해서는 심지어 3.5% 이상, 5% 까지의 고리가 있다 한다. 그런데 요사이 교활한 선인 중에는 그 저당 부동산에 관해 타인 명의의 우량한 논, 밭 등을 실제 보여주고는 자기 소유의 열악한 전답을 등기하고, 기한이 되어도 고의로 변제를 무시하여 저당권실행을 신청시켜 경매로 싼 가격에 경락시킴으로써 채권자에게 손해를 주는 자도 있다. 혹은 고리로 돈을 빌려 변제하지 않고 소송을 통해 제한이자를 청구토록 하는 짓들의.. 2023. 12. 18.
마산항지(1926년) - 77 - 곤권(坤卷) / 제6 숭경신앙기관(崇敬信仰機關) 8. 통도사 포교당(通度寺布敎堂) 대정 6년(1917, 마산포교당은 1914년 5월에 설립되었다)에 조선 제1위의 선교(禪敎) 두 종파의 대본산인 경남 양산군 영취산(靈鷲山) 통도사의 대화상(大和尙)인 김구하(金九河) 스님은 기독교가 왕성한 데 반해 조선불교가 부진한 것을 분개하여 이 포교소를 마산포 신마치(新町) 대로에 지었다. 수시로 선인(鮮人) 신도가 모이고 당번 스님이 설교를 하도록 하며 구하 스님도 역시 스스로 오셔서 법의(法義)를 사자후로 토하셨다. 불교 유청년을 교화하려고 옆에다 배달(培達) 강습학당을 설치도 하였지만 그 주동인 통도사 스님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 마침내 구하 스님이 은퇴하기에 이르도록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어 학당의 실적은 볼 만한 것이 없게 되었다. 9. 기독교 완월동에 .. 2023. 12. 11.
마산항지(1926년) - 76 - 곤권(坤卷) / 제6 숭경신앙기관(崇敬信仰機關) 6. 죠도신슈 니시혼간지하 쇼간지(淨土眞宗西本願寺派勝願寺) 마산 유미마치(弓町) 2정목에 있으며 개교사(開敎使) 제1세이던 히다카 닷케이(日高達契) 스님이 떠나고 나서 제2세 기타미네 기조(北峯義淨) 스님이 절을 지키고 있다. 히다카 닷케이 스님은 명치 37년(1904)에 마산에 오고 러시아인 소유였던 현 마산우편국 맞은편에 철도감부 마산반이 빌려 쓰던 빈집에 들어가 개교하기 시작했다. 송진포에 있는 진해방비대에 정기적으로 포교할뿐더러 오사카매일신문의 통신원으로서 그 판매 확장에도 종사했다. 본산에서 오는 선물도 배척할 만큼 일불일체(一佛一體) 주의를 종규(宗規)로 완고하게 지킨 분이다. 명치 43년(1910)에 포교소의 전세집이 해약되어 한때 마산포 현 신마치로 이전해 있다가 귀향하게 되었다. 이때 기.. 2023. 12. 4.
마산항지(1926년) - 75 - 곤권(坤卷) / 제6 숭경신앙기관(崇敬信仰機關) 4. 소도슈우 마이즈루산 후쿠쥬지(曹洞宗舞鶴山福壽寺) 당 산사를 여신 이는 현재 사가(佐賀)현 니시마츠우라(西松浦)군 하타추(波多津)에 있는 요오주인(養壽院)의 주직이면서 동종의 순회포교사인 이데료오고(井手良梧) 스님이다. 스님이 조선 개교사로서 마산에 와서 여장을 홍법사(弘法寺) 미츠미야 류우코오(三宮隆晃坊) 암자에 풀고 신도를 소개받아 토오리마치(通町) 4정목의 민가에 가설포교장을 연 것은 명치 42년(1909)이었다. 알뜰하게 운영한 결과 신도의 기부금과 본산에서의 교부금을 받아 사원의 부지를 현재의 완월동 지역에 구입해 마침내 객전을 신축함에 이르렀다. 스님은 온후독실한 분이며 종지(宗旨) 여하를 막론하고 내외의 신망이 높아 양수원(養壽院)으로 귀산(歸山)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마산을 떠날.. 2023. 11. 27.
마산항지(1926년) - 74 - 곤권(坤卷) / 제6 숭경신앙기관(崇敬信仰機關) 제6 숭경신앙기관(崇敬信仰機關) 1. 신도(神道) 신도는 종교와 달리 우리 제국이 개벽 이래 내려오는 조상 숭배에 기초한 것이며 국민이 의거해 앞으로 나아갈 천지를 관통하는 천하의 대도(大道)이다. 그래서 국혼(國魂)을 망각하지 않은 국민은 아침저녁으로 마산신사를 참배해, 이세태묘(伊勢太廟)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절을 한다. 황실의 안태함과 국가의 융성함을 기원하는 동시에 본인이 오늘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절하는 자가 마산항민 가운데 대체 얼마나 될까. 그래도 여러 종교의식을 거치며 석가모니와 그리스도와 거리를 두려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보니 신도(神道)의 마음이 아직 연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볼 때 약간이나마 마음이 든든해진다. 2. 니치렌슈 릿쇼잔 묘코쿠지(日蓮正山妙國寺) 일련종 가운데 미노.. 2023. 11. 20.
마산항지(1926년) - 73 - 곤권(坤卷) / 제5장 통신기관 제5장 통신기관 1. 마산우편국 판임관급(判任官級)의 체신서기(遞信書記)장을 삼는 2등위(二等位)의 마산우편국은 1등위의 부산우편국의 관할에 속한다. 3등위의 지방의 우편소도 역시 부산국의 감독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마산에는 마산우편국 이외에 모토마치, 미야코마치에 두 우편소가 있다. 어느 곳이든 영어와 조선 언문(諺文)의 전신 의뢰도 하며, 특히 모토마치 우편소의 경우에는 금전출납, 어음의 수불(受佛), 저금의 입출, 우편물의 집배 등 대마산국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미야코마치 우편소는 우편물 집배는 하지 않고 소포, 어음, 저금 등도 받기만 하고 지불과 배달은 하지 않는다. 2. 전화 교환국은 마산국(馬山局) 내에 있으며 구식기계를 사용하며 가입자에게 석 달을 1기(期)로 하고 금 21원의 통화.. 2023. 11. 13.
마산항지(1926년) - 72 - 곤권(坤卷) / 제4장 보건(保健) 의사(醫事) 산파(産婆) 2. 의원(醫院) 의사(醫士) 의사기관(醫事機關)이 마산에 마련된 것은 명치 37년(1904) 중이며 미우라 야고로(三浦彌五郞) 영사의 초빙으로 제대(帝大) 출신 의학사 아사미 쇼이치(淺見庄一) 씨가 와서 개업하였는데 얼마 있지 않아 러일전쟁에 군의(軍醫)로 소집되어 버렸다. 동년 중에 다시 제대 출신의 의학사 도쿠나가 고이치(德永吾一) 씨를 초빙했다. 당시 조선에서 의학사의 개업이란 마산, 부산, 경성의 세 곳뿐이라 크게 마산의 자랑거리였던 것이다. 도쿠나가 의학사는 대정 13년(1924) 초에 그가 이끄는 사립마산병원을 금 3만 원으로 마산부에 매각하고 본인은 토오리마치(通町) 4정목에 은둔하며 약국을 갖추지 않고 진찰하고 처방전만 줄뿐이며 평소에는 낚시나 하고 온천, 광천을 탐사하는 데 소일했다. .. 2023. 11. 6.
마산항지(1926년) - 71 - 곤권(坤卷) / 제4장 보건(保健) 의사(醫事) 산파(産婆) 제4장 보건(保健) 의사(醫事) 산파(産婆) 1. 사회 위생 무릇 사회나 집단을 조직함에 있어서 일반위생이라는 것은 공중이 각자의 책임으로 제 마음대로의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세상에는 생각이 짧은 사람들이 많아 부청과 경찰서는 매번 협의하여 부내를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날짜를 잡아 봄가을에 두 번의 대청소를 실시하고, 또한 봄가을에 종두의 접종을 강제하고 있다. 늦봄에서 초겨울까지는 임시로 파리박멸행사도 장려했으나 아무리 해도 효과는 나지 않는다. 특히 마산포 방면에서는 위생관념이 결여한 선인, 지나인(청국인)과 어울려 사는 것에 더하여 농업자도 섞여서 비료에서 발생하는 파리 알은 온돌에 살아남아 겨울철에도 남쪽 창에 날아오르곤 한다. 또한 마산부에서는 나날이 십 수 명의 인부.. 2023. 10. 30.
마산항지(1926년) - 70 - 곤권(坤卷) / 제3장 운수 교통기관 4. 해운의 기기선(汽機船) 조선우선(朝鮮郵船) 회사의 조선 서해안 항로로서 부산을 기점으로 목포, 여수, 거제, 삼천포, 통영, 웅천을 왕복하는 기선은 하루에 5번 반드시 마산포 및 마산의 양 부두에 기항하며, 또한 부산을 기점으로 하고 여수를 종점으로 하는 조선기선회사의 순객(純客) 급항선(急航船)인 하토마루(鳩丸) 하야부사마루(隼丸)의 두 기선도 그 왕복에 반드시 이 두 부두에 들린다. 오사카상선회사 소속으로 오사카, 고베, 오노미치(尾道), 간몬(關門), 부산을 거쳐 마산을 종점으로 하는 기선은 화물에 무게를 두고 매월 수차례 왕복하는데 이 배의 손님과 화물을 취급하는 곳은 아래와 같다. 하마마치 1정목에 있는 홋타가이소부(堀田回漕部)는 조선기선을 취급. 혼마치 3정목에 있는 부산상선조(釜山商船組.. 2023. 10. 23.
마산항지(1926년) - 69 - 곤권(坤卷) / 제3장 운수 교통기관 3. 국철(國鐵) 진창선(鎭昌線) 진해 군항 시가지를 기점으로 진해면 경화동을 거쳐, 대정 10년(1921) 중 일본 호쿠리쿠(北陸) 지방의 건설회사로 진해 가메지마쵸(龜島町)의 도키와쇼카이(常磐商會) 주인 마츠오 시게노부(松尾重信) 씨가 약 126만 원으로 청부해 파고 뚫은 연장 6천 피트 즉 2마일 10야드의 장복터널을 지나 창원군 상남면 사파정(沙巴丁) 역, 웅남면 삼동(三東) 역을 경유하여 국철 마산선 창원역에 연접하는 노선이다. 본년 즉 대정 15년(1926) 11월 11일에 개통할 예정이다. 대정 16년(1927) 4월 벚꽃이 만개할 때가 좋다고 창원군에서는 개통 축하와 벚꽃 선전을 겸해서 경남의 2부(府) 19군(郡) 연합의 농산품 대공진회를 진해에서 개최하기로 해, 마산에서는 양조 일본 술.. 2023. 10. 16.
마산항지(1926년) - 68 - 곤권(坤卷) / 제3장 운수 교통기관 2. 사철(私鐵) 경남선(慶南線) 대정 13년(1924) 12월 1일에 제1기선인 마산, 군북 20마일을 개통하고 동 14년 6월 15일에 제2기선인 군북, 진주 간 24 마일을 개통했다. 조선철도회사가 경영하는 것인데 마산역 구내에 출장소를 마련하고 몬덴 가츠타로(門傳勝太郞) 법학사를 소장으로 해당 철도의 일체 사무를 보게 하는데 오직 승차권의 출개찰(出改札)과 화물취급은 편의상 철도국 마산역에 위탁하고 있다. 원래 본선은 고베의 스즈키쇼텐(鈴木商店)이 기획한 것으로 고슈경철도(五州輕鐵)의 변형으로 총 자본금 1천만 원에 남조선철도회사(南朝鮮鐵道會社)가 건설에 착수했던 것이다. 동 회사는 대정 9년(1920) 중에 창설하여 본사를 경성에 두고 있었으나 동년 말에 이것을 마산으로 옮겨 역구내인 미나토마치.. 2023. 10. 9.
마산항지(1926년) - 67 - 곤권(坤卷) / 제3장 운수 교통기관 제3장 운수 교통기관 1. 국철(國鐵) 마산선(馬山線) 러일 교전 중이던 명치 37년(1904) 8월 우리 육군 군사전용으로 도키오 젠자부로(時尾善三郞) 대좌(大佐)를 반장으로 한 철도감부(鐵道監部) 마산반이 급히 건설한 것이며, 다음 해 6월 6일 개통축하식을 거행했다. 당초에는 경부선에서의 분기점인 삼랑진과 기점인 마산 사이에는 오직 진영, 창원이란 두 역만 있었다. 이즈음 전쟁이 종국에 가까워지자 군사 목적으로만 운수를 할 필요가 없게 되어 그해 11월 1일에 마침내 일반 민중에게 개방되어 편승을 자유롭게 한 것이다. 역사(驛舍, 아래 사진의 오른쪽 건물)를 현재의 하마마치(濱町, 현 월포동) 1번지에 지었으며 얼마 있지 않아 통감부 철도관리국에 이관되고 그 후 남만주철도회사에 그 영업을 위탁했다... 2023. 10. 2.
마산항지(1926년) - 66 - 곤권(坤卷) / 제2장 교육 기관 6. 배달(培達) 강습학당 신마치대로(新町通)에 있는 통도사(通度寺) 포교당(布敎堂)의 서쪽 옆에 있다. 통도사 시설로 사회교화 사업인 유청년들의 초등교육을 목적으로 대정 12년(1923) 5월 22일에 낙성식을 올렸다. 그러나 통도사에서 주관한 김구하(金九河) 스님에 대한 배척운동 등이 일어나 그 교육내용은 아직 충실하지 못해서인지 실적은 볼 만한 것이 없다. 7. 사립 창신학교(私立 昌信學校) 상남동 사기노스오카(鷺巢丘 노소구, 노비산) 밑에 있으며 호주 장로교회가 이끄는 학교다. 영국인 선교사 맹호은(孟晧恩, 마크레-매크레이(Rev. FJ. Macrae, 1884~1973), 호주 장로교 선교사. 1910년 내한. 서부경남에서 선교하다 1915년 마산으로 와서 제3대 창신학교 교장, 문창교회 목사 .. 2023. 9. 25.
마산항지(1926년) - 65 - 곤권(坤卷) / 제2장 교육 기관 4. 공립마산상업학교 상남동에 있으며 도로를 사이에 두고 구마산 역사와 마주하고 있다. 지방세의 지원을 받아 세워지게 되었다. 대정 11년(1922) 4월 25일에 개교했다. 현 교사는 개교 당시 초대 사이토 하루야(齋藤晴治郎) 교장 때 동년 겨울에 현재의 위치에 3천240평의 토지를 매수하고 총 경비 금 4만3천9백 원의 예산으로 공사를 시작, 다음 해 5월 말일 굉장한 양식 2층 건물 교사와 온돌식 기숙사, 기타 부속건물, 대운동장 등이 낙성되었다. 다음 날, 6월 1일 이시마치(石町)에 있던 야학회의 임시교사(구 마산민의소 자리의 사립노동야학교 교사를 가교사로 사용하다가 상남동 신축교사로 이전하였다)에서 이전하여 다음 달에 관민 약 백 명을 초대해 순정한 다과의 향연으로서 낙성식을 거행한 것이다. .. 2023. 9. 18.
마산항지(1926년) - 64 - 곤권(坤卷) / 제2장 교육 기관 3. 공립마산보통학교 신마치대로(新町通)에서 백수십 걸음의 성호동 지역 내의 조망이 좋은 위치에 있으며 오로지 조선인 아동을 교양하는 초등 정도의 학교다. 명치 41년(1908) 즉 융희 2년 3월 10일 한국황제 이척(李拓) 폐하의 생신날인 건원절(乾元節)이란 길일을 잡아 신축 낙성식을 한 교사(校舍)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 후 몇 번이고 증축을 거듭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된 것이다. 교정 안쪽에 있는 2층의 큰 교사는 대정 12년(1923) 말에 낙성하였고, 수용 학생 수는 현재 22학급으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동 총수는 1천381명이며 이 중에서 여학생은 348명이다. 당초 교사 별실에는 간이농학교(簡易農學校)가 병치되었는데 허영심이 높은 선인 아동들은 항상 농업자를 멸시하는 경향이 있어 수용 .. 2023. 9. 11.
마산항지(1926년) - 63 - 곤권(坤卷) / 제2장 교육 기관 2. 공립마산고등여학교 미야코마치(都町) 2정목에 있다. 대정 4년(1915) 4월 1일, 마산소학교에 병치되어 6월 1일에 입학식을 거행하고 동년 11월 14일에 현재의 위치에 교사 낙성식을 올린 공립마산실과고등여학교의 후신이다. 대정 14년(1925) 4월 1일에 고등여학교의 인가를 받아 22일 개교와 더불어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바로 교사를 증축했음에도 수용 학생이 해마다 증가하니 대정 12년 중에 2층 건물 4개 교실을 신축했다. 그래도 대정 15년(1926)에 이르러 다시 1백여 명의 신입생이 있어 또다시 2층 건물에 붙여서 4개 교실을 증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운동장으로 사용할 교정은 점점 좁아져 학생들의 활동에 지장이 생기게 되었다. 현재의 수용학생은 8학급을 통틀어 1학.. 2023. 9. 4.
마산항지(1926년) - 62 - 곤권(坤卷) / 제2장 교육 기관 제2장 교육기관 1. 공립마산심상고등소학교 토오리마치(通町) 1정목에 있다. 명치 37년(1904) 1월 6일 공립마산심상소학교로서 현재의 하마마치(濱町) 3정목의 신교사에서 개교식을 열었다. 정토종 개교사 미스미다 지몬(三隅田持門) 스님이 사설한 마산포 일본인소학교를 병합시켜 사가현(佐賀縣) 사범학교 출신인 오가타 치요사부로(緖方千代三郞) 씨를 교장 겸 훈도로 초빙하여 그해 6월 6일 해외소학교의 승인을 받았다. 거류민단제 시행시에 고등과를 병치하여 오카타 훈도를 구마산 분교 주임으로 보내고 사가 현 사범교 부속 소학교장인 나카지마 데이지로(中島訂治郞) 씨를 본교 교장으로 초빙, 훈도 다케시타 아키라(竹下智), 훈도 무라이 아이(村井あい) 두 사람과 함께 교편을 잡게 했다. 나카지마 교장이 인천으로 전.. 2023. 8. 28.
마산항지(1926년) - 61 - 곤권(坤卷) / 제1장 개황 일반 마산항지 곤권(坤卷) 제1장 개황 일반 마산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하다. 천지건곤의 영기가 응어리진 무학산을 북에 이고, 수려한 마산만을 남에 안고, 비옥한 지질과 풍부한 맑은 샘 그리고 온화한 날시는 조선 제일을 자랑한다. 신선한 어패류, 맛 나는 소채, 감미로운 창원 쌀, 어느 것이든 저절로 군침이 난다. 봄에는 나물 캐러 가고 벚꽃 밑에서 좋은 술에 취하며, 여름에는 해수욕이나 소풍으로 피서하며 사는 맛을 만끽하고, 가을에는 밝은 달밑에서 악기를 튕기며 노래도 읊고 멋지게 지낸다. 겨울에는 삼한사온이란 날씨 밑에 펼쳐지는 우리의 행복이 그 얼마나 많은가.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 보호기관이 있으므로 가능하다는 점은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산항.. 2023. 8. 21.
마산항지(1926년) - 60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38. 생각나는 사람들 천지는 만물의 여인숙이며 시간은 영원한 손님이라 함은 결코 당나라 사람의 잠꼬대가 아니다. 소위 생리적인 과학, 자연의 추세는 인력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 수백억 년이란 셀 수 없는 천지에 태어나 백 세 내외의 생명을 사는 우리. 속세에서 여러 가지 제 욕심을 마구 채우려는 자, 우국지사를 자임해 청빈에 안주하는 자, 혹은 자본가로 돈을 출자하지 않고 노동자를 괴롭히는 자, 정의를 저버리고 인도(人道)를 가소로이 여기는 자, 관리(官吏)를 명예직으로 오해하는 자, 관공리에 머리 숙이는 것을 천분(天分)으로 잘못 아는 자 등의 세태는 온갖 모습으로 그 끝이 없으나 살아있는 시간이란 그 헤아릴 수 없는 여원에 비하면 한 거품도 되지 않을 만큼 하찮은 것이리라. 우리 동포가 개항.. 2023. 8. 14.
마산항지(1926년) - 59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36. 제4회 민회의원 선거 조선은 이미 우리 제국의 판도에 들어왔는데 거류민단제는 종래부터의 관계상 아직 철폐되지 않아 명치 45년(1912) 3월 2일 제4회 민회의원 선거회를 개최했다. 민단제의 철폐를 목전에 두고 있어서 입후보자의 열기는 별로 오르지 않았다. 특히 마산포야말로 별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신마산 방면은 날로 그 호수와 인구가 줄어들어 한적해졌으며 전년까지 16명이던 의원수도 전처럼 12명으로 감소되어 선거전은 심항 경쟁 없이 치러졌고 당선자는 다음과 같다. 신마산 방면 ; 히로시 세이조(弘淸三), 오카 요이치(岡庸一), 오키타 토시타로(沖田敏太郞), 나카지마 오리조(中島織三), 마츠모토 다조(松本多藏), 사토 토요스케(佐藤豊介), 미야케 요시로(三宅吉郞) 마산포방면 ; 마츠바라 하야조.. 2023. 8. 7.
마산항지(1926년) - 58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34. 마산항의 폐쇄 전년부터 착수한 진해의 군항 건설은 거의 완성에 가까워지고 또한 중앙에서 방사선식으로 뻗을 8대 가로가 구획되어 진해 시가지도 그 토지의 대부도 거의 완료되었다. 동양에 자랑할 만한 시가지가 출현한 것은 명치 42년(1909) 여름 이후의 현상이다. 이 때문에 진해에서 살기를 원하여 내지에서 오는 이주자는 물론 조선 곳곳에서 오려는 자들은 진해의 건축이 완성될 것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마산에서 살게 된다. 명치 43년(1910) 말에 이르는 1년 반 정도의 기간은 마산개항 이래 전성기로서 한때 호수가 3천, 인구가 7천이라 전해졌다. 이들은 점차 진해로 이주해 갔을 뿐더러 자유항으로서의 마산은 명치 43년(1910) 12월 말로 폐쇄되어 외국선은 물론 우리 국적선이라도 세관의 허가 .. 2023. 7. 31.
마산항지(1926년) - 57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32. 구마산역 개업 축하연 마산선 구마산역의 개업 축하연이 열린 것은 명치 43년(1910)년 7월 1일이었다. 신마산 방면의 관민 저명인사 60여 명에 대해 마산역과 구마산역 사이의 무료승차권을 동봉한 초대장을 발송하고 마산포 방면의 일한 관민 300여 명을 초대했다. 원래 본 역이 낙성한 것은 6월 2일이며 당시에는 마산성지(城址) 유적이 남쪽에 있었기에 이 역을 성남역이라 했는데, 지방 민중들이 구마산을 몰각했다고 주장하여 청원운동을 한 결과 마침내 구마산역이란 명칭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구(舊) 자를 트집 잡아 스스로 동마산이라 속칭하는 이도 나왔다고 하니 생각이 진화한 증표가 아닌가 싶다. 축하연은 역사(驛舍)와 동성교(東城橋) 사이에서 열렸으며 일한(日韓) 예기들의 춤과 일본.. 2023. 7. 24.
마산항지(1926년) - 56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31. 마산포의 시구(市區) 개정 문제 전항에서 서술한 대로 백병전으로 치러진 선거전이라 그 당선의원으로 구성된 민회는 초장부터 평화적이지는 못했다.왜냐하면 마산포의 시구개정이란 중차대한 문제가 회의장의 쟁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마산포 의원과 그렇지 않은 의원 간에는 도저히 일치된 보조를 취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원래 마산포의 가로는 명치 40년(1907) 중 당시의 경찰서장 사카이 요시아키(境喜明) 경부가 그 간선도로라 해야 할 한 부분에 대해 창원부윤과 협상해 좁은 길을 조금만 확장해 그 구부러진 데가 심한 곳은 임의로 집을 헐고 기부케 하고 길가에 작은 도랑을 판 정도로 노폭은 2칸 내외 밖에 되지 않았다. 후임 서장인 미야가와 다케유키(宮川武行) 경시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 2023. 7. 17.
마산항지(1926년) - 55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30. 경쟁이 격심의 극에 달한 민회의원 선거 명치 43년(1910) 3월 1일, 민회의원 제3회 선거회는 민단사무소에서 열렸다. 그때의 마산의 동포 세대수와 인구는 진해(鎭海) 경영 진척에 따라 크게 증가하여 2,300호에 6,799명이었기 때문에 종래 12명 정원이던 의원 수는 16명으로 증원되어 신마산, 마산포 각 8명의 후보자를 공인하도록 타협이 성립되었는데 신마산에서는 중앙부와 합쳐서 입후보한 사람이 서로 양보를 하지 않아 그 결과, 히로시 세이조(弘淸三), 메카다 헤이사부로(目加田平三郞), 오키타 토시타로(沖田敏太郞), 미야하라 가네유키(宮原兼行), 미야케 요시로(三宅吉郞), 후지사키 도모히데(藤崎供秀), 사토 토요스케(佐藤豊介), 마츠모토 다조(松本多藏), 무라카이 다케지로(村上竹次郞), 하.. 2023. 7. 10.
마산항지(1926년) - 54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27. 진해만요새포병 마산 이전 명치 41년(1908) 봄 즈음부터 공사가 시작된 유현산(杻峴山) 아래 일본전관거류지 내의 일부에는 각종의 건축물이 차례차례 준공되고 광대한 연병장과 사격장도 완성되어 진해만요새포병대대는 사령부와 함께 가덕도에서 이전해 왔으며 그 전영식(轉營式)이 거행된 것은 명치 42년(1909) 9월 9일이었다. 이날 마산의 관민은 하사관 이하 병사들을 공원 사쿠라오카(櫻岡)에 초대해 환영회를 개최하였고 다음 날 10일에는 대대에서 마산의 저명인사 60여 명과 진해방비대 미야오카(宮岡) 사령관 이하 장교를 영내로 초대해 엄죽한 전영식을 거행하고 각종의 여흥 등이 있어서 성황을 이루었다. 28. 치바마을 어업감독 피살되다 율구미에 있는 치바마을(千葉村) 어업감독이며 치바 현 수산기사인 .. 2023. 7. 3.
마산항지(1926년) - 53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26. 마산신사의 창건 마산 전체 항구의 우부스나가미(産土神, 조상신)으로 한 신령한 사당을 건립하자는 이야기는 혼마치의 히로시 세이조(弘淸三) 씨에 의해 자주 제창되었던 바이고 또한 무형단체이긴 하나 마산경제회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었는데, 솔선해서 그 임무를 맡아보려는 이가 없었다. 히로시 씨가 거류지 각 동네의 중심 되는 유지 27명을 요정 모치즈키(望月)에 모이도록 하여 신사 창건이 급선무하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해외거류민으로서 조묘(祖廟) 애호의 생각을 진충보국(盡忠報國)의 정신으로 함양하기 위해 우선 신조(神祖)의 영사(靈祠)를 숭배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모인 이들이 다 고대했던 일이라 마음속으로부터 찬의를 표방했다. 다음 날 두세 명이 이 문제를 두고 이사청을 방문하니 미마스 이사관도.. 2023.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