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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78 - 곤권(坤卷) / 제7장 금융기관

by 운무허정도 2023. 12. 18.

제7장 금융기관

 

1. 민간대차금리(民間貸借金利)

내지인 사이에서는 저당이 있는 보통의 대차(貸借)는, 하루 이자는 최저를 금 4전으로 하고 최고 10전을 탐하는 것은 고리대에 속한다.

한 달 이자로서는 확실한 부동산을 저당 잡고 2% 내지 3% 사이에 있는 것이 보통이다.

내지인이 아닌 선인에 대해서는 심지어 3.5% 이상, 5% 까지의 고리가 있다 한다.

그런데 요사이 교활한 선인 중에는 그 저당 부동산에 관해 타인 명의의 우량한 논, 밭 등을 실제 보여주고는 자기 소유의 열악한 전답을 등기하고, 기한이 되어도 고의로 변제를 무시하여 저당권실행을 신청시켜 경매로 싼 가격에 경락시킴으로써 채권자에게 손해를 주는 자도 있다.

혹은 고리로 돈을 빌려 변제하지 않고 소송을 통해 제한이자를 청구토록 하는 짓들의 사례가 적지는 않다.

돈을 빌려주는 업자는 신중하게 내탐하여 헛장사가 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선인 간에는 금리를 한 달에 3% 이상 4% 사이로 하는 것 같다.

별도로 이치바가시(市場貸付)라는 것도 있다.

이는 선인의 일종의 영리사업인데 마산포에서는 음력으로 1개월 여섯 번의 시장을 여는 것으로 해, 채권액은 대개 20원을 한도로 한다.

이 금액에 대해 시장 때마다 1원 20전을 상황시켜 20번으로 원리를 돌려받는 것으로 한다.

20원의 원금은 20회로 계산하여 석 달 열흘 동안에 4원이란 이자를 낳고 그 이자에 또 이자가 가산되는 식이다.

이와 같은 대부업자는 일 년에 원금의 3배에 달하는 이익을 번다고 한다.

선인 벼락부자라 불리는 자는 대개 이 대출로 시장 상인의 땀을 착취한 결과라 전해진다.

 

2. 조선식산은행 마산지점

마산포 모토마치 네거리의 한 모퉁이에 웅장한 건물을 자랑하는 조선식산은행 마산지점(아래 사진)은 내선인을 상대로 나날이 바쁜 은행 업무에 쫓기고 있다.

 

그 전신은 제일은행 마산출장소로 현재의 신마산파출소(아래 사진)가 그곳이다.

 

처음 출장소가 혼마치 모퉁이에 건축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즉 명치 39년(1906)에서 명치 40년 여름까지는 출장소의 지배인으로 법학사 나카무라 고기치(中村光吉)씨가 마산세관지서의 별실에서 집무하면서 은행 사옥 신축공사를 서둘렀다.

씨는 신축 낙성과 동시에 전근하고 니시카와 다로이치(西川太郞一) 씨가 대신하게 되었으며 전임자의 뜻을 이어 상업회의소의 조직에 열중했다.

이에 앞서 통감부의 금융방침에 따라 한인 조직으로 이루어진 진주농공은행은 별도로 마산포에 지점을 두고 명치 41년(1908)에 대구농공은행과 합병해 경상농공은행(慶尙農工銀行)으로 개칭하게 된다.

법학사 하라 신타로(原信太郎)씨가 그 마산지점의 지배인이 되어 현재의 은행 사옥을 신축하게 됐다.

당시 신마산의 현재 파출소는 제일은행에서 조선은행으로 그 경영이 넘어가 거류지와 마산포에 따로 두 개의 금융기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두 지점은 다시 합병하여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의 지점이 된 것이다.

경상농공은행이 건축한 현재의 모토마치 마산지점을 주위(主位)로 하고 제일은행이 지은 혼마치 행사에는 신마산파출소를 설치한 것이다.

조선식산은행의 주요 목적은 상업 및 사업 대출에 있는데 자본의 대부분은 연리 8.5% 내외의 이율로 수리(水利) 사업에 유통되고, 부군면(府郡面) 또는 조합 등의 단체에의 상담에도 대응하고 있다.

신마산파출소의 대출은, 금액 5만원 이내는 소내에서 단행할 수 있으나 그 이상은 지점과 협의해야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기타 일반의 은행 업무는 마산지점과 하등의 차이도 없을뿐더러 국고금과 공탁사무까지도 관장, 처리할 수가 있으며, 대정 15년(1926) 말, 지점 자산과 대출내용은 아래와 같다.

예금 1,238,893원 43전, 공공대출 5,042,668원 96전, 산업대출1,928,162원 42전, 상사대출 1,224,961원 88전, 저축대출 52,551원 68전

대출합계 8,248,344원 94전이면 7,009,451원 51전은 다른 곳에서 융통해서 쓰는 것이라고 한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78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