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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정연구원27

마산항지(1926년) - 1 - 발간사, 해제 일제강점기 마산 관련 사료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문헌인 스와 시로(諏方史郞)의 가 2021년 9월 번역돼 나왔다.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의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의 하나로 지난 2월에 발행된 '마산번창기'에 이어 두 번째이다. 1908년에 나온 마산번창기와 같은 저자의 저술로 1926년에 발행되었다. 이 책은 크게 건, 곤(乾, 坤) 두 권으로 이뤄져 있는데 乾권에서는 마산항의 위치, 지세, 기상 등을 개관한 후 마산의 상고사, 중고사, 근고사, 개항사, 일본인 이주사 등을 서술하고, 현세사인 坤권에서는 1920년 중반 당시 마산의 행정, 경제, 교육, 교통, 통신, 문화, 풍속, 현안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뛰어나다. 때문에 이 책은 일제강점기 마산에 대한 여러 연구에 자주.. 2022. 3. 28.
마산번창기(1908년) - 28(마지막)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7 (20) 마산시(馬山是) 표제의 시(是)란 무엇인가. 시란 도리에 맞는 것, 곧 일반 사람들이 인정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방침을 말한다. 마산은 미두(米豆)가 풍요하게 생산되는 곳이니 쌀과 콩을 가지고 마산의 시(是)로 삼는 것이 좋다. 연해의 고기잡이의 이익(漁利)도 풍부하니 이것을 가지고 마산의 시로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항만은 태평양 안의 제3위의 최량 항만이긴 하나 군항이 있어서 상업 대항구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장사만으론 마산시(馬山是)로 삼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는 양조업(釀造業)을 마산의 시로 권하고 싶다. 술, 간장, 된장을 양조하는 양조지가 되어 한국의 12도에 판매토록 함으로써 미두와 어업과 합쳐서 마산시로 하고 싶.. 2022. 3. 14.
마산번창기(1908년) - 27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6 (16) 마산야학회 마산 본포의 입구에 그 간판이 걸려 있는데, 이 건물은 한인, 일인의 공유물이며 전에 마산공립학교이었던 한동(韓童) 교수소와 가키하라 지로(柿原次郞) 씨가 지도하는 일어학교의 합동 교습실이었던 곳이다. 지금도 한국 학동(學童)의 야간교습소라 하는데 책 읽는 소리가 들릴 때는 많지가 않은 것 같다. (17) 마산아마추어 사진연구회 이것은 신시에 사는 부고츠(武骨)란 이름을 쓰는 본 책의 저자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것인데, 사진 도락(道樂)같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없으니 회원은 많지 않으나 모두 열심이다. 그 사무소는 신시에서는 이와모토(岩本) 사진관, 마산포에서는 진해헌(鎭海軒) 사진소의 두 군데이며 회원 사진화(寫眞畵)의 현상, 수정 .. 2022. 3. 7.
마산번창기(1908년) - 26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5 (14) 요리점과 예기, 작부 마산이사청 관내에 임대방(貸坐敷, 대좌부)이라고 일컬어지는 가게는 없고 다 요리점이라고 한다. 요리점은 임대방의 대명사이다. 이 요리점은 공회당이기도 하고 교성을 자아내는 따뜻한 방이 되기도 한다. 작부는 예기의 대명사이며 예기란 요금을 정하고 손님과 한 이불을 쓰는 그런 예기는 공창이지만 불법 매춘부는 아니다. 예기는 모두 감찰(鑑札)을 두 장 가지고 있고 작부를 겸하고 있으며 작부와 다른 점은 같이 잘 때의 요금이 조금 비싸다는 것이다. 작부는 샤미센(三味線, 삼미선)을 치지 않지만 예기는 그 실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샤미센도 치고 북도 치고 춤도 춘다. 이부자리에서의 동작은 예기든 작부든 매 한 가지다. 이 두 업종은 원적지 .. 2022. 2. 28.
마산번창기(1908년) - 25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4 (9) 바둑과 일본 장기 이것들은 앞서 나온 기다유부시(義太夫節) 보다 대유행인데 바둑에 관해선 대충 아래와 같은 것이다. 다나카 손(田中遜) 씨가 마산에서 바둑을 처음 두기 시작한 사람이며 방원사(方圓社, 1879년 발족된 일본바둑 조직) 급수로 8, 9급 정도나 될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노지마 타이조(野島種造), 기무라 구메타로(木村久米太郞) 씨가 될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 잘 두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다음으로 오가타 치요사부로(緖方千代三郞), 야마모토 구니츠구(山本國次), 후지사키 도모히데(藤崎供秀) 씨 등이다. 그 외에도 두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유키모토 야타로(行本彌太郞) 씨, 이이즈카 추타로(飯塚忠太郞) 씨, 모모키 게이이치(百木惠一) 씨.. 2022. 2. 21.
마산번창기(1908년) - 24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3 (8) 덴구카이(天狗會, 공연에 취미가 많은 아마추어 개그맨들의 모임을 뜻함 /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전통 놀이) 덴구카이(天狗會)란 소위 풋내기 기다유(義太夫, 원래 정류리(淨瑠璃) 인형극에 수반되는 창을 뜻함) 애호가 모임인 덴구렌(天狗連)을 가리킨다. 이 창(唱)은 마산포와 신시 관계없이 대유행하고 있다. 특히 신시의 그 모임은 1908년 6월 9일, 10일 양 일 밤, 야나기마치(柳町)에 있는 극장 마루니시좌(丸西座)에서 대회를 개최했다. 반주 샤미센(三味線)은 도요자와 난자부로(豊澤團三郞)가 치며 박수갈채를 받은 당시의 출연자와 그 연기한 제목은 다음과 같다. ­ - 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 교토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1001개의 천수관음상으로 .. 2022. 2. 14.
마산번창기(1908년) - 23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2 (2) 마산경제협회(馬山經濟協會) 1907년(명치40년) 봄 즈음에 마산 유지자들이 구두 약속으로 성립된 조직이며 별도 규칙, 규약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일정한 회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마산포와 신시에서 격월로 모임을 가져왔으나 중도에 뜸해지다가 1908년 봄 다시 활발해지고 매월 한 번의 모임이 신시에서만 개최되고 있다. 매회 마다 전 간사는 당일 이후의 간사 2명을 지정하며 지정 받은 자는 어떠한 이유라도 이를 사퇴할 수가 없다. 이렇게 의리와 인정이 있는 모임이라 한 층 재미가 있어 보인다. 회원에는 관리, 신문기자, 은행가, 종교인, 야채 집 주인도, 의사도 있어 아주 다양한 모임이다. 그리고 마산의 이해에 관련되는 사안은 아무나 문제를 제출할 .. 2022. 2. 7.
마산번창기(1908) - 22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1 (1) 마산상업회의소 1908년 3월 30일, 다가까손(田中遜) 씨 외 29명이 발기 인가를 받고 5월 23일 설립 인가를 얻어 5월 30일 의원 선거에 의해 6월 1일 임원의 선출이 끝났으므로 비로소 그 성립을 고(告)하게 된 것이다. 이 설립에 관해서는 불필요론자도 시기상조론자도 있는데 그 주장하는 바는 마산 경제계가 부진한 데도 각자의 부담을 증대시키는 것은 마산 발전의 앞길을 어둡게 한다는 일치된 소신 때문이다. 그래도 니시카와 다로이치(西川太郞) 씨의 의지는 확고하여 이곳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으며 시기카와 씨의 주선으로 서기장(書記長)까지 마산에 들어와 있으니 반드시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의원이 되겠다는 인사들 중에는 열심히 한 운동으로 마.. 2022. 1. 31.
마산번창기(1908) - 21 - 제9장 경제사정 제9장 경제 사정 - 4 ■ 마산의 상황(商況) 한 측면은 대개 다음과 같다. □ 잠건(蚕巾, 실크) - 영국령 홍콩제로 수요기는 매년 8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의 8개월 동안이며 한 달 평균 25,000필의 거래가 있는 모양이다. 한 필(匹) 대금이 6원이라면 한 달 15만 원, 8개월이면 120만 원이 되며 이것이 수입품목의 으뜸가는 상품이다. 용도는 한인의 흰옷(白衣)에 조제(調製)된다고 한다. □ 방적사(紡績絲) - 한 가마 20 다발 150 근으로 매월 30가마 씩 팔리는데 일 년에 적산하면 3,600 가마에 달한다. □ 백목면(白木綿) - 이것도 한인의 흰옷에 쓰이며 일 년에 26,000 필의 판매량이 있다. 한 필당 1월 70전으로 평균으로 매상고는 44,200원으로 예상한다. □ 마포(麻布.. 2022. 1. 17.
마산번창기(1908) - 20 - 제9장 경제사정 제9장 경제 사정 - 3 ■ 토지매수상의 주의 토지매매에 있어서는 거류지에는 지계(地契)라는 것이 있어 일본과 같이 등기에 관한 법이 있는데 기타 지역에서는 한인에게서 토지를 사들일 때는 한 장의 문서만 그 증거가 된다. 이때 교활한 한인이 문서를 위조하고 장소를 거짓으로 하거나 판매 금액을 속이는 등 상식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이 들통 나서 힐책하게 되면 도망을 가기도 한다. 이를 한인과 직접 매매 계약을 하거나 한인의 주선으로 그 사기의 술책에 넘어가 적지 않은 손해를 입어 세상 사람들의 실소를 부른 이가 적지 않다. 얼마 되지 않는 수수료를 아낀다고 한인을 믿고 싸구려 땅을 비싸게 사느니보다 확실한 일인 주선인(周旋人)에 부탁하는 것이 득책(得策)일 것이다. 이런 믿.. 2022. 1. 10.
마산번창기(1908) - 19 - 제9장 경제사정 제9장 경제 사정 - 2 ■ 수입품 나가사키(長崎), 시모노세키, 오사카, 고베 또는 부산 등에서 수입하고 기타 외국에서 직접 수입하는 것은 적다. 주된 품목은 견면마포(絹綿麻布, 청국제 포함), 일용잡화, 관제담배, 박래잡화(舶來雜貨), 일본 청주, 맥주 및 기타 주류, 한인용 솥 종류 및 기타 주철, 광철류, 밀가루, 설탕, 석유, 성냥, 기와, 대나무, 목탄, 목재 등이며 그 총량은 180만 원을 훨씬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 자세한 내용은 별도의 시황란(市況欄)에서 밝히겠다. 해산물 및 그 수송기관은 대개 아래와 같다. □ 마산수산주식회사 이 회사는 신시의 하마마치(濱町, 창포동) 3정목에 있으며 1905년 발기회를 열어 4월부터 어류 경매 영업을 시작하여 1906년 6월 1일 설립인가를 거쳐 법.. 2022. 1. 3.
마산번창기(1908) - 18 - 제9장 경제사정 제9장 경제사정 - 1 마산에서 금융기관으로 확립된 데는 두 군데밖에 없으며 제일은행 마산출장소(아래 사진)와 경상농공은행 마산출장소가 그것이다. 전자는 일본이 설립에 관여한 상업기관이며 후자는 한국이 세운 농공업기관이다. 이 외에도 이자가 비싸서 가혹하다는 평을 받는 일시적으로 편리한 전당포도 있다. 또한 한인을 상대로 작은 자본으로 막대한 이익을 악착같이 남기면서 부자가 된 고리대업자도 있다. 그들도 일본을 위한 생산증식의 자본을 공급하는 하나의 기관이기도 하니 동정을 해 줘야겠다. 원래 한국 연안은 일본 경제계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금융에 변동을 초래하게 되어 있으며 본 항구도 그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만약 일본 농업에 흉작의 기미가 있다면 본 지방의 중요한 산물인 쌀, 보리, 대두(大豆), 소.. 2021. 12. 27.
마산번창기(1908) - 17 - 제8장 호구(戶口) 제8장 호구(戶口) 본 항구의 일본인은 개항 당시 모두가 한국인 집을 빌려서 살기 시작했으며 신시(新市)에 열 몇 명의 러시아인과 한두 명의 영국, 프랑스인이 거류할 뿐이었다. 다음 해 신시에 일본인 가옥이 두세 채 나오게 되고 광무 7년 즉 1903년에 이르러 그 인구가 많이 늘었지만 신시는 여전히 러시아가 독점하다시피 하여 러시아 군함의 출입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기생이 러시아 수병에 의해 욕을 당한 사건도 터져 영사관의 유시(諭示)는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다 신시에 이사해 오는 것을 꺼리며 청국(淸國) 사람과 함께 마산포에서 같이 살며 서로 상업에서 경쟁하고 있었다. 그 당시 경찰관이란 오직 영사관을 지킨다는 직무를 수행할 뿐 일반인들에게 대해서는 아주 오만불손하며 뇌물이나 주지 않으면 그들.. 2021. 12. 13.
마산번창기(1908) - 16 - 제7장 교통 제7장 교통 □ 우편전신, 전화 이들 사무는 모두 마산우편국에서 취급하고 일본인, 청국인, 한국인은 물론 구미인의 서신, 전보도 다 다루고 있다. 집화와 배달은 매일 수차례 행해지며 아주 편리하다. 특히 마산포에도 히로시 세이조(弘淸三) 씨를 소장으로 하는 우편소가 있어 서신과 전보를 취급하고 있다. 부근 각지의 서신과 전보를 처리하고 마산국과 연락을 취하는 곳으로 진해우편소, 통영우편소, 진주우편국과 청도 연선(沿線)의 각 역(驛)이 있어 공중전보(公衆電報)를 취급하고 있다. □ 철도 마산철도는 원래 일본 육군의 군사용으로 1904년 8월, 러일전쟁 교전 중에 경부선의 삼랑진에서 분기(分岐)시켜 속성 공사로 부설되어 다음 해 6월에 개통했다. 평화가 돌아와 다음 해 1905년 10월부터 일반 승객의 편.. 2021. 12. 6.
마산번창기(1908) - 15 - 제6장 신도 및 종교 제6장 신도 및 종교 일본 고유의 신도(神道)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런 시설도 없지만 멀리 고향을 떠나 한국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가 이세신궁(伊勢神宮)을 숭배하여 앞날의 안전을 기원하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 건너와 오늘날 평온하게 살 수 있음은 신명(神明)의 가호(加護) 덕분이라 감사하지 않는 자 또한 없으리라. 날마다 신에게 감사하고 우국지심을 굳건히 하는 데는 간접적으로라기보다 직접적으로 참배를 통해서 그 기원을 실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것이 무사도(武士道)의 장려에 도움이 되고 일본 정신을 양성한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신시 제일의 경승지(景勝地) 속칭 호시오카(星岡)는 당국자들 사이에 이미 공원지가 될 것으로 예정되어 맨 먼저 이세신궁의 그 혼을 나누어.. 2021. 11. 29.
마산번창기(1908) - 14 - 제5장 교육기관 제5장 교육기관 일본인 아동의 교육기관으로는 마산거류민단이 공설(公設)한 마산심상고등소학교가 있다. 위치는 전에 신월동 지역 내에 있던 철도관리국의 소관지이며 신시와 마산포 사이에 있으면서 약간 신시 쪽에 가깝다. 그 소재지는 사방이 뚫려서 조금 높은데에 있기에 소학교의 위치로서는 최고라 하겠다. 학교 건물은 1908년 2월 11일, 기원절(紀元節, 일본의 건국기념일)에 낙성식을 올린 것이다. 부지는 2,500여 평이며 교사 및 부속건물의 건평은 380여 평, 그 경비는 29,510여 원이 들어간, 항내(港內)의 장대미려(壯大美麗)한 큰 건축물이다. 이 학교는 1902년 11월 4일, 정토종 포교승 미스시다 지몬(三隅田持門, 삼우전지문) 스님이 혼자서 자금을 내어 신시의 남단에 일본소학교를 일으켜 생도 .. 2021. 11. 22.
마산번창기(1908) - 13 - 제4장 위생 및 의료 제4장 위생 및 의료 공중위생으로는 1906년(명치39년) 가을에 비로소 대청결법(大淸潔法)이 제정되어 매년 봄가을 두 계절에 집행을 보게 되었다. 또한 청결사(淸潔社)라는 회사가 있어 한인 인부들이 매일 일인 감독의 지휘 하에 쓰레기차를 몇 대 돌리면서 집이나 가게 앞의 쓰레기 함에 모아둔 것을 수거해 간다. 종두(種痘)는 매년 두 번 봄가을에 장려되었다. 마산포의 거리에서도 청결차가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종래부터 일인들이 곤란하게 여긴 것은 화장실 청소에 관한 일이다. 한인들은 일정한 시기를 빼고는 분뇨를 비료로 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논밭에 시비를 할 때 이외에는 분뇨가 많이 남아서 한계에 도달하면 돈을 주어 투기하도록 했다. 청결사가 조직된 이래 이 회사는 연락을 받으면 이것을 날라 버.. 2021. 11. 15.
마산번창기(1908) - 12 - 제3장 지질 및 기후 제3장 지질 및 기후 마산 부근 일대는 제3기층에 속하는 데가 많고 산이나 계곡에는 화강암 또는 결정편암(結晶片巖)을 노출하고 있는 데가 있다. 해변 및 평야는 주고 제4기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지미(地味)는 기름지고 좋다. 논에서는 쌀과 보리를 이삼모작(二三毛作)으로 짓고 밭에는 보리와 채소를 이모작하는 것은 다른 데와 같다. 거친 땅을 개척해 비료를 주지 않아도 여러 종류의 과일, 채소, 곡물이 알차게 자란다. 산악지역은 노출된 바위가 많고 거목이나 울창한 숲은 드물지만 산 중턱과 산 아래 평기의 묘역에서는 소나무가 성긴 숲을 이루기도 한다. 또한 신시 부근 혹은 관공서 소유지로 남별을 피한 곳에는 모두 소나무가 무성하다. 이러다보니 식림(植林)은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닐뿐더러 수원(水源)을 확보하기 .. 2021. 11. 8.
마산번창기(1908) - 11 - 제2장 마산의 관공서 마산의 관공서 - 5 □ 민의소(民議所)-마산포 소재(전 마산보통학교 터) 이것은 한인(韓人) 측의 자치기관이며 마산포 읍내 6개 동의 하급 행정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 사무소에도 역시 민의소장과 부소장이 있고 의원도 있지만 그 의사(議事)나 역소(役所)의 모양새는 볼 것이 없다. 명치유신 때 일본에서 이루어진 그것보다 더 유치한 것이거니와 사무소는 담배 피우는 휴게실 모양이다. □ 창원재무서(昌原財務署)-마산포 소재 한국정보의 탁지부(度支部) 직할로 지방의 조세 등을 정리하는 기관이며 서장은 재무관인 한인인데 재무보좌관으로서는 일본인이 주로 책임지고 집무하고 있다. 그 위치는 오산으로 명태어 회사 남쪽 앞에 있는, 전에 한국척식회사 마산출장소 건물이었던 곳에 건물을 빌려 쓰고 있는데 현재 마산포 신마치.. 2021. 11. 1.
마산번창기(1908) - 10 - 제2장 마산의 관공서 마산의 관공서 - 4 □ 마산거류민단역소(馬山居留民團役所)-신시 사카에마치(榮町, 홍문동) 소재 1899년(명치 32년) 7월에 조직된 일본거류민회의 총대(總代) 사무소가 진화한 것이며 그 후 총대를 이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사무소의 명칭은 그대로이다. 1904년(명치 37년) 5월 총대사무소는 처음으로 민간사무소 즉 민역소로 개정되어 이사는 민장(民長)으로 개명되었다. 이때 가고시마(鹿兒島) 현(縣) 사족(士族) 출신으로 한해어업조합(韓海漁業組合) 마산지부장인 미야하라 가네유키(宮原兼行)가 민장으로 추천, 선임되었다. 1906년(명치 39년) 9월 1일, 일본한은 통감부의 고시에 따라 거류민 단체를 만들고 미야하라 씨를 거류민단 민단장 대리로서 사무를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민단제도에 의해 선출된 의원.. 2021. 10. 25.
마산번창기(1908) - 9 - 제2장 마산의 관공서 마산의 관공서-3 □ 마산경찰서-신시 토모에마치(巴町, 대외동) 소재 각국 거류지회 조직과 더불어 각국 경찰 사무를 보기 위해 설치된 것이며 새로 신축할 곳은 마산정차장 앞 철도관리국 소관지를 예정하고 있다. 아마 1909년(명치 42년)에 기공할 것으로 보인다. 영사관 소속의 경찰관은 애초부터 그 사무를 겸무하고 있었고 경부 사카이 요시아키(境喜明, 생몰년미상, 개명 전 이름은 사카이 에키타로 境益太郞. 1899년 4월부터 일본영사관 마산분관 주석경부로 1900년 9월까지 근무 후 같은 해 11월부터 1906년 1월 마산영사관이 폐지될 때까지 영사관 주석경부로 근무했다)가 서장이었다. 그 후 서장은 엔도 다다오키(遠藤忠興), 사카이 요시아키(재임), 경시(輕視) 미야가와 다케유키(宮川武行)로 교대했다... 2021. 10. 18.
마산번창기(1908) - 8 - 제2장 마산의 관공서 제2장 마산의 관공서 - 2 □ 러시아 영사관(露國領事館)-신시 다이마치(臺町) 소재 마산이사청의 구청사를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붉은 벽돌 벽에 유리창이 있는 건물이 나온다. 이것이 러시아 영사관이고 지금은 영사 대리인 한 명과 한인 주방장이 있을 뿐이다. 1901년에 지어졌는데 당시는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했으나 지금은 찾아올 사람도 별로 없고 사무도 뜸하여 찬적하기가 이를 데 없다. 경내에는 소나무가 우거지고 초록이 깊어서인지 냉랭한 분위기조차 감돌고 있다. □ 창원부청(昌原府廳)-마산포 소재 왕년에 조창 건물로 사용하던 것을 수리해서 창원감리서(昌原監理署)가 쓰고 있던 곳이다. 감리서는 광무 2년 즉 1898년(명치 32년) 2월 마산개항 칙재(勅裁)에 의해 설치되어 주로 개항 준비를 위한 사무를 .. 2021. 10. 11.
마산번창기(1908) - 7 - 제2장 마산의 관공서 제2장 마산의 관공서 - 1 □ 마산이사청(馬山理事廳)-신시(新市) 다이마치(臺町) 소재 언덕 위의 조망이 좋은 데에 있으며 1899년(명치 32년) 개항 당시 부산 영사관의 분관으로서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로 하여금 건축하게 했던 것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규모가 작고 그 위치가 놓은 데 있어서 사람들이 불편해 하니 이사관 미마스 구메키치(三增久米吉, 1861~?. 1901년부터 서울 일본영사관 영사로 근무하다가 1906년 마산이사청 이사관으로 발령받았다. 이후 계속 이사관으로 근무하였으며, 초대 마산부윤으로 임명받은 뒤 1919년 11월까지 부윤으로 있었다) 씨가 1908년(명치 41년) 5월 그 북쪽 위치에 새 건물을 짓기로 했다. 공사는 아직 낙성을 못 보았지만 그 건축물의 수려함은.. 2021. 10. 4.
마산번창기(1908) - 6 - 제1장 마산의 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 4 ■ 마산포 - 2 □ 월영동(月影洞) 신시의 서쪽부터 남쪽 일대를 포함하는 큰 마을이다. 그 일부는 일본의 전관지(專管地)이기 때문에 1908년(명치 41년) 7월 퇴거령으로 인해 서쪽의 산 위로 이전하게 되고 까치나루 고개(鵲峴)의 근위(近衛, 메이지 시대의 화족이자 정치인이었던 고노에 아쓰마로-近衛篤麿, 근위독마 1863~1904. 월영동과 자복포 사이의 언덕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언덕 아래에는 웅장한 중포병 영소(營所)가 건축될 것인지라 원래 일본인의 모습이 없었던 이 마을에 점점 일본 가옥이 건축 중에 있고 옛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곳이다. □ 자복포(滋福浦) 깊은 산과 청송이 우거진 이곳은 물아일체의 경지를 자아내는 곳으로 월영동의 일부와 같이 일본 전관지였.. 2021. 9. 27.
마산번창기(1908) - 5 - 제1장 마산의 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 3 ■ 마산포 - 1 신시(新市)의 북쪽 약 2km 거리에 있는 본래의 마산이다.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 일본 해군성 수로부가 간행한 조선의 해안, 항로, 도서 등의 지리정보를 망라한 수로지로 동일 명칭으로 1894년, 1899년, 1907년 세 차례 발행되었다)에는 마산포읍이라 적었지만 한인(韓人)들은 모두 다 마포(馬浦) 혹은 신마포(新馬浦)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인은 구마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왜 구마산이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날마다 번성해가는 본래 마산에 낡은 구(舊) 자를 붙이는 이유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각국 거류지를 신시라고 칭하는 것에 대하여 붙인 구 자일테지만. 각국거류지를 신시라고 부르는 것은 과거에 새 시장을 연 데에서 기인한 이름이며 결코 본래의 마.. 2021. 9. 20.
마산번창기(1908) - 1 - 발간사, 해제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를 포스팅한다. 기록전문가 박영주 선생이 일본의 한 대학도서관에 잠자고 있던 이 책을 찾아냈고, 이를 창원시정연구원이 번역 출판하였다.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마산이 언급된 책은 『韓国出張復命書』(1901), 『韓国案内』(1902), 『韓国水産誌』(1908) 등이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이 책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馬山と鎮海湾』(1911)으로 알려졌었다. 을사늑약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 통감부 설치와 통감 정치, 고종의 강제퇴위와 순종 즉위 등으로 이어지는, 사실상 반(半)식민지 상태였던 당시의 시대상황은 마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창원군청이 아니라 통감부의 마산이사청이 실질적인 통치기관이었다. 더구나 개항 .. 2021. 8. 23.
탈원전 정책은 유지되어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전 세계 추세, 새 원전 건설은 결코 안돼 요즘 창원 경제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어렵고 260 여개 원전 관련업체의 생존이 위태롭다고 한다. 창원시정연구원은 탈석탄.탈원전 등 정부 에너지 정책이 급변하면서 창원 소재 대기업 및 협력업체 경영여건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한 보수언론의 경제부장은 “문 정부의 탈원전정책은 반민주적, 반헌법적 작태”라고 자유한국당 이언주의원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세계적 추세와 역행하는 온갖 거짓뉴스를 보도한 보수언론을 소개하는 형태로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였다. 태양광은 가동기간이 30년 이지만 원전은 60년이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원자력공학과 출신으로 지금까지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아 온 어느 교수는 탈원전은 ‘원자력산업이 전성기에 있는 상.. 2019.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