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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정연구원122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13. 제6절 상업-3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13. 제6절 상업-3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2항 금융업(金融業) 당 지의 금융 사정은 대체 어떠한 상황에 있는 것일까. 이 점에 대해 우선 작년 상황을 뒤돌아보고 난 후에 금년과 최근 것에 언급하겠다. 작년 상반기는 경기가 안 좋다는 여파를 받아 완만한 상태였다가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현동의 군항 설비 관계로 자금 수요 역시 상응한 번망(繁忙)함을 보였으며 무역액도 역시 재작년에 비해 약 두 배에 이른 상황이었던 바, 이는 상당한 자금 수요가 있었음에도 아직 대자금(大資金)을 운영할 만한 사업이 없어서 금융계는 대개 완만한 양상.. 2026. 3. 9.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12. 제6절 상업-2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12. 제6절 상업-2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2관 각종 영업(營業)제1항 곡류 수출업 및 백미상(白米商) 당 민단(民團) 지역 내에서 상업으로서 가장 성한 것은 곡류의 수출업이다. 경상남북도의 비옥한 땅에서 산출되는 곡류는 조선반도 중에서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고 특히 쌀은 그 품질이 아주 좋아 내지 쌀과 손색이 없다. 이것들 쌀, 보리, 콩을 모아놓고 수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 생산지방은 웅천, 칠원, 진해, 영산, 함안, 창원, 의령, 김해, 덕산, 거제 등을 주로 하여 고성이나 사천 등에서도 다소 들어 오는 것이 있다. 수출.. 2026. 3. 2.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11. 제6절 상업-1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11. 제6절 상업-1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6절 상업(商業)제1관 개설외해에 파도가 아무리 출렁거려도 내해는 잔잔하기만 하고, 바다가 거칠어지는 줄 모르는 항만을 가진 마산이 상업지로서 호적(好適)함은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게다가 경남 일대의 옥야(沃野)를 안아 부근 일대는 농산물의 풍요로움으로 으뜸가는 위치에 있어서 지방의 구매력도 비교적 높아 무역상항(貿易商港)의 요소를 남김없이 갖춘 곳이라 하겠다. 오늘날의 마산 발전은 이 천연의 은혜에 힘입은 바가 아주 크다. 이 천혜를 이용해 더욱 당 지의 융성을 도모하는 것은 그야말.. 2026. 2. 23.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10. 제5절 목축업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10. 제5절 목축업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5절 목축업(牧畜業) 이 부근에는 가축을 방목할 산야가 있어서 사육에 손이 덜 들어갈 것 같고 또한 저렴한 사료를 공급받을 수가 있어서 목축업의 경영도 비교적 쉽게 할 수가 있으니 장차 유망한 사업의 하나로 들 수가 있을 것이다. 현재 이 지방에서 전문적으로 목축업에 종사하는 내지인은 없으나 조선인이 전래적으로 사육하는 것을 보니 그 성과는 아주 양호한 편이며 소값도 해마다 올라가는 추세에 있다. 목축의 대상은 소, 돼지, 양에 한정되는 감이 있다. 그중에서 산우(産牛)는 농경용에 적절.. 2026. 2. 16.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9. 제4절 임업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9. 제4절 임업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4절 임업(林業) 이 지방 일대의 기후는 알맞게 온화하며 땅도 비옥해서 식림(植林) 사업에는 최적이라고 한다. 특히 식수(植樹)에 적당한 산야가 많다는 것이 또 하나의 유망한 사업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풍토에 가장 맞는 수종은 소나무, 잣나무, 삼나무, 떡갈나무 등이다. 그러나 예부터 임업에 관한 규제법이 없고 아주 방임해서 마음대로 나무를 잘라온 탓에 황폐 상태에 이르러 산이 벌거벗어 토사의 붕괴도 심하다. 그래서 마산포 부근에 약간의 식림 사업을 경영하고 남벌을 엄금해 왔기.. 2026. 2. 9.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8. 제3절 농업-2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8. 제3절 농업-2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3관 소작(小作) 일반의 상황 및 지가(地價) 아래에 소작 일반의 상황 및 지가를 표시해 실제로 농사 경영을 고려하는 분들이 참고로 해 주었으면 한다.지목등급반(反)당의 시가(엔)반당의 수확(석)세금(리)소작료(석)논상45.00벼4.000.8001.40논중30.00벼3.000.4801.00논하20.00벼2.000.3200.60밭상12.00보리2.500.4000.80콩1.500.160 밭중9.00보리2.000.4000.60콩1.000.160 밭하6.00보리1.500.4000.40콩0.60.. 2026. 2. 2.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7. 제3절 농업-1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7. 제3절 농업-1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3절 농업(農業) 제1관 개설(槪說)마산민단 지역 내는 대개 상업지역에 속하니 농업경영에 관해서는 하등의 볼 만한 것은 없건만, 부근 지방은 최량의 농업지이므로 이 부(府)의 성쇠에 중대한 관계가 있기에 일단 개설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무릇 조선 남부지방은 땅이 비옥하며 기후가 온화하고 농산물 경작에 적절해 그 산출액도 많아 반도 중에서 으뜸이 된다. 그중에서도 이 지방 일대에서 산출되는 쌀은 창원미(昌原米)로 칭하는데 내지미(內地米)와 필적할 만큼 양질의 것이다. 근래 내지의 좋은 종.. 2026. 1. 26.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6. 제2절 관아공서-3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6. 제2절 관아공서-3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진해만요새사령부(鎭海灣要塞司令部) 및 진해만중포병대대(鎭海灣重砲兵大隊)마산의 신시가지 북단의 조금 높은 산지라는 요해의 땅을 차지해 굉장한 연와(煉瓦)로 된 몇 채 건물이 솟아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이 진해만요새사령부 및 진해만중포병대대인 것이다. 해군요지로서의 진해만은 이 육상의 설비가 있음으로써 그 가치를 다하고 있다고 하겠다. 포병중좌 마쓰마루 마쓰사부로(松丸松三郞)가 이 요새의 사령관이자 중포병대대장이다. 요새의 부관으로서 야마자키(山崎) 대위가 있다. 사령부원으로서는 스자키(須.. 2026. 1. 19.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5. 제2절 관아공서-2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5. 제2절 관아공서-2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마산헌병분대(馬山憲兵分隊) 마산헌병분대의 전신은 대구헌병분대 분견소(分遣所)이다. 그 분견소는 명치 42년(1909) 12월 2일에 혼마치(本町) 3정목 29번호에 설치되어 그날부터 사무를 개시했다. 명치 43년(1910) 7월 18일 편제개정으로 인해 마산분견대로 개칭해 김해, 웅천, 현동, 진해, 배장역(背長驛), 고성 및 장목포의 일곱 군데 분견소를 관할하게 되었다. 현재 분대장은 육군헌병대위인 요시다 요시로(吉田喜郞)이며 분대 인원은 장교 이하 약 80명이다. 각 분견소장은 군조.. 2026. 1. 12.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4. 제2절 관아공서-1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4. 제2절 관아공서-1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마산부청(馬山府廳)청사는 명치 41년(1908) 11월에 준공된 양풍의 기와 건물로 지어진 멋진 것이며 다이마치(臺町) 언덕에 있다. 만내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절호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애초에 부산영사관 분관으로서 설치되었다가 그 후 몇 번이나 이름과 주인을 바꾸고 작년에 한국병합 후에 부청으로 되어 부내 행정사무를 총람(總攬)하게 되었다. 명치 39년(1906) 1월에 이사관으로 부임 이래 근속한 미마스 구메키치(三增久米吉)가 재근 중이다. 이하 현재 직원은 서기 8명[.. 2026. 1. 5.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3. 제1절 총설-2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3. 제1절 총설-2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일본인 호구는 2천 호, 인구는 7천 명을 넘고 있으나 매월 새로 도래하는 자가 2백 내지 3백 명을 헤아리는 오늘의 추세에서는 같은 숫자 수준에서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 개항 초년도(1899년)부터 최근에 이르는 호수와 인구의 변천을 표로 제시함으로써 마산 발전의 한 면을 알 수 있도록 하겠다. 호구표 (1) (매년 12월 말 현재)연별호수인구남자여자계1899년3387161031900년70189612501901년80160992591902년992031303331903년95191136327.. 2025. 12. 29.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2. 제1절 총설-1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2. 제1절 총설-1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서설(序說) 왕년에 일본과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그 패권을 다투었을 때, 전략상의 유일한 요충지로서 서로가 그 획득에 부심하였고 그 성패는 양국의 군사적인 지위에 결승적(決勝的인) 운명을 가져다줄 관건으로 부상하여 양국 항쟁의 중심점이 되었던, 마침내 일본의 승리로 귀결된 바로 그곳이 한남(韓南)의 이곳 마산이 아니었는가. 러일전쟁 때, 연합함대 사령관인 도고(東郷) 대장이 근거지로 삼아 제국해군의 늠름함을 세계에 보이며, 러시아의 견동함대(遣東艦隊)가 쇄도할 때, 황국의 흥폐는 이 일전에 .. 2025. 12. 22.
『진해요람』(1926) - 20. 사적(史跡)-마지막 20. 사적(史跡)진해만이 군항이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다. 지나간 옛날부터 수군 근거지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이러한 천연의 형승은 세계에서 찾기 힘들다. 바로 지도를 열어 보면 서쪽이나 동쪽으로 나가면 거제, 가덕, 한산 여러 섬들이 전면에 놓여있어 자연의 보루가 되며, 서북으로는 통영 반도에 이어져 있고 동서쪽은 멀리 부산을 바라보고 있다.이 자리에서 고사기(초기에 씌어진 일본 최고(最古)의 역사서. 712년 편찬), 일본서기(日本 奈良시대의 역사서. 30권, 720년 편찬)에 보이는 역사를 볼 것 같으면, 진구황후(神功皇后)에 의한 삼한정벌(三韓征伐, 고대 일본 진구황후가 신라에 군대를 보내 굴복시켰다는 이야기로 일본서기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동시대의 삼국지.. 2025. 12. 8.
『진해요람』(1926) - 16, 관공서 및 수뇌 - 경찰서, 소방조, 우편국 ○ 경찰서(연혁)진해서는 명치 44년(1911) 가을 귤통(橘通, 다치바나도오리) 2정목(丁目)의 헌병분대 둔소에서 업무를 분담했던 것이 시작인데 큰 팽나무 있는 곳 근처에 신축건물이 세워지면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경부(警部) 구와바라 마사유키(桑原眞幸)가 초대 서장으로 부임한 것은 명치 44년(1911) 11월 14일임 아래 표직위                             성명                                                       취임경시(警視)                 안도 쇼지로(安藤正二郞)                 명치 45년(1912) 4월 24일 취임경시                             마노 가게카타(眞野景象) .. 2025. 11. 10.
『진해요람』(1926) - 15, 관공서 및 수뇌 - 요새사령부, 헌병분대 ○ 요새사령부(연혁)대정 2년(1913) 10월 2일 창립해 현재에 이른다  역대 사령관 직위사령관 명임관 연월일비고포병소좌야마지 미치노부(山路通信)명치 40년(1907) 4월 1일 포병중좌와다 신조(和田新藏)명치 40년(1907) 10월 9일 포병중좌마츠마루 마츠사부로(松丸松三郞)명치 41년(1908) 12월 22일명치 44년(1911) 11월 22일 포병대좌로 임명포병소좌야마나카 시게루(山中茂)명치 44년(1911) 11월 22일대정 원년(1912) 9월 2일 포병중좌로 임명포병중좌시로미 다미야(城見多見彌)대정 2년(1913) 6월 25일  포병대좌야나기 간이치(柳貫一)대정 3년(1914) 6월 13일  포병대좌후루카와 이와타로 (古川岩太郎)대정 4년(1915) 8월 10일 대정 7년(1918) 3월.. 2025. 11. 3.
『진해』(1912) - 26. 러·일의 착안점 26. 러·일의 착안점 진해만이 러·일 양국의 착안지점이었음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두루 아는 바이다. 마산포 개항은 광무 2년(명치 31년, 1898) 5월 26일 한국 황제의 칙재(勅載, 임금이 옳고 그름을 가림)로 군산, 성진과 함께 허가되어, 각국거류지를 정박지에 가까운 월영동(月影洞)과 신월동(新月洞) 사이에 정하고, 또한 감리자를 두고 개항 준비에 착수했다. 그런데 러시아 공사인 파블로프(아래 사진) 씨는 광무 4년(1900) 3월 30일, 한국정부와 두개의 조약을 체결한 바, 그 첫 번째로 한국은 러시아에 새로 개항할 마산포에서 거류지로부터 거리 3마일 이내에 러시아 동양함대를 위한 석탄저장소 및 해군병원 각 한 개씩을 설치할 것을 허가하였다. 두 번째로 러시아는 한국정부에 대해 결코 거제도 .. 2025. 4. 21.
『진해』(1912) - 18. 급속한 발전과 통신 18. 급속한 발전과 통신 진해 최초의 통신기관은 해군의 임시건축지부가 명치 43년(1910) 4월에 설치되고 난 후, 같은 해 9월에 동 건축지부 임시청사 앞에 현동우편소란 것이 설치된 것이 시작인 것이다. 그 당시까지는 각 구미(건축업자) 청부사들 부하격인 토목공이나 인부들이 조금 살고 있었을 뿐 별로 사무는 그리 바쁘지는 않았다. 즉 건축지부 통신사무를 맡고 있음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전신, 전화, 기타 모든 우편사무를 취급하는 우편소란 설비는 우편국 이상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차차 모든 상황이 진전을 보고 작년 7,8월경에는 시가지 건축공사가 빈번해지며 이주자가 급증했기 때문에 통신사무 전반이 빈번해진 것이다. 그리고 시가지역과 떨어져 있어서 불편하다고 해서 시민이 우편국 설치 운동을 벌인 결.. 2025. 3. 10.
『진해』(1912) - 16. 금융, 17. 운수교통 16. 금융 진해의 현재 금융은 극히 순조롭다. 무슨 근거로 순조롭느냐 하면 일부 대금업자의 자금 융통에 의해 한정된 호수 입가의 자금 결핍을 보충해, 여러 분야의 실업가들은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인지 파산, 도산이란 비운을 당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다른 업종으로 바꾼 자는 본래의 자본금 부족인 데다가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다. 실제로 순조롭다고 말해야 할 정도까지 진전되어 있을지는 아주 의심스러운 바이지만, 다른 도시 현황에 비해 결코 오늘의 진해가 금융의 원만함이 부족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기관으로서는 오직 대금업자나 전당포업자 외에 아직 아무런 시설조차 없으나 장래에 나오리라고 믿는다. 현재 상황은 이상과 같으며 더 써야 할 자료도 없는 것이다. 17. 운수교통 항만으로서의 운수교통은 아주.. 2025. 3. 3.
『진해』(1912) - 12. 산업 12. 산업 토지에 생산물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 땅의 소장(消長, 성쇠, 쇠함과 성함) 문제에서 결코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이 자명(自明)한 이치이다. 우리 진해는 생산물이 적은 지역, 즉 소비지이며 생산지가 아니라고 하는 자가 있지만 이는 사리에 어두운 사람이 하는 소리이며 소생은 찬동할 수가 없다. 진해만에서 나오는 어류는 조류 관계상 한난류 양류(兩流)에 서식하는 것들 모두를 망라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특히 많은 어류를 포획하는데 이는 고장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여유가 있으며 조선 내 여러 곳은 물론 일본의 각 지방에 수송하고 있다. 행암만 부두에 있는 조선해수산조합의 모범어촌이 완성됐을 적에는 놀랄만한 기세로 어획물을 만재한 어선들이 아침, 저녁에 출입함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이 진해만에서 나오.. 2025. 2. 10.
『진해』(1912) - 11. 종교 11. 종교 그 땅의 종교 상태라는 것은 바깥에서 관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심리의 움직임이기에 결코 외형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진해의 종교란 불교가 주가 되어 있다고 보는데 별 지장은 없으리라.기독교나 곤코오쿄(金光敎 敎派神道의 하나)나 텐리교(天理敎派神道의 하나) 등도 있기는 한데 종교상의 세력은 극히 미미한 것임에 틀림없다. 불교라 함에도 종지(宗旨, 종문(宗門)의 교의(敎意)의 취지)는 여러 가지가 있거니와, 우선 신슈(眞宗, 淨土眞宗의 준말), 조오도슈(淨土宗, 불교의 한 종파인 정토종을 말함), 니치렌슈(日蓮宗, 일본 불교 종파의 하나로 법화경(法華經)을 종지(宗旨)로 함), 신고슈(眞言宗, '진언종'으로 불리며 일본 불교의 한派), 젠슈(禪宗, '선종'으로 일컬어.. 2025. 2. 3.
『진해』(1912) - 8. 교육 8. 교육 진해에 심상고등소학교(아래 사진, 1920년대)가 개교된 것은 올해(명치 45년, 1912) 1월 10일부터이며 개교 당초에는 130여명 아동을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250명에 도달했다. 그 이유는 당지에 개교를 보기 이전에는 아동 모두가 해상 7해리(약 13km)여를 소증기선(기선(汽船)의 옛 명칭으로 기계력(증기기관)으로 추진시키는 배의 총칭)으로 마산에 통학했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며 아침 해뜨기 전부터 저녁 5시나 6시경이 될 때까지는 집에 못 돌아올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 기선의 승강은 아주 위험한 것이라 바다 속에 떨어진 아동 숫자도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몸이 발육 도상에 있는 아동에게 마산 진해 해상 통학이란 쉽지는 .. 2025. 1. 13.
『진해』(1912) - 7. 위생 7. 위생 진해는 조선에서 보기 드문 건강지로 지목되어 있다. 위생시설에 관해서는 아직 만전을 기했다고까지는 말 못하겠지만 결코 불완비한 것은 아니다. 십수 명의 개업의가 있어 이들이 시정(市井, 인가가 모인 곳으로 중국 상대(代)에 우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다는 데서 유래)에 흩어져 개인위생을 통어(統御, 통괄)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공중위생에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공립병원도 조금 있으면 훌륭한 것이 설치될 것이다.또한 사립병원으로는 진해병원 외 두세 개 규모 있는 병원이 있다.군항지이기 때문에 위생 단속에 관해서는 엄중하다. 해군병원도 멀지 않아 설립될 것에 틀림없을 터이니 위생기관에는 유감이 없음을 기할 것이다. 학교조합에서는 중초리(中初里)에 격리병사를 건축하여 전염병 환자 수용이 가.. 2025. 1. 6.
『진해』(1912) - 6. 풍광미(風光美) 6. 풍광미(風光美) 진해에 풍광미가 풍부하다는 것은 이제 와서 거론할 나위는 없을 터이지만 서너 개 있는 그대로를 기록해 두자 (일) 일출안개 속에 햇님이 하얀 옥처럼 빛나고 있다. 울퉁불퉁한 천자봉연산(天子峰連山)이 서서히 밝아지며 짙은 회색 쪽배가 한 척, 조용이한 기름 같은 수면에 까만 선을 가느다랗게 그어가면서 저쪽 덕산(德山) 쪽으로 저어 가고 백의 입은 한인이 깜짝 놀라 서서 지켜보고 있다 (행암만).그렇게도 유명한 큰 팽나무 부근의 상야등(常夜燈)에 엷게 불씨가 남아 있다. 아직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에 무슨 구미(組)이라고 옷깃에다 적힌 작업복을 입은 사내다운 젊은이가 상반통(常磐通, 도키와도오리, 아래 사진-상반통 2정목)를 꺾어 천첨정(川添町, 가와조에초)쪽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2024. 12. 30.
『진해』(1912) - 5. 기후 5. 기후 조선 속에서도 경상남도 일대는 기후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마산, 진해, 부산은 기후가 온화하며 어느 계절이나 한결 같이 내지와 다름이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리 진해 땅은 마산과 부산 중간에 위치해 각 계절의 기후는 또렷이 나뉘어져 우량이 많지도 않고 바람 또한 강하지 않게 적절하니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 하겠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고 남북으로 짧으니 마치 한 일자 모양인데, 시가지는 언덕과 언덕사이에 있으며 단 남쪽 한정된 곳만이 재등만을 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겨울에도 귀를 찢을 만한 센 바람이 불지도 않으며 여름에도 혹서로 쇠를 녹일 듯한 더위는 없다. 그는 전면이 바다인 반면 후방에 높은 산이 있어서 유명곡(有明谷, 아리아케다니) 깊숙한 곳까지 바람을 보내기 때문이.. 2024. 12. 23.
『진해』(1912) - 4. 이상적인 시가지 4. 이상적인 시가지 진해 시가지는 군항경영이란 제1차 계획에 따른 것이며, 해군당국이 꽤 고심한 끝에 설계 한 것임은 명백하다. 시가지 대하를 제3기로 한 것도 결국 완전한 시가지를 조성한다는 방침 아래 나온 것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은 제1기 대하지 36,000여 평에 집들이 나란히 세워지게 된 후, 이 정도이면 수급이 일치해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고 사료되었을 때에 제2기 대하를 실시하게 되며, 제2기 대하가 제1기와 마찬가지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제3기 대하를 실시할 것이라는 순서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제2기까지는 기술한 바와 같이 실시되었는데 다만 제3기 대하가 제2기의 완성 이전에 발표된 것은 학교조합 유지를 위해 연구 결과가 예정보다 빨.. 2024. 12. 16.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10절 행암만(行巖灣)과 덕산리(德山里) 제10절 행암만(行巖灣)과 덕산리(德山里) 신시가지에서 약 일 리(1里)거리, 행암만(아래 사진은 현 행암만 전경)에 면한 덕산리는 가까운 장래에 상항으로서 상선 출입이 빈번해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이에 부수할 사업을 계획하는 자도 많다.  현재 행암만에서 매축(埋築)에 종사하고 있는 오사카 세라 류조(瀨良隆三)의 철공소 신설지가 1,200평, 도쿄의 엔도 다모츠(遠藤保), 야마모토 가타로(山本嘉太郞) 두 사람의 800평, 도쿄 가네코 치호(金子千芳)의 우유 착취장 1,000평 등인데, 앞의 세라 씨는 꽤 넓은 주물공장을 설치해 군항은 물론 시내외의 모든 수요에 응하는 한편, 재목상 및 토공구용 철물상도 경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덕산리에는 세관감시원이 출장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감시서를 건설하게.. 2024. 11. 18.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9절 교육과 종교 제9절 교육과 종교 현동 신시가지에서는 이미 작년 9월에 취학 아동 수는 124명에 도달하여 계속 증가할 모양새이다. 이 아동들은 해상 8리(3.141818km에 해당함)를 작은 증기선으로 마산에 통학하고 있다. 그 위험성과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재류 주민들의 과반이상의 결의에 의해 현동학교조합의 인가를 당국에 신청해 허가를 받아 10월 1일부터 개교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있으니 이 책이 독자 앞에 닿을 시기에는 신시가지의 새 학당에서 아동들의 책 읽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또한 신사불각(神社仏閣)을 세울 곳으로 태신궁(太神宮)을 유히가오카(夕日ヶ丘)에 세우고, 진종(眞宗, 정토진종의 준말로 일본 불교의 한 파), 정토종(淨土宗, 일본 불교의 한파), 일련종(日蓮宗, 가마쿠라시대에 일연 대사.. 2024. 11. 11.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5절 비봉 제5절  비봉비봉은 군항의 관문이며 부두도 있다. 마산에 가장 가깝고 증기선으로 30분 거리에 있다. 여기서 걸어서 약 30분이면 군항지 시가지에 도착한다. 비봉 시가지역은 통조림업자인 사사노 진시로(笹野茜四郎, 아래 그림은 본인의 사업 광고)씨 및 다카스(高須)합자회사의 조차지(租借地)에서 2천 평을 쪼개서 개인에게 임대를 개방한 것이다. 내지인 이주는 지난 명치 41, 42년(1908, 1909) 경부터 개시되었다. 작년 이래 군항경영공사가 착수됨에 따라 집들이 속속 지어지면서 그 후 빼곡해졌다. 전술한 사사노, 다카스 2대 통조림제조소를 비롯해 여관, 잡화점. 요리점 등이 생겨서 완연한(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주 뚜렷한) 작은 시가지를 형성했다. 현재 주요한 거류자와 그 직업은 아래와 같다. 호수는 .. 2024. 10. 14.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3절 해군용지 대하(貸下) 및 시가지 경영 제3절 해군용지 대하(貸下, 관공서에서 민간에 빌려줌) 및 시가지 경영 진해 해군용지 대하에 관한 내규는 작년 8월 5일부로 시행되었다. 그 내는 진해 해군용지 내에 있는 경작지, 미간지(未墾地, 아직 일구지 못했거나 않은 땅) 및 택지 대하에 관해 이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경작지에 관해서는 경작지에 관해서는 제1조에서 이라는 취지를 정하고, 미간지에 관해서는 제17조에서 이라 정했다. 택지에 관해서는 제27조에 는 (남의 땅을 빌려 쓰는 사람)>이 아니라도 , 기타 에 으로 정했다. 시가지는 12만평이며 대규모 계획을 가지고 모범적인 시가지로 구획되어 형성되어 가고 있다. 폭이 20간(間, 1간은 1.818182미터로 20간은 약 36.36미터에 해당함), 15, 10간 등 큰 도로가 가로 세로 십.. 2024. 9. 30.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2절 현동의 발전 제2절 현동의 발전 현재의 현동은 시시각각 발전을 거듭하며 어제를 보고 오늘을 판단해서는 안 되며 오늘에 의거해 내일을 예상해야만 한다. 실제로 군항지 경영 800만 엔(圓) 10년 계획은 원래 갈대벌판이던 현동의 운명을 열성적으로 개척해보려는 이들에게 크게 주목받았다. 10월 초순의 조사에 따르면, 몰려오는 사람들은 남자 566명, 여자 346명, 합쳐서 812명, 호구 수는 289호에 이르렀으니 앞날의 성황도 예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주자 모두가 꼭 확실한 조사를 하고, 이윤 나는 계산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척이나 거대한 군항계획 소문에 홀려서 가벼이 전도유망함을 과대시하고, 정해진 목표 없이 한탕 해보려는 경거망동의 작자(作者, 여기서는 나 아닌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도 적지.. 2024.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