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13. 제6절 상업-3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2항 금융업(金融業)
당 지의 금융 사정은 대체 어떠한 상황에 있는 것일까. 이 점에 대해 우선 작년 상황을 뒤돌아보고 난 후에 금년과 최근 것에 언급하겠다. 작년 상반기는 경기가 안 좋다는 여파를 받아 완만한 상태였다가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현동의 군항 설비 관계로 자금 수요 역시 상응한 번망(繁忙)함을 보였으며 무역액도 역시 재작년에 비해 약 두 배에 이른 상황이었던 바, 이는 상당한 자금 수요가 있었음에도 아직 대자금(大資金)을 운영할 만한 사업이 없어서 금융계는 대개 완만한 양상이었으며 연말의 금융은 예년과 같이 전반적으로 심한 긴축상태는 아니었던 점과 한국병합이란 대사가 있었음에도 선인 구매력에 하등의 영향이 없었던 점은 특히 주목해야 할 현상이라 하겠다.
올해 1월에 들어 상중순에는 계속되는 쌀의 반출이 있어서 이 방면에 다소간 자금 수요가 있었지만, 중순 이후에는 그것이 현저히 감퇴한 데다가 겨울철 공사 진행이 부진함과 아울러 연말 구매 후가 되어 입하될 상품도 감소해지니, 한 달 통틀어서 금융은 평온했다. 2월에 들어서도 상중순은 구정 때문에 선인의 출시(出市)가 없으며 쌀의 반출도 전무한 상태였다가 하순에 접어들면서 다소 쌀의 반출을 보게 되면서 화물 집산력도 조금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 달에 비해 약간 자금 수요가 있었는데 대체로 금융은 완만한 편이었다. 3월 들어 갑작스레 쌀의 반출이 증가함과 이입되는 화물 증가 및 공업계의 활황에 힘입어 상응한 자금 수요가 있었다. 그래도 대체로 금융은 종전처럼 완만한 상태를 지속해 각별한 변동 없이 지나갔다. 4월에는 이미 출곡기(出穀期)를 지나 곡물 매부(買付) 자금의 수요가 점점 감소되었지만 군항지 및 기타 공사자금에 들어갈 돈이 많아졌음에도 시중 금융은 계절 관계상 상황이 활발하지 못해 대체로 완만한 편이었다. 5월 들어 곡물에 대한 자금 수요는 현저히 감퇴하여 한 편에 도래하는 사람들의 증가에 따라 은행예금도 점차 증가해 시중 금융도 마찬가지로 계절적인 관계로 자금 수요를 환기시킬 수가 없어서 완만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6월에는 곡물이 거의 나돌지 않기 때문에 자금 수요가 현저히 감퇴세를 보이며 한편에서 은행예금은 도래자(渡來者) 휴대금 및 공사자금의 유입이 있어서 증가 경향을 보이기도 했는데 금융 일반은 완만한 것이었다. 7월에도 지난달과 같이 곡물이 나돌지 않아 간신히 저장미 및 목재류가 소액으로 이출된 것뿐이라 게다가 자금 수요도 없는 데다 신규 도래자 휴대자금의 예치가 많아 금리도 3% 정도 하락했다. 또한 긴 장마 때문에 여름철의 콩 수확이 불작(不作) 상태라 자금 수요는 별 없던 것이다.
이곳의 금융기관으로서는 조선은행 마산출장소, 경상농공은행 마산출장소, 마산금융주식회사, 마산지방금융조합, 사채업자, 전당포업자 등이 있다.
(1) 조선은행(朝鮮銀行) 마산출장소(馬山出張所)
마산금융계에서 으뜸가는 이 출장소의 전신은 제일은행(第一銀行) 마산출장소이며 명치 38년(1905) 12월 25일에 개업했다가 1909년 11월 20일에 한국은행(韓國銀行)에 그 사무를 계승시켜 한국은행 마산출장소가 되었다. 명치 43년(1910) 6월 1일부터 마산지금고(馬山支金庫)의 사무 취급을 개시해 명치 44년(1911) 9월 15일, 한국은행의 개칭으로 조선은행 마산출장소로 이름을 바꾸고 오늘에 이른다. 본사가 중앙은행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에 이 출장소도 역시 중앙은행적인 업무를 보면서 보통은행의 업무도 보고 있다. 본사 자본금이 1천만 엔, 불입자본금이 250만 엔이며 최근의 이익배당금 이율은 연 6%가 된다. 현재의 이 출장소의 본 년도 수개월 동안의 예금, 대출, 환수불고(換受拂高)는 아래와 같으니 참조 바란다.
| (단위:엔) | |||||||
| 구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 예금고 | 157,369.46 | 154,423.04 | 171,617.28 | 175,181.49 | 189,878.98 | 198,575.82 | 219,032.83 |
| 대출고 | 74,864.46 | 77,645.41 | 76,447.21 | 82,572.47 | 78,883.74 | 69,847.66 | 73,517.69 |
| 환수불고 | 303,639.57 | 326,396.13 | 331,878.35 | 288,450.94 | 382,220.10 | 333,563.83 | 335,633.30 |
출장소장은 유바 주에이(弓場重榮)인데 도쿄 출신이며 명치 20년(1887) 15살 때에 도한(渡韓)하여 바로 제일은행 부산지점에 입사, 근속 32년이다. 그 새 인천, 경성, 진남포, 평양, 개성 등 곳곳에 근무하다 지난 명치 42년(1909)에 제일은행이 그 업무를 한국은행에 계승하자 한국은행 개성출장소장이 되어 다음 해 2월에 개성출장소 폐쇄와 아울러 경성 본점에 전근, 동년 4월에 부산출장소 창설에 즈음해 부산에서 근무, 작년 11월에 이곳에 오게 되었다. 사려 깊고 인정의 기미(機微)에 통해 은행 업계의 준재라는 정평이 자자하다. 그런데 유바 주에이는 조선말에 능통하며 조선어 독습서(獨習書)까지 저술한 바 있다. 판을 거듭하기를 수십 판인데 아직 잘 팔려나간다니 그 내용의 충실함을 짐작할 수가 있다.

(2) 경상농공은행(慶尙農工銀行) 마산출장소(馬山出張所)
구마산에 있으며 이 출장소의 영업은 주로 선인을 고객으로 삼아 선인의 농공자금을 융통해주는 것을 주요한 목적으로 한다. 명치 39년(1906) 11월 1일, 진주농공은행(晋州農工銀行) 마산출장소로서 개업해 다음 해 상반기에는 경제계가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은행 업무도 선인 사이에 그 이름이 주지되면서 점차 융성해졌다. 하반기에는 전기의 추세를 따라잡으면서 새로운 보조통화가 홍포(弘布)되면서 당 항구가 발전의 조짐을 보이니 영업 역시 호황을 누린 것이다. 명치 41년(1908) 상반기는 일본경제의 불황과 곳곳에 폭도출몰 등이 있어서 재계는 전반적으로 부진했음에도 이 항구의 발전에 따라 유력한 일본인들이 많이 들어와 예금 및 대출은 똑같이 꽤나 증가했다. 그러나 하반기에 이르러서는 연말에 쌀값이 폭락해 경제계는 큰 타격을 받아 영업 부진에 빠져 버렸다. 1909년 상반기부터 1910년 상반기에 걸쳐 경제계는 각별한 발전을 보이지 못했으나 세운(世運)의 추이와 은행에 대한 신용증가로 영업은 착실히 진전을 보였다. 1910년 하반기와 1911년 상반기는 합방(合邦), 곡물시장의 승등(昇騰), 내지 자금의 유입 등과 아울러 군항 시설의 착수는 한때의 성황에 대해 마치 반동의 의지를 보이려고 하는 듯 이 항구에 생기를 불어넣어 이 출장소의 영업도 이제야 그 기반을 굳힌 것 같다. 본사 자본금은 20만 엔, 지불자본금은 6만 5천 엔, 최근의 배당률은 연 12%를 내고 있다. 아래에 동 출장소 개업 이래의 예금, 대출 및 환거래액을 들었으니 영업의 일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업 이래의 예금, 대출금 및 환취급액 일람표 (단위:엔)
| 연차 | 예금 | 대출 | 환취급 | |
| 발행고 | 피발행고 | |||
| 1906(하) | 4,046.20 | 14,760.00 | 2,000.00 | - |
| 1907(상) | 1,788.05 | 57,288.96 | 10,961.56 | 4,609.51 |
| 1907(하) | 6,452.20 | 62,335.00 | 96,839.80 | 16,828.00 |
| 1908(상) | 16,672.35 | 76,478.27 | 81,171.71 | 21,910.00 |
| 1908(하) | 11,494.61 | 62,828.34 | 67,108.90 | 54,474.86 |
| 1909(상) | 17,742.96 | 54,952.84 | 90,970.98 | 57,973.74 |
| 1909(하) | 31,382.93 | 79,232.79 | 157,239.23 | 54,377.09 |
| 1910(상) | 47,597.17 | 94,522.56 | 163,379.37 | 74,869.46 |
| 1910(하) | 71,587.52 | 117,212.94 | 221,458.24 | 140,189.75 |
| 1911.1월 | 76,201.27 | 119,879.04 | 24,494.24 | 23,759.66 |
| 1911.2월 | 84,942.14 | 118,874.24 | 50,668.37 | 54,563.99 |
| 1911.3월 | 98,854.52 | 138,211.93 | 77,252.88 | 170,730.21 |
| 1911.4월 | 101,520.13 | 146,694.33 | 94,247.92 | 169,180.60 |
| 1911.5월 | 123,375.93 | 143,842.22 | 114,199.56 | 211,902.73 |
동 출장소 지배인인 하라 신타로(原信太郞)는 나가노현(長野縣) 출신. 명치 35년(1902)에 도쿄에서 법학사가 되어 동년에 오사카상선회사에 입사, 명치 37년(1904)에 인천지점 조역을 맡게 된다. 명치 40년(1907)에 한국창고회사 지배인이 되고 동년 인천지점의 지배인이 되었다가 1909년에 현직에 옮겼다. 성격이 날카롭고 주위를 살피는 능력이 탁월한데도 독실하고 대인관계가 아주 원활한 사람이다. 마산 실업계에서 새 지식을 지닌 인물로서 세간의 평이 자자하다.
(3) 마산금융주식회사(馬山金融株式會社)
구마산 신마치(新町) 1정목에 있다. 명치 41년(1908) 6월 8일 창립이며 금전대출, 경작(耕作) 식림(植林)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현재는 대출업에만 종사해 다른 사업에는 손은 대지 않고 있다. 자본금은 6만 엔, 주식당 50엔이며 주식당 지불한 주식금은 25엔 50전이며 최근의 배당률은 연 7%가 된다. 조직은 내지인만으로 구성된 주식조직으로 임원은 전무이사 미쓰타케 기이치(満武龜一), 이사 도리타니 쓰네이치(鳥谷常市), 이사 오카와 나카히로지(大川內博二) 등이다. 동 회사가 창립되었을 때에는 국토풍속이 다르다는 점과 언어가 통하지 않음으로 피차간의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아 업무상 많은 애로점이 있었다. 현재는 지방 사정과 언어에도 익숙해져 업무도 제대로 흘러간다. 회사업무가 성실하고 사원들의 선의 어린 행동으로 선인들도 이제는 회사를 믿어 아무런 의구심도 버리고 전당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현재의 대출액은 2만여 엔으로 내지인 6, 선인이 4의 비율이다. 이자율은 월평균 3%가 된다. 동 회사는 선인을 상대로 설립된 것이어서 음력에 따라 영업이 펼쳐져 업무 연도는 매년 3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를 상반기로, 9월 1일부터 다음 해 2월 말까지를 하반기로 삼고 있다.
(4) 마산지방금융조합(馬山地方金融組合)
구마산에 있으며 명치 40년(1907) 11월 8일에 창립되었다. 농민(조선인)을 위한 금융을 완화해 농업발전을 도모하는 사단법인이며 한 군(郡) 혹은 몇 개 군에 지소를 두고 농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조직하고 있다. 업무의 종류는, (1)조합원에 대해 농업상 필요한 자금대부 (2)조합원을 위해 생산한 곡류의 창고 보관 등이다. 설립 취지는, (1)시골 특히 농민을 위한 금융을 소통시켜 그 경제상태 개선 (2)농사 개량을 보조 (3)납세의 편의를 위한 화폐 정리의 조성 등에 있다. 대부금액은 1인당 50엔을 한도로 해 가능한 한 소액을 더 많은 사람에게 융통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대부기한은 6개월을 넘지 않는 것으로 정하고 조합원은 가입시에 금 2엔을 납입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본금은 1만 엔, 적립금 2,891엔 26전 9리(1910년 말), 이자는 담보 없이 신용대부 때 100엔에 날마다 6전, 부동산 담보가 있을 때 100엔에 날마다 5전 5리, 동산담보가 있을 때는 날마다 3전, 위탁판매 경우 입고시에 해당물품 싯가 80%를 전도금(前渡金)으로 하고 수수료로서 입고시 싯가와 매상금의 차액에 대해 3%를 징수하기로 되어 있다. 조합원은 입고에 관해 보관료는 징수하지 않는다. 현재의 대출금 잔고는 8,592엔 82전, 위탁판매 전도금잔고는 1,704엔 50전이다. 조합장은 이승부(李承釜), 평의원 김진호(金進鎬), 김경근(金慶根). 김경학(金景鶴), 방의수(方義洙), 이병홍(李炳弘), 김영섭(金榮燮), 김상수(金庠洙), 주기효(朱基孝), 박기홍(朴基洪), 윤도연(尹道演), 이사장 히로세 겐타(弘瀬原太), 농업 기수(技手) 도마메지 긴타로(苫米地金太郞), 통역 김성오(金星五), 조합원 수는 413명이 된다.
(5) 개인 사채업자[金貸業者]
무릇 사람 사는 곳에는 꼭 사채업자가 있는 법이다. 그 이유는 대부업이 가장 효율적인 장사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금리가 높은 조선 같은 곳에는 더욱 그러하다. 약 20명이나 되는데 현재는 거의 대부를 하고 있지 않다는 핑계로 자본금과 대부금액을 밝히지 않는 자가 많아서 그 실태를 알 수가 없다. 아래 도표는 그 일부를 표시한 것이니 그 전모를 유추해 주기 바란다.
| 개업년월 | 현재의 자본금액 | 대부금액 | 이자 | 성명 |
| 1908년 6월 | 25,000엔 | 11,800엔 | 월2.3% | 오카무라 소이치(岡村宗一) |
| 동년 7월 | 25,000 | 20,000 | 월2.3% | 시라이시 다모쓰(白石保) |
| 동년 9월 | 500 | 300 | 월3.0% | 마쓰모토 히데조(松本秀藏) |
| 동년 9월 | 4,000 | 2,500 | 월3.0% | 시미즈 쵸노스케(清水長之助) |
| 1910년 1월 | 4,000 | 2,000 | 월3.0% | 오카무라 가쓰(岡村カツ) |
| 동년 2월 | 500 | 500 | 월4.0% | 나이토 쓰네쿠마(内藤經熊) |
(6) 전당포업자[質屋業者]
어디서도 편리하게 쓰는 것이 전당포다. 이곳의 전당포 업자로는 아래 몇 군데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 우에니시(植西)전당포 | 교마치 2정목 | 고이즈미(小泉)전당포 | 교마치 2정목 |
| 요시무라(吉村)전당포 | 사카에마치 | 고니시(小西)전당포 | 교마치 3정목 |
| 미야케(三宅)전당포 | 도오리마치 | 오카모토(岡本)전당포 | 미야코마치 1정목 |
| 가토(加藤)전당포 | 혼마치 3정목 | 모모키(百木)전당포 | 구마산 |
| 가도야(角屋)전당포 | 사카에마치 | 고니시(小西)전당포 | 교마치 2정목 |
| 나카이(中井)전당포 | 교마치 2정목 |
아직 조합이란 조직이 없어서 이자는 일정하지가 않지만 대충 아래와 같다.
| 구분 | 이자 |
| 3엔 미만의 금액 | 월 7% |
| 3엔 이상 20엔 이하 | 월 5% |
| 20엔 이상 | 월 4% |
현재의 대출고는 우에니시전당포의 1만 엔 내외가 으뜸이며 최하금액은 500엔이라 한다. 돈을 갚지 않아 맡긴 물건이 처분되는 비율은 10% 내지 15%가 된다는데 이곳의 고물상에 매각되어 전부 이곳에서 처분된다고 한다. 본 항을 끝내는 마당에서 당 지의 각종 대부금의 이율을 게시하니 그 개황을 살펴주기 바란다.
| 대부 | 종목 | 최고 | 최저 | 보통 | 비고 |
| 부동산 | 100엔에 대한 하루이율 | 3전3리 | 2전6리 | 3전 | 보통은행이자 |
| 증권 | 동 | 3전1리 | 2전4리 | 2전8리 | 동 |
| 상품 | 동 | 3전3리 | 2전6리 | 3전 | 동 |
| 신용 | 동 | 3전3리 | 2전6리 | 3전 | 동 |
| 당좌대월 | 동 | 3전3리 | 2전6리 | 2전9리 | 동 |
| 여러 어음할인 | 동 | 2전8리 | 2전3리 | 2전6리 | 동 |
| 수출추심환 | 동 | 3전4리 | 2전8리 | 3전1리 5% | 동 |
| 정기예금 | 동 | 6개월 이상 4.5% 1년 이상 5% | 동 | ||
| 당좌예금 | 하루이율 평균 0.07% | 동 | |||
| 소액예금 | 모두 100엔에 대해 1전 | 동 | |||
| 일본인 사이의 저당대차 | 1개월에 1.5%에서 3.5% | 개인대부이자 | |||
| 일선인(日鮮人) 사이의 저당대차 | 1개월에 2.5%에서 3.5% | 동 | |||
| 약속어엄 신용대차 | 1개월에 3.5%에서 4% | 동 | |||
이 글은 2024년 창원시정연구원이 근대초기 마산에 대한 세 권의 책과 한 개의 자료를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5권 『개항 및 일제강점기 마산 기록』 중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의 제1장 마산 부분이다. 1911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두 사람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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