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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8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5. 제2절 관아공서-2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5. 제2절 관아공서-2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마산헌병분대(馬山憲兵分隊) 마산헌병분대의 전신은 대구헌병분대 분견소(分遣所)이다. 그 분견소는 명치 42년(1909) 12월 2일에 혼마치(本町) 3정목 29번호에 설치되어 그날부터 사무를 개시했다. 명치 43년(1910) 7월 18일 편제개정으로 인해 마산분견대로 개칭해 김해, 웅천, 현동, 진해, 배장역(背長驛), 고성 및 장목포의 일곱 군데 분견소를 관할하게 되었다. 현재 분대장은 육군헌병대위인 요시다 요시로(吉田喜郞)이며 분대 인원은 장교 이하 약 80명이다. 각 분견소장은 군조.. 2026. 1. 12.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4. 제2절 관아공서-1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4. 제2절 관아공서-1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마산부청(馬山府廳)청사는 명치 41년(1908) 11월에 준공된 양풍의 기와 건물로 지어진 멋진 것이며 다이마치(臺町) 언덕에 있다. 만내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절호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애초에 부산영사관 분관으로서 설치되었다가 그 후 몇 번이나 이름과 주인을 바꾸고 작년에 한국병합 후에 부청으로 되어 부내 행정사무를 총람(總攬)하게 되었다. 명치 39년(1906) 1월에 이사관으로 부임 이래 근속한 미마스 구메키치(三增久米吉)가 재근 중이다. 이하 현재 직원은 서기 8명[.. 2026. 1. 5.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3. 제1절 총설-2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3. 제1절 총설-2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일본인 호구는 2천 호, 인구는 7천 명을 넘고 있으나 매월 새로 도래하는 자가 2백 내지 3백 명을 헤아리는 오늘의 추세에서는 같은 숫자 수준에서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 개항 초년도(1899년)부터 최근에 이르는 호수와 인구의 변천을 표로 제시함으로써 마산 발전의 한 면을 알 수 있도록 하겠다. 호구표 (1) (매년 12월 말 현재)연별호수인구남자여자계1899년3387161031900년70189612501901년80160992591902년992031303331903년95191136327.. 2025. 12. 29.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2. 제1절 총설-1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2. 제1절 총설-1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서설(序說) 왕년에 일본과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그 패권을 다투었을 때, 전략상의 유일한 요충지로서 서로가 그 획득에 부심하였고 그 성패는 양국의 군사적인 지위에 결승적(決勝的인) 운명을 가져다줄 관건으로 부상하여 양국 항쟁의 중심점이 되었던, 마침내 일본의 승리로 귀결된 바로 그곳이 한남(韓南)의 이곳 마산이 아니었는가. 러일전쟁 때, 연합함대 사령관인 도고(東郷) 대장이 근거지로 삼아 제국해군의 늠름함을 세계에 보이며, 러시아의 견동함대(遣東艦隊)가 쇄도할 때, 황국의 흥폐는 이 일전에 .. 2025. 12. 22.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1. 해제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1. 해제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해제 이 책은 일한병탄 일 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발간되었다. 그래서 당시의 일본인이 느끼는 시대적 분위기가 저자의 자서(自序)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저자는 ‘계림팔도(鷄林八道)가 왕화(王化)의 은혜가 베풀어지는 곳’이 되었다며 감개무량이라고 한다. 러일전쟁 당시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 마산과 진해만이었다며 그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을 소개하게 되어 ‘통쾌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고 감격한다. 그리고는 ‘대세를 타고 신천지에서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국가의 진운(進運)에 이바지하고자 함’은 진정 .. 2025. 12. 15.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10절 행암만(行巖灣)과 덕산리(德山里) 제10절 행암만(行巖灣)과 덕산리(德山里) 신시가지에서 약 일 리(1里)거리, 행암만(아래 사진은 현 행암만 전경)에 면한 덕산리는 가까운 장래에 상항으로서 상선 출입이 빈번해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이에 부수할 사업을 계획하는 자도 많다.  현재 행암만에서 매축(埋築)에 종사하고 있는 오사카 세라 류조(瀨良隆三)의 철공소 신설지가 1,200평, 도쿄의 엔도 다모츠(遠藤保), 야마모토 가타로(山本嘉太郞) 두 사람의 800평, 도쿄 가네코 치호(金子千芳)의 우유 착취장 1,000평 등인데, 앞의 세라 씨는 꽤 넓은 주물공장을 설치해 군항은 물론 시내외의 모든 수요에 응하는 한편, 재목상 및 토공구용 철물상도 경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덕산리에는 세관감시원이 출장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감시서를 건설하게.. 2024. 11. 18.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3절 해군용지 대하(貸下) 및 시가지 경영 제3절 해군용지 대하(貸下, 관공서에서 민간에 빌려줌) 및 시가지 경영 진해 해군용지 대하에 관한 내규는 작년 8월 5일부로 시행되었다. 그 내는 진해 해군용지 내에 있는 경작지, 미간지(未墾地, 아직 일구지 못했거나 않은 땅) 및 택지 대하에 관해 이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경작지에 관해서는 경작지에 관해서는 제1조에서 이라는 취지를 정하고, 미간지에 관해서는 제17조에서 이라 정했다. 택지에 관해서는 제27조에 는 (남의 땅을 빌려 쓰는 사람)>이 아니라도 , 기타 에 으로 정했다. 시가지는 12만평이며 대규모 계획을 가지고 모범적인 시가지로 구획되어 형성되어 가고 있다. 폭이 20간(間, 1간은 1.818182미터로 20간은 약 36.36미터에 해당함), 15, 10간 등 큰 도로가 가로 세로 십.. 2024. 9. 30.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1절 군항지 개관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권 『근대 문헌 속 진해』 중 『마산과 진해만』의 2장 ‘진해만’ 부분이다.  제1절 군항지 개관 동양 제일의 대군항인 진해만(진해만이라는 명칭이 진해군의 앞쪽 해역을 포함하여 웅천군 거제군·고성군으로 둘러싸인 넓은 해역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중략) 1. 우선 조선시대부터 '진해(군)'이라는 고유지명(행정지역명)이 현재의 진해로부터 조금 떨어진 서쪽에 있었던 점. 2. 당해 해역(현재의 '진해만‘을 말함)에 접해 있는 몇 개의 지역명 중에서, 특히 진해라는 지역명에 당시(러일전쟁 개전 전)의 일본군(정부)관계자들이 주목했던 점. 다케쿠니 도모야스, 2019, .. 2024.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