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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과 진해만』(1911) 제1장 「마산」 - 7. 제3절 농업-1

by 운무허정도 2026. 1. 26.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 - 제1장 「마산」 -  7. 제3절 농업-1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공저(共著) / 조선 마산 하마다신문점(濱田新聞店) 명치 44년(1911) 12월 5일 발행

 

제3절 농업(農業)

 

제1관 개설(槪說)

마산민단 지역 내는 대개 상업지역에 속하니 농업경영에 관해서는 하등의 볼 만한 것은 없건만, 부근 지방은 최량의 농업지이므로 이 부()의 성쇠에 중대한 관계가 있기에 일단 개설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무릇 조선 남부지방은 땅이 비옥하며 기후가 온화하고 농산물 경작에 적절해 그 산출액도 많아 반도 중에서 으뜸이 된다.

그중에서도 이 지방 일대에서 산출되는 쌀은 창원미(昌原米)로 칭하는데 내지미(內地米)와 필적할 만큼 양질의 것이다. 근래 내지의 좋은 종자를 선용(選用)한 결과 품질이 한층 더 나아지고 그 장래는 아주 유망하다. 기타 콩, 소채류 재배도 아주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이 지방이 농업지로 다른 지방에 비교해 우수한 점을 든다면 첫째, 기후 온화하면서 우량이 비교적 적순(適順)한 점, 둘째 천연의 관개(灌漑)의 이점이 많다는 점, 셋째로 가축의 사육에 적절한 점, 넷째 해산(海産) 비료를 입수하기가 편리하다는 점, 다섯째 수륙 운수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 등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주된 산물로서 수도(水稲), 육도(陸稲), 보리, 소맥, , 녹두, , , 연초, 배추, , 참외, 수박, 호박, 가지, 마늘 등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농사경영자가 아주 주의깊게 연구해야 할 사항이란 수리(水利)와 방수(防水)라고들 한다.

원래 조선은 치수(治水)를 위한 방도가 갖춰져 있지 않아 치수시설도 얼마 되지 않아 하천 범람 시에는 항상 방임하기 때문에 한번 많은 비가 오면 뜻밖의 지역까지 큰 피해를 입는 사례가 적지 않다.

또 한편으로 관개시설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가뭄이 온다면 수원이 고갈해 온 작물이 시들어버릴 상태에 빠지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는 경영자가 상당한 설비를 갖추지 않으면 상상 밖의 손해를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진영의 무라이농장(村井農場)의 경우, 지난 명치 39년(1906)의 경영 착수 이래, 투하된 자금은 40만 엔 이상에 이르러 땅이 아주 비옥한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수해를 입어 큰 타격을 받고 경영이 점점 곤란해져 마침내 2,600여 정보(町步)의 옥토를 방기(放棄)해 농민 전원을 해고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한 집에 대해 월액 12엔, 6개월 어치 72엔이란 생계비와 귀국여비까지 지불하고 농장을 폐쇄하게 된 점으로 봐서 수해 피해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 지방에서 내지인이 농사 경영의 최적지로 주목할 곳은 영산(靈山)과 함안(咸安) 지방이며 동 지방은 평야가 드넓고 대규모 농업에 아주 적절하다. 종래 동 지방은 교통상 불편함을 면치 못했지만, 함안 방면은 본 년도 5월에 마산 진주간의 도로가 개통되어 그 연도(沿道)에 해당된다.

영산지방은 좀 있으면 마산 대구간의 도로가 개통되기에 교통 운수상에 일대 발전을 가져다주고 물자의 출입도 아주 편해질 것이다. 거리는 마산 함안 사이가 3리, 고산(高山) 영산 사이가 7리이다.

영산군에 속하는 논밭은 합쳐서 4,500여 정, 함안군은 5,300여 정이 되고 아직 미개간지는 양군 합쳐서 3,500여 정이 있어서 내지 농민의 이주지로서는 가장 합당한 곳이다. 또한 미곡 산지로서는 웅천, 칠원, 진해, 창원, 의령, 김해 등 여러 읍을 들 수가 있다.

 

제2관 주요 농사경영자(農事經營者)

이 지방에서 주요 내지인 농사경영자는 5~6곳을 헤아린다. 그중에서 진영의 무라이농장이 가장 규모가 크고 우세했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폐멸에 이르렀으니 여기서는 논하지 않는다. 그 외로 첫째로 들어야 할 데는 동양척식회사이다.

 

(1) 동양척식회사(東洋拓殖會社) 출장소(出張所)

명치 42년(1909) 10월 6일 창립되었으며 투자액은 약 15만 엔에 이른다. 관리지(管理地) 면적은 4,500정보(町步)인데 1부(府) 13군(郡)에 걸친다. 그중에서 논이 3,300정보, 밭이 1,200정보를 점유한다(택지는 이 안에 포함). 명치 43년(1910)의 수확은 쌀 21,000석, 콩 260석, 보리 800석, 현금납부 11,300엔에 이른다(당시 논밭은 약 4,000정보). 본 년도의 불하(拂下) 쌀가격은 평균 6엔 80전이란 전망이다.

그리고 1910년도의 이민(移民)은 갑종(甲種) 단체 3개소 53호(마산부 상남면 10호, 고성군 동읍면 32호, 사천군 근남면 11호)이며 갑종 단독 3개소 12호(마산부 하남면 3호, 동 부내면 5호, 동 내서면 4호)가 된다. 본 년도 이민계획은 총수로 190호, 그중에서 김해군 약 80호, 마산부 약 15호, 사천군 약 30호, 하동군 약 30호, 기타 약 35호로 되어 있다. 역둔토(驛屯土)의 인수가격은 반(反)당, 밭은 약 35엔, 논은 약 17엔 50전이다.

동 출장소 사무소는 구마산의 고토부키마치(壽町)에 있으며 소장은 가사이 겐지로(笠井健次郞)이다.

창업 이래 같은 곳에 사무소를 두며 내지인 18명이 선인 10명을 쓰며 열심히 아래의 업무를 추진해 아주 바쁘다. (1) 토지관리, 토지측량, 소작계약, 소작료징수, 소작료처분, 수리공사, 채종논(採種田) 경영, 종자대부, 농은(農銀) 대부, 경우(耕牛) 대부. (2) 토지매수. (3) 이주민 토지분배 및 감독. (4) 대부금, 대부금 신청 취급 및 소액인 담보물건의 감정.

(2) 다나카(田中) 사무소

아사히마치(旭町)에 사는 다나카 유즈루(田中遜)가 경영하는 곳이며 농장은 두 군데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웅서면(熊西面)에 있는 밭 15정보이며 종류는 보통농사로 소작법에 의거한다. 창업은 명치 39년(1906) 12월이며 투자금액은 5천 엔이다. 다른 하나는 완월동 철도용 수원지(水源地)의 밭 3정보와 산림 100정보이다.

밭 3정보는 다나카가 계획하고 있는 7정보의 일부를 이루며 나머지 것은 내년 봄에 착수 예정이라고 한다. 밭은 과수원, 산림은 소나무, 상수리나무로 조림된 것이며 경영은 스스로 하고 있다.

창업은 1910년 1월이며 투자액은 2천 엔이다. 사무소 소재지는 야나기마치(柳町) 21번지이다.

(3) 한다 쓰토무(半田勉)

마산부 진동면 동리에 살며 같은 곳에 농사 사무소를 두고 있다.

창업은 명치 40년(1907) 9월이며 투자액은 5천 엔이다. 소유지 면적은 논이 6정 4반 2묘 여, 밭이 2반 8묘 여, 산림이 5정 4반 2묘 여가 된다.

농사 종류는 보통농사 및 과수 재배이다. 경영방법은 논 4반은 자작이며 나머지는 소작에 맡기고 있다.

(4) 아카세 스미키치(赤瀬角吉)

마산부 웅읍면(熊邑面) 성내리(城內里)에 살며 농사를 한다. 창업은 명치 42년(1909) 3월이며 투자액은 800엔이다.

소유지는 논밭 산림을 합쳐서 4정 2반 7묘 여가 되며 농사 종류는 보통농사이며 경영방법은 논밭 공히 소작에 의거한다.

 

이 글은 2024년 창원시정연구원이 근대초기 마산에 대한 세 권의 책과 한 개의 자료를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5권 『개항 및 일제강점기 마산 기록』 중 <마산과 진해만(馬山と鎭海灣)>의 제1장 마산 부분이다. 1911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히라이 아야오(平井斌夫), 구누기 마사지(九貫政二) 두 사람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