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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9.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7 / 보테로의 도시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 1932~ )

 

일정 중 틈을 내 메데진 사람들의 자부심 미술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를 감상했다.

 

 

보테로(Fernando Botero)는 콜롬비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투우사 양성학교를 졸업했지만 16살 때 메델린 미술연구소 전시회 출품을 시작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산마르코, 보고타의 국립미술대학에서 공부하였다.

부풀려진 인물과 독특한 양감이 드러나는 정물 등을 통해 특유의 유머감각과 남미의 정서를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장된 인체 비례와 뚱뚱한 모습으로 묘사된 인물 그림으로 유명하며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아래 그림은 보테로의 대표작이다. / 위키백과

 

 

보테로의 말이다.

"예술은 일상의 고됨으로부터 영혼을 쉴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뚱뚱한 여성을 그리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믿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나는 볼륨을 그린다. 정물화를 그릴 때도 역시 볼륨 있게 그리고 동물을 그릴 때도 볼륨이 느껴지게 그리며 풍경화 역시 같다"

 

<보테로 광장>

현대 미술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는 메데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만큼 도시 요소 요소에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그를 기리는 각종 행사가 줄을 잇고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도시 한복판의 '보테로 광장'이다. 이곳은 그를 기념하여 메데진 중심지에 조성한 도시의 상징공간이다.

그러니만큼 광장에는 풍만하고 사랑스러운 그의 작품들이 줄지어 있었다. 작가 보테로의 진수와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었다.

도시 밖에서 온 사람들은 부지런히 보테로의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메데진 시민들은 조각작품들 사이사이 놓인 벤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메데진은 보테로의 도시였다.

 

 

 

<안티오키아 미술관>

 

 

보테로 광장과 마주하고 있는 안티오키아(ANTIOQUIA) 미술관으로 갔다.

안티오키아는 메데진이 속한 주의 이름이며 안티오키아 주도가 메데진이다. 안티오키아 미술관은 안티오키아 주립 미술관이다.

이곳에도 보테로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티오키아 미술관의 매력은 페르난도 보테로 컬렉션을 보는 것이었다.

보테로는 고향의 이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 92점을 기증했고, 그것들이 안티오키아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보테로 광장의 작품도 그 중 일부다.

 

 

수도 보고타에 그의 미술관이 따로 있지만, 메데진에서 보테로를 보기 위해서는 이곳 안티오키아 미술관을 뺄 수는 없다.

보테로의 남미 사랑은 각별하다.

“나는 모든 것을 그릴 수 있기 바란다. 마리 앙투아네트까지도, 그러나 나는 항상 내가 그리는 모든 것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정신이 깃들여지기를 바란다.”

이 말처럼 보테로의 작품 주제 대부분은 중남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만큼 그는 라틴 사람으로서 라틴 사람에 대한 애정에 기반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서정성에 기초한 삶의 은유와 풍자가 보테로 작품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적절한 말이다.

보테로 스스로 "나는 볼륨을 그린다"고 했다지만, 한 눈에 봐도 풍자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얼핏 장난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부당한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과 폭로가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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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2.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6 / 국제 시(詩) 축제

아래의 글은 도시연구자 박용남 선생의 글을 참조하였습니다.

 

시(詩)가 도시를 살릴 수 있을까?

시인(혹은 시)을 매개로 개최되는 축제는 국내에도 많다. 축제 분위기는 대부분 서정적이다.

하지만 메데진의 ‘국제 시(詩) 축제(International Poetry Festival of Medellín)’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메데진의 ‘국제 시 축제’는 콜롬비아, 특히 메데진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폭력과 증오에 대한 항의로 시작되었다.

앞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1990년대 초 메데진은 정치 테러 및 범죄 집단 간의 투쟁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의한 공포가 사회를 짓눌렀다.

주말 한 번에 약 100명이 살해 되고, 오후 8시 이후에는 군대가 사회를 통제하는 야간 통행금지 등으로 인해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나라 전체가 완전히 죽어 있었다.

메데진의 ‘국제 시 축제’는 이런 도시를 되살리기 위한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날 거리에서 시 낭송이 시작되었고, 그를 통해 메데진의 문화생활이 재건되고 도시가 서서히 생기를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진들은 지금까지개최된 메데진 '국제 시 축제' 중 한 장면>

 

메데진의 ‘국제 시(詩) 축제(International Poetry Festival of Medellín)’는 1982년에 창립된 문학 잡지 Prometeo와 관련된 13명의 사람들에 의해 1991년에 처음 조직되었다.

‘시 축제’에 대한 영감을 가장 먼저 떠올린 이는 편집자이자 시인이었던 페르난도 렌던(Fernando Rendón)과 안젤라 그라시아(Angela Garcia)였다.

최초로 축제가 열렸던 1991년 메데진의 살인률은 인구 10만 명당 381명(6,349건 살인 사건)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 축제는 2006년도에 ‘바른 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했고, 2009년부터는 콜롬비아의 문화 예술 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바른 생활상’은 1980년 "세계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비전과 모범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용감한 사람들과 조직을 존중하고 지원"하기 위해 독일에서 제정되었다. '대안 노벨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상은 현재 70개국 174명이 수상했다.

‘바른 생활상’ 재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메데진의 ‘국제 시 축제’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수준 높은 평가다.

“콜롬비아는 테러 집단의 희생자이며, 시(詩)는 수수께끼를 해독하는 보편적인 언어입니다. 테러는 국가가 후원하는 것이며, 시는 꿈이자 영원한 도전에 대한 해답입니다...... 메데진의 ‘국제 시 축제’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시 축제 중 하나입니다.”

 

올해로 29회째를 맞이하는 이 행사가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6일까지 8일 동안 5개 대륙 35개국에서 온 시인들이 참가해 메데진 시 전역에서 진행되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시인은 한 명도 없었다.

축제 프로그램은 시 낭송회, 워크숍, 문학 강좌와 패널 전시 등 120개 이상의 활동이 이루어지며, 매년 20만 명 내외의 내국인과 외국인들이 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내가 방문했던 일자와 달라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혹 다시 메데진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참석해보고 싶은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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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26.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5 / 빈민은행 Bancuadra

 

이 글은 도시연구자 박용남 선생의 글을 참조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이 사는 곳 때문에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거절당해서는 안 된다.”

이 슬로건으로 하층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런던의 주거복지재단 L&Q(London and Quadrant)을 방문했을 때 가장 와 닿았던 사업이 ‘금융과 함께 만든 자활펀드’였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메데진에도 있다. 하지만 메데진의 경우는 시작이 런던 L&Q와는 좀 다르다.

'꽃과 미녀의 도시'라지만 메데진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늘 그렇듯 가난한 사람들은 고금리 이잣돈을 쓴다. 이 포스팅은 메데진 시 정부가 이 문제에 대응하는 한 사례이다. 

2017년 메데진 시 정부는 가난한 시민들이 조직범죄와 연관된 대출 사기꾼들에게 의존해 급한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응해 'Bancuadra(micro credit bank)'라 불리는 빈민 은행을 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동경제플랫폼'이다.

 

 

사실상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콜롬비아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 좋은 조건으로 일반은행에 대출을 받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은 결국 위험하고 고금리인줄 모르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대출사기꾼들에게 돈을 빌리게 만든다.

“gota gota(drop drop)”라고 불리는 이 대출사기꾼들은 무려 한 달 이자로 원금의 20%를 받기도 한다.

이런 현실은 도시 빈민들의 경제 상황을 점점 더 나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때로는 극단적인 폭력에 빈민들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메데진 시 정부의 추계에 따르면 이런 불법 대출의 1년 총액이 무려 1억 2천 4백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끔찍한 일이다.

 

Bancuadra는 이런 불법 대출을 막기 위해 탄생되었다.

물론 대출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나이와 생활수준 등 일반적 조건 외에 메데진 만의 특이한 조건이 있다.

3개월 안에 부채 상환을 할 수 있는 시민그룹 및 중소기업가에게 제공하며, 여기서 말하는 그룹은 모두가 모두를 깊게 신뢰하는 5~19명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커뮤니티의 신뢰를 담보로 사용한다는 의미인데, 그것만으로도 매우 혁신적이다. 신뢰가 깊은 사람들끼리 서로 대출인과 보증인으로서의 관계를 만들어 도움을 주고 받는 구조다. 벤치마킹 해볼만한 시스템이다.

Bancuadra에서 제공하는 대출이 거액은 아니지만 급한 돈이 필요한 시민들에게 소중한 도움이 되고있다.

이자는 월 0.91%, 우리 일반은행보다는 높은 편이지만 콜롬비아 기준으로 보면 아주 낮은 이율이다.

Bancuadra는 미국의 블룸버그 자선재단이 2016년에 공모한 ‘시장 도전상(Mayors Challenge Prize)’에 선정되어 받은 1백만 달러의 상금을 종자돈으로 시작했다.

이 새로운 금융 공공서비스는 메데진 시 정부가 대출사기꾼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빈민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아직 실험단계인데 향후 성공 여부에 따라 확대될 계획이다.

걸음마 단계이지만 국내에도 소액신용대출은행이 몇 가지 가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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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12.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4 / K-LINE Cable Metro

-그들의 도전-

 

통영 및 여수, 최근 다시 속도를 내고 있는 설악 오색케이블카 등 우리사회에서 케이블카 설치는 지역의 관광산업의 활성화의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 그에 따른 지역개발과 환경보전 사이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메데진(Medellin)은 새로운 시각과 발상 전환을 통해 세계 최초로 케이블카를 대중교통 수단(Cable Metro)으로 도입하였다.

현재 세계 30개국이 넘는 도시에서 메데진의 이 혁신적 시도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니 그 실효성은 이미 입증된 것으로 보인다.

 

<메데진의 케이블카 K-LINE Cable Metro>

 

구체적인 이야기에 앞서 메데진의 도시변천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고산지대의 온화한 기후가 특징인 메데진은 최초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조성된 후 19세기에 이르러 금과 커피 무역의 거점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내전과 마약분쟁 등 급속한 인구유입 요인이 있었고 이는 산악 빈민지역의 난개발 확장(Urban sprawl)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메데진의 난개발>

<모든 건물에 사용된 사각형 3구 황토 블럭>

 

이런 상황에서 세르지오 파자르도 시장을 비롯한 정책입안자들이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에 대응하고 달동네 빈민촌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한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메데진 K-LINE으로 대표되는 Metro Cable이다.

교통복지를 통한 사회적 도시화(social urbanism)의 새로운 모델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메데진의 대중교통 Metro Cable K-LINE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아래 '메데진 대중교통 시스템 노선도'의 윗 부분에 살짝 한번 꺾인 수평의 연두색 라인이 'Metro Cable K-LINE' 이다.

 

< 메데진 대중교통 시스템 노선도 >

 

메데진의 대중교통 시스템 노선은 중전철이 도시 중앙을 가로 지르고, 지선은 버스 및 K-LINE 등과 같은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다.

현지 치안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걱정에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Metro A-LINE Universidad역에서 전동차에 올랐다.

우려와는 달리 차안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하고 한국 지하철과 많이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스페인어와 우리 일행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몇몇 현지들만이 여기가 메데진 전철 안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전동차 역 출입구와 차 내부>

 

Acevedo역에 도착하여 K-LINE 케이블카로 환승하였다. 별도로 요금을 내지는 않았다.

K-LINE은 고지대 빈민지역을 가로질러 올라가는 케이블카 코스였다. 'COMUNA 13' 처럼 도시재생으로 관광지화 시킨 곳은 아니었지만 케이블카로 교통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 놀랐다.

케이블카 밖으로 다닥다닥 붙은 경사지의 수많은 집들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마치 과거 우리의 달동네 수십 수백 개를 한 곳에 모아 놓은 듯 했다.

놀아움이 이어졌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끝 없이 펼쳐진 붉은 황토색 주택들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공 황토벽돌과 골함석 지붕으로 만들어진 수십만 채의 집들이 도시와 구릉지와 계곡을 뒤덮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규모에 눌려 잠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여태까지 살아 오면서 이렇게 많은 주거용 건축물을 한눈에 담은 적이 있었을까? 이들에게 주어져야할 도시행정은 어떤 것일까? 자문했다.

널리 알려진 도서관은 보수공사 중이라 들어가지 못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다본 현지 모습>

 

메데진 토박이인 현지 운전기사의 말에 의하면 케이블카 설치 이전에는 주민들이 도심의 일터로 이동하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집을 나서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K-LINE 설치로 도심지역으로의 출퇴근 소요시간을 최고 70%이상 줄였다고 하니 이프로젝트의 효과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하게 설치된 우리의 경전철이 도입취지와는 달리 지역의 흉물로 전락한 모습이 오버랩 되어 씁쓸하다.

 

<메데진 현지 운전기사>

 

케이블 K-LINE의 종착역인 Santo Domingo역에서 내리지 않고 고산지대 산악관광지 국립공원 Parque Arvi로 이어지는 케이블 L-Line으로 환승하였다. 여기는 추가비용이 필요했다.

대담한 구상이었다. 

 

<국립공원 Parque Arvi와 연계된 K-LINE>

 

대중교통용 케이블카(K-LINE)와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는 관광용 케이블카(L-Line)를 연계한 시도가 참신하다. 탑승비용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에서 차별하여 운영되고 있었다.

우리도 충분히 도입을 고려해 볼만한 아이디어이지만 우리에게 도시지역과 대규모 자연림이 연결되는 곳이 있을까?

 

<국립공원 Parque Arvi>

 

이름이야 거창하게 'Metro Cable'이라 붙였지만 사실 있는 그대로의 환경에 편익을 증진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빈부격차를 현실로 인정한 고육지책에 불과하며 여전히 변화의 과정에 있어 그 성공을 단언하기에는 이르다는 폄하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이룩한 혁신적인 성과와 노력은 대중교통의 혁신을 통해 주민의 삶을 개선하고 도시재생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도시를 향한 그들의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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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5.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3 / COMUNA 13

-평화를 회복하다-

메데진市의 16구역 중 13구역(La comuna 13)은 마약갱단과 반군들의 주둔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였다.

지금의 'COMUNA 13'은 2002년 10월 16일 내린 Alvaro Uribe 대통령의 무장해제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진압작전에 의해 이곳 'COMUNA 13'이 정부군에게 장악되었고 그로부터 서서히 평화가 회복되었다.

회복된 평화는 미래의 길을 모색하게했고, 그 길의 방향은 자신들의 삶을 담고있는 그릇을 바꾸는 것(공간개선, 도시재생)이었다. 과거에 보지 못했던 방향과 방법으로.

 

<진압당시 사진 / 길 한편에 진압 당시의 사진이 자랑하듯 걸려있었다>

 

초입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에스컬레이터였다.

경사가 급한 산동네라는 특성을 고려해 설치된 무료 에스컬레이터는 'COMUNA 13'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게기가 되었다.

일터까지 두세 시간 걸렸던 출퇴근 시간을 단축해 주었고 길고 긴 오르막 길의 고단함으로 일거에 덜어주었다.

좁고 경사진 골목의 입구만 막으면 외부진입이 불가능했던 곳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그 속에는마약조직별로 구역이 나누어졌고, 살아남기위해 살인과 폭행이 다반사였던 'COMUNA 13'이었다.

넓지는 않지만 입구에 광장을 만들어지고 멋진 에스컬레이터까지 들어서자 공간이 변화한만큼 사람까지 변했다. 소통과 화합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붐빌까봐 아침 일찍 나섰는데 이미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유럽인이 많다고 했다.

 

 

놀라게한 것은 이뿐 아니다.

마약조직 간의 폭력과 정부의 진압작전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조성된 그라피티(graffiti) 때문이다.

그라피티야 도시 농촌할 것 없이 우리나라 어디에나 사람사는 곳이라면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더구나 작년 2월 미국 브루클린 연방법원에서 뉴욕 퀸즈의 한 건물에 그려진 그라피티를 지운 건물주에게 675만불(한화 약 70억원)의 벌금형을 내린 사건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던 터라 관심이 더갔다.

 

'COMUNA 13' 그라피티는 세계적인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작품을 하게함으로써 오늘의 결과가 있게 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라피티의 세계적 명소와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마을 곳곳에 서있는 옹벽과 건물 외벽과 담장에 그려진 수준 높은 그라피티가 관광객의 발걸음을 붙들어맸다. 사회봉사활동이나 대학생 재능기부 등으로 작품 수준이 높지 않은 우리의 그라피티와 비교되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가는 쵸타(CHOTA)라는 젊은 작가였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다녀간듯 쵸타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는 기념품 가게도 눈에 띄었다. 'COMUNA 13'이 그려진 콜롬비아 전통 모자를 하나 사서 차양모로 쓰고 다녔다.

 

<쵸타의 그라피티 작품들과 쵸타가 클린턴과 함께 찍은 사진>

 

<계단길과 나란히 설치된 미끄럼길 / 아이들 전용 놀이 공간으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운좋게 현장에서 그라피티 작업중인 젊은 작가들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국가나 지자체의 별도 비용지원은 없으나 자신들의 작품활동 기회를 제공받는 측면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바탕작업 중이어서 완성된 그림을 볼 수는 없었지만 'COMUNA 13'의 초입에 있는 긴 벽체의 그라피티라 실력이 검증된 작가이거니 생각했다. 만약 다시 온게된다면 그때는 완성된 그라피티를 볼 수 있겠지.

 

<작업 중인 그라피티 아티스트들>

 

주변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동양인들 모습이 신기했는지 현지인 일행이 대화를 요청해 왔다. 알고 보니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COMUNA 13' 구역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인 현지 방송국 스텝들이었다.

그는 'COMUNA 13'에 살인과 폭행이 범람했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의 변화를 추적하고 기록하고 사진에 담는다고 했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자신들의 변화를 보기위해 찾아 왔다는 사실에 놀라는 모습이었다. 쓰라린 과거를 정확히 기억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덕담을 건넸다.

 

<COMUNA 13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콜롬비아 방송사 직원>

 

'COMUNA 13'을  빠져 나올 때 전깃줄에 신발이 걸려 있는 특이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일행들끼리 다양한 의견이 제기 되었으나 도무지 사연을 알 수 없어 현지인에게 물어보았다.

과거에는 이 주변에 마약상이 있다는 은밀한 표시였으나 지금은 단순히 재미로 걸어 놓는다고 한다. 생활 환경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전깃줄에 걸린 신발>

 

메데진시 주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강하다고 한다. 

이러한 감정은 과거 마약카르텔과 폭력조직들에 의해 왜곡되어 왔고 그들이 사는 공간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하지만 평화가 회복된 이후 이러한 주민의 지역사랑은 혁신적인 도시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도시환경을 바꾸고 삶이 새롭게 시작된 그들의 미래에 궁금증을 품은채 짧은 탐방을 끝내고 'COMUNA 13'을 빠져 나왔다.<<< 

- webt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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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29.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2 /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 이하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메데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빈곤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성적은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다.

마약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였고, 22세 때 이미 메데진 일대를 주름잡는 마약왕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여러 조직들과의 협작을 통해 1976년 그 유명한 메데진 카르텔을 결성했고 미국 내 마피아 갱단과 연합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였다.

콜롬비아 혹은 메데진(Medellin)이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에스코바르는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범죄자로도 유명한데 이 글에서는 그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한다.

글 중에는 소문일뿐 확인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 전성기 시절 에스코바르의 갱단은 전 세계 코카인 시장의 80%를 담당했으며 일 년에 500억 달러(한화 약 55조)를 벌어들였다. 현금 다발을 묶는 데 사용하는 고무줄 구매에만 매달 2,500달러(한화 약 270만원)를 지출하기도 하였다.

-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들여올 때 보잉 727기를 개조해서 좌석을 전부 떼어낸 후에 마약을 운반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잠수함까지 밀수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 (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은 있으나) 그가 보유한 현금의 10%가 매년 없어졌는데 그 이유가 놀랍게도 쥐들이 쌓아 놓은 지폐를 갉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또한 콜롬비아 정부군과 미군의 합동 작전에 쫓겨 추운 콜롬비아 산맥으로 도주했을 당시에 (손녀가 춥다고 해서) 약 2백만 달러의 지폐를 불쏘시개로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 에스코바르가 개인 동물원을 지었는데 그가 몰락한 후 보유한 동물들 중 하마들만 처분이 되지 못하여 자연으로 방생하게 되었는데, 원래 4마리였던 하마들이 50마리 이상으로 늘어나 현재 콜롬비아 생태계의 최대 재앙으로 떠오르고 있다. 에스코바르가 콜롬비아의 현재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다름 아닌 이 하마들을 사들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있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정부가 내전과 오일 쇼크 등으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약을 팔아 번 돈의 일부를 사회 인프라와 빈민들을 위하여 투자하였다.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고 축구팀을 창설하였으며 심지어 빈민층에게 상당한 돈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 마약왕이 아닌 ‘가난한 자들의 로빈 후드’, ‘구원자’ 라는 칭송을 얻게 되었고, 1982년 콜롬비아 자유당 예비국회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심지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이중적 행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1983년 당시 법무부 장관이 그의 범죄행위와 경찰을 상대로 한 매수 등 비리행위를 폭로한데다 마약으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합동 작전으로 인해 결국 수배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의 국가부채를 자신이 상환하겠다며 사면을 요구하였으나 정부는 이를 거절하였다.

결국 에스코바르의 수감생활이 시작됐지만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에스코바르가 수감된 감옥은 호화 별장을 방불케 하는 숙소와 다름없었고 운동장과 수영장, 연회장까지 갖춘 그야말로 마약왕을 위한 맞춤형 감옥이었다. 이유는 에스코바르가 직접 감옥을 설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승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감옥 안에서도 자유롭게 메데진을 시찰하며 마약사업을 관장했다. 이런 행태에 대해 미국이 강력한 압박을 가하자 콜롬비아 정부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콜롬비아 정부가 에스코바르를 다른 교도소로 이감시키려하자 에스코바르는 함께 수감 중이던 지인들과 함께 유유히 감옥을 빠져나갔다. 이때 교도소 간수들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평화로운 탈옥에 성공한 에스코바르는 메데진에 마련해둔 아지트에서 은신을 시작한다. 주민들의 각별한 보호가 그의 은신 생활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가 현상금 8백만 달러를 거는 등 적극적으로 그를 찾기 시작했고 경쟁 마약 조직의 보복 공격이 거세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은신 중이던 에스코바르는 결국 가족을 걱정한 나머지 보고타에 있던 아들과의 20초간 통화 때문에 위치가 발각되고 만다. 자신의 생일 파티를 마친 직후였다.

위치가 파악되자 미국의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콜롬비아 특수부대가 즉각 투입됐고, 총을 들고 탈출하던 에스코바르는 그가 숨어 지냈던 건물의 지붕 위에서 특수부대가 쏜 수십 발의 총알에 맞아 사망한다.

 

<페르난도 보테르 작(1999)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죽음>

<에스코바르가 최후를 맞이한 곳의 현재 모습>

 

메데진 도시재생을 포스팅하면서 먼저 그를 소개한 이유는 메데진에 남긴 에스코바르의 그림자가 너무 짙고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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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22.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1 / 세계가 주목하다

-그들의 변화-

 

한 때 전 세계 마약 시장의 80%를 주물렀던 세기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milio Escobar Gaviria / 1949. 12. 1~1993. 12. 2).

그의 일대기는 최근에까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아직까지도 중남미는 물론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메데진(Medellin)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고향이자 세계 최대의 마약 카르텔 본거지였다. 이로 인한 마약 쟁탈전과 높은 범죄율은 시민들에게 고통과 두려움의 징표였다. 

도시문제도 심각했다. 공공의 통제를 벗어난 대책 없는 확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도시에 혁신적인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 변화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메데진(Medellin)에 도착한 것은 지난 5월 20일. 박용남 선생의 추천으로 이 낯선 도시를 찾았다.

오래 전(2002) 박용남 선생의 책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읽은 후 혼자 브라질 꾸리찌바에 간 적이 있다. 책에 실린 꿈 같은 내용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나와 박용남 선생과의 인연이다.

그 인연으로 올 초봄에 남미 도시 중 도시재생을 테마로 가볼만한 도시를 묻자 박 선생은 망설임 없이 메데진(Medellin)를 추천해주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낯선 콜롬비아의 도시 메데진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포스팅한다.

마침 7월 12일 중남미 순방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데진 플라자메이어에서 페데리코 구티에레즈(Federico Gutiérrez) 메데진 시장과 만나 '서울-메데진 간 우호협력 결연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메데진은 서울시의 우호도시가 되었다.

 

 

내 글에 앞서 세계가 평가한 메데진(Medellin)을 먼저 소개한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글들이다.

 

【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올해의 도시’(2013) 】

ㅇ 월스트리트 저널은 콜롬비아의 메데진(Medellin)이 도시랜드연구소 (Urban Land Institute)와 협력하여 개발한 글로벌 프로그램인 "올해의 도시 (City of the Year)" 페데리코 구티에레즈(Federico Gutiérrez)경쟁의 우승자로 선정하였다.

ㅇ Aníbal Gaviria 시장 소감

“메데진은 20년 전의 매우 어두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변화를 통해 고통과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곳을 현재의 희망의 장소로 만들었고 이는 전 세계 여러 도시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메데진(Medellin)은 사회변화 프로그램, 도시개발사업 또는 이 두 가지 모두의 결합에서 단계별로 혁신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성공의 핵심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올해의 도시’ 선정을 통해 Medellin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앞으로 펼쳐질 엄청난 도전의 결과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ㅇ Urban Land Institute 성명서

“지난 20년간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메데진(Medellin) 만큼 변화를 이루어낸 곳은 전 세계적으로 없었습니다. 메데진의 살인률은 1991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동안 80% 급락했습니다.

메데진은 취약한 언덕 지역에 공공 도서관, 공원 및 학교를 건설했으며 거기로 부터 상업 및 산업 센터까지 일련의 교통 연결을 구축했습니다.

메트로 케이블카 시스템과 급경사 언덕을 가로 지르는 에스컬레이터, 정류 시간 단축, 민간 투자 촉진, 사회적 형평성 및 환경적 지속 가능성 증진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 도시행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리콴유 세계도시상’ 수상(2016) 】

“메데진은 무분별한 도시 확장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의 도시환경에서 지속가능한 변화와 혁신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ㅇ 한정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메데진은 연간 수익의 약 30%를 공공 인프라 투자로 전환시키는 공공 소유 유틸리티 회사와 협력하여 자금을 창출하는 대안적인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ㅇ 또한 Anibal Gaviria 시장과 지도자들은 소규모이지만 효과적이고 영향력이 큰 프로젝트를 통해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 Circumvent Garden : 다중 운송모델을 통해 언덕과 도시를 연결함으로써 도시 확장을 통제하고 산사태 위험을 완화하는 한편 새로운 공공 공간을 창출하여 일과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킴

- 구조적으로 건전한 것으로 밝혀진 비공식 무허가 주택 단지의 합법화

-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종전 활용도가 낮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의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및 문화 공연장 개발

- 기타 유아 교육 프로그램 등의 개발

ㅇ 심사위원장 Kishore Mahbubani 교수

“메데진(Medellin)은 통제되지 않은 도시 확장, 높은 범죄률 및 마약 쟁탈전 등의심각한 과제를 해결하고 과감한 리더십, 장기 계획 및 지속 가능한 사회 혁신을 통해 제한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삶의 질과 경제를 개선했습니다.

지난 20 여년간 메데진(Medellin)이 직면했던 도전은 아프리카, 아시아 및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도시들이 겪고 있는 전 지구적 도전을 대표합니다.

오늘날의 급속한 도시화는 삶의 조건과 경제적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간 정착의 전경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 솔루션입니다.”

(참고로 2018년 ‘리콴유 세계도시상’은 서울시가 받았다)

 

 

> 위키백과에서는 메데진(Medellin)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콜롬비아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2,499,080명으로 콜롬비아 제2위의 도시이며 콜롬비아 서부, 안티오키아 주의 주도이다. 해발고도 1500m의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 위치한다.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 금의 개발 기지로 건설되었고, 후에 커피 재배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콜롬비아 커피 재배 지역의 중심지로 많은 커피를 집산하고 있다. 콜롬비아 최대의 공업도시로서, 제철, 자동차, 플라스틱, 섬유, 식품(맥주)등의 공업이 활발하다.

수도 보고타 다음가는 콜롬비아 제2의 도시로, 아름다운 공원과 근대적인 고층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과연 그들이 어떠한 노력을 통해 마약으로 얼룩졌던 기존의 이미지를 떨치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룩하였는지 몇 차례의 짧은 포스팅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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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24. 00:00

러시아 탐방기 4. -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 도시 개요

- 인구 587,900명, 동시베리아의 사실상 수도로 유서 깊은 도시이다. 모스크바와 극동지역을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전 구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위치는 바이칼 호(湖)의 서쪽과 북쪽에 걸쳐 있다. 주로 중앙 시베리아 고원과 중앙 시베리아 고원의 동쪽 연장부인 파톰 고원의 낮은 구릉지대와 넓은 계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사얀 산맥의 동부 산등성이까지 뻗어 있다.

동시베리아의무역과 행정의 중심지였던 이르쿠츠크는 몽골과 티베트, 중국으로 시베리아 모피와 상아를 수출하고 그들 나라에서 비단과 차를 수입하였다.

1879년 대화재가 발생하여 도시의 4분의 1이 전소되었다. 피해를 입은 대부분이 현지에서 생산된 목재로 만든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1880년대에 레나강 유역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그 돈으로 도시의 주요 건물들 대부분을 벽돌과 돌을 사용하여 신속하게 재건하였다.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알려졌던 이르쿠츠크는 도시의 분위기와 건물들이 제법 유럽을 닮았다. 잘 꾸며진 공원과 바이칼을 끼고 있는 앙가라 강변의 넉넉한 풍경도 이르쿠츠크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이르쿠츠크는 개혁과 자유를 목 놓아 외쳤던 실패한 혁명가들을 위한 도시로 자리 잡았다. 1825년 12월, 러시아 왕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청년 장교(데카브리스트 : 12월의 동지)들이 이곳으로 유배를 왔다. 일찍이 유럽의 발전상을 목격한 젊은 엘리트 장교들은 혁명에 실패한 후, 강제 노동과 유배 생활을 마치고 이르쿠츠크에서 못다 한 꿈을 이루어 간 곳이다. 이것이 바로 이르쿠츠크가 가장 유럽을 닮은 예술과 문화의 도시가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루크추크 도시전경 : 도시전체가 격자형 체계로 근대에 조성된 도시이다.>

 

여행 스케치

- 7월 24일 월요일, 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시내를 자유투어 하기로 작정하였다. 가이드북을 숙지하고 신발끈을 야무지게 메고 출발하였다.

<시티 가이드맵 : 용도별로 잘 분류하여 표기되어 있었다. 굳~~ >

- 우선 트랩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일행들에게 각자 동전을 내면서 승차하는 소소한 체험을 하기로 했다. 개인당 20루불씩 쥐어주었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내릴때 계산하는 관계로 총무가 단체로 지불하고 말았다. 

<트랩 : 낡고 오래된 디자인이 정겹게 다가왔다. 우리네 60년대 전철이 생각이~~ > 

< 트램 안에서 : 우리는 즐겁고, 러시아 아저씨는 왕 심각!! >

  - 시내에는 트램뿐만 아니라 트롤리 버스(Trolley Bus : 무궤도 버스로 외부에서 전기를 받아 운행하는 버스)도 있었다. 트램과 트롤리 버스가 도심교통을 커버하고 있었다.

 

- 가로 풍경 : 고전주의 양식의 상업건물(백화점)이 오래된 근대식 건물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 상업지역 : 대개 2층 미만의 저층 건물로, 외양은 고전주의 양식이 유행하고 있었다.> 

- 종교시설들

<카쟌교회(Kazan Church) : 러시아 정교회>

- 외관의 형태적인 측면에서 이스탐불에 있는 성 비잔틴 성당과 유사하다. 동로마 제국의 전성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이후에 동방정교회로 분리된 후, 다시 러시아 정교회의 건축형태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중첩되는 돔의 조합에 의한 기하학적 형태미를 과시하고 있다.

 

< 회교사원(Mosque)> : 1897년 목조로 지어진 회교사원이다. 교회의 첨탑에 해당되는 광탑(Minaret)은 통상 박스형태로 높이 솟아 있는 형태인데 반하여, 이 사원에서는 교회의 첨탑형식으로 지어진 것이 독특하다.

 

 

< 유대교회(Synagogue)> : 외관상 큰 특징은 드러나지 않으나, 중앙부분에 돔 형태의 지붕은 아래 부분에 성전을 있음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실내 평면에서 중앙부분에 독서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오히려 성전부분에는 사회자 공간만 있을 뿐이다.

- 가로 풍경 : 아직도 근대기에 지어진 목구조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마치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건물에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발코니 창에 놓인 화분이 사람이 살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 러시아 마지막 오찬 : 몽골리안 바베큐(허르헉), 맛난 음식을 먹고 모든걸 용서

- 대륙횡단열차의 길이만큼이나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느낌이다.

이르쿠츠쿠!!! 언제 다시 올 날이 있을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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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17. 00:00

러시아 탐방기 3. -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

러시아 탐방기 3. -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

바이칼 호수 개요

- 시베리아의 진주 : 바이칼호는 수정처럼 맑고 푸르다. 바이칼 호수의 형성과정은 지각판이 융기하면서 형성된 곳이다. 남북의 길이가 636Km에 폭이 60Km에 정도인 이 호수는 바나나처럼 생겼다. 거의 8Km에 이르는 균열된 틈에 퇴적물이 쌍여 있지만 지각판은 아직도 벌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호수도 점점더 깊이지고 있다고 한다. 호수의 깊이는 서쪽 호반 근처의 수심은 1637m이며 세계에서 얼지 않은 담수의 5분의 1정도가 바이칼 호수에 담겨있다고 한다.

- 올흔섬(Olkhon Island) : 인구 1500명, 바이칼 호수의 서쪽 중간 즈음에 있는 섬이다. 길이 72Km의 올흔 섬의 중심가는 후지르(Khuzhir)마을이다. 이곳에서 미니밴을 타고 섬의 북쪽 끝에 있는 아름다운 호보이 곶을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인 투어코스이다. 섬의 남측은 수림대로, 북측은 연안에 면하여 바이칼 호를 관람하기 좋은 사구로 되어있다.

< 뭍에서 살짝 떨어진 형태의 올흔 섬>

● 여행 스케치

- 이르쿠츠크 종착역에서 : 7월 20일 금요일 새벽 4시경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돌리고, 승합차로 5시간 정도를 달려 올흔섬에 들어가는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케페리를 타고 섬으로 들어와서 다시 1시간 정도를 달려서 올흔섬의 중심가인 후지르(Khuzhir) 마을에 도착하였다. 후지르(Khuzhir)마을은 섬의 중앙부분에 위치한 중심지이다.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 및 관광지이다.

- 후지르 마을 : 이곳은 풍경은 도시기반시설로는 전기가 들어오는 정도이며, 도로 포장이나 신호등은 물론 상하수 시설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마치 우리나라 60년대를 연상하는 것 같았다. 신작로만 뻥 뚤려 있고, 먼지만 폴폴 날리는 그런 풍경이었다.

<후지르 중심가 : 대문을 경계로 필지의 경계만 뚜렷하고, 이외 구간은 도로이다>

<신작로 풍경>

 

<주거지 및 숙박시설 일대 풍경>

<대부분의 건물은 단층 혹은 2층 목구조가 대부분이다.>

<올흔섬 선착장 : 파란하늘과 구름이 빛은 청백의 구성>

- 올흔섬에서 : 숙소에 와서 여장을 풀고, 모두 골아 떨어졌다. 오후녘에 수변을 산책하였다. 이곳의 랜드마크로 알려진 샤먼바위(Shaman Rocks)일대를 산책하는 것으로 올흔섬의 정취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샤먼바위 : 샤머니즘의 모태가 되는 거대한 암석, 이름하여 샤먼바위>

<샤먼바위 근처의 만장기, 주술의 염원을 형형색색 깃발에 담아서~>

 - 이튼날 아침 바이칼 둘러보기 : 미니밴을 타고 섬의 북쪽 끝에 있는 아름다운 호보이 곶을 둘러보러 갔다. 가는 중간 중간쯤에 경관이 좋은 몇 곳을 둘러 보았다.

<올흔섬에서 투어를 시작하며 : 길잡이 러시아 꼬마 2명과 함께> 

<풍경 1 : 물과 구름, 구름이 없다면 이 넓은 호수는 너무 심심할 것 같다.>

 

<풍경 2. 사자바위 악어바위가 있는 풍경> 

<풍경3. 땅과 호수의 경계, 호수에 두발을 담군 듯한 형국>

 - 올흔섬의 건축물들

< 민박집, 우리가 묶었던 ~ 단층 및 2층 목구조로 되어있다.> 

< 공공건물/우체국? : 머리/지붕부터 발끝까지 목조로 되어있다.>

< 호텔 : 2층 목구조로 지붕은 강판으로 마감, 약간 개량된 형태로 보임> 

<주택들 : 단층 목구조의 박공지붕, 혹한기에 대비한 외벽 창의 덧문이 특징>

<오프로드에 적합한 미니밴 : 사막길을 달리는 내내, 골통과 내장을 뒤 흔들었던 체험의 현장을 지금은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7월 22일 아침 일찍 섬을 나섰다. 섬 외곽에서 바이칼을 보기 위해, 옛날 바이칼 연안에서 유람선을 타고 섬을 보기 위해서였다. 호수를 내외부에서 다른 시선으로 제대로 보기 위해서이다. 이번 바이칼 기획 엄청 대단하다!!!

  - 바이칼 역사에서 : 암튼 배를 타고 얼마정도 가다가 기차역에 도착헸다. 옛날 호수를 끼고 달렸던 노선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폐선이 된 곳) 당시의 역사와 주변건물들이 남아있었다.

< 구. 역사 주변에서 기념 촬영 >

<역사 주변건물 : 독특한 외벽마감, 비늘판벽과 널판벽 같이 ~> 

< 역사 주변건물2 : 콘크리트 외벽구조에 목구조 지붕>

<역사 주변건물3 : PC판 외벽구조에 목구조 지붕> 

<역사 주변건물4 : PC판 외벽구조에 목구조 지붕>

<역사 주변건물5 : 목조+조적조 외벽구조에 목구조 지붕>

<역사 주변건물6 : 2층 목구조에 목구조 지붕>

-  바이칼 역사 주변 건물들 : 20세기 초중반 러시아의 건축기술력을 나타내는 다양한 구조의 건물들이 역 주변건물에서 나타났다.

지역적인 전통을 살린 목구조 뿐만 아니라, 공장제작해서 현장 조립하는 PC(Precast)구조(공장에서 구조용 외벽을 제작한 후, 현장에서 조립하는 구조)가 당시에 성행하였다는 사실이 다소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근대기 건축물들의 외벽디자인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는 산책이 되었다. 

- 유람선에서 본 바이칼 전경

<수심 1637m 깊이의 심연함과 너비 60Km스케일의 심연함이 드러나는 바이칼 호수> 

 

- 바이칼의 추억 : 만 사흘간 물 밖에서, 물 안 섬에서, 배타고 다양한 시야에서 바이칼을 보게 되었다. 우리 보다 열심히 바이칼 호를 본 사람 있으면 나오라고 햬!

바이칼에 대한 인상 : 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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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10. 00:00

러시아 탐방기 2. - '체험 삶의 현장' 시베리아 대륙횡단열차

러시아 탐방기 2. - '체험 삶의 현장' 시베리아 대륙횡단열차

 시베리아 횡단철도 개요

-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구간을 전통구간이라고 말한다. 추가로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추가하여 완전한 횡단코스로 보기도 한다. 경도상으로 보면 유럽에서 7개의 시간을 관통해서 아시아의 태평양 연안까지 이어지는 철도망의 통칭이다. 이 구간의 길이는 1만Km 가까이 된다.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달리는 기차는 스탭 지대와 타이가 지대를 통과해 9289Km를 달린다. 모스크바에서 태평양까지 최소 143시간(약6일)이 소요되는 여정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선로는 이외에도 중앙아시에서 합류되는 구간이 있다. 북경에서 올라오는 선로가 2개 노선이 있다. 북경에서 몽골을 거쳐 올라오는 몽공 횡단철도와, 만주를 경유하여 울란우데에서 합류하는 만주 횡단철도가 있다.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기차의 등급은 로시아(Rossiya:기차 1,2호)와 피르메니(Firmeny:특급)가 있다. 가장 많이 이용되는 로시아 열차 내에는 1등석에 해당하는 SV(Spalny Vagon : 침대칸 열차라는 뜻)은 2인 1시 침대칸이 있으며, 2등석 쿠페(Kupe)는 4인 1실 침대칸이다. 우리는 2등석에 해당되는 쿠페석을 이용하였다.

- 객차는 9개의 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객실에는 침상4개와 접이식 테이블이 있다. 복도 너비는 60센티미터 남짓하여 두사람이 교행할 경우 한 사람이 벽면에 밀착을 해야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협소하다. 전기 콘센트가 실내에는 없으며, 복도면에 설치되어 있어서 휴대폰을 충전하려면 복도에 대기하는 수고는 감수하여야 한다.

- 3등석에 해당하는 플란츠카르트(Platskart)는 딱딱한 침대칸으로 객차 1량당 54명 정원으로 복도를 따라 한쪽은 침상이 4개 한쪽은 2개씩 2층 구조로 구획되고 복도부분이 개방된 구조도 되어있다. 보통 단거리 이동시 이용된다고 한다.

여행 스케치

7월 16일 일요일 밤 브라디보스토크 역으로 이동하였다. 새벽 1시 02분 기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내가 시베리아대륙횡단열차를 타 보게 되다니~~

- 역사에서 : 대합실에서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짐의 부피가 만만치 않다. 장거리 이동에 대비한 일용할 양식들인 것 같다.

- 대륙횡단열차의 출발점에서

저녁식사와 함께한 飯酒 탓에 모두 기분이 상기되어있다. 홧팅!!!

- 기차표 :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4째줄 이름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 열차 안에서 : 우리 객실은 2등석 쿠페로 4인 1실이다. 2층 침대구조로 실내 공감은 아주 콤펙트한 구조이다. 중앙에 테이블이 있어서 술마실 때. 친밀감을 느끼기 딱 좋은 구조이다. 우리는 새벽 1시에 승차를 하였지만, 이 역사적인 순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기념 축배를 들기로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준비한 보드카로 시베리아의 어두운 첫날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4인1실 쿠페석 내부 :

쿠페석 복도 :  한사람 다니기에도 버거운 폭~ 

 

- 열차안 식사 : 사흘 동안 계속 이런 식의 식사를 하였다.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식당차가 있기는 하였으나, 소금을 넣은 안남미로 인해 아무도 숟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컵라면, 햇반으로 이어지는 식사,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깝깝증까지 더하여 정말 힘들었다. 거기에 연거푸 이어지는 보드카의 향연으로 심신은 지칠대로 지친상태였다. '체험 삶의 현장'과도 같은 괴로운 여정이었다.

- 바깥 풍경들 : 가도 가도 자작나무들만 보였다. 은갈치 색깔의 자작나무가 아닌, 습도를 머금은 음습한 기운이 나는 그런 은색을 띠고 있었다.

간혹 보이는 건물들은 100년전 소설에 등장하는 그런 건물의 형태를 잘 지니고 있었다. 암튼 74시간 정도를 이런식으로 소요하고 중간기착지인 울란우데에 도착하였다.

(바이칼 호수를 지나며 : 울란우데에서 이르쿠츠쿠 사이의 철로는 바이칼 호수를 끼고 있었다. 새벽녁에 먼동이 틀 무렵의 바이칼 호수, 안녕!!!!)

- 울란우데 역사에서 : 북경에서 출발하여 몽고 및 만주를 거쳐서 오는 열차의 합류지점으로 가장 통행량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서 30분가량 정차를 하였다.

  - 이르쿠츠크 종착역에서 : 7월 20일 금요일 새벽 4시경에 도착하였다.하차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이르쿠츠쿠 역사에서 시원한 새벽공기를 들이키며, 바이칼 호수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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