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찾아간 도시이야기

인도·방글라데시 건축 답사 - 2

by 운무허정도 2023. 12. 13.

이 글은 건축사신문 제293호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2023 경남건축사회 해외 건축물 답사기

최유나 ㅣ사람인 건축사사무소

바라나시에서 다카까지

8월 27일

타지마할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시 하는 도시인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바라나시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짐을 풀고 릭샤를 타고 갠지스 강의 가트에서 행해지고 있는 영혼을 달래는 의식인 아르띠푸자를 보러 갔다.

우리가 타고 간 릭샤는 한국말로 인력거로, 바퀴의 동력원이 사람이고, 자전거 뒤에 두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높아서 걸어갈 때보다 주변이 더 잘 보이고,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길도 갈 수 있었다. 릭샤꾼의 땀에 젖은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미안한 감정도 들고, 인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것 같아 민망하기도 했다.

가트에 도착해 아르띠푸자 의식을 구경했다. 사람들이 함께 큰 소리로 기도하고 갠지스 강에 몸을 씻는 것을 보며,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볼거리정도였지만 인도 사람들에게는 경건한 의식임을 느꼈다.

△ 릭샤

 

8월 28일

전 날 저녁이라 위험해서 타지 못했던 보트를 타기위해 아침 4시 30분에 갠지스 강으로 출발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강가로 나와 갠지스 강에서 몸을 씻고 하루를 시작하는 인도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믿고, 위안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굉장히 좋은 것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계속해서 태워지고 있는 시신들을 보며 죽음이 뭔지,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 보트에서 본 가트화장터

 

바라나시에서 마지막으로 간 곳은 사르나트와 사르나트 박물관이다. 사르나트는 부처의 4대 성지 중 하나로,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처음으로 설법을 한 초전 법륜처이다.

이곳을 가기 전 초전 법륜처이며, 유물로서 보존이 잘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과 전혀 다르게 제대로 유지되어있는 것은 거의 없고,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복원한 것이 대다수였다. 이유는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국가의 종교가 바뀌었고, 불교는 배척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 후기 서원과 사찰을 대부분 없앴던 것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하니 현재 왜 이렇게 되어있는지 이해하기가 더 쉬웠다.

다메크 스투파는 아소카 왕이 부처가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한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탑이다. 아소카 왕이 처음 탑을 쌓을 때는 이렇게 크지 않은 작은 규모였으나, 굽타 왕조 때에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되었다고 한다. 탑의 중간에 모두 8개의 감실이 있는데 불상을 모셨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몸체에는 아름다운 꽃 장식과 기하학적인 다양한 무늬가 그려져 있다.

부처가 처음으로 설법한 곳의 탑에서 우리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며 탑을 돌았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아 혼자 울음을 참고 걸었다. 취직한지 7개월이 된 마냥 철없던 딸이 멀리 인도에 있으니 걱정돼서 매일 전화하는 부모님이 생각나서 그런 것 같다.

인도사람들의 영혼의 안식처인 바라나시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늦은 밤 콜카타에 도착했다.

  사르나트

 

8월 29일

너무 피곤했지만 쉽게 오지 않는 인도 답사 기회에 놓치고 가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보고, 느끼고 가고 싶었기에 다음날 4시에 기상하여, 세계 최대의 꽃시장이라는 하우라 꽃시장을 방문했다.

꽃시장에 도착하니 한국으로 생각하면 정말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 많은 사람들이 꽃을 팔고, 꽃을 사고있었다. 힌두교, 이슬람교 모두 의식을 지낼 때에 꽃이 필요해서 아침 일찍, 의식 전 꽃을 구매하기 때문에 항상 사람이 많아 큰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인도 여행 후 제일 많이 생각나는 곳이 꽃시장이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저리 치이고, 차 경적소리에 정신없이 지나가는 중 일행 중 한분이 호텔 키를 떨어 뜨리셨었는데, 한참 뒤에서 인도 사람들이 키를 돌려주러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디어에서 본, 가난하고 더럽고 외국인에게는 사기만 치는 힘든 인도의 이미지 때문에 나 스스로 그들의 삶에 융화되는 걸 막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들도 그냥 보통의 우리나라 사람들과 같은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 콜카타 꽃시장

 

짧지만 울림이 있었던 콜카타를 뒤로하고 방글라데시 다카에 도착했다. 다카 대학교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방글라데시의 교통체증이 생각보다 엄청 심했다.

대학 5년동안 서울에서 살았었는데 퇴근시간 서울 강남 도로보다 10배, 100배는 심했었다. 그래서 결국 다카 대학교에 가지 못하고 호텔에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방글라데시도 도로에서 경적소리가 엄청나다.

한국에서는 큰 경적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있을 일이 잘 없어서, 인도 여행 중에 꽤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런데 이 소리는 앞차에게 내가 앞으로 갈 것이니 옆으로 비켜주세요 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경적소리를 무질서와 부족한 도덕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뒤에 빨리 가려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신경이 조금은 덜 쓰이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안부 인사를 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8월 30일

다음날 내가 8박 9일 일정 중 가장 기대했던 루이스 칸이 설계한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에 방문했다.

침묵과 빛의 건축가라고 불리는 루이스 칸은 예일대 예술 전시장, 요나스 소크 연구소, 킴벨 예술 전시관 등 역사 속에 길이 남을 건축물들을 많이 남겼다. 그 중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은 그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으로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거대한 메스의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주는 압도되었다. 또 형태들이 만들어 낸 공간에서 새어나오는 빛 등이 건축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며 만들어낸 디자인인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노출 콘크리트와 대리석만으로 간결하지만 임팩트 있는 건축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여행동안 방문한 인도의 유적과 건축물에 새겨진 문양, 장식은 화려하고, 복잡했다.

근대 건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이유 없는 장식은 범죄와 같다’라고 했다. 문화가 진보하면 사물을 장식당하는 것에서 떼어내 그 자체로 있도록 하는데, 옛날에는 노동력과 비용을 들여, 나라의 강인함을 보여주기 때문에 특히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인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는 그런 화려함으로 압도하려 했다.

국회의사당은 장식 없는 건축이 어떤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건축물이었다.

다음 일정으로는 방글라데시 국립박물관을 방문했다. 방글라데시의 역사, 예술, 현대 문명 등에 대해 전시되어 있었다. 방글라데시의 많은 유물들을 한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8월 31일

다카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는 칸이 설계한 스라와르디 종합병원에 갔다가, 랄박 요새에 가는 것이었다.

랄박요새에서는 두 번의 특별한 경험을 했다.

먼저 랄박요새에 들어가서 유적을 둘러보고 있는데 유적에 한글 낙서가 되어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유나 왔다감’이라고 장난식으로 벽에 글을 적는 것처럼 방글라데시 유적에 한국인이 적어 놓은 줄 알고, ‘어떤 생각없는 사람이 그랬을까, 망신이다.’라는 생각 들었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외국인이 BTS 이름을 한글로 적고 밑에 본인이 이름을 적어놨었다.

우리나라 K팝가수를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알고,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했고, 한글로 적혀있어서 한국인이 했을 것이라고 오해할 다른 외국인들도 걱정이 됐다. 뿌듯하면서도 민망하고 걱정되는 그런 경험이었다.

또 유적에 견학 온 방글라데시 학생들도 있었는데, 나에게 히잡과 니캅을 입어보겠냐고 제안했다. 먼저 입어보겠냐고 제안해준 것도 고맙고 신기했고,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해 본 것 같아서 뿌듯했다.

△ 히잡과 니캅을 입고 현지 학생과 찍은 사진, 왼쪽이 본인이다.

 

다른 여행과는 다르게 설렘보다는 걱정을 안고 왔던 인도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눈동자를 가진 인도인들이 모두 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꺄르르 웃으며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소소한 것에 감사하는 인도 사람들을 보며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이번 여행에는 인도 사람들 삶 속에 들어가 그들을 이해하고 배우고 느끼려고 노력했다. 현지인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기회는 많이 없었지만 그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보고 옴으로써 내 인생에 있어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며 ‘2023년 인도, 방글라데시 해외 건축물 답사’는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