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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24. 00:00

우리의 도시는 정의로운가

이 글은 2022년 1월 19일자 경남도민일보 '아침을 열며'에 실린 칼럼입니다.

 

정의로운 도시. 생소할지 모르나 어려운 말은 아니다.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가 정의니만큼 그런 도시가 정의로운 도시다. 성장의 시대 동안 우리의 도시는 키우고 짓느라고 앞만 바라보고 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다함께 행복한 도시, 도시의 모든 것들이 시민 누구에게나 차이 없이 공유되는 도시, 그런 도시를 꿈꿀 때가 되었다. 선진국이라지 않는가.

 

 

21세기 벽두에 열린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의 표제는 「덜 미학적인, 더 윤리적인(Less Aesthetics, More Ethics)」이었다. 완결된 형태를 미학의 완성으로 보았던 서양건축이 윤리를 주제로 삼았다. 회고와 성찰의 결과였고 시대정신의 표현이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따르거나 지켜야 할 도리가 인간의 윤리이듯 건축이 마땅히 따르거나 지켜야할 도리, 즉 자신에게 필요한 공간과 형태를 취하면서도 전체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건축의 윤리다.

건축은 공공재이다. 한 사람만을 위한 건축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소유한 건물이라 하더라도 건축은 그 속성상 공공재일 수밖에 없다. 어느 땅에 누구 돈으로 짓더라도 그렇다. 재산으로서의 건축은 사유화할 수 있지만 건축이라는 존재 자체를 사유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유지에 세워지는 건축도 크게 보면 지구 위에 서있다는 점에서 건축은 태생적으로 공공적이다. 물, 에너지, 통신 등 공공에서 만들어진 자원이 없으면 건축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건축의 윤리성을 말하는 까닭도 그것이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안전문제를 생각해보면 더 실감할 수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때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건물주는 ‘내 건물’임을 강조하며 무리한 설계변경을 강행했지만 정작 붕괴된 잔해 속에서 사상 당한 이는 천오백 명의 시민이었다.

건축이 이럴진대 도시는 말할 것도 없다.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것보다 강력한 공공재이다. 그만큼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로와 광장, 하천과 공원, 건축물의 경관과 밀도, 물과 공기, 일조와 조망과 소음까지, 도시환경 어느 것 하나 공공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 만큼 공공성이 낮은 도시는 결국 시민 삶의 질을 떨어지게 한다. 경제성장도 될 만큼 되었고, 국민 9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제는 공공재로서의 윤리적 도시를 고민해야한다.

반윤리적인 대표적 사례는 해안에 높게 지은 아파트이다. 자신들이야 전망 좋고 바닷바람도 시원하겠지만, 그 뒤에 붙은 수많은 낮은 집 사람들에게서 바다의 풍광과 선선한 바람을 탈취해버렸다. 더운 날 선풍기 앞에 딱 붙어 자신만 바람을 쐬는 꼴이며, 공연장 맨 앞자리에서 뒷사람 생각 않고 일어서서 구경하는 꼴이다. 가장 피해야할 해악이지만 우리의 도시는 무덤덤하다. 그 뿐 아니다. 권위적인 관공서, 나홀로 아파트, 부조화된 빌딩과 뻔뻔한 간판 등 도시건축의 윤리성을 생각해봐야할 것들이 도처에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동선을 지향하는 사회에 필요한 것 중 하나로 시민의 연대의식을 들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 아이를 보내고 싶어 하는 공립학교가 있는 도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공립헬스클럽이 있는 도시, 상류층 통근자들도 타고 싶어 하는 대중교통이 있는 도시, 사람들을 집에서 끌어내 운동장, 공원, 도서관, 박물관 등 시민들이 공유하는 장소로 모이게 하는 도시’를 말했다. 그런 도시가 정의롭다는 의미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의 도시는 정의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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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17. 00:00

마산번창기(1908) - 21

제9장 경제 사정 - 4

 

■ 마산의 상황(商況) 한 측면은 대개 다음과 같다.

 

□ 잠건(蚕巾, 실크) - 영국령 홍콩제로 수요기는 매년 8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의 8개월 동안이며 한 달 평균 25,000필의 거래가 있는 모양이다. 한 필(匹) 대금이 6원이라면 한 달 15만 원, 8개월이면 120만 원이 되며 이것이 수입품목의 으뜸가는 상품이다. 용도는 한인의 흰옷(白衣)에 조제(調製)된다고 한다.

□ 방적사(紡績絲) - 한 가마 20 다발 150 근으로 매월 30가마 씩 팔리는데 일 년에 적산하면 3,600 가마에 달한다.

□ 백목면(白木綿) - 이것도 한인의 흰옷에 쓰이며 일 년에 26,000 필의 판매량이 있다. 한 필당 1월 70전으로 평균으로 매상고는 44,200원으로 예상한다.

□ 마포(麻布, 삼베) - 상중하 품질의 세 가지가 있으며 모두 다 청국산이다. 상품은 30필을 한 가마로 치고 판매량은 200가마, 중품은 500필을 한 가마로 치고 500 가마, 하품은 한 반(反)을 한 가마로 치고 100가마로 예상된다. 평균가격은 상 한 필에 3원 50전, 중 한 필에 1원 5전, 하 한 필에 70전이다. 이것의 수입에 관해서는 일인은 다 현금거래를 하는데 경쟁자인 청국 상점이 14개 있어 그들은 인천, 부산, 경성의 상인들과 50일 내지 60일의 후불로 하며 영업세나 부과금(賦課金)이 걸리는 것도 아니기에 생활수준이 그리 높지 않으므로 약간의 이익이라도 있으면 팔아버린다. 반면에 일본상인들은 현금 거래인데다가 생활수준이 높고 거류민단세 및 상업회의소의 부과금 기타 여러 가지 의연금(義捐金), 기부금을 내야하기에 눈앞의 만만치 않은 이 장사의 적을 두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지나상포(支那上布) - 일본 상인에 의해 수입되는 양은 약 7천 반(反)이며 한 반당 2월 50전의 평균 시세인데 이 또한 청국상인들과 경쟁이 있어 고전 중이라 하겠다.

□ 석유 - 석유는 전 항구를 통하여 52명의 상인에 의해 1906년 8월 마산포에서 조직된 세유간석유조합(松函石油組合)에 의해 수입, 판매되고 그 창고는 마산포 서해안에 건축되어 지방에로의 수급(需給)은 다 여기서 이루어진다. 그 수입액은 15,000함 이상으로서 한 함당 3원 20전이 평균 판매가라 한다.

□ 사탕(砂糖, 설탕) - 설탕은 홍콩제이며 오사카에서 수입하여 연간 평균 270가마(俵)의 판매량이 있고 한 가마의 가격은 9원 20전이 시세로 되어 있다. 또한 굵은 설탕은 인도네시아 자바산이며 홍콩에서 일본 모지(門司)에 수출된 것을 다시 여기까지 전환 수출된 것이다. 한 달에 60가마의 판매량이 있다. 그 양은 한 가마에 155근에서 175근에 이르는 것도 있는데, 이를 165근을 평균으로 치면 그 가격은 7원 50전 안팎일 것이다. 대개 설탕류의 취급은 신시의 아베 도요기치(阿部豊吉) 상점이 전체의 4할을 차지하고 나머지 6할은 신시의 나카하라 신기치(中原新市), 마산포의 요시다 마스터로(吉田益太郞), 야마모토 고조(山本好藏)의 각 상점이 취급한다.

□ 밀가루(麥粉) - 모두 미국제로 오사카에서 수입하며 반년간 수입량은 5,500가마에 달하고 한 가마에 2원 50전이 시세 가격이라 한다. 취급은 아베(阿部) 지점이 그 4할을 차지하는 모양이다.

□ 일본 술(日本酒) - 여러 종류가 수입되고 있는데 최다량의 판매선은 해군부(海軍部)이다. 중등 이하는 이 고장에서 나오는 즉 마산에서 빚은 향기로운 맛을 즐기는 이가 많은 것 같다. 내지(內地)에서 수입하는 한 말 단위의 항아리는 3천 개에 이르고 그 종류로는 사쿠라마사무네(櫻正宗, 아래 사진), 시라츠루(白鶴), 칸야우이치(韓陽一), 쿠와우미(光武), 사와가미(澤龜), 후타마츠토(二羽鶴), 등으로 한 항아리 당 평균 20원이다. 절반이 진해방비대와 수시로 입항하는 함대에 공급된다. 그 판매점의 주된 곳으로는 히다카츠헤스케(比田勝兵助), 후쿠다사이이치(福田祭一), 사카시후미오(酒肆文男)의 가게들이다. 또한 마산에서 청주를 제조하는 양조가(釀造家)는 신시에서는 아카마츠(赤松) 상회, 나가타케(永武) 지점이 완월동에는 고탄다 도미타로(五反田富太郞), 마산포에는 하라다(原田) 지점이 있다. 가격은 한 되 30전이 소매가이며 한 말에는 2원 70전 시세이다. 하루 판매량은 약 한 석(石)에 도달할 때로 있다 한다.

 

 

□ 맥주(麥酒) - 일본맥주회사 발매조합원인 신시의 하마다 시치주로(濱田七十郞), 히다카츠헤스케(比田勝兵助), 아베(阿部) 지점과 마산포의 하라다(原田) 지점이 주로 취급하는 상표는 삿포로(札幌) 및 아사히(朝日)이며 신시의 오오토시(大年) 상점과 시미즈(淸水) 지점은 주로 기린(麒麟)을, 후쿠다(福田) 상점은 가부토(加富登)를 특약 판매하고 있다. 그 총게는 1년에 3천 상자에 이른다. 또한 군항을 건축하는 대공사의 진행과 중포병영의 이전, 또한 한인들의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앞으로 3년도 안 걸려 그 수요량이 능히 5천 상자를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 가격은 한 상자 곧 4타스들이로 평균 10원 기준으로 본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 성냥(燐寸) - 1년 판매량은 12타스를 한 상자로 하면 7천여 상자가 될 예상이며 한 상자당 편균 14원 20전이다.

□ 빨래비누(세척 소다) - 현재는 수요가 아주 적으나 최근 한인도 백의(白衣) 세탁이나 모시나 종이 원료를 표백할 때 사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수요는 점차 증가하여 앞으로 유망한 물건이라 하겠다.

□ 담배(煙草) - 일본 관제(官制) 담배의 가격은 싸지는 않지만 그래도 입에 맞은 지 오래되었으니 애연가들에게 판매는 매우 호황이다. 그 특약 판매처는 시게무라 우이치(中村宇一) 상점이다. 이곳은 확실한 신용을 지닌 가게이다. 종이에 말린 것이나 그냥 작두로 썬 담배가 슬슬 한국산이 나와 유행하기 시작했으나 일본제 담배가 큰 타격을 받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터키의 시거는 상류계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가격이 1원 50전이란 고가임으로 피울 수도 없거니와 이 종류에는 가짜도 많고 그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 수요가 확장될 일은 없을 것이다.

□ 목재 - 토지의 발전에 따라 공사의 양에 따라 그 수요가 증감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연간의 판매액은 20만 원에 이른다는 예상이다. 원산지는 나가사키(長崎), 야마구치(山口), 에히메(愛媛), 시마네(島根), 돗토리(鳥取), 아키타(秋田), 야마가타(山形) 등이다. 마산 신시의 주된 취급점은 후지이모이치(藤井茂一), 수야도라이치(酢谷虎市), 모리사치(森崎), 지점과 아이다츠네사부로(合田常三郞) 상점 외에 네다섯 군데가 있다.

□ 기와(瓦) - 건축의 수요에 따라 그 양이 달라지겠지만 평균 100만 근 즉 30만 개로 보면 맞을 것이다. 판매액은 10만 원이 될 것이다. 1908년 중에는 중포병영 공사에 6천여 원이 예상되고 있으나 이는 임시적 수요이기 때문에 평균 숫자를 잡을 수는 없다.

□ 석탄(石炭) - 마산 철도의 수요를 빼면 평균 일 년에 5천 원 내외의 수요에 불과하다.

□ 땔감 목탄(木炭) - 원산지는 쓰시마(對馬)와 이와미(石見)가 주이며 목탄은 매월 500가마(東) 이상, 한 가마당 70전 내외로 반입된다. 땔감은 매월 2천 관(貫), 한 관당 2전 23리가 기준이다.

□ 대나무(竹) - 원산지는 쓰시마(對馬), 이와미(石見) 및 오오이타(豊後)에서 공급받는다. 한 달 500다발이 평균이며 가격은 400원 내외이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스물한 번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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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10. 00:00

마산번창기(1908) - 20

제9장 경제 사정 - 3

 

■ 토지매수상의 주의

토지매매에 있어서는 거류지에는 지계(地契)라는 것이 있어 일본과 같이 등기에 관한 법이 있는데 기타 지역에서는 한인에게서 토지를 사들일 때는 한 장의 문서만 그 증거가 된다.

이때 교활한 한인이 문서를 위조하고 장소를 거짓으로 하거나 판매 금액을 속이는 등 상식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이 들통 나서 힐책하게 되면 도망을 가기도 한다.

이를 한인과 직접 매매 계약을 하거나 한인의 주선으로 그 사기의 술책에 넘어가 적지 않은 손해를 입어 세상 사람들의 실소를 부른 이가 적지 않다. 얼마 되지 않는 수수료를 아낀다고 한인을 믿고 싸구려 땅을 비싸게 사느니보다 확실한 일인 주선인(周旋人)에 부탁하는 것이 득책(得策)일 것이다.

이런 믿을 만하고 노련한 주선인은 고쿠후 야스케이(國府保敬) 씨 등이며 매매 시 수수료는 각 매매가의 3푼이며 이장(里長)이나 군수의 인증 및 이사관의 증명, 수속까지 대행해 주는 것이다. 현재 택지 매매 한 평당 가격은 대개 다음과 같다.

신시 내 1원 50전부터 30원까지

신시 외 50전부터 20원까지

마산포 3원부터 100원까지

 

■ 마산 시황

신시는 주로 외래의 손님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곳으로 제일 큰 손은 함대(艦隊)이다.

두 번째로는 관광하러 온 일본인이다. 함대가 입항하지 않을 때나 관광객이 뜸할 때에는 시장상황이 매우 가라앉아 과잉 경쟁으로 서로 뜯어 먹을 뿐이라서 다 적자를 면하지 못한다.

가게 숫자가 천 개, 5천 개가 있으면 서로 경쟁해서 치고 치여도 겨우 유지가 되겠지만 아직 그 숫자에 미달할뿐더러 과도하게 비싼 지세와 임대료를 무정한 지주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징수해간다. 오로지 지주와 가옥주 만이 그 뱃속을 채워가는 양상이라 하겠다.

 

&lt;심상고등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에서 본 신마산 거리(현 통술거리)&gt;

 

일본에서의 생활상과 비교해본다면 거류민의 생활 상태는 그 빈부 차이를 불문하고 중류층 이상이라 하겠다. 신선한 물고기가 세 끼의 식탁에 오르고 저녁에는 술을 마시며 태평을 구가한다는 일은 팍팍한 일본 내지에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음식물 물가가 싸고 노임은 일본의 매가 되어 장삿집(商家)은 부당하게 많은 이익을 얻고 있는 결과일 것이다.

수입품은 관세가 징수되므로 일본에 있어서 일본 것을 섭취하기보다는 약간 비싼 것은 당연하지만 면세 혹은 환부세(戾稅, 여세) 등의 덕분에 일본에서 수입한 것으로 일본보다 싼 것도 많이 있다. 즉 주류 일체, 담배류 일체, 설탕류 일체가 그것들이다. 특히 술이나 담배는 이곳에서도 제조할 수 있는데다가 쌀이나 곡물, 생선류가 싸기 때문에 자연히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상가의 영업 종목은 여관, 요리점, 목재상, 화양잡화(和洋雜貨), 땔감 목탄상, 화장품, 재봉점, 이발점, 공구철물상, 미곡상, 약국, 주류판매 및 기타 음식점 등인데 그 영업 행위에는 몇 가지 업을 겸업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마산포의 시황은 신시와 그 양상이 확연히 달라 주된 것은 미곡 무역상, 기타 잡화, 견면마포(비단 목면 삼베), 철물 등과 한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일인이 한국말을 잘 쓰며 이익을 내려고 애쓰는 모습은 보기에도 활발하다.

강우기를 빼고는 연간 내내 번성한 거래가 이루어질뿐더러 매월 5일장, 10일장에는 많은 금액의 거래가 되어 그야말로 불경기를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마산포의 불경기 시기를 얘기한다면 음력 정월 상반기와 오랫동안 비가 계속 올 때이다.

우의가 없는 한인들에게는 우기가 원수이기도 하여 문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도 적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스무 번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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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20. 00:00

마지막 선택 맞은 해양신도시

<이 글은 2021 12 15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기고문입니다.>

자랑이 될 건가 수치가 될 건가

개발 줄이고 새 관리모델 찾아야

 

긴 시간이었다. 마산 해양신도시가 저 모습으로 드러나기까지 무려 20여 년이 흘렀다. 주장도 많았고 다툼도 많았다. 그 사이 도시가 통합되었고 시장도 몇 차례나 바뀌었다. 섬의 규모와 모양도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 이제 모든 과정은 끝났다. 덩그러니 펼쳐진 19만 4000평 땅이 지금까지의 결과다. 없앨 수도 옮길 수도 없다. 저 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질문만 남았다.

 

 

창원시는 민간에 6만 1000평 개발을 맡기고 나머지는 공원, 미술관 등 공공용지로 사용하겠다면서 그에 따른 절차를 거쳐 한 개발업체를 택했다.

19만 4000평 모두 공공용지로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되돌릴 수는 없다. 이제는 현 상황에서 최선책을 찾아야 한다. 현재 창원시는 선택된 업체와 개발 방법과 내용을 협상하고 있다. 이 협상에서 개발내용이 결정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20년 시간 중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다.

해양신도시를 두고 걱정이 많다. 시민들 걱정은 기존 도시와 중복되는 건물들, 즉 주거와 상업용 건물 때문이다. 이 걱정은 '해양신도시가 성공하면 기존 도시는 망하고, 기존 도시가 살아남으면 해양신도시는 망한다. 둘 다 잘될 수는 없다'는 말까지 낳았다. 풍선효과에 근거한 영 틀리지 않은 말이다.

마지막 선택을 앞두고 창원시에 충심으로 고언 드린다. 오랫동안 이 일에 관계해 온 시민사회 전체 목소리이니 숙고해주시기 바란다.

첫째, 개발 규모를 줄여야 한다. 30만 평의 건물은 너무 크다. 공간 밀도도 높을 뿐 아니라 대규모 수익성 건물은 결국 도시적 폐해를 낳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창원시가 용지 일부를 다시 집어넣더라도 건물 규모를 줄여야 한다.

둘째, 용도를 변경해야 한다. 주거용 건물을 대폭 줄이고 상업용 건물은 없애다시피 해야 한다. 혹자는 개발계획에서 아파트는 1000가구 미만이라고 말한다. 그건 기망이다. 레지던스호텔, 오피스텔, 노유자시설 등은 사실상 주거용이다. 마산지역에 아파트 공급이 과도한 것은 누구나 안다. 2019년 이후 준공한 아파트 1만 가구, 현재 공사 중인 아파트 3000가구, 2024년까지 지을 아파트가 2만 3000가구 기다리고 있다. 상업용 건물을 짓지 말아야 할 이유는 굳이 설명도 필요치 않다.

셋째는 개발 이후의 문제이다. 사업자는 개발된 건물의 민간분양을 선호한다. 수익도 많을뿐더러 사업 후 손을 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물이 개인 소유가 되고 나면 결국 난개발될 수밖에 없다. 무려 19세기 말 영국의 하워드가 예고했던 일이고, 국내외 모든 개발에서 증명된 일이다. 해양신도시가 진정 멋있고 수준 높은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면 새로운 관리모델을 찾아야 한다. 길은 얼마든지 있다.

최근 해양신도시 인접 수변공원이 개장해 시민들 반응이 아주 좋다.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심지어 그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바다를 접하고 있었지만 바다와 단절되었던 도시였다. 걷고 싶은 길을 걷고, 앉고 싶은 벤치에 앉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수준 높은 도시공간의 흐름이 해양신도시 안으로까지 이어지면 좋겠다. 시민도 공직자도 저와 같은 생각일 텐데, 생각이 같다면 예상되는 리스크를 미리 걷어내야 한다. 위 세 가지 고언이 바로 그 리스크이다.

마지막 선택 앞에 선 해양신도시, 이 도시의 자랑이 될 것인가, 수치가 될 것인가, 그것은 창원시의 손에 달렸다.<<<

 

허정도 / 전 창원물생명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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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1. 07:58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가치를 논하다

마산YMCA  제22회 시민논단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에 현존하는 옛 전기회사 지점장 건물의 보전 문제를 두고 지난 3월 12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가 심의한 뒤 그 가치를 인정해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참석한 10명의 위원들이 격론을 벌이면서 토론한 결과라고 했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전기회사는 맞지만 그 전기회사가 한일와사전기인지 일한와사전기인지 아니면 경성전기인지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건축연도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건물의 적절한 명칭과 건축연도, 건축적 가치, 그리고 향후 사용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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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15. 00:00

창원 민주화 역사 담은 창작연극 ‘도시의 얼굴들’

이 글은 <문화뉴스> 노예진 기자의 2021년 3월 5일 기사입니다.

 

2월 28일 성황리에 막을 내리다

강제규 감독 “코로나 이길 희망으로 기억되길”

 

창원시의 역사적 배경을 담은 창작연극 ’도시의 얼굴들’이 2월 28일 막을 내렸다.

 

<사진 - 창원문화재단 제공>

 

2019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대상을 수상한 허정도 건축가의 동명의 도서를 원작으로 민주화 투쟁의 중심 창원의 역사 속 인물들이 암울했던 시기 작은 희망을 품고 포기하지 않은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감독이자 창원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강제규 대표가 총괄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했다.

1909년 구한말 순종의 순행, 1919년 3.1운동, 1929년 마산의 노동야학, 1949년 해방 후 독립운동가들의 삶, 1960년 3.15의거, 1979년 부마항쟁까지 70년의 역사를 담아 마산이 독립지사들뿐 아니라 저명한 문학가들이 터를 닦은 곳임을 보여주었다.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창원의 역사와 시민성, 정신을 잘 살린 작품이다. 깊은 역사를 가진 마산의 이야기를 연작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의 마지막 장면인 3.15 의거탑 앞에서의 대사가 너무 뭉클하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평범하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작품이다.’ 등 작품에 찬사를 남겼다.

창원문화재단은 “준비과정부터 공연 진행까지, 걱정과 설렘이 가득했는데, 벌써 공연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라며, “우리 공연을 사랑해주신 관객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우리와 함께 이 작품을 기억하고 추억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강제규 감독은 ‘역사와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 항거하던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이 연극이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화 투쟁의 중심 창원의 역사 속 인물들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도시의 얼굴들’은 2월 18일 부터 성산아트홀에서 공연되었으며,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전하며 2월 28일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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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22. 08:08

"창원 70년사 잘 담긴 연극 탄생 뿌듯"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김민지 기자 (kmj@idomin.com) 2021년 02월 22일 (월) 기사입니다.

 

허정도 건축가 동명 도서 원작…관객, 연기·무대·의상 호평

일제강점기부터 부마항쟁까지 옴니버스식 인물·사건 극화

"지역민으로서 자부심 느껴" 창원문화재단 28일까지 선봬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전국 순행 중 마산(현 창원시)을 찾은 1909년 일제강점기부터 유신독재 붕괴의 도화선이 된 1979년 부마민주항쟁까지 70년의 역사가 100분의 연극으로 펼쳐져 주목을 받았다.

작품은 마산이라는 장소 위에 굵직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내세워 지역의 자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8일 창원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한 연극 <도시의 얼굴들>(성종완 작·정범철 연출)이 초연됐다.

이 작품은 이달 말 임기 종료를 앞둔 강제규(영화감독) 대표이사가 총괄 프로듀서로 야심차게 선보인 창작 연극이다. 원작은 허정도 건축가의 동명 도서로 배우 김수로가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연극은 옴니버스식 구성이다. 주인공은 의병활동, 독립운동을 한 털보, 그와 결혼한 순애, 순애와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한 춘석이다.

연극은 1979년 경남대 근처 아귀찜 가게 마산집에서 기자 원석이 아픈 아버지 춘석을 대신해 털보의 행방을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산집은 순애의 딸 영희가 운영 중인 곳으로 여든이 넘은 순애가 원석에게 털보와의 첫 만남을 이야기하며 전개된다.

연극은 방대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압축해 보여준다.

1909년 순종의 순행, 1919년 3·1운동, 1929년 마산의 야학운동, 해방 후 1949년, 1960년 3·15의거, 1979년 부마민주항쟁과 함께 각 시대 마산에 살던 인물이 등장한다.

의병, 독립운동가 옥기환(1875~1953)과 명도석(1885~1954),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 소설가 지하련(1912~?) 등 무려 20명에 가까운 인물이 언급된다.

특히 순애가 원석에게 "그때 창신학교에 참 좋은 얼굴들이 마이 나왔다"며 자산 안확(1886~1946)·한결 김윤경(1894~1969)·한뫼 이윤재(1888~1943)를 언급할 때, 관련 인물 사진이 무대 배경에 나와 역사 교과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연극 <도시의 얼굴들>이 지난 18일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첫선을 보였다. 공연은 28일까지 이어진다. /창원문화재단

 

출연 배우는 서울에서 온 원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해 연기했다. 지역적 특성을 살린다는 장점은 있지만 다소 어색한 사투리로 대사 전달력이 떨어지기도 했다.

기억의 조각과 과거의 조각을 맞추어 오늘이 되었음을 표현하는 무대 디자인은 돋보였다.

극 마지막에 3·15의거탑을 배경으로 각 출연진이 "내는 운동선수입니다", "가정주부", "구두닦이", "자동차정비공", "학생" 그리고 "내는 마산시민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고 외치는 부분은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민주주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손수나(33) 씨는 "전반적으로 창원의 역사, 특유의 시민성과 정신을 잘 살린 콘텐츠가 탄생한 것 같다"며 "사투리 짙은 연기며 무대 세트, 의상까지 굉장히 정성 들여 만든 작품을 선물받은 느낌이다"고 말했다. 덧붙여 손 씨는 "다만 역사가 깊고 이야기가 많은 마산인 만큼 연작 시리즈로 제작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말했다.

김예원(26) 씨는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 등 민주주의를 잘 담은 연극이라 마산인으로서 자랑스러웠다"며 "특히 극의 마지막 부분에 3·15의거탑 앞에서 나이·직업을 불문하고 민주주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언급될 때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허성무 시장이 취임한 이후 창원시립예술단은 창원지역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무용극 <소리 없는 함성>과 오페라 <찬란한 분노> 등을 선보였다.

이번 연극은 그 연장선으로 <도시의 얼굴들>이 재단 대표 레퍼토리가 될 수 있을지 주사위는 던져졌다. 연극은 28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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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21. 00:00

창작연극 <도시의 얼굴들> 2월 18일 개막

이 글은 위드인뉴스 김영식 기자의 2021년 2월 19일가 기사입니다.

 

창원시의 역사적 배경을 담은 창작연극 <도시의 얼굴들>이 지난 2월 18일 성산아트홀 소극장에서 드디어 첫 막을 올렸다.

2019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대상을 수상한 허정도 건축가의 동명의 도서를 원작으로 하는 연극 <도시의 얼굴들>은 민주화 투쟁의 중심 창원의 역사 속 인물들이 암울했던 시기 작은 희망을 품고 포기하지 않은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영화감독이자 창원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강제규 대표가 총괄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했다.

이 작품은 1979년 마산의 한 아귀찜 가게에 기자 원석이 찾아와 가게 주인 영희의 노모 순애에게 털보의 행방을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순애가 1909년 구한말 소년 의병 털보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만세 운동을 하던 순애와 춘석, 의병 대장 털보의 젊은 시절부터, 해방 후 1960년 3.15의거, 1979년 부마항쟁까지 민주화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민주화를 갈망하는 역사를 가진 당시 마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 중 순애의 젊은 시절에는 노동야학을 개설한 옥기환, 독립운동가 명도석, 동요 ‘고향의 봄’을 발표한 이원수, 소설가 지하련 등이 등장하며 마산이 독립지사들뿐 아니라 저명한 문학가들이 문학의 터를 닦은 곳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미지: 연극 <도시의 얼굴들> 공연사진 | 제공 = (재)창원문화재단

 

연극 <도시의 얼굴들>은 개막에 앞서 창작 초연에 함께할 배우들을 공개하며 기대를 모은 바 있다.

극 중 젊은 시절 의병 대장이자 상해임시정부 비밀 요원 털보 역은 박정철이 연기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1979년의 순애 역에는 이칸희가 맡았다.

독립운동을 하며 노동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젊은 순애 역에는 길은혜가 순애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젊은 춘석 역은 지찬이 맡아 1919년 3.1만세운동과 1929년 노동야학에서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극이 시작하는 1979년 아귀찜 가게 주인이자 순애의 딸 영희 역에는 김민경이, 순애를 찾아 마산을 방문한 기자 원석 역에는 윤대성, 영희의 외아들 정규 역에 조선기가 부마항쟁 시대의 마산을 보여준다.

한국 최초의 노동야학인 ‘마산 노동 야학교’를 개설한 옥기환, 기환과 함께 노동야학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간 명도석 역에는 정상훈, 안두호가 아동문학가로 동요 ‘고향의 봄’을 발표한 이원수 역에 오태호,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하였던 소설가 지하련 역에 이현아가 순애의 젊은 시절을 함께하는 인물들을 연기한다.

이들은 오문강, 이성재, 이슬기, 류성진, 김준호, 허지훈, 김희수, 안지아, 남은주, 김민성, 박솔지, 권인화, 김예은과 함께 극 중 다양한 시대 속 인물들을 표현하며 그 시대 창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창원문화재단은 ‘연극 <도시의 얼굴들>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등 시민들이 지역의 우수성을 공감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지역의 문화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겠다. 이 연극을 창원문화재단의 대표 레퍼토리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매 장면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라며 자신감 있는 개막 소감을 밝혔다.

첫 개막 공연을 관람한 관람객들은 연극<도시의 얼굴들>이 전해주는 지역의 역사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민주화 투쟁의 중심 창원의 역사 속 인물들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 <도시의 얼굴들>은 2월 28일까지 성산아트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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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16. 20:13

박정철, 연극 ‘도시의 얼굴들’ 캐스팅 확정

배우 박정철이 연극 무대에 오른다.

이 글은 톱데일리(http://www.topdaily.kr) 최지은 기자의 2021년 2월 15일 기사입니다.

 

14일 토리엔터테인먼트 측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배우 박정철이 연극 ‘도시의 얼굴들’에 출연을 확정지었다”고 전했다.

연극 ‘도시의 얼굴들’은 구한말부터 1970년까지 창원시(옛 마산)를 거쳐 간 16인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당시 도시의 풍경과 사건을 생생하게 풀어내 지역적 특성을 잘 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원작은 2019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대상을 수상한 허정도 건축가의 동명의 책이다.

극 중 박정철은 ‘털보’로 분한다.1909년 구한말 소년 의병인 ‘털보’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총과 칼을 든 인물.그는 해방 후 1960년 3.15의거, 1979년 부마항쟁까지.민주화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

 

 

이에,박정철은 깊은 연기 내공은 물론,특유의 선 굵은 연기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완벽 소화,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할 예정이라고.

한편,박정철은 최근 배우 최정원,나혜미 등이 소속된 토리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활발한 활동을 예고한 바 있다.

‘도시의 얼굴들’은 오는 18일부터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아트홀에서 초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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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8. 00:00

마산 70년 담은 〈도시의 얼굴들〉 이달 무대에

<이 글의 원문은 경남도민일보 김민지 기자가 쓴 2021년 1월 27일 기사입니다.>

허정도 건축가 원작 동명 도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색·극화

이달 18∼28일 성산아트홀서

 

창원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는 연극 <도시의 얼굴들>이 오는 2월 18∼28일 성산아트홀 소극장에서 첫선을 보인다.

이 작품은 허정도 건축가(LH 상임감사)의 동명 도서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감독이자 재단 대표이사인 강제규 씨가 총괄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하며 극작가 성종완 씨가 각색을 맡았다.

책에는 구한말부터 1970년대까지 마산을 거쳐 간 16명이 등장하며 저자는 당시 도시의 풍경과 사건을 생생하게 풀어낸다. 경상대 출판부가 발간한 책은 제3회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궁금한 건 원작의 인물, 도시의 풍경과 사건, 지역적 특성을 '어떻게 연극으로 풀어냈을까'다.

연극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다. 공연은 기자 원석이 1979년 마산의 한 아귀찜 가게에 찾아와 주인 영희의 노모 순애에게 털보의 행방을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순애는 1909년 소년 의병 털보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독립운동을 한 순애와 털보, 춘석의 젊은 시절부터 해방 후 1960년 3·15의거, 1979년 부마민주항쟁까지, 민주화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민주화의 성지 마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연극 <도시의 얼굴들> 출연진이 연습을 하고 있다. /창원문화재단

 

이 밖에 노동야학을 개설한 옥기환, 독립운동가 명도석, 동요 '고향의 봄'을 작사한 이원수, 소설가 지하련 등이 등장한다.

배우와 스태프가 화려하다.

 

 

의병 대장이자 상해임시정부 비밀 요원인 털보 역은 <유별나! 문셰프>, <다시, 첫사랑>, <아내가 돌아왔다>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준 박정철이 맡는다.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1979년 순애 역에는 드라마 <누가 뭐래도>, <위험한 약속> 등에서 섬세한 감정연기를 펼친 이칸희가 캐스팅됐다.

독립운동을 하며 노동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젊은 순애 역에는 <어쩌다 가족> <단, 하나의 사랑>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자신만의 매력을 보여주는 길은혜가, 순애와 함께 독립운동을 한 젊은 춘석 역은 <편의점 샛별이>, <번외수사>에 출연하며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보여준 지찬이 맡는다.

연극 <장수상회> <돌아온다> 등에서 탄탄한 연출력을 보여준 정범철 연출가와 영화 <아이 캔 스피크>,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 이동준 음악감독도 함께한다.

재단은 연극 <도시의 얼굴들>을 대표 레퍼토리 콘텐츠로 만들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시민들이 지역의 우수성을 공감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지역의 문화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향후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전예약제로 무료다. 1인 4장 제한. 문의 055-268-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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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도시는 정의로운가

이 글은 2022년 1월 19일자 경남도민일보 '아침을 열며'에 실린 칼럼입니다. 정의로운 도시. 생소할지 모르나 어려운 말은 아니다.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가 정의니만큼 그런 도시가 정의로운 도시다. 성장의 시..

마산번창기(1908) - 21

제9장 경제 사정 - 4 ■ 마산의 상황(商況) 한 측면은 대개 다음과 같다. □ 잠건(蚕巾, 실크) - 영국령 홍콩제로 수요기는 매년 8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의 8개월 동안이며 한 달 평균 25,000필의 거래가 있는 모양..

마산번창기(1908) - 20

제9장 경제 사정 - 3 ■ 토지매수상의 주의 토지매매에 있어서는 거류지에는 지계(地契)라는 것이 있어 일본과 같이 등기에 관한 법이 있는데 기타 지역에서는 한인에게서 토지를 사들일 때는 한 장의 문서만 그 증거가 된다. 이때..

마산번창기(1908) - 19

제9장 경제 사정 - 2 ■ 수입품 나가사키(長崎), 시모노세키, 오사카, 고베 또는 부산 등에서 수입하고 기타 외국에서 직접 수입하는 것은 적다. 주된 품목은 견면마포(絹綿麻布, 청국제 포함), 일용잡화, 관제담배, 박래잡화..

마산번창기(1908)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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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택 맞은 해양신도시

<이 글은 2021년 12월 15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기고문입니다.> 자랑이 될 건가 수치가 될 건가 개발 줄이고 새 관리모델 찾아야 긴 시간이었다. 마산 해양신도시가 저 모습으로 드러나기까지 무려 20여 년이 흘렀다. 주..

마산번창기(1908)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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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번창기(1908) - 16

제7장 교통 □ 우편전신, 전화 이들 사무는 모두 마산우편국에서 취급하고 일본인, 청국인, 한국인은 물론 구미인의 서신, 전보도 다 다루고 있다. 집화와 배달은 매일 수차례 행해지며 아주 편리하다. 특히 마산포에도 히로시 세이..

마산번창기(1908)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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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번창기(1908) - 14

제5장 교육기관 일본인 아동의 교육기관으로는 마산거류민단이 공설(公設)한 마산심상고등소학교가 있다. 위치는 전에 신월동 지역 내에 있던 철도관리국의 소관지이며 신시와 마산포 사이에 있으면서 약간 신시 쪽에 가깝다. 그 소재지는..

마산번창기(1908) - 13

제4장 위생 및 의료 공중위생으로는 1906년(명치39년) 가을에 비로소 대청결법(大淸潔法)이 제정되어 매년 봄가을 두 계절에 집행을 보게 되었다. 또한 청결사(淸潔社)라는 회사가 있어 한인 인부들이 매일 일인 감독의 지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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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지질 및 기후 마산 부근 일대는 제3기층에 속하는 데가 많고 산이나 계곡에는 화강암 또는 결정편암(結晶片巖)을 노출하고 있는 데가 있다. 해변 및 평야는 주고 제4기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지미(地味)는 기름지고 좋다. ..

마산번창기(1908)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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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 관공서 - 4 □ 마산거류민단역소(馬山居留民團役所)-신시 사카에마치(榮町, 홍문동) 소재 1899년(명치 32년) 7월에 조직된 일본거류민회의 총대(總代) 사무소가 진화한 것이며 그 후 총대를 이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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