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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번창기(1908) - 20 - 제9장 경제사정

by 운무허정도 2022. 1. 10.

제9장 경제 사정 - 3

 

■ 토지매수상의 주의

토지매매에 있어서는 거류지에는 지계(地契)라는 것이 있어 일본과 같이 등기에 관한 법이 있는데 기타 지역에서는 한인에게서 토지를 사들일 때는 한 장의 문서만 그 증거가 된다.

이때 교활한 한인이 문서를 위조하고 장소를 거짓으로 하거나 판매 금액을 속이는 등 상식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이 들통 나서 힐책하게 되면 도망을 가기도 한다.

이를 한인과 직접 매매 계약을 하거나 한인의 주선으로 그 사기의 술책에 넘어가 적지 않은 손해를 입어 세상 사람들의 실소를 부른 이가 적지 않다. 얼마 되지 않는 수수료를 아낀다고 한인을 믿고 싸구려 땅을 비싸게 사느니보다 확실한 일인 주선인(周旋人)에 부탁하는 것이 득책(得策)일 것이다.

이런 믿을 만하고 노련한 주선인은 고쿠후 야스케이(國府保敬) 씨 등이며 매매 시 수수료는 각 매매가의 3푼이며 이장(里長)이나 군수의 인증 및 이사관의 증명, 수속까지 대행해 주는 것이다. 현재 택지 매매 한 평당 가격은 대개 다음과 같다.

신시 내 1원 50전부터 30원까지

신시 외 50전부터 20원까지

마산포 3원부터 100원까지

 

■ 마산 시황

신시는 주로 외래의 손님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곳으로 제일 큰 손은 함대(艦隊)이다.

두 번째로는 관광하러 온 일본인이다. 함대가 입항하지 않을 때나 관광객이 뜸할 때에는 시장상황이 매우 가라앉아 과잉 경쟁으로 서로 뜯어 먹을 뿐이라서 다 적자를 면하지 못한다.

가게 숫자가 천 개, 5천 개가 있으면 서로 경쟁해서 치고 치여도 겨우 유지가 되겠지만 아직 그 숫자에 미달할뿐더러 과도하게 비싼 지세와 임대료를 무정한 지주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징수해간다. 오로지 지주와 가옥주 만이 그 뱃속을 채워가는 양상이라 하겠다.

 

<심상고등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에서 본 신마산 거리(현 통술거리)>

 

일본에서의 생활상과 비교해본다면 거류민의 생활 상태는 그 빈부 차이를 불문하고 중류층 이상이라 하겠다. 신선한 물고기가 세 끼의 식탁에 오르고 저녁에는 술을 마시며 태평을 구가한다는 일은 팍팍한 일본 내지에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음식물 물가가 싸고 노임은 일본의 매가 되어 장삿집(商家)은 부당하게 많은 이익을 얻고 있는 결과일 것이다.

수입품은 관세가 징수되므로 일본에 있어서 일본 것을 섭취하기보다는 약간 비싼 것은 당연하지만 면세 혹은 환부세(戾稅, 여세) 등의 덕분에 일본에서 수입한 것으로 일본보다 싼 것도 많이 있다. 즉 주류 일체, 담배류 일체, 설탕류 일체가 그것들이다. 특히 술이나 담배는 이곳에서도 제조할 수 있는데다가 쌀이나 곡물, 생선류가 싸기 때문에 자연히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상가의 영업 종목은 여관, 요리점, 목재상, 화양잡화(和洋雜貨), 땔감 목탄상, 화장품, 재봉점, 이발점, 공구철물상, 미곡상, 약국, 주류판매 및 기타 음식점 등인데 그 영업 행위에는 몇 가지 업을 겸업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마산포의 시황은 신시와 그 양상이 확연히 달라 주된 것은 미곡 무역상, 기타 잡화, 견면마포(비단 목면 삼베), 철물 등과 한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일인이 한국말을 잘 쓰며 이익을 내려고 애쓰는 모습은 보기에도 활발하다.

강우기를 빼고는 연간 내내 번성한 거래가 이루어질뿐더러 매월 5일장, 10일장에는 많은 금액의 거래가 되어 그야말로 불경기를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마산포의 불경기 시기를 얘기한다면 음력 정월 상반기와 오랫동안 비가 계속 올 때이다.

우의가 없는 한인들에게는 우기가 원수이기도 하여 문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도 적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스무 번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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