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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山港誌25

마산항지(1926년) - 116(마지막) - 마산항지 해제 마산항지 해제 창원학연구센터 초빙연구원 한석태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에서는 『마산번창기』 번역에 이어 동일저자의 『마산항지』를 번역하고 각주 등을 통해 해석하는 일을 속행하게 되었다. 마산과 진해지역은 일본 제국주의가 건설한 대표적인 식민도시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식민도시 건설 당시 일본인의 시각과 사관에 의해 기록된 문헌자료 가운데 『마산항지』는 분량 면에서나 내용의 충실도가 뛰어난 향토 지리지라 할 수 있다. 1906년 마산에서 거주하기 시작하여 1926년에 이 책을 발간하기까지 20여 년을 마산에서 식민도시 건설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한 스와 시로(諏方史郎)는 『경남사적』(慶南史跡)과 그 『보유』(補遺)를 집필하는 등 문필과 저술활동을 펼치다가 이듬해 1927년 2월 8일 타계하여 마산에.. 2024. 9. 9.
마산항지(1926년) - 111 - 곤권(坤卷) / 제28장 내선융화(內鮮融和)로의 운동(技動)과 언어 제28장 내선융화(內鮮融和)로의 운동(技動)과 언어 모든 규율 있는 운동은 내지인 선인 똑같이 각 학교 교정 혹은 공설운동장에서 행해지며, 여자의 율동 움직임도 내선인 여교사를 모아 같이 배우게 해서 특히 고녀교(高女校) 혹은 상업교와 같이 내선공학의 교정에서는 모두가 담화에도 일본말을 사용할뿐더러 그 체조와 운동도 똑같이 하기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서로가 어울려 같아질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내지부인이 선인과 결혼하는 자는 해마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은 좋은 현상이지만 조선부인이 내지인과의 결혼을 희망하는 자가 아직 적다는 점은 아직 전적인 융화에 이르지 못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내지 유년자의 놀이 중에서 연날리기에서도 태반의 아이들은 다 조선 재래의 중앙에 동그란 구멍이 뚫린 연을 사용한.. 2024. 8. 5.
마산항지(1926년) - 93 - 곤권(坤卷) / 제20장 마산주조조합(馬山酒造組合) 제20장 마산주조조합(馬山酒造組合) 마산주조조합은 마산의 영업자 13집(戶)으로 성립되고 니시다기 소오이치(西田木惣市) 씨를 조합장으로 하여 도지(杜氏, 양조기술자)를 잘 골라서 양조 과정에서 나오는 향기로움을 겨루고 있다. 이로하(いろは, 일본식 알파벳 순) 순에 의한 각 집의 술 이름(銘酒名)과 양조량과 주인은 다음과 같다. 大典正宗(다이텐마사무네) 이시바시 이치타로(石橋市太郎) 410석 彌生(야요이) 엔도 군지(遠藤軍司) 470석 総督(소오토쿠) 이데 데이지로(井手禎次郎) 420석 寒牧丹(간보탄)(아래 사진 첫 번째) 하라다 세이이치 (原田清一) 730석 濱鶴(하마츠루) (아래 사진 두 번째) 하마다 게이지(濱田慶治) 470석 雞林(게이린) (아래 사진 세 번째) 니시다기 소오이치(西田木惣市) 60.. 2024. 4. 1.
마산항지(1926년) - 88 - 곤권(坤卷) / 제15장 긴지로분코(金次郎文庫) 제15장 긴지로분코(金次郎文庫) 야나기마치(柳町)의 홋타 마고유키(堀田孫之)씨가 사설, 운영하는 사회사업으로 매년 지방비 보조가 있다. 본 문고는 외동아들이었던 홋타 긴지로(堀田金次郞) 군이 부산중학교 재학 중에 갑자기 병마에 휩싸여 돌아갔는데 그 통한 애석(哀惜)의 기념으로 자신의 집 일부를 개방하여 크게 증축을 해 일반의 관람을 자유롭게 한 작은 도서관이다. 날마다 책을 보고 빌려 가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악기의 설비까지 있어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뜰에 있는 벚꽃은 마산 명소의 하나가 되고 있으니 지하의 긴지로 군의 영혼도 흐뭇할 것이다. 2024. 2. 26.
마산항지(1926년) - 79 - 곤권(坤卷) / 제7장 금융기관 3. 마산금융조합 교마치 1번지 미야코다리(都橋)의 남서쪽 부근에 있으며 도시금융조합에 속한다. 원래 금융조합은 상공업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총독부령에 의한 하급금융기관으로 총독부의 특별회계에 나온 최저리의 5만 원을 그 자본으로 삼고 일도일회(一道一會)라는 금융조합연합회의 감독을 받아 조합가입자로부터 한 건에 각 50원의 출자를 얻어 그 합친 돈과 조합구역에서의 예금을 조합원서 한해서 대출한다는 것이다. 그 대출액은 보통 1천 원을 한도로 하고 특별한 경우에 금 3천 원까지 대출할 수 있다는 규정은 있으니 신용보증의 위험을 피해 저당대출에 두는 중점을 두는 경향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것은 조합원 상호이익을 위한 확고한 대출규칙이며 일반의 저금도 받고 있으면서 이자는 은행보다는 다소 비싼 점이 있는 것 .. 2023. 12. 25.
마산항지(1926년) - 71 - 곤권(坤卷) / 제4장 보건(保健) 의사(醫事) 산파(産婆) 제4장 보건(保健) 의사(醫事) 산파(産婆) 1. 사회 위생 무릇 사회나 집단을 조직함에 있어서 일반위생이라는 것은 공중이 각자의 책임으로 제 마음대로의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세상에는 생각이 짧은 사람들이 많아 부청과 경찰서는 매번 협의하여 부내를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날짜를 잡아 봄가을에 두 번의 대청소를 실시하고, 또한 봄가을에 종두의 접종을 강제하고 있다. 늦봄에서 초겨울까지는 임시로 파리박멸행사도 장려했으나 아무리 해도 효과는 나지 않는다. 특히 마산포 방면에서는 위생관념이 결여한 선인, 지나인(청국인)과 어울려 사는 것에 더하여 농업자도 섞여서 비료에서 발생하는 파리 알은 온돌에 살아남아 겨울철에도 남쪽 창에 날아오르곤 한다. 또한 마산부에서는 나날이 십 수 명의 인부.. 2023. 10. 30.
마산항지(1926년) - 69 - 곤권(坤卷) / 제3장 운수 교통기관 3. 국철(國鐵) 진창선(鎭昌線) 진해 군항 시가지를 기점으로 진해면 경화동을 거쳐, 대정 10년(1921) 중 일본 호쿠리쿠(北陸) 지방의 건설회사로 진해 가메지마쵸(龜島町)의 도키와쇼카이(常磐商會) 주인 마츠오 시게노부(松尾重信) 씨가 약 126만 원으로 청부해 파고 뚫은 연장 6천 피트 즉 2마일 10야드의 장복터널을 지나 창원군 상남면 사파정(沙巴丁) 역, 웅남면 삼동(三東) 역을 경유하여 국철 마산선 창원역에 연접하는 노선이다. 본년 즉 대정 15년(1926) 11월 11일에 개통할 예정이다. 대정 16년(1927) 4월 벚꽃이 만개할 때가 좋다고 창원군에서는 개통 축하와 벚꽃 선전을 겸해서 경남의 2부(府) 19군(郡) 연합의 농산품 대공진회를 진해에서 개최하기로 해, 마산에서는 양조 일본 술.. 2023. 10. 16.
마산항지(1926년) - 61 - 곤권(坤卷) / 제1장 개황 일반 마산항지 곤권(坤卷) 제1장 개황 일반 마산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하다. 천지건곤의 영기가 응어리진 무학산을 북에 이고, 수려한 마산만을 남에 안고, 비옥한 지질과 풍부한 맑은 샘 그리고 온화한 날시는 조선 제일을 자랑한다. 신선한 어패류, 맛 나는 소채, 감미로운 창원 쌀, 어느 것이든 저절로 군침이 난다. 봄에는 나물 캐러 가고 벚꽃 밑에서 좋은 술에 취하며, 여름에는 해수욕이나 소풍으로 피서하며 사는 맛을 만끽하고, 가을에는 밝은 달밑에서 악기를 튕기며 노래도 읊고 멋지게 지낸다. 겨울에는 삼한사온이란 날씨 밑에 펼쳐지는 우리의 행복이 그 얼마나 많은가.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 보호기관이 있으므로 가능하다는 점은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산항.. 2023. 8. 21.
마산항지(1926년) - 52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23. 마산병원의 이전 도쿠나가(德永) 의학사가 경영하는 사립 마산병원은 시세의 변화상 변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없게 되어 명치 41년(1908) 9월 현재의 미야코마치(都町)에 있는 철도용지 내의 빈 관사 4동을 빌려 이전하였다. 75평의 본원을 신축하고 빌린 3개 동 12실을 병실로 충당하고 한 동은 의원용 주거로 하였다. 마산부는 대정 11년(1922)도에 그 원형을 차권(借權)과 함께 3만 원에 매수하여 이것을 관립 마산자혜의원으로 하여 기부했다.(옮긴이 주 ; 이 자혜의원이 현재의 도립마산의료원 전신이다. 아래 사진은 1927년에 건축한 도립마산병원) 당시 입버릇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당국자와 공직자 등을 가리켜 토오리마치(通町)에 있는 한산하고 넓은 땅인 미우라 야고로(三浦彌五郞) 공사의 사저.. 2023. 6. 19.
마산항지(1926년) - 49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17. 마산상업회의소의 성립 마산상업회의소는 마산실업계의 유지 다나카 손(田中遜, dkfo tkwls) 씨 외 29명의 발기로 명치41년(1908) 5월 29일 설립 인가를 얻어 5월 30일에 성립하게 되었다. 신마산과 마산포에서 각각 10명씩의 의원을 선거하고 서기장으로 다니가키 가이치(谷垣嘉市) 씨를 목포에서 영입해 왔다. 그 석차는 아래와 같으며 씨명 뒤의 괄호는 신마산과 마산포를 알기 쉽게 한 기호다. 1번 회계심사 다나카 손 (田中遜) 신 2번 히사에 간사쿠 (久重勘作) 포 3번 자격심사 히로시 세이조 (弘淸三) 신 4번 실업조사 메카다 헤이사부로 (目加田平三郞) 신 5번 야마모토 고조 (山本好藏) 포 6번 실업조사 다나하시 센노스케 (棚橋仙之助) 포 7번 부회두 마츠바라 하야조 (松原早藏) 포.. 2023. 5. 29.
마산항지(1926년) - 48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15. 군용지와 철도용지를 빌려 씀 거류민단은 예산의 태반을 차지하는 교육비의 재원에 관해 큰 관심을 가져왔는데 마산의 중간에 가로놓인 광대한 철도용지(아래 그림) 및 그 북쪽의 논밭 사이에 있는 군용지를 대부받아 이것을 희망자에게 전대(轉貸)하여 그 임대료와 대부비용의 차액으로 교육비 보총의 기초로 삼으며 아울러 호별(戶別) 부과금의 일부를 완화하려고 기획했다. 미마스 이사관의 원조 아래 당국에 운동하여 허가를 얻어 명치 41년(1908) 5월 13일 민회를 열어 전대지 협상위원의 선거를 실시해 히로시 세이조(弘淸三), 시게무라 우이치(重村宇一), 모리야마 이치로(森山亥次郞), 다나카 츠루마츠(田中鶴松), 야마모토 고조(山本好藏)의 다섯 사람이 당선되었다. 다섯 위원은 곧 민단 직원을 참가시켜 도로에 .. 2023. 5. 22.
마산항지(1926년) - 42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3. 소학교의 이전 융희 원년 즉 명치 40년(1907) 1월 민회는 만장일치로 아동 5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학교 교사와 그 부속건물의 신축을 의결했다. 바로 기부금 모집, 실행, 최계 담당 세 위원을 구성해 마산철도용지의 한 지역을 무상으로 빌려 일체의 설계를 통감부 철도관리국 마산임시건설부장으로 있던 오츠카 조사부로(大塚常三郞) 기사에게 맡겼다. 이해 10월 임시건설부가 철폐되어 약 60여 명의 직원들은 인천과 초량으로 이동했다. 마산소학교는 바로 그 터를 빌려 민단사무소와 함께 이전하게 되었다. 이 건물(위 사진)은 과거에 한국인을 놀라게 한 마산우편국 이상의 굉장하고 훌륭한 서양식 건물이라 마산건축계에서 그 위용과 풍채를 뽐냈다. 우편국 건물은 명치 41년 초여름에 해체되어 용산으로 이축되었.. 2023. 3. 27.
마산항지(1926년) - 41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1. 거류민단의 조직 우리 거류민회가 마산이사청 미마스 구메키치(三增久米吉) 이사관을 감독관으로 거류민단제를 시행한 것은 광무 10년 즉 명치 39년(1906) 9월 1일이었다. 이보다 앞서 일본정부가 경성에 한국통감부를 두게 되자 각지에 있는 영사관을 폐지하여 이사청을 두고 재근 영사를 바로 이사관으로 임명했다. 이때 내외의 교섭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평민주의의 원활함이 너무 좋다는 평을 들어온 미우라 야고로(三浦彌五郞) 영사는 경성이사청 이사관으로 전보되어 이해 2월에 부임하러 떠났다. 경성 영사였던 미마스 구메키치 씨가 그 후임으로 마산 이사청 이사관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씨는 삿포로농대 출신의 농학사로 미국공사관 서기관부터 구미 각지의 영사를 역임한 관권 만능.. 2023. 3. 20.
마산항지(1926년) - 39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16. 군사철도의 개방 군사철도 마산선이 개통됐을 당시에는 마산, 삼랑진 간에는 오직 창원과 진영의 두 개 역밖에 없었는데 러일의 평화가 회복되고 군사전용이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이해 11월 1일부터 민간에 개방되어 일반 공중이 자유로이 탈 수 있게 되니 이주자는 확연히 격증하였고 다음 해 광무 10년 즉 명치 39년(1906) 봄부터 거류지, 마산포 및 그 중앙부 다 같이 건축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인의 여관은 빈방이 있는 데가 없고 한인의 여인숙에도 좁은 온돌방에 모국의 동포가 네댓 명이 합숙하는 등 정도의 서광을 엿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다음은 그해 6월 하순에 적어놓았던 필자(아래 사진)의 메모 몇 절을 발췌해서 수록하니 최고 자료로 삼았으면 한다. 나는 처가 있을.. 2023. 3. 6.
마산항지(1926년) - 33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5. 일본인 거류민회의 성립 일본인회 이사인 센고쿠 간쿠로(仙石勘九郞) 씨가 고질인 결핵이 악화되어 이사직의 자퇴를 요구해오니 평의회는 이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고 후임 후보자로 미야하라 가네유키(宮原兼行) 씨를 선태했다. 미야하라 씨가 수임 의사를 표명한 그 평의원회가 개최된 날은 명치 36년(1903) 1월 11일이었다. 그때 센고쿠 이사는 귀신의 호적부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동포 입주자는 점점 늘어나 거류지, 중앙부, 마산포를 통털어 100호, 200여 명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의원회는 일본인회 회규가 협소하고 동포 통일의 불편을 느껴 이 조직을 일본인거류민회(日本人居留民會)로, 이사를 거류민회 민장(民長)으로 고치고 주민 호구장부의 조제 및 기타.. 2023. 1. 23.
마산항지(1926년) - 32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3. 각국거류지의 첫 장날(初市) 명치 35년(1902) 8월 3일은 음역 6월 30일에 해당되니 거류지의 첫 장날임을 각지에 선전하며 시장터를 마산영사관에서 아래로 내려온 현재의 혼마치 네거리 주변 일대로 정했다. 선전 노력의 효과가 났는지 지방시장 상인의 출점이 꽤 많았으며 사방 주위의 손님도 상당수가 모이고 동포들은 첫 시장을 경축하려 상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제공하니 그들도 좋아하고 앞으로 더 성대해질 것 같았다. 한편으로 정기장을 잃게 된 구강(舊江) 민중들은 크게 분노하여 이전에 반대하고 그것의 회복에 분주하거나 혹은 감리서에 압박을 넣거나 경성 정부에까지 운동하기도 했다. 또한 시장의 이전으로 재산까지 없어진 자가 나오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새 시장을 연 지 20여 회 즉 .. 2023. 1. 16.
마산항지(1926년) - 19 - 건권(乾卷) / 제5장 근고사(近古史) 제5장 근고사(近古史) 4. 마산의 이름 유래 히데요시 전쟁(임진왜란)이 끝나면서 곳곳에 역병이 유행하여 창원성(昌原城)이 있는 오산진(午山津)에서는 날마다 송장이 산더미를 이루는 참상을 보였다. 오십인총, 삼십인총, 이십인총 등이 도처에 나타나 살아남은 노인들이 상의해 풍수사(風水師)를 불러 신의 마음을 헤아리게 했다. 신에 빙의한 풍수사가 이르기를, 오산의 오(午) 자는 오래 산다는 길한 자인데 저주받은 이 땅에서 그 글자를 씀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샀느니 라고 했다. 상의 끝에 오(午) 자는 말 마(馬) 자와 동의어라 오산을 마산으로 고치기로 하니, 이것이 오늘날 마산부 이름의 유래(당시 민간에 떠돌던 하나의 속설로 보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세종 7년(1425)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 2022. 10. 17.
마산항지(1926년) - 16 - 건권(乾卷) / 제4장 중고사(中古史) 제4장 중고사(中古史) 6. 왜구의 침해 원나라의 정동전쟁이 끝나고 약 70년이 지난 왜구의 침해하는 국난이 고려에 또 일어나게 되었다. 왜구란 무엇인가? 소위 일본의 해전 무리에 대해 원과 고려인들이 호칭하는 바, 왜(倭)는 야마토라고 읽고, 야마토국의 해적이란 의미가 된다. 가마쿠라 막부의 집권직 호조 다카토키(北條高時)가 겐코우(元弘) 원년 고다이고(後醍醐) 천황이 남쪽 지방에 사냥 행차한 틈을 타서 고후시미(後伏見) 천환의 아들 료인(量仁) 친왕을 옹립해 즉위하게 한 이래 국내는 남복조로 나뉘어 그 기간이 문란해기며 세상은 어수선해져 영웅할거의 전국시대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때를 놓쳐 관직에 오르지 못했던 호족은 일족과 부하들을 이끌고 바다에 나가 스스로 해적대장군이라 칭하며 그 약탈은 지나(支.. 2022. 9. 26.
마산항지(1926년) - 15 - 건권(乾卷) / 제4장 중고사(中古史) 제4장 중고사(中古史) 4. 스와오카미(諏方大神)의 기서(奇瑞) 몽한려(蒙漢麗)의 침공군은 분에이(文永), 고안(弘安)의 양 전쟁에서 폭풍우 때문에 고민에 찾는데, 당시 이것은 나가노(長野) 지방과 스와오카미(諏方大神)가 불어낸 신풍(神風)이란 소문이 자자했다. 스와오카미란 태고적 이즈모(出雲) 왕조의 주권자 오쿠니누시노미코토(大國主神)의 아들인 다케이나가타노미코토(建躬名方命)를 신으로 모신 것인데 부신 및 형신인 고토시로누시노미코토(事代主尊)는 다카마가하라(高天原) 왕조의 명에 따라 영토를 고스란히 갖다 받쳤는데 다케이나가타노미코토는 혼자 이에 반대하여 그 군대와 싸우다 패배해 나가노 산중까지 쫓기어 마침내 항복했다가 그 자리에 눌러앉게 된, 국토 애석(哀惜)의 신이기도 하다. 그 지방에는 누지나무(梶.. 2022. 9. 19.
마산항지(1926년) - 14 - 건권(乾卷) / 제4장 중고사(中古史) 제4장 중고사(中古史) 3. 제2차 정동전쟁(征東役) 신사(辛巳, 1281) 충렬왕 즉위 7년, 곧 일본 91대 고우다(後宇多) 천황 고안(弘安) 4년 정월 정동원수부(征東元帥府)는 합포로 이전하여 신첨군(新簽軍, 새로 징발해 평성한 군대. 원나라는 주로 정복지역의 이민족으로 이 군대를 편성해 참전시켰다) 1만5천은 함안의 파수고개(오기 - 巴嶺, 고려사의 기록에는 巴嶺이 아니라 절령(岊嶺)이다. 절령은 황해도 서흥군에 있는 험한 고개로 고려 원종 11년(1270)부터 충렬왕 16년(1290)까지 원 나라와의 경계였다. 충렬왕 7년(1281) 1월 28일 을축 기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정동행성에서 첩문을 보내어 신첨군 1만5천 명의 식량 및 대군이 절령에서 합포에 이르기까지 말에게 먹일 자료를.. 2022. 9. 12.
마산항지(1926년) - 12 - 건권(乾卷) / 제4장 중고사(中古史) 제4장 중고사(中古史) 1. 내우외환 마산의 중고시대는 고려왕조 시대에 있고 마산 지방이 아직 고려의 판도에 들어가기 전 즉 경진(庚辰) 고려 건국 3년(920), 겨울 10월, 백제의 재흥을 꾀하던 견훤은 신라를 침범하여 지금의 합천 옛 땅인 다라(太良), 현 마산과 창원의 옛 당인 구시(仇史), 현 김해군 지방인 진례 및 기타 여러 군을 탈취했다. 병신(丙申, 936) 고려 건국 19년 가울 9월, 고려 시조인 왕건이 통일을 이루고 경자(庚子, 940) 고려 건국 23년 봄 여러 군현에 새로운 제도를 시행할 때 합포현을 세우고 19세기 명종 7년, 정유(丁酉,1177)에 환주산의 합포현성을 크게 확장하여 동남도병마절도사를 병치하였다. 24세 원종 왕 이전부터 왜구 즉 일본해적은 반도의 남해에 출몰해 .. 2022. 8. 29.
마산항지(1926년) - 7 - 건권(乾卷) / 제2장 영광에 찬 마산의 산과 바다 제2장 영광에 찬 마산의 산과 바다 1. 고려 충렬왕의 행사(行幸) 마산은 원래 합포로 불려 왔는데 이 명칭은 현재의 마산 행정구에 한정되지 않고 마산만 연안 전부에 대한 호칭이었던 것 같다. 그 관할은 현재의 창원군 내서면 회원리에 그 중심을 두고 진성(鎭城)은 현 마산부 자산동에 있는 환주산(還珠山, 현재의 추산 騶山)에 그 폐허(會原縣城址- 아래 사진)가 남아 있다. 몽고의 호족 출신으로 원나라 왕조를 세운 쿠빌라이 황제 홀필열(忽必㤠)은, 징기스칸의 손자로 그 위망이 높고 주변국을 정복하여 그 조공을 받던 터. 고려 25세 충렬왕(忠烈王)을 부마(駙馬)로 삼고 반도를 그 영토에 넣었다. 이미 남송을 통하여 일본의 동향을 알아보도록 했는데, 일본은 파견된 사신을 받지 않거나 죽이기까지 하면서 원 왕.. 2022. 7. 25.
마산항지(1926년) - 6 - 건권(乾卷) / 제1장 마산항의 대관 제1장 마산항의 대관 3. 지질(地味)과 수질 마산 부근 일대의 땅은 대체로 제3기층에 속하며 산이나 계곡에는 화강암 혹은 그 결정편암이 노출되어 돋아난 데가 많다. 해변의 평야는 대개 충적층이므로 지질은 비옥하다. 그러기에 해변 제방 안의 소금기 많은 논밭 이외에는 쌀과 보리와의 이모작, 혹은 보리와 소채류 교대작의 수확이 있다. 산에는 큰 나무가 없어서 울창하지는 않지만 묘역이나 기타 특별히 보호의 손길이 미치는 데는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느슨한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관공사유지(官公私有地)로서 남벌금지구역 혹은 총독부 임정(林政) 방침을 따르는 조림지 등에는 나무가 울창하게 땅을 덮게 된 몇 년 후에는 마산 육군 군용림 등 일부에서는 송이버섯이 생육하기도 한다. 이십여 년 .. 2022. 7. 18.
마산항지(1926년) - 4 - 건권(乾卷) / 제1장 마산항의 대관 마산항지 건권(乾卷) 오릉(午陵) 하쿠엔보(白猿坊) 스와 시로(諏方史郞) 제1 마산항의 대관 1. 위치 및 지세 우리 마산항은 조선반도의 동남쪽, 경상남도의 중부에 있으며 마산부의 관치(官治)에 속하며 창원군 관할의 복부(腹部)에 포함된다. 그 위치는 동경 128도 33분, 북위 35도 11분의 교차점을 낀다. 동서 28정(町, 거리의 단위. 1정은 1간(間)의 60배로 약 109미터이다) 30간(間). 남복 1리 14정 사이에 펼쳐져 육지 면적은 1방리(方里, 가로세로 1리(里)가 되는 면적. 약 15㎢이다)의 63퍼센트에 불과하다. 전면은 바다로 마산만에 임하며 만 내 거의 중앙에 주위 500간도 안 되는 저도(猪島), 일명 월영도(月影島)가 누워 있고, 그 동쪽 끝을 경계선으로 한 약 2해리를 마산.. 2022. 7. 4.
마산항지(1926년) - 2 - 추천사, 저자 머리말 스와 시로(諏方史郞) 옹의 저술 『마산항지』에 붙여 도오산(宕山) 소시 힌(莊子 斌) 煥發史才斑馬豪(환발사재반마호) 옹의 사재가 얼룩말의 빛과 같이 드러남이여 操觚幾歲肺肝勞(조고기세폐간노) 문필 작업하는 세월동안 허파와 같이 성했을까 謝君彰考闡幽筆(사군창고천유필) 선친의 필치를 펼치어 아버지를 드러내셨고 爲我馬山吐氣高(위아마산토기고) 우리 마산을 위해 기운을 크게 토하셨네 父子文名並見豪(부자문명병견호) 부자 함께 문명을 호쾌히 보이시도다 料知昔日切嗟勞(료지석일절차노) 일찍이 절차탁마의 노력 있었음을 알겠도다 一家衣鉢相傳在(일가의발상전재) 가문의 전통이 전승되고 있음이여 筆底波瀾萬丈高(필저파란만장고) 붓 아래 치는 파도 만장같이 높도다 스와 옹의 시문(詩文)의 원천은 부친 고슈(翁洲) 선생의 은택인 바, .. 2022.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