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48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by 운무허정도 2023. 5. 22.

15. 군용지와 철도용지를 빌려 씀

 

거류민단은 예산의 태반을 차지하는 교육비의 재원에 관해 큰 관심을 가져왔는데 마산의 중간에 가로놓인 광대한 철도용지(아래 그림) 및 그 북쪽의 논밭 사이에 있는 군용지를 대부받아 이것을 희망자에게 전대(轉貸)하여 그 임대료와 대부비용의 차액으로 교육비 보총의 기초로 삼으며 아울러 호별(戶別) 부과금의 일부를 완화하려고 기획했다.

 

미마스 이사관의 원조 아래 당국에 운동하여 허가를 얻어 명치 41년(1908) 5월 13일 민회를 열어 전대지 협상위원의 선거를 실시해 히로시 세이조(弘淸三), 시게무라 우이치(重村宇一), 모리야마 이치로(森山亥次郞), 다나카 츠루마츠(田中鶴松), 야마모토 고조(山本好藏)의 다섯 사람이 당선되었다.

다섯 위원은 곧 민단 직원을 참가시켜 도로에 면한 대지 및 논밭의 등급을 감안하여 임대료를 몇 등급으로 나누어 전대계약은 경쟁 입찰로 하고 오늘까지의 교육비 보충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 노고와 당시의 민단에 대해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임대료 수입은 절반으로 나누어 철도 당국에 납부하게 되어 있으며 교육비로서 일 년에 1만여 원의 보충이 되는 셈이다.

만약 이 재원이 없을 때는 이 1만여 원은 학교조합원인 동포가 부담해야 하니 한 세대 당 1년에 평균 부담액은 약 10원 이상이 될 것이다.

 

16. 진해방비대의 마산 관민 초대

 

5월 27일은 우리 해군이 러시아 함대를 쓰시마 앞바다에서 섬멸한 것을 축하하는 기념일이다.

진해방비대는 명치 41년(1908)에 처음으로 그 기념축하회를 본거지인 거제도 송진포에서 개최하면서 마산의 저명인사 60여 명을 초대했다.

당일 방비대에서는 기선 로코비마루(老虎尾丸)를 마산 부두에 파견하여 초대객 이외에도 관람객도 아울러서 200여 명을 싣고 송진포로 향하였다.

송진포에서는 도처에 여러 가지 장식물을 걸어 놓았으며 여흥으로 수뢰(水雷) 폭파 시연도 있었다.

연회는 입식으로 기념관 앞뜰에서 열려 수병들이 술을 따라주는 등 매우 즐겁게 보내다가 다시 로코비마루를 타고 돌아왔던 것이다.

당일 미야오카(宮岡) 사령관실 현관에 걸린 기념 문구는 다음과 같다.

〔일로전역기념관(日露戰役記念館)〕

본관은 명치 33~34년(1900~1901)경 진해만 율구미에서 러시아 해군이 쓰던 건물이다. 당시 러시아는 진해만을 동양함대의 집합지로 하고 육상에 병사를 주둔시켜 만내에 그 범선이 끊일 날이 없었는데 전역 결과 우리 해군은 이 건물을 압수해 우리 본 대가 이곳에 이축, 개조해 기념관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명치 41년 5월 27일 진해방비대사령관 해군소장 미야오차 나오키(宮岡直記) 적음<<<

 

1904년 일본군 제독 도고 헤이하찌로가 당시 무적함대였던 러시아함대를 향해 출전하기기 전 전의를 가다듬기 위해 써 둔 글을 송진포 거주 일본인들이 비(碑)로 새겨 두었던 것이다.(출처 장목면지)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48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