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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42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by 운무허정도 2023. 3. 27.

 

3. 소학교의 이전

융희 원년 즉 명치 40년(1907) 1월 민회는 만장일치로 아동 5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학교 교사와 그 부속건물의 신축을 의결했다.

바로 기부금 모집, 실행, 최계 담당 세 위원을 구성해 마산철도용지의 한 지역을 무상으로 빌려 일체의 설계를 통감부 철도관리국 마산임시건설부장으로 있던 오츠카 조사부로(大塚常三郞) 기사에게 맡겼다.

이해 10월 임시건설부가 철폐되어 약 60여 명의 직원들은 인천과 초량으로 이동했다. 마산소학교는 바로 그 터를 빌려 민단사무소와 함께 이전하게 되었다.

 

이 건물(위 사진)은 과거에 한국인을 놀라게 한 마산우편국 이상의 굉장하고 훌륭한 서양식 건물이라 마산건축계에서 그 위용과 풍채를 뽐냈다. 우편국 건물은 명치 41년 초여름에 해체되어 용산으로 이축되었다.

소학교 터가 지금의 미야코마치(都町, 현재의 중앙동 일대) 2정목에 있으며 경찰서 맞은편의 빈터 일대가 바로 그곳이다.

 

4. 기라쿠자(喜樂座)의 소실과 소방조(消防組)의 편성

전년 늦여름 현재의 교마치(京町)에 있는 고이즈미 시게조(小泉繁藏) 기모노점의 후방에 있으며 그의 소유지 내에 건설된 기라쿠자는 명치 40년(1907) 2월 1일 밤에 불이 나고 센 바람 탓에 금방 시커멓게 타버리고 말았다.

바람 부는 쪽에 있던 신축의 메카다 헤이사부로(目加田平三郞), 아카마츠 준코(赤松順子)의 두 사람 집도 위험해졌는데 많은 사람들의 소화 활동 덕분에 소각은 면했다.

이때 저자의 집은 고이즈미 기모노점과 나란히 교마치 대로변에 있어 사람들이 많이 와서 경계를 해주어 부엌의 외재만 태웠을 정도였다.

그런데 저자의 집과 기라쿠자 사이에 있는 우에니시(植西) 기모노점의 창고가 불타 그 창고 안에 있는 면에 불꽃이 튀었지만 일찍 발견하여 큰일 없이 소화가 되었다.

당시에 소방기구라야 마산우편국 및 철도 마산반에 구식의 작은 송수기가 각 한 대씩 있을 뿐이었다.

이 화재가 계기가 되어 다음 2일, 거류지 유지들은 민단 사무실에서 회합하여 소방조 편성을 협의, 사카이(境) 경찰서장도 임석한 가운데 미마스(三增) 이사관의 찬성을 얻어 마침내 오다 젠시로(小田善四郞) 씨를 조장으로, 아카츠카 도쿠지로(赤塚德次郞) 씨를 부조장으로 한 80명의 일단을 편성하여 거류지소방조라 명칭하며 바로 송수기 구입에 준비를 했다.

구마산의 소방조 편성은 그 후에 이루어졌으며 일본인 36명, 청국인 4명, 한국인 40명, 합계 80명의 일단으로 일청한삼국동맹소방조(日淸韓三國同盟消防組)라 불리었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42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